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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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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소볼레프카 강 유역


소볼레프카 강 유역은 시호테 알린 산맥의 동쪽 경사면에서부터 시작해서 우스티-소볼레프카(Усть-Соболевка )마을 주변의 동해로 떨어진다. 강의 길이는 68km, 지류는 상류에 있는데, 좌안에 레바야 소볼레프카(Левая-Соболевка) 강, 우안에는 수하야-소볼레프카(Сухая- Соболевка) 강이 있으며, 산에서부터 흘러 내린다. 산의 높이는 1000m가량이고, 중류역은 500~700m, 하류역은 최대 400m이다. 해안가와 가까운 곳에는 경사면은 가파르지 않고, 낮은 경사면을 이룬다. 산에서 강과 시내가 많이 흘러서 골짜기가 많이 형성되었다. 이 곳에서는 암벽과 암반이 무너진 곳이 확인된다. 강 유역에는 침엽수가 95%가량으로 덮여 있다. 강의 하류는 2km가량으로 넓고, 농사를 짓기에 알맞다(그림 114).



그림 114. 소볼레프카 강 유역(50, 우스티 소볼레프카 성곽)

 


1) 우스티-소볼레프카 성곽


우스티-소볼레프프카 마을에서 동쪽으로 1km 떨어진 곳으로 소볼레프카 항구의 북쪽 해안단구에 위치한다(사진 62, 그림 115, 116, 12).

1908~1909년도 아르세네프가 유적의 평면도를 처음 작성하였다(그림 115). 이 성은 해안가의 단구대 위에 축조되었고, 장축 방향은 남북방향으로, 소볼레프스카 강의 지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림 115. 우스티- 소볼레프카 성곽 평면도



성의 서쪽에는 석벽과 해자가 3줄 축조되어 있고, 동쪽에는 1열의 석벽과 바깥쪽으로 깊지 않은 구덩이가 석벽을 따라있다. 석벽의 높이는 1m, 해자의 깊이는 0.5m이다. 시굴 구덩이에서는 깊이 0.5m 지점에서 연질토기와 寛永명 동전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일본의 연호로 1624년부터 19세기 까지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4년에 타타르니코바가 이 성곽을 발굴하였다. 말갈토기 가운데서 트로이츠코예 형식의 토기가 확인되었다.

2001년 아무르-연해주 고고학탐사단이 성을 지표조사 하였는데, 개발로 인해서 성은 10~15정도만 남아 있었고 파손이 심각했다(그림 116).

출토된 유물로 보아서 이 성은 말갈문화 중에서도 트로이츠코예 그룹과 관련되어 있고 10세기 정도로 생각된다.



그림 116. 시굴 구덩이의 토층도

 

*이 성은 평지성으로 평면형태는 개방형으로, 성벽은 부채꼴 모양이다. 내부는 편평하고, 내성과 보루가 없다. 성에는 치와 같은 시설물이 없고, 성벽은 돌로 쌓아졌고, 용도는 취락을 보호하는 것으로 말갈문화의 사람들이 축조한 것으로 10세기 무렵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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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욘 토성

암구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11km 떨어진 곳으로, 지보피스나야 강의 좌안으로 하류에서 상류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절벽의 정상부에 위치한다(그림 111~113, 11). 1907년 아르세네프가 처음으로 성을 조사하였고, 1908~1909년 재조사하였는데, 성을 시굴할 때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유물이 확인되었다.

  

그는 소욘 강 유역은 늪지대 이기 때문에 항구는 확인되지 않는다. 언덕 위에는 유적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나중에 그 곳에 성곽이 설치되었다. 발굴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석기가 확인되었는데, 긁개, 밀개 등이다. 그것과 함께 신석기시대의 석기가 함께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그림 111. 아르세네프가 작성한 소욘 토성의 입지



그림 112. 아르세네프가 작성한 소욘토성평면도

 

1992년에는 크바신이 유적의 평면도를 재작성하였다. 그림 1132001년 아무르-연해주 고고학 탐사대가 작성한 것이다.



