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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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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 달이 넘게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우육고원에 있던 아르잔-2 유적을 살펴보았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유적은 다시 2500년 전 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일명 ‘얼음공주’의 몸에 문신을 남긴 같은 타투이스트가 이 남성의 몸에도 타투를 남겼을 것으로 생각한다. 남성 미라의 무덤이다.

 

처음부터 이 유적을 소개하지 않은 이유는 사진 자료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문신한 3인을 모두 소개해 드린다는 목적에서 간략하게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앞서 문신한 미라가 얼음공주와 파지릭 2호분의 남성 외에 베르흐 칼쥔 II 유적이 있음을 이미 말씀드린 바 있다. 사실 미라와 문신은 상당히 높은 계급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그 산통을 깬 유적이 바로 이 유적이다. 그다지 많지 않은 유물이 출토되는 직업은 군인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남성이 미라로 제작되었고 문신(아래그림)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미라’가 스키타이 문화에서 모든 무덤유적에서 확인되는 것도 아니고 현재는 알타이와 중국 신강성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에 미라가 된 사람들을 일반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비록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소략하더라도.

 

파지릭 유적의 2호분과 아크 알라하-3 유적의 미라에 비해서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남성문신은 간단한 편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에 필자가 아침마다 듣는 뉴스공장에 타투이스트가 나왔는데, 문신비용은 시간당 계산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복잡하고 문신의 너비가 넓을수록 많은 시간이 드니 비용이 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타투이스트가 가장 몸값이 높다는 이야기도.

 

관계없어 보이지만,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남성무사 어깨에 새겨진 문신도 앞의 2명보다는 간단한데, 문신 계급론에 대한 아쉬움을 풀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세 명의 미라는 모두 같은 타투이스트가 새겼을 것이라고 한다. 필적도 감정을 할 수 있듯이 그림도 누가 그렸는지 감정할 수 있다. 문신도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도 러시아 유학 당시에 잠깐 문신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발목같은 곳에, 러시아여성들이 많이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해서다. 머 그러다가 말았지만...

 

암튼 잠시 잊고 있던 얼음공주 생각도 해보고,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남성과는 어떤 관계인지 실마리가 있는지도 알아 보면 재미있을 듯 하다.

사실 아무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베르흐 칼쥔II유적의 남성미라

 

 

참고문헌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외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투바의 초기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인 아르잔-2호는 무덤방 5호 주인공 남녀의 무덤이자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사람의 장례공간이었을 것이다.

 

아르잔-2호는 매장주체부의 나무방에 사용된 나이테를 분석해서 통계분석 결과 기원전 671~602년에 유적이 축조되었다. 그런데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절대연대 측정방법은 만년 이하의 자료는 탄소연대측정법이다. 아르잔-2호에서 남아 있는 유기물질 가운데 목제, 직물, 가죽, 펠트, 식물류 등을 샘플 채취해서 그라니겐, 웁살라와 애리조나 등지 여러 곳에서 연대분석을 했다. 그런데 탄소연대의 결과 이 유적은 기원전 790년~540년 사이에 존재했다고 한다( A.Yu. Alekseev 외 2002).

 

탄소연대의 결과에 따르면 이 무덤의 장례식을 250년간 행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주인공 남녀를 위해서 200년이 지나서도 계속 이 무덤을 축조하고 있었다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 사람이 높은 지위의 사람이었다면 이 사람의 권력은 다른 사람에게 이양되었을 것이고 권력은 계속 어떤 형태로든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200년 넘게 얼굴도 모르는 부부를 위해서 무덤을 계속 축조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필자는 이 경우는 나이테분석법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아르잔-2호에는 다행히 주인공 남녀의 뼈가 남아 있었다.

주인공 남성은 키가 170cm 정도이고 현미경 검사를 통해서 살펴본 결과 뼈에서 종양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악성 전립성 종양이 뼈 전체에 퍼졌다. 전립선 암이 주인공 남성의 직접 혹은 간접적 사망 원인이다.

 

주인공 여성의 키는 162cm 정도이다. 두개골에서 매우 작은 양성 종양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나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성의 윗 앞니(upper incisors)에 좁은 홈이 있었는데, 여성이 3세 때 형성된 것이다. 아마도 이 시기에 매장된 사람은 영양부족을 경험했거나 장기 질병을 겪었을 것이다. 여성의 팔다리 골격과 척추관절의 마모 징후가 확인되지 않아서, 뼈로서는 사망원인을 진단할 수 없었다.

 

아르잔-2호에서 심한 영양실조의 흔적이 남은 인골이 또 있는데, 22호 여성이다. 20~21세의 여성으로 두 어깨의 표면에 근육이 매우 발달했던 흔적이 있는데, 특히 오른족 쇄골에만 힘줄이 발달해서 물리적 변형이 있었던 것이 나타났다. 이 여성은 오른손 잡이로 키는 161cm로 큰 병은 없었다. 사망 몇 달 전에 양쪽 앞니가 모두 없어졌고, 나머지 치아에서는 가로줄무늬가 확인되는데, 어린 시절에 영양 부족을 경험했거나 혹은 심하게 아팠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치아에 남은 스트레스 흔적은 생후 3~7년 동안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여성은 과도하게 발달했던 오른쪽 쇄골의 근육 흔적으로 보아서 여성군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죽은 원인은 머리에 난 구멍 때문이다. 가장 먼저 난 상처는 정수리 부근에 난 것으로 서 있는 여성을 체칸으로 가격했고, 그 이후에 등이 땅에 닿인 채로 넘어진 여성을 세 번에 걸쳐서 가격했을 것이다. 두 번째 가격은 왼쪽 눈 위에 나 있는 흔적이다.

 

22호 여성관련 포스팅-->

 

잔혹한 장례식의 흔적...

