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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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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가운데서 가장 늦은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에서는 막대기 끝 장식으로 청동으로 만들어진 아르김파사가 출토되었다. 이 유물은 발굴품은 아니고 유적에서 우연히 무덤의 봉분이 무너져서 노출된 것이다. 이곳에서 함께 출토된 유물 가운데 은과 금으로 만들어진 여신이 있다.

 

기본판은 철로 만들어지고, 금판(얼굴이 있는 면)(그림 1-1)과 은판(뒷면)(그림 1-2)을 덮어서 만든 것이다. 이 여신은 날개가 있고 양손에 동물을 쥐고 있는 모습이다. 가슴에는 동심원문양, 하단에는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양 날개와 이마, 손에 쥐고 있는 동물, 다리와 다리 아래의 알 수 없는 장치에는 구멍을 뚫고 은못으로 금판을 붙인 흔적이 남아 있다. 뒷면에도 남아 있다(그림 1-2).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없는 유물이다.

 

 비슷한 유물이 한 점(그림 1-3,4) 더 출토되었는데, 거의 같은 모습이고 같은 방법으로 제작되었지만 여성의 표현으로 보아서, 쌍(pair)은 아니다. 날개의 표현이 다르고, 여성의 하반부 옷자락 표현, 못의 위치에도 차이가 있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쌍으로 만들었지만, 현재 유물의 상태가 별로인게 아니다. 처음부터 그림 1의 여성과 비슷하게 만들었으나 더 잘 못 만들어졌다.

 

 

그림1.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출토, 1851년 발견품, 철제(기본판)+은판+금판, 1: 10×12cm, 3: 11.6×12.8cm

 

 

헤로도투스(I권 105)에 따르면 스키타이 인들은 근동에서 숭배하던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숭배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스키타이 인들은 시리아의 도시 아스칼론에 있는 아프로디테 우리니아 신전을 훔쳤고, 여신은 ‘여성질병’으로 그들을 처벌했다고 한다.

IV권(67)에서 이 여신을 숭배하는 스키타이 사제는 내시로 이른바 에나레이라고 하는 설명이 있다.

 

2020/08/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흑해의 여신과 헤로도투스의 메세지

 

흑해의 여신과 헤로도투스의 메세지

스키타이 신화는 헤로도투스의 역사 IV권, 59에서 전해진다. ‘헤스티아는 모든 신들보다 높고, 그 다음은 제우스와 땅, 그 다음은 아폴로,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헤라클레스, 아레스이다. 이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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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아르타모노프는 날개 달리고 양 손에 동물을 쥔 여성을 헤로도투스가 기록한 스키타이 신 중 타비티, 아피, 아르김파사 중에 한 명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신앙은 그리스 신화 뿐 만 아니라 중동에서 믿는 아타르가티스(그리스명: 데르케토, 반은 여자, 반은 물고기로 시리아의 아스칼론 신전에 새겨져 있다.), 키벨레(땅, 물, 동물의 여신)와 같다. 그래서 스키타이 여성 형상물을 신화속의 인물과 비교해서 찾는 것은 신뢰할 수 없다(알렉세예프 2012).

 

헤로두투스도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신앙이 I권에서는 시리아의 도시에서 숭배되는 것으로 했다가 나중에 IV권에서는 그리스 신화와 비교했다.

 

신화 속의 인물을 찾는 것은 분명히 흥미로운 작업이기는 하다. 그러나 신화가 어떤 특정 민족의 것이나 나라의 것이 아닐 수 있다. 누가 누구의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인간 보편의 생각과 두려움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신앙 혹은 신화, 역사는 깡그리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대충만들고, 수입해서 쓰고.....

상투적이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이런 말이 생각난다.

 

참고문헌

 

Полин С.В., Алексеев А.Ю. 2018 :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Александропольский курган IV в. до н.э. в Нижнем Поднепровье. Киев, Берлин: «Видавець Олег Філюк». 2018. 930 с. («Курганы Украины». Т. 6)(폴린, 알렉세예프 2018, 드레프르강 하류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

Артамонов М.И. 1961 : Антропоморфные божества в религии скифов. // АСГЭ. [Вып.] 2. Л.: 1961. С. 57-87.(아르타모프 1961, 스키타이 의례 속의 의인화된 신)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 스키타이 문화에는 스키타이의 여신인 아르김파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표현된 유물들이 있다.

특히 기원전 5세기 후반기에는 여신의 모습이 각 유적 마다 차이가 있다. 침발카 유적에서는 양손에 그리핀 머리를 쥔 여성, 쿨 오바 유적에서는 어깨에 그리핀이 달리고, 한 손에는 단검, 다른 손에는 헤라클레스의 머리를 들고 있는 여성이 확인되었다. 볼쇼야 블리지니차 유적에서는 그리핀과 손의 표현은 없고 대신 날개달린 여성이 장식판에 표현되었다.

