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유라시아 초원에서 대 유행했던 스키타이 문화가 시작된 시점을 알리는 유적으로 시베리아에 위치한 해발 1050m의 우육고원에 위치한 아르잔-1호에서는 통나무 6000여 개 이상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아르잔-1호와 10km가 되지 않는 곳에 위치한 아르잔-2호는 전혀 무덤 구조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연대가 늦어서 무덤구조가 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변화가 매우 크다.

 

특히 무덤방에 나무를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다. 가장 나무를 많이 사용한 무덤방은 주인공 남녀가 묻힌 5호무덤이다. 우선 무덤 구덩이는 윗부분이 5.40 × 4.40 m이고 밑면이 4.65 x 4.20 m로 바닥이 약간 작다. 깊이 4.35 m이다. 나무는 낙엽송으로 제작되었다. 무덤의 방향은 북서-남동향이다.

 

무덤방의 덮개는 2중으로 가장 위에는 통나무 22개(남서-북동방향)로 덮였고(그림 1-1, 그림 2), 그 아래에는 11개(그림 3-1)의 통나무를 사용해서 무덤 천장으로 만들었다. 무덤방의 천장이 된 11개의 통나무는 가장 위쪽의 나무와 방향이 다르게 교차되는 방향으로 덮였다(그림4).

 

 

남동쪽의 무덤 천장이 내려앉으면서 그 틈을 통해서 내려온 흙은 무덤방의 남동쪽까지 흘러들어왔다(그림 1)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분의 가장 위쪽 덮개(1)와 단면도(2), 무덤천장의 균열된 틈을 통해서 무덤구덩이 상부를 채운 흙이 흘러들어왔다. 무덤구덩이는 흙으로 채웠지만 무덤은 전체적으로 납작한 판석으로 채웠다는 점을 단면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림 2.  아르잔-2호의 최상위 천장, 통나무 22개 이용

 

 

 

그림 3. 아르잔-2호의 2차 무덤방 천장(1)과 단면도(2)

 

그림 4. 아르잔-2호의 무덤방 가장 상부 덮개와 무덤방 천장

 

 

무덤방의 높이는 1.4m가량이고, 2중 무덤방이다. 바깥의 1차무덤방은 크기가 3.68 × 3.41m, 2차 무덤방은 2.58 × 2.42 m이다. 외부에 있는 1차 무덤방은 9개의 통나무를 쌓아서 올렸다(그림 1-2). 1차 무덤방은 바닥을 따로 만들지 않고, 사방으로 무덤방의 벽만 올렸다(그림1-, 2, 그림 3-2).

2차 무덤방의 바닥은 통나무 12개를 이용했는데, 가장자리를 큰 나무를 이용하고, 상대적으로 작은지름의 나무 10개를 이용해서 무덤방의 바닥이 땅에서 약간 뜬 상태로 보인다(그림3-2).

 

그러나 내부 통나무방을 제거한 후에 그 바닥에 점토로 채워진 흔적이 발견되어서 무덤구덩이 바닥과 무덤방 바닥사이를 채웠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토 채움 흔적은 무덤의 북동부, 남동부, 남서부에서도 확인되었다.

 

 

통나무 나무방은 미리 만들어졌고, 무덤안에서 조립해서 다시 만든 것이다. 이는 무덤방을 만든 통나무를 결구하기 위해서 만든 홈과 나무를 다듬은 흔적으로 보아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그림 5,6)

 

그림 5. 아르잔-2호의 무덤방 모서리 결구상태 

 

그림 6. 아르잔-2호의 2차 무덤방(내부)의 통나무 다듬은 흔적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그림 1. 아르잔-2호의 5호 무덤방에서 출토된 남성인골 동물문양장식

 

오늘은 날씨도 좋은데 화려한 유물을 보여 드리면서 시작하려 한다.

우리는 지금 3000여 년 전부터 2500년 전 사이의 시베리아 무덤을 살펴보고 있다. 미라가 남아 있는 아크 알라하 3유적도 보았고, 도둑맞은 파지릭 유적도 실컷 보았다.

무덤에는 인간과 말이 함께 매장되었고, 나무로 된 무덤방 속에 통나무관, 그 위를 흙으로 덮고 마지막에 다시 돌로 덮은 무덤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베리아에서도 우육고원에 위치한 아르잔유적은 위에서 살펴본 스키타이 문화 가운데 파지릭 문화의 유적과는 사뭇다르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이미 아신다.

특히 아르잔-1호는 무덤구덩이를 파지 않고 지상위로 축조하고, 그 주변을 호석으로 벽을 쌓고 그 높이 만큼 혹은 약간 더 높이 돌로 쌓아 덮은 무덤이다. 아르잔-1호에서는 무덤을 덮은 돌의 단면도가 남아 있지 않아서 아쉽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 남녀의 무덤방에는 다리뼈 4개만 남겨진 상태여서 주인공에 대한 정보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세간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황금 유물은 말의 꼬리를 감싼 테이프 모양의 리본, 귀걸이 등 몇 점 남아 있지 않았다.

 

아르잔-2호는 아르잔-1호보다 200~300년 가량 늦은 기원전 7세기 가량의 유적으로 무덤구덩이를 팠다. 그리고 아르잔-1호에서 통나무 6000개를 사용한 무덤구조는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나무로 된 무덤방은 주인공의 무덤에서만 확인되었다.

 

아르잔-2호에서는 사슴, 맹수, 멧돼지, 새 등 엄청나게 많은 동물문양장식이 남아 있다.아르잔-1호에서는 말의 무덤인 2호 무덤방에서 확인되었으나, 아르잔-2호에서는 주인공의 무덤인 5호에 있다.

 

5호에도 역시 남녀가 매장되었는데, 남성이 왼쪽, 여성이 오른쪽에 묻혔다. 미라로 처리된 것은 아니지만, 남성과 여성의 인골은 비교적 잘 보존상태였다. 둘 다 머리는 경추 끝에서 떨어진 채 이다. 남성과 여성의 어깨에는 수많은 동물문양 펜던트가 달려있다(그림 1).

