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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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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 12.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고대 유라시아 초원의 여러 문화에서는 동물문양장식이 대유행했다. 시베리아에서 기원전 9세기경부터 청동으로 만든 유물을 쓰기 시작한 이후이다. 기원전 7세기경에는 유라시아 지역 곳곳에서 발견된다.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는 지역에서는 각 지역의 특징은 있지만 사실적이지만 간략화되어 나타난다. 어떤 시스템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동물장식은 동 시대의 그리스, 페르시아, 우라르투에서도 제작되었고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 내에서도 유통했다. 다들 무슨 심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물을 변형한 물건은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에서만 제작된 것이 아니다.

그 중에서 기원전 5세기경 페르시아의 유물은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 내에서 그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그리스 문화와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가운데서 언뜻보면 맹수처럼 생긴 동물이 말을 물어 뜯고 있는 동물투쟁문양(그림 1)이 있다. 맹수는 S자로 몸을 꼬고 있고 작은 날개를 달고 있다. 앞다리와 뒷다리에는 〈○〉 표식이 있다. 그런데 이 동물의 머리에는 산염소의 뿔이 달려 있다. 뿔을 제외하고는 몸통의 표식은 알타이 동물장식(그림 2), S자로 굽은 날개달린 맹수는 카자흐스탄 이식(그림 3) 유적에서 발견되어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의 기원전 5세기 맹수변형이다. 그런데 이 동물에 페르시아 그리핀(그림 4)에서 볼 수 있는 뿔이 달려 있는 것이다.

 

그림 1.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그림 2.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 출토

 

그림 3. 카자흐스탄 이식 유적의 맹수

 

표트르 1세의 수집품은 아마도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알타이)에서 누군가 동물투쟁문양을 만들었을 것이고, 페르시아의 그리핀도 알았던 사람이 두 문화의 결합을 상징하기 위해서 만들었을 것이다. 이 점은 무슨 뜻을 내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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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2. 2. 11.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흑해 지역에 스키타이 문화가 존재했을 당시에 코카서스 남쪽에는 우라르투와 앗시리아가 번성했고 이들 나라에도 동물장식이 유행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상하리 만큼 스키타이 문화에 나타난 우라르투에 대한 요소들은 잘 연구되지 않았다. 20세기초에 러시아에서 발굴된 유적으로 연구된 것이 거의 다 인 듯 하다. 최근(2019년)에 피오트로프스키가 펴낸 책을 입수했는데 40년전에 자신이 발표한 내용과 같다.

우라르투와 스키타이 문화의 비교연구는 필요하다.)

 

고대 오리엔트 지역의 국가인 앗시리아와 페르시아의 유물도 스키타이 문화에서 발견된다. 앗시리아의 지비예 유적에서는 맹수장식과 비슷한 유물이 발견되지만 변형동물장식인 그리핀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리핀은 기원전 5세기 이후 페르시아의 제품(그림 1)이 흑해는 아니고 아무다리야 유적에서 발견된 바 있다. 이곳은 아무다리야 강의 하류에 위치한 타지기스탄에 위치했을 추정키로 한다. 페르시아 그리핀은 맹금의 머리에 몸통은 맹수이고 날개가 달려 있다. 특히 특징적인 것은 산염소의 뿔이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동시기의 알타이나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그리핀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또한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며 앞다리를 직각으로 굽히고 앉은 자세이다.

 

그림 1. 아무다리야 유적에서 출토된 팔찌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그림 2) 가운데서도 비슷한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페르시아 유물이 시베리아에서 널리 유통되었을 것이다.

 

페르시아보다 이른 앗시리아의 유물은 흑해지역에서도 발견되지만 특히 동물장식으로 잘 알려진 투부(그림 3)에는 맹수와 맹금의 조합인 그리핀은 없다. 대신에 염소가 인간과 결합되어 변형되어 나타나는데 연구자들은 이를 그리핀으로 여기는 것 같지는 않다.