이들 유적은 대부분 기원전 450~400년(기원전 5세기 후반)에 해당된다(알렉세예프 2003).

 

*앞의 포스팅에서 유적의 연대를 기원전 4세기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책마다 약간씩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렉세예프가 정리한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연대는 유적에서 채취한 탄소연대와 유적의 유물을 직접 비교한 그간의 업적을 총정리 한 것이다.  비교적 유적의 연대를 세분화 하고 있어서 그가 정리한 연대를 참고로 하고자 한다.

 

스키타이 여신 아르김파사에게 날개가 생기고, 양 손이 모두 표현된 유물이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에서 출토된다. 이 유적은 흑해 스키타이 대형고분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에 해당되는 기원전 300년 경(기원전 4세기)에 해당된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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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물은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 있다고 했으나(아르타모프 1966), 두 손에 옷자락 끝을 쥐고 있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막대기 끝을 장식하는 일종의 간두식(竿頭飾: 막대기 머리 장식)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의례용품이다. 

 

 

그림 1.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 출토, 청동, 높이 15.7cm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은 흑해에서 가장 큰 무덤 중에 하나인데 높이가 21m 이상인, 둘레길이는 320m인 것으로 알려졌다(그림 3).  봉분 주변으로는 흙으로 된 벽이 둘려져 있고, 해자도 설치되었다(그림 4-4). 1851년에 봉분의 남쪽에서 철판이 확인되고, 그 때 청동으로 만든 여신(그림1)의 여신과 청동 삼지창(그림 2)이 함께 노출되었다. 발굴은 1853년, 1855-1856년에 했다.

 

그림 2.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 출토, 청동, 높이 28.9cm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의 매장주체부는 가장 중앙에 만들어져 있다. 중앙 무덤의 통로에는 인간 두개골이 확인되었고, 복도의 앞부분에는 말 뼈가 확인되었는데 14마리 이상이었다. 이곳에서도 말과 관련된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봉분의 북동쪽에는 두 번째 무덤이 있는데, 봉분이 만들어진 이후에 생긴 추가장이다. 입구와 무덤방으로 연결되는 복도로 구성된 것이다. 두 무덤방 모두 도굴당한 흔적이 생생하다.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은 도굴이 매우 극심했지만 남아 있는 유물로도 매우 중요한 무덤임을 알 수 있다. 비슷한 시기의 체르도믹 유적, 솔로하 유적과도 다른 무덤 구조이다. 두 유적의 무덤은 외형은 스키타이 문화의 것이지만, 내부는 그리스식이다. 그러나 알렉산드로프키폴 유적은 스키타이문화의 무덤 양식 그대로이지만 당대에서 가장 크게 만들어진 무덤이다.

 

 

그림 3.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 발굴 전

 

그림 4.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의 단면도, 단면도에서 점선으로 그려진 것은 도굴의 흔적을 그린 것이다. 1,2-도굴입구, 3-추가장(북동쪽 무덤방)의 무덤방단면도, 4, 봉분과 중심무덤방의 동서단면도, 5-중심 무덤방의 남북단면도, 6,7,8-중심무덤방 복도의 단면도

 

 

알렉산드로프스키폴에서 나온 아르김파사는 동물문양이 없고, 날개와 손이 있는 여신이다....

이 모습이 스키타이 인들이 믿었던 신화속의 인물일까?

곧 없어질 자신들의 세상을 알았을까?

 

 

참고문헌

 

아르타모노프 1966,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Артамонов М.И. 1961 : Антропоморфные божества в религии скифов. // АСГЭ. [Вып.] 2. Л.: 1961. С. 57-87.(아르타모프 1961, 스키타이 의례 속의 의인화된 신)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 스키타이 문화에서 여신이 표현된 금속제품은 켈레르메스 유적의 은제거울, 침발카 유적의 마면장식, 쿨 오바 유적과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의 장식판,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의 귀걸이가 있다. 그 중에서 켈레르메스 유적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원전 4세기이다.

 

기원전 4세기의 여신은 소형의 유물이 대부분이지만, 오늘 보여 드리는 유물은 비교적 크고 여신의 모습도 상당히 차이가 있다.

 

청동에 표현된 여신은 고곤 메두사의 얼굴이다. 머리가 크고 눈이 크게 과장되고, 혀를 내밀고 있다. 머리는 곱슬머리이고, 머리에서 대칭형으로 올라가는 뱀이 돋을 새김되어 있고, 그 사이에는 연꽃 문양이 장식되었다.

 

이 유물은 어디의 일부일까?

 

스키타이 문화에서 방호용구로 투구(헬멧), 방패를 소개해 드렸는데, 이 유물은 인체의 상반신을 보호하는 갑옷이다. 메두사의 얼굴이 새겨진 갑옷 조각은 가슴가리개 부분인데, 청동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리스로부터 수입된 유물이다.

