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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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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공유하고 있는 흑해와 아조프해 사이에는 케르치 해협이 있고, 이 곳에는 기원전 5~4세기 스키타이 무덤들이 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보스퍼러스 왕국이라고 정의되는 무덤들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무덤으로 꼽는 것이 쿨-오바 유적이다.

 

필자가 참고하고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공유하고 있는 흑해와 아조프해 사이에는 케르치 해협이 있고, 이 곳에는 기원전 5~4세기 스키타이 무덤들이 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보스퍼러스 왕국이라고 정의되는 무덤들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무덤으로 꼽는 것이 쿨-오바 유적이다.

 

필자가 참고하고 있는 책의 저자인 아르타모노프도 이 무덤은 보스퍼러스 왕국의 차르 무덤이라고 규정했을 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제 포스팅에서 남성과 여성이 매장된 곳이라고 했는데, 좀 더 정확하게는 3인이다. 2인은 성별이 구분되지만 나머지 1인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다.

 

나무로 된 관에는 남성이 매장되어 있었고, 그의 옆에는 여성이 있었는데, 남겨진 그림에서 여성은 남성과 구분되어 있다. Dubrux의 보고에는 여성의 시신 아래도 나무판이 놓여져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나무관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림에는 여성의 관이 잘 표현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Dubrux는 이 남성의 신장이 193cm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했다. 매우 호화로운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모자는 꼬칼콘의 모양으로 된 펠트로 된 것인데, 이를 황금판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목에는 461g의 거대한 황금 목걸이가 있다. 이 황금 목걸이는 매우 유명한데,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사진을 찍게 하지 못하는 방에 전시중이었다.

대신 매우 자세한 사진들은 여러 출판물에서 참고할 수 있다.

 

그림 1. 쿨-오바 유적의 돌로 된 무덤방의 바닥

 

그림 2. 쿨-오바 유적의 남성의 목걸이 끝장식

 

그림 3. 쿨-오바 유적의 남성 검집의 일부분

 

그림 4. 쿨-오바 유적의 금제 사발

 

그리고 이 남성도 요란하게 장식된 겁집과 철제 검, 활과 화살이 함께 발견되었다. 검집에는 상반신은 말이고, 하반신은 뱀 혹은 물고기 꼬리가 달린 괴기스러운 동물로 장식되었다(그림 3). 뱀과 다른 동물의 결합 동물장식은 인접한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에서도 볼 수 있다. 무기옆에는 금제 사발이 놓여 있었다. 고깔모자를 쓴 스키타이 인과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처럼 보이는 인물과 함께 묘사 되었다(그림 4).

 

쿨-오바 유적의 남성은 다른 무덤의 남성들과는 달리 자신의 모습을 여러 곳에 남겨 놓았다.

 

참고문헌

Журавлев Д.В., Новикова Е.Ю., Шемаханская М.С. Ювелирные изделия из кургана Куль-Оба в собрании Исторического музея. Историко-технологическое исследование. - М.: Исторический музей, 2014. - 352 с(주라블레프, 노비코바, 세마한스카야, 2014, 역사박물관 소장 쿨-오바 유적에서 출토된 명품 주얼리)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 28. 13:38 스키타이 동물장식

 

엘리자베틴스키(Елизаветовские курганы, Elizabeth mounds) 유적은 기원전 5세기 흑해지역의 대표적인 유적 중에 한 곳으로 쿠반 강 중류역에 위치한다. 쿠반 강은 흑해로 흘러가는 유적이다. 쿠반 강 하류의 세미브라트노예 유적과는 다른 동물문양장식이 발견되었다.

더보기

흑해와 그 인접한 지역은 여러 국가가 마주보고 있는 지역인데, 한때 같은 국가였지만 현재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함께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러시아는 코카서스 산맥과 산맥을 따라 흐르는 쿠반 강도 점하고 있다. 코카서스 남쪽도 해안가를 따라서 러시아 국경이 일부 있는데, 동계 올림픽이 열린 소치 부근까지가 딱 러시아 땅이다. 아조프 해에서 흑해까지 우측 해안가를 러시아가 점하고 있는 것이다. 스키타이 고분이 집중 분포하는 드네프르강 유역은 우크라이나 영역이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세미브라트노예 유적에서 발견된 동물문양장식은 스키타이 동물문양 뿐만 아니라 그리스장인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문양도 많이 발견되었다. 물론 엘리자베틴스키 유적에서도 그리스 전통의 토기 등이 발견되지만, 세미브라트노예와는 전혀 다른 동물장식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도 역시 20세기 초반(1912~1917년) 벨로프스키가 발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덤의 구조는 드레프르 강 하류의 무덤과는 다르다고 알려졌다. 무덤 지하에 집과 같은 구조(예를 들면 톨스타야 마길라, 체르토믈리크 유적)가 없으며 넓은 구덩이 형태라고 알려졌다. 무덤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무덤의 도면은 전해지지 않는다. 흑해지역의 유적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인 기원전 4세기로 알려져 있다.

