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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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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45~50세 남성의 무덤을 다시 보자.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통나무관, 오른쪽이 45~50세 남성전사이고, 오늘 설명하는 바지 입은 주인공이다.

 

남성의 무덤에는 바지와 신발이 신었다. 양모로 만든 붉은색 바지인데, 색은 많이 바랬다. 옆에 있는 소년 전사의 무덤에서도 바지의 흔적은 있으나 상태가 매우 불량했다. 역시 붉은 색이었다고 전한다.

 

바지는 모두 6조각의 천을 기워서 만든 것이다(그림2).

4조각은 긴네모꼴인데,  발목 가까이는 사다리꼴로 접혔으며, 다리의 앞판과 뒷판을 구성한다. 1조각은 삼각형에 가깝고, 나머지 한 조각도 긴네모꼴이지만, 다리를 구성하는 판이 아니라 삼각형은 허리의 앞쪽(그림 2-a, 4, 그림 3-b)을 대었고, 긴 네모꼴(그림 2-5)은 접어서 다리 사이에 부착되었다. 바지의 다리를 이루는 긴 네모판은 너비 27~28cm, 길이는 102~104cm가량이다.

바지의 다리를 구성하는 부분은 긴 네모꼴이지만, 발목으로 갈수록 줄어드는 스타일이다. 안쪽으로 접은 부분의 길이는 0.7~0.8cm로, 아랫단의 너비가 20.5~21.5cm가량이다. 바지의 입구(허리부분)은 바깥으로 접어서 감침질 되었다.

 

앞판의 허리부위에 삼각형을 덧댄 스타일(그림 3-b)은 또 다른 남성 무사의 무덤인 베르흐 칼쥔 2 유적의 1호와 3호 유적에서는 볼 수 없다. 삼각형 판을 댐으로써 낸 효과는?

허리 사이즈를 늘린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혹시 살이 쪄서 바지를 수선했던 건 아닐까? 어쨌든 이 바지는 허리를 늘인 흔적(그림 3-b)이 있다.

 

바지의 소재는 양모를 짠 것인데, 천을 바이어스 방향으로 이용했다.

천을 바이어스(사선) 방향으로 이용하면, 신축성이 좋아진다. 바지가 헐렁해서 신축성은 따로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천을 좀 더 오랫동안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축성이 필요한 옷은 주로 몸에 달라 붙는 옷에 많이 필요하다. 허리를 늘린 이 바지와 수선흔 흔적, 다른 유적에서 출토된 바지들이 수선된 흔적 들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의복은 경제적인 문제와 클 것으로 생각된다.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도 자세히 살펴보면 씨실과 날실 방향으로 천을 재단해서 옷을 만든 것이 있고, 바이어스 방향으로 이용한 옷도 있다. 주로 여성의 스커트 중 플레어 스커트에서 많이 확인된다. 필자가 고등학교 때 입고 다니던 교복이 딱 플레어 스커트였는데, 바이어스 방향으로 재단된 것이었다..

(고등학교 과목 중 세상에 쓸모없는 과목이 가정이었다고 생각했는데...갑자기 미안해진다.)

 

허리 사이즈 조절은 끈으로 조절했는데, 소년관에서 바지의 흔적과 함께 끈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분 사진을 보시면 뭔가 어정쩡하지 않은가? 예전에 일명 ‘똥싼바지’가 유행 했었는데,...비슷한 느낌이다.

왜냐하면 품이 커서이기도 하지만 밑위보다 다리사이에서부터 발목까지의 길이가 짧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다리가 짧을까?

 

타이즈를 신었기 때문에 바지의 다리 길이가 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림 1에서도 바지의 흔적은 발목까지 그려져 있지 않다. 이 무덤에는 타이즈가 남아 있지 않지만, 또 다른 남성 무덤인 베르흐 칼쥔 2 유적의 전사는 바지를 입고 타이즈를 신었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45~50세 남성전사의 붉은 바지.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45~50세 남성전사의 붉은 바지 2, 그림 2와 같은 유물, b가 앞면으로, 삼각형 양모천을 덧대서 허리를 늘렸다는 것이 잘 보인다. 그림 2-a와 같은 방향.

 

참고문헌

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폴로시막, 바르코바, 2005, 기원전 4~3세기 알타이의 파지릭 문화 의복과 직조물)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서도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는 16세 가량의 소년과 45~50세 가량의 남성이 함께 확인되었는데, 우리는 이미 소년과 장년기의 남성이 어떤 물건과 함께 부장되었는지 살펴 보았다.

이 유물은 매우 이데올로기적 유물이다. 활통 혹은 화살통집의 부속품인데, 거기에 꼭 동물문양장식을 그려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혹은 활통의 덮개가 필요했을까.

그래서인지, 러시아학자들은 이 유물을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해석한다. 활은 스키타이 인들에게 천상의 상징이라고 죽은 사람이 신의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활과 함께 그렸다고 한다(사보스티나 1983). 이런 활통에 화려한 장식을 새기거나 덮개를 씌운 것은 천상세계에서 신과 함께 있음을 표현한 것이나, 혹은 살아 있는 경우는 왕의 앞에 있는 경우를 표현한다고 한다(폴로시막 1994).

 스키타이 인들이 매우 용맹하고 싸움 잘하는 사람들이라고 헤로도투스는 묘사했지만, 사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활통의 덮개를 열지 않는 시간을 기대한 건 아닐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의 활통, 화살통 출토 위치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의 관에서 출토된 활집 혹은 화살통 장식

 

그런데 그 가운데 소년의 관에서 출토된 동문문양이 그려진 나무막대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이야기 하지 않았다. 소년의 왼쪽 엉덩이 쪽에는 길이가 64cm인 나무로 만든 장식(그림 2)이 출토되었다. 구멍이 뚫려 있음으로 어딘가에 달기 위한 장식성이 강한 유물이다. 멧돼지 2마리, 표범 2마리와 함께 가장 앞쪽에는 그리핀 머리(그림 2-1)만 조각되었다. 그리핀 머리 아래로 멧돼지 한 마리를 두 마리의 표범이 사냥하는 장면을 표현했다. 마지막의 표범 엉덩이에는 멧돼지가 머리를 반대방향으로 돌리고 있다(그림 2-2). 그리핀은 보고서에는 독수리라고 되어 있지만, 귀를 둥글게 표현했는데(그림 2-1), 표범의 귀와 같은 모양으로 표현되어서 독수리와 표범이 합체한 단순한 독수리가 아닌 그리핀이다. 표범과 멧돼지는 이빨까지 상세하게 표현되었다.

통에 부착되는 부분은 일직선(그림 2-3)인데, 거의 동일한 간격으로 26개의 구멍이 있고, 동물조각이 없는 하단에는 짧은 면에도 구멍이 있다. 동물문양 나무막대 옆에는 노끈이 달린 술 장식과 7개의 골제 화살촉, 활의 부속과 활대 등이 확인되었다.