 

 

그림 1. 엘리자베틴스키 유적의 5호분, 기원전 5~4세기, 1914년 베셀로프스키 발굴, 너비 41cm, 길이 44cm.

 

메두사의 얼굴이 새겨진 갑옷은 세미브라트노예 유적의 4호(그림 2, 그림 3)에서도 출토되었다. 스키타이 문화의 갑옷은 철판을 잘라서 가죽끈으로 이어 붙인 미늘 갑옷(찰갑)이다. 메두사의 얼굴이 장식된 갑옷보다는 보호의 기능에 충실한 유물이 대부분이다. 기원전 6세기의 코스트롬스카야 유적과 우스티-라빈스키 유적에서 미늘갑옷이 출토된다.

 

그림 2. 세미브라트노예 유적의 4호에서 출토된 갑옷조각, 기원전 4세기

 

그림 3. 그림 2의 복원

 

미늘갑옷을 구성하는 철판의 길이는 2~5cm가량이고, 길이의 1/2 혹은 2/3이상 겹쳐서 가죽으로 이은 것이다(그림 4). 몸통, 어깨, 배꼽아래 부분의 크기가 다르다(그림 4).

 

 

그림 4. 주로프카 유적의 401호 출토품, 보르빈스키 1903년 발굴, 기원전 5세기.

 

그런데 우리는 이미 비슷한 미늘 갑옷을 본 적이 있다.

 

솔로하 유적(기원전 4세기)에서 출토된 황금빗에 표현된 말탄 무사는 이렇게 생긴 갑옷을 입고 머리에는 그리스식 투구를 쓰고 있는 그리스 전사이다(포스팅 참고).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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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면장식이나 갑옷에 표현된 스키타이 여신은 일종의 보호용구에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외의 작은 장식판도 부적의 기능을 했다.

 

스키타이 여신 아르김파사는 원래 다산의 여신이었으나, 기원전 4세기 이후가 되면 모습도 각양각색이고, 엄격한 모습(침발카 유적)부터 배 나온 여신(톨스타야 마길라)까지 표현도 자유로워진다. 여신의 역할을 사람들이 거의 기억 못했을 수 있다.  대신 보호구와 장식판으로 사용되는 점을 보아서  단순한 보호(부적)의 의미(기능)가 강해졌을 수 있다. 알 수 없다.

 

상상해 본다. '어디서 들었는데,,이 얼굴이 있으면 안 다친데,,,,그냥 보호만 해준다면 어떤 얼굴이라도 상관없어...라고 하면서' 갑옷을 입는 스키타이 전사를..

 

 

참고문헌

Черненко Е.В. 1968 : Скифский доспех. Киев: «Наукова думка». 1968. 190 с(체르넨코 1968, 스키타이 갑옷)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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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남성 석인상은 헬멧을 쓴 남성 무사가 무기를 풀 착장한 채로 확인되기도 했다. 청동투구(헬멧)은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되면서 기원전 7세기에 사용되었던 방어용구이다.

 

청동헬멧을 쓴 남성 무사는 어떤 말을 타고 다녔을까?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켈레르메스 유적 1호에서는 모두 24마리의 말이 남서쪽벽에 나란히 매장되었다(그림 5). 서쪽벽에 말 12마리가 누워 있었는데, 그 중 10마리는 마구를 착장하지 않았다. 두 마리에는 은제 마구장식(말의 볼 가리개)(그림 1) 이 착장되었다. 남쪽벽의 말(13~18번)은 6마리는 황금 굴레장식, 나머지 6마리는 뼈로 만들어진 굴레장식(그림 2)을 착장했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베셀로프스키 발굴), (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베셀로프스키 발굴), 동물이 새겨진 굴레장식, 뼈(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그림 3.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베셀로프스키 발굴), 황금 (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필자편집)

 

그중에서 말의 얼굴장식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것은 남쪽벽의 13번 말이다(그림 3)

이마부터 콧 등까지 가리는 앞 장식판(그림 3-1)과 재갈멈치 위에 달린 볼 가리개(그림 3-2, 3)와 굴레를 감싼 장식판으로 구성된 것이다. 볼가리개는 양 면(그림 3-2,3)의 문양이 차이가 있다. 기본적으로 나선문양을 배치했다는 점은 같으나, 왼쪽 뺨 가리개(그림 3-2)는 다섯 개의 동심원문양 안에 나선문양을 배치한 것이고, 오른족 뺨 가리개(그림 3-3)은 두 개의 동심원문양을 기본 프레임으로 한 것이다. 굴레를 감싼 다른 장식판에도 모두 나선문양이 그려져 있다.