 

모두 호랑이 장식이다. 남성의 예를 들어보면 호랑이 장식은 왼쪽에 달린 것은 길이가 2cm, 너비, 1.2cm, 두께는 0.4cm, 무게는 2.87-3.94g이다. 오른쪽에 달린 것은  길이 2cm, 너비 1.1cm, 두께 0.4cm, 무게 2.67~4.16g이다. 이 펜던트는 호랑이가 왼쪽(그림2)과 오른쪽(그림 3) 서로 다른 방향으로 부착되었는데, 각각 1121점, 1512점이 붙었다. 오른쪽의 유물이 무게와 개수가 더 크고 많다.

 

그림 1을 보시면 척추와 장식물 사이에 희미한 물질이 있는데, 동물의 모피이다.

 

이 유물은 모피로 된 망토위에 달린 장식물이다.

 

 

 

 

그림 2. 아르잔-2호에서 출토된 남성의 동물문양장식(모피망토의 왼쪽)

 

 

 

그림 3. 아르잔-2호에서 출토된 남성의 동물문양장식(모피망토의 오른쪽)

 

고양이과의 맹수라고 보고되었으나, 필자는 둥근 귀로 보아서 호랑이라고 하고 싶다. 손톱보다 약간 큰 호랑이는 다리와 팔의 근육이 뚜렷하고 발톱까지 표현되었으며, 입을 벌리고 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스키타이 동물문양장식을 연구한 많은 학자들은 동물문양장식 중에서 근육이 매우 뚜렷한 것은 스키타이 문화의 또 다른 핫스팟인 흑해북안의 특징으로 단정했다.

이 연구가 주로 1980년대와 90년대 이루어졌고, 알려진 알타이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나무로 제작되어서 나무와 금을 비교하지는 않았다. 제작방법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 이후에 발굴된 아르잔-2호의 무덤에서 나오는 유물을 보면 시베리아에도 동물의 근육표현이 매우 뚜렷함을 알 수 있다.

 

흑해북안의 황금 유물은 훨씬 크다. 그 쪽에서 가장 이르다고 알려진 코스트롬스카야 유적(기원전 7세기)의 황금 사슴은 화살통에 부착되었던 장식판이다. 길이가 31.7cm, 너비는 19cm, 무게는 634그램 정도 된다. 이 유물은 동물의 근육이 면과 각으로 매우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그림 4. 코스트롬스카야 유적 출토, 황금 사슴판

 

고고학은 새로운 정보가 생기면, 그간의 생각이 바뀌게 된다. 아르잔-2호는 수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예전에 한 것이 다 틀린 것이 아니고 수정하게 된다.

 

 

참고문헌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페레보드치코바 199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아르타모노프 1966,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3000 여 년 전에 시베리아 투바에는 직경 120m의 무덤이 축조되었다. 그 안에는 6000여개의 통나무를 사용해서 중심 무덤방이 있고 이를 기준으로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방을 70여개 만든 구조이다. 무덤의 가장자리는 판석으로 쌓아 올렸고, 무덤방을 돌로 덮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유적의 이름은 아르잔이라고 불리고, 해발 1050m의 우육고원에 위치한다. 1970년대 발굴되었고, 1980년에 이에 대한 아주 간략한 단행본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이 유적의 학술적 가치에 비해서 매우 빈약한 단행본이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몸을 말고 있는 원형의 맹수(호랑이 혹은 표험)장식물은 스키타이 동물문양 중에서 가장 이른 유물로,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을 시베리아로 생각을 바꾸게 한 기념비적인 유적인데 말이다.

 

이 유적을 발굴한 30 여년이 지나서 2000~2004년에 아르잔-2호가 발굴되었다. 아르잔-2호는 아르잔-1호에 비해서 작은 크기(직경 80m)지만,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었다. 남쪽의 호석 일부가 없어진 것 빼고는 무덤방의 주인공에 대한 정보 및 거의 모든 무덤이 파손되지 않았다.

 

어제 필자가 사진을 보여드리면서, 무덤의 상부가 앞에서 본 알타이의 다른 유적 무덤 상부에 비해서 울퉁불퉁한데 그 이유(그림 1, 2)는 오늘 알 수 있다.

 

원형의 무덤은 대체로 케잌 자르듯이 무덤을 동서(그림 1의 FS라인), 남북방향(그림 1의 KB라인)으로 가로지르는 단면을 잘라서 확인한다. 그리고 주변을 두른 호석 14곳을 잘러서 호석을 쌓은 방법도 확인했다(그림 1). 

 

 

그림1. 아르잔-2호의 무덤 내부, KB라인과 FS라인이 무덤을 발굴할 때 가장 먼저 확인했던 단면도이다. 그 외에 케익 자르듯이 표시된 선(C,D,E,G,H,I,J,L,M,N,P,R,T,U)이 호석의 단면을 확인한 선이다. 

 

그림2. 아르잔-2호의 무덤 내부, 그림1과 동일. 오렌지 색이 스키타이 무덤이고, 녹색은 그 뒤에 추가되었던 무덤이다.무덤번호는 인간이 묻힌 무덤과 말이 묻힌 무덤 구분없이 일련번호이다. 오렌지 색으로 표시된 것이 주인공인 무덤 5호와 함께 만들어진 것이다. 녹색으로 표시된 것은 뒤에 생긴 무덤이다. 

 

 

 

예상하셨듯이, 무덤은 여러 개가 지하로 무덤구덩이를 파서 만든 것이다.

아르잔-1호와는 너무 다르다. 그리고 이제까지 본 파지릭 고원과 우코크 고원의 무덤과도 너무 다르다.

 

무덤 위(봉분)에 생긴 함몰은 지하에 생긴 빈공간 때문에 생긴다. 그 빈공간은 아주 큰 무덤구덩이다 그래서 무덤위에 생긴 함몰은 여러 곳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진상 외관이 울룩불룩했다. 크게 3곳이었는데,  어제 포스팅한 유적의 지형도를 참고하시면 된다.

 

 

그런데, 어떤 곳이 주인공의 무덤방일까?? 

아르잔-1호는 가장 중앙에 있었는데??

5호이다.

 

 

왜?? 

5호가 무덤의 중심에 있지도 않고, 특별히 커 보이지도 않는데 왜 무덤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할까?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기도 하지만, 무덤방 때문이기도 하다.