 시베리아 무기를 오랫동안 연구한 솔로비예프(2003)는 나무판이 활집을 지지하는 판이 될 수도 있고, 화살통을 지지할 수도 있다는 견해이다.

 

 

 

그림 3. 솔로비예프가 복원한 화살통집 1, 파지릭 유적 및 알타이 고원의 예로 무덤의 예를 참고로 복원

 

 

 

그림 4. 솔로비예프가 복원한 또 다른 활통과 화살통집, 오비강 유역의 유물을 참고로 복원

 

그런데 소년관 옆의 45~50세의 전사 관에서는 동물문양이 그려진 장식은 출토되지 않았으나 나무 목판 위로 왼쪽 어깨에서 두 조각(붉은색과 녹색) 고깔형태의 펠트조각이 출토되었다. 여러 유적에서는 이 고깔형태의 펠트조각과 노끈 등이 활통 뚜껑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출토되었다. 앞서서 소년관과 이 남성관에서 유일하게 같은 형태의 유물인 매듭도 화살통집에 달렸던 매듭인데, 활통도 고깔형태의 뚜껑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45~50세 중년 남성의 관에서 출토된 목판의 길이는 63.5cm, 활집의 길이는 66~67cm으로 추정되며, 활의 전체 길이는 90cm가량이다(그림 5).

 

 

 

그림 5. 아크 알라하 1 유적의 1호분, 장년 남성의 관에서 출토된 활집복원도, 매듭과 가죽끈이 달려 있다. 앞에서 설명한 동물문양이 그려진 네모판의 장식을 활집통의 부속품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벨트 장식에 동물문양장식은 많은 유적에서 확인된다. 이 복원도도 여러 정황으로 복원한 것임으로 반드시 옳다고는 할 수 없으나, 고깔모양의 덮개를 이해하는 용도로 이해하기 바란다. 

 

참고문헌

솔로비예프 2003, Соловьёв А.И. 2003 : Оружие и доспехи: Сибирское вооружение: от каменного века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3. 224 с.(솔로비예프 2003, 석기시대에서 중세시대까지 시베리아의 무기)

Савостина Е.А. К символике изображений лука на Босфоре // СА. 1983. №4. С. 45-56.(사보스티나 1983, 보스포레에 그려진 활 표현에 대한 상징성에 대한 연구)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우리는 무덤방을 덮은 바닥과 천장에서 무덤의 구조와 관련 없이 통나무에 홈이 패진 흔적과 통나무를 끊은 것을 이어서 사용한 흔적을 보았다(그림1).

러시아 연구자들은 이를 살아 생전의 집을 뜯어서 통나무를 활용했다고 했다(폴로시막 1994). 무덤과 전혀 관련 없이 이유 없는 통나무의 홈이나 절개면 등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헤로도투스도 스키타이 인의 집에 대한 를 적어 놓은 바 있다. 헤로도투스의 역사 4권은 스키타이 사람들에 관해서 적은 것이다. 그들의 기원, 나라의 영역, 하천, 북방과 동방의 여러 민족, 생활양식에 대한 기록이다. 헤로도투스의 역사는 한국어(참고문헌)로도 여러 번 번역되었다. 이를 참고했다. ‘스퀴타이’족이라고 그리스어로 적혀 있어 번역되었으나, ‘스키타이’ 민족을 의미한다.

 

4권 76장에는 스키타이 인이 얼마나 전투에 능했는가를 설명하면서 그들의 집에 대한 언급이 있다.

 

‘다레이오스가 군대를 진격 시켰던 흑해연안에는 스키타이 족을 제외하고는 세상에서 가장 무지한 부족들이 살고 있다. 흑해연안에 거주하는 부족들 가운데 스키타이족 외에는 지혜롭다고 할 만한 부족은 하나도 없다. 스키타이 족인 아나카르시스 외에는 현인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나(헤로도투스)는 다른 관점에서 스키타이족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한 가지 가장 중대한 인간사에 있어서 그들은 우리가 아는 모든 부족을 능가한다. 그들이 해결한 중대사란 그들이 추격하는 자는 아무도 그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이 잡히고 싶지 않으면 아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도시도 성벽도 없고, 집을 수레에 싣고 다니고, 말을 타고 활을 쏘기에 능하고, 농경이 아니라 목축으로 살아가는데 그런 그들이 어찌 다루기 어려운 불패의 부족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있는 아주 유사한 부분 등이 실제로 발굴되기도 했으나 전혀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어서 그대로 신뢰할 수 없다.

어쨌든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은 대부분 무덤으로 집의 흔적이 남아 있지는 않다. 알타이 산의 또 다른 유적인 파지릭 유적 5호에서는 무덤 속에 실제로 마차가 출토되었는데, 헤로도투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집을 싣고 다닐 만큼 크지 않다.

 

아무튼 그리스인 학자의 눈에도 스키타이 인들은 집에 대해서 아주 그들과 아주 달랐다고 이해할 수 있다.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던 시대도 아니니, 실제로 보지 않고 전해들은 내용이 정확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시베리아의 집에 대해서는 비슷한 현상이 앞 시기에도 발견된다. 후기구석기시대부터 무덤이 확인되는데, 집안에 화덕자리 아래에 인골의 두개골과 함께 인간형상물을 함께 묻은 흔적이 앙가라강 유역의 말타 유적에서 발굴된 바 있다. 그리고 신석기시대, 순동시대, 청동기시대 그리고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스키타이문화에도 대부분 발굴되는 유적은 무덤이다. 신기할 정도이다.

신석기시대에는 무덤 아닌 유적이 발굴되기도 했는데, 집터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고 거의 화덕자리만 남아 있고, 문화층에서 유물만 확인되는 경우가 많다. 시베리아 선사문화의 전반적인 특징일 가능성이 많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무덤방의 천장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 유적 5호분 출토된 마차, 기원전 5~4세기.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루덴코 1960,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역사 (헤로도토스)(천병희 역), 2009, 숲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그림 2의 다른 면

 

그림 4. 솔로하 유적 출토, 에르미타주 소장, 네모 꼴 방패를 든 스키타이 전사

 

그림 5. 솔로하 유적 출토,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4의 다른 면

 

그림 6. 솔로하 유적 출토,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 빗의 일부, 말에서 떨어진 그리스 전사의 얼굴과 갑옷

 

그림7. 솔로하 유적 출토,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 빗의 일부, 그림 6의 다른 면, 말에서 떨어진 그리스 전사의 칼 집

 

그림8. 솔로하 유적 출토,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 빗의 일부, 그림 6의 다른 면 

 

아래 포스팅에서 솔로하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빗의 전체 모습을 알 수 있다.