 

체르토믈리크 무덤구조-->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tistory.com)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 강 유역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체르톰리크 무덤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중심무덤방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방 옆에 또 다른 방 들이 만들어진 구조이

eastsearoad.tistory.com

톨스타야 마길라-->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 기원전 4세기 흑해 스키타이 무덤(feat. 여신의 무덤) (tistory.com)

 

기원전 4세기 흑해 스키타이 무덤(feat. 여신의 무덤)

전설 속의 여신인 듯한 인물과 그리핀이 함께 표현된 금판은 침발카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말의 얼굴 가리개에 부착된 것이다. 스키타이 인들이 주문해서 그리스에서 제작된 유물이다. 출토된

eastsearoad.tistory.com

이 유적에서 잘 알려진 청동유물은 맹수 머리와 목을 늘려서 반복해서 표현하는 것이다(그림 1,2). 이미 몸을 늘린 사자 재갈멈치를 보여 드린 바 있는데(그림 3), 세미브라트노예 유적에서 나온 재갈멈치와 비교해 볼 때(그림 4), 납작하게 표현되었다. 사실 사자라고 했으나, 날개까지 달린 그리핀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그림 2는 단순히 맹수머리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동물의 몸통 상반부를 잘라서 이어 붙인다는 점에서 같다.

 

그림 1. 엘리자베틴스키 유적, 사자머리라고 알려져 있으나 매우 의심스럽다. 함께 출토된 재갈멈치(그림 3) 덕분에 사자로 인식하게 된 듯하다. 

 

그림 2. 엘리자베틴스키 유적 2

 

그림 3. 엘리자베틴스키 유적 3

 

그림 4. 세미브라트노예 유적

 

흑해지역에서는 알타이와는 다르게 전통이 유지되는 현상이 발견된다고 했다. 알타이에서는 동물의 종에 관계없이 채워지는 문양이 계속 유지되고, 흑해에서는 동물의 자세가 지속된다고 했다. 그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몸을 늘린듯한 재갈멈치는 알타이에서 영향을 받은 것(일린스카야 1971)이라는 의견은 동의할 수밖에 없다.

 

몸을 늘린듯한 맹수가 세미브라트노예 유물와 같이 매우 볼륨감 있게 표현되기도 했지만 엘리자베틴스키 유적의 유물과 같이 납작하게 제작되기도 했다. 필자는 엘리자베틴스키 유적의 유물 가운데 청동유물은 스키타이 장인들이 제작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 : Scythian Art. The Legacy of the Scythian World: mid-7th to 3rd century B.C. Leningrad: Aurora Art Publishers. 1986. 184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3000여 년 전 시베리아의 투바(현재)에 위치한 해발 1050m의 우육고원에는 이름하여 ‘왕의 무덤 계곡’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이 곳에는 마을이름이 아르잔인데, 3000여년 전 무덤이 남아 있는 유적의 이름도 ‘아르잔’이다. 아르잔에는 왕의 무덤이 수십기가 분포한 것으로 그랴즈노프가 보고 했는데, 발굴된 무덤은 2기이다.

 

그림1. 아르잔 1호의 무덤방평면도 

 

아르잔-1호는 전체 평면형태가 원형으로 그 직경은 120m이고, 주변의 호석을 제외하고 무덤방의 너비는 80m가량이다. 모든 무덤방에 사람과 말을 채운 것은 아니다. 특히 말과 인간이 함께 매장된 곳은 중심 매장부를 제외하고 13번, 26a, 26b번방은 확실하다. 31번 방에는 통나무관 2개가 남아 있고, 전체 평면도에는 말이 표시되었지만, 본문에서는 누락되었으나, 청동제 재갈은 출토되었다. 말이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심부의 무덤방에는 사람 10인과 말 6마리가 묻힌 곳이다. 

