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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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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인근의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 위치한 스키타이 무덤 가운데 가장 이른 것 중에 하나는 켈레르메스 고분이다. 기원전 7세기 정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1903년과 1904년에 독일인 슐츠와 러시아 고고학자인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무덤에서 황금유물이 유명하다.

 

이미 소개해 드린 은제거울, 표범방패장식, 화살통 장식 등이 있다.

 

2020/02/2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 2500년 전,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인의 활, 화살통

 

2500년 전,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인의 활, 화살통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전사 무덤에서는 뼈로 제작된 화살촉이 출토되었다. 두 명이 묻혔는데, 화살통과 활까지 부장했던 것으로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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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과 그리스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과 그리스

이제까지 2500년 전 알타이 위주로 스키타이 문화를 살펴보았다. 좀 더 자세하게는 파지릭 문화라고 일컫는다. 아시다시피 스키타이 문화라고 불리는 문화는 흑해 북안부터 시베리아 까지 매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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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소개해 드리지 않은 유물 가운데는 황금으로 된 그릇이 있다. 두 개는 세트인데, 하나는 동물문양이 장식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꽃 잎과 마름모문양이 반복되어 표현되었다. 동물문양은 그릇의 바깥이 음각한 것이고, 기하학적 문양은 그릇의 바깥을 양적으로 표현했다.

 

가장 상단에는 타조, 2번째 열에는 사슴바닥에는 꽃 문양이 장식되어 있고 이를 중심으로 코젤(산염소), 카프카스 염소(Caucasian tur), 사슴이 교차해서 배열되어 있다. 사슴 등에 올라탄 사자(그림 3-2)와 코젤을 쫏고 있는 늑대(그림 3-1)도 2번째 열에 배열되어 있다. 3번 째 열에는 사슴, 코젤(산염소), 염소가 앉아 있고 바닥에는 꽃 문양이 새겨진 것이다(그림 4).

 

그림 1. 흑해지역, 코카서스 산맥 북쪽으로 쿠반 지역, 켈레르메스 1호분, 슐츠 발굴품

 

그림 2. 흑해지역, 코카서스 산맥 북쪽으로 쿠반 지역, 켈레르메스 1호분, 그림1의 세부

 

 

그림 3. 흑해지역, 코카서스 산맥 북쪽으로 쿠반 지역, 켈레르메스 1호분, 그림1의 세부

 

그림 4. 그림1의 평면도(루덴코 1960)

 

 

켈레르메스 유적이 흑해 부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무덤인 것을 생각하면 이 그릇에 나타난 사슴그림은 흑해북쪽에서 가장 빠른 사슴문양이다.

 

그런데 이 그릇에 나타난 사자, 타조는 스키타이 지역에는 없던 문양으로 앗시리아와 관련있다. 앗시리아 문화에서는 타조문양이 매우 유행했다고 한다. 사자도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서는 나타나지 않던 문양으로 코카서스 산맥 이남에서 올라온 문양이다. 사자가 이 지역에 등장한 것은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보다 이전인 청동기시대 마이코프 문화에서 확인된 바 있다. 코카서스 남부지역과 교류가 처음은 아니었다.

 

어찌되었던 주제 뿐만 아니라 동물을 나타나는 방법 중에 갈비뼈를 드러내는 방법은 흑해 북쪽 및 시베리아의 스키타이 문양과는 관련이 없는 앗시리아 양식이다. 이는 앞서 소개한 사슴과 표범으로 장식된 화살통장식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사슴의 표현방법이 몸통과 뿔에서 차이가 있다.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흑해에서 원래 살던 킴메르 인들은 스키타이 사람들 때문에 인접한 소아시아로 도망갔다. 킴메르 인들을 추적해서 코카서스 산맥 남쪽까지 내려오게 되는데, 앗시리아 연대기는 이 시점을 기원전 670년 부터라고 기록했다.

고대 오리엔트 기록에는 기마병단을 보유한 스키타이 유목민족 때문에 거의 100년 동안 고생하고 공포정치로 치를 떠는 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점도 석연치 않은 것이 스키타이 인과 앗시리아는 기원전 680년에 결혼동맹을 맺고 있었고 스키타이 사람들은 앗시리아를 도와서 앗시리아의 수도를 공격하는 메디아인을 섬멸했다. 기원전 623-622년.