강의할 때 늘 시작은 지난시간에 했던 것을 상기하면서 들어가는 편이다. 특히 지난 슬라이드가 끝나지 않았을때 그렇다. 며칠간 2700년 전 시베리아의 우육고원에 있던 아르잔-2 유적의 무덤방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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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에 묻힌 남성은 50~59세이다. 그의 치아 상태는 고기와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한 흔적이 남아 있다. 키는 171cm가량이고, 팔과 다리 뼈에 근육자국이 남아 있어서 그의 근육이 매우 강했음을 알 수 있다. 쇄골에 깊은 근육자국이 남아 있다. 왼손잡이 경향은 있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허리, 손, 척골, 왼쪽 경골 등에 부상이 있었으나 치유된 흔적이 남아 있다. 죽기 전에 그는 수년간 관절염으로 고생했다. 이는 말을 타거나 이와 관련된 활동 때문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24호 남성은 정수리 오른쪽에 큰 구멍(48×46mm)이 나면서 사망했다. 짧은 거리에서 내려 찍은 흔적인데, 무기에 의해서 제거된 두개골 뼈가 두개골 안에서 확인되었다.

 

그림1. 아르잔-2호 무덤방 24호 남성

 

스키타이 인들이 말을 오랫동안 타면서 생긴 병에 대한 이야기는 히포크라테스가 이미 언급한 바 있 바 있다.

 

2020/03/0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히포크라테스가 본 2500년 전 스키타이 사람

 

히포크라테스가 본 2500년 전 스키타이 사람

키르기스스탄의 송쿨. 해발 3000m, 7월 모습 스키타이 문화에 대한 기록을 남긴 이로 헤로도투스를 꼽는다. 하지만 그의 기록은 실제로 보거나 방문해서 알아낸 기록이라기 보다는 전해들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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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기원전 5세기 스키타이 사람의 병(病)

 

기원전 5세기 스키타이 사람의 병(病)

러시아 스키타이문화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은 8살 남자아이의 무덤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확인된 평균수명은 지금보다는 현저하게 낮다. 여성은 29.6세, 남성은 38.5세 라는 점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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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와 24호 모두 무덤의 경계벽 아래에 묻힌 사람들이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살해된 사람들로 장례식 행위와 관련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남성의 인골에서는 영양실조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 22호 여성과 주인공 여성에게는 어릴 때 영양실조의 흔적이 보인다는 점이 매우 궁금하다. 22호 여성이야 일반 군인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주인공 여성 조차 영양실조였다니. 물론 사회적 여건 때문에 그럴 수 있었겠지만, 24호 남성과 주인공 남성에게는 그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는 점이 그렇다.

 

아르잔-2호는 다행히 인골이 남아 있어서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했고, 여러분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A.Yu. Alekseev, N.A.Bokovenko, Yu. Boltrik, K.V.Chugunov, G.Cook, V.A.Dergachev, N.Kovaliukh, G.Possnert, J.van der Plicht, E.M.Scott, A.A.Sementsov, V.Skripkin, S.Vasiliev and G.I.Zaitseva. Some problems in the study of the chronology of the ancient nomadic cultures in Eurasia (9th - 3rd centuries BC) // Geochronometria - Journal on Methods and Applications of Absolute Chronology. Vol.21. pp 143 - 150, 2002

М. Шульц и др 2017, Палеопатолог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297-301c.(슐비츠 외 2017, 「고인류학 자료에 대한 연구」,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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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공화국의 우육 고원에 위치한 아르잔-2호는 한 무덤의 경계벽 안에 무덤 26기를 비롯해서 장례식에 관련된 여러 유구(퇴장지), 제단, 사슴돌 등이 발견된 곳이다. 의례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례복합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곳은 직경 80m에 이르는 거대한 제사장소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가장 이르다고 보는 아르잔-1호 유적보다는 늦지만 그래도 앞서 살펴본 2500년 전 알타이의 무덤 보다는 이르다. 초기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으로 보고 있다.

 

우육고원에 위치한 초기스키타이문화는 우육문화라고 하는데 일종의 지역명칭이다. 기원전 5세기대의 스키타이 문화인 파지릭문화와는 무덤구조가 다르다. 말과 함께 매장한다는 기본 컨셉은 이 시절에도 있었지만 실제 무덤구조는 다른 것이다.

 

심지어 아르잔-1호와 아르잔-2호도 같은 동네의 무덤이지만 시간차에 따라서 사회도 변했을 것이고, 무덤도 변했다. 무덤의 매장주체부(시신을 안치하는 곳)가 지상에서 지하로 들어갔다는 점이 가장 크고, 무덤을 축조하는 재료, 구조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르잔-1호는 도굴이 심해서 아르잔-2호와 유물의 비교는 쉽지 않지만 있는 유물로 비교해도 특히 마구의 변화가 심하다.

 

유물 가운데서 동물문양장식에도 변화가 있는데, 맹수의 자세가 눈에 띄게 변했다. 아르잔-2호에서는 아주 작지만 그리핀이 확인되기도 했다.

 

장례식에 사슴돌을 이용했다는 점은 같다고 볼 수 있으나 그 내용물에는 차이도 있다. 특히 낙타가 이 시점에 등장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낙타털을 이용한 직조물은 파지릭문화의 유적에서 확인된 바 있는데 이 보다 더 이른 시점에 낙타가 이 지역에서 알려졌다는 것을 점판암 뿐만 아니라 주인공 여성의 머리장식에서도 알 수 있다.

 

주인공 여성은 30~35세로 사후에 두개골의 덮개 윗부분과 아래턱 오른쪽 절반이 날아갔다고 한다. 여성의 키는 무릎을 굽힌채 측정했을 때 대략 160.3cm이다.