 

그림 2. 표트르 1세의 수집품

 

그림 3.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의 투부장식

 

그런데 표트르 1세의 수집품 즁 동물투쟁문양의 그룹에 포함되는 유물 가운데 스키타이 동물문양과 페르시아 동물문양이 함께 표현된 것이 발견된다. 이 점은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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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세미브라트니예 유적은 7개의 무덤이 일렬로 있는데, 유적발견당시 지역 주민들은 이를 가르켜 ‘칠형제’의 무덤이라고 부르면서 그대로 유적명이 되었다. 2001~2004년에는 성벽이 조사되었고 서쪽에는 회자가 남아 있다. 성벽의 평면도는 사다리꼴에 가깝다.

 

무덤은 약간 나지막한 흙 위에 벽돌로 된 석실을 만들고 통나무 뚜껑을 덮었고 그 위에 봉분을 쌓은 것이다. 7개의 무덤 중 2호와 4~7호는 일렬로 서에서 동으로 나란히 배치되었고, 3호만 약간 열을 벗어났는데, 쿠반 강의 지형조건 때문으로 생각된다. 무덤은 쿠반 강이 흐르는 방향으로 거의 일렬로 서 있는데, 무덤이 있는 제방의 길이 때문이다.

7개의 무덤은 동시에 축조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비교적 최근 연구에는 시간차를 두고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가장 늦은 무덤이 1호와 2호 만들어졌다.

 

지도( 지점을 정확하게 찾음)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세미브라트니예 유적에서 나온 유물 중에는 유기질제 각배에 부착해서 장식했던 삼각형 금판 위에 그려진 동물문양 때문에 일찍이 주목을 받았다. 호랑이가 사슴을 등 뒤에서 공격하는 장면이 그려졌는데 파지리크 유적에서 나온 펠트장식의 문양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 유적에서 각배 뿐만 아니라 그리스 유물이 많이 나온다. 2000년대 발견된 성곽에서는 성곽의 통치자 이름이 적힌 일종의 비문이 나와서 성곽은 기원전 3세기 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무덤은 기원전 5세기부터 축조되었다.

 

그림 1. 세미브라트니예 유적 출토 각배장식판, 황금

 

맹수가 굽동물을 공격하는 장면은 파지리크 유적 뿐만 아니라 페르세폴리스(그림 2-a), 쿨-오바(그림 2-c), 표트르 1세의 수집품(그림 2-d) 등에서 발견된다. 이들 유적은 기원전 4세기 유적이지만 기원전 7세기인 켈레르메스 유적(그림 2-b)에서도 찾을 수 있다(그림 2).

 

그림 2. 세미브라타니예 유적의 동물문양과 같은 문양, a-페르세폴리스, b-켈레르메스, c-쿨 오바 d-표트르 1세의 콜렉션, e-세미브라트니예, f-파지리크 유적

 

이미 선학들이 연구했듯이 기원전 5세기 이후 스키타이 동물스타일에는 페르시아, 그리스 등의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 유물에도 스키타이 양식이 가미되어 있다.

 

그림 3. 쿨-오바 유적의 사슴장식, 기원전 7세기 코르트롬스카야 무덤에서 출토된 사슴방패장식을 모방해서 그리스 공방에서 만든 유물로 알려졌다.

 

그림 4. 쿨-오바 유적에서 나온 장식판, 궁수

 

동시대의 유적으로 알려진 케르치 해협의 쿨-오바 유적과는 가장 다른 점은 무덤 구조이다. 쿨-오바 유적은 석벽으로 쌓은 천장이 높은 석실무덤이고, 세미브라트니예 유적은 석벽으로 쌓았지만 통나무로 무덤을 덮은 구조이다. 나무로 된 매장주체부는 기원전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에 있었던 전통이다.

