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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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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의 초기철기시대는 스키토-시베리아(스키타이) 문화권이 형성되었다. 흑해에서 연구되기 시작한 스키타이 문화의 범위를 시베리아까지 넓히면서 생긴용어이다. 유라시아 초원 지역을 연결하는 여러 공통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러시아 학계에서는 무기, 마구, 동물장식을 꼽았고 그 중에서 동물장식은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특히 맹수장식과 사슴장식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워낙 넓은 지역에 문화권이 형성되어서 지역성은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알타이에는 파지리크 문화, 미누신스크 분지에는 타가르 문화, 카자흐스탄에는 타스몰라 문화, 흑해에는 스키타이 문화 등 각 지역마다 부르는 명칭이 따로 있다. 흑해 북안과 코카서스 북쪽의 문화를 스키타이 문화라고 부르는데, 좁은 의미의 기록에 따른 명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의 줄임말)에서 가장 이른 유적이 나오는 곳은 투바인데, 기원전 9세기의 아르잔-1 유적과 이 보다 늦은 기원전 7세기 중반의 아르잔-2 유적이 있다. 아르잔-2호 무덤은 도굴되지 않았고, 지하에 무덤이 설치된 이유로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그간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많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서 아르잔-2 유적은 카자흐스탄의 타스몰라 문화와 관련성은 이 유적을 발굴한 추구노프 박사가 이야기 한 바 있다. 워낙 많은 유물이 출토되어서 여러 지역과 연결할 수 있는 유물이 많은데, 타스몰라 문화와 관련해서는 무덤구조 보다는 유물이 관련이 깊은데 마구(재갈, 재갈멈치, 굴레장식), 허리띠 장식 등은 매우 관련이 있어 보인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그림 1. 타스몰라 문화의 청동유물, 굴레장식(1~10, 12,13, 20)과 버클 장식(11, 14~19), 타스몰라 I 유적

 

 

 

그림 2. 타스몰라 문화의 청동허리띠 장식 1-누르만베트 IV유적 3호, 2-누르만베트 IV유적 1호, 3-타스몰라 II 유적 1호

 

타스몰라 문화는 기원전 7세기부터 우랄 남부부터 이르티시 강까지 시베리아의 서쪽에 분포했고, 기원전 5~3세기 경에는 천산산맥 부근까지 유적이 발견된다.

 

참고문헌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 1992 (스키토-사르마트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대)

А.X. Маргулан, К.А. Акишев, М.К. Кадырбаев, А.М. Оразбаев Древняя культура Центрального Казахстана.// Алма-Aтa: 1966. 436 с.(마르구란 외 1966, 카자흐스탄 중분의 고대 문화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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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6. 30. 13:13 스키타이 동물장식

 

 

유라시아 초원지역을 스키타이 문화권(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으로 잇는 3요소는 무기, 마구, 동물장식이라는 점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물장식이다. 스키타이 문화의 서쪽인 유럽과 동쪽인 카자흐스탄 및 시베리아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동물장식은 다리를 배쪽으로 접어 넣은 사슴, 원형의 맹수장식, 다리를 접은 맹수이다.

 

주제는 같지만 개별 동물양식은 동과 서의 표현이 다르다. 동쪽의 동물장식은 몸통의 표현이 더 볼륨감 있게 부조기법으로 처리되지만, 미누신스크 분지와 카자흐스탄에서는 몸통 표현이 동쪽처럼 확실하지 못하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하지만 이 점은 투바의 아르잔-2호에서도 몸통 표현이 확실한 동물장식이 발견되기 때문에 단순히 동과 서의 문제로 보아야 할지는 앞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이를 제외하고도 배쪽으로 다리를 접어 넣은 사슴은 서쪽에는 이마쪽으로 뻗은 가지가 2개인데, 동쪽은 하나씩이다. 뿐만 아나라 서쪽에는 머리를 뒤로 돌려서 엉덩이쪽을 향하는 장면이 있지만 동쪽에는 대부분 앞으로 향한다.