남성은 40~45세 혹은 50세 정도 일 수도 있다고 한다. 남성의 두개골은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서 두개골의 왼쪽 절반만이 확인되었다. 치아에 사후 손상이 매우 심했다고 한다. 무릎을 굽힌 채 측정한 키는 166.3cm인데, 거의 170cm에 달했을 것으로 본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주인공 남녀의 두개골, 위-남성, 아래-여성

 

형질인류학적으로 보았을 때 미누신스크 분지에 분포했던 타가르 문화(스키타이문화에서 미누신스크 분지에 위치한 문화)와 몽골 서부의 울란곰 문화(역시 스키타이문화의 지역명칭)와 관련이 깊다고 볼 수 있다. 울람곰문화는 이 유적 보다 늦은 기원전 5~기원전 3세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시베리아 투바에서 몽골 서부로 문화가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투바에서 확인되는 형질인류학적인 특성을 거슬러 올라가서 찾는다면 남부시베리아의 청동기 문화인 아파나시에보 문화에서 확인되는 유로포이드와 관련이 있다. 특히 여성은 현재 중앙아시아의 민족과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치키세바).

 

그래서 아르잔-2호의 무덤방 5호의 주인공 남녀를 복원한 모습은 아래와 같다.

 

그림 2. 아르잔-2후 무덤방 5호 주인공 여성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주인공 남성

 

시베리아에서 인류학적인 특성에 대한 논란 혹은 논의의 시작은 구석기시대부터이다. 네안데르탈인이 알타이에서 있느냐, 없느냐로 계속 논쟁을 해왔고, 데니소바에서 화석이 발견되면서 새로운 제3의 인류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2019/04/0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시베리아/구석기시대] - 동굴 속의 여자아이, Homo sapiens altaiensis

 

동굴 속의 여자아이, Homo sapiens altaiensis

앞서 데니소바동굴유적을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검색을 참 많이들 하시는 듯 해서....조금더 정보를 올린다. 유적의 위치 및 내가 알고 가진 정보.. 데니소바인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 알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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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시베리아/구석기시대] - 데니소바 인, 제3의 인류

 

데니소바 인, 제3의 인류

시베리아의 구석기시대 연구에서 가장 쟁점 중에 하나는 과연 시베리아에 무스테리안 석기문화가 있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무스테리안 석기문화는 유럽의 중기 구석기시대 문화를 일컷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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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질인류학은 뼈를 정밀하게 계측해서 그 생김새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DNA분석법이 발견되기 전에는 대단히 유용했으나, 현재는 DNA 분석법이 있다. 그러나 또 문제점이 고고자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DNA방법도 유용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문제점을 필자가 지적한 바 있다. 그래서 반드시 co-work이 필요한 분야이다.(그렇다고 위의 형질인류학적 분석이 틀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좀 더 정확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미 연구가 진행중일 수도 있다)

 

2018/01/16 - [북방항로 따라 역사기행] - 한민족의 기원과 DNA연구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몽골로이드와 유로포이드가 함께 확인된다.

우리나라에는 감정없는 AI판사가 필요한데, 비슷한 분야가 인류학이다. 형질인류학 보다는 DNA분석법이 더 정확할 것이다.

 

참고문헌

Т. Чикишева , Палеоантропологические материалы,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257-296c.(치카세바 2017, 「고인류학 자료에 대한 분석」,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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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년 전 시베리아의 무덤 혹은 의례복합체 였던 아르잔-2호 무덤경계석 안에는 26기의 무덤이 확인된다. 주인공의 무덤방처럼 2인이 매장된 곳은 20호, 25호, 14호 등이 있었으나 모두 남성 무덤이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한 구덩이 안에 2명을 묻은 경우는 14호 뿐이다. 20호는 인골 1호 이후에 벽석을 새롭게 설치해서 인골 2호를 넣었다. 두 인골의 부장품 차이가 있어서 같은 입장에서 들어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25호도 20호와 비슷한 설정이다. 20호에는 인골 1기 외에 손만 들어갔다.

 

20호와 25호는 주인공 남성의 무기세트와 비슷한 갖춤새의 유물이 부장되었다. 이들 다인장 무덤은 모두 남성무덤이다. 하지만 주인공 여성이 지녔던 물건인 목제 그릇이 출토되기도 했다.

 

여성 3명이 매장된 무덤도 발견되었다. 13호이다. 모두 3명의 여성이 한 무덤 구역 안에 두 칸에서 확인되었다.

 

무슨 소리냐고?

 

우선 그림 1을 보시면 돌상자 주변을 둘러서 무덤구덩이를 지지하고 있는 충전돌은 한 구덩이 안에서 한 번에 지지하고 있어서 하나의 무덤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무덤 바닥의 높이차이(그림 2-2)도 있고, 무덤벽석은 13B를 먼저 만들고 13A를 후대에 만들었다(그림 2-3)는 점이 확인된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13호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13호.

 

그래서 13호는 애매한 무덤 번호로 나누어 놓았다. 완전히 별개의 무덤으로 보기도 힘들고 같은 무덤으로 보기도 힘든 것이다. 13B는 20~25세 여성, 13A 중 좌측 인골은 18~19세, 우측 인골은 45~50세 여성이다.

 

아르잔-2호의 모든 무덤에서 확인되는 인골은 같은 자세로 매장되었다. 무릎을 구부리고 한쪽으로 누운자세이다. 필자가 예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어머니 뱃속의 자세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시베리아에서 이런 자세는 신석기시대 무덤부터에서 확인된다.

 

13A 무덤의 18세 여성은 청동칼(그림 3-1), 청동송곳(그림 3-4), 청동바늘(그림 3-3), 청동제 거울(그림 3-7), 화살촉(그림 3-2), 목제 빗(그림 3-6), 석제 펜던트(그림 3-5), 각 종 구슬(그림 3-8,9,15~19)과 함께 부장되었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의 13A 18세 여성

 

 

같은 무덤의 45세 여성은 청동칼(그림 5-1), 골제 칼집 장식(그림 5-9), 청동제 송곳(그림 5-2), 청동제 거울(그림 4-7), 황금 귀걸이(그림 5-1,2), 머리장식(그림 5-5,6,7), 목제 빗(그림 4-6), 사슴이빨로 만든 펜던트(그림 5-4,5), 팔찌(그림5-12~17), 머리장식(그림 5-3), 양모로 만든 주머니, 양모로 만든 허리끈, 각 종 구슬(그림 6-1~41)( 터키, 유리, 호박, 루비, 사슴이빨, 섬록암제)이 있다.