 

 

 

 

 

그림 4.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베셀로프스키 발굴)의 복원도(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그림 5.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베셀로프스키 발굴)의 평면도(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고분에서 남과 서쪽으로 나누어서 말을 매장한 것은 왕실의 환경이 혼합민족을 구성을 암시하며 스키타이 인 뿐만 아니라 인접한 지역의 사람을 의미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말의 장식이 은, 뼈, 금으로 차등을 둔 것에 대해서 사회적 위계를 반영한다고도 한다(갈라리나 2006).

 

갈라리나의 생각이 딱히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말의 장식을 만든 소재가 다른 것은 용도에 따라서 달랐을 가능성도 한 가지 덧 붙이고자 한다.  청동 헬멧을 쓴 무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거다.  의전용이라면 황금장식판을 단 말을 탔을 것이고, 전쟁에 나갈 참이었다면 뼈로 만든 굴레장식이 달린 말을 탔을 것이다.  동물장식은 일종의 부적(amulet)과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3번 말의 굴레장식은 이 유적에서 출토된 우라르트-스키타이 양식의 유물과는 관련이 없는 지역의 특징적인 유물이다. 나선문양은 동물문양과 함께 흑해 스키타이에서 유행하던 유물이기 때문이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금으로 장식된 검과 투부, 은제 거울 때문에 그것에 관심을 빼앗기기도 하지만 좀 더 들여다 보면 기원전 7세기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모든 것을 반영한다.

 

 

 

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라니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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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문화에서 발견되는 공격용 무기는 화살, 검, 전투용 도끼가 있다. 실제 유적에서 유물도 출토되지만, 사슴돌에는 허리띠에 이 유물이 새겨져 있다.

사슴돌이라고 하지만, 일종의 돌기둥으로 입석(立石 세워진 돌)인데, 유라시아 초원의 청동기시대부터 확인된다. 특히 시베리아의 청동기시대에는 사슴이 많이 그려져서 사슴돌로 부른다. 사슴 뿐만 아니라 허리띠에 달린 무기, 장신구 등도 그려진다.

 

스키타이 문화의 서쪽지역에서는 주로 무기가 그려진 사슴돌이 확인된다. 무기만 그려져 있지만 전체적인 모양은 시베리아 혹은 몽골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다.

 

주보프스키 후토르 유적 뿐만 아니라 우스티-라빈스키(Усть- Лабинский, Ust' Labinskiy), 키즈부룬(Кызбурун, Kyzburun) 등에서도 발견되었다. 모두 카프카스 산맥 북쪽이다(주보프스키 후토르는 정확한 지점은 찾지 못했는데, 켈레르메스 유적 부근이라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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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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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티 라빈스키 유적의 돌기둥(1.75m)도 무덤 입구에 새워졌는데, 바로 아래에서 철제와 골제 화살촉, 석탄조각과 구리판 등이 발견되었다.

우스티 라빈스키, 키즈부른 유적의 돌기둥은 전체적인 형태가 같다. 키즈부른 유적의 돌기둥은 한쪽은 부러졌지만 상단부는 비스듬하고 그 아래에 침선으로 털을 만든 후 그 아래에 둥근 고리표현, 체인, 허리띠가 시문되었다. 허리띠에는 검과 고리트가 ×모양으로 그려져 있고, 투부가 걸려 있다. 키즈부른 돌기둥에는 긴 검 옆에 단검이 한점 더 있고, 허리띠의 매듭도 표현되었다.

 

그림 1.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사슴돌(코발레프 2000), 1-주보프스키 유적, 2-우스티 라빈스키, 3-키즈부른 유적의 돌 기둥, 각각의 번호에서 같은 유물을 여러 번 그린 것은 연구자마다 무기의 모양을 약간 씩 다르게 인식해서이다.

 

흑해 북쪽에서 출토되는 전투용 도끼는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는데 청동제이다.

 

그림 2.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이른 시기 전투용 도끼(코발레프 2000)1-주보프스키 유적의 사슴돌, 2-우치쿨란(Учкулан, Uchkulan), 3,4-피춘드스키(Пицундский, Pitsundskiy) 10-베르흐네 코반스키(Верхнекобанский, Verkhnekobanskiy) 무덤

 

사슴돌에 그려진 검은 날이 직인이며, 손잡이 끝이 반원모양이다. 실제 유적에서는 철검(그림 3-9~12)과 청동검(그림 3-13~17)이 나온다.

 

그림 3.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이른 시기 검(9~12:철, 13~17: 청동) 9-수보토프스키(Субботовский, Subbotovskiy 마을유적, 10-수보로보(Суворово, Suvorovo 유적, 11-무게르간스키(Мугерганский, Mugerganskiy 12-모그-카 파르스(мог-ка Фарс, mog-ka Fars, 13~15: 알타이 출토, 16-세미파라틴스키(Семипаратинский, Semipalatinski) 17-안드례프스코예 오제로(Андреевское озеро, Andreevskoe lake 유적(코발레프 2000인용)

 

앞서 보여드린 켈레르메스 유적과 멜구노프 유적의 철검은 금으로 제작된 검집으로 인해서 실제 칼은 주목받지 못했으나, 실제로 사용된 유물은 아주 심플하다. 손잡이 꼭지는 반원모양이고 검의 손잡이(병부)에는 침선이 새겨진 유물이 있으며, 날은 직선이다.