2020/02/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시베리아/철기시대, 스키타이문화] - 2500년 전, 알타이 남성전사의 방패

 

 

2500년 전, 알타이 남성전사의 방패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에서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살펴보고 있다. ‘스키타이문화’라고 불리는 초원의 철기시대문화로 스키타이문화에서도 알타이 산맥에 위치..

eastsearoad.tistory.com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 가운데서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방패를 설명하면서 이 황금 빗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길이 12.6cm, 너비 10.2cm의 이 작그마한 황금빗에는 세 명의 전사가 전투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2명은 같은 방향으로 쳐다보고 있고, 한 명은 그 두 명과 마주보고 있다. 말탄 무사와 네모꼴 방패를 손에 쥔 무사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음으로 둘은 같은 편이고, 승자는 말 탄 무사이다. 얼굴 방향이 다른 한 명은 말에서 떨어졌다.

말탄 전사(그림 2,3)와 그와 얼굴 방향이 같은 보병(그림 4,5)은 스키타이의 전사다. 그러나 말탄 무사가 쓰고 있는 투구는 스키타이 투구가 아닌 코린트식 투구이고, 정강가리개도 그리스 식이다(그림 2,3). 그의 허리에는 활과 화살통(고리투스)와 검이 든 칼집을 차고 있다. 화살통은 비었다(그림 5). 그의 뒤에 서 있는 보병의 복장은 긴 소매의 윗도리와 헐렁한 바지, 뒤로 벗겨졌지만 고깔모자(그림 3), 네모 모양의 방패와 단검(짧은검)(그림 2)은 스키타이 무사의 것이다. 윗도리와 아랫도리에는 동그라미 장식이 빽빽이 장식되었다.

말에서 떨어진 사람은 그리스식 갑옷과 장검(긴 검)(그림 7, 8)의 집을 착용하고 있으며, 방패의 모양도 스키타이 보병 전사의 것과 다르다.

말탄 무사와 그의 뒤에 서 있는 얼굴 방향이 같은 사람이 스키타이 전사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 유적과 아크 알라하 유적에서 출토된 같은 모양의 방패와 단검, 말에 묘사된 마구장식, 화살통 등이 그렇다.

 

그럼 그리스식?

이 유물은 솔로하라고 하는 흑해북쪽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스키타이 귀족이 그리스 어느 공방에 ‘order made’한 유물이다. 아르타모노프는 말을 탄 전사와 그 뒤에 있는 사람 그리고 말에서 떨어진 사람의 얼굴(그림 6)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턱수염의 모양이 차이가 있고 말탄 전사의 이마가 낮고 머리가 길며, 턱수염 위로 나온 입술(그림 2,3) 등은 그리스 장인에게는 낯선 이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무사들은 머리를 기른 무사의 미라도 확인되었다.

 

그래서 그리스 장인은 스키타이 주문자의 기호에 맞도록 스키타이적인 요소를 넣었지만,  스키타이의 말 탄 무사위에는 그리스식(코린트식) 모자(그림 3)와 무릎가리개를 착장시켰다. 그리고 세 사람의 아래에는 웅크리고 있는 사자 5(그림 2)마리를 표현했다.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에서는 주로 맹수는 표범과 호랑이 등이 표현되었다.

재밌는 사실은 말에서 떨어진 무사는 그리스식 갑옷(그림 5,7)을 입었지만, 바지(그림 7,8)는 네모꼴 방패를 들고 있는 무사(그림 4,5)와 같다. 스키타이 전사의 바지를 입힌 것이다.

그 maestro는 다음의 주문을 위해서 여지를 남겨 둔 것으로...(황금빗을 주문한 스키타이 귀족이 아무리 기술이 훌륭하더라도 담긴 내용물이 맘에 들지 않는 다면 다시 주문할 이유가 없을 것임으로...)

 

솔로하 유적은 1912년과 1913년에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했고 기원전 5세기 늦은 시기부터 기원전 4세기 중반에 있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럼 도대체 스키타이 문화는 언제부터, 어느 지역의 문화인가?

필자는 시베리아 알타이에 있는 유적을 설명하다가 흑해북쪽에 있었던 현재 우크라이나 지역에 있는 유적의 유물을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필자가 이해하기 쉽게 ‘스키타이 문화’라고 설명했지만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스키타이 세계’ 혹은 한국에서는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알려져 있다. ‘문화권’은 문화의 복합체이다. 문화+문화+문화....으로 이해된다.

아니 그렇다면, 문화를 연결하는 공통성이 있지 않았겠는가?

스키타이 문화권 혹은 스키타이 세계라고 부를 수 있는 요소를 ‘스키타이 3요소’라고 하는데, 무구, 마구, 동물문양 장식이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기원전 9세기 혹은 기원전 8세기부터 흑해북쪽(현재 우크라이나)부터 알타이, 시베리아, 카자흐스탄까지 확인된다. 카자흐스탄에서는 기원전 7세기 이후는 사카문화라고도 부른다. 다음 연대표를 보시면 된다.

 

그림9. 스키타이 문화권(유라시아의 황금 사슴 2001), 표의 제일 첫 번째 상단이 그 문화가 있던 지역이다. 필자편집

 

이제까지 우리는 코끼리 코의 끝을 잠시 보고 만졌던것이다..알타이 고원에 있던 얼음공주라고 하는 여성샤먼의 미라를 매개로...

 

 

참고문헌

아르타모노프 1966,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Манцевич А.П. 1987 : Курган Солоха. Л.: «Искусство». 1987. 143 с.(만체비치 1987, 솔로하 무덤유적)

Золотые олени Евразии.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в Гос. Эрмитаже, СПб, 18 октября 2001 года — 20 января 2002 года. СПб: «Славия». 2001. 248 с. (에르미타주 국가박물관 특별전 도록, 유라시아의 황금 사슴, 2001)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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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 산에서도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전사 2명이 묻힌 1호분의 관 내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 무덤에는 1차 무덤방에는 말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있는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는 무덤방 밖에 말이 6마리 부장된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무덤구덩이의 동북쪽에는 바닥과 벽은 통나무로 구조물이 있었지만 말을 묻은 곳 위에는 나무덮개가 없고, 커다란 돌과 흙을 채웠다. 파지릭 유적에서도 말 무덤이 확인되지만, 무덤방의 바깥에 있었는데, 우코크 고원의 전사들의 무덤에는 말이 안쪽에 묻혔다.