 

그 외에도 13A에는 양탄자가 확인되었다.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의 13A 45세 여성의 유물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의 13A 45세 여성의 유물2

 

 

 

 

그림 6. 아르잔-2호 무덤의 13A 45세 여성의 유물3

 

13B여성은 청동칼(그림 7-1), 청동송곳(그림 7-6), 청동제 거울(그림 7-7), 동물뼈제 펜던트(그림 7-5), 황금제 귀걸이(그림 7-2,3), 목제 귀걸이(그림 7-4), 구슬(그림 7-8~24), 직조물이 있었다.

 

 

 

그림 7. 아르잔-2호 무덤의 13B 여성의 유물

 

13호에는 남성의 무덤에는 없었던 목제 빗, 송곳, 바늘, 양탄자 등이 출토되었다. 목제 빗은 주인공 무덤인 5호 여성도 소유했던 물건이다.

 

아르잔-2호 무덤 의례복합체에서는 주인공 무덤방 5호를 제외하고는 남녀가 함께 매장된 무덤방은 없었다. 남성과 여성은 성별이 철저히 구분되어서 매장되었다.

 

아르잔-2호 보다 늦은 시기의 유적인 파지릭 2호, 파지릭 5호도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최상급 무덤으로 알려져 있는데, 남녀가 함께 매장되었다. 물론 시기도 늦고 무덤양식도 차이가 심해서 바로 등가로 비교하기는 좀 그렇지만, 남녀를 함께 매장하는 관습은 생각보다 모두에게 허락된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르잔-2호에서는 여성이 혼자 단독으로 묻힌 경우는 머리에 구멍 4개 난 채 죽임을 당한 22호를 제외하고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 하지 않았던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얼음공주는 매우 특별한 여성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경우의 수가 많아진다면 또 다른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다.

2020/01/3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의 외로운 '얼음공주'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의 외로운 '얼음공주'

이제까지 거의 20여일에 걸쳐서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 중에서도 우코크 고원이라 불리는 지역에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여성미라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얼음공주라고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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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덤방 13호의 여성 3인은 서로 무슨 관계였을까? 

 

 

참고문헌

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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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2호에는 인간과 말이 매장되었다.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서 이른 유적으로 알려졌다.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가장 유행했던 것은 동물문양장식이다. 무기와 마구도 문화권을 서로 묶는 요소지만, 동물문양장식은 무기에도 마구에도 확인되는 요소이다. 아르잔-2호에서는 말 이외에도 돌판과 사슴돌에 새겨진 그림 및 주인공 여성과 남성의 장신구에서 표현된 동물문양 장식을 통해서 말 외에도 산양, 염소(뿔이 두 종류), 낙타, 멧돼지, 호랑이 등이 그들 생활 속에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무덤 경게벽 아래에 유물만 들어 있는 퇴장지에서는 그리핀도 재갈에 표현되어 있었다.

 

아르잔-2 유적 보다 약 200~300년 정도 늦은 알타이에서 인간과 말이 함께 배장되는 문화를 파지릭문화라고 한다.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일종의 지역문화이다. 앞에서 설명한 아크 알라하-3(얼음공주 무덤), 아크 알라하-1 유적, 파지릭 유적 등이 파지릭문화에 속한다. 이곳에서는 한 구덩이 안에 인간과 말을 함께 매장했다.

 

 

그러나 아르잔-1호 뿐만 아니라 아르잔-2호에서는 인간과 말은 한 무덤 경계벽아래에 부장되기는 하지만 무덤 경계벽 안에서는 서로 별도의 공간에 묻혔다. 아르잔-2호에서 말의 흔적을 알 수 있는 곳은 말이 직접 출토된 16호 말 무덤 외에 무덤방 2호의 안장, 퇴장지의 재갈을 통해서 이다. 인간과 말이 직접 함께 한 구덩이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 늘 개밥에 도토리 같은 예외 들이 있다.

 

무덤방 14호이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14호

 

이곳에는 두 명의 남성이 함께 묻혔다. 한 명은 21~25세의 남성이고, 다른 한 명은 45~50세이다. 둘 다 무릎을 구부리고 옆으로 뉘운 자세인데, 45세의 남성이 좀 더 구부린 상태이다. 두 인골은 상당히 밀접하게 붙어있다. 무덤방(1.5×0.7m)은 역시 납작한 판석으로 제작되었다.

두 남성의 허리춤에는 각각 청동칼 한 자루씩이 부장되었다. 상대적으로 어린 남성의 허리에는 가죽집(그림 3-3)과 함께 청동칼이 놓여 있었다. 가죽집에서 청동칼(그림 2-6, 그림 3-2)은 (길이 16.2cm, 너비 3.4cm)꺼내 놓은 상태였다. 다른 남성의 청동칼(그림 2-5, 3-4)(길이 14cm, 너비 1.6cm)과는 약간 다른 형태이다. 손잡이 부분은 없다. 어린 남성의 청동칼?은 청동칼이라기 보다는 새기개?와 같으며, 자루는 없다. 다른 남성의 칼은 손잡이와 함께 주조된 것이다. 장식적인 요소도 있다.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14호 출토유물(4~6)

 

사실 앞에서도 20호 무덤에서 칼 한 자루와 매장된 남성은 발견되었다. 같은 무덤에 들어간 다른 남성은 무기세트를 다 가지고 있었지만 이후에 매장된 다른 남성은 칼 한자루가 전부였다. 25호 무덤은 완전히 같은 사례는 아니자만 20호 손만 들어간 사람 입장에서는 청동칼 한 자루가 전부 였다.

 

그런데 14호 남성 두 사람 무덤에서는 북서쪽 무덤방에서 재갈(그림 2-4, 그림3-1)이 출토되었다. 재갈은 주조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사용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보고서에는 우연히 무덤속에 들어간 것으로 보았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14호 출토유물

 

그런데 정말 무덤 속의 부장품이 우연이라는 것이 있을까?

물론 이 무덤방에 말이 들어갔을리는 만무하다. 무덤방의 크기를 보라.