 

참고문헌

Горончаровский В.А. 2014 Семибратние курганы в контексте истории и древностей Северного Причерноморья//Боспор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XXX // Симферополь, Керчь (고론차로프스키 2014, 흑해 북쪽의 세미브라트니예 무덤에서 확인된 고대역사)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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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 13. 13:41 스키타이 동물장식

스키타이 동물장식 가운데 두 마리 동물이 특정 구도를 이루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두 가지인데, 서로 마주보도록 구성된 것으로 마치 데칼코마니 기법처럼 만들어진 것이다. 다른 하나는 특정 동물이 다른 동물을 물어 뜯는 장면으로 투쟁장면이라고 불린다. 대부분 힘쎈 맹수가 자신의 먹이가 되는 굽동물의 목을 무는 장면이다. 투쟁장면의 동물은 아주 역동적으로 표현되어서 두 동물의 신체는 S자를 이루며 옆으로 눕혀서 표현된다.

 

데칼코마니처럼 마주보도록 된 동물의 표현이 가장 먼저 관찰되는 유물은 흑해 지역의 기원전 7세기 고분인 켈레르메스 유적(그림 1-3)과 멜구노프 유적의 검집 끝에서 발견된다. 두 유물은 매우 유사하며 의례용으로 제작된 유물이다. 대칭적으로 마주보는 사자의 모습이다. 오스트라야 토마콥스카야 마길라 유적의 검날 멈치에서도 확인된다. 몸이 면으로 처리되고, 눈, 귀, 주둥이가 강조되는 스키타이 동물양식의 특징이 있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검집장식

 

마주보는 동물 구성장면은 스키타이 문화의 형성기 유적인 이란의 지비예 유적에서도 검집 끝장식에서 발견되었다(그림 2-1). 하트모양의 귀, 크고 둥근 눈, 과장된 주둥이 등이 강조되었고, 다리는 스타일화 되었다. 맹수는 상체만 표현되었는데, 흑해지역에서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그림 2. 스키타이 문화의 인접 지역에서 발견되는 검집장식

 

두 동물이 싸우는 동물 투쟁문양은 기원전 5세기에 스키타이 문화에서 등장한다. 이 시점에는 그리스, 페르시아 지역과 매우 많은 교류가 있었던 시기이다.

페레보드치코바는 동물투쟁문양은 그리스와 페르시아 양식을 따르는 것으로 보았다. 쿠반 강 유역의 세미브라트노예 유적의 무덤 4호에서 출토된 각배에 부착된 금속판에 새겨진 동물장식은 맹수가 사슴을 공격하는 장면이 표현되어 있다. 이 유적의 2호에서 출토된 토기의 덮개판에는 비슷한 그림이 표현되어 있었다. 각배의 금속판에 그려진 동물장식은 맹수는 아직 스타일화 되지 않은 채 원근법이 살아 있는 사실적으로 표현되었고, 사슴은 스키타이화 된 것이다. 몸통을 면각으로 두드러지게 표현했고, 사슴의 자세와 굽의 위치, 견갑부의 형태 모두 사실적이라기 보다는 스키타이 스타일화 된 것이어서, 이웃한 지역의 동물장식을 차용하면서 혹은 인용하면서 동물투쟁문양이 생겼다고 보았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기원전 5세기에 스키타이 문화에서 널리 사용되는 동물투쟁문양은 특히 파지리크 유적에서 많이 확인되는데, 두 동물은 모두 이미 ‘스타일’ 화 되었기 때문이다.

페레보드치코바는 동물투쟁문(세미브라트노예 유적의 각배 장식판)에서 나타난 사실적 맹수+스타일화 된 사슴이 가장 먼저라고 보았던 것이다. 사실적 표현이 먼저이고 스타일화(규격화되면서 추상화됨)된 동물장식이 나중이라는 의미이다.

