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러시아 시베리아에서도 알타이 산맥 중에서 우코크 라고 불리는 고원에 위치한 무덤을 살펴보는 중이다.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도 알타이 산맥에서 확인되는 문화를 파지릭 문화라 하는데 그 문화의 유적 중에 한 곳이다. 지난 달에는 별명이 얼음공주라고 붙은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무덤을 살펴보았다. 그곳에서 서쪽으로 3km 떨어진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무덤을 살피고 있다.

우코크 고원의 위치는 어제 포스팅에서 찾으실 수 있다.

 

이 무덤은 얼음공주 무덤보다 3년 일찍 발굴되었다. 무덤을 절개한 면은 그림1과 같다.

무덤의 제일 윗 부분은 움푹들어 갔는데, 원인은 가장 바닥에 있는 무덤방인 목관의 천정부가 내려앉아서이다. 주로 목재가 썩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언제가 공개하게 될 파지릭 유적에서는 천정부가 완전히 내려앉아서 무덤의 최상부가 내려앉았다.

그런데 이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무덤방은 얼음으로 차 있다고 보고서에도 적혀 있고, 실제로 그림 1에도 얼음이 표시되어 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무덤 단면도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계속 얼음이 차 있었다면, 무덤방이 내려 앉았을 이유가 없다. 도굴일가능성? 도굴되었다면 무덤방의 뚜껑 및 그 아래의 관도 모두 도굴당했을 것이다.

외부의 요인을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스키타이문화의 무덤 상부는 가장 중간이 약간 씩 내려앉은 모습이다.

무덤구덩이는 무덤방 위와 무덤방이 아닌 말무덤 위를 채운 공간의 돌은 크기가 다르다. 말무덤 위는 2.6m까지 큰 돌로 채웠고, 무덤방 위에는 무덤구덩이를 만들 때 퍼 낸 흙으로 다시 덮었고, 깊이 1m가 되어야 큰 돌이 나오기 시작했다. 얼음층은 깊이 0.5m가 되어서야 나타났다.

 

무덤구덩이의 깊이는 2.9m 가량이다. 구덩이를 파자 9줄의 통나무가 양쪽으로 쌓여진 것이 확인되었다. 길이 4.6m두께는 9cm정도이다(그림2). 무덤구덩이가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게 위해서 쌓았다. 발굴할 때도 이곳이 무너지지 않게하기 위해서 철제 사다리를 받쳐두었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무덤, 그림1을 좀 더 자세하게 확대.

 

무덤 단면도를 공개했으나, 이제 여러분은 모두 다 눈치챘을 것이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2명이라는 사실을,,

통나무관이 2개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무엇을 상상하시나요?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어제부터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남성무덤을 살펴보고 있다. 두 유적의 거리는 3km 가량이다.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서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얼음공주 무덤이 있었다. 베르텍 마을과 12km 떨어진 곳으로 좀 더 가깝다.

아크 알라하 3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은 스키타이문화중에서도 알타이 산맥에서 위치한 문화를 파지릭문화라 하는데, 그 문화 중에서도 우코크 구원에 위치하는 유적이다.

 

https://www.google.co.kr/maps/place/Ploskogor'ye+Ukok/@50.3307878,87.9890127,6.35z/data=!4m13!1m7!3m6!1s0x42b7eb0e314da4fd:0xaf8aeded3a068607!2sAkalakha!3b1!8m2!3d49.6937885!4d87.4078366!3m4!1s0x42b70a2829374ba7:0x6d63a380c8591ae1!8m2!3d49.3077771!4d87.5947237!5m1!1e4?hl=ko

 

Google 지도

Google 지도에서 지역정보를 검색하고 지도를 살펴보거나 운전경로 정보를 검색합니다.

www.google.co.kr

 

아크 알라하 1유적은 발굴전에는 자갈과 점판암들로 쌓였다. 무덤의 크기는 남북방향은 17.5m, 동서방향은 8m가량이다.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을 기준으로는 49cm이다. 무덤의 중앙은 0cm로, 고도와 같았다. 무덤이 중간에 함몰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표토(지표면을 덮은 흙)를 제거하자 무덤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큰 돌로 호석(가장자리를 두른 돌)을 돌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표토만 제거, 남쪽에는 고리모양의 원형 돌무지가 하나 더 있는데, 무덤은 아니다.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1호와 관련된 제사 유구로 생각된다. 무덤 중앙을 가로지는 선은 발굴할 때 사용했던 기준점이다. 그 옆의 숫자는 돌의 위치이다. 가장 중간이 ocm이다. 숫자의 간격은 1m이다. 

 

호석 안쪽으로 자갈과 점판암들로 쌓여 있었고, 일일이 손으로 제거했다. 이를 제거하자 2차 호석이 드러났다(그림2). 1호분의 주인공이 있는 무덤구덩이는 깊이 2.9m가량에서 확인되었다. 동서남북방향과 일치하며 크기는 4.8×4.75m이다.

그림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적석제거 후 드러난 호석과 무덤구덩이, 가운데 네모꼴이 원래 무덤주인공의 무덤구덩이이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표시가 엉뚱한 사람의 무덤 위치이다.

 

 

그런데 그 전에 적석을 제거하는 가운데 무덤 중앙을 기준으로 깊이 24cm에서 1호분과는 전혀 관련없는 14세기의 것으로 생각되는 엉뚱한 사람?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이 얄팍한 사람들은 아크 알라하 1호분의 무덤에 사용된 돌을 치워서 구덩이를 만들고 그 위에 시신을 안치했다. 사지를 쭉 핀 신전장으로, 두향은 서쪽으로, 손을 가지런하게 모은 자세로 놓았다. 두개골은 흙의 압력으로 눌러서 부서졌다(그림3). 허리춤의 오른쪽에는 철제 원형 재갈(말의 고삐를 채우는 장치) 2점(그림4)과 화살촉이 확인되었다. 이 유물로 보아서 14세기의 사람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이 사람의 성별에 대해서는 보고서에 없었는데, 유물로 보아서 남성일 가능성이 크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4세기 무덤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4세기 무덤 출토품

 

 

그런데 의문스럽지 않으십니까?