 

그렇다면 혹시 이 사람들이 재갈을 주조하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너희들이 만들던 재갈을 가지고 가라는 상징적 의미?

 

그래서 더 궁금해지는 것이 무덤방 2호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무덤방과 나무 바닥아래에 숨겨 놓은 안장. 분명히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아르잔-2호 무덤에서 보이기는 마구와 함께 매장된 유일한 무덤은 14호이지만, 20호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두 무덤의 입장은 매우 달랐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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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우육고원에 위치한 아르잔-2호는 단순한 무덤이 아니다. 직경 80m 안에 주인공 무덤을 제외하고도 무덤 25기가 함께 매장되었다.

 

주인공무덤에는 남녀가 함께 매장되었고 검과 칼, 활과 화살촉, 투부가 모두 철제로 제작되었다. 금으로 장식한 것은 덤이다. 주인공 무덤과 비슷한 무기세트가 출토된 곳은 무덤방 20호였다. 시간차를 두고 매장된 두 남성은 먼저 들어간 남성 무덤에서는 무기세트가 확인되지만 검은 없었고 모두 청동제였다. 이 남성은 손잡이가 뿔로 만들어진 목기그릇이 있었다. 목기부분은 없어졌고 손잡이만 확인되었다. 나중에 들어간 남성은 칼 한자루를 제외하고는 유물이 없었다.

 

2020/06/1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2호] - 시베리아의 청동 무기

시베리아의 청동 무기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의례복합체라고 불리는 아르잔-2호에는 주인공 5호의 남녀 뿐만 아니라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그들의 의례에 참가한 여러 사람의 무덤이 함께 하나의 무덤 경계벽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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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와 비슷한 무기세트가 확인되는 곳은 25호이다. 청동제 칼, 투부, 화살촉이 있었다. 청동제 칼은 두 종류인데, 손잡이 부분이 꺽어지는 것(그림1-4과 손잡이가 곧은 것(그림1 –3)이다. 손잡이가 구부러진 것은 끝에 장식이 달려 있다. 손잡이가 곧은 청동칼 주변에는 가죽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칼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칼잡에 달았던 장식(그림1-2)도 청동제이다. 청동제 투부(체칸, 전투용도끼)도 출토되었다. 투부의 자루는 상태가 좋지 않지만 길이 5.9cm 가량이 남아 있었다. 청동제 거울(그림1-1) 및 멧돼지 송곳니로 만든 펜던트(그림2-2), 목제 펜던트 함께 무기류는 손잡이가 곧은 청동칼과 화살을 제외하고는 주인공의 좌측 골반뼈 부근에서 출토되었다. 청동칼은 가죽집에 넣어져서 남성의 우측 팔 부근에 놓여 있었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25호

 

 

화살은 두 곳에서 확인되는데, 남성의 우측 다리 아래에서 8점(그림2-6)이 확인된다. 그 외 7점(그림 2-6)은 남성의 우측 팔 부근(그림 4-4)에서 확인되었다.

 

남성의 머리 부근에서는 목제그릇(그림 2-4)도 확인되었는데, 손잡이가 하나 달린 형태이다. 주인공 여성 및 20호 무덤에서 출토된 것과 같이 손잡이가 아래쪽으로 꺽인 모습이다.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25호 출토품

 

그 외에 남성은 귀걸이와 목걸이 등도 착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25호, 아르잔-2호의 남쪽 경계벽 아래에 무덤이 설치되었다.

 

25호 남성은 28~30세의 남성으로 무릎을 굽힌 채 좌측으로 누워 있었고 머리방향은 북향이다. 무릎은 굽혔으나 팔은 쭉 뻗은 상태였는데, 그 곳에서 화살이 놓였던 것 같다. 무덤방(1.85×1,25m)은 남쪽 경계벽 아래에 깊이 1.3m의 구덩이를 파고 설치되었다(무덤배치도는 여러번 공개한 바 있음으로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남성의 인골 아래에는 아주 얇은 점토가 깔려 있었다.

그런데 남성의 무기류는 대부분 좌측 골반뼈 부근에서 출토되었다. 하지만 . 화살 한 무더기는 팔 부근에서 출토되었고, 손잡이가 곧은 청동칼도 우측 손 부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확인된 것이다. 그 옆에는 25호 남성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뼈가 놓여 있었다(그림 4-4).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25호 남성의 무덤.

 

 

이 무덤방과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었던 무덤방 20호는 인골 1호가 먼저 들어가고 2호는 나중에 들어갔었다. 1호는 무기세트와 함께 많은 유물이 들어갔으나, 2호에게는 칼 한자루만 부장되었다. 무덤방 25호 남성도 무기세트와 함께 부장되었고, 다른 사람의 손뼈도 함께 무덤안에 들어갔다......

 

25호(그림 4)에 매장된 사람은 두 명이었다고 해야 하나?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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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년 전 시베리아의 무덤인 아르잔-2호에는 말을 위한 무덤 시설이 있었다. 무덤방 16호인데, 금속제 마구는 이곳에서 대부분 출토되었다. 사람이 들어간 무덤방에서 마구가 확인된 적은 없다. 무덤방 16호를 제외하고 금속제 마구가 있는 곳은 무덤의 경계벽 아래에 있는 ‘퇴장지’라고 불리는 곳이다. 모두 4곳 혹은 5곳이 있다.

 

퇴장지는 무덤의 북서쪽 구역에서만 확인된다. 별다른 시설 없이 무덤경계벽 사이 혹은 아래좁은 공간에서 유물이 확인되었다.

2호는 2a와 2b로 번호가 두 곳으로 나눠진 것이다. 두 공간에서 나누어서 유물이 출토된다는 가정에서 퇴장지의 번호를 구분한 것인데, 2a(그림 5-1,2)와 2b(그림 5-3~10)가 유물로 보아서 그렇게 관련성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하여간 5공간에서 마구 및 무기가 출토된다.

