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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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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 9. 11:04 스키타이 동물장식

 

유라시아 초원의 넓은 지역을 지배했던 스키타이 문화권을 연결하는 것은 스키타이 3요소라고 불리는 동물문양장식, 무기, 마구이다.

 

동물장식은 여러 동물이 있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생물도 있는데, 그리핀이라고 불리는 존재이다. 흑해 우안의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 위치한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가장 먼저 그리핀이 나타나면서 이 동물문양장식이 어디서 기원했는가에 대한 많은 의문점을 남겼다.

 

유적에서 발견된 간두령에 달린 동물장식, 거울 속의 동물, 투부에 표현된 동물 들은 여러 지역이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연구자들은 동물문양장식이 이 문화권을 대표한다고 여겼기 떄문에 동물문양장식의 기원은 스키타이 문화와 스키타이 문화권의 기원문제와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경향을 바꾼 것은 시베리아 유적을 발굴하고 나서 부터이다)

 

흑해지역은 대단히 지정학적인 위치이고 스키타이 문화가 번성하던 시기에 인접한 우라루투와 앗시리아지역은 문화적으로 융숭했고 실제로 유적에서 많은 요소들이 확인되기 때문에 고려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유적에서 나타난 인접한 문화의 동물장식들을 알 필요가 있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의 간두령

 

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의 투부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2. 6.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스키타이(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은 시베리아을 중심으로 해서 서쪽으로는 흑해 및 그 인근까지 동쪽으로는 몽골과 중국 동북지역의 일부지역까지 그 흔적이 확인된다. 스키타이 3요소라고 불리는 특징이 이들 지역에서 발견되기 때문인데 그 지역에 따라서 스키타이 3요소의 양상은 다르다. 각 지역의 문화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스키타이 문화가 주체가 아닐 수도 있다.

 

어찌되었던 스키타이 3요소 중에 동물장식은 주로 맹수나 맹금류 굽동물이 주를 이룬다. 또 이들을 합성시킨 알 수 없는 동물들도 발견된다. 그 중에서 매우 애매한 존재가 멧돼지인데 뿔을 가진 굽동물과는 달리 잡식성이기 때문이다.

 

동물장식은 전신이 모두 표현되는 경우와 동물의 머리만 표현되는 경우가 있는데 주로 맹수와 맹금류의 머리가 다양하게 표현된다. 하지만 흑해 북안의 우크라이나 삼림초원에서는 멧돼지도 머리만 달린 것이 발견된다. 전신형 멧돼지 장식이 주로 시베리아에서 먼저 발견되는 것과는 달리 머리만 붙은 것은 흑해지역에서 기원전 5세기경에 나타난다. 전신형은 흑해 부근의 발견되지 않는다.

 

그림 1. 흑해 남쪽의 케르치 해협에 위치한 님프 쿠르간, 기원전 5세기, 청동판

 

그림 2. 흑해 북안의 세미브라티예프 유적의 쿠르간, 기원전 5세기, 청동판

 

멧돼지의 이중적인 먹이 습성 때문에 사람들에게 해를 입힐 수 있고 두려워한다.

스키타이 동물장식을 연구한 페레보드치코바는 이란의 성서인 아베스타를 인용하면서, 멧돼지의 이중성을 스키타이 문화에서도 적용했다. 아베스타에서 멧돼지는 굽동물이면서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맹수로서 이중적이라고 묘사되었고 고대인의 생각체계에서도 멧돼지를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않는 동물로 생각했다. 그래서 페레보드치코바는 멧돼지를 굽동물(하계)과 맹수(상계)의 중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해발 1200m가량 되는 알타이의 바샤다르 유적에서는 멧돼지 장식이 발견되지만 더 이상 높은 유적에서 멧돼지는 발견되지 않는다.