과연 14세기 사람들은 아래에 있는 무덤을 도굴하지 않았을까?

힌트는 앞에서 이야기 한 무덤의 깊이에 있다. 파지릭문화의 사람은 바닥까지 3m까지 파야 그 사람 무덤에 다달수 있었으나, 14세기에 장례식을 치르던 사람들은 24cm정도만 파서 사자를 묻었다. 그 밑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혹은 알았지만 손대지 않고 자신이 알던 사람만 그곳에 묻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이곳에 묻힌 사람들은 죽어서 만났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 아크 알라하 무덤)

구글지도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현재 시베리아의 굽이굽이 알타이 산맥 중에서도 ‘우코크’(그림 1,5)라고 불리는 고원에서도 아크 알라라 3유적의 여성미라가 출토된 유적을 살펴보았다. 그녀의 별칭은 얼음공주이고, 직업적으로는 젊고 유능한 샤먼이었다고 한다.

 

그림 1.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강 계곡

 

여성무덤을 살펴보았으니, 당연히 남성무덤도 살펴보고 싶지 않은가?

그리고 기왕이면 그녀와 좀 더 가까운 곳에 있던 무덤을 살펴보고 싶었기에 이 무덤을 택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이다. 이 남성무덤은 미라는 없는데, 인골이 남아 있었기에 남성무덤인 걸 알 수 있다.

 

아크 알라하-1 유적에는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무덤 5기와 제사유구복합체 1기가 확인되었다. 그 중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일종인 파지릭문화의 시기는 1호와 2호이다(그림2). 1990년에 발견되었고, 그 해 1호고분과 그 고분에서 서쪽과 남쪽으로 떨어진 곳의 제사유구를 조사했다.

 

K-1이라고 씌여진 1호 고분에서 서쪽으로 25m정도 떨어져서 돌을 쌓은 유구가 확인되었다. 돌을 직경 5m 되게 둥글고 빽빽하게 쌓고 이 유구와 붙어서 동쪽벽에 돌을 고리모양으로 듬성하게 돌렸는데, 완전한 것 6개와 불완전한 것 1개가 남아 있는데, 원래는 7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길이는 8m가량이다. 높이는 높지 않은데, 지점에 따라서 다르지만 가장 높은 곳은 17cm가량이다(그림 3). 그리고 그림 1에서 K-1이라고 씌여진 남쪽 25m떨어진 곳에 직경 8.5m 가량의 원형의 돌 쌓은 유구가 확인되었는데(그림 4), 그림2와 함께 제사유구로 생각한다. 유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주변에서 토기편이 발견되었다. 한 층위로 높이는 지표에서 18~22cm정도이다.

 

그림2. 아크 알라하-1 유적 전면도

 

 

그림 3. 아크 알라하-1 유적 1호분에서 남서방향으로 떨어진 곳의 제사유구

 

그림 4. 아크 알라하-1 유적 1호분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곳의 제사유구 

 

 

 

파지릭문화에서 무덤 주변에 이러한 제사유구가 확인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체로 무덤의 서쪽으로 1~3개의 고리모양으로 쌓인 돌 유구가 확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쿠바레프 1987)

제사유구를 오랫동안 연구한 쿠바레프는 제사유구에서 확인되는 고리모양 돌 유구에 대한 재밌는 해석을 했다. 만약에 돌 고리 한 1기가 크지 않은 무덤에서 확인된다면, 그의 직계가족이 와서 제사 지낸 표시라고 생각한다면, 아크 알라하 1 유적의 1호분에는 직계가족 뿐만 친척까지 7개의 그룹이 와서 문상 온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쿠바레프 1987).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에서는 미라처리는 되어있지 않지만 인골이 확인되었고, 말을 위한 공간도 따로 만들었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무덤에서는 무덤방 외곽에 말을 구겨 넣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좁은 공간에 들어갔다면, 이 무덤은 ‘말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을 통나무로 만들었다.

 

말은 몇 마리 들어 있었을까?

9마리다. 얼음공주 무덤의 말 6 마리나 말 9마리나 거한 장례식은 마찬가지이다.

그냥 말이 아니라 말은 충분히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무덤의 주인공의 성(性)이 달라지면서, 남아 있는 유물도 차이가 있다. 특히 남성의 복장도 달라지고 출토유물도 약간 다르다. 이미 설명한 제사유구도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는 없었다.

 

그림 5. 아크 알라하 강과 우코크 고원의 풍경

 

참고문헌

쿠베레프 1987,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카 무덤 유적)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서도 아크 알라하 3유적 중에서 1호분에 묻힌 여성은 25~30세 혹은 조금 더 정확하게 28세에 생을 마감했다.  이제 까지 시베리아 알타이의 ‘얼음공주’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그녀의 직업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필요한 것은 대부분 했지만 빠진 유물이 있는데 거울과 목걸이이다.

 

러시아학자들은 그녀가 소지했던 유물 가운데서 거울은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반무사무덤에서도 출토되고, 더 좋은 소재로 정교하게 만든 유물이 나오는 유적도 있기 때문이다. 

얼음공주의 거울은 손잡이가 달린 목제 거울에 얼굴을 보는 면은 청동을 붙인 것이다. 거울의 이면에는 화려한 뿔이 있는 사슴이 조각되어 있다(그림2). 청동은 납과 주석을 합금한 것이고, 표면을 수은으로 코팅해서 반짝거렸다(그림1).