 

 

말은 화려하게 부장되었는데, 7마리만 마구와 말 꾸미개(굴레)가 있었다. 5마리는 착장되었고 2벌은 말 옆에서 확인되었다. 말꾸미개는 재갈과 재갈멈치로 구성된 얼굴 부분과 안장을 장식하는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재갈은 말을 부리는데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입에 재갈을 물려야, 마부 마음대로 말을 부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재갈과 재갈멈치(그림2)는 꾸미개 라기 보다는 말의 가장 핵심적인 엔진과 같다. 그리고 재갈에 가죽 끈을 달아서 마부가 말을 부리는데, 이 끈에 여러 장식물을 부착했다. 현대의 복잡한 컴퓨터도 기술이 발전해야 디자인이 발전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끈을 그냥 달면 재미 없으니 이것저것 달아 놓은 것이다. 나무 장식이지만 금박을 입혀서 남들한테 뽐내기용으로도 딱이다. 그래서 아이러니 한 유물이 말의 얼굴을 장식하는 말 얼굴 꾸미개다. 재갈과 재갈멈치만 있어도 되지만, 또 재갈멈치도 재밌게 꾸민 것이다.

 

첫 번째 말의 장식은 그리핀이 특징이다.

말의 얼굴을 장식하는 부분에는 그리핀이 입체적인 것 6마리, 평면적인 것 9마리로 구성되어 있다. 그림 1을 보면, 말 이마의 중앙과 귀 바로 아래 및 귀 아래에서 입으로 연결되는 부위에도 입체적인 그리핀 2마리가 있다. 말꾸미개를 복원하면 그림 2와 같은데, 말 이마(그림 1-2)와 그 아래에 코와 가운데 사이(그림 1-5)에도 입체적 그리핀이 장식되어 있다. 귀 아래와 입으로 연결되는 부위(그림 1-3,4)의 그리핀 4점은 모습(그림 2)이 같다.

입체적인 그리핀은 얼굴과 그 아래의 기초부분이 되는 부분을 따로 제작해서 그리핀의 목이 들고 있는 모습이다. 목 아래의 부분은 원형(그림 1-2), 날개(그림 1-3,4) 혹은 두 마리의 그리핀이 서로 마주보는 그리핀(그림 1-5)을 부착해서 만들었다.

평면적 그리핀은 두 마리가 눈과 부리를 맞대고 있으며 목이 합체되어서 전체적으로 하트 모양을 표현하고 있다. 그 아래에는 대롱으로 나무가 붙어 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첫 번째 말의 마구와 말꾸미개 복원도, 필자편집, 귀 아래와 입으로 연결되는 부위의 그리핀은 복원도에는 없으나, 그림 2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첫 번째 말의 마구와 말꾸미개(굴레)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첫 번째 말의 평면적 그리핀

 

두 번째 말의 장식은 첫 번째와 거의 같다고 설명만 되어 있다.

 

세 번째 말의 장식은 마구와 말의 꾸미개에서 이마를 장식한 그리핀만 소개되어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마구에서 본 그리핀의 눈 보다 좀 더 크고, 부리가 더 벌어졌다. 목은 두텁지만 그에 비해서 갈기표현은 작다. 목과 날개는 따로 제작되어 착장하는 스타일로 입체적인 모습이다. 몸통은 날개와 꼬리가 표현되어 있는데, 앞서 살펴본 입체적 그리핀의 날개모양과는 다르다.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세 번째 말의 그리핀

 

네 번째 말의 마구와 말꾸미개는 다른 말의 그리핀 보다 크기가 작다. 입체적인 그리핀은 귀 아래와 입으로 연결되는 부위에만 달려 있는데, 그리핀 크기가 작다. 목이 짧고 부리는 길며, 눈도 크다(그림 5). 이마 중앙에는 원형의 장식판이 달려 있다. 장식판은 크기가 다른 동그라미 두 개를 겹친 모양이다. 입체적 그리핀이라고 날개 장식이 약간씩 다른 점은 앞에서 본 세 마리의 말과는 다른 모습이다.

평면적 그리핀도 같은 스타일인데, 모양이 약간씩 다르다. 예를 들면 한 점은 길면, 그 옆에 있는 한 점은 약간 작게 표현되었다(평면적 그리핀의 모양은 따로 소개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말의 가슴팍에도 그리핀이 1점 붙어 있었다(그림 7). 전체적인 모양은 멧돼지 송곳니 모양양인데, 그리핀 모양에 맞추어서 표현해서 갈기와 머리 상투는 없지만 귀와 눈이 크고, 부리가 강조된 모습이다.

 

그림 5.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4번째 말의 말 꾸미개 복원도와 입체적 그리핀

그림 6.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4번째 말의 입체적 그리핀

그림 7.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네 번째 말의 그리핀, 전체적인 모양은 멧돼지 송곳니 모양이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말에는 그리핀 장식이 없고(그림 7, 8) 앞서 입체적 그리핀을 착장했던 곳에 백조모양의 장식이 붙어 있다. 구조는 그리핀과 유사하다. 목을 날개에서 세워서 입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 표현은 그리핀과 매우 유사하지만 목과 정수리에 갈기가 없는 것이 차이가 있다. 다섯 번째 마구와 굴레장식에 붙은 새장식 옆에는 백조와 매우 유사하지만 귀가 붙은 동물이 있는데, 그리핀이다(그림 7-2). 이와 비슷한 그리핀이 표트르 대제 시베리아 컬렉션에서 야크를 늑대, 호랑이와 함께 물어뜯는 장면을 표현 적이 있다(그림 12, 그림 13, 아르타모노프 1973)

또한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7번째 말에는 평면적 그리핀을 대신해서 연꽃 모양의 장식이 붙어 있다. 7번째 말에는 새모양 장식도 없고(그림 10), 연꽃 장식으로만 이루어졌다. 이 말의 재갈 멈치 끝에도 그리핀 대신에 꽃 모양이 장식되어 있다.

 

 

그림 7.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다섯 번째 말의 마구와 굴레 복원도

그림 8.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말의 백조모양 장식(1,3)과 그리핀(2), 그리핀은 정확하게 어떤 말의 것인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그림 9.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다섯 번째 말의 마구와 굴레장식(a), b는 백조모양장식(그림 8-1과 같은유물), c는 그리핀(그림 8의 2와 같은 유물) 

 

그림 10.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7번째 말의 복원도

 

그림 11. 표트르 시베리아 컬렉션,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으로 제작된 걸쇠, 벨트로 추정됨, 획득물을 두고 싸우는 그리핀, 호랑이, 늑대를 묘사함. 그리핀에 귀가 표현되었다. 

 

그림 12. 표트르 시베리아 컬렉션,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으로 제작된 걸쇠, 야크를 그리핀이 넘어뜨리는 장면. 그리핀에 귀가 표현되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구슬이 연결된 연주형처럼 생긴 나무관이 출토되었다(그림 13). 마구 장식중에는 말 굴레에 끼우는 골제 버클2점이 확인되었다(그림 14). 긴 네모꼴로 사설이 바깥으로 달렸는데, 알타이의 다른 유적 중에 하나인 파지릭 유적에서 확인되었다.