 

1호 퇴장지에서는 재갈+재갈멈치+굴레장식 및 각종 마구장식이 출토되었다. 재갈 멈치의 양쪽 끝에는 동물문양장식이 있고, 재갈멈치 뒤에 따로 굴레를 달기 위한 고리(그림 1-2,3)가 마련되어 있다. 재갈(그림 2-9)은 재갈멈치와 연결되는 부위의 고리가 사각형이다. 안장을 고정시킬 때 사용했던 벨트에 달았던 벨트장치(그림 2-11,12)과 굴레장식이 있다. 굴레장식은 낙타머리 3점(그림 2-1~3)을 제외하고는 모두 호랑이 모양인데, 오른쪽(그림 3-12~16)과 왼쪽(그림 3-17~21)에 착장했던 유물의 방향이 다르다. 용도(그림 2-5~8, 10)가 정확하지 않은 말과 관련된 유물도 여럿 있다. 대부분 장신구이다. 갈기(그림1-1)와 꼬리(그림1-4)에 달았던 금제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청동제이다.

 

그림 1. 아르잔 –2호 퇴장지 1호

 

그림 2. 아르잔 –2호 퇴장지 1호

 

그림 3. 아르잔 –2호 퇴장지 1호

 

 

그림 4. 1호 퇴장지 출토 재갈, 재갈멈치와 굴레 복원도

 

2A 퇴장지에서는 벨트장식(그림5-1)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청동판(그림5-2)만 출토되었고, 2B에서는 재갈멈치 없이 재갈(그림5 -4)만 출토되었다. 화살촉과 벨트장식(그림5-3)도 있다. 청동제품이다.

 

그림 5. 아르잔-2호 퇴장지 2A와 2B

 

3호에서는 재갈(그림6-2)과 재갈멈치(그림6-1,3) 외에 원뿔모양의 장신구가 출토되었다. 원뿔모양의 청동유물은 굴레에 달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3호 재갈은 재갈멈치와 연결되는 고리가 완전하게 네모이다. 재갈멈치는 양쪽에 수직으로 구멍이 있고 위쪽 끝에만 동물문양이 장식되었다. 재갈멈치 끝에 붙은 고리는 굴레와 연결하기 위한 고리이다. 3호 재갈멈치의 동물은 그리핀이다. 독수리 얼굴과 부리에 목 부위에는 갈기가 표현되어 있는 그리핀(그림 7-4)이다.

 

4호에서는 금제로 만든 갈기와 꼬리 장식이 출토되었는데, 1호와 거의 같은 형태이다.

 

 

그림 6. 아르잔-2호 3호(1~7)와 4호 퇴장지(8.9)

 

퇴장지에서 출토되는 재갈과 재갈멈치는 특히 무덤방 16호와 다르다. 재갈멈치는 굴레를 매기 위한 고리의 위치와 형태, 가장자리 끝 부분 장식 등이 매우 차이가 있다. 재갈멈치의 고리 위치는 굴레 착장하는 방법과도 관련이 되기 때문에 별꺼 아닌게 아니다. 그림 3의 말 복원도를 보면 알 수 있다. 3호에서 출토된 재갈멈치는 굴레와 연결을 위한 구멍 위치가 전혀 다르다. 재갈 가장자리의 재갈멈치와 연결되는 부위의 모양에 차이가 있다.

 

3호 퇴장지에서 확인된 재갈멈치에 표현된 그리핀은 아르잔-2호에서 확인된 유일한 유물이다.

 

그림 7. 아르잔-2호 3호(3~5)와 4호 퇴장지(1,2)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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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에 위치한 아르잔-2호 무덤에서 아주 다양한 동물문양장식이 확인된다. 여러 가지 다양한 동물장식이 확인되는데, 소재 및 용도가 다양하다. 검, 화살촉과 같은 무기에도 확인되고, 돌판에도 그려졌다. 의복으로 볼 수 있는 모자 장식에도 동물문양장식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다양한 동물문양장식이 확인되는 곳은 역시 주인공 무덤방인 5호이다. 여성의 모자 장식은 이미 소개해 드린 바 있다. 그런데 남성의 두개골에서 약간 위쪽에서 동물문양장식이 확인되는데, 남성의 모자장식이다. 앉아 있는 말(그림 1-4)과 서 있는 사슴 장식(그림 1-1)이다.

 

기본적으로 금판에 금사를 납땜해서 붙이고 그 사이를 청회색 아말감으로 채워넣은 것이다.

말은 서로 마주 보는 금장식 각각 2개씩 확인되었다. 말은 다리를 배쪽으로 접어서 앉은 모습이다. 눈, 코, 입, 귀, 턱에 청회색 에나멜을 채웠다. 말의 갈기 끝에 표현된 돌출부위는 아주 소형화된 날개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그림 1-5).

 

그림 1.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주인공 남성의 모자장식(1,5)

 

사슴(사슴 그림 : 길이 6.4 cm, 높이 6.9 cm, 두께 0.06 cm)은 기본적으로 말과 제작방법이 같지만, 뿔과 귀를 따로 만들어서 붙여서 원래 금판에 리벳으로 붙인 것이다. 말 보다 훨씬 큰 느낌이 든다. 사슴문양은 다른 금판에 다시 붙여서 고정되었다. 사슴 아래의 금판(길이 7 cm, 폭 2.5 cm,)은 새를 형상화 한 것이다. 사슴 아래의 금판에는 14개의 고리가 있어서 머리장식(그림 2-1)에 고정시킬 수 있다. 금판 위의 사슴을 고정하기 위해서는 6개의 구멍이 있다. 사슴다리의 끝을 약간 구부리고 그 끝을 금판 위에 고정한 것이다. 사슴의 가슴쪽에는 붉은색 칠이 확인되는데, 산화철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말리의 민족지자료를 참고하면 이 지역의 보석에 색을 입힐 때는 소금과 철 화합물로 된 물질을 발랐다고 한다. 그림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사슴은 말과는 달리 다리를 뻗어 표현되었다.