 

가장 중앙 무덤방에는 주인공을 위한 2차 무덤방이 따로 있고, 그 주변(북, 서, 남)에는 별도의 무덤시설이 따로 있다. 동쪽에는 말이 부장되었다.

중심부의 2차 무덤방(그림 1-1, 그림 2)은 직경 20~25cm의 통나무를 촘촘하게 쌓아올렸는데 높이는 1m 가량이다. 중심 무덤방의 천장은 남아 있지 않았고, 바닥에 직경 20cm의 통나무 17개가 깔려 있었다. 중심 무덤방은 이미 천장이 없어지고, 통나무관의 덮개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도굴 때문에. 매장된 사람의 다리지골 4개만 확인되었는데, 남성은 노인성 뼈 변화가 관찰되었고 여성은 노후의 징후는 없었다.

 

 

 

그림 2. 아르잔 1호의 중심 매장부

 

중심부의 2차 무덤방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1차 무덤방 안에는 무덤방 안에 통나무관을 넣은 곳(그림 3-2), 나무방만 있는 곳에도 사람이 묻혔다(그림 3-5). 그 외에 통나무관은 모두 7개이다. 2번 나무방(2.5×1.2m)에는 통나무관(2.2×0.8m)에는 사람은 확인되지 않았고, 금제행엽, 원통형장식, 터키석 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5번 나무방(1×0.5m, 높이 0.35m)(그림 3-5)은 2번 보다 크기가 작다. 나무방에서는 40~60세 남성이 확인되었다. 무릎을 굽히고 옆으로 누운 채였다. (굴신장이라고 부른다). 그 외에 통나무관은 대체로 크기가 1~1.4m이다. 4번 통나무관(그림 3-4)에는 18~20세의 남성, 6번(그림 3-6)과 7번 통나무관(그림 3-7)에서는 60세 가량의 남성, 8번 (그림 3-8)통나무관에서는 40세가 채 안된 남성, 9번(그림 3-9) 통나무관에서도 남성이 묻혔다. 9번 남성은 나이가 기록되지 않았다. 3번 통나무관에는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림 3. 아르잔-1호의 중심 매장부에서 확인된 통나무관, 그림 2의 번호와 일치(필자편집)

 

주인공 2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 8인(3번 통나무관을 포함한)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말은 중심 무덤방에서 6마리 분이 출토되었다. 만약에 성별구분이 정확하다면 이 무덤방에는 2차무덤방 내에 여성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이다. 3번 통나무관은 확실치 않지만, 주변부가 모두 남성이며, 담비가죽, 청동화살촉 등 다른 통나무관과 같은 유물이 출토됨으로 남성 무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무덤에는 2차 무덤방 안의 여성 1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이다.

 

 출토된 유물은 중심 무덤방(그림 2-1)과 이 무덤방 밖의 2번 무덤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담비가죽과 모직 옷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4번 통나무관에서는 담비가죽과 모직 옷을 제외하고 청동단검, 골제화살촉, 귀걸이 등이 출토되었다. 2번 무덤방에서는 금제의 마구장식과 원토형 장식 및 터키석 구슬등이 출토되었다. 중심무덤방에서는 담비가죽, 모직옷조각, 터키석구슬, 마구장식 등이 남아 있었는데, 도굴이 심하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다.  

 

통나무관의 크기가 2번 무덤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1~1.4m이다. 5번 무덤방의 길이가 1m가량임으로 비슷한 크기이다. 길이가 1~1.4m정도라면 이곳에 매장된 사람들은 5번 무덤방(그림 3-5)이나 7번 통나무관(그림 3-7)에서와 마찬가지로 무릎을 구부린 자세로 매장되었을 것이다. 통나무관은 크기가 큰 2번방 안의 통나무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슷한 형태이다. 측면의 모양은 사다리꼴을 반대로 해 놓은 모양인데, 지면의 바닥이 통나무관의 입구보다 크다. 관의 머리쪽과 다리쪽 모양이 다르다. 통나무관의 바닥이 둥글게 처리되었기 때문에 관을 고정하기 위해서 바닥에 지지대를 설치했다. 남아 있는 곳은 6(그림 3-6), 8(그림 3-8), 9번(그림 3-9) 통나무관이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스키타이 초기의 차르 무덤, 아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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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투바에는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가장 오래된 무덤이 있는데 대략 2800~2900년 전 쯤인데, 필자는 말하기 좋게 3000년 전이라고 할 것이다.