 

스키타이 인들은 앗시리아 인을 도와서 메디아를 함께 막아 주었건만 정작 속 뜻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앗시리아 입장에서 쓴 기록이 좋게 남아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흑해북쪽의 유적에서는 스키타이 사람의 무덤에서 인접한 지역의 유물이 많이 출토된다. 그리스, 앗시리아 물건, 기원전 5세기 이후가 되면 앗시리아의 물건은 페르시아의 물건으로 바뀐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잔은 앗시리아와 그리스에서는 손잡이가 없는 잔을 ‘phiales’라고 부른다. 피알레스는 왕권을 상징하는 그릇이다. 실용기와는 거리가 멀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Галанина Л.К. 1997 :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Царские» погребения раннескифской эпохи. М.: 1997. 316 с.(갈리아나 1997, 초기 스키타이 시대의 차르 무덤, 켈레르메스 고분)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 학계에서 처음 이해하던 스키타이인은 흑해 북쪽에 거주하던 초기철기시대 사람들이다. 현재는 서쪽으로는 다뉴브 강을 경계로 동쪽으로는 시베리아까지 스텝지대의 광대한 초원지대에 거주하면서 공통된 경제적, 문화적 생활을 영유하던 여러 문화의 복합체로 스키타이 세계 혹은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도 한다. 가장 쉽게 이해하면 넓은 지역의 각 문화가 공통된 경제활동을 하는 연합국가?정도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스키타이 문화’에 대한 이해를 흑해 북안으로 부터 이해한 것은 이 지역을 가장 먼저 발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알타이를 발굴한 것은 20세기 초반 혁명 이후에 활발했고, 흑해북안은 아직 로마노프 왕조일 때부터 발굴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발굴한 무덤은 현재는 우크라이나에 속하는 엘리자베트그라드에서 1763년에 시작되었다. 이 유적의 유물은 표트르 1세가 건립한 페테르부르그에 있는 쿤스트카메라 박물관(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아직 궁전이었음)에 보관되었다. 그때 쿤스트카메라 박물관에는 표트르 1세가 시베리아에서 수집한 금제유물이 보관되어 있었다.

 

흑해북안의 유적은 쿨오바를 1830년에 발굴하고, 1859년에 러시아의 제국고고학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재 황금유물로 잘 알려진 흑해북안의 유적들은 19세기 중후반에 발굴되었다. 특히 이 지역의 고분은 봉분이 매우 높아서 쉽게 일반인들에게 노출되었고, 도굴도 극심했다.

 

흑해북안의 유적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유적으로 알려진 것은 1903년과 1904년에 발굴된 켈레르메스(Келермес, Kelermes) 고분이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여러 연구자들이 발굴해서 1903년 부터D.G. Shultz(23,24,29호) 및 러시아고고학자 베셀로프스키(18호, 24호,31호)가 발굴했고, 1980년대에도 갈리아나와 알렉세예프가 발굴조사했다. 1980년대 조사에서는 고분을 33개 발견하고 그 중 21개를 발굴했다. 1980년대 조사하면서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하면서 만들어진 고분번호를 새로 바꾸었다. 그래서 그림 1에서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무덤은 18, 24, 31호이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의 스키타이 고분, 20세기 초반의 발굴과 1980년대 발굴이 구분되어 있지만, 1980년대에도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31호를 계속조사했다.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고분자료는 그림 2만 남아 있고, 유물만 남겨진 상태이다.(갈리아나 2006), 유적의 평면도는 1980년대 조사하면서 작성된 것이다. 

 

 

 

 

그림 2.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당시의 무덤 1호, 현재는 그림 1의 24번이다. 검은색 점은 무덤방이 설치된 기둥구멍이고, 점선은 매장주체부의 위치이다.

 

유적은 낮은 산등성이를 따라서 2km로 계속 이어졌다. 스키타이문화의 무덤 뿐만 아니라 이 보다 이른 청동기시대 문화인 마이코프 문화, 얌문화의 무덤도 확인되었다. 유적에서 북쪽에 위치한 6개의 스키타이 무덤은 유적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기원전 8~7세기부터 기원전 6세기까지 만들어진 것이다. 이 고분의 높이는 4~7m였다.

