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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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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탄 스키타이 전사를 볼 수 있는 곳은 흑해 뿐 만 아니라 시베리아 유물에도 있다. 시베리아 총독이었던 가가린이 1716년에 표트르 1세를 위해서 수집해서 보냈던 유물 가운데 한 점이다.

 

그림 1.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유물 컬렉션, 금과 청색유리와 산호, 부조와 상감기법, 높이 10.6cm, 너비 20cm(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부조로 만들어진 투각된 장식판인데, 한 쌍의 벨트 장식 중에 한 점이다(그림 1). 뒷면에는 가로로 벨트를 끼울 수 있는 고리 2개와 비스듬하게 세로 방향을 향한 고리 2개가 부착되어 있다. 주조의 흔적이 남아 있다(그림 2-4).

 

그림 2.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유물 컬렉션 가운데 황금 장식판의 뒷 면.  그림1의 뒷면은 4번이다. Руденко С.И. 1962 인용

 

이 장면은 숲에서 멧돼지를 사냥하는 장면이다. 가장 중요한 주제는 기수가 멧돼지를 잡는 장면으로 기수가 활을 당기기 직전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멧돼지는 다른 말의 발을 잡고 이 말을 또 다른 사람이 왼손으로 고삐를 쥐고 오른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고 있다. 장식판의 오른쪽 끝에는 머리를 뒤로 돌린 야생염소가 있다.

 

장식판에 감입된 청색은 주로 유라시아에서 많이 사용하는 터키석이 아니라 청색유리이다. 오른쪽 끝에는 산호가 감입되었다. 기수의 말은 안장 및 마구를 착장한 상태이다. 안장은 말꼬리까지 연결된 뒷걸이로 확실하게 표현되어 있다. 파지릭 유적에서 출토된 말의 안장도 뒷걸이 장식까지 화려하게 치장된 것이었다.

 

이 유물의 연대는 기원전 5~4세기, 혹은 기원전 3세기 까지 내려보기도 한다.

유물의 연대에 이견이 많은 이유는 표트르1세의 수집품 가운데서 좀 다르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유물들은 동물만 등장하거나 사람만 등장하는 유물이 아니라 드물게 함께 묘사되었고, 청색유리와 산호가 감입되었기 때문이다.

기수가 말 위에서 활 시위를 당기는 장면은 이 유물 뿐만 아니라 표트르 1세의 수집품에 있다. 그리고 이 유물들에 대해서는 늦어도 기원전 5세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이견이 없다.(아래 포스팅 참고)

 

2020/03/1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2호분] - 에르미타주 소장, 허리띠 버클 장식-나무 아래서 전사와 여신의 휴식

 

에르미타주 소장, 허리띠 버클 장식-나무 아래서 전사와 여신의 휴식

필자는 요즘은 향수를 쓰지 않지만, 한때 향수를 상당히 좋아했던 적이 있다. 요즘은 향수가 없어도 허전하다는 생각이 안 든다. 식탁 위에 디퓨저가 있는데, 유칼리투스 향이 약간씩 난다. 가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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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1유적] - 러시아 알타이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문화의 골제 화살촉

 

러시아 알타이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문화의 골제 화살촉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의 한 유적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15~16세의 남성과 45~50세 가량의 남성이 뭍힌 통나무관이 출토되었다. 소년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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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제작 기술은 아르잔-2 유적에서 수 많은 목걸이의 구슬이 출토되면서 시베리아 제작기술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새로운 자료가 업데이트 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다.

 

참고문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p.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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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세 가지 설이 있다. 흑해 지역에서 확인되는 유물을 근거로 하면 그리스(이오니아) 발생론과 고대 이란 설이고 시베리아의 자료를 근거로 중앙아시아(시베리아 설)이다.

그리스 설은 흑해 북안에 올리비아는 그리스 식민도시라고 알려진 도시로 기원전 5세기에 설치되었다. 하지만 흑해 북안에서 동물문양이 발견되는 것은 청동기시대부터 이기 때문에 현재는 현실성이 없다. 그리스설은 제국고고학위원회가 이 지역을 먼저 발굴하고 두서없이 연구하던 때의 이야기이다. 고대 이란설의 근거는 카프카스 산맥 남쪽에 위치한 지비예 유적을 근거로 한 것이다. 발굴당시에는 기원전 10세기로 생각했으나, 지금은 이 유적은 기원전 6세기 이후로 보기 때문에 이 부분도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시베리아 설(중앙아시아 설이라고도 함)의 근거는 투바의 아르잔-1호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몸을 말고 있는 맹수모양의 장식판이다.