공통적인 주제이지만 동물장식의 표현은 동과 서가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필자가 진짜 궁금한 것은 새와 맹수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하이브리드 동물인 그리핀이다. 현재 그리핀의 종류가 다양하고 많이 발견되는 곳은 알타이이다. 해발 1500m이상의 고분에서 말의 굴레장식과 머리장식에 그리핀이 사용되었다. 이들 무덤은 깊은 구덩이에 나무방과 통나무관이고 경우에 따라서 미라처리된 시신도 발견된다. 해발 2000m이상의 추야강변의 무덤에서도 그리핀 장식이 발견되지만 말 보다는 머리장식으로 사용되었다. 이들 유적은 기원전 6세기~기원전 4세기이다.

 

알타이에서 이를 벗어난 곳은 발르익-소오크 1 유적이다. 그리핀 장식은 머리장식과 목제테이블의 다리받침 장식으로 사용되었으며, 기원전 7~6세기 사이로 알려진 곳이다. 알타이에서는 다른 유적 보다 빨리 발견되기도 했지만, 평지의 아르잔-2호(기원전 7세기 중반)에 비해서는 늦다.

 

하지만 서쪽에서는 그리핀의 사정이 더 복잡하다.

흑해에서 가장 이른 유적중에 하나인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나온 거울 속의 그리핀과 간두령 장식 등이 대표적인 유물이지만 인접한 지역에서 제작된 유물이 많기 때문에 주체가 누구인가가 늘 문제시 된다. 스키타이 지역에서 제작되지는 않아도 스키타이 인의 주문에 의해서 스키타이 주제가 그려진다고 바라보는 관점과 제작지가 더 우선시 되는 관점이다.

그래서 중요한 점은 그리핀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이다. 어떤 유물까지를 그리핀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예를 들면 일각에서는 반인반수도 그리핀의 범주에 넣는 연구자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서쪽의 인접한 지역에 너무 많은 고려사항이 생긴다. 스키타이 문화의 그리핀을 특정할 수 없다.

 

이점을 고려하더라도 그리핀이 가장 다양하고 자유롭게 표현되는 지역을 알타이다.

좀 더 단순하게 생각하면 스키타이 문화에서 나는 동물에 대한 동경으로 맹금과 새의 조합물이 만들어졌을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꿈은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있었고 코스텐키 I유적(흑해)(그림 1)과 말타 유적(그림 2)과 같이 새를 형상화한 유물이 무덤 속이나 집터에 남아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후기구석기시대 이래로 철기시대까지 늘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림 1. 흑해 코스텐키 1 유적의 새형상물, 말타 유적의 동물형상물을 날개를 펴고 있는 새로 본 것은 코스텐키 1유적과 비교해서 생긴 결과이다. 두 유적 모두 동유럽과 시베리아에서 비너스상과 동물형상물이 가장 많이 출토된 유적이고, 집자리가 여러 동 발견된다는 점에서 많이 비교된다.

 

 

그림 2. 시베리아 말타 유적의 새 형상물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Абрамова З.А. Палеолитическое искусство на территории СССР. – М.; Л.: Изд-во АН СССР, 1962. – 85 с., (아브라모바 1962, 소비에트 내의 후기구석기시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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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남부 알타이의 기원전 6~3세기 유적에는 무기류가 발견되는데 주로 철제검과 철제칼 뿐만, 화살촉, 투부(전투용도끼)등이 있으며, 이미 여러번 언급했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그런데 모든 유적이 아니지만 철제검을 착용한 방법을 알 수 있게 하는 유물이 출토된다. 코르-케추 유적(그림 1), 테르베독 유적(그림 4-4, 그림 5) 등이다. 철제검 뿐만 아니라 철제검을 신체에 부착할 수 있도록 가죽집에 달린 끈 까지 발견되었다.