 

 

그림 1.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거울의 보는 면

 

그림 2.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거울의 뒷면, 필자촬영

 

그림 3.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거울 주머니, 펠트

 

그림 4.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말총달린 붓

 

유적을 발굴한 후 유물에 대한 연구를 했을 대 물리 화학전문가들이 많은 역할을 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금속유물을 분석한 결과, 알타이 산맥의 여러 곳에서 채취된 광물을 이용했다고 한다. 거울은 그녀의 왼쪽 다리 부근에서 펠트로 만든 주머니(그림 3)와 함께 발견되었다. 그 옆에는 말총으로 만든 검은색 털이 달린 붓도(그림4) 확인되었다. 끈은 이미 삭아서 없어졌지만, 대롱모양의 옥으로 끈을 잇고 그 가운데 말총을 붙인 것이다. 러시아 학자들은 화장도구로 생각한다.

 

거울과 정반대로 최상급이라고 하는 파지릭 유적의 2호분과 같은 유물이 출토된 것은 그녀의 목걸이다. 어제 필자가 포스팅 한 것에서 복원한 모습에서 동물장식을 부착한 목걸이를 눈여겨 보셨는지 모르겠다.

이 유물은 목제로 보이지만, 사실 그 위에 금박이 입혀져 있었다. 날개달린 표범장식인데, 그리핀이라고 할 수 있다. 8마리가 목을 들고 있다. 낱낱의 동물모양은 일종의 ‘2D’가 아니라 ‘3D’기법으로 조각된 것이다. 동물문양장식은 대부분 평평하게 평면이다. 그러나 이 유물은 그리핀이 목을 들게 해서 조각되었기 때문에 입체적인 유물이다(그림 5).

 

 

그림 5.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목제 그리핀 목걸이. 실제로는 금박으로 씌워진 것이다. 필자촬영.

 

그림 6.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목제 그리핀 목걸이, 그림 5와 동일유물, 필자촬영 

 

 

그녀의 살아생전 직업에 대해서는 이야기나 동화처럼 ‘공주’였다면 좀 더 많은 대중성이 확보되었겠지만, 러시아학자들은 실제로 그녀는 전문직업인으로서 ‘샤먼’일 가능성에 더 큰 비중을 둔다. ‘공주’라면은 좀 더 큰 무덤에서 좀 더 화려한 유물과 함께 주변에도 같은 급의 무덤이 여럿 있었을 것으로 러시아학자들은 생각한다. 스키타이 문화중에서 알타이에 위치한 파지릭문화의 특징과 비교해 볼 때 내린 결론이다.

 

그러나  높은 계급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정교하게 복원되고 처리된 미라, 나무방, 통나무관 높은 머리장식이 붙은 가발, 실크제 블라우스, 목걸이 등을 설명할 수 없고, 최상급의 높은 계급이라고 하기에는 무덤도 작고, 부장된 유물도 그렇게 화려하지 않다. 아이러니 한 무덤이다.

그녀도 살아생전에 그랬을까?

 

참고문헌

https://scfh.ru/papers/dvadtsat-let-spustya/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이제까지 거의 20여일에 걸쳐서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 중에서도 우코크 고원이라 불리는 지역에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여성미라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얼음공주라고도 알려졌다. 그녀는 죽어서 매우 여행을 많이 했다. 93년에 발굴되어서, 95년에는 서울과 부산에도 다녀갔고, 미국 뉴욕 등 세계 곳곳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지금은 그녀가 묻힌 곳과 최대한 가까운 고르노 알타이 시의 박물관에 있다. 원주민들은 박물관과 분쟁 중이다.

필자는 생각해 보니 그녀와 2번 만났다. 95년 대학 1학년때 가을에 한 번, 2009년에 박사학위논문을 마무리하고 노보시베리스크의 아카뎀고로독에 있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고고연구소의 전시실에서 그녀를 보았다.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알타이 산맥 부근에 위치한 파지릭 문화에서는 여성이 혼자 묻힌 경우는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이 처음이라고 한다. 파지릭 유적, 베렐 유적, 바샤다르 유적과같이 높은 계급의 무덤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여성이 배장된 경우는 대부분 남성과 함께이다. 투엑타 유적이라고 하는 무덤2호에서 단독 여성이 8마리의 말과 함께 확인되었는데, 너무 도굴이 심해서 여성 1명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한다. 어쨌든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는 혼자 단독으로 묻힌 유일한 여성미라다.

학자들이 두 무덤을 자주 비교하는데,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을 최상급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투엑타 유적의 2호분 때문이다. 이 무덤은 직경이 32m,높이가 2.6m인데, 아크 탈라하 3유적은 직경이 18m,높이가 0.57m이다. 무덤 크기의 차이는 동원인력의 차이로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유목을 기반으로 한 생업경제를 하는 사람들은 흩어져서 지내기 때문에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것은 결국 힘의 차이로 생각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겨울이 되기 직전에 무덤을 만들어야 할 때는 겨울이 되기 전에 여름 목초지에 있던 사람이 겨울목초지로 이동하기 전에 모여야 한다. 여름이 되기 직전에 무덤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 보다 힘든데, 겨울목초지에서는 사람들이 더 분산되어서 지내기 때문이다(클라쉬토르니이, 술타노프 1992).

앞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사람들이 봄과 가을에 무덤을 쓴다고 했는데, 영구동토대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아마 목초지를 바꾸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람을 모이게 하기 위해서도 한 몫 했을 꺼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아무튼 그들은 죽는 것도 계획해서 죽었을 껏 같다. 나무도 태어나기 전부터 구해야 하고, 죽을 때도 사람들이 모이기 쉬운 시절을 택해야 했다니...