 

사실 시베리아에서는 초기철기시대인 스키타이 문화 이전에도 카라숙 문화에서도 동물문양이 그려진 사슴돌이 발견된다. 그러나 카라숙문화 보다 더 오래된 오쿠네보 문화의 무덤에서도 추상적인 동물문양이 확인되기 때문에 동물문양의 시작은 이 문화로 부터로 볼 수 있다. 다만 카라숙 문화의 사슴돌에 그려진 사슴문양은 스키타이 문화에서도 직간접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에 스키타이 문화 동물문양의 직접적인 기원은 카라숙문화일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면 나의 부모님이 나를 낳으셨지만, 거슬러 올라가서 본적 없는 몇 세대 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진에서 나의 모습을 찾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슴돌은 어디에 분포할 까? 사슴돌은 알타이에서 자바이칼(바이칼의 우측)과 그 남쪽에 위치한 몽골의 고비에도 분포한다. 알타이에서 남쪽으로 카자흐스탄에서도 관찰된다.

 

사슴돌은 기본적으로 돌에 그림을 그린다는 개념에서 암각화와 유사해 보일 수 있으나 다르다. 암각화는 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돌이 있는 깊은 협곡, 높은 산 혹은 산 길 옆에 위치한다. 산 길에 위치한 암각화에는 주로 마차가 그려져 있어서 마차길로도 생각한다.

그러나 사슴돌은 멀리서도 잘 보이는 산의 경사면, 높은 산 위의 분지에 분포한다.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봉분의 꼭대기에 설치했다. 암각화에 비해서 눈에 잘 뛰는 곳에 석상이 서 있다.

 

사슴돌은 2~5m의 석상에 표면에 음각해서 그림을 남긴 것이다.

사실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몸을 말고 있는 맹수 표현은 사슴돌에서 처음 발견된다. 발끝으로 선 자세의 사슴과 함께 그려졌다.

 

아르잔-1호의 사슴돌은 청동기시대 사슴돌을 재이용한 것으로 생각했고, 유럽 스키타이 족이 정말로 시베리아까지 아우르는 문화권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그랴즈노프 1978). 시베리아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전까지 연구자들은 흑해 북쪽에서 발견되는 석상(오벨리스크)은 유럽의 특징으로 생각했으나 이 부분도 흔들리게 된 것이다.

 

그럼 청동기시대 사슴돌은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주로 자바이칼과 몽골의 동부지역에는 판석묘라고 불리는 무덤의 모서리에 세워두었다. 몽골의 서부에서 발견된 사슴돌은 케렉수르라고 하는 제단시설의 일부이다.

 

그림 1. 몽골의 청동기시대 제단, 우시킨-우베르 유적( 볼코프 2002 인용), 앞에서 소개한 무사얼굴이 그려진 사슴돌(14번)이 발견된 유적이다.

 

참고문헌

Волков В.В. 2002 : Оленные камни Монголии. М.: Научный мир. 2002. 248 с.(볼코프 2002, 몽골의 사슴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Грязнов М.П. 1978 : К вопросу о сложении культур скифо-сибирского типа в связи с открытием кургана Аржан. // Ранние кочевники. / КСИА. Вып. 154. М.: 1978. С. 9-18.(그랴즈노프 1978, 아르잔 유적 발굴을 중심으로 한 스키토-시베리아 문화 유형에 대한 복잡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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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으로 만들어진 간두식(막대기 끝장식)은 흑해 북안에서 나오는 스키타이 대형묘에서 자주 출토된다.

앞에서는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에서 확인된 여신이 표현된 간두식을 소개했는데, 기원전 4세기 마지막 시기의 유적이었다.

 그러나 ‘간두식’이라는 용도의 청동 유물은 기원전 7세기의 켈레르메서 무덤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새머리가 표현되었고, 그 아래에는 방울을 넣어서 소리나도록 한 것인데, 이 유물 자체는 막대기 끝장식이다.(아래 포스팅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20/08/0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유적과 유물] - 기원전 7세기 흑해 스키타이 사람의 무기와 마구장식

 

기원전 7세기 흑해 스키타이 사람의 무기와 마구장식

스키타이 문화는 흑해 및 인접한 카프카스 산맥 북쪽, 돈강 및 볼가강, 알타이, 시베리아의 미누신스크, 천산산맥(카자흐스탄)인접지역이 포함된다(그림 1). 그림1. 스키타이 문화권(에르미타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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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의 간두식 가운데는 말 대신 그리핀을 탄 남성무사가 묘사된 청동 간두식이 발견된다. 흑해의 드레프르 강 유역의 유적이다.