사실적 표현이 먼저고 추상화된 스타일이 나중이라는 점은 동의한다. 그러나 이 유물이 세미브라트노예 유적의 각배 장식판에만 나타났다고는 볼 수 없다. 파지리크 유적의 유물을 보고하면서 아주 간단하게 보고된 유물 가운데 나무에 새겨진 두 동물이 있는데, 카탄스키 유적의 유물로 보고되었다. 두 동물의 표현은 원근법이 살아 있고 사실적이다. 페레보드치코바의 의견대로라면 카탄다 유적의 유물에 표현된 사실적 동물 2마리 표현이 더 먼저 일 수 이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금속의 동물투쟁문양은 기본적으로 네모 플레임 안에서 구현되는데 이를 카탄스키 유물은 이를 따르고 있다.

 

그림 3. 세미브라트노예 유적의 각배 장식판

그림 4. 알타이 카탄다 유적의 유물

 

페레보드치코바는 이와 같은 마주보는 구도의 동물장식은 기원전 5세기 파지리크 유적에서나 관찰된다고 여겼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하지만 새로운 유적의 발견으로 같은 구도의 동물장식이 검에 표현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아르잔-2호 주인공무덤인 5호묘의 남성 칼의 검날멈치에도 호랑이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장면이 확인된다. 호랑이는 몸을 거의 말고 있는 형태이다.

 

그림 5. 아르잔-2호 5호묘

 

마주보는 두 동물의 구도는 1990년대의 연구성과와는 달리 기원전 7세기 경부터 스키타이 문화에서 흑해지역부터 시베리아까지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검 집 장식으로 돌아가 보자. 검집 장식 가운데는 두 동물이 마주보는 장면도 있지만 이란에서 발견된 것과 같이 서로 몸을 꼬고 있는 장면도 발견된다. 로스토프체프(1929)는 루부르 박물관에 있는 상아로 된 유물(그림 1-7)을 주목한 적이 있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것이다. 현재는 이 유물이 검집장식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지만 당시에는 전혀 알 수 없었고, 생긴모양으로 보아서 앗시리아에서 기원했다고 생각했다. 이 유물의 용도를 알 수 있게 한 것은 페르세폴리스의 궁전 벽에 새겨진 조각 덕분(그림 2-4~6)인데, 모두 검집 끝을 장식했다. 이 검집 끝장식은 어떤 동물인지 알 수 없으며, 머리로 보아서 굽동물이고, 몸은 매우 추상화되었다.

하지만 여러 연구자들은 이 동물 장식의 원형(原形)은 스키타이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으로 보았다(Bernard 1976, 페레보드치코바 1994).

 

비슷한 동물장식이 시리아 북부의 테베 –규욱(그림 2-8), 박트리아(그림 2-9) 등에서 발견되었다. 그럼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페르세폴리스에 검집 장식(그림 2-4~6)으로 새겨질 수 있었을까? 이 궁전은 페르시아가 이를 지을 당시에 인접한 국가 들의 장인을 모두 불러 보아서 만들었을 것이다. 그 장인들이 자신이 새긴 검집 장식의 원형(原形)에 담겨진 주제를 이해하지 못했을까?

검집장식이 삼각형에 가까워서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과는 다르다는 의견도 있지만, 항상 원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기원전 7-6세기 테미르-고라(그림 6-1) 등에서 발견된 유물은 원(圓)형은 아니라 삼각형에 가깝다.

 

그림 6. 흑해 지역에서 발견된 원형의 맹수장식

 

Bernard는 페르세폴리스에서 발견된 검집장식과 이집트에서 발견된 상아제 검집장식은 모두 아케메니드 시기로 보았다. 이 생각은 이집트에서 발견된 검집장식이 페르세폴리스의 조각 보다 먼저 일것이라고 본 것을 부정한 것이었으며, 검집장식에 표현된 동물장식이 일정한 발전방향으로 모양이 변하면서 생겼을 것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집트의 검집장식은 그 지역에서 재생산된 것으로 보았다. 페레보드치코바는 아케메니드 왕조에서 궁전을 지었던 일은 매우 큰 사건으로 이웃한 지역에 매우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여러 장인들은 이를 또 인용(차용, 모방)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대로 인용했을 수도 있고 자신의 전통에 맞게 고쳐서 해석했을 수도 있다. 만든 각자의 장인들은 상호간의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상대의 언어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전통은 교류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물장식은 그 매개가 된 것이다.