 

아마도 멧돼지 머리만 표현된 것은 멧돼지의 무서움만을 강조하려 했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침 기원전 5세기경에 이 지역에서는 인간형상물도 부적으로 사용되던 시기 이기 때문(김재윤 2021)에 특정 동물문양도 비슷한 역할을 했을 수 있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페레보드치코바 199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드네프르강 하류의 그리스 도시 올비야가 서서히 쇠퇴하면서 케르치 해협에 수공업장으로 유명한 판티카페움(Panticapaeum, 판치카페이)이라는 도시가 흥행하기 시작했다. 이 도시의 사람들도 밀레트에서 이주한 사람들로 기원전 7세기 경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지만 흥행한 것은 기원전 4세기 부터이다.

유적은 미트리다트 산의 정상부에 위치하는데 이곳에는 아폴론을 모시는 아크로폴리스가 설치되었다. 판티카페움은 금속공예가 발달한 도시로 여러 장면이 묘사된 장식판, 은제 그릇과 황금 그릇, 여성 장신구 들이 만들어졌다. 장신구 중에는 포도송이 모양의 귀걸이, 소상, 도토리 작은 그릇 모양의 펜던트 등이 달려 있었다. 목걸이 가운데는 도토리 모양의 황금 구슬로 제작된 유물도 있다.

 

케르치 해협에 위치한 그리스 도시와 무덤에서는 토기도 많이 출토되었다. 특히 기원전 5~4세기 토기 가운데는 검은색 바탕에 붉은색으로 그려진 토기이다. 검은색 물감은 화산에서 나온 물질인데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검은색 물감은 단순한 물감(그림 1)이 아니라 광택이 있는 일종의 래커이다. 전체에 검은색의 래커 칠을 덮은 후에 필요한 부분을 긁어내고 붉은색을 칠한 방법으로 제작되었다.

 

기원전 3세기 이후에는 래커칠 대신에 물감으로 채색한 토기가 주를 이룬다. 그 이유를 검은색 래커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림 1. 그리스의 랙커토기

 

케르치 해협에 위치한 판티카페움은 이곳에 위치했던 보스포러스 왕국의 유적으로 생각된다.

보스포러스 왕국에 대해서는 이미 포스팅 한 바 있다.

2020.08.3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흑해의 크림반도 끝은 케르치 해협이라고 불리고 이곳을 케르치 반도라고 한다. 흑해와 아조프해를 연결하는 곳으로 다리처럼 생긴 지형이다. 이곳에는 스키타이 유목민과 그리스의 특징이 뒤

eastsearoad.tistory.com

포스팅

 

지금까지 간략하게 살펴본 것은 흑해 스키타이 지역 내에서 발견된 그리스 도시들이었다. 19세기에 흑해연안을 중심으로 발굴한 결과로는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에서 그리스 흔적들이 많이 보여서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에 지대한 영향을 형성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이후로는 시베리아 유적들에서 그 기원지로 볼 수 있는 유적들이 발견, 발굴되면서 그리스 기원설은 러시아내에서는 크게 통용되지 않는다. 필자가 살펴보기에도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으로 보기에는 그리스 문화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특히 스키타이 문화의 전통적인 무기류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Античные государства Северного Причерноморья / Отв.ред. Г.А. Кошеленко, И.Т. Кругликова, В.С. Долгоруков; авт. Е.М. Алексеева, А.К. Амброз, Т.М. Арсеньева и др. М.: Наука, 1984. 392 с.(코세렌코 편집, 1984, 흑해북안의 그리스 상고기 유적)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 북안으로 흘러가는 드네프르강 하류에는 기원전 5세기경부터 올비야 라고 하는 그리스 도시가 들어섰다. 그리스 사람들은 기원전 7세기 경부터 자신의 나라를 벗어나기 시작했는데, 흑해 북안에서는 드네프르강 하류의 부그만에 위치한 베레잔 섬에서 흔적이 발견되었고, 기원전 5세기경에는 올비야에서 그들의 도시를 건설했다.

