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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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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북쪽의 스키타이 지역에서는 기원전 7세기 경부터 베레잔 섬에서 그리스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가 발견된다. 그곳에서 발견된 토기들은 채색토기로 이오니아 섬에서 제작된 유물이다. 하지만 기원전 7세기 후반의 토기들 보다 기원전 6세기 경 유물들이 많다.

 

채색토기 가운데 기원전 7세기 및 기원전 6세기 경 토기로 사자가 굽 동물을 공격하는 장면이 그려진 토기가 발견되었다. 뿐만 아니라 기원전 6세기 경 유물에는 반인반수가 그려진 채색 토기도 발견되었다. 히노스 섬에서 제작된 유물이다.

 

그림 1. 기원전 7세기 토기, 흑해 북안의 베레잔 유적 출토, 히노스 섬 제작

 

그림 2. 기원전 6세기 토기, 흑해 북안의 베레잔 유적 출토, 이오이나 섬의 북쪽

 

그림 3. 기원전 6세기(기원전 580~550년) 토기, 쿠복, 흑해 북안의 히노스 섬 제작

 

반인반수는 몸통은 사자이고 머리는 사람얼굴을 하고 있다. 이 토기는 기원전 580~550년에 제작된 것으로 매우 구체적인 연대가 있다. 토기의 생김새에 따른 명칭은 쿠복(Кубок)이다. 쿠복은 러시아에서는 와인, 맥주, 꿀물 등 고급스런 음료를 따라 마시는 잔을 통칭한 것이다. 유적에서 나온 토기를 명칭한 것은 와인을 마신 일종의 잔으로써 ‘쿠복’으로 명명되었다.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도 반인반수가 그려진 유물이 있는데 은제 거울이다. 기원전 7세기 유물이다. 베레잔 유적보다 이른 시기에 이미 반인반수의 유물이 있었고, 우라르투에서는 기원전8세기에 이미 사용되었던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사자가 굽동물을 공격하는 장면은 스키타이 지역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사자가 피식자를 공격하는 장면이 있고, 맹수와 굽동물이 서로를 공격하는 장면으로 구분되며, ‘동물투쟁문양’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후자는 스키타이 지역인 알타이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전자(사자-->먹이)의 그림은 앗시리아 유물에서 주로 발견된다(루덴코). 또한 이 유적에서 나온 유물을 보면 그리스 유물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맹수가 약한 동물을 공격하는 것은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적인 유물은 아니다. 하지만 알타이에서 맹수가 동물을 뒤에서 공격하는 장면이 스키타이 유물에서 많이 사용되었는데 스키타이 지역에서 많이 유행했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Борисфен-Березань. Начало античной эпохи в Северном Причерноморье. СПб.: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2005(에르미타주 박물관, 2005, 보리스펜-베레잔, 흑해 북안의 그리스 상고기의 시작유적, 유적 발굴 120주년 기념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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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북쪽의 스키타이 유적에서는 그리스 유물도 출토된다. 흑해 아래쪽에 그리스가 위치했기 때문에 너무 당연한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문외한인 나에게는 매우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리스의 문화가 흑해 북쪽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7세기 경부터이다. 당시에 그리스는 급격하게 팽창하면서 경작지가 부족하게 되면서 토지 쟁탈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인들 가운데 매우 부자들이 생기면서 토지 쟁탈전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 이는 그리스가 계급투쟁 사회로 변화하게 되었고 일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메트로폴리스를 떠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을 대신해서 농사를 지을 노예가 필요해서 이웃한 지역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또 다른 원인은 상업이었다.

 

결국 그리스가 인접한 국가들로 눈을 돌리게 된 원인은 한마디로 ‘부(富)’를 쌓기 위해서이다. 상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흑해북안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살던 메트로폴리탄과는 상당히 다른 도시가 흑해 북안에 건설되었다.

 

 

그리스 유물이 많이 발견되는 곳은 드네프르강 하류의 부그 만 지역이다. 이곳에서 가장 오랫동안 조사되고 유명한 유적은 베레잔 이라고 불리는 하중도이다. 기원전 7세기경의 그리스인들 주거 유적으로 물고기뼈가 많이 발견되었다. 유적에서는 그리스 내에서도 이오니아 그룹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곳에서 만들어진 채색토기가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특히 신화적인 장면과 식물과 동물 그림들이 그려진 토기가 발견되었다. 토기로 판단해서 기원전 7세기 경의 유적으로 생각된다.