 

림 1. 알타이의 코르-케추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검

 

이미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검은 대부분 길이가 짧아서, 단순히 허리에만 착용할 수 없다. 허리끈에 보조끈을 달아서 우측 허벅지 위에 달았던 것으로 알려졌다(그림 2-11). 파지리크 문화(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버전)에서는 검은 대부분 오른쪽에 착용한다. 하지만 간혹 왼쪽에 착용한 것도 발견된다. 짧은 검이기 때문에 허리와 다리사이에 고정해서 착장하기 위해서는 검집에 특수한 부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 궁전벽화에 그려진 그림의 검은 검집 한쪽이 날개처럼 달린 부분에 허리와 연결시킨 흔적(그림 2-13~16)이 남아 있다. 실제로 켈레르메스 유적과 멜구노프 유적 등에서는 같은 스타일의 유물이 발견되기도 한다(그림 3).

 

 

 

그림 2. 단검의 착용 방법

 

 

그림 3. 멜구노프 유적 출토 의례용 철검

 

알타이에서 발견된 청동검은 장식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짧고, 일주식(거푸집에서 검의 손잡이부터 날까지 한 번에 주조)이고 검날멈추개(손잡이와 날의 경계부분)가 나비 형태 혹은 그 변형인 점은 흑해지역과 유사하다고 본다. (필자의 생각이 아닌 일반적인 견해이다.) 알타이의 청동검은 가죽집이나 목제검집에 넣어서 사용되었는데, 검집의 한쪽 끝을 날개처럼 만들어서 허리띠와 연결시키지 않고, 검집에 가죽으로 된 일종의 단추를 만들어서 끈을 끼워서 사용했다(그림 1).

 

그러나 알타이에서 발견된 청동검도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다. 청동이라는 물질 자체가 철보다는 무른 소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매우 얇아서(그림 4-4)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림 4. 테르베독 유적 출토

 

 

그림 5. 테르베독 유적 출토 청동검과 가죽제 검집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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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시베리아의 해발 2000m 알타이에 위치한 알라-가일- 3유적은 11기의 무덤이 일렬로 서 있다. 그 중에서 5호는 가장 먼저 생긴 무덤인데,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재갈과 재갈멈치의 형태 때문이었다.

 

그런데 11기의 무덤이 동시에 생겼을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1호는 돌널무덤인데, 무덤에서 발견된 허리띠의 버클 장식(그림 1-6,7)과 끈을 끼워서 고정하는 판(그림 1-5)는 기원전 4세기의 것이다(267).

 

평면형태가 사다리꼴에 가까운 버클의 앞판 장식(그림 1-20)은 추야강과 우르술 강 일대에는 보이지 않던 유물이다. 그 이전(기원전 6~4세기)에는 허리띠 방형의 장식판만(그림 1-11, 13) 달았다. 기원전 6세기 전반에는 장식성이 강한 장식판을 달았다. 동물문양(그림 1-1), 기하학적 문양(그림 1-3), 꽃 문양(그림 1-5) 등이다.

울란드리크 I 유적의 5호에서는 가죽 끝의 끝에 청동고리가 연결(그림 1-8)된 채 발견되었다. 가죽끈은 청동칼과 연결되었던 유물이다.

 

그림 1. 추야강과 우루술 강 유역의 띠(허리띠 및 기타)의 여러 부속품, 20,21-알라가일-3 유적 1호분.

 

알라-가일-3유적의 1호는 5호묘와 달리 돌널무덤이다. 1호에서는 보기 드문 유물도 발견되었는데, 불을 만들 때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그림 2-9,10)이다. 어떤 유물을 감쌌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죽조각(그림 2-11, 12)이 발견되었는데, 두텁고, 꿰맨 흔적이 남아 있다.

무덤의 네 모서리에는 나무 기둥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림 2. 알라-가일-3 유적 1호분, 1: 알라-가일-3 유적의 무덤배치, 2: 무덤의 덮개와 단면도, 3: 무덤 내부의 모습, 4-뿔제 사슴, 5-7: 뿔제 연결고리와 버클 장식판, 8-꼬인 가죽, 9,10-불을 피우는 목제품, 11, 12-두꺼운 가죽, 꿰맨 흔적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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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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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버전인 파지리크 문화에서는 무덤이 일렬로 열을 이루는 현상이 확인된다. 그런데 모든 유적에서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해발 2000m이상의 기원전 5세기 이후인 바르부르가지 I, 울란드리크 유적(I~V), 유스티드 (I, XIII,XII) 유적 등에서 확인되고, 이 보다 이른 기원전 6세기 가량의 발르익-소오크 (1, 2) 유적, 보르탈 (1,2) 유적 등에서는 아직 그러한 현상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른 시기의 유적은 해발 1000m가량에 위치한다.