 

그림 1. 흑해의 드네프르 지역, 스로노프스카야 블리즈니차 유적, 1861년 발굴, 기원전 4세기, 청동, 높이 16.3cm

 

 

이 유물은 주제를 보는 관점은 두 가지가 있다. 사자머리를 한 그리핀을 타고 있는 전사가 창으로 사슴을 찌르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혹은 남자는 서서 단검으로 그리핀을 찌르고 그리핀은 넘어진 사슴의 목을 앞발로 공격한다는 의견도 있다.

 

 해석도 두가지가 존재한다. 스키타이 영웅 타르기타우스의 행위를 묘사한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 또 다른 해석은 당시 흑해 북안에 크게 유행했던 고이토스르 라는 것이다.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 신과 그리스 신을 비교해서 기록했는데, 고이토시르는 아폴론과 같다고 했다.

 

2020/08/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흑해의 여신과 헤로도투스의 메세지

 

 

같은 시기의 다른 유적에서도 같은 스타일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기본적으로 T자 모양으로 자루를 끼우기 위한 부분의 양 옆에 반원의 고리가 달려 있다. 이 고리에는 방울이 달려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위에 동물문양이 장식된 것이다.

 

남성무사는 없지만 그리핀과 해마가 싸우는 장면이다. 해마는 그리스 주제이지만, 꼬리는 물고기 꼬리로 양 갈래로 갈라지게 표현된다. 하지만 이 유물에는 꼬리가 고양이과의 꼬리형태로 제작되었다. 해마는 그리스 주제이지만 그리스 스타일을 약간 꼬아서 표현한 것이다. 스키타이 장인이 제작한 것이다.

 

 

그림 2. 흑해의 드네프르 지역, 크라스느이 쿠트 유적, 1860년 발굴품, 기원전 4세기, 높이 13.3cm

 

 

두 유물은 1991년에 한국에 다녀간 적이 있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국립중앙박물관 1991, 『스키타이 황금』, 소련 국립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특별전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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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의 크림반도 끝에 위치한 케르치 반도의 쿨-오바 유적에서는 사슴 장식판이 발견되었다. 이 장식판은 흑해의 동물문양을 대표하는 코스트롬스카야 사슴장식판과 비슷하다. 그런데 쿨-오바 유적의 사슴장식판에는 사슴이 여러 동물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그 중에 한 마리는 토끼가 있었다.

 

그런데 토끼는 우연히 그곳에 표현된 것이 아니다.

토끼가 표현된 또 다른 장식판이 발견되었다. 같은 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황금장식판에 묘사되었다. 스키타이 무사가 말을 타고 있고 토끼는 말 발굽 아래에 웅크리고 있는 장면이다. 기마병사의 의복과 헤어스타일은 그가 스키타이 인 임을 말해준다.

 

그림 1. 쿨-오바 유적 출토, 기원전 5-4세기,  황금장식판, 너비: 5.2cm,높이 4.3cm

 