이 유적에서는 나무로 된 무덤방은 5호(그림 3)에서만 확인된다. 11호에도 나무로 된 통나무가 사용되었으나 관이고, 아주 작은 무덤으로 무덤방은 돌로 만들어졌다. 5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무덤방은 돌로 만들어졌다.

 

5호의 무덤방은 아주 견고하게 만들어진 2중 나무 무덤방으로 만들어졌다. 비록 통나무관은 없었지만.

 

그림 3. 아르잔-2호의 주인공 무덤방 5번.

 

참고문헌

 

추구노프 2011, Чугунов, К. В. “Аржан-2: реконструкция этапов функционирования погребально-поминального комплекса и некоторые вопросы его хронологии.” Российский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ежегодник . СПб: Издательство СПб ГУ, 2011, С. 262-335

(추구노프 2011, 아르잔-2호: 무덤의례복합 유구의 복원과 연대에 대한 몇 가지 질문)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투바에는 3000여 년 전의 대형무덤이 남아 있었다. 직경이 120m에 이르는 대형무덤은 위에 쌓인 돌을 드러내자 그 내부에는 통나무 6000개 이상을 사용해서 70여개의 나무 무덤방을 지상위로 쌓아서 만든 구조였다. 무덤방 주변은 납작한 판석을 쌓아 올렸고, 그 높이 만큼 판석으로 덮어서 만든 무덤이었다.

 

이 유적의 이름은 ‘아르잔’으로 2000년에 2호를 발굴했다.

외관은 직경 80m가량으로 가장 높은 곳은 2m정도이다. 지표면에서 높은 곳은 2m이지만, 전체적으로 봉분이 편평하게 남아 있지 않았다(그림 2).

앞에서 살펴본 알타이의 얼음공주 무덤이나, 파지릭 유적에서는 봉분(무덤이 지표로 드러난 쌓인 흙 혹은 돌)의 함몰이 대체로 중앙이나 치우치더라도 한 곳으로 땅꺼짐 현상이 있는 것과는 다르다. 왜 일까? (생각해보시기 바람)

 

 

그림 1. 아르잔-2호의  옆에서 본 모습

 

그림 2. 아르잔-2호의 상부

 

그림 3. 아르잔-2호의 지형도. 봉분에서 가장 높은 곳이 2m이다. 찾아보시기 바람.

 

아르잔-2호의 주변에는 이 유구를 둘러싸고 많은 ‘점’이 확인되었다(발굴하기 전에는 볼록 솟은 원형의 점 같이 보였을 것이다). 남동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무덤을 애워싼 형태인데, 그 부분은 후대에 파손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점은 북쪽을 기준으로 2km 반경 안에서 확인되었다.

 

이 ‘점’을 조사해서, 돌을 고리모양으로 돌린 유구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미 기억에서 희미하시겠지만, 아르잔-1호에서도 이런 부분이 있었다.

특히 서쪽에 큰 것을 조사해서, ‘점’과 같은 곳이 파고 돌을 돌린 시설물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큰 유구(4,10~13) 주변에 다시 작은 고리형 돌 유구가 있었다는 점을 알았다. 무덤 주변의 모든 ‘점’을 다 발굴한 것은 아니고 그림 5에서 네모로 표시된 곳만 발굴했다.

 

그림 4. 아르잔-2호를 에워싼 돌 유구, 짙은 표시는 발굴한 곳이다. 

 

 

그림 5. 아르잔-2호의 서쪽 돌 유구, 숫자는 고리형 돌 유구의 번호, 그 안의 점선은 점토를 바른 흔적이다.

 

 

 

유구 주변으로 돌린 돌 유구를 구덩이(야마)를 팠다고 표현했으나, 돌을 수직으로 세우고 점토를 발랐다는 것을 단면(그림 6)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4호의 높이는 5cm가량이고, 크기는 7.5m가량이다. 유물도 출토되었다. 고리형 유구에서 모두 유물이 출토된 것은 아니다.

 

 

그림 6. 아르잔-2호를 둘러싼 돌 유구 가운데 4호.

 

유적의 남동쪽(그림 4)부분도 조사했다. 길 건너편이 있는 부분이다

이쪽은 양상이 약간 다른데, 지표면을 벗겨내자 처음에 나타난 것은 돌이 그냥 덮힌 것이다.

보통 이럴 때는 어느 한 부분을 잘라서 단면을 조사해 본다.

덥힌 돌 아래로 뭔가 유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그림 8-2)

 

그림 7. 아르잔-2호의 남동쪽 돌 유구, 그림 4에 표시되어 있음.

 

그림 8. 아르잔-2호의 남동쪽 돌 유구, 그림 7을 위에서 보고 그린 그림. A-A’가 자른 면(2)

 

그림 9. 유적의 남동쪽 의례공간, 그림 8의 돌을 드러내고 나타남.

 

덮힌 돌을 드러내자, 역시 돌 유구가 있었는데, 무덤의 북쪽, 동쪽, 서쪽과는 달리 돌을 쌓은 형태(그림 9)이다.

 

무덤을 둘러싼 이 곳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유적을 발굴한 추구노프는 아르잔-2호를 단순히 ‘무덤’이라고 하지 않고, 무덤복합체라고 했다. 주변을 둘러싼 이 돌 고리와 돌 무더기는 장례 당시에 의례를 치뤘던 공간으로 해석했다. 돌 고리는 대략 130여개 남아 있었다(그림 4). 돌 고리에서는 토기, 동물뼈, 청동 등 유물이 출토되었지만, 유물이 많지는 않다.

 

참고문헌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투바 공화국의 우육고원에는 3000여 년 전의 무덤이 남아 있었다. 아르잔-1호에서 대략 9km 떨어진 곳에는 2호라고 불리는 무덤이 남아 있다.