 

그리스의 도시인 테메노스와 아고라가 언덕 위에 건설되었다. 아고라의 주변에는 테메노스(사원지)가 먼저 있었고, 그 뒤에는 고대 그리스의 재판소인 디카스테리아와 김나지움, 뿐만 아니라 시장도 건물로 자리잡았다.

 

아고라는 테메노스 보다 늦은 시기에 설치되었는데 기원전 3세기경 헬레니즘 시대로 일컬어질 때 부터이다. 흑해북안에서는 사르마트 문화가 번성하고 있을 때이다.

 

그림 1. 올비야의 아고라, 1: 헬레니즘 시기의 올비야 평면도, 2: 기원전 3~2세기 동쪽 교역용 건물터(시장), 3: 기원전 3세기 디카스테리아(재판소), 4: 기원전 3세기 김나지움

 

교역용건물터에서는 대량의 동전이 발견되었는데 기원전 6~5세기 동전은 각인한 것이 아닌 주조한 것이다. 가장 유명한 동전은 새가 돌고래를 공격하는 것이다. 올비야에서는 수공업이 발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특히 손잡이가 달린 거울은 흑해지역 뿐만 아니라 아랄해 부근 지역까지도 발견된다.

 

그림 2. 올비야의 동전, 5~10: 기원전 6~5세기, 11,12: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문화에서 손잡이가 달린 거울(그림 3)이 나오는데, 특히 손잡이 끝에 표범장식이 달린 거울은 스키타이 귀족이 주문해서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그림 3. 스타르폴 출토 청동거울, 그레코-스키타이 양식

 

참고문헌

 

Античные государства Северного Причерноморья / Отв.ред. Г.А. Кошеленко, И.Т. Кругликова, В.С. Долгоруков; авт. Е.М. Алексеева, А.К. Амброз, Т.М. Арсеньева и др. М.: Наука, 1984. 392 с.(코세렌코 편집, 1984, 흑해북안의 그리스 상고기 유적)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 북안의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우라루투, 그리스, 앗시리아에서 수입 혹은 제작된 유물들이 발견된다. 그리스는 스키타이 세계의 눈 앞에 그들의 도시를 건설했다. 드네프르강 하류의 베레잔 섬에서는 기원전 7세기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오니아 섬에서 제작된 토기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기원전 5~4세기 이후에는 인접한 ‘올비야’에서 좀 더 큰 규모의 그리스 도시가 발견되었다.

 

드네프르 강변에 위치한 도시로 높은 언덕 위에는 아고라와 테메노스(일종의 사원)가 발견되었다.

 

그림 1. 올비야의 발굴평면도

 

올비야의 테메노스는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까지 4개의 층으로 구분된다.

기원전 5~4세기(그림 2-A), 기원전 4세기(그림 2-B), 기원전 4~2세기(그림 2-C), 기원후 1세기(그림 2-D)이다.

 

그림 2. 올비야의 테메노스 평면도.

 

 

기원전 5~기원후 1세기의 모든 평면도(그림2)에서 숫자는 동일한 의미이다. 기원전 5~4세기 평면도(그림 2-A)의 숫자와 기원전 4~2세기의 평면도(그림 2-C)에서 4번은 아폴론의 신전이다. 기원전 5~4세기 평면도에는 동 제작소가 있지만(그림 2-A-3), 기원전 4~2세기 평면도에는 동 제작소는 발견되지 않았다.

 

테메노스는 아고라 라고 불리는 광장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주로 그리스 신들을 기린 신전이었다. 제우스 신전은 기원전 4~2세기(그림 2-C)에서 있었다.

 

참고문헌

Античные государства Северного Причерноморья / Отв.ред. Г.А. Кошеленко, И.Т. Кругликова, В.С. Долгоруков; авт. Е.М. Алексеева, А.К. Амброз, Т.М. Арсеньева и др. М.: Наука, 1984. 392 с.(코세렌코 편집, 1984, 흑해북안의 그리스 상고기 유적)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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