 유적에서는 철제 재갈 4쌍, 청동제 재갈이 확인되었다. 철제 재갈은 마구와 함께 출토되었는데 부식이 매우 심했다. 청동제 재갈(그림 15)은 무덤에 쌓은 돌 사이에서 확인되었다. 장기간 사용한 흔적이 확인되었다. 이 재갈은 아르잔이라고 하는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과도 매우 유사하다(그랴즈노프 1980).

 

그리핀은 스키타이문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동물장식 중에 하나이다. 여러 동물이 한 동물에 합체한 하이브리드형 동물문양장식이라고 볼 수 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첫 번째 말의 그리핀은 독수리 목에 갈기를 표현함으로써 두 마리 동물이 합체된 것을 표현했다.

평면적 그리핀은 끈을 끼우기 위해서 대롱모양을 만들고 그 상단에 그리핀을 장식했서 디자인을 챙긴 것이다. 필자의 의견이다. 그리핀을 앞으로 추적해 볼 예정이다. 

 

그림 1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나무대롱(1)과 그림 7의 멧돼지 모양과 같은 단면과 평면의 마구장식(2), 말 무덤의 제일 위에 튀어나와 있던 유물 중에 하나이다.

그림 14.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골제 버클

그림 15.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적석에서 출토된 청동제 재갈

 

 

 

 

참고문헌

아르타모노프 1973, Артамонов М.И. 1973 : Сокровища саков. М.: 1973. 280 с. («Памятники древнего искусства».)(아르타모노프 1973, 사카족의 보물)

그랴즈노프 1980, Грязнов М.П. 1980 :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Л.: 1980. 64 с(그랴즈노프 1980, 아르잔, 초기 스키타이문화의 차르 무덤.)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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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유라시아 전 지역을 휩쓸고 다녔던 스키타이문화의 남성전사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는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묻혔는데, ‘얼음공주’라고 별명이 붙은 여성과 동시대의 인물이었고, 3km 떨어진 곳에 붙였다.

학자들은 이곳의 이름을 아크 알라하 1유적이라고 주소를 붙였고, 유적에서 1호분에는 어제 이야기 한 15세 가량의 유로포이드 소년과 함께 45~50세의 유로포이드 남성으로 밝혀졌다. DNA분석법으로 두 명다 남성으로 밝혀졌는데, 둘이 아버지와 아들일 가능성이 있으나 여기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고 한다(피리펜코, 트라페조프, 폴로시막 2015). 어쨌든 남성과 여성이 함께 묻혔다고 처음에는 알았으나, DNA분석법이 도입되면서 전혀 다른 양상이 밝혀졌다.

 

소년의 무덤과 크기가 약간 크지만, 중년 남성의 무덤 부장품도 용도가 같은 유물도 있지만 생김새는 다르고, 소년의 무덤에는 있는 유물이 중년남성에게는 없는 유물도 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통나무관, 왼쪽 소년, 오른쪽 중년남성의 관

 

그는 몸을 편채 오른쪽으로 누워있었고, 두향은 동북쪽이고 손은 팔꿈치 쪽으로 굽혀 있었다. 머리아래에는 바닥이 편평한 목침(48×23×8.5cm)이 있었는데, 소년의 것보다 크다. 목침 근처에는 새머리 고깔모자가 확인되었다. 고깔모자의 가장 정수리 부분을 장식하던 새머리 장식과 분리된 채였다.말과 사슴에는 금박을 입혔을 것이다.

 

그림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남성전사의 새머리 고깔모자

 

이 남성도 목에는 목걸이를 착용했는데, 목제로 제작되었고 금박을 입힌 것이었다. 표범 두 마리가 마주보고 사슴머리를 같이 물고 있으며 그 아래에도 사슴머리가 표현된 것이었다(그림 3). 목제 귀걸이도 확인되었다. 두개골에는 검은색의 직모 머리카락이 남아 있었다. 목 근처에는 양모로 만든 끈이 여러 갈래로 만들어진 매듭이 확인되었다. 끝에는 둥근 술이 달려 있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중년 남성의 목제 목걸이의 앞 장식

 

허리춤에는 목제로 제작하고 금박을 입힌 허리띠의 부속품과 허리끈이 확인되었다. 모두 6점인데, 4점은 2점씩 짝을 이루어 양쪽으로 대칭되게 제작되었고 가장 끝에 두 점은 각각 모양이 다르다. 가장 중심의 동물모양장식은 표범이 조각되어 있는데 2점(그림 4-3,4)이다. 동물모양장식 허리끈 부속품 옆에는 허리띠 장식은 부채꼴모양이 새겨져 있다. 가장자리에 네모꼴 프레임을 새기고, 그 안에 3열로 부채꼴이 새겨졌는데, 열과 열의 부채꼴 방향은 다르다(그림 4-2,5). 가장 하단의 중앙에는 긴네모꼴로 구멍이 뚫려져 있다. 이 허리띠 장식도 2점이다. 가장 끝에 허리띠 장식은 크기가 가장 작다. 허리에 착용했을 때 오른쪽에 오는 부분은 부채꼴 모양이 3열로 새겨져 있는데(그림 4-1), 가장자리의 네모꼴 프레임과 구멍이 없다. 허리에 착용했을 때 왼쪽의 네모꼴은 무문양으로, 하단의 중앙에 네모꼴 구멍이 있다(그림 4-6).

허리부근에서 불로 만든 빗이 확인되었고, 오른쪽 무릎 아래에는 날이 위로 향하게 한 투부가 확인되었다(그림1).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중년 남성전사의 허리띠 부속품, 상단은 중년남성의 것, 하단은 소년의 것이다.

 

오른쪽 대퇴골 근처에는 상태가 않 좋은 목제 칼집과 그 안에 철제 단검이 들어있었다. 왼쪽 대퇴골 근처에는 이미 형체가 없어진 활집에 붙어 있던 목제가 붙어 있던 것이 발견되었다. 일렬로 구멍은 남아 있었지만, 소년의 화살통처럼 동물문양장식은 없었다. 활대가 붙은 화살 5점과 조합식 활의 목제부분도 남아 있다.

 

남성은 펠트제 붉은색 바지와 펠트로 만든 신발도 신고 있었다.

 

소년의 관에서는 자안패, 거울, 목제칼 등이 발견되었으나 이는 중년 남성의 무덤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소년의 관에서는 고깔모자는 발견되지 않고 목침 위에 말모양장식등이 확인되었는데, 모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안패, 거울, 목제칼과 함께 충분히 여성임을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발굴당시(1990년)과 보고서가 출간된 해(1994년)에는 인골분석에 DNA분석은 그 때까지 고고학에 도입되기 전이기 때문에 단순히 뼈를 보고 여성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학자들은 보고 당시에는 바지를 입은 소녀전사정도로 생각했다.