그림 113. 2001년에 작성된 소욘 토성

 

토성은 방형에 가까운 장방형이다. 서쪽, 북쪽, 남쪽 벽의 길이는 65m 이고, 동쪽 성벽의 길이는 50m이다. 전체 평면적은 3300이다. 벽은 돌이 섞인 흙으로 축조되었는데, 벽면이 비스듬하다. 바깥쪽에서 잰 성벽의 높이는 0.3~0.4m인데, 한쪽은 아주 경사가 급한 곳도 있다. 안쪽에서 잰 벽의 높이는 0.5m 정도이다. 벽의 서쪽에는 집석 한 곳이 확인된다. 동쪽 벽의 바깥쪽에 해자가 있는데, 너비는 4~5m이고, 깊이는 1m에 달한다.

 

벽의 동쪽에서 시굴 구덩이를 팠는데, 다음과 같은 토층상황을 알 수 있었다.

1. 부식토 층으로 두께가 0.05m

2. 자갈이 혼입된 암갈색 사양토 두께가 0.25m

3. 자갈이 혼입된 명갈색 사양토, 생토바닥

2층에서는 문양이 없는 연질 토기가 확인되었는데, 구연부가 외반하는데, 편평하고 둥근 형태이다. 이 유물에 따르면 이 성은 청동기시대로 판단된다

 

소욘 토성은 산지성으로 평면형태는 말각방형이다. 내부에는 내성과 보루 등은 확인되지 않고, 성벽에서 치도 없다. 돌이 섞인 흙으로 축조되었는데, 용도는 취락용이다. 유물로 보아 청동기시대로 판단되지만, 이 성곽의 평면모양은 다른 청동기시대 토성과는 차이가 있다. 시굴내에서 중세시대 층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평면모양으로 보아서 이 성은 중세시대까지 사용된 다층위 유적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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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보피스나야 강 유역은 지보피스나야 강, 세셀레프카(Сеселевка ) , 세바스탸노프카(Севастьяновка) 강으로 모두 세 개의 강이 흐른다. 이 강들은 그다지 높지 않은 산에서부터 해안가로 20~25km 떨어진 곳에서 위치한다. 부루스니치나야 언덕 부근의 강의 하류에서 합류되어서 동해로 하나로 합쳐져서 들어간다. 이 강의 상류는 시호테 알린 산맥에서 발원하지 않는다. 지보피스나야 강은 거의 암구 강 유역(남쪽에서 서쪽)과 마시모프카 강(북쪽)과 맞닿아 있다.

 

 

아르세네프는 이 소욘 강이 늪지대라고 하였다. 강의 하류에는 석호가 형성되어 있는데, 수렵채집 등이 주요한 생업활동인 것으로 생각된다. 물고기는 해류를 따라서 아주 좋은 어장을 형성하고 있다. 모기와 파리 등 해충은 없다 밝히고 있다.


지보피스나야 강 (소욘) 유역에는 두 개의 유적이 확인된다(그림 109). 하나는 세셀레프카 강의 상류에 있고, 다른 하나는 세 개의 강이 합류되는 지점에 있다. 유적에 대한 설명은 상기한 순서대로 이다.

 


그림 109 . 지보프스카야 강 유역의 성곽(48, 세셀레프카 강, 49, 소욘 강)

 



1) 세셀레프카 성곽


지보피스나야 강(세셀레프카 강)의 상류에 위치하는데, 암구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11km 떨어진 곳이다(사진 61, 그림 110, 11). 1908~1909년도에 아르세네프가 처음으로 평면도를 작성했(그림 110). 이 성은 평면형태가 오각형으로, 산꼭대기부터 동쪽 경사면으로 축조되고 있다. 이 성벽은 곳곳이 허물어져 있는데, 주로 산 아래 쪽이다. 전체 성벽의 둘레길이는 100m이다. 성벽은 돌로 축조되었고, 남쪽과 서쪽이 잘 남아 있다. 북쪽과 동쪽은 경사가 심한 암벽이어서 자연적인 방어벽을 형성하고 있다.