 

 

그런데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은 다른 파지릭문화의 고분과는 또 다른 차이가 있다. 이 유적의 2호분과 3호분은 투르크시대의 무덤이기 때문에 기원후 7세기대의 무덤이다. 그녀는 무덤안에서도 혼자 있었지만, 그 주변에도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파지릭 문화의 고분은 대게 가족장으로 한 계곡에는 친족구성원(그림1)들이 열을 이루는 것과는 다른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것은 아니지만 민족지자료를 살펴보면 이런 식의 무덤은 대게 살아 생전에 다른 사람들과 다른 차원의 사람이거나, 샤먼의 무덤일 가능성이 있다(노비크 1984).

 

그림1.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 문화의 고분

 

그럼 이 여성의 신분을 알 수 있게 하는 유물은 어떤 것이 있을까?

청동거울, 여러 소재로 만든 그릇 등은 일반무사 계급에서도 출토된다. 문신도 특별하기는 하지만, 일반무사의 어깨에서도 문신이 새겨지는 점을 볼 때 그녀의 직업을 특정하기는 어렵다.

러시아학자들은 말 6마리의 말 장식을 주목한다. 목제로 보이지만, 그 위에 금박을 입힌 것으로 일반무사의 무덤에서는 출토된 예가 없다. 대형 무덤방, 통나무관 및 통나무관에 부착된 아플리케 장식, 발삼처리 된 시신 등은 최상은 아니지만 보통의 계급도 아니다. 이외에도 그녀의 계급을 가장 잘 상징하는 것은 실크로 만든 여밈없는 블라우스 라고 한다. (위에 거론된 유물은 전부 앞의 포스팅에서 확인가능하다.)

이 여성의 무덤에서는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목제 쟁반 아래의 철제 칼은 고기를 자른 칼로 생각한다. 파지릭의 여성전자? 무덤은 아니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 복원도. 머리장식에 새가 없어서, 완전한 모습은 아니다. 머리장식은 앞의 포스팅을 참고시기 바란다. 

그림3. 얼음공주의 가발 장식 가운데 붉은 삼각형 머리위를 장식한 사슴모양장식(금박+목제). 실제 책에는 이에 관련한 내용은 자세히 적혀 있지 않았지만 필자가 촬영한 사진에서 찾았다. 뿔이 떨어진 흔적이 있다. 금박은 쉽게 벗겨져서 말을 장식한 마구에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필자촬영 

 

그림 4. 그림3과 같은 유물, 다른 방향에서 찍음

 

러시아학자들은 전문화된 특별한 재능(샤먼)을 가진 여성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반문한다. 누가 알겠는가?

 

참고문헌

 

클라쉬토르니이, 술타노프 1992 Кляшторный С.Г., Султанов Т.И. Летопись трёх тысячелетий. Алма-Ата: Изд-во Казахстан — Петербург, 1992. 373 с.(클라쉬토르니이, 술타노프, 3000년의 연대기)

노비크 1984 Новик Е.С. Обряд и фольклор в сибирском шаманизме. М.: Наука, 1984. С. 294.(노비크 1984,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의식과 민속)

폴로시막 2001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필자도 중국 상해, 남경 등 학과 답사로 같이 참여하기로 계획되었다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취소되었다. 비자피와 얼마간의 위약금을 물어야 했지만, 그래도 그냥 취소보다 병이 창궐하는 덕분?에 취소위약금이 줄어들었다. 필자는 아직 제주도를 경계로 그 보다 밑으로 가본적이 없는데, 역시 이번에도 실패다.ㅋ

 

어제 잠시 알릴레오를 시청했는데, 신종바이러스의 이름인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처음에 언론에서 창궐하는 병의 이름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이야기 할 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왕관처럼 생겼나 했다. 어제 의사선생님 말씀이 바이러스가 왕관처럼 생겼는데, 코로나 라는 말이 영어 크라운에서 왔다는 의견이 있다고 했다.

내가 아는 척을 쫌 하면 맞는 말씀이다. 코로나는 러시아어다. 영어로 하면 crown이다. 러시아의 유명한 맥주 이름 중에도 ‘시베르스카야 코로나(сибирская корона)’ 라고 맥주가 있는데, 시베리아의 왕관이라는 뜻이다. 러시아 어디서든 파는 맥주다.

 

 

어제는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고원 중에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나온 얼음공주라는 별칭이 있는 여성미라가 쓴 고깔모자를 보았다. 높은 고깔에 챙이 붙은 것인데,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서도 출토되어서 그런 스타일은 여성이 썼다고 보는 것이 무방하다. 고깔모자 속에 화려한 머리장식을 넣고 의식을 치렀을 것이다.

 

그럼 남성은?

현재 우리가 살피고 있는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은 주인공이 여성이다. 그렇다면 남성의 남성무덤을 볼 필요가 있는데, 앞서서 이 여성의 문신을 설명할 때 같은 기술자가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두 개의 남성미라를 설명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어깨에 문신이 그려진 남성미라가 나온 베르흐-칼쥔 2유적에서도 변종의 고깔모자가 출토된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고깔모자도 양모펠트로 제작되었지만, 베르흐-칼쥔 2유적의 3호분과 1호분에서도 남성용모자가 출토되었다. 그 중에서도 문신이 새겨진 채 확인된 남성무사의 미라가 나온 3호분에서 나온 고깔모자 2점이 확인되었다. 한 점은 펠트로 제작된 것인데, 고깔 정수리에 새 머리를 장식한 것이다(그림1). 다른 한 점은 목제로 된 새머리와 산양 조각들만 남아 있다. 역시 펠트제 고깔모자의 장식품으로 생각된다(그림2).