 

그런데 해발 2000m이상에 있으며, 기원전 5세기 가량의 유적인 알라-가일-3 유적(그림 3)에서는 11기의 무덤이 일렬로 줄을 서서 발견된다. 무덤이 일렬로 서 있는 유적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이다. 이 유적 이후로 바르부르가지 I 유적, 울란드리크 유적, 유스티드 유적 등에서 무덤이 일렬로 서는 현상이 발견된다고 볼 수 있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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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5세기 파지리크 유적, 투엑타, 바샤다르 유적과 같이 거대 고분은 해발 1500m 가량의 높이에서만 발견되며, 무덤을 열로 만들지 않았다. 역시 그 보다 높은 해발 2500m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3 유적과 베르흐 칼쥔 II유적, 아크 알라하-1 유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위의 내용은 필자가 이제까지 유적을 종합한 결과로 쿠바레프, 폴로스막, 루덴코, 그라즈노프 등(위 유적의 저자)은 언급하지 않은 결과이다.

 

알라-가일-3 유적에서 연대를 알 수 있는 유물은 재갈멈치이다. 유적을 발굴한 쿠바레프는 화살촉, 마구(재갈과 재갈멈치) 등으로 유적의 늦고 빠름을 판단했다. 알라-가일-3유적의 5호(그림 1)와 알라-가일 유적의 11호묘 출토의 재갈과 재갈멈치(그림 2)가 다른 유적에 비해서 빠른 형식으로 보았다.

알라-가일 유적 11호 재갈을 연결하는 구멍(그림 1-1)은 크기가 다른 2개로 큰 구멍의 형태는 원형이라기보다는 약간 네모꼴에 가까운 것과 다른 쪽은 원형이다. 구멍이 2개인 재갈멈치, 양쪽 구멍의 형태가 다른 재갈멈치는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유물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다른 재갈멈치(그림 1-4)의 단면은 원형이고, 동물이 장식되어 있다. 재갈멈치는 아르잔-1호와 다르다.

 

 

그림 1. 알라-가일 유적 11호, 1- 무덤 평면도, 2-청동제 재갈과 부착된 가죽, 3-청동과 철로 만든 검의 손잡이, 손잡이의 프레임은 청동, 안쪽 줄기는 철제로 제작됨. 4, 철제 칼, 5-가죽 옷 조각, 6,7-목제 재갈멈치, 8-유적 6호 무덤의 평면도와 단면도

 

 

알라-가일-3유적 5호묘의 재갈은 재갈멈치와 연결하는 부위의 구멍(그림 2-2)좌우가 다르며, 재갈멈치 역시 장식성이 가미된 것이다.

 

 

그림 2. 알라-가일-3 유적 5호, 1-청동재갈멈치, 2,3-뿔제 끈 연결고리, 4-뿔제 재갈멈치, 5-두께운 금판, 찍은 문양, 6-8: 청동제품, 9-황금 장식판, 10~12: 홍옥제 구슬 

 

 

그림 3. 알라-가일-3 유적 무덤 배치

 

쿠바레프는 이러한 정황을 들어서 알라-가일 유적 11호와 알라-가일-3 유적 5호가 알타이에서 이른 파지리크 문화의 유적이라고 생각했다.

‘알라-가일’ 유적은 이 명칭이 붙은 최초로 발견된 유적인데, 유적명 뒤에 번호를 붙이지 않았지만 알라-가일-1 유적이다. 모두 7기의 스키타이시대 무덤이 있었고, 그 중에서 11호를 포함한 4기가 이른 파지리크 문화의 유적이다. 유적명은 대부분 가장 가까운 행정구역명칭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알라-가일-3 유적과 같은 해발고도에 위치했을 것이다.

 

참고문헌

Мартынов А.И. (ред.). Южная Сибирь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ую эпоху, 1985 (마르티노프 외 1985,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의 시베리아 남부)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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