 

 

사슴돌에 그려진 전투용 도끼는 앞의 날이 부채꼴 모양이지만, 날이 뾰족하고 반대면은 날이 서지 않은 형태의 투부(그림 4)도 존재한다. 물론 기원전 7~5세기 유물이다.

 

그림 4. 기원전 7~5세기 흑해 스키타이 문화에서 출토된 전투용 도끼(알렉세예프 2003 인용)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장식판을 단 전투용 도끼와 황금집에 들어간 철검은 의례용이다. 의례용 검과 도끼는 우라르트-스키타이 양식으로 스키타이 인의 주문에 의해서 외부에서 제작된 것이다. 반면에 실제로 사용된 스키타이 무사들의 공격용 무기도 검과 도끼가 있었고, 외부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라 지역 내에서 제작된 것이다.

 

 

 

참고문헌

 

Савинов Д.Г. 1977 : О культурной принадлежности северокавказских камней-обелисков. // Проблемы археологии Евразии и Северной Америки. М.: 1977.(사비노프 1977, 북 카파카스 지역 돌 기둥에 새겨진 문화적 특징

Ковалёв А.А. 2000 : О происхождении оленных камней западного региона. // Археология, палеоэкология и палеодемография Евразии. М.: «ГЕОС». 2000. С. 138-180. (코발레프 2000, 유라시아 서부지역 사슴돌의 기원)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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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유적 중에 가장 이른 시기의 켈레르메스 유적(기원전 8~7세기)에서는 청동거울이 출토되었다. 청동거울에는 꼭지에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이 부착되었다.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은 이 유적의 굴레장식으로도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보다 더 이른 스키티이 유적인 시베리아의 아르잔-1 유적(기원전 9세기)에서 출토된 바 있다.

 

켈레르메스 유적은 1903년부터 슐츠가 발굴했는데, 그 중 2호분(슐츠의 번호)에서는 청동솥이 발견되었다. 청동솥은 다리가 나팔상으로 붙어 있고, 손잡이에 산양 두 마리가 달려 있는 것이다. 솥의 입구 가까이에는 삼각형 문양이 표현되었다(그림 1). 주물로 만든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림 1. 켈레르메스 고분 출토, 슐츠발굴품

 

 

 

그림 2. 켈레르메스 고분 출토, 슐츠발굴품

 

 

청동솥은 1점 더 있는데, 동체부에 산양장식과 기하학적 문양이 붙어 있고 손잡이에도 산양장식이 달려 있는 것이다. 청동솥 바닥에는 아래에 다리가 붙었던 흔적만 남아 있다. 전체모양은 그림 1과 비슷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출토당시에 이미 부서진 채 확인되었다.

 

슐츠는 무덤구조를 이해하지 못했고, 현대에 발굴된 바에 따라서 살펴보면 슐츠는 무덤의 크기를 매우 과장되게 설명했다(갈라니나 2006).

 

한편 시베리아의 아르잔-2호는 켈레르메스 유적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유적이다. 기억하시겠지만, 아르잔-2호의 주인공 무덤방 5호에는 2중으로 나무방이 만들어졌는데, 그 사이에 청동솥 2점이 확인되었다. 청동솥은 나팔상의 다리가 달린 점은 비슷하지만 손잡이의 형태는 차이가 있다. 주물로 만든 흔적이 남아 있는 점 등은 유사하다.

 

2020/05/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2700년 전 유목민의 냄비

 

2700년 전 유목민의 냄비

시베리아의 알타이 투바 공화국 해발 1500m 우육고원에는 3000~2700여 년 전의 무덤이 남아 있다. 아르잔 마을에 위치해서 아르잔 유적이라고 부른다. 아르잔-1호와 달리 아르잔-2호는 무덤 구덩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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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문화에서 기원전 8~7세기 청동솥은 동물문양장식이 주요하게 부착되었으나, 기원전 5세기 이후가 되면 장식적인 요소가 더 많아진다. 문양의 요소에도 그리스적인 요소가 더 가미된다.

 

그림 3. 라스코파나 모길라 출토, 기원전 4세기

 

기원전 8~7세기의 스키타이 문화에서 시베리아와 흑해에서 모두 청동솥이 확인되지만 아르잔-2 유적 보다 켈레르메스 유적의 청동솥은 동물문양이 부착되면서 장식적인 요소가 더 많아지는 차이점이 있다.