 

그림 2.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주인공 남성의 모자장식 그림 1의 실측도

 

 

발견될 당시에 말보다 사슴은 머리 장식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확인되었다(그림 3). 이는 의미가 있는데, 두 동물문양장식의 뒷판에 붙은 고리의 위치가 차이가 있는 점과 연결된다. 말 장식(그림 2-2)에는 너비 0.2cm 간격으로 16개의 고리가 2줄(그림 2-2)로 붙어 있는데, 단단히 고정시기키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슴장식은 별도의 금판에 고리가 붙어 있었다. 이 부분은 두 동물의 자세가 다른 점과도 관련된다. 

 

 

그림 3.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주인공의 남성의 모자장식 출토장면

 

말 장식판에는 금판에서 잘라낸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러한 점으로 보아서 실제로 사용했다기 보다는 의례용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말과 사슴장식판에서 붉은색으로 칠한 흔적이 그대로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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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잔-2호는 경계석 안에 무덤 26기가 설치되었다. 그 중에서 주인공은 무덤방 5호인데,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무덤의 크기, 나무로 된 무덤방과 출토된 유물 때문이다. 나무로 된 무덤방은 5호 외에도 2호가 있었고, 통나무관이 설치된 유아묘인 11호도 해당된다.

 

무덤방 2호에는 나무바닥 아래에 안장으로 추정되는 목제품과 새머리 모양의 금판제품이 확인되었다. 새머리는 남아 있지는 않지만 목제용기를 장식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토제, 청동제, 석제였다면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목제용기는 주인공 무덤방 5호인 여성의 머리맡에서 있었다. 무덤의 북서벽 부근에 놓여 있었는데, 손잡이가 한 개만 달린 목제그릇(입구경: 12cm, 높이: 5.7cm)이다. 손잡이는 따로 만들어서 붙인 것이다. 손잡이에는 금박((길이 10.9 cm, 구멍 2.7 cm; 무게 57.21 g)으로 입혀져 있는데 동물다리의 모습이다. 목제 손잡이에 비늘모양으로 새겨져서 손잡이를 덮은 금박에 찍혀서 비늘 모양이 표현되었다. 금판 안쪽에 두 개의 구멍이 있어 핀으로 나무에 고정되었다. 이음새 부분은 바닥쪽으로 향했다. 손잡이 끝 부분은 타원형 판으로 마감되었고, 금판에는 붉은색 안료로 칠한 자국이 남아 있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나무용기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나무용기(그림1과 동일)

 

목제용기가 출토된 지점과 멀지 않은 곳으로 무덤의 북서벽 부근에서는 향나무제 뚜껑2점도 확인되었다. 뚜껑 중 큰 유물(그림 3-5)(직경 4.8cm, 높이 2cm)은 목제용기 부근에서 유기물질 흔적이 남아 있는데, 뚜껑의 용기로 사용된 그릇이다. 가죽이나 양모로 제작된 직조물로 된 용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자리로 9개의 구멍에 목제못이 삽입된 채 확인되었는데, 아래 용기의 입구와 크기를 맞추기 위한 것(그림 4-4)이다. 목제뚜껑(직경 2.9cm, 높이 2.1cm)(그림 3-4)도 출토되었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1-청동제 그릇, 2- 나무 조각, 4,5-목제뚜껑, 3: 금박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목제뚜껑(3,4)

 

 

아르잔-2호 무덤방 5호에는 목제용기 외에도 미니어쳐 청동제(그림 3-1, 그림 5-4), 석제 그릇(그림 5-5,6)이 확인된다. 이미 청동으로 된 솥이 무덤구덩이와 무덤방 사이에서 출토되었으나, 청동으로 된 그릇이 한 점 더 있다. 무덤의 북동쪽 구역에는 주로 그릇이 확인된다.

청동제 그릇은 한쪽에만 손잡이가 달린 것인데 입구의 직경이 5.5cm, 높이가 2.2cm로 매우 소형이다. 무덤에서 확인되는 소형의 그릇을 명기(冥器)라고 부르는데, 미니어쳐로 생각하시면 된다.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청동제 그릇(4)과 석제 그릇(5,6), 3번은 본 포스팅과는 관련없으나, 주인공 여성의 구슬이다.

 

무덤의 북서쪽 벽에서 석제그릇(그림 5-5) 2점이 출토되었다. 회색빛을 띄는 사암제(구경: 입지름: 11.2cm, 너비 8.7cm, 높이 1.cm)로 편평한 모양이다. 석제 그릇에는 식물이 담겼던 흔적이 남아 있다. 석제그릇의 모양은 전체평면형태가 ‘S’자에 가까운데, 남성 칼집에 붙어 있던 금장식이라던지 곡선형태의 문양은 무덤에서 대유행 했던 문양이다. 석제그릇은 일종의 향로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평면형태가 둥근 석제 그릇 1점(그림 5-6)(입지름 12.5cm, 높이 3cm)도 사암제로 만들어진 것인다. 바닥은 둥글다. 한쪽벽면에 붉은색 직조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 석제그릇을 포장한 붉은색 주머니였을 가능성이 있다.

 

무덤방 5호 외에도 이미 소개한 무덤방 20호에서도 목제용기의 손잡이로 추측되는 뿔 손잡이가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25호에서도 목제용기가 있다. 하지만 이 용기는 무덤방 5호와 20호와 같이 손잡이를 따로 제작한 것이 아니라 나무를 처음부터 깍아서 만든 것이다.

 

사실 필자는 손잡이가 하나 달린 목제용기가 매우 중요한 유물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설명한 기원전 5세기대의 유적인 얼음공주 무덤이라고 불리는 아크 알라하-3유적 및 파지릭 유적등 파지릭문화(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알타이 지역문화)의 유적과 아르잔-2호는 같은 스키타이 문화권으로 묶기에는 개연성이 부족하다. 마구 및 굴레장식, 동물문양장식도 차이가 있다.