그런데 헤로도투스에 따르면 다리우스가 그리스를 침공했을 때 그곳에 남아 있던 스키타이 인들이 페르시아인과 말을 몰고 나와서 전투를 청했다. 스키타이 인들이 계급별로 배열했을 때 그들 사이로 토끼가 떨어졌고 스키타이인들이 매우 크게 외치면서 이를 쫒기 시작했다. 다리우스가 스키타이인들이 토끼를 쫓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매우 분노했다. 왜냐하면 다리우스는 스키타이 인들이 재미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대 이란의 대중은 토끼를 죽이면 전투에서 행운과 승리를 가져다 준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라예프스키 1970). 사슴 장식판 뿐만 아니라 토끼 사냥이 묘사된 뼈 제품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원전 5세기 후반에는 토끼 이미지가 장식용 금판에서 매우 인기를 얻었고 스키타이 동물문양 중에 중요한 동물임을 보여준다. 동시에 보스포러스 왕국이 그리스적, 비그리스적이라는 말로 양분 할 수 없는 국제적인 왕국이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스키타이 여신의 모습이 시간이 감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되는데, 그 바탕에는 인접한 국가의 교류로 인한 것이라는 알았다. 토끼 문양도 고대 이란의 대중신화 속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원래 스키타이 인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Раевский Д.С. 1970 : Скифский мифологический сюжет в искусстве и идеологии царства Атея. // СА. 1970. №3. С. 90-101(라에프스키 1970, 스카타이와 예술품 속의 스키타이 신화주제와 아테네 왕조의 이데올로기)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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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의 크림반도 끝은 케르치 해협이라고 불리고 이곳을 케르치 반도라고 한다. 흑해와 아조프해를 연결하는 곳으로 다리처럼 생긴 지형이다. 이곳에는 스키타이 유목민과 그리스의 특징이 뒤섞인 문화적 특징이 나타난다. 이 문화를 바탕으로 생긴 보스포러스 왕국은 437~438년에 스파르토키드(Spartocids) 왕조가 들어섰다. 이 왕조는 케르치 해협의 그리스 식민도시를 통합하고 케르치 지역 뿐만 아니라 쿠반지역(카프카스 산맥 북쪽)까지 통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확하게 어떻게 이 왕조가 어떻게 들어섰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단지, ‘Spartok’이란 이름에서 추정해서 그리스에서 보낸 트리아스 용병의 지도자였고 일종의 쿠데타로 이 왕조가 들어섰을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이를 더 잘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케르치 해협에서 발견된 쿨-오바와 같은 거대 고분에서 확인되는 그리스 건축양식이 가미된 무덤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렇다고 보스포러스 왕국을 단순히 그리스화된 국가로 생각할 수 없다. 쿨-오바 유적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스파르토키드 왕조가 그리스 왕조였다면 쿨-오바 유적에서 출토된 스키타이 유목민의 남성이 묘사된 황금 장식판과 황금항아리가 설명되지 않는다.

 

스키타이 인들은 오랫동안 트라키아 인과 밀접한 관련을 유지했고, 스키타이 종족 중에는 부족 독립성을 유지한 트라키아 부족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더욱이 스키타이 이전에는 흑해를 지배했던 킴메리아 인이 곧 트라키아 인이고 갑자기 스키타이 인들이 들어와서, 그들 중 일부가 흑해 지역에 남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보스포러스 왕국의 스파르토키드 왕조는 그리스에서 보낸 트라키아 출신이 아니라 지역의 키메르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 흑해에 스키타이인이 등장한 것은 기원전 8~7세기임으로 2~300년 동안 스키타이 문화에서 살았던 키메르 인은 스키타이 인과 구분할 수 없다.

 

흑해북쪽에서 그리스 문화의 흔적이 남기 시작한 시점은 기원전 5세기이지만, 서로의 문화가 교차되는 현상이 보이는 것은 기원전 4~3세기에 집중된다.

쿨 오바 유적은 기원전 8~7세기의 켈레르메스, 멜구노프 유적과 달리 돌로 무덤방을 만들었다.

 

특히 무덤방의 천장은 들여쌓는 방법으로 만드는데, ‘계단식’ 천장이다. 그 아래에는 나무로 된 목관이 설치되었다. 이곳에서는 앞서 설명한 황금항아리, 말탄 무사가 표현된 황금장식판, 스키타이 여신 등 수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그리스 유물과 스키타이 유물이 함께 확인된다.(아래포스팅참고)

 

2020/08/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말 탄 스키타이 무사

 

말 탄 스키타이 무사

기원전 4세기는 스키타이가 멸망하기 직전이지만, 스키타이 왕국은 가장 절정에 달했고 외부세계와 활발하게 통하던 시기이다. 스키타이 여신들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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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유적이 스키타이 문화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물이 있는데 사슴이 표현된 황금장식판이다. 고리트(스키타이 인의 전통적인 활과 화살을 함께 넣는 통)의 장식판이다. 이 유물은 유적이 발굴되는 과정에 밤에 도둑이 들었는데 그들이 취득한 것을 도로 뺏은 것이다. 무덤방의 입구인 북서쪽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그림 1. 쿨-오바 유적 출토 기원전 5~4세기, 길이 31.5cm, 에르미타주 소장

 

 

어디선가 비슷한 유물을 본 적이 있지 않은가요?