 

둘 다 남성인 것이 밝혀졌 진 덕에 소년의 목침 위에 있던 산양모양 조각도 용도가 분명해 졌다. 모자장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5.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의 모자장식 부속품, 산양장식. 뿔이 빠진 흔적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던 유물은 투부라고 불리는 전투용 도끼, 활과 화살통, 목제 목걸이와 귀걸이, 허리띠 버클과 고깔모자 등이다. 하지만 용도는 같지만 전부 모양이 달랐다. 하나만 빼고,. 그것은 매듭이다. 매듭은 두 관에서 출토된 유물이 거의 같은 모습이라고 설명되었다.

 

 

둘은 어떤 연유로 같은 무덤에 묻히게 되었을까? 아버지와 아들이 아니라면.,,

 

참고문헌

피리펜코, 트라페조프, 폴로시막 2015, Пилипенко А.С., Трапезов Р.О., Полосьмак Н.В. Палеогенетическое исследование носителей пазырыкской культуры из могильника Ак-Алаха-1 (Горный Алтай) // Археология, этнография и антропология Евразии, издательство Изд-во Ин-та археологии и этнографии (Новосибирск), 2015, том 43, № 4, с. 144 — 150(피리펜코, 트라페조프, 폴로시막 2015,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확인된 파지릭문화인의 고인류학적 분석)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는 기원전 9세기 시베리아, 기원전 8세기에 흑해북쪽에서 이른 시기의 유적이 발견된다. 스키타이 문화의 개괄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세히 설명해 드릴 예정이다. 

우리가 현재 살피고 있는 스키타이문화의 남성전사는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하고 있는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발견되었다. 앞서 설명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와 같은 시대의 인물로 평가된다. 얼음공주는 기원전 4세기 혹은 기원전 4세기중반 정도에 죽었다.

 

우리는 어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관이 2개라는 사실을 알았다.

통나무관에는 누가 있었을까?

남성전사라고 했으니, 한 명은 남성전사일 테고, 그럼 다른 한 명은....?

사실 발굴할 당시에는 16세의 여성으로 판명되었다가, DNA분석에 따라서, 남성으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약간 논란은 있지만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일 가능성이 큰데, 좀 더 결과가 필요하다(필리펜코 외 2015). 이것이 이 무덤에서 뒤늦게 밝혀진 진실이다. 

 

그래서 최초로 발굴할 때는 여성이라고 생각했던 통나무관은 1호, 남성이라고 생각했던 통나무관은 2호라고 명명되었다(그림1).

오늘은 곡절 끝에 남성으로 알게 된 15~16세 유로포이드 소년의 통나무관을 들여다 보기로 하자(그림 1-1).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왼쪽은 남성소년, 오른쪽은 남성중년, 왼쪽 관의 주인공이 남성이라는 사실은 2015년에야 알려졌다. 1990년 발굴하고 뼈를 토대로 한 인류학적 분석에서는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DNA분석으로 15세 가량의 소년임이 2015년에 밝혀지게 되었다. 

 

소년의 통나무관은 아버지의 통나무관보다 약간 작다는 것은 어제 설명했고, 이 통나무관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 소년은 하늘을 바라보고 눕지 않고, 오른쪽 어깨를 바닥으로 해서 옆으로 살짝 누웠다. 머리아래에는 35×19.5×7cm의 목침이 놓여 있었다. 목침에는 새머리모양의 목제장식이 남아 있었는데, 펠트제 모자를 썼던 것으로 추정된다. 펠트는 이미 없었다. 옆의 통나무관에 있던 남성과 비슷한 스타일의 모자를 썼을 것이다. 세 갈래로 땋아 묶은 머리단이 남아 있다. 귀걸이는 목제 위에 금박을 입혔는데, 한 개만 확인되었다(그림 2-2, 3). 목걸이도 목제인데, 두 마리 늑대가 꼬리를 내리고 마주보는 장식이 압으로 붙인 것이다. 목 뒤쪽으로는 청동으로 연결해서 만든 제품이다(그림 2-1.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 남성 소년의 목걸이(목제+청동)와 귀걸이(목제+금박)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 남성 소년의 귀걸이

 

가슴부분에는 꼬은 끈을 5개를 4개의 갈래로 묶어서 만든 유물이 나왔는데, 거의 똑같은 것이 아버지의 무덤에도 출토되었다(그림 4). 대퇴골 근처에는 34점의 자안패(그림 5)와 2점의 목제 둥근단추와 네모꼴단추가 확인되었다. 네모꼴 단추 가운데 구멍이 있는 것은 허리띠의 부속품이다(그림 6).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의 매듭

 

그림 5.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자안패

 

그림 6.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의 단추

 

오른쪽 발 근처에는 철제 투부(전투용 도끼)가 확인되었는데, 손잡이는 목제이다(그림 7). 허리춤 근처에는 청동거울이 발견되었는데, 가죽으로 된 쌈지에 담겨 있었다(그림 8). 오른쪽 엉덩이족에는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목제 칼집에 넣은 철제 단검과 가죽끈이 발견되었다. 왼쪽 엉덩이에는 화살통에 붙어 있던 화살집 장식통이 목제로 제작된 채 놓여 있었다. 멧돼지와 표범이 싸우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그림 9). 그 근처에는 7개의 화살촉과 화살대도 확인되었다.

소년은 붉은 색으로 만든 바지를 입고 있었고, 엉덩이뼈와 다리뼈 부근에서 흔적만 남아 있었다. 신발에는 펠트로 만든 부츠를 신고 있던 흔적만 남아 있지 상태는 좋지 않았다.

또 무덤에는 파지릭문화에서 매우 드문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목제 칼이다. 길이 20cm가량으로 한쪽은 둥글게 처리되었고 다른 한쪽은 매우 정확하게 잘라졌다. 안쪽으로는 길이 19.5cm의 홈이 길이방향으로 파져 있었다. 목제칼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고, 손잡이는 남아 있지 않은 모습이다.

쿠바레프는 울란디르크 유적의 출토품에서 작은 크기의 칼이 5점 확인된 것을 예로 들면서 이 유물이 크기가 작은 것에 주목했다. 칼은 규칙적은 크기로 대부분 길이가 22.5cm가량인데, 유물은 20cm가 채 안되는데 이미테이션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무덤 부장을 위해서 모방품으로 제작된 유물일 가능성을 제기했다(쿠바레프 1987).

그렇다면 이 소년의 관에는 실제 무기(화살과 화살통)와 부장용 무기(목제 칼)가 함께 묻힌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7.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철제 투부

 

그림 8.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거울과 가죽주머니, 사진의 중앙에 에 작은 거울과 옆에 놓인 주머니가 이 유적의 출토품이다.

 

그림9.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화살통집 장식.