(러시아는 연방국가이고, 소수민족들이 중심이 되는 공화국이 러시아연방국가 안에 있다. 투바도 투바공화국이다. 중국의 소수민족 자치구와 비슷하지만, 그 보다는 훨씬 자치적인 권력을 인정해준다. )

 

그곳은 러시아 시베리아 투바공화국의 해발 1050m의 투란-우육 고원에 위치한 아르잔에서는 3000년 전에 무덤이 만들어졌다. 무덤은 구덩이를 파지 않고 지상에 설치되었는데, 나무로 만든 무덤방 70여개 이상으로 낙엽송 통나무 6000개 이상이 사용되었다.

 

무덤방은 앞에서 살펴본 우코크 고원과 파지릭 계곡의 무덤과는 달리 땅을 파지 않고 땅위에 설치되었다. 가운데 중앙의 무덤방을 가장 먼저 만들었는데, 네모꼴로 가로와 세로방향을 한 단씩 교차시켜서 쌓아올렸는데, 높이 2.6m이다. 중심부의 무덤방 뿐만 아니라 이 무덤의 모든 무덤방은 지상위에 가로와 세로 나무를 교차시켜서 쌓아올렸다.

이 점은 메인 무덤방의 단면도(그림1)를 보면 알 수 있다. 무덤방의 동서방향 단면은 그림 1-1인데, 이를 복원하면 그림 1-2이고, 무덤방의 남북 단면은 그림 1-3이고, 이를 복원하면 그림 1-4이다.

 

메인 무덤방의 외곽의 무덤방을 1차, 안의 무덤방을 2차무덤방이라고 하자. 내부에 있는 무덤방의 바깥에는 돌을 쌓아서 고정시킨 것(그림 1-2)이 관찰된다. 이는 무덤의 평면도에도 확인된다.

 

무덤에서 70여개의 무덤방 가운데 중앙의 메인 무덤방을 제외하고는 말이 매장된 무덤은 13곳이고, 그 중에서 3곳에는 사람도 함께 매장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말이 매장된 곳은 메인 무덤방 바로 옆에 위치한 무덤방 2번(그림 3)이다. 30마리의 말과 함께 골제와 청동제 재갈, 3공 재갈멈치, 골제, 청동제 화살촉, 장식드리개(행엽)과 환 등이 출토되었고,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 장식(이미 설명드린 바 있는)도 이곳에서 출토되었다. 

 

아르잔은 직경은 120m이지만, 높이는 3~4m밖에 되지 않는다. 봉분은 무게 20~50kg이고 두께 20~40cm의 납작한 돌을 쌓고 그 위에 작은 자갈돌을 덮었다. 이 외부에는 납작한 돌을 높이 2.5m까지 쌓아 올린 것이다(이 부분은 남아 있는 도면이 없다). 구글 위성사진에 남아 있는 흔적은 바로 이 부분이다.

 

무덤의 외곽에는 15~30m떨어진 지점에 2~3열로 석열이 돌아가는데 길이가 300m이다. 이 곳을 동남쪽 방향에서 조사해 본 결과 돌무더기로 확인되었고, 유물은 없었고, 염소, 소, 말 멧돼지 등 각종 동물뼈가 확인되었는데, 의례와 관련된 제사기단으로 추정한다. 이 석열은 무덤을 전체 다 돌아가지 않고 무덤의 반 정도만 돌아갔다.

무덤주변에 동물뼈를 뿌리는 관습은 이 지역의 청동기시대에도 관찰된다.

 

 

 

그림 1. 아르잔-1호분의 단면도(1: 동서방향단면도, 2: 1동서방향 단면도 복원도. 3: 남북방향단면도, 4: 남북방향단면복원도, A~D는 그림 2와 비교하시기 바람)

 

그림 2. 아르잔-1호분의 메인 무덤방.

 

그림 3. 아르잔-1호분의 무덤방 2번, 이곳에서 호랑이 장식이 출토되었다.

 

그림 4. 아르잔-1호분의 무덤내부, 평면도에서 가장 바깥쪽의 무덤라인 안쪽으로 점선이 있는데, 높이 2.4m의 석열이 돌아가는 부분을 표시한 것이다.