 

그림 1. 흑해 북안의 베레잔 섬에서 출토된 기원전 7세기 채색토기, 이오니아 제작

 

러시아 국경내에서 연구된 그리스 관련 유적으로 스키타이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들 자료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참고문헌

Борисфен-Березань. Начало античной эпохи в Северном Причерноморье. СПб.: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2005(에르미타주 박물관, 2005, 보리스펜-베레잔, 흑해 북안의 그리스 상고기의 시작유적, 유적 발굴 120주년 기념 특별전)

Античные государства Северного Причерноморья / Отв.ред. Г.А. Кошеленко, И.Т. Кругликова, В.С. Долгоруков; авт. Е.М. Алексеева, А.К. Амброз, Т.М. Арсеньева и др. М.: Наука, 1984. 392 с.(코세렌코 편집, 1984, 흑해북안의 그리스 상고기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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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흑해지역의 코카서스 북쪽 스키타이 세계에서 가장 이른 유적인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코카서스 남쪽 우라루투에서 제작된 물건들이 발견되었다. 거울, 각배, 철제 검 등이 그곳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에서 각배는 거울과 같은 인물이 그려져서 두 유물이 같은 곳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날개를 달고 있는 여성 외에도 온몸에 털이 나 있는 인물은 거울과 각배에서 모두 발견되었다. 각배의 인간은 하반신 부위에 맹수와 겹쳐그려져서 반인반수처럼 보이는데 각배가 잘 남아 있지 않아 분명하지 않다.

 

각배의 동체부는 둥글게 돌아가기 때문에 여러 방향으로 그림이 도안되어 있다. 가장 큰 중앙의 인간과 가지가 양쪽으로 벌어진 나무, 그 왼쪽에 그려진 사자와 싸우는 남성, 그 아래에는 기둥 2개가 방향이 달리 표현되어 있다. 2개의 기둥은 각배가 떨어져 나가면서 완전치 않지만 꼭대기가 불룩한 연꽃 형태인데, 우라루투의 테이시바이니 유적에서 발견된 식물 그림과 유사하다(그림 2).

 

그림 1. 스키타이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각배의 상세

 

그림 2. 테이시바이니 유적에서 발견된 식물 그림

 

그림 3. 켈레르메스 유적의 거울

 

켈레르메스와 각배가 같은 곳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각배와 거울 각 조각의 가장자리를 연결하고 있는 눈김이 새겨진 띠이다. 거울의 문양판은 은제 거울 위에 붙인 금제풉인데, 각 조각은 중간에 눈김이 있는 띠를 매개로 붙인 것이다. 각배에서도 같은 띠가 새겨진 것이 발견되었다.

 

또 각배에서 반인반수가 발 밑에 두고 있는 꼬임문양은 거울에서도 반인반수 문양 아래서도 발견되었다.

 

그래서 두 유물은 같은 장소에서 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참고문헌

Максимова М.И. 1956 : Ритон из Келермеса. // СА. XXV. 1956. С. 215-235.(막시모바 1956, 켈레르메스에서 출토된 리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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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 산맥을 기준으로 북쪽에 위치하던 스키타이 세계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자신들이 만든 유물도 있지만 이웃한 세계에서 만들어진 유물도 많이 발견되었다.

 

특히 거울과 철제 검은 우라루트에서 제작되었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알렉세예프 2012). 필자는 이것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 우라루트의 신과 관련된 유물들을 살폈는데, 한계가 많은 작업이다. 우라루투가 현재 기준으로 여러 국경에 걸쳐서 존재했던 나라이고, 19세기와 20세기에 여러 나라들이 호기심 혹은 욕심으로 발굴 아닌 발굴이 행해진 곳이 많기 때문에 정확한 맥락이 없는 유물이 많아서 아마도 영원히 제대로 된 역사는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나온 유물들을 약간 분석할 만한 자료는 있다. 특히 철제 검의 검집에 새겨진 문양은 우라루투의 신을 형상화 한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테이시바이니 유적 출토 사르두우리 II세(기원전 764~735년)의 헬멧에는 생명의 나무를 중앙에 두고 양쪽에 날개 달린 신이 서 있는 모습이 발견되었다(그림 1).

 

우라루투에서 생명의 나무는 테이시바이니 유적 외에도 토파크 칼레(현재 터키)등에서 발견되었는데 신을 상징한다. 특히 사르두우리 II세의 헬멧에는 날개 달린 사람은 칼디 신을 의미할 수 있다.

 

그림 1. 사르두우리 II세의 헬멧에 표현된 생명의 수

 

터키 Kef Kalesi, Adilcevaz에서 발견된 칼디 신의 모습과 사르두우리 II세의 헬멧에 있는 날개 달린 사람은 중앙에 각각 기둥과 생명의 나무를 중심으로 숭배하는 모습을 형상화 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2021.12.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유적과 유물] - 우라루투의 칼디 신

 

우라루투의 칼디 신

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 문화가 흑해 지역에 번성했을 때 코카서스 남쪽에는 우라르투가 존재했고, 앗시리아와 사이에 위치하면서 양 지역을 연결했던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라루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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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모습은 스키타이 유적인 켈레르메스에서 발견된 칼집의 입구에 그려진 채 발견되었다(그림 2).

 

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의 철제 검(아키나케스)의 검집

 

켈레르메스 유적의 검집에 그려진 생명의 나무 꼭대기에는 날개달린 접시가 가장 상부에 달려 있다. 우라루투에서는 태양의 신 시비니를 날개 달린 접시에 비유해서 상징화 한 바 있다.