2007년 아무르-연해주 고고학탐사단이 다시 조사하였다.


  

그림 110. 세셀레프카 성곽 평면도(1908~1909년에 작성됨)

 

*세셀레프카 성곽은 산지성으로 평면형태는 오각형이고, 성 내부에 내성이나 보루도 없고 편평하다. 성벽에는 치도 없다. 성벽은 돌로만 축조되었다. 이 성은 방어와 보호용으로 도로를 통제하기 위해서 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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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7. 30. 19:34 책소개

올해는 여러 저자들과 함께 쓴 책이 출판되는 해인가 봅니다.

물론 글은 이미 여러 해 전에 제출했는데 그 결과물이 나온 것입니다.


한국,러시아,몽골, 중국 등 모두 16명의 저자가 함께 한 것입니다.

여러 국가에서 참여한 만큼 시간도 꽤 오래 걸렸습니다.

제목은 북방고고학개론입니다.


필자가 대학원에 들어올 무렵에는 북방고고학의 중요성은 한국고고학계에서 알고 있었으나

대부분 일본학자들이 쓴 논문과 저작물을 통해서 북방을 이해하는 정도였습니다. 

 

이제는 많지는 않지만 몇 몇 한국학자들도 있습니다(그중에 나도 한명^^).

 2000년대 넘어 오면서 북방고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일본에서 이미 소화된 자료보다는 원자료(러시아,중국, 몽골)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 점이 한국고고학계에서 북방고고학을 연구한 1세대와는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네요.


내용은 구석기시대부터 흉노시기(3세기)까지 구성되어 있습니다.


필자가 쓴 부분은 신석기시대와 한반도와의 교류 부분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몇 년 지나면서 아쉬운 점이 많이 남습니다.

지금은 이 보단 좀 더 다이나믹하게 작성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앞서 소개한 http://북방 유라시아 제사 고고학의 현황과 과제

와는 좀 다른 느낌입니다. 그땐 뿌듯했으나,,, 이번 건은 아쉬움.....

그래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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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구 강 유역은 지형학적인 특징에 따라서 고대의 교통로와 고고학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암구 강은 다른 지역의 강과는 달리 시호테 알린 산맥에서 발원하지 않아서, 이 강의 상류가 시호테 알린 산맥의 영서지역으로도 흘러내리지 않는다

 이런 성격으로 보아서 암구 강 유역에는 두 가지 교통로가 있는데, 하나는 동해바다와 연결되는 것과 하나는 해안가를 따라서 나 있는 좁지만 편한 육로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성곽이 입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곳에서 제일 이른 시기에 확인되는 것은 청동기시대의 환호이다. 모두 산지형으로 쿠댜, 데두시킨 클류치 환호가 해당되는데,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고금속기시대 가운데 리도프카 문화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10세기 무렵에는 극동에서는 퉁구스-만주 족의 중세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이는 말갈문화도 그에 해당되며, 미스 테플리이 성곽도 그에 해당된다.


 그 후에는 극동 퉁구스 만주족의 발해국가인 새로운 문화가 파장을 일으킨다. 그러나 암구강 유역에는 이러한 발해시기의 유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는 말갈인 중에서 발해국으로부터 고향을 지키고, 발해가 이곳으로 영역을 확장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 이유가 시호테 알린 산맥의 서쪽으로부터 이 곳으로 들어오는 길이 없었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중세시대 세 번 째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여진족인데, 그들은 암구강 유역 뿐 만 아니라 연해주 전체에서 각양각색의 성곽을 남겨 놓았다. 이 지역은 동하국의 북동쪽 지역과 인접한 지역으로, 방어용으로 사용된 것이 소프카 류브비 성곽인데, 이 곳에서 바다로 가는 길과 육상으로 가는 길을 모두 통제 할 수 있었다. 직접적으로 도로와 관련된 곳은 말라야 카리마와 카라민스키 흐베르트 성곽이다. 이 성곽의 존재는 아르세네프가 남긴 여행기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암구강에서 쿠수누 강까지 가는 길에서 바다 절벽 안에 동굴이 있고, 그곳에는 옛날 도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동굴은 300발걸음 정도가 되고 깊이는 대략 4.3~6.5m 정도이다. 다른 도로는 산을 따라서 올라간다.. 옛 도로는 소욘 강을 따라서 와서... 성곽은 상기한 오솔길 혹은 도로를 따라서 사람들이 오고 간 곳에 성곽이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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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카라만스키 흐레베트 성곽