 

기원전 6세기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에서 발견된 사슴장식판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전체적인 사슴의 모양과 제작방법은 같다. 특히 사슴의 뿔이 앞쪽으로는 2가닥, 뒤쪽으로는 S자가 연속되는 점, 몸통에 타출기법으로 근육을 표현한 점, 다리를 배쪽으로 집어 넣은 점, 굽의 세세한 표현, 둥근 눈, 입의 표현 등 은 코스트롬스카야 사슴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것이다. (사슴뿔이 앞으로 2가닥 표현되는 것은 흑해의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이다) 단지 쿨-오바 유적에는 사슴 안에 5마리의 동물이 더 표현되어 있다. 몸통에는 그리핀, 토끼, 사자, 목 아래에는 개?, 뿔의 가장 마지막에는 산양 혹은 산염소가 표현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유물을 근거로 쿨-오바 유적이 기원전 6세기까지 올라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함께 출토되는 그리스 유물 때문에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그래서 유적을 기원전 4세기 후반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2020/08/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코스트롬스카야 유적] - 기원전 8~7세기 흑해 스키타이의 무기

 

기원전 8~7세기 흑해 스키타이의 무기

흑해의 스키타이 문화 유적에서 공격용무기인 전투용 도끼, 단검(아키나케스) 등은 기원전 8~7세기부터 있었고, 켈레르메스 유적, 멜구노프 유적에서 직접 볼 수 있다.  청동 화살(그림 1)도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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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모양 황금패식은 쿨-오바 유적의 정체성이 오히려 흑해 스키타이 문화를 더 따르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이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를 바탕으로 그리스 문화가 흑해 북쪽에서 나타나는 것을 보여주는 유적이지, 완전히 그리스 스타일은 아니라는 여러 근거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보스포러스 왕국의 스파르토키드왕조는 ‘비그리스적’이라고 여러 학자들은 이야기 한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컬렉션,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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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가 흑해부터 시베리아 및 일부 만주지역까지 포함될 수 있는 이유는 이른바 3요소인 무기, 마구, 동물문양장식에서 공통성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가장 복잡하고 다양하고 이해되지 않는 유물은 동물문양장식이다. 왜냐하면 공통적으로 보이는데 제 각각 다르고, 사실적이지만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한 지역에서만 특정적으로 나타나는가 싶으면, 또 여기 저기서 다른 시간대에 나타난다. 서로 관계가 없다고 하기에는 또 비슷해서 찝찝하다.

 

동물문양장식 중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은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장식이다. 아르잔-1 유적의 말무덤에서 출토되어 말의 앞 가슴에 매달았던 유물이다. 아르잔-1 유적의 연대가 기원전 9세기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가장 이르다고 할 수 있다.

 

흑해 및 그 카프카스 지역에서는 현재 이란의 지비예 유적에서 몸을 말고 있는 맹수가 발견되었다(그림 1). 이 유적은 처음 발굴당시에는 기원전 10세기 까지 올렸으나 최근에는 기원전 750-650 유적으로 생각한다(알렉세예프 2003).

 

그림 1. 지비예 퇴장 유적 출토, 장식판

 

그런데 흑해 및 그 인근한 곳에서 원형의 맹수장식은 기원전 6세기 후반-5세기 경에 대부분 나타난다. 마키예프카, 바소프카, 차스티흐, 쿨라코프 등 유적이다. 특히 마키예프카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는 그리스 토기로 기원전 6세기 후반(갈라니나 1977)으로 보기도 하고, 연구자에 따라서는 기원전 5세기 1/4분기로 보기도 한다(콜투호프 1999).

 

흑해 원형 맹수장식은 기원전 5세기 이전의 특징적인 유물이라기 보다는 기원전 5세기 이후로 보는 것이 더 많은 연구자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다.

 

 

 

그림 2. 흑해 부근에서 출토된 원형 맹수장식 1-몰도바, 레스케이치이 노이 유적 출토, 2-마키예프카,3-바소프카, 4-차스티흐,5-스타이킨 베르흐 출토, 지팡이 끝 장식(scepter), 6-스타이킨 베르흐, 화살, 7,8-쿨라코프 유적의 지팡이 끝장식과 화살

 

 

 

그림 3-9,10-쿨로코프 유적의 장식판, 11-퍄노프카 채집, 장식판,12-볼가하류의 코스몰스키 출토 장식판,13-15: 코발레프카 출토

 

 

 

시베리아의 원형 맹수장식과 유물도 다른데, 아르잔-1호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의 원형 맹수장식에 비해서 흑해의 유물은 주둥이가 길다. 그래서 호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굽동물로 생각기 쉽지 않지만 몸을 둥글게 말 수 있는 동물은 호랑이과이고, 발톱을 날카롭게 표현한 점도 맹수이다.