 

그림 5. 아르잔-2호분의 무덤내부, 아르잔 1호분의 무덤 외곽도 이런 납작한 돌을 쌓아올려서 축조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무덤은 1호에 비해서 대략 200년 가량 늦고, 무덤구조도 차이가 있지만, 같은 지역에서 확인되었고 납작한 돌을 쌓는 전통이라는 점에서 추정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그레르, 2017,Чугунов К.В.,2017,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그레르, 2017, 투바의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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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그에 있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는 표트르 1세가 수집한 시베리아 황금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 유물은 18세기 초반에 수집된 유물로 발굴되지 않아서 정확하게 어디서 출토되었는지 모른다. 다만 당시 시베리아 총독이었던 가가린이 표트르 1세에게 보내기 시작했고, 그를 통해서 유물은 황제에게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하게 어떤 유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출토지가 시베리아인 점은 알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로 추정하는 것은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혹은 표범) 장식이다. 필자가 이미 이 유물에 대해서는 소개한 바 있다. 이 유물이 가장 이르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한 계기가 된 유적은 시베리아의 투바에 위치한 아르잔 유적의 1호분이다.

 

 

그림 1. 지도에서 보라색 표시가 있는 곳이 아르잔이 위치한 곳이다. 필자가 앞에서 지도를 링크해 둔 적이 있는데, 이를 찾아서 들어가면 필자의 지도를 공유할 수 있다.

 

이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에서 가장 이른 시기로 기원전 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근거는 무덤의 소재가 된 통나무 6000개이다. 1호는 1971~1974년에 발굴되었다. 이제까지 소개해 드린 우코크 고원(아크 알라하 3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과 파지릭 계곡(파지릭 유적의 1호분, 2호분, 5호분) 보다 최소한 300년~400년은 빠른 무덤이다. 연대차이가 있기 때문에 무덤 구조가 차이가 크다. 아르잔 1호는 무덤의 직경이 120m가 넘어서 아직도 구글지도(그림 2)에 흔적이 남아 있다. 호석(무덤 주변을 두른 돌)의 흔적으로 보인다.

 

그림 2. 아르잔 유적의 무덤, 아직도 무덤 주위의 흔적이 희미하게 둥글게 남아 있다. 그림3-1과 비교해 보면 도로와 앞에 있는 건물의 위치가 그대로 임을 알 수 있다.

 

그림 3. 아르잔 유적 발굴 모습, 1- 전경, 2- 무덤방 7호의 가장자리에 놓인 통나무, 3-무덤방 3번의 말, 4-무덤천장덮개를 제거한 후 무덤방 26b, 5-무덤 봉분을 제거 한 후 드러난 무덤방의 모습, 동->북동방향

 

아르잔 유적 1호분이 책으로 출간된 것은 1980년이고 발굴책임자인 그랴즈노프가 출판했다. 그랴즈노프는 ‘아르잔’ 유적이 있는 곳(해발 1050m)은 주변이 높은 산지로 둘러싸인 계곡인데, 왕의 계곡이라고 불렀다. 아르잔은 이 곳의 마을 이름인데, 마을에서 서쪽으로 반경 4km 내에 6개의 무덤이 줄을 서서 있다고 한다(그림 4-1). 또한 마을에서 서쪽으로 4-5km 에는 무덤 11기, 6km 떨어진 곳에는 무덤이 3개 확인되었다.

 

그림 4-1에서 7번 지점에는 2줄 로 3km 가량 무덤이 열을 이루고 있는데 각각 13개, 12개가 확인되었다.

 

아르잔 마을 주변의 많은 무덤 가운데서 가장 특별하고 가장 눈에 띄고 단독으로 있는 무덤은 그림 4-1에서 1, 2, 8번이다. 2번이 먼저 발굴되어 아르잔 1호로 명명되었고, 1번이 아르잔 2호이다. 직경 120m, 높이 3~4m로 워낙 직경이 크고 무덤의 봉분이 완만해서 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림 4. 아르잔 유적, 1- 아르잔 마을 주변에서 확인되는 무덤(2~8번 숫자가 적힌 것이 마을에서 서쪽으로 반경 4km 내의 무덤이다), 2-아르잔 1호분의 봉분과 주변의 제사유구.

 

아르잔 1호 주변 무덤의 남동쪽에는 2~3줄의 원형 돌무더기가 무덤을 둘러싸고 있었다(그림 4-2). 이 곳을 발굴한 결과 일정한 크기로 비슷한 간격으로 돌 무더기가 열을 이루고 있었는데, 일종의 제사유구(그림 5)로 생각된다.

 

 

그림 5. 아르잔 1유적의 외곽, 그림 4-2에서 A부분.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스키타이 초기의 차르 무덤, 아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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