암구 마을에서 북쪽으로 10km 떨어진 곳에, 바다로부터 1.5 km 떨어진 곳에 암구 강 유역과 소욘 강 사이에 카라민스키 산맥이 위치한다. 1908~1909년도에 아르세네프 의해 평면도가 작성되었다(그림 108).

 

 


그림 108. 1908년 아르세네프에 의해 작성된 카라민스키 흐레베트 성곽의 평면도

 

성곽은 산의 정상부의 고개에 위치한다. 해자는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경사가 심한 곳이바다쪽과 가까운 곳이다. 바다는 이 곳에서 대략 1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성곽의 평면형태는 부정형으로, 지형을 따라서 만들어 졌다. 해자가 있는 성벽은 바다쪽으로 향하는 경사가 급한 곳을 제외하고는 성벽으로 둘러져 있다. 성벽은 해자를 만들면서 퍼 올린 흙으로 쌓아졌다. 해자의 너비는 대략 10.8m로 깊이는 대략 4.3m 이다. 절벽과 가까운 쪽의 성벽에 문이 있고, 문의 길이는 1071m정도이다.

 

*카라만스키 흐레베트 성곽은 산지성으로, 성벽은 개방형이다. 내부에는 내성이나 보루와 같은 시설물이 확인되지 않는다. 성벽의 축조됨으로는 치가 없고, 해자가 있으며, 성벽은 토성이다. 용도는 방어용으로, 말갈시기에 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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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말라야 카리마 성곽


암구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6.5km 떨어진 곳으로 동해쪽으로 향하는 절벽 위에 위치한다.

1908~1909년에 아르세네프가 여행기에서 이곳의 성에 대해서 적고 있다. 이 곳의 입지는 암구 마을과 소욘 마을 사이에 위치하는데, 해안과 가까운 곳에 성이 위치하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그림 105, 그림 106).

 

그림105. 1908~1909년 아르세네프가 작성한 말라야 카리마 성곽 평면도


 1992년 크바신은 유적을 조사했는데, 평면형태가 오각형(그림 106)이다. 남쪽 성벽은 돌과 흙으로 축조되었다. 성벽의 높이는 바깥에서는 6m에 달한다. 북쪽 성벽은 2m너비의 절개면에 의해서 2 부분으로 나눠진다. 남쪽 성벽은 4m 너비의 문지로 성벽이 30m20m로 나누어진다. 성벽의 북쪽에는 10m 너비로 절개되었는데, 남은 성벽은 각각 80m75m이다. 북동쪽의 성벽은 토벽으로 문지의 너비는 10m가량이다. 북동쪽 성벽은 흙과 돌로 축조되었는데, 높이는 3m이다. 북서쪽과 남서쪽의 접하는 부분에는 정상부가 편평하게 처리되고 둥글게 튀어 나온 부분이 있다. 성의 평면크기는 1000이다.



 그림 106. 1992년 크바신이 육안으로 작성한 말라야 카리마 성곽 평면도



2001년에 아무르-연해주 고고학 탐사대가 조사하였는데, 말라야 카리마 성곽은 나지막한 고개에 위치하고 있고, 성벽은 아주 희미하게 남아 있다. 이 성벽은 이 곶의 정상부 남쪽 가장자리를 따라서만 축조되어 있다. 성벽은 석성으로 외벽은 비스듬하게 경사가 있다. 성벽중의 일부 지역에는 성벽과는 다른 돌을 사용했는데, 문지로 추정된다. 성의 안쪽에서 잰 내벽은 0.3m가량이다. 남쪽은 절벽면과 거의 맞닿아 있고, 그 성벽 아래로 도로가 지난다.