 

아르잔-2호는 비교적 최근에 발굴된 대형무덤이고, 알타이의 유적들에서 확인되는 유물이 황금이 제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문데, 황금유물이 많이 출토되어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앞에서 본 우코크 고원과 파지릭 계곡의 유적은 나무를 금박으로 싼 유물이어서, 대부분 출토될 때 이미 금박이 벗겨진 상태여서 잘 남아 있지 않다.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서 파지릭문화 유물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르잔-2호에는 금판을 이용하거나 금을 아플리케처럼 잘라내서 철제에 덧 입힌 유물이 많이 출토된다. 앞에서 설명드렸던 아플리케 장식은 주로 가죽이나 펠트를 일정한 동물모양으로 오려내서 덧붙여서 만들었다. 예를 들면 얼음공주 무덤 속에 있던 일종의 펠트로 만든 레깅스의 허벅지 끝에 붙은 장식이라던지, 통나무관에 붙어 있던 화려한 뿔이 있는 사슴장식은 가죽을 잘라내서 붙인 것으로 가죽 아플리케 장식이다.

 

그런데 아르잔-2호에는 금박을 싼 형태가 아닌 얇은 금박을 잘라내서 철제유물에 덧 붙인 금 아플리케 유물이 출토된다. 특히 철검과 철촉 등 무기에 많이 장식되었다.

 

아직 설명드리지 않았지만, 아르잔-2호의 주인공 남녀는 5호 무덤방에 묻혔는데, 인골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 남성 인골 주변에서는 화살통(고리트)에 활과 시위가 담긴 채로 출토되었다. 파지릭 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 등에서는 주로 활은 골제로 제작되었지만, 아르잔-2호에서는 철제(그림 3-1~11), 청동제(그림 3-12), 목제(그림 3-14) 등으로 제작되었다.

 

그림 1. 아르잔-2호, 5호 무덤방의 남성, 남성의 어깨 왼쪽 끝에 화살통의 끝이 보인다. 

 

그림 2. 아르잔-2호, 5호 무덤방의 남성 왼쪽 어깨부위에 놓인 고리트(화살통), 활이 가득 담겨 있다.

 

그 중에서 금 아플리케 장식을 화살촉이 주인공 남성의 왼쪽 어깨 부위에서 출토되었다(그림 1, 2). 화살촉에 덧붙인 아플리케 장식은 금(그림 3-1)도 있지만, 금과 은을 같이 붙인 것도 있다(그림 3-2~11)

화살촉의 크기가 길이 4.1cm, 너비 1.3cm 안에 뿔이 달린 영양 혹은 산양이 새와 함께 표현되었다. 새의 신체가 전부 드러난 반면에 뿔이 있는 동물은 머리만 보여서, 새가 산양을 공격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삼면이 같은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화살촉의 단면은 삼각형이고, 자루를 끼울 수 있게 홈이 안으로 들어가 있다.

같은 모양으로 금과 은을 함께 상감한 화살촉은 일종의 새 날개 혹은 소용돌이를 형상화 했다. 기하학적 모양에 가까운데, 같은 무덤방에서 함께 출토된 산양과 새가 표현된 유물과 관련을 시킨다면 새의 날개로 볼 수 있다.

금 장식만 삽입한 화살촉은 소재는 하나이고, 표현된 동물은 2 마리, 금과 은을 사용한 유물은 소재는 2개, 표현물은 1개이다.

 

이 유물은 철제 화살촉 면에 홈을 파고 얇은 금(은과 함께) 줄 혹은 금판을 삽입해서 망치로 두드려서 제작되었다. 이 방법은 아르잔-2호의 다른 무기에서도 관찰된다.

 

그런데 그림 2는 화살통과 활의 자루는 보이지만, 그림 3과 같은 유물은 관찰되지 않는다. 발견당시에 이 유물은 금속산화물 덩어리로 흙과 함께 형태가 없는 덩어리로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보존 처리실에서 처리한 것이다. 흙과 금속산화물을 다 뜯어내자 드러난 홈에 현대의 금과 은(일부)으로 복원한 것이다(그림 3).

 

그림 3. 아르잔-2호의 5호 무덤방 출토, 활(금 상감-1, 금과 은 상감: 2~11)(철제 1-1~11,13, 청동:12, 목제:14)

 

 

참고문헌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최근 넷플릭스로 영화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말하지 않아도 코로나 때문에 더 유행이 된 것이다. 원래도 유행하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필자한테 보라고 넷플릭스가 권하는 영화 중에 하나가 조선시대 좀비를 다룬 ‘킹덤’이다. 좀비류의 영화는 너무 억지 같아서 좋아하지 않지만, 조선시대라는 점이 흥미로워서 약간씩 시간날 때 보았다. 얼마 전에는 트위터에 검색어로 좀비가 해시태그에 딸려서 올라왔다.

‘좀비’라는 존재가 있었는지는 누군가 만들어 낸 소재인지 모르겠지만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좀비는 무덤 속의 미라와 인간형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둘 다 억지로 만들어내었다는 점에서...나의 입장에서는 좀비보다는 미라가 더 좋은 영화소재이다. 미라는 실제 존재하니깐.

 

‘미라’ 하면 사람들 머릿속에 떠 오르는 것이 아마 이집트일 것이다. 서양사중심의 역사쓰기와 영화가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집트 외에도 미라가 나타나는 문화중에서 우리와 비교적 가까운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도 있다. 특히 알타이에...스키타이 미라도 언젠가 영화 속에서 만나기를....(스키타이라는 제목의 러시아영화가 2018년에 개봉되었다. 아직 안봐서 내용은 모르겠다. 소비에트 시절의 영화는 은근하게 사회를 풍자해서 매우 재밌다. 하지만 최근의 러시아 영화는 그닥 재미있다고 느낀 적이 없다. 왜냐하면 어설픈 헐리우드 액션이기 때문에...)

 

스키타이 문화의 또 다른 핫스팟인 흑해북안에서 미라가 발견되었다는 자료는 접해보지 못했다.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적힌 내용에 왕을 장례치르는 방법은 실제 알타이 무덤 속에서 발견된 미라처리법과 비슷하다. 러시아학자들이 흑해북안의 자료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자료를 스키타이 문화로 묶은 이유는 아시다시피 무기, 마구, 동물문양장식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에 기술된 장례치르는 방법이 더 비슷해 보이는 곳이 알타이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유라시아 전역을 휩쓸었던 스키타이 문화는 대체로 기원전 8~7세기에 전 지역에 나타나지만 이 문화가 나타나게 된 것은 아르잔-1호를 기준으로 기원전 9세기에 나타났다고 한다. 