 

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라니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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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신화는 헤로도투스의 역사 IV권, 59에서 전해진다.

‘헤스티아는 모든 신들보다 높고, 그 다음은 제우스와 땅, 그 다음은 아폴로,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헤라클레스, 아레스이다. 이 신들은 스키타이인들이 숭배하고 스키타이 왕족 또한 포세이돈에게 희생물을 바친다. 스키타이에서 헤스티아는 타피티(Табити, Tabiti), 제우스는 파파이(Папай, Papai), 땅은 아피(Апи, Api), 아폴론은 고이토시르(Гойтосир, Goytosir), 아프로디테 우라니아는 아르김파사(Артимпаса, Artimpasa 혹은 Argimpasa) , 포세이돈은 파기마사다(Фагимасада, Fagimasada) 라고 한다.’

 

헤로도투스가 남긴 짧은 메시지에서 스키타이 신의 이름을 알 수 있고, 이를 근거로 스키타이 문화에 일곱 신 숭배사상이 있었다고 여겨진다(아바예프 1962). 7신 가운데 여성은 타피티와 아르김파사이다. 헤로도투스가 그리스와 스키타이 신을 비교한 것은 각 신의 기능이 같았기 때문이다.

타피티는 그리스의 헤스티아와 같은 기능인 난로 혹은 불의 신이고, 아르김파사는 다산의 여신이다. 헤로도투스는 아프로디테와 비교했으나, 고대 이란(아나톨리) 지역의 신인 ‘아르티’와 이름이 거의 유사해서 아르티(Арти, Artie)와 더 가깝다는 주장이다.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는 기하학적인 문양보다는 주제가 있는 문양표현이 많다. 그중에 인간도 많이 등장하는데, 여성이 표현된 가장 오래된 유물은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은제 거울이다. 은제거울에 표현된 여성은 양 손에 맹수를 손에 쥐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원전 4세기 유적에서는 맹수를 대신해서 그리핀 혹은 헤라클레스의 머리와 단검을 손에 쥐기도 한다. 손이 없이 날개표현만 있는 유물도 있다.

 

 

2020/08/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전설 속의 스키타이 여신

 

전설 속의 스키타이 여신

흑해 북안 스키타이 사람들에게 탄생설화가 있다.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스키타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그리스인 들이 하는 이야기가 헤로도투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스키타이 인들은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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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유적과 유물] - 흑해 스키타이 여신, Argimpasa

 

흑해 스키타이 여신, Argimpasa

기원전 8~7세기 흑해 스키타이 문화가 번성했을 때 인접한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유물이 있다. 그리스, 우라르트, 앗시리아에서 제작된 유물은 스키타이 인이 주문해서 제작했던 것이다. 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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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흑해 스키타이 신화의 여신을 배경으로 한 유물

 

흑해 스키타이 신화의 여신을 배경으로 한 유물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침발카유적에서 출토된 마면장식에 여신이 표현되어 있다. 양손에 그리핀 머리를 움켜잡고 있는데, 몸통은 뱀의 형상이다. 유물은 그리스에서 제작되었으나, 스키타이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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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기원전 4세기 흑해의 스키타이 여신

 

기원전 4세기 흑해의 스키타이 여신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서는 스키타이 신화 속의 인물이 등장한다. 스키타이 여신인 아르김파사 혹은 소아시아(현재의 아나톨리지역)에서 유행한 키벨레(Cybele)가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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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 유적인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에서는 귀걸이 장식판에 두 여성이 표현되어 있다.

양 손을 머리 위로 들고 있고, 하반신 옷자락 부근에 두 마리 그리핀이 표현되어 있다. 다른 유물과 다른 점은 하반신의 옷자락 중간이 불룩하게 솟아 있는데, 임신한 모습일 가능성도 있다.

 

그림 1.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 출토 귀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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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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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에서 나온 귀걸이의 여성은 같은 시간대의 침발카 유적의 마면장식에 표현된 여성과 비교해 볼 때 세부 표현이 매우 불분명하다(한마디로 허접하다). 각 유물의 제작지가 다르고 만든 이가 달라서 이기 때문일 수 있다.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에서 출토된 귀걸이는 종교의 엄격하고 근엄한 여신이라기 보다는 유행하던 문양일 수 있다. 다산의 여신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배가 나오게 표현했을 수 있지만, 다른 유물의 여성은 그렇지 않다. 그 만큼 이 시기의 여신숭배 혹은 스키타이 신화가 자유롭게 해석될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엄격한 분위기라면 배 나온 여신을 상상할 수 있을까?