페레보드치코바는 페르세폴리스의 건조가 스키타이 동물양식이 폭발적으로 주변지역으로 전달된 사건으로 보았다. 그래서 기원전 5세기경에 스키타이 동부지역에서 서부지역까지 서로가 서로의 문양을 공유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더보기

그러나 앞서 이야기 했지만 이미 그러한 계기가 된 어떤 이유는 기원전 7세기(아르잔-2호) 경에 나타났을 수 있다. 물론 페르세폴리스의 건조도 더 증폭되는 계기가 되었겠지만.

원형의 호랑이 장식과 S자형 호랑이 장식은 시베리아에서 먼저 나타났다. 동물투쟁문양도 카탄스키의 예를 볼 때 알타이를 배제할 수 없다. 동물투쟁문양에 S자형 동물장식이 가미되는 것도 알타이에서 먼저 관찰된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두 동물의 결합인 하이브리드형 동물은 흑해 지역에서 켈레르메스 유적의 은제 거울 보다 이른 유물은 아직 없다. 두 동물이 마주보는 구도의 동물장식은 좀 더 숙제가 남아 있다. 몸을 말고 있는 원형의 맹수상 만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널리 사용된 예는 아직 없다. 

 

페레보드치코바의 생각처럼 발전적인 양식을 따르지 않고 어떤 큰 사건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인접한 지역으로 전달된 것은 맞지만, 마주보는 동물구도를 검집 끝에 장식하는 방법이 변형된 방법으로 변화되는 것은 발전 혹은 진화론 적인 방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참고문헌

Rostovtzeff M. The Animal Style in South Russia and China. Princeton, 1929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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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 7. 13:26 스키타이 동물장식

어린 조카가 동물을 그리는 것을 본적이 있다. 물론 나도 어릴 때 동물을 그리기도 했지만.

동물은 주로 측면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사람은 주로 측면 보다는 전면이 대상이된다.

동물을 측면을 그리는 이유는 동물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제 설명한 독수리머리그리핀 중에서 머리띠 장식에 달렸던 독수리머리 그리핀은 측면을 보지 않으면 정확하게 어떤 동물인지 모른다.

암각화의 동물들도(육상동물일 경우) 대부분 측면을 그린다.

 

 

흑해지역의 그리핀 가운데는 페르시아 제품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해서 서아시아 기원설(로스토프체프 1925)이 제기 된 적이 있다. 쿠반 강(코카서스 산의 북쪽) 지역의 스키타이 유물 가운데 이란유적에서 발견된 유물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가 본 유물은 나중에 로스토프체프가 가설을 세운지 20년이 지나서야 발견되었고 루리스탄 청동기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가설은 1947년 이란의 지비예(Зивие, Zivie) 마을에서 유적이 발굴되면서 더 지속되었다. 이 유적의 유물은 앗시리아와 우라르트 양식이 혼합되었고, 스키타이 동물 양식이 묘사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20여년 전에 발견된 ‘루리스탄 청동기’를 상기시키게 되었다. 지비예 유물과 루리스탄 청동기 유물들은 스키타이 동물양식 특징 중에 어떤 세부부위가 강조되는 점 등은 켈레르메스 및 카자흐스탄 유물과 연관성이 깊다고 여기게 되었다(츨레노바 1967). 그런데 그 전제 조건은 지비예 유적이 가장 이르다는 조건 때문인데 기원전 9세기로 편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곧 조정되어 켈레르메스 유적의 연대인 기원전 7세기 경으로 생각되었으나, 다시 수정하게 된다. 그 이유는 지비예 유적과 루리스탄 청동기의 출토맥락 때문이었다. 지비예 유적은 농민들이 우연하게 발견했고, 그 유적의 발굴도 농민들 즉 비전문가에 의한 것이고, 유적의 정황이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많은 유물은 시장에서 구입되었던 것이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흑해의 스키타이 문화와 페르시아 지역의 문화는 서로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관련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문화의 교류현상은 이미 청동기시대에도 확인되었다.