 왜냐하면 알타이의 다른 유적(그림 3)에서 출토된 고깔모자 중에서 베르흐 칼쥔 2 유적의 3호분에서 출토된 고깔모자의 목제장식과 거의 유사한 목제장식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베르흐 칼쥔 2유적의 3호분에서 출토된 새머리고깔모자(그림2)에는 말이 아니라 화려한 뿔이 달린 산양이 붙어져 있다. 그럼 남성의 새머리 고깔모자는 목제와 펠트로만 만들었을까?

그림1. 베르흐 칼쥔 2유적 3호분 고깔모자

 

 

그림2. 베르흐 칼쥔 2유적의 3호분 새머리 고깔모자 복원도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출토 새머리 고깔모자.

 

 

 

복원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새머리는 금색이지 않은가? 모든 목제 장식은 아주 얇은 금박으로 덧입혀졌지만, 잘 남아 있지 않다. 발굴과정에서 얼음이 녹으면서 금박은 쉽게 떨어졌다고 한다.

 

새머리 고깔모자만 있을까?

베르흐 칼쥔-2 유적의 1호분에서는 고깔모자가 아닌 펠트제 모자가 출토되었다.

펠트 2장을 붙여서 만든 것이다. 러시아 학자들은 이를 ‘투구’형이라고 부른다.

아무장식 없이 귀만 덮게 되어 있고 정수리는 높지 않고, 머리에 딱 맞게 제작되었다(그림 4).

 

그림 4. 베르흐 칼쥔-2 유적 1호분 출토 투구형 모자

 

 

투구형?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흑해 북안에서 출토되는 청동제 투구가 있다. 이 투구는 원래 흑해북안에서 출토되기 때문에 그 곳의 지명 중에 하나인 ‘쿠반’형 투구라고 한다. 켈레르메스라고 하는 유적의 2호에서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기원전 7세기 후반, 늦어도 기원전 6세기 정도의 유적으로 생각된다(그림 5).

너무 비약이 심한거 아니냐고? 흑해 북쪽이면 지금 우크라이나인데, 시베리아 알타이와 너무 멀지 않냐고?

 

그런데 여러분은 그림 6과7의 유물을 보셔야 된다(폴로시막`바르코바 2005). 어디서 출토되었을까? 이 유물은 중국의 요서지역(영금하 주변) 청동기시대 가운데서도 하가점상층문화에 속하는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기원전 7세기 가량에 해당하는 유적이다.

 

그림5. 켈레르메스 2호분, 에르미타쥬 소장, 1904년 베셀로프스키 발굴(Scythians 2017)

그림 6. 서삼가촌(西三家村) 출토(동북아역사재단 2007)

 

그림 7. 북산취(北山嘴) 유적 7501호(동북아역사재단 2007)

 

 

이 정도 되면 스키타이 문화의 역동성의 한 부분이라도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럼 투구형 모자는 장식이 없는 것만 있을 까? 그것도 아니다. 알타이 산맥의 또 다른 고분인 파지릭 유적에서는 ‘코로나’라고 불리는 투구형 모자가 확인되었다(그림8).

투구형이지만, 정수리에 사슴 뿔과 같은 아플리케 장식을4개를  붙였다. 역시 2장의 펠트를 이어 붙은 것으로 올리브 색이었다. 귀 옆에는 붉은색으로 동물장식이 그림이 그려져 있고, 반짝이는 옻 칠 장식을 붙였다. 동물의 종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림8. 파지릭 유적 출토 모자, 에르미타쥬 소장(폴로시막`바르코바 2005)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일종인 파지릭 문화중에서도 남성의 새머리 고깔모자 뿐만 아니라 투구형 모자는 여성모자와는 달리 귀를 덮고 있다. 여성은 화려한 가발을 쓰고 단순한 고깔모자를 썼으며, 남성은 대체로 화려한 모자를 썼다. 파지릭 유적의 모자()나 금박을 입힌 목제장식을 모자에 달고 다닌 행위는 코로나, 크라운의 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코로나, 크라운의 의미는 단순히 머리장식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지역에서는 이미 순동시대에 머리장식을 하는 관습이 무덤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코로나, 크라운은 국가의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 보다 더 빠른 코로나라고 부를 수 있는 시대의 유물이 있는지 앞으로 살펴봐야 겠다.  그리고 스키타이문화의 더 화려한 모자를 앞으로 소개할 날을 기대한다.

 

*2500년 전은 스키타이 문화의 시작이 아니다.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 아크 알라하-3유적 얼음공주가 죽었던 시기가 그때 쯤이라는 이야기다. 다시 돌려말하면, 2500년 전과 코로나의 기원연대는 좀 차이가 있다.

 

그림 9.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위치(Scythians 2017), 어제 언급했던 쿨 오바 유적, 오늘 소개된 헬멧이 출토된 켈레르메스 유적 등을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동북아역사재단 2007, 『하가점상층문화의 청동기』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3유적이라고 불리는 유적에서 1호분에서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붙은 여성미라가 발굴되었다.

그녀는 삭발을 하고 가발을 쓰고, 정수리 장식을 높이 한 것으로 앞에서 포스팅했다. 가발을 쓴 후에 검은색 펠트로 정수리 장식을 올렸는데, 15마리의 새가 부착되었다. 14마리는 날개표현이 없었고, 가장 가운데 새만 날개 표현이 있었다.