 

헤로도투스가 알았던 스키타이 신화는 원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을 수 있다. 켈레르메스 유적의 은제거울에 그려진 여성은 기원전 8~7세기에 통용되던 신화 속의 인물이고, 헤로도투스는 기원전 490년~480년 사이를 배경으로 기원전 440년에 기록(역사)을 남겼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Абаев В. И. Культ «семи богов» у скифов // Древний мир. Академику В. В. Струве. М., 1962.(아베프 1962, 스키타이의 7신에 대한 신화)

Мозолевській Б.M. Товста Могила. Київ, 1979, с. 40(모졸레프스키 1979, 톨스타야 마길라, 우크라이나어, 도면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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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서는 스키타이 신화 속의 인물이 등장한다.

 

스키타이 여신인 아르김파사 혹은 소아시아(현재의 아나톨리지역)에서 유행한 키벨레(Cybele)가 자주 등장한다. 켈레르메스 유적의 은제 거울, 침발카 유적의 마면장식, 쿨-오바 유적의 황금장식판 등이 있다. 켈레르메스 유적은 기원전 7세기이고 나머지 유적은 기원전 4세기이다.

 

켈레르메스 유적의 은제 거울은 그리스에서 제작되어서 주인공 여성이 키벨레라고도 하지만, 원래 키벨레 숭배사상은 아나톨리 지역에서 먼저 생겨서 그리스가 수입해 간 것이다. 또 쿨-오바 유적의 여성이 한 손에는 단검, 한 손에는 헤라클레스의 머리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키벨레 보다는 스키타이 신화의 아르김파사를 상징할 가능성이 많다.

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유적에서 비슷한 구도의 여성이 계속 출토되는데, 제작지가 다른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습의 형상이 계속 유물에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주문자의 요구가 강력하게 반영된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주문자는 스키타이 인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신화 속 인물을 주문한 물건에 반영했을 가능성이 많다(김재윤).

 

스키타이 여신 아르김파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여신의 모습에 변화가 많다.

침발카 유적, 쿨-오바 유적의 여신은 켈레르메스 유적의 여신과 양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달라지고, 날개 표현이 다르다. 옷자락의 끝에 뱀의 몸통을 한 그리핀을 장식한 것은 같다.

 

그런데 기원전 4세기의 유물 중에는 두 손과 동물이 없고 날개만 있는 여신이 출토된다. 볼쇼야 블리즈니차(Большая Близница, Bol'shaya Bliznitsa)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그림 1)이 있고, 유적명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인접한 곳에서 출토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 장식판이다(그림 2).

손은 없고 날개와 하반부의 옷자락 끝이 둥근게 말려 있다. 두 유물 모두 날개 끝과 머리장식, 옷자락(하반식)에 구멍이 있는데, 어딘가에 걸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두 유물은 얼굴의 크기와 몸 통의 전체 비율에 차이, 하반부의 옷 자락에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다산의 상징인 스키타이 여신 아르김파사를 형상화 한 것이다.

 

 

그림 1. 볼쇼야 블리지니차 유적 출토, 황금장식판, 길이 5.3cm(아르타모프 1961)

 

 

그림 2. 기원전 4세기의 여신상, 황금장식판, 흑해부근 출토.(굴랴예프 2005)

 

기원전 4세기의 유물 가운데 두 손 대신 날개표현 및 옷 자락 끝에 나선모양 장식으로 변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보스포러스 지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

기원전 5세기 이후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 그리스 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된다고 한다. 스키타이 여신 아르김파사가 동물문양 대신에 옷자락 끝이 나선문양으로 바뀌게 된 것도 사회적인 변화일 가능성이 크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1 : Антропоморфные божества в религии скифов. // АСГЭ. [Вып.] 2. Л.: 1961. С. 57-87.(아르타모프 1961, 스키타이 의례 속의 의인화된 신)

Гуляев В.И. 2005 : Скифы. Расцвет и падение великого царства. М.: «Алетейя». 2005(굴랴예프 2005, 스키타이, 위대한 왕국의 흥망성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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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의 철기시대 문화인 스키타이 문화는 시베리아와 흑해부근에서 공통점이 확인된다. 스키타이 3요소라고 불리는 무기, 마구, 동물문양장식은 넓은 지역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은 것이다.

 

무기는 공격용과 방어용이 있다. 스키타이 문화의 공격용무기는 활과 화살, 검과 칼, 도끼가 한 세트이다. 방어용은 방패와 헬멧이 있다.

 

그런데 스키타이 문화의 헬멧은 철동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켈레르메스 고분에서 출토되면서 쿠반스타일 헬멧으로 불린다. 헬멧은 알타이와 중앙아시아, 중국 동북지방에서도 확인된다.

시베리아 기원이 아닌 유물로 흑해에서 만들어져서 스키타이 문화의 다른 지역으로 뻗어나갔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림 1.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청동헬멧

 

헬멧을 쓴 석인상도 흑해에서 발견되었다. 쿠체보초프카 마을에서 출토된 석인상이다. 석인상은 허리에 벨트를 차고 검을 앞으로 표현하고 있다. 좌측에는 고리트를 착장한 것이다.