맹수장식이 붙은 곳은 대부분 장식판이거나 혹은 지팡이 끝장식(그림2-4,7)이다. 이외에도 겁집과 도끼장식으로도 사용되기도 한다.

흑해에서는 맹수장식이 기원전 6세기 후반 혹은 기원전 5세기 이후에 일반적인 특징이지만, 아르잔-1 유적과 비교적 가까운 중앙아시아, 아랄 해 주변, 미누신스크 지역에서는 이 보다 이른 시기(기원전 7세기)에 나타난다. 사실 아르잔-1호 보다도 더 이른 기념비에도 숨어 있다.

 

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К. 1977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Поднепровья (Эрмитажная коллекция Н.Е. Бранденбурга). / САИ. Вып. Д1-33. М.: 1977. 68 с.(갈라리나 1977, 고대 드네프르 강의 스키타이)

С.Г. Колтухов 1999: «Золотой» Симферопольский курган//ХЕРСОНЕССКИЙ СБОРНИК. X - Сборник научных статей / Отв. ред. М.И. Золотарев: Национальный заповедник "Херсонес Таврический"; Крымский филиал Института археологии НАНУ. - Выпуск 10. - Севастополь, 1999. - 7-22 c.콜투호프 1999, 심페르폴 쿠르간의 황금)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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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는 스키타이가 멸망하기 직전이지만, 스키타이 왕국은 가장 절정에 달했고 외부세계와 활발하게 통하던 시기이다. 스키타이 여신들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남성 7인이 세 장면을 구성하고 있는 황금항아리도 이 시기의 쿨-오바 유적에서  나온 것이다.

 

쿨-오바 유적은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전 4세기 무덤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보스포러스 왕국의 무덤으로 일컬어진다. 이 왕국은 흑해에서 스키타이 문화권에 속하던 여러 부족 중에서 그리스와 중계무역을 하던 국가 혹은 부족으로 알려졌다.

 

초원 유목민이 흑해로 나가기 위해서는 케레치 반도를 거쳐야 하는데, 그 지역에 살던 부족은 자신의 지리적 이점을 극대로 끌어올렸다. 보스퍼러스 국의 수도는 파니카페움(Panicapaeum)으로 이 곳에는 공방이 있었고, 스키타이 귀족의 유물을 직접 제작했다고 한다. 그리스의 식민도시였던 올리비아는 이미 쇠퇴하고 그 역할을 이 도시가 물려받았다. 올리비아, 파나카페움 등에 있던 공방에서 그리스-스키타이 양식의 유물이 나오게 된 것이다.

 

지도. 쿨-오바 유적의 위치, 올리비아(노란색)

 

지역민과 함께 그리스인도 이 곳에서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를 증명하는 무덤이 쿨-오바 무덤이다. 무덤의 외부형태는 스키타이인의 무덤이지만, 그 내부의 무덤방은 그리스의 건축물인 판테온 스타일이고, 그 중앙에 놓인 관은 스키타이 관인 나무관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그림 2).

 

이 무덤의 벽을 장식하던 프리즈(frieze)로 사용된 장식판에는 말을 탄 남성무사가 표현되어 있다(그림 1). 금판의 반대면을 눌러서 표면을 솟아나게 만든 타출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긴 머리와 턱수염, 콧 수염, 벨트 자켓, 통이 넓은 바지, 부드러운 신발(moccasin)등은 스키타이 무사를 나타낸 것이다. 신발이 가죽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가로방향의 침선으로 표현되었다. 이런 신발은 실제로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이 유물은 가장자리가 고르지 않은데, 원래는 가장자리 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비슷한 장식판에는 바늘구멍이 확인되는데, 무덤 부장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사용하다가 무덤에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1. 쿨-오바 유적 출토, 기원전 4세기, 금, 너비 5cm(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그림 2. 쿨-오바 유적의 단면(상)과 무덤 바닥면(하)

 

 

참고문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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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여신상의 최초 모습은 켈레르메스 유적의 유물을 참고로 할 때 양 손에 맹수를 쥐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양 손에 든 동물은 변화되지만 무엇인가를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은 그대로이다.

 

맹수모양장식은 아르잔-1 유적에서 출토된 몸을 말고 있는 맹수가 가장 이른 형식이다. 아르잔-1 유적이 기원전 9세기에 만들어진 유적이기 때문이다. 흑해 부근의 스키타이 문화를 연구한 알렉세예프도 스키타이 문화의 가장 최초 모습은 아르잔 유적으로 생각한다(알렉세예프 2003). 흑해 북안에서는 기원전 7세기 혹은 기원전 8세기 유적에서는 무기는 확인되지만 한 개체로 만들어진 동물문양장식은 확인되지 않는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는 표트르 1세에게 시베리아 토볼스크 주지사였던 가가린이 보낸 스키타이 유물 가운데 아르잔-1유적과 비슷하게 생긴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이 있다.