 

시베리아의 원래 주민들에게는 새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혼을 상징한다. 나나이족들은 사람의 영혼은 작은 새에 깃들어 거대한 나무에 자란다고 믿는다(킬레 1976). 씨족 또는 가족의 나뭇가지에 있는 새들은 그 씨족이나 가족의 미래 구성원들을 상징한다(이바노프 1976). 셀쿠프족(현재 러시아의 튜멘과 톰스크 지역에 거주하던 원주민) 에게 새는 태양시 사람에게 주는 영혼을 의미한다(토밀로프 1992)

 

그림1.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머리장식복원도

 

가장 높은 정수리 장식 앞에는 삼각형 모양으로 꼭대기를 사슴모양장식을 올린 정수리 장식도 했다(그림1). 그 내부에는 사슴머리 장식이 새겨진 목제 나무판이 확인되었다고 하면서 필자가 앞에서 올린 사진이 있다(그림2). 그러나 그 내부에 목제판을 넣은 것은 맞지만, 필자가 올린 사진은 다른 용도였다. 보고서에는 그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었으나, 필자가 그림3을 보고 삐져나와 있는 목제판을 그 용도로 보았다. 그러나 필자가 찍은 사진은 그림 1에서 머리의 뒤를 장식하는 나무판이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3유적 1호분의 머리뒤 장식 나무판

 

 

그림 3. 아크-알라하 3유적 1호분 얼음공주의 가발

 

 

그림 2처럼 길지는 않지만 목제장식판은 정수리 장식 앞쪽에도 양쪽으로 붙어 있다. 두 마리 그리핀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다. 얼굴은 산양인데, 부리는 독수리로 그리핀이 새겨졌다. 부리가 대각선이 되도록 조각되어 있는데, 2단으로 조각되어 있다(그림 4). 그림 2에 조각된 나무판에도 사슴머리가 아닌 산양머리에 독수리 부리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동물인 그리핀이 새겨졌다.

 

 

그림 4. 아크 알라하 3유적 1호분 얼음공주의 머리장식, 그림 5에서 보면 착장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림 5. 아크 알라하 3유적 1호분의 얼음공주 머리 복원도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는 매우 높은 머리장식을 하고 있었다. 평상시에 착용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수의’의 일부로 혹은 축제, 의례용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머리장식은 어떻게 하고 다녔을까? 물론 평소에는 잘 하지 않았지만.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 중에 하나로 고깔모자를 이야기 한다. 스키타이 문화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시베리아의 파지릭 문화에서든지,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문화에서든지 고깔모자를 썼던 정황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다른 유물에 스키타이 인을 묘사할 때 꼭 고깔모자를 써서 표현한 것이다.

흑해 북안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인 쿨오바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그림 6,7)으로 된 항아리에도 스키타이인이 표현되어 있다.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또한 페리세폴리스의 아파다나(Apadana)의 동쪽벽에 새겨진 스키타이인이 묘사되어 있다(그림 8).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스키타이 인을 사키족이라고 불렀다. 4명은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페르세폴리스에 조각된 스키타이인 가운데 타이즈를 들고 있는 사람도 발견되었다(그림9).

 

 

그림 6.쿨오바 출토 황금항아리(알렉세예프 2012)

 

그림 7. 쿨오바 출토 황금항아리에 조각된 스키타이 인, 그림6과 같은 유물, 다른 편에 새겨진 스키타이인의 모습이다(알렉세예프 2012)

 

그림 8.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 동쪽벽에 묘사된 스키타이 인(Scythians 2017)

 

그림 9.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에 조각된 스키타이 인. 타이즈를 들고 있다(폴로시막 2001)

 

 

시베리아 알타이의 얼음공주도 고깔모자가 있었다. 높이가 84cm나 된다(그림 10-b). 그렇지 않겠는가? 저 높은 가발을 씌우려면...

 

 

 

그림 10.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b)와 파지릭 2호분의 고깔모자(a)(폴로시막`바르코바 2005). 두 고깔모자는 단순히 고깔뿐만 아니라 챙이 붙어 있다.

 

 

그런데 무덤관 속에 고깔모자가 있었던가? 한번 찾아보시기 바란다...필자는 이미 무덤 관속에서 출토된 유물의 위치를 다 공개했다.

그럼 고깔모자는 어디에?

 

필자도 무덤관 속에서 고깔모자의 위치가 정확하지 않아서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폴로시막이 쓴 다른 책에서 찾았다. 이 유물이 어디서 나왔는지....‘고깔모자는 무덤방과 관의 벽 사이에서 출토되었다’(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참고문헌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이바노프 1976, Иванов С.В. Представления нанайцев о человеке и его жизненном цикле // Природа и человек в религиозных представлениях народов Сибири и Севера. М.: Наука, 1976. С. 161-189.(이바노프 1976, 나나이족의 사람과 인생순환에 대한 표현)

킬레 1976, Киле Н.Б. Лексика, связанная с религиозными представлениями нанайцев // Природа и человек в религиозных представлениях народов Сибири и Севера. Л.: Наука, 1976. С. 189-203. (킬레 1976, 나나이족의 종교적 믿음과 관련된 단어)

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토밀로프 1992, Томилов Н.А. Астральные представления нарымских селькупов // Ранние формы религии народов Сибири / Материалы III советско-французского симп. СПб.: МАЭ РАН, 1992. С. 166-173.(토밀로프 1992, 나림지역의 셀쿠프 족 우주관에 대한 표현)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산맥 스키타이문화의 한 일종인 파지릭문화에 해당하는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는 실크제 상의와 양모로 직조한 천을 이용해서 만든 치마를 착용했다.