쿠반스타일의 헬멧은 정수리 부근에 고리가 달린 것인데, 석인상의 머리에도 끝이 뾰족하게 표현되었다. 손은 앞으로 향하고, 아무것도 쥐지 않았다.

 

 

그림 2. 키로보그라드스카야 지구의 쿠체보로프카 마을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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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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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돌은 스키타이 문화권의 동부와 서부 모든 지역에서 확인되지만, 쿠반 스타일의 힐멧을 쓴 석인상은 서부에서만 확인된다. 그리고 기원전 5세기 이후가 되면 석인상은 그 모습이 변화된다.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Алексеев А.Ю. Шлем «кубанского» типа из Келермесского могильника (раскопки 1993 г.)//НИЖНЕВОЛЖСКИЙ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ВЕСТНИК 2019. Т. 18. № 2(알렉세예프 2019, 켈레르메스 무덤(1993년 발굴)에서 출토된 쿠반 스타일 헬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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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검은 실제 유물로도 확인되지만, 돌에도 새겨져 있다.

사슴돌이라고 불리는 입석(立石: 돌 기둥)에 그려져 있다.

쿠반 지역(코카스서 산맥 북쪽)의 주보프스키 후토르(Зубовский хутор, Zubovskiy khutor) 고분의 입구에서 발견되었다. 이 유적은 켈레르메스 유적을 발굴한 베셀로프키가 1889년에 발굴했다.

 

 

무덤의 봉분 깊이 1.4m에 가로로 쓰러진 채 길이 2.3m의 입석물이 발견되었다. 사슴돌이 발견된 바로 아래에서는 무덤방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고분에서는 한 구역안에 세 개의 무덤방이 확인되었다. 그곳에서는 토기, 창과 철 칼이 출토되었고,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매우 이른 시기의 것이다.

주보프스키 후토르 사슴돌은 네 면에 걸쳐서 그림이 남아 있는데, 상단과 하단이 비스듬하게 처리되었다. 가장 상단에는 가로 방향으로 선을 새기고 아래에 그림이 그려졌다. 크게 두 가지 주제가 있는데, 동물문양과 무기이다. 무기가 매달린 허리띠에는 전투용 도끼, 고리트, 검이 그려져 있다. 그 위에는 목걸이 모양의 체인이 길게 내려워져 있고, 그 위의 둥근 고리가 그려져 있다.

반대편 가장자리에는 동그라미 원 안에 동물이 한 마리 그려져 있는데, 동물이 거꾸로 그려있다.

 

 

그림 1.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사슴돌, 주보프스키 후토르 유적, 도끼의 모양(1c,1d,1e)은 연구자 마다 약간씩 이해가 다르다(코발레프 2000).

 

주보프스키 후토르 유적에 그려진 검은 매우 심플하다. 켈레르메스 유적과 멜구노프 유적에서 나온 의례용 검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손잡이 끝이 둥글고, 날은 직인이다. 사슴돌에 그려진 도끼의 날은 약간 직선이 아니라 부채꼴 모양으로 그려진 것이다. 실제로 도끼와 검 모두 이지역에서 실제로 발견된다.

 

 

사슴돌의 존재는 시베리아의 아르잔-1호와 아르잔-2호에서도 무덤의 꼭대기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주제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무기를 매달고 있는 허리띠와 둥근고리는 아르잔-1호 와 아르잔-2호에서 발견된 사슴돌에도 그려져 있다.

2020/06/1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시베리아의 사슴돌

 

시베리아의 사슴돌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해발 1500m 우육고원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거대한 무덤들이 존재한다. 이들 중에 처음 발굴된 아르잔-1호를 보고한 그랴즈노프는 이 우육고원에 위치한 분지를 ‘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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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1호분] - 3000여 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무덤 위 사슴과 멧돼지

 

3000여 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무덤 위 사슴과 멧돼지

3000여 년 전에 시베리아의 투바의 우육고원에는 직경 120m, 높이 3~4m의 대형 무덤이 만들어졌고, 1971년부터 발굴되어서 아르잔-1호로 명명되었다. 이 무덤을 발굴한 그랴즈노프는 이미 1920년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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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지역 사슴돌 모두 가로 방향의 침선을 그리고 그 아래에 문양을 그리고 있고, 입석의 가장 꼭대기를 깍아지 듯이 뾰족하게 처리한 것이 아니라 둥글게 만든 것이다.

전체적인 모양은 남성성의 상징일 수 있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시베리아든지, 흑해 든지 무덤에 돌기둥을 세워 두는 전통이 있다.

 

참고문헌

Савинов Д.Г. 1977 : О культурной принадлежности северокавказских камней-обелисков. // Проблемы археологии Евразии и Северной Америки. М.: 1977.(사비노프 1977, 북 카파카스 지역 돌 기둥에 새겨진 문화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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