그런데 손잡이가 하나 달린 목제그릇은 파지릭 2호분에서도 출토되었다고 한다(필자가 파지릭 유적을 소개하면서는 보지 못했는데 다른 곳에서 발표되었다). 손잡이가 동물다리 모양이다. 뿐만 아니라 아르잔-2호 보다 훨씬 늦은 울란드릭 유적(기원전 4세기)에서도 비슷한 손잡이가 달린 목제그릇이 출토된다.

손잡이의 모습은 다르지만 앞서 소개한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도 호랑이 2마리가 표현된 목제그릇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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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해발 1500m 우육고원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거대한 무덤들이 존재한다. 이들 중에 처음 발굴된 아르잔-1호를 보고한 그랴즈노프는 이 우육고원에 위치한 분지를 ‘왕들의 무덤 계곡’이라고 부를 정도 였다. 그 중에서 아르잔-2호는 가장 최근에 발굴된 유적이다. 이를 발굴하고 보고한 추구노프는 무덤을 넘어서서 ‘의례복합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주인공을 위해서 장례식은 4단계에 걸쳐서 행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덤의 가장 상부에 위치한 것은 ‘사슴돌’이라고 불리는 입석(立石)이다. 입석이라는 용어는 어렵게 생각하실필요가 없고, 그냥 서 있는 돌이다. 장방형으로 길게 우뚝솟아 있는.

 

사실 사슴돌은 스키타이 문화 이전에 청동기시대부터 카라숙문화 혹은 판석묘문화라고 알려진 문화에서 주로 많이 사용된 무덤의 의례품? 의례장비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것도 다들 의심한다. 이전부터 있던 것인지, 아니면 이 시대에 그려진 것인지. 명칭이 ‘사슴돌’이니 사슴이 그려져 있어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사슴이 그려졌다고 해도 전면(그림2, 3)에 그려진 것도 있고 아주 일부에 그려진 것도 있는 등 다양하다.

 

아르잔-2호에는 사슴돌이 4점 확인되었는데, 1점은 발굴하기 이전에 지표조사 당시에 발견되었다.

 

그림 1. 아르잔-2호 출토 사슴돌

 

산양과 멧돼지가 그려진 돌(그림 1-1)은 중심에서 남서쪽으로 약 22m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되었다(그림 1-4에서 확인). 사암제(길이 120cm)로, 위에서 70cm떨어진 곳에 사방에 둘러가면서 홈을 만들었고, 사슴돌 상단은 둥글게 처리되었다. 바닥은 거의 다듬은 흔적이 엇다. 넓은 면에 산양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멧돼지가 있다. 돌의 하단부가 무덤의 바닥에 위치하고 있어서 원래 세워진 장소였고, 무덤의 마운드 건설중에 파 묻혔던 것이다.

 

무사의 벨트가 그려진 돌(그림 1-2)는 A지점의 남서쪽(유적평면도에서 노란색 글씨로 2)에서 발견되었다. 무덤의 북쪽에서 확인되는 석주(돌기둥)와 같이 녹색돌로 제작된 것이다. 상단이 부러진 채 확인되었는데, 벨트 이미지만 남아 있다. 넓은 면에는 고리트(화살통)과 방패 다른 면에는 단검이 달려 있다. 아르잔 -2호에서 출토된 무기 중에 방패는 없지만 고리트와 검은 출토되는 것이다. 목제방패가 유적에 있었을 수도 있다. 방패그림은 앞서 본 돌판에 그려진 그림에서도 확인된다. 아르잔-2호에서 나온 사슴돌에는 없지만 사슴돌 무사의 벨트에는 투부(전투용도끼)가 있는 것도 있다.  달려 있는 무기의 위치는 실제 착장 방식과 일치한다고 한다. 그림 1-2에서 방패그림과 염소문양 사이에 있는 것을 사람형상이라고 보고되었으나, 필자는 전혀 이해가 되지않는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돌의 하단부는 가공 흔적이 없는 쐐기 모양이다. 이 돌은 하단부와 함께 확인되어서 무덤의 가장 중앙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슴돌의 파편(그림 1-3)에는 귀걸이(길이 23.0 cm, 폭 10.0 cm, 두께 7.0 cm)가 그려진 것이다. 이 돌이 확인된 곳은 A지점에서 남동쪽에 위치하며 돌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넓은 면에는 양쪽에 귀걸이 이미지가 있고, 좁은 면에는 비스듬한 직선이 3줄 그려진 것이다. 사암제이다. 이 돌은 크기가 매우 작고 파편이어서, 사슴돌의 하단부가 확인되지 않아서 발견된 지점이 원래 위치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1998년 지표조사 당시에 발견된 것은 무덤 경계밖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점’ 사이에서 확인된 것이다. 열을 잇고 있는 점은 돌을 고리모양으로 두른 것인데, 장례식때 의식을 치루던 일종의 제단 시설이다. 이 사이에서 사슴돌이 발견된 것은 원래의 위치가 아닐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고리들을 발굴할 당시에는 정작 사슴돌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슴돌에는 3줄의 줄무늬와 원뿔모양의 치레걸이가 달린 귀걸이인데, 남아 있는 길이가 50cm가량이다. 이 유물은 도면은 소개되지 않았다.

 

앞에서 스키타이문화의 동물문양장식은 마치 기호와 같은 특성이 있다고 했다. 기호처럼 사용되었기 때문에 넓은 지역에서 통용될 수 있었다고. 사슴돌의 그림을 포함한 것이다.

사슴돌은 청동기시대부터 제작되었기 때문에 동물문양이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이었던 것도 청동기시대부터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사슴돌에 그려진 그 의미는 현재는 알 수 없다.

 

아래 그림이 사슴이 그려진 ‘사슴돌’인데, 이제까지 사슴이 많지 않은 것만 보여드리는 것 같아서 아래 그림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림 2. 알타이의 사슴돌. 몽골의 아르한가이 아이막, 샤바르틴 암 계곡 출토품.(볼코프 2002)

 

 

그림 3. 알타이의 사슴돌(몽골)

 

 

 

 

참고문헌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Волков В.В. 2002 : Оленные камни Монголии. М.: Научный мир. 2002. 248 с.(볼코프 2002, 몽골의 사슴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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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