 

그림 10.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목제 칼

 

소년의 관은 가장 나중에 수습되었는데, 소년의 관을 모두 정리하고 통나무관과 무덤방을 모두 들어내자 무덤의 바닥을 정리 할 때 썼던 도구로 보이는 두터운 막대기가 놓여 있었다. 무덤팔 때 땅을 다지던 도구였다.

다시 말하면 무덤에서 가장 먼저 들어간 유물은 무덤을 썻던 도구이다. 무덤을 만들던 도구가 무덤안에서 그대로 나오는 것은 파지릭 유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닥을 다진 도구는 어디에도 그림과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았는데, 매우 궁금해지는 건 왜일까?

소년의 화살통과 화살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참고문헌

피리펜코, 트라페조프, 폴로시막 2015, Пилипенко А.С., Трапезов Р.О., Полосьмак Н.В. Палеогенетическое исследование носителей пазырыкской культуры из могильника Ак-Алаха-1 (Горный Алтай) // Археология, этнография и антропология Евразии, издательство Изд-во Ин-та археологии и этнографии (Новосибирск), 2015, том 43, № 4, с. 144 — 150(피리펜코, 트라페조프, 폴로시막 2015,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확인된 파지릭문화인의 고인류학적 분석)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쿠바레프 1987,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라디르카 유적)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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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무덤방은 통나무 38기가 놓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자작나무 잎이 4겹으로 덮여 있었는데, 부분적으로 관의 밖으로도 이어졌다(그림1). 이를 벗기자 14개의 통나무가 드러났다. 직경은 16~22cm, 길이 3.3m가량이다. 이곳에도 8개의 통나무는 절개된 것을 사용했는데, 1차 무덤 덮개와 마찬가지로 다른 용도(집)로 사용하다가 뜯어내서 재사용된 것이다(그림2).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1차 무덤방의 덮개

 

 

그림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무덤방 1차덮개

 

2차 무덤방은 직경 15~20cm의 통나무 4개를 쌓아 올렸다. 2차무덤방의 바닥은 무덤방 속의 얼음을 다 녹인 후, 그 내부의 관과 부장품을 수습한 후 확인가능했다. 하지만 무덤방의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서 먼저 설명한다. 바닥은 13개의 통나무를 깔아서 만들었는데 무덤안쪽으로만 매끄럽게 손질했다. 1차 무덤바닥은 통나무에 홈을 파서 끼워넣어 물샐틈없이(그림 3-1) 마무리 되었다. 끼워 넣는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는데, 씨실과 날실을 짠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의 구조물이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1차와 2차 무덤방의 덮개를 제거하고, 말무덤, 관과 부장품을 드러낸 후의 무덤방의 모습

 

 

1차무덤방과 2차무덤방 사이의 동쪽벽에는 무덤방 사이를 지지하기 위해서 수직으로 통나무릴 세워놓았는데, 1차무덤방의 바닥에 끼워넣어서 제작되었다. 높이 1.2cm, 직경 20cm가량의 통나무이다(그림 4).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1차와 2차 무덤방 사이 수직으로 세워진 통나무

 

2차무덤방안에는 얼음으로 가득찼다(얼음으로 가득 찬 사진은 없었는데, 앞의 포스팅에서 무덤구조를 설명하면서 단면도를 공개했는데, 얼음이 꽉 차인 모습이 간단히 표현되었다). 통나무 관 2개가 뚜껑이 닫힌 채로 놓여 있다. 첫 번 째 관은 2.7m, 두 번째 관은 2.6cm이다. 통나무 관은 나무 쐐기를 써서 단단하게 봉쇄되었다. 머리부근에 5개, 발 근처에 1개, 두 번째 관은 머리와 발에 각각 1개의 구멍이 있다. 두 번째 관의 뚜껑에는 손잡이가 있었다. 무덤방 안이 얼음으로 가득차서 통나무관이 변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나무관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다(그림 5).

무덤방의 동북쪽에는 음식이 담긴 그릇이 있는데, 항아리형 토기 2점은 액체를 담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이고, 다리가 짧고 음식을 담는 부분은 편평한 목제 쟁반 2점, 바닥이 둥근 목제 그릇 2점, 동물뿔로 만들어진 그릇 2개가 확인되었다. 각배는 얼음이 녹으면서 산산히 부서졌다. 목제 쟁반위에는 양의 꼬리뼈와 새끼양의 대퇴골이 놓여 있었는데, 이 부위의 고기를 놓은 것이다(그림 5).

 

그림 5.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1차와 2차무덤방의 덮개를 제거하고 얼음을 녹인 후 2차 무덤방의 내부

 

 

오늘은 무덤의 구조 중에 무덤방의 1차와 2차 덮개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통나무의 외관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 무덤을 발굴한 폴로시막은 무덤방이 얼음으로 차 있지 않았다면 통나무 관이 완벽하게 남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아이러니 하지만, 그 얼음 덕분에 통나무관도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통나무관의 시신은 미라처리는 되어 있지 않지만 주인공의 정보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앞서 필자가 링크해둔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의 유투브 공개영상에는 나레이션에서 그런 멘트가 있다...‘냉동된 무덤’‘’얼마나 드문존재인지,, 발굴하기는 어려웠지만, 그 무덤을 여는 순간 ‘과학 혹은 고고학’이 내게 오는 순간이었다고...현재 우코크 지역은 원주민들과의 갈등으로 발굴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한다....어떤 계기가 생겨서 우리나라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으면 그런 계기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에서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살펴보고 있다. ‘스키타이문화’라고 불리는 초원의 철기시대문화로 스키타이문화에서도 알타이 산맥에 위치한 문화를 파지릭문화라고 한다. 이 유적은 이 문화의 일원이다.

 

‘얼음공주’이라고 알려진 여성미라가 나온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이 여성의 직업과 관련된 유물을 설명한 바 있다. 여러 유물이 있지만 거울과 그녀의 목걸이는 상반된 특징이라고 했다. 거울은 다소 소박했고, 목걸이는 최상급 무덤이라고 하는 파지릭 유적에서 나온 목걸이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두 유물은 목제라고 하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물론 청동과 금박을 덧입혔지만.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이 여성의 무덤에는 없었던 유물이 말무덤을 상세하게 쳐다보셨다면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말무덤에서 가장 상부에 튀어나와 있던 유물 중에 하나는 방패이다(그림 1).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무덤방의 1차덮개 노출 후, 현재 보이는 장면은 말무덤을 덮은 흙과 일부 삐져나온 유물 및 2차 무덤방의 덮개와 무덤방의 부속품들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설명할 것이다.

 

오늘은 그  방패에 대해서 약간 살펴보고자 한다.