2020/04/0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 버클 표범장식

 

에르미타주 소장, 황금 버클 표범장식

파지릭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에서도 기원전 5세기 가량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스키타이문화는 이르면 기원전 9세기 까지도 올라가는데, 그때도 동물문양장식이 있을까?스키타이 문화에서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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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맹수장식은 여러 모양으로 응용되었는데, 팔찌의 끝장식으로도 사용되었다. 이 유물은 끝부분과 코일이 따로 제작되어 땜질해서 제작되었다. 호랑이의 입에 사슴다리가 표현된 것이다. 눈은 삼각형으로 돌을 감입할 수 있도록 홈이 파져 있었다.

 

 

그림 1. 시베리아 남부 추정, 1716년 12월 12일 시베리아 톰스크의 주지사인 가가린이 표트르 1세에게 보낸 선물. 기원전 4~3세기의 유물, 직경 10cm

 

 

맹수가 달린 장신구가 한 점 더 있는데, 이는 목걸이다(직경 33cm). 역시 가가린이 표트르 1세에게 보낸 유물이다. 가장 끝에는 맹수장식(그림 3-1,3)이고, 그 아래에는 귀달린 새의 머리가 표현되었다(그림 3-2). 호랑이는 앉은 자세를 취하고 있고(그림 4), 몸통은 음각으로 표현되어서 매우 역동감 있다. 맹수와 새머리로 연결된 동물문양은 팔찌로 연결되어 몸통을 표현하는데, 그리핀의 모습을 표현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림 2. 시베리아 남부 추정, 가가린이  표트르에게 보낸 시베리아 목걸이, 직경 33cm

 

 

그림 3. 그림 2의 세부사진

 

 

그림 4. 그림 2의 세부사진

 

 

아르잔-1유적에서는 이미 중심매장부가 도굴당해서 주인공의 부장품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르잔-2유적에서 주인공 남녀가 목걸이와 팔짜를 착용한 모습을 알 수 있다. 나선형 팔짜와 토르크(목걸이)이는 유라시아 유목민의 전형적인 장신구이다.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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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의 여러 유적의 유물에는 여성이 표현된다. 신화 속의 인물로 생각되며 아르김파사, 키벨레 등으로 해석된다.

남성도 있는데, 여성보다 좀 더 다양하게 표현된다. 흑해의 여신이 표현된 은제 거울이 나온 ‘차르’급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남성이 표현된 유물은 없다.(이 말은 오해하시면 안된다. 기원전 7세기에 남성이 표현된 유물은 있다)

 

소형 유물에 남성이 표현되는 것은 주로 기원전 5세기 이후이다. 흑해의 케르치 지역에 있는 쿨 오바 유적에서는 황금으로 된 항아리에 남성 7인이 세 장면을 구성하는 것이다. 다리를 만지는 장면(그림 1-1), 치아를 뽑는? 장면(그림 3), 활에 시위를 거는 장면(그림 1-2), 서로 도와 끈을 매는 장면(그림 2)이다.

 

 

그림 1. 흑해의 쿨-오바 출토, 1830년 발굴, 높이 13cm(Алексеев А.Ю. 2012 )

 

그림 2. 그림 1의 왼쪽 남성 옆(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그림 3. 그림 1-1의 반대편(Алексеев А.Ю. 2012 )

 

그림 4. 그림 1의 바닥(Алексеев А.Ю. 2012 )

 

헤어스타일, 복장, 스키타이 무기 등으로 스키타이 남성으로 여겨진다. 많은 연구자들은 이 유물을 보고 헤로도투스가 남긴 스키타이 신화 속의 인물을 떠 올린다. 하지만 스키타이 인의 일상생활을 나타낸다는 의견도 있다.

 

이 유물이 출토된 쿨 오바 유적은 1830년 9월 19일에 군인들이 돌을 채석하다가 발견했다. 앞서 언급했는데, 1875년에 루첸코가 발굴하기 전에, 1830년 당시 주지사였던 스템코프스키의 허가를 받아 프랑스에서 이주한 Paul Du Brux가 책임자로 발굴한 것이 최초이다.