성은 전체적으로 자형으로 개방형이다. 2곳에서 3m가량 절개된 문지가 확인된다. 유물은 확인된 바가 없다.

 

* 말라야 카리마 성곽은 산지성으로 평면형태는 자형이고, 성안의 내부는 편평하고, 내성과 보루 등은 없다. 평면적은 소형(1000)이고, 성벽의 축조시설로 치는 확인되지 않고, 문지가 2개 확인된다. 성의 용도는 방어용으로 동해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해서 해안가의 도로 등을 통제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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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스 테프리이 성곽


암구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동해로 불룩 튀어나온 테프리 곶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이 곳의 북쪽과 남쪽 절벽으로 동해와 맞닿아 있다. 1908~1909년 아르세네프는 처음으로 이 성곽을 조사하였는데, 육안으로 관찰해서 평면도를 작성하였다. 1984년에는 타타르니코바가 처음으로 이곳에 왔고, 1997년에 아무르-연해주 고고학탐사단이 이곳을 조사하였다. 유적의 평면크기는 16,000이다.

아르세네프는 늙은이들이 말하기를 북동쪽은 몇 십 년 동안 해안가가 4.42보다 훨씬 더 깎여 내려갔으므로, 이곳의 길이는 0.71m정도 였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적었는데, 이를 참고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림 103 미스 테플리이 곶의 성

 

곶은 설상으로 길쭉하게 지형으로 동해와 124m떨어진 곳이다. 언덕의 높이는 50m가량이다. 곶의 입구는 3줄의 벽으로 막혀 있다. 2줄의 길이는 26m이고, 세 번째, 가장 외곽선은 문지가 있다. 이 세 번째 벽이 중간쯤에 두 번째 벽과 10m가량 맞닿고, 세 번째 벽은 다시 10m가량 계속된다

 성벽은 흙과 돌로 축조되었는데, 성벽 사이의 길이는 4~5m, 높이는 0.5~0.7m이다. 성벽을 따라서는 깊이 0.5m가량의 해자가 설치되어 있다. 성 안쪽에는 3개의 장방형 수혈이 확인된다. 성의 최근 평면크기는 3000이고, 처음 시작할 때는 7200로 추정된다.



그림 104. 미스 테플리이 유적


여러 시기가 중첩된 다층위 유적으로 신석기시대(석기 박편)와 청동기시대 리도프카 문화의 유물(곰배괭이, 석도, 토기(그림 104-1~3,5, 장신구, 소조품), 말갈문화의 토기(그림 104-4)가 확인되었다.

 

*테프리이 곶의 성은 산지성으로 평면형태는 폐쇄형으로 성벽이 부채꼴 모양이다. 성의 평면크기는 소형으로 성의 내면은 편평하고, 내성과 보루 등이 확인되지 않는다. 성벽에는 치가 없고, 성벽은 흙과 돌로 축조되었고, 문 시설이 확인된다. 용도는 마을을 방어하기 위해서 축조된 것으로 10세기 후반의 말갈문화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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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류브비 소프카 성곽


암구 마을에서 남쪽으로 0.5km 떨어진 곳으로, 이름 없는 강의 오른쪽 강가로 이 강의 하류에서는 1.5km 떨어진 곳으로 류브비 소프카 위에 성곽이 위치한다(그림 102). 성은 남쪽 경사면의 떨어지는 곳에 위치하는데, 늪지대의 아래에서부터 언덕의 기슭을 따라서 2줄의 부채꼴 모양의 성벽과 해자가 있다. 북쪽과 서쪽에는 절벽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자연적인 경계가 가능하다. 언덕의 절벽은 세르바토프카(암구 강의 오른쪽 지류)와 암구 강과 맞닿아 있다. 성벽은 돌로 쌓아져 있는데 높이는 0.7~1m이다. 해자의 너비는 1m이고, 깊이는 0.5m, 성의 평면크기는 4500이다


의 내부에는 인공적인 테라스로 인해서 편평하지 않다. 테라스에는 온돌이 설치된 주거지가 확안되었다. 내성과 보루는 없다.