 

그림 1.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치마 상세 사이즈(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그리고 그 치마 아래에는 타이즈를 신었다. 알타이 산맥의 스키타이문화 한 일종인 파지릭문화에서는 베르흐 칼쥔-2유적의 1호와 3호 남성고분에서 발견되었고,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발견되었다. 모두 남성무덤이다. 이 타이즈는 남성무덤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성별과 관련 없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타이즈를 신었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은 치마 아래에, 남성은 짧은 바지위에 입었는데, 이 타이즈가 어떻게 달라붙게 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기마문화와 관련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치마 아래에는 양모펠트로 제작된 타이즈 한 쌍이 공주에게 신겨져 있었다. 흰색 양모펠트로 제작되었고, 발 바닥에는 붉은색으로 천이 덧대워져 있고, 발의 반대쪽 방향인 즉 넓적다리 부분에는 붉은색 양모 아플리케 장식이 붙어 있었다. 발목에도 덧양말을 신은 것처럼 붉은 색 천을 덧대었다. 넓적다리 부분에 아플리케 장식이 있었던 것은 여성용이다(그림 2,3). 아플리케 장식은 소용돌이 문양이 양모펠트 아플리케로 제작되었다. 발의 길이는 21~22cm, 스타킹의 길이는 89cm이다. 발의 바닥에 댄 붉은색 발모양은 20cm가량이다. 

 

그림 2.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타이즈, 필자촬영

 

 

그림 3.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타이즈(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그림 2와 같은 유물

 

 

 

 

 

 

참고문헌

 

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기원전 4~3세기 알타이 산맥 파지릭문화의 의상과 직물)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 고분 중 가장 최상급이라고 여겨지는 파지릭고분을 발굴한 루덴코는 남성이나 여성의 상의가 거의 일치한다고 했다. 여밈없는 셔츠 스타일이다.

 

아크 알라하-3유적의 1호분 고분에 묻힌 여성이 입은 셔츠는 매우 길어서 무릎까지 내려온다. 등쪽 길이는 113cm, 앞쪽은 110cm, 넓이는 80cm이다. 소매는 어깨끝을 기준으로 60cm가량으로 손을 덮을 정도로 내려온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셔츠는 앞과 뒷부분은 각 각 다른 천으로 기운 것이다. 목과 어깨, 소매끝, 셔츠의 중앙은 붉은색 양모로 꼬은 끈을 달았다(그림1).

 

그림1.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얼음공주의 상의, 필자촬영

 

상의를 만든 천은 넓이가 130cm이상이다. 이 제품은 실크제품이다. 그런데 현재 알려진 고대 중국의 실크는 너비가 48~50cm정도이다. 이 너비는 실크를 짜는 직조기의 구조 때문이라고 한다(루보-레스니첸코프 1994). 이 보다 넓은 실크는 당대가 되어서라고 한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것을 일본 나라문화재연구소와 스위스의 Abegg-Stiftung에서 독자적으로 분석한 결과 중국산 실크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실크는 1㎠를 기준으로 그 치밀도가 80(날실)×33.5(씨실)의 조직으로 짜여졌다. 실크섬유조직의 단면을 현미경으로 분석한 결과 양잠용인 아닌 야생누에에서 뽑아낸 것이다. 누에고치에서 뽑은 것이 아니라 나방고치에서 뽑은 것이다. 당연히 중국 실크는 양잠용에서 뽑아낸 것임으로 중국산이 아니다.

 

이 비중국적 실크는 동투르케스탄(현재의 중국 신강성)혹은 인도 동북부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동투르케스탄에서는 기원전 2~1세기가 되어서야 나옴으로, 이 유적의 연대가 기원전 4세기 혹은 기원전 5세기 임으로 맞지 않다. 그래서 인도의 야생실크를 뽑는 기술(Dhamija 1995)에 주목을 했다. 현재까지도 아쌈과 인도의 동쪽 일대에서는 야생실크를 만드는데 누에고치가 아니라 식물의 잎을 파먹는 벌레로부터 뽑아낸다(드자야크리쉬난 1987).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는 하의는 양모로 직조한 천 3단을 이어붙였다. 전체평면형태는 사다리꼴 모양이다. 길이는 144cm, 위쪽의 넓이는 90cm, 하단의 넓이는 112.5cm이다. 상단과 하단은 붉은색, 중단은 흰색이었으나 현재는 황색으로 퇴색되었다. 가장 상단의 너비는 52cm, 중앙부의 너비는 51cm, 하부의 너비는 39cm이다. 옆부분의 솔기는 한쪽이고 한쪽으로 겹치게 해서 입었다(그림 2). 

*양모를 고온에서 압축해서 만든 펠트가 아닌 직조로 한 것이다. 앞의 포스팅에서 양모로 하의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펠트가 아닌 직조한 천이다. 양털을 실로 만들고 날실과 씨실을 교차해서 만드는 직조한 양모천이 얼음공주의 치마소재가 되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이와 유사한 치마는 2번 더 발견되었는데, 알타이 산맥에서와 중국 신강성에서이다. 알타이 산맥에서는 파지릭 유적의 2호분 여성미라가 붉은색 천과 녹색의 양모펠트를 번 갈라 꿰매어 붙인 것이다. 중국신강성 유적은 수바쉬 유적 6B고분에서도 출토되었는데, 거의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와 거의 복제한 듯 이 똑같은 치마를 입었다고 한다. 중국 수바쉬 유적의 6B고분출토품도 탄소연대측정한 결과 기원전 4세기대로 측정되었다(Mair 1995)

 

그림 2.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치마

 

 

참고문헌

루보-레스니첸코프 1994, Лубо-Лесниченко Е.И. Китай на шёлковом пути. М.: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94. 332 с.(루보-레스니첸코프, 1994 중국 실크의 길)

Джаякришнан Ш. Ткачество // Индия. М.: Прогресс, 1987. С. 67-73.(드자야크르쉬난 1987, 직물//인도)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Dhamija J. The woven silk of India. Marg Publications, 1995. 156 p.

Mair V.H. Mummies of the Tarim Basin // Archaeology. 1995. March/April. P. 28.35.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지금까지 계속 이야기 해 온 우리의 주인공 여성은 아직 설명드리지는 않았지만 긴 상의에 긴 치마를 입었다. 상의는 흰색이고, 하의는 붉은색 계통인데, 삼단으로 짠 펠트제품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시베리아 하면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뭔가가 있지 않으신가?