 

검집의 하단부에는 사자가 앞 뒤로 그려져 있다(그림 3). 칼디 신은 대부분 사자와 함께 등장한다.

 

그림 3. 켈레르메스 유적의 철제 검의 검집 하단부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유물은 스키타이 사람들의 요구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검집에서 가장 눈에 뛰는 부위에 스키타이 사슴문양이 부조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림 4).

 

그림 4. 그림 3 검집의 연결부위, 스키타이 사슴 문양

 

참고문헌

 

Пиотровский Б.Б. Ванское царство (Урарту), Издательство Восточной литературы, Москва, 1959 (피오트로프스키 1959, 우라르투 반 왕조)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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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 문화가 흑해 지역에 번성했을 때 코카서스 남쪽에는 우라르투가 존재했고, 앗시리아와 사이에 위치하면서 양 지역을 연결했던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라루투의 성곽 유적인 현재 아르메니아의 테이시바이니 유적에서는 스키타이 화살촉과 앗시리아의 청동그릇 등이 함께 발견되어서 이를 증명하고 있다.

 

우라루투는 스키타이 문화와도 연결되어 있는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은제 거울의 뒷면에 새겨진 금판이 우라루투에서 제작되었다는 견해도 이를 따르고 있다.

우라루투에는 많은 신이 있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3신 가운데, 최고의 신은 칼디 신이다. 우라루투의 종교는 메소포타미아의 우라루투 사람들에 의해서 차용된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칼디 신은 토착 기원이다. 현재 가장 많이 통용되는 칼디 신에 대한 기원은 로완두즈Rowanduz(아제르바이잔의 서부지역, 현재는 이란영토)라고 하는 곳에서 아르메니아의 고원지대로 이주하면서 칼디 신이 퍼진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 이 지역에 칼디 신의 숭배가 있었고 나중에 이곳은 우라루투의 도시로 발전했다. ‘칼디’의 어원은 명확하지 않다.

 

칼디 신의 신성한 도시는 아제르바이잔 서부에 위치한 고대 도시 무사시르이다. 우라루투의 국교(Ishpuini 왕의 통치 기간 동안)로 칼디 신으로 정해진 뒤 칼디에 대한 숭배는 앗시리아 신 Ashur 숭배와 유사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칼디 신의 이름은 설형문자로 된 비문에서 ‘칼디의 힘으로 Ishpuini 왕의 아들 메뉴아가 말한다는’문구로 반복되어 사용되었고, 군대의 주요 영웅을 부를 때도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칼디 신은 무기로 전쟁을 시작했고, Erikuahi 국가를 패배시켰고 Luhiuni 도시를 멸망시켰으며, 메뉴아 앞에서 그들은 무릎을 꿀었다. 칼디는 강력하고, 칼디 신의 무기는 강력하다.’‘는 문구이다. 우라루투의 신을 언급하기 위한 문구는 앗시리아의 아슈르 신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과 유사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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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나온 고고학보고서를 보면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어짜고로 시작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반 호수 부근에 세워진 투쉬파 수도에서 가까운 므헤르 문에서 발견된 비문에는 칼디 신에게 받친 동물은 17마리의 양과 34마리의 황소로 알려졌다. 의례는 칼디 신의 사원에서 행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우라루투의 도시에는 대부분 칼디 신의 사원이 있었고, 일반적으로 성 내부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세워졌다. 칼디 신의 사원에는 지구라트를 닮은 탑이 늘 마련되어 있는데, 테이시바이니 유적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칼디 신은 수염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도 있고, 날개도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만 항상 프로필로 묘사되었다. 칼디 신의 손에는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물건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는 대부분 사자의 등에 올라타고 서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어서 사자가 칼디 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간혹 테이시바 신도 사자와 함께 확인되기 때문이다.

앗시리아의 왕 사르곤 2세는 기원전 714년에 우라루투를 물리치고 칼디 신의 성지인 무사시르를 함락했다고 알려졌다.

 

그림 1. 터키 동부의 유적, Kef Kalesi, Adilcevaz에서 발견된 기둥의 초석에 그려진 칼디 신의 모습, 이곳은 루사II세(기원전 685~645)에 우라루투의 궁전. 칼디 신의 모습

 

터키 동부에서 발견된 칼디 신의 모습(그림 1)은 테이시바이니 유적의 칼디 신의 사원 벽화에 남아 있는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포스팅 참고)

2021.11.2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유적과 유물] - 기원전 8세기 칼디 신의 사원

 

기원전 8세기 칼디 신의 사원

코카서스 남쪽의 기원전 9세기부터 존재한 우라르트에는 최대 전성기 때 세워진 에레부니 성곽도시가 위치한다. 그 곳에는 2개의 사원이 존재하는데, 수시 사원은 에레부니 성곽을 세운 아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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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Пиотровский Б.Б. Ванское царство (Урарту), Издательство Восточной литературы, Москва, 1959 (피오트로프스키 1959, 우라르트 반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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