이 성은 1908~1909년 아르세네프가 처음으로 평면도를 작성하였는데, 이 성에는 3개의 짧은 성벽이 언덕의 정상부 쪽으로 있고, 문지가 있다고 표시해 놓았다. 1974 년에는 성은 댜코바에 의해서 조사되었는데, 유적에서는 문화층이 2층 확인되었다. 아래층은 갈색 사양토로 고금속기시대로 리도프카 문화와 관련되었고, 상층은 중세시대 문화층이다.




그림 102. 1974년 댜코프가 육안으로 그린 류보비 소프카 성곽 평면도


1982년에 니키틴과 이블리예프에 의해서 유적이 조사되었는데, 온돌이 있는 주거지에 트렌치를 넣어서 조사하였다.

1997년에 아무르-연해주 고고학탐사대는 이 곳을 지표조사 하였는데, 이 곳이 2층의 문화층임을 다시 확인하였는데, 상층은 동하국과 관련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출토된 유물은 회색의 녹로제 토기로 화병형 토기와 푸른색의 관옥이다.

* 류브비 소프카 성곽은 산지성으로 개방형으로, 성 안은 편평하지 않다. 성 내부에는 내성과 보루 등이 확인되지 않고, 성벽의 구조물로는 치가 없다. 성벽은 흙과 돌로 쌓아져 있다. 이 성의 크기는 소형으로 용도는 취락을 방어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동해쪽에서 항구로 들어오는 문과 성에서 북서쪽 해안가를 따라서 가는 길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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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데두시킨 클류치 성벽


암구 마을에서 북서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그림 99). 타타르니코바가 처음으로 이 환호를 발견하였고, 2001년 아무르-연해주 고고학탐사대에 의해서 연구되었다. 데두시키나 강과 돌가노바 강 사이의 언덕 정상위에 위치하며, 서쪽 경사면에는 27기의 수혈이 확인되었다. 동쪽에서부터 서쪽 경사면에는 2기의 석벽이 잔존한다. 북쪽의 것은 직진하는데, 끝이 안쪽으로 굽었다. 그 내부에 수혈이 잔존한다. 환호 벽의 길이는 95m가량이다. 남쪽 벽은 서쪽으로 굽은 부채꼴 모양이다. 성벽의 길이는 60m 정도이다. 성벽의 높이는 0.5m를 넘지 않는다.


  


  


그림 99. 데두시킨 클류치 성곽


유적 내에서 시굴을 했는데, 다음과 같은 토층을 확인할 수 있었다.


1. 부식토 층 0.04m

2. 희미한 황등색깔의 사양토 두께 0.02m

3. 자갈이 혼입된 적갈색 사양토 두께 0.24m

4. 자갈층, 생토


3층에서는 4개의 문양이 없는 연질 토기편이 확인되었다. 경부에 돌대가 부착된 구연부 편, 직립된 구연부 편인데, 기면이 울퉁불퉁하다. 편평하고 둥근 자갈 2점이다(그림 101).

데두시킨 클류치의 환호에서 출토된 유물은 이 성이 청동기대로 기원전 1천년기 후반(기원전 6~4세기)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101. 데두시킨 클류치 성곽에서 출토된 토기


*데두시킨 클류치 성벽는 산지성으로 개방형이다. 성 내면은 편평하고, 내성과 보루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성벽에는 치와 같은 구조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용도는 취락을 방어하는 용도로, 스트라시니 곶, 우툐스노예, 켐스노예-스칼리스토예, 우스티-베렘베, 두브로빈스코예 성곽과 같은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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