아르잔은 해발 1050m에 위치한 알타이 우육고원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아르잔 주변에는 무덤이 많았던 것으로 그랴즈노프가 적어놓았는데, 발굴된 것은 2기 뿐이다.

 

아르잔-2호는 그랴즈노프가 발굴한 1호보다 동쪽으로 9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아르잔-1호의 외형이 직경 120m, 높이 3~4m에 비해서 약간 작은편인데 직경 80m,높이 2m가량이다. 우육고원에 위치한 그랴즈노프가 왕들의 무덤 계곡이라고 불렀던 이곳에 대형고분은 대체로 70~100m, 높이 2~4m이다. (아르잔-1호를 가장 먼저 발굴한 이유가 아마 가장 컸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무덤은 2000~2004년간에 걸쳐서 발굴했다.

 

 

그림 1. 아르잔-2호, 위성사진, 유구가 뚜렷하게 보인다.(링크에 공유되어 있음)

 

그림 2. 아르잔-2호, 왼쪽의 점이 아르잔-1호이다.

 

www.google.com/maps/d/drive?state=%7B%22ids%22%3A%5B%22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22%5D%2C%22action%22%3A%22open%22%2C%22userId%22%3A%22104839998633637810520%22%7D&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몇 년에 걸쳐서 왜 이렇게 오래 발굴을 했을까?

러시아에서는 여름에만 발굴을 한다. 극동처럼 상대적으로 따뜻한 곳에서는 6월부터 발굴을 시작하기도 하지만 주로 7,8월에 한다. 9월이 되면 이미 춥다.

게다가 발굴을 직접 손으로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작업은 느리고 더디다. 그래서 러시아 발굴조사는 몇 년동안 한 곳에서 머무를 수 밖에 없다.

 

 

직경 80m(물론 무덤을 둘러싼 호석 너비가 2~2.5m가량이다. 가장 잘 남은 곳을 기준)의 공간에서 주인공 남녀가 묻힌 공간은 4.5×4.5m의 지하 나무방이다.

 

그림 3. 아르잔-2호의 주인공 남녀

 

무덤의 구조가 무척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아르잔-1호와는 어떻게 다를까? 또 앞에서 미라가 나온 아크 알라하 3유적, 파지릭 유적 2호, 파지릭 유적 5호와도 어떻게 다를까? 또 비슷한 건 머가 있을까? 연대는?

유물은 어떤 흥미로운 것이 있을까? 그리핀은 있을까? 어떤 동물문양장식들이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생긴다. 새로운 것을 보면. 

 

참고문헌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3000여 년 전에 시베리아의 투바의 우육고원에는 직경 120m, 높이 3~4m의 대형 무덤이 만들어졌고, 1971년부터 발굴되어서 아르잔-1호로 명명되었다. 이 무덤을 발굴한 그랴즈노프는 이미 1920년대에 파지릭 유적의 1호분 뿐만 아니라 알타이의 무덤을 많이 발굴했지만, ‘그’가 남긴 책의 제목으로 ‘차르(цар)’라고 붙인 경우는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1984년 사망).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가운데 가장 이르면서 가장 컸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파지릭 유적은 1929년에 1호분을 발굴하고 그 뒤에 1947~1948년에 다시 조사해서 책은 1950년에 나왔지만, 1980년에 나온 아르잔 1호 보다는 훨씬 상세하고 책의 내용과 인쇄상태도 훨씬 좋다. 그 사이에 소련의 정치 경제가 많이 변화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국가의 정치경제안정은 학문성과로 바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아르잔 1호는 그 중요성에 비해서 전해지는 정보가 적어서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물론 주인공 남녀의 중심무덤방이 도굴이 심하고 빈 방이 많다고 해도, 말 170여 마리에 대한 정보 혹은 말이 확인된 무덤의 사진이나 그림은 남길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인간과 말이 함께 부장된 가장 중심 무덤방, 13번 무덤방, 31번 무덤방을 제외하고 말만 부장된 무덤을 어제 표로 소개한 바 있다. 말만 부장된 무덤방의 말도 재갈과 재갈멈치 등 마구를 착장한 상태였다. 굴레에는 멧돼지송곳니를 달아서 장식하는 점은 인간과 함께 묻힌 말과 같다.

 

그런데 34a 무덤방에서는 특이한 청동제 재갈멈치가 확인되는데, 3개의 구멍 끝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그림 1-1). 책에 적힌 내용에는 다른 무덤방에서는 출토되지 않았다 한다. 앞서 계속 포스팅한 재갈멈치와는 차이가 있다. 별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확실히 의도적으로 다르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냥 3공 재갈멈치와는 다른 거푸집(청동을 부어서 틀을 만드는 곳)을 썼을 텐데, 거푸집 만드는 단계부터 미리 계획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무덤방에서 출토되지 않았다는 말은 크게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이 무덤에는 너무 경의 수가 많다.

그림 1-5,6도 앞서 본 3공 재갈멈치와 다르지만, 이 유물은 소재가 청동이 아닌 뼈로 제작된 유물이다.

 

 

그림 1. 아르잔-1호 출토 재갈멈치(1, 2-34a번 무덤방 출토, 3-5: 37번 무덤방, 6-5번 무덤방 출토)(5,6-뼈, 그 외 청동)

 

이 무덤방이 위치한 봉분 위에서 그림 2-2의 사슴돌이 발견되었다.

사슴돌은 주로 사슴이 많이 그려져셔 사슴돌이라고 불리지만, 사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슴돌에는 무기가 많이 그려져 있는데, 무기의 형태를 보고 사슴돌의 연대를 정한다. 이 사슴돌에는 앞서 소개한 바 있는 청동거울에 그려진 등에 혹 달린 사슴 3마리와 멧돼지 6마리가 남아있다(가장 왼편의 사슴 옆에 엉덩이와 입만 남은 사슴이 있다). 사슴과 멧돼지 위 쪽에는 검과 알 수 없는 막대기가 달려 있다.

 

이 유적에서는 멧돼지송곳니로 굴레에 달아서 장식을 했다.