 

이 방패가 말 무덤에서 확인되는 이유는 평소에 안장에 달았기 때문이다. 현재 파지릭문화에서는 가죽제에 나무가 달린 것과 목제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방패는 목제인데, 투엑타 유적의 1호분, 타산타 유적 출토품과 생김새가 유사해서, 가죽방패를 목제로 모방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크기는 27.5×38cm이다. 방패의 손잡이 면은 매끄럽게 마연되었고, 문양이 새겨진 면에는 선을 그어서 문양을 표현했다. 가장 바깥의 테두리는 위아래는 2.5cm, 양쪽은 1cm의 여백을 두고 그 안에 28개의 선을 그어서 표현했는데, ‘×’자 모양이다(그림2).

그림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방패, 마구옆에서 출토된 목제 방패

 

투엑타 유적과 타산타 유적에서도 목제로 제작된 방패가 확인된 바 있다.

파지릭문화가운데서 가장 먼저 방패가 확인된 것은 투엑타 1호분의 것이다(그림 3). 유적을 발굴한 후 루덴코는 목제방패는 가죽방패에 나무막대기를 댄 것과 같은 형태여서, 알타이 인들은 아마도 가죽방패를 사용했다고 확신했다(루덴코 1960).

투엑타 1호 출토품은 42×50cm(그림3의 왼쪽), 46×50cm(그림 3의 오른쪽), 타산타 유적의 1호분도 44×35cm이다(그림5-9).

타산타 유적의 두 유물은 네모방향으로 가장자리를 두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 안을 수직으로 표현한 것은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것과 다르다. 그리고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의 남성전사의 것이 약간 작다.  또한 투엑타 유적의 출토품은 네모틀에 그 안은 가죽을 나무막대기에 꼬아서 만들고 틀에 넣어서 만든 것이다(그림 3, 4).

 

그림3. 투엑타 유적 출토 방패, 너비 1cm가량의 가죽과 37개의 나무막대기에 꼬아서 방패 앞부분을 장식. 가장자리에는 턱이 있음. 원래는 이정도만 남아 있었으나 가죽의 원래모양을 복원(그림 3)했다.

 

그림4. 투엑타 유적 출토 방패 복원도, 필자는 1960년에 나온 책이라고 믿기지가 않았다.

 

 

 

그림5. 타산타 유적 출토 방패,  9번 유물이 방패이다.

 

 

타산타 유적을 발굴한 쿠바레프(1987)는 소형과 목제의 방패는 무덤에 매납하기 위해서 만든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서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을 발굴한 폴로시막은 고렐리크(1987)의 의견을 인용했다. 고렐리크는 파지릭 문화에서 출토되는 방패는 모두 작은데, 보병용 전사의 것이라면 가능하다. 그가 이렇게 이야기 한 이유는 솔로하(흑해 북쪽, 지금의 우크라이나 국경내)라고 하는 유적의 유물 때문이다.

솔로하 유적에서 출토된 크기 12.6×10.2cm의 황금 빗이다. 유적의 연대는 기원전 5~4세기 가량으로 평가된다. 세 명의 전사가 싸우는 장면을 가장 꼭대기에 배치해서 조각했다. 중앙에는 말탄 전사, 오른쪽과 왼쪽에는 보병의 전사가 싸우는 장면이다. 그 중에서 네모 방형의 방패를 든 이가 스키타이 전사자이다(그림 6~8).

 

그림 6. 에르미타주 소장, 솔로하 유적에서 출토된 빗, 네모방패를 들고 있는 보병을 스키타이 전사로 본다.

 

그림 7. 에르미타주 소장 솔로하 유적에서 출토된 빗, 세부사진

 

그림 8. 에르미타주 소장 솔로하 유적에서 출토된 빗, 스키타이 남성전사의 다른 면

 

 

참고문헌

루덴코 1960,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쿠바레프 1987,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라디르카 유적)

고렐리크 1987, Горелик М.В. Вооружение народов Восточного Туркестана // Восточный Туркестан в древности и раннем средневековье. М.: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95. С. 359-430.(고렐리크 1987, 투르케스탄 동부 민족의 무기에 대해서)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초원을 이동하며 살던 스키타이 문화중에서 알타이 산맥 부근에서 살아움직였던 파지릭문화의 유적 가운데서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살피고 있다.

우리는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의 무덤구조를 보았는데, 앞써 포스팅한 ‘얼음공주’무덤과 달리 이 무덤속에는 ‘말무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했다.

말무덤을 살피기 위해서는 우선 무덤방을 덮은 천장을 보아야 한다.

 

깊이 1.8m에 이르자 무덤방을 덮을 정도의 규모로 무덤 천정부에 해당하는 목제들이 드러났다. 무덤방의 덮개는 집을 해체해서 얻어낸 낙엽송 통나무들이다. 어떻게 알 수 있었냐고?

통나무 2개가 이어 붙은 것도 있고 이유없이 모서리에 홈이 남아 있기도 했다(그림 1). 이런 부분은 무덤의 무덤방을 만드는데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통나무의 직경은 15~20cm가량으로 통나무 38기가 놓여있었다. 이제 까지 주거지의 통나무를 무덤 천정부로 사용한 예가 없다(앞에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1993년 발굴)에서도 비슷한 설명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크 알라하 1유적은 1990년에 먼저 발굴되었기 때문에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1차 천장부, 그림에서 가장 위쪽인 부분의 통나무를 살펴보면 홈이 파인채로 통나무가 놓인 것을 알 수 있다.

 

 

무덤의 동북쪽에는 나무로 만든 덮개가 없고 큰 돌과 흙으로 채운 말무덤이 있었다. 말무덤은 파지릭 유적의 1호, 4호, 5호분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말무덤은 1차 무덤방을 통나무로 두르고 그 안에 말무덤을 설치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말무덤의 크기는 3.7×0.9m구역 안에 9마리의 말이 부장되었다. 모든 말은 투부라고 하는 쇠도끼로 말의 이마를 내리쳐서 죽였는데,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말은 두 층으로 묻었다. 7 마리는 머리가 서쪽이고, 2마리는 동쪽으로 향했는데, 말 그대로 빽빽하게 묻었다. 말의 뼈를 분석한 결과 말은 봄에 묻혔다(그레브네프·바실레프 1994).

 

말은 9마리이지만 말을 장식하고, 말에 착장한 마구는 모두 7벌이 확인되었다. 5벌은 말에 채워졌고, 2벌은 그 옆에서 확인되었다. 모든 마구는 목제로 제작되었다. 그 중 네 마리에는 철제로 된 재갈이 채워진 채로 확인되었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말무덤, 그림1에서 나무로 덮은 곳이 아닌, 돌과 흙으로 덮인 곳의 아래부분에서 말무덤이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그레브네프·바실레프 1994, Гребнев И.Е., Васильев С.К. Лошади из памятников пазырыкской культуры Южного Алтая / Приложение // Полосьмак Н.В.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Новосибирск: Наука, 1994. С. 106-111.(그레브네프·바실레프 1994, 알타이 남쪽의 파지릭문화에서 출토된 말)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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