 

유적은 이미 파괴가 극심해서 1980년대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조사하면서도 유적의 범위와 고분의 대략적인 형태만 알아 냈을 뿐이지 무덤의 구조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알지 못한다. 무덤의 구조를 알 수 있는 것은 베셀로프스키가 남긴 그림2의 도면뿐이다.

 

평면형태는 정사각형으로 무덤의 크기는 40㎡로 알려졌다. 말이 최대 24마리까지 묻혔고, 무덤방은 나무로 만들어졌다. 말은 화려하게 금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리아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의 2600년 전 무덤인 투엑타 유적의 1호에서는 코젤(산염소)의 뿔을 나무로 만든 것이 출토되었다. 말의 얼굴에 씌웠던 말의 가면 중 뿔에 해당하는 유물이었다. 쌍으로 확인된 것은 모두 3쌍이었으나 부속품 등이 더 많이 출토되어서 더 많은 말 가면이 있었을 것이다.

 

코젤은 사슴과 달리 뿔을 뒤로 휘어지게 표현한다. 사슴의 뿔은 가지처럼 표현하거나 종종 뿔이 없는 사슴도 발견되기도 한다. 코젤이 표현된 유물은 알타이 뿐만 아니라 넓은 스키타이 문화권 중에서 흑해부근에서도 발견된다.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 위치한 쿠반 지역은 흑해를 서쪽으로 한 곳이다(그림 1). 쿠반 강은 흑해로 흘러간다. 쿠반 강에서 19세기 말에 발굴된 대형 고분 가운데서 코젤을 표현한 유물이 스키타이 무덤에서 출토된다.

 

 

그림 1. 흑해 부근의 스키타이 유적(Ullyap: 울스키 아울)

 

 

청동판에 코젤은 매우 사실적이지만 나머지 동물은 입과 눈모양만으로 캐리커쳐 한 것처럼 특징만 부각시켜서 독수리로 표현했다. 전체적으로 새의 부리와 눈이 강조되었고, 큰 눈위에 독수리 부리와 눈만 표현된 것이 3개 있고 부리에도 같은 표현이 있다(그림 2).

이 유물은 지팡이나 막대 끝을 장식하는 것인데, 방울이 2점 붙어 있다. 그래서 일종의 간두령(竿頭鈴: 지팡이 끝에 붙인 방울)이라고 한다. 소리나는 방울을 단 지팡이를 사용할 때는 구지 설명하지  않아도 제사지낼 때이다.

 

그림 2. 울스키 아울 유적 2호분 출토, 높이 26cm, 너비 18.9cm, 1908년 조사

 

이 유물이 출토된 울스키 아울(Ульский аул, Ulsky aul)유적의 1호분은 그 모습의 스케치가 남아 있다(그림 3). 높이가 6미터에 달하는 봉분이 있고 지하에 나무로 된 무덤방을 만든 무덤이다. 코스트롬스카야 유적(그림 4-a)과 같이 무덤방의 천장 위에서 유물이 발견되었다(도굴아님). 이 곳의 고분에도 말이 특히 많이 매장되었는데, 무덤방 둘레에서 확인되었다. 이 보다 빨리 발굴된 무덤(1898년 조사)에서는 말이 400마리 매장되었다고 하는데 도굴이 심해서 전모는 잘 남아 있지 않다.

 

그림 3. 울스키 아울 유적 1호분의 스케치

 

 

위의 그림만으로는 무덤구조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주 간략하게 그려진 것이다(비교적 최근자료에는 이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가 있는데 여력이 된다면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흑해부근에서 발굴된 스키타이 무덤은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무덤구조가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문양장식은 이를 뛰어넘어서 확인된다. 알타이의 유물에서도 드러났듯이 사실적이면서도 과장된 표현법이 이 곳에서도 사용되는 것이다.

 

그림 4. 흑해 북안의 무덤: a-코스트롬스카야 유적(위는 평면도, 아래는 단면도에 가까움, b-엘리자베틴스카야 유적(무덤 평면도)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리아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스키타이 문화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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