멧돼지는 스키타이 문화중에서 기원전 5세기에 알타이 지역에 존재했던 파지릭 문화의 유적에서는 몇 점(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말의 가슴에 달았던 1점)출토되지 않았지만, 아르잔 1유적에서는 아주 많은 양의 멧돼지 송곳니로 만든 굴레 장신구가 출토된다. 멧돼지 모양의 장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림 2. 아르잔 및 그 주변에서 발견된 사슴돌.1-소스노프카 발견(아르잔과 가까운 곳)2- 아르잔1의 봉분 출토(사각형 돌을 펴서 그린 그림), 3, 10-오르삭-악시 출토, 4-투란(아르잔 무덤에서 우측에 위치한 마을이름) 발견 사슴돌, 5,6,8-아르잔과 가까운 벨로예 호수 출토, 7-우육고원 발견, 9-사말가타이, 11-볼쇼이 아직, 12-친가타그, 13-우육-아르잔 출토

 

 

아르잔-1호의 정보부족에 대한 아쉬움을 그나마 충족해 줄 유적이 아르잔-2호이다. 아르잔-2호는 연대는 1호에 비해서 늦지만, 황금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되어서 세간의 관심을 많이 받은 유적이다. 멧돼지 모양의 황금 장신구도 포함된다.

 

 

그림 3. 아르잔-2호의 멧돼지, 고리트(활통)에 붙인 장신구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동물문양장식은 직접적인 유물은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호랑이와 지지대 위에 올라간 청동 산양이지만 간접적으로는 수 많은 멧돼지 장식과 사슴돌의 사슴도 포함시킬 수 있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투바공화국 아르잔 마을에는 30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직경 120m, 높이 3~4m의 무덤이 있었고, 1971년부터 1974년까지 러시아 학자인 그랴즈노프가 발굴했다.

아르잔-1호이다.

 

직경 120m 내부에는 6000여개의 통나무로 쌓아 올린 무덤방 70여개가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가장 중심부에는 2중의 무덤방을 만들었다. 중심부의 가장 안쪽 무덤방에는 주인공 남녀과 이 무덤방을 벗어나서 북, 서, 남쪽에는 8개의 사람이 함께 매장되었고, 동쪽에는 말이 6마리가 확인되었다. 아쉽게도 무덤은 이미 도굴되었고 주인공 남녀는 사지골만 4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 중심 무덤방의 북쪽에 9호 무덤방이 있는데, 통나무관만 들어갈 공간이고, 중심무덤방과 바로 인접하고 있어서 중심무덤방의 주인공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많다. 이 무덤에서 중심무덤방을 제외하고는 13번과 31번 무덤방에서 사람이 묻혔는데, 관이 2개이고 말이 함께 매장된 것으로 보아서 9번 무덤방은 이 무덤의 주인공을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중심무덤방에 딸린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옳다.

 

중심무덤방을 기준으로 해서 동서남북으로 방사상으로 나무를 연결하고 확장해서 지름 80m까지 무덤방을 축조했다. 길다란 막대로 둥근 원형의 무덤형태로 만들었기 때문에 무덤방의 모양은 제각각이며, 각 방의 크기도 일정하지 않다. 인간과 말이 들어간 무덤을 제외하고는 말만 들어간 무덤방은 13개이다.  아래의 표는 알 수 있는 말만 들어간 무덤방이다. 참고문헌에는 170여 마리 분이 출토되었다고 하지만, 중심무덤방 6마리, 13번 무덤방 7마리, 31번 무덤방 10마리를 더 해도 총합은 맞지 않다.  늙은 말만 골라서 넣었다.

 

 

아르잔-1호에서 말 만 들어간 무덤방

말의 매장 수

2번 무덤방

90마리

2~3번 무덤방 사이

3마리

3번 무덤방

3마리

5번 무덤방

15마리

10번 무덤방

2마리

17번 무덤방

8마리

20번 무덤방

18마리

25-b 무덤방

?

26a, 26b무덤방

11마리

34a무덤방

5마리

37번 무덤방

13마리

68번 무덤방

2마리

 

70여개의 무덤방 중에서 빈 방은 53개나 된다. 후대의 고고학자들이 무덤크기를 보고 왕의 무덤이라고 명명은 했지만, 무덤구조는 경상도 사투리로 그냥 ‘퍼석’하다.

이런 표현을 하는 이유는 6000여 개의 통나무로 견고하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앞서 말한 바 있듯이 마치 ‘성냥쌓기’하듯이 가로 세로 통나무를 3~4단씩 교차해서 올렸다.

 

 

계속 포스팅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후대의 파지릭 유적이나 아크 알라하 유적에서 통나무로 만든 무덤방은 모서리 부분에 홈을 내어서 결구시키는 방법으로 제작되었다. 그래서 빈틈없이 무덤방을 만들 수 있었다.

 

아직 그 방법을 모르는게 아닌가?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무덤 가장 중심부의 주인공 남녀가 묻힌 중심 무덤방의 가장 안쪽 무덤방(2차 무덤방)은 단면도(그림 1)에서 볼 수 있듯이 무덤방의 벽이 빈틈 없이 만들어졌다. 가로세로를 교차해서 쌓는 방법이 아니라 방의 모서리에 홈을 내어서 결구시켜서 만들었다.

 

그림1. 아르잔-1호의 중심 무덤방

 

 

 

그들은 이러한 기술이 있었지만 무덤을 크게 만드는데 가장 중점을 둔 것으로 생각된다. 앞서 포스팅 한 바 있듯이 아무것도 없는 방, 아귀가 맞지 않아서 서로 연결되지 않는 무덤의 가장 북쪽 등으로 보아서 가장 크게 만드는 것에 ‘꽂힌’것이다. 그래서 무덤도 구덩이를 파지 않고, 땅 위에 축조했지 않았을까?

 

무덤을 땅 위로 올리는 것은 아르잔-1호 이전인 청동기시대에도 없었고, 아르잔-2호는 약간 애매하지만 주인공의 무덤방은 다시 무덤 구덩이를 팠다.

 

아르잔-1호와 같은 무덤구조가 몇 개나 더 있을지 모르겠지만, 궁금하기 그지 없다. 돌연변이처럼 나타난 무덤인지, 그 시절 유행했었는지. 아직 예가 하나 뿐이니 뭐라고 규정할 수 없다. 러시아 사람들이 귀찮아서 그냥 가만 두기만을 기대해 본다.