추위,,모피코트...러시아인들이 쓰고 다니는 높은 모피로 된 모자 등이다.

필자는 어렸을 때 은하철도999라는 만화를 매우 좋아했다. 어린 학생들은 많이 모르실텐데, 두 주인공이 여러 별을 기차로 타고 다니는 만화이다. 지금 기억에 그건 일요일 아침인가에 했는데, 난 그걸 보기 위해서 모든 걸었다..그걸 하는 시간을 비우기 위해서, 엄마아빠 잔심부름은 빨리 다 하고,, 밥도 일찍 다 먹고,,‘신성한’ 마음으로 기다렸다..은하철도 999. 거기 나오는 주인공은 2명인데, 메텔이라고 불리는 여성과 한 명 남자의 이름은 기억안난다. 메텔은 키가 크고 금발인 여성이었는데, 검은색이고 높은 모자와 모피코트를 입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은 모티브가 된 것이 러시아여성이었다고 한다.

 

러시아 하면 모피코트다. 17세기에 표트르 1세가 시베리아를 삼킨 이유도 사실 모피 때문이다. 그때 유럽은 소빙기로 혹독한 추위 때문에 꽁꽁 얼어붙었고, 욕심 많고 많이 돌아다녀서 아는 것 많은 표트르 1세는 시베리아 무주공산에 깃발꽂고 동물잡아 모피로 유럽에 팔아서 돈도 벌고, 고분도 들쭉날쭉 파서 표트르 대제 콜렉션을 만들었다. 그 유물은 지금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있다. 유럽여행을 가시면 꼭 한번 가보시기 바란다. 모스크바는 안가시더라도,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꼭 한번 머무르고 도시를 느끼시기 바란다..훔쳐오고 싶은 도시이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은 모피코트를 입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알타이 산맥의 다른 무덤에서는 코트 입은 사람들이 발견된다.

초창기에 파지릭문화를 연구할 때는 모피코트도 계급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러나 베르흐-칼쥔 2 유적을 발굴하고 나서 많은 점이 의문투성이로 바뀌었다. 이 무덤은 일반무사의 것인데, 매우 재밌게 생긴 모피코트가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1호분(그림2)과 3호분(그림1), 2 무덤에서 발굴되었는데, 스탈일이 다르다. 요즘 개념으로 하면 털이 안으로 들어간 ‘무스탕’(3호분)(그림1)과 털이 밖으로 나온(1호분)(그림1) 그냥 우리가 아는 모피코트이다. 요즘은 리버시블이 유행하던데, 그렇게 입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림1. 베르흐-칼쥔 2유적의 3호분 남성무사의 모피코트

 

베르흐-칼쥔 2유적의 3호분은 어제 설명 드린 문신이 새겨진 무사가 주인공인 무덤이다. 그의 모피코트는 털이 안으로 들어간 바깥은 맨들맨들한 무스탕이다. 그런데 이 코트의 가장 하단에는 ‘꼬리’처럼 달린 장식이 붙어 있다. 이 코트는 두 장을 붙인 것인데, 안은 양털을 쓰고 그 위에 담비가죽을 붙인 것이다. 목과 양쪽 어깨, 소매 단, 여밈 부분은 검은색 나귀가죽을 따로 써서 붙였다. 그리고 아플리케 장식으로 덧붙였는데, 붉게 물들인 말총과 청색의 가죽조각을 이어붙여서 만든 술을 2열로 달았다. 이 모피코트의 꼬리부분은 너비 49, 길이 57cm이다.

 

민족지학적으로 꼬리달린 외투는 북아시아 뿐만 아니라 알래스카의 에스키모들도 입는다. 꼬리달린 외투는 놀랍게도 스키타이 문화의 것으로 생각되는 암각화에도 남아 있다. 그 분포범위는 시베리아의 큰 강 계곡마다 분포하고, 중국 북방에서 프리바이칼의 앙가라 주변지역까지 넓게 퍼져있다(오클라드니코프 1966). 즉 현재 민족지학적으로 남아 있는 꼬리달린 외투의 기원은 2500년 전 베르흐 칼쥔 2 유적의 3호분 남성이라고 할 수 있다. 남자 사냥꾼의 복식이라고 이해된다.

 

베르흐 칼쥔-2유적 1호분(그림 2)에서 출토된 모피코트는 꼬리가 없다. 밖으로 양털이 나오고, 안쪽으로는 흰색 모르모트 가죽을 덧입힌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3호분도 마찬가지이지만, 현대의 카라 라고 하는 부분이 없다. 외투의 오른쪽 하반부의 허리부근에 붉은색으로 염색된 말갈기(그림 2의 b)를 모아서 만든 숱을 부착했다.

소매가 매우 길어서 손가락을 덮을 정도이다. 모피의 착용방법도 유적마다 다르다. 베르흐 칼쥔 2유적에서는 소매를 끼운채 확인되었다.

그림 2. 베르흐 칼쥔 2유적의 1호분 모피코트 

 

우리는 여기서 하나를 추측할 수 있는데, 이번 달의 주인공이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는 처음부터 모피코트를 입힐 계획이 없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장례식은 태어나면서 계획 되었다..고분의 말이 6월쯤 죽었으니 모피코트가 필요 없기도 했겠지만,, 필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왜?

 

그녀는 손을 오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후강직이 일어나기 전에 시신의 자세는 빠른 시간안에 결정났을 것이다. 모피코트를 입힐 계획이었다면 손 모양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오클라드니코프 1966, Окладников А.П. 1966 : Петроглифы Ангары. М.-Л.: 1966. 322 с.(앙가라강의 암각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