 

그럼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제국의 아케메네스 왕조의 그리핀을 살펴보자.

역시 측면으로 동물은 표현된다. 크고 굽은 부리, 날개가 달린 맹수의 몸통이다. 그런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그리핀과 달리 솟은 귀 대신 염소에 특징적인 산염소의 뿔이 표현되어 있다. 이 유물은 쿠반지역에서 발견되는 그리핀과 달리 목의 갈기가 없다(Azarpay G. 1959). 이와 유사한 유물은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발견된 팔찌에 매달린 그리핀이다. 이런 유형의 그리핀을 사자머리 그리핀이라고 부른다. 아무다리야 출토 그리핀은 굽은 날개가 위로 솟아있고, 목에는 비늘이 표현되었고, 날개의 깃털과 몸통의 홈에는 다른 돌을 끼워넣었을 것이다. 사자머리 그리핀은 그리핀과 같은 몸통표현이지만 머리에는 염소뿔이 달려 있다.

 

그림 1. 아케메네스 왕조의 그리핀(Azarpay G. 1959)

 

2020/12/07 -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 기원전 5세기 그리핀 팔찌

 

기원전 5세기 그리핀 팔찌

아무다리야 퇴장지 유적으로 알려진 유물의 대부분은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인간형상물(입체), 팔찌와 목걸이, 반지, 원판형 장식판, 평면금판(인간형상). 토기, 동전 등 1300여점이 알려졌다. 주

eastsearoad.tistory.com

 

기원전 5세기 쿠반 지역에서 발견된 그리핀은 기원전 7세기 유물과는 형태가 많이 변형된다. 이마에 달았던 당호(그림 2-5)라고 생각된다. 이빨모양의 갈기가 있는 머리와 목은 입체적으로 표현되었고, 날개는 납작하게 벌려서 표현된 것이다. 이 그리핀은 벌린 부리와 목에 갈기가 표현되어 있다. 비슷한 갈기가 있고, 독수리 부리의 그리핀은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안장덮개에서 발견된 바 있다(루덴코 1953).

 

그림 2. 흑해지역

 

그림 3. 알타이 파지리크 출토 안장덮개 장식

 

아무다리야에서 출토된 팔찌 그리핀과 유사하다고 많이 착각하는 유물이 표트르 1세의 목걸이에 있다(그림 4). 이 목걸이 끝에는 그리핀이 붙어 있지만 새 머리가 아니라 호랑이의 머리이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그리고 몸통은 파지리크 유적에서 나온 그리핀의 몸통 표현과 유사하다. ‘C’자로 3~4개 연속해서 홈으로 만들고 엉덩이에는 둥근 점을 표현하는 점이다(루덴코 1961).

 

그림 4. 표트르 1세의 황금 유물 컬렉션 (루덴코 1963)

 

맹수와 맹금류를 결합해서 하이브리드화 하는 방법은 흑해지역에서 먼저발견된다. 사자머리 그리핀도 흑해지역에서 발견되기는 하지만 이것 때문에 스키타이 문화의 그리핀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없다. 페르시아의 사자머리 그리핀은 조류의 머리에 산염소의 뿔을 달고 있다.

 

 

참고문헌

Azarpay G. Some Classical and Near Eastern motivs in the Art of Pazyryk. — Artibus Asie. 1959, vol. 22, №4.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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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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