 물론 거대한 무덤이 동시대에는 여러 개 있었을 경우가 적지만,  만약 이러한 매장법이 중요한 아이덴티티 였다면 무덤을 땅위로 축조하는 점, 방사상의 무덤구조 등은 후대에도 오랫동안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3000여 년 전 시베리아 투바에는 직경 120m의 무덤이 만들어졌다. 무덤은 구덩이를 파지 않고 땅위에 나무를 쌓아올렸는데, 가장 중앙의 중심 무덤방을 기준으로 방사상으로 퍼져서 전체 무덤의 평면형태는 원형이다. 이 무덤의 중앙에는 무덤방 안에 또 무덤방(2차무덤방)이 있는 구조로 이곳에는 10인이 매장되었으며, 이 무덤의 북쪽에 있는 9호 무덤방은 중심무덤방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중심무덤방에는 말이 무덤방의 동쪽에 매장되었다.

 

2020/05/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1호분] - 3000여년 전 시베리아 무덤 안의 무덤방 1번.

3000여년 전 시베리아 무덤 안의 무덤방 1번.

3000여 년 전 시베리아의 투바(현재)에 위치한 해발 1050m의 우육고원에는 이름하여 ‘왕의 무덤 계곡’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이 곳에는 마을이름이 아르잔인데, 3000여년 전 무덤이 남아 있는 �

eastsearoad.tistory.com

 

 

 

 

그림 1. 아르잔-1호의 평면도

 

9번 무덤방처럼 통나무관 안에 단독으로 매장된 경우는 중심무덤방 안에 있는 무덤방과 같은 특징이기 때문에 중심매장부와 관련된 사람의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르잔-1호에는 중심 무덤방을 제외하고 13번과 31번 무덤방에서 사람과 말이 함께 묻혔다. 으며, 통나무관이 2개 있어서 2인의 매장된 곳 이기 때문이다. 13번(7.5×5.5m, 높이 2.5m)과 31번 무덤방(5.5×5.5m)은 9번에 비해서 큰데, 통나무관 2개씩이 확인되었고, 13번 무덤방에는 말이 7개체분이 발견되어서 각 방의 주인공의 계급 혹은 무덤 가장 중심부에 묻힌 주인공과의 관련성이 훨씬 9번 무덤방에 비해서 클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13번 방은 이미 도굴당했는데, 무덤방 바닥에는 검은 색 모피와 양모직물로 만든 옷이 남아 있었고, 인간의 뼈와 사람과 관련된 유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에 13번과 14번 방 사이에 두개골 3개과 모피와 직물과 만든 옷, 청동 핀, 청록색 터키색을 상감한 금제 귀걸이와 황금 장식판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기마용 말 7마리와 재갈, 멧돼지 송곳니로 만든 6개의 펜던트, 말꼬리를 장식한 황금판 등이 출토되었다.

 

필자는 이곳의 상황이 의심스러운데, 평면도에도 나오지 않고, 출토된 유물도 기술로만 남아 있다. 도굴꾼이 흘리고 갔다.  이 무덤에서는 사람의 뼈는 적어도 통나무관 혹은 무덤방에서 나오는데, 예외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말이 함께 부장된 또 다른 무덤방인 31번 무덤방은 도굴당하지 않았고, 말 10마리가 무덤방의 왼편에 일렬로 가지런히 놓인 상태였다. 말 10마리 모두 재갈과 재갈멈치 및 굴레장식으로 멧돼지송곳니를 이용했다.

그런데 31번 무덤방에는 다른 무덤방에서 확인되지 않았던 것이 발견되었는데, 2~4번 말의 몸통 뼈 사이에는 나무걸쇠가 확인되었다. 두개골과 거리가 멀어서 굴레가 아닌 안장을 고정하는 걸쇠 일 가능성이 있다. 안장은 이미 섞어서 없어진 상태이다.

 

자 다음은 31번 방에서 출토된 말의 마구이다.(그림 2) 

그런데 그림 2을 보시면 좀 이상한 점이 있지 않은가?

 

앞의 포스팅에서 다른 무덤방의 마구와 비교해 볼 때?

 

2020/05/1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1호분] - 3000여 년 전 시베리아의 말馬 무덤

3000여 년 전 시베리아의 말馬 무덤

시베리아 투바에는 3000여 년 전 스키타이의 왕이 묻힌 곳일 지도 모른다는 무덤이 있는 곳이 있다. 해발 1050m의 우육고원에 위치했는데, 그랴즈노프가 조사할 당시에는 무덤이 많아서 왕들의 무�

eastsearoad.tistory.com

 

 

 

그림 2. 아르잔-1호 무덤 31번 무덤방에서 출토된 재갈과 굴레장식. 번호는 말의 번호와 일치. 2~4번 말의 몸통에서 확인된 걸쇠는 도면이 없었다.

 

 

 

 

 

 

 

 

 

 

 

 

앞에서 설명했던 재갈만 있고 앞에서 보았던 재갈멈치가 없다.

이 무덤방에는 10마리의 말 두개골이 가지런했고 도굴당한 흔적도 없었지만, 재갈만 있었고 구멍 3개 있는 재갈멈치가 확인되지 않는다.

 

대신에 재갈의 끝 구멍(그림 2-6, 그림 3-19 )에 둥근 나무판이 청동고리로 연결된 것이 확인되었다. 이 나무판이 말의 입 옆을 눌러서 재갈멈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림 3. 아르잔-1 출토 재갈멈치, 이 유적에서는 재갈멈치가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가 있다. 그림 19와 그림 2-6은 같은 유물.

 

 

 

통나무관(전체길이와 너비: 180×60cm, 통나무관의 내부: 130×35cm, 통나무관은 중심 무덤방에서 출토된 것을 확인하시면 되는데, 통나무의 안을 다 판 것이 아니다. 도면이 제시되지 않았다.) 남서쪽 통나무관에서 40세 이상의 남성이 발견되었다. 무릎을 구부린 상태로 옆으로 뉘운 상태로 매장되었다. 다른 통나무관(전체 길이 2.3m, 관의 내부길이 1.5m)에는 뼈가 보존되지 않았다.