그런데 발굴은 서둘러 진행되었으며, 기록이 거의 남겨져 있지 않고 무덤의 구조와 유물 목록 등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짧은 복도와 지붕이 계단식으로 된 돌로 된 무덤방이었으며, 그 안에는 채색된 나무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돌로 된 무덤방을 흙으로 덮어서 마무리 한 것이다. 나무관 안의 사자는 거대한 금색 목걸이와 팔찌를 착용했고, 무기세트를 옆에 놓아둔 채였다. 나무 관 옆에 나무거치대가 있었고 그 위에 여성인골이 확인되었다. 황금 항아리는 그녀의 발 옆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 무덤은 발굴하는 과정에서도 도둑을 맞았다.

황금 항아리는 주조로 만들고, 항아리 안쪽은 두드려서 마무리한 것이다. 바닥(그림 4)에는 그리스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항아리 제작 시에 적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 새겨 넣은 것이다.

 

쿨-오바 유적은 흑해에서도 가장 늦은 시기인 기원전 4세기 후반의 무덤으로 그리스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특히 그리스 토기인 ‘암포라’가 출토된다. 하지만 이 황금 항아리에 표현된 남성은 스키타이인으로 스키타이 인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기원전 4세기대의 유적에는 그리스 유물이 많이 출토되어서 쉽게 그리스에서 제작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유물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쿨-오바에서 나온 장식판에 새겨진 여신은 분명히 그리스식 복장을 하고 있으나 양 손을 펴고, 날 개를 표현하는 점은 기원전 7세기에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확인되는 여신과 같은 구도를 하고 있다. 혹시 이 황금장식판도 스키타이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황금항아리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흑해지역의 유적은 1859년에 러시아 제국고고학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이 위원회 중심으로 흑해의 쿠르간을 본격적으로 발굴했다. 이곳의 유물도 처음에는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유물과 함께 쿤스트카메라에 보관되었다가, 나중에 함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보관되었다.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은 1715년~1718년 시베리아주의 수도인 토볼스크 주지사였던 가가린이 농민으로부터 수집해서 보낸 것이다. 표트르 1세에게 처음에는 10점을 보냈으나, 나중에는 200여 점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유물은 표트르 1세와 예카테리나 1세가 죽은 후 러시아의 첫 번째 공립박물관인 쿤스트카메라(현재도 있음. 에르미타주박물관에서 가까움, 네바 강 건너)에 기증되어 전시되었다.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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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근거로 전사는 청동투구(기원전 5세기 전후로 다른 투구)를 쓰고 철제갑옷을 입고 허리에는 전투용도끼와 검을 차고 활과 화살을 찼다.

 

스키타이 문화의 단검은 ‘아키나케스’라고 부른다. 헤로도투스가 자신의 저서인 ‘역사’에서 처음 언급된 단어로 고대 이란의 검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짧은 철검은 둥근 칼자루와 칼날과 손잡이 사이의 멈추개가 나비모양과 같다.

 

그림 1. 흑해 지역에서 출토된 철 검, 브로바르카 마을 인근의 무덤, 1902년 발굴, 단조, 길이 55cm

 

 

단검은 근거리용으로 보병 뿐만 아니라 기마전사도 근거리에서 이용했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철 검은 기원전 7세기에 처음 나타나서 일반적으로 보편화 된 것은 기원전 550년 이후에서 기원전 400년 사이이다. 이때 금속 갑옷이 널리 퍼지는 데 철 검의 사용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금속 갑옷은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에서 출토되어 기원전 7~6세기 사이에 있었으나 흔히 발견되는 것은 기원전 5세기 이후(체르넨코 1968)이다.

 

철검의 파괴력은 아이믈르그(Аймырлыг, Aymyrlyg) 유적에서 실제로 확인된다. Murphy(2003)는 이 유적에 묻힌 세 명의 남성에게서 칼날 외상을 확인했다. 인골에서는 외상의 흔적만 있고 치료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처형당한 후에도 칼날 타격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아이믈르그(Аймырлыг, Aymyrlyg) 유적은 시베리아 남부의 예니세이 강 변에 위치한 대규모 무덤 유적으로 청동기시대부터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 뿐만 아니라 18세기의 무덤도 확인된다. 

 

참고문헌

Murphy Eileen M. 2003, Iron Age archaeology and trauma from Aymyrlyg, South Siberia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Черненко Е.В. 1968 : Скифский доспех. Киев: «Наукова думка». 1968. 190 с(체르넨코 1968, 스키타이의 갑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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