이 무덤방에서는 모직물과 모피옷이 많이 확인되었고, 귀걸이와 금제 장식핀 등이 출토되었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 마을에는 3000여년 전 무덤이 남아 있다. 학자들은 이 무덤이 스키타이 문화라는 유라시아 전역에 유행했던 문화의 발원지 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증명하는 유물이 동물문양장식, 무기와 마구라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동물문양장식이다.

동물문양장식이 어떤 특정하게 고정된 자세로 때로는 과장되지만 사실적으로 표현된 유물이 유라시아 전역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를 겪기 전까지 필자도 너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그렇게 멀리 널리?

 

그런데 이 생각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행동반경이 작은 우리한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농경시대를 오랫동안 거쳐왔고, 현대가 되어서는 섬나라에 갇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아니면 멀리갈수 없고 가봐야 서울-부산이 가장 먼 거리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소수민족들은 지금은 그들의 생활습관이 많이 바뀌었지만,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그들은 수천 km 반경의 지리정보를 머릿속에 넣고 있다고 한다(러시아 극동과 시베리아의 소수민족).

 

다시 돌아가서, 유라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는 것은 자동차가 없어도 가능했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그래도 자신의 반경은 있었지만.

동물문양장식은 왕래가 자유로웠던 시절에 모두가 이해하는 하나의 표식?과 같은 기능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각 지역의 무덤양식이 다르고 토기도 차이가 있는데, 비슷한 동물문양이 나타난다는 점, 또 동물문양은 사실적으로 보이지만 과장되게 표현해서 체계화 된다는 점 때문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아르잔-1호를 가장 주목하게 된 것은 어제 소개해 드린 2번 무덤방에서 출토된 원형 호랑이장식 때문이었다.

이 유적에서는 동물문양장식에서 아직 형상화 된 그리핀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파지릭 고원과 우코크 고원의 유적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산양장식이 출토된다(그림3,4). 말무덤인 26a, 26b 무덤방에서 출토되었다. 이 무덤방에서는 최소한 말 뼈 11마리분이 확인되었고 재갈과 재갈멈치 세트도 11벌 출토되었다. 굴레에 달던 각종 장식판들도 있다. 특히 멧돼지 송곳니로 제작된 장식판이 많이 출토되었다.

 

 

 

 

그림 1. 무덤방 26번, 무덤방 26번의 북쪽벽에서 청동산양(26)이 있었는데, 원래의 위치가 아니다.

 

 

 

 

그림 2. 무덤방 26번 출토 마구의 굴레장식 (1-7: 멧돼지 송곳니, 8-나무, 구멍에 멧돼지송곳니를 끼움, 9,10-목제)

 

그 중에서 중요한 유물이 발견되는데, 청동으로 제작된 산양장식물이다. 산양이 발을 세우고, 청동판 위에 올라간 모습이다. 모두 5점 확인되었고, 산양 아래의 청동판은 원뿔모양과 방형의 청동판 위에 올라간 것으로 구분된다. 그 중에 손잡이(그림4-1)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산양은 꽤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는데, 앞 다리와 뒷다리의 근육, 다리의 관절, 굽 등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재밌는 점은 눈이 매우 둥글고 크게 과장되었고 다리도 뚱뚱하게 과장되었다. 사슴이나 말 등의 우제류는 날씬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 산양은 캐리커쳐 한 느낌이다. 뿔도 면(그림 4-2)을 각지게 표현하기도 하고, 둥글게 표현한 면(그림 4-1)도 있다. 산양을 지지하는 지지대에는 구멍이 있는데, 아래가 비어 있다. 구멍을 통해서 굴레에 달아서 장식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말 무덤에서 마구와 함께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그림 3. 무덤방 26번 출토 청동산양(6: 상단의 3번유물과 같음, 7-상단의 1번유물)

 

 

 

 

그림 4. 무덤방 26번 출토 청동산양(1-그림 3의 2번유물, 2-그림 3의 4번 유물) 

 

그런데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는 곳이 있다. 아르잔과 멀지 않은 곳으로 저지대인 미누신스크 지역이다. 이곳에는 또 다른 스키타이 문화의 지역으로 타가르 문화라고 하는 문화가 알려진 곳이다. 필자가 스키타이 문화의 표를 공유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 타가르문화의 위치와 시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체로 기원전 7세기부터 확인되는 문화인데,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종모양의 받침대 위에 다리를 펴고, 뿔을 화려하게 표현하고 있다. 뿔이 아르잔 출토의 산양과는 달리 마디가 있고 더 길어서 야생염소로 생각한다. 다리를 뻗었고, 머리를 들고 있는 자세, 과장된 눈, 지지대 등 아르잔 1호의 산양표현과 같다. 물론 다리가 날씬하다는 점, 귀가 표현된 점 등은 차이가 있다. 염소아래의 지지대가 비어 있음으로 막대기에 꽂아서 일종의 지팡이 꼭지장식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림 5. 에르미타주 소장, 높이 18.6cm, 타가르문화, 기원전 7세기

 

타가르 문화가 있던 미누신스크 지역에는 청동기시대에 카라숙문화가 영위되었던 곳이다. 과장된 염소의 눈은 카라숙문화에서 사슴문양의 눈표현인데, 이 시절에는 청동단검의 손잡이 끝에 사슴머리가 달려서 출토되었다. 설명드린 바 있는데, 아르잔-1호 무덤의 봉분 위에는 등에 혹이 볼록 난 사슴이 그려진 돌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사슴돌은 이 지역 청동기시대인 카라숙문화에서 널리 유행하던 것이다.

 

스키타이문화의 기원론이 흑해북쪽일 것이라는 의견은 1850년 제국고고학위원회에서 주로 흑해북안을 위주로 발굴하면서 먼저 나온 것이고, 러시아 혁명 후에 시베리아를 발굴하면서 그 의견은 약간씩 흔들리다가 아르잔 1호의 발굴이 큰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앞서 말씀드린 바 있다. 그 의견이 더 설득력이 있어보이는 것은 이 지역의 청동기시대에는 청동유물에 이미 동물문양장식이 많이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잔 1호는 직경 120m의 크기와 6000개의 통나무를 써서 모든이를 압도하긴 했지만 실제 무덤은 견고함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유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점은 많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