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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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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 10.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고대 유라시아 초원에서는 기원전 9세기 경부터 동물문양장식, 무기, 마구가 대유행한다. 특히 금속제 원형의 맹수장식은 투바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로 시베리아 뿐만 아니라 서쪽으로 늦은시기(기원전 7세기경에 발견된다. 소재와 크기, 용도 등은 다르지만 몸을 말고 있는 맹수의 모습은 분명히 투바(아르잔-1호가 있는 지역)에서 가장 먼저 발견된 동물장식이다.

 

이들의 동물장식은 어떤 동물인지 식별가능할 정도로 사실적이지만 매우 간편하게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동물장식은 이웃한 세계(우라루트, 고대 오리엔트)에서도 많이 사용되기도 했지만 표현방법이 달랐다. 특히 그리핀이라고 불리는 변형동물은 아마도? 재지에서도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이웃한 세계에서도 제작되었고 서로 유통되었다.

 

특히 기원전 5세기 이후 흑해지역에서는 그리스인들이 많이 들어와서 살게 되면서 괴기한(내가 보기에) 동물문양들이 많이 발견된다. 물론 페르시아 사람들이 만든 유물도 있기는 하지만 직접 들어와서 살았던 그리스인들보다는 그 영향력이 미미했다.

 

그리스의 그리핀은 맹수의 몸통에 새 머리를 달고 있는데,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발견된 간두령 장식과 흡사하다. 하지만 그리스 제품들은 스키타이 유물이 점차 간소화 도상학적으로 아이콘처럼 변해가는 것과는 달리 매우 사실적이게 된다. 특히 새의 날개가 붙었을 경우 매우 사실적이다. 이미와 목, 이빨 등을 매우 뚜렷하게 표현한다. 함께 표현된 사람들을 매우 실감나게 표현했기 때문에 함께 표현된 동물도 같은 방법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그림1.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은제 화병. 기원전 4세기. 이 화병처럼 생긴 병을 암포라 라고 부른다. 그리스의 전통적인 병 모양인데, 토제로 주로 제작되지만 이것은 은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림 2.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화병 속에 그리핀

 

그림 3.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검 집 속에 그리핀

 

2020.12.2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스키타이 검, 페르시아 검자루와 그리스 검집

 

스키타이 검, 페르시아 검자루와 그리스 검집

스키타이 문화와 페르시아 문화가 함께 유물 속에서 표현되는 예는 흑해에서도 종종 출토된다. 그림 1의 검은 손잡이와 검신의 제작지가 다르다. 손잡이(그림 1)는 페르시아 단검에 원래 달렸다

eastsearoad.tistory.com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1. 6. 09:22 책소개

 

다시 돌아가서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의 동물장식처럼 인간형상물은 이 문화의 상징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서 보셨듯이 인간형상물의 전통은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의 이전부터 지속되어 왔고 철기시대에 극대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동부지역 여신상인 미라는 부활을 기원하면서 제작되었다. 반면에 서부지역의 여신상은 기원전 7세기는 조상숭배의 개념에서 기원전 5세기 이후는 실용적인 벽사의 개념으로 바뀌는 차이점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러한 관념들이 갑자기 생겨났을까?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 이전에도 시베리아에서는 무덤 속에 뼈로 제작된 인간형상물을 무덤속에서 지속적으로  부장해 와서 매우 정신적인 영역의 유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고, 부활의 의미가 미라 이전부터 있었을 수 있다.

반면에 흑해지역에서는 특정기간에 제작되며 주거지와 무덤에서 모두 발견된다. 조상숭배의 개념에서 부적이나 벽사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인간형상물은 일상생활용품과 달리 그 변화는 천편일률적이 아닐 수도 있다. 후기구석기시대부터 무덤 혹은 주거지에 부장되는 그 행위가 지속적으로 보존된다는 것으로 보아서 동물문양 처럼, 유라시아 초원 선사문화의 상징물로써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유라시아 초원 선사시대 인간형상물의 동서비교

 

*위의 글은 11월 5일에 개최된 제 45회 한국고고학대회의 필자 발표문을 발췌한 것입니다.

한국고고학회 (kras.or.kr)

 

참고문헌

김재윤, 2021, 유라시아 초원 선사시대 인간형상물, 45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 발표문

김재윤 2021,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교과서 밖의 역사, 진인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0. 5.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2호에는 파지리크 유적의 문신에 새겨진 하이브리드 동물 중에서 뿔에 달린 새 장식이 발견되었다. 재갈멈치에는 독수리머리가 변형된 동물장식도 표현된 것이 있었다.

 

그런데 아르잔-2호 유적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도로변에서 무덤이 한 기 더 발견되었다. 이름은 아르잔-타르라그 도로변의 무덤이다. 이미 도굴된 상태였지만 무덤의 구조와 일부 유물은 남아 있었다. 역시 구덩이를 파고 무덤방을 만든 것으로 아르잔-2호의 5호묘와 같은 구조이다(그림 1). 이곳에서는 금박으로 된 얇은 그리핀 장식이 발견되었다. 날개를 펴고 있고 둥근귀가 달렸으며, 눈을 과장되게 표현되었다.

 

그림 1. 아르잔-타르라그 도로 유적의 무덤과 출토된 그리핀, 무덤방의 서쪽에서 도굴된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그림 2. 아르잔-타르라그 도로 유적 출토 유물

 

아르잔 도로 무덤은 도로 아래에서 발견되었고 출토유물도 거의 변변치 않아서 무덤구조로만 대략적인 연대가 파악가능하다. 무덤을 축조한 방법이 아르잔-5호와 유사하기 때문에 기원전 7세기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유적 출토 그리핀도 기원전 7세기 유물(그림 2)이다. 특히 아르잔-2호의 재갈멈치에 표현된 그리핀이 귀가 둥근데 같은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유적의 그리핀은 아르잔-2호와 연대적으로 가장 가까운 기원전 6세기 바샤다르 유적에서 나온 안장장식으로 알려진 그리핀과 관련성이 있다.

 

그림 3. 바샤다르 유적의 그리핀, 금으로 덮여 있었다.

 

시베리아에는 여러 종류의 그리핀이 있는데, 그 중에 독수리가 주인공인 그리핀은 아르잔-2호에서 시작되고 알타이 유적까지도 연결된다.

 

posted by 김재윤23

 

동유럽 스키타이 문화에서 가장 큰 스키타이 고분 중에 하나인 가이모노바 유적은 드네프르강 유역에 위치했다. 기원전 4세기 유적으로 스키타이 전통의 건축양식으로 만들어진 유적이다.

봉분의 직경이 70m이고 무덤방이 4개나 확인되었지만 무덤방 자체는 작다. 주요 매장부인 2번 무덤방은 센터에 위치하며 연도를 통해서 매장주체부로 들어가게 만든 것이다. 지상의 입구를 통해서 들어가면 바로 무덤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연도(복도)를 통해서 매장주체부로 갈 수 있는 구조이다. 체르토믈리크 유적,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 등 대형고분에서는 기본적으로 확인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무덤평면도 만으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상상하기 힘들다. 흑해 지역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기본적으로 기원전 5~4세기 무덤은 그림 1과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유적에 따라서 입구는 봉분의 사면에 위치하거나 무덤의 꼭대기에 위치하는가에 따라서 연도의 모양에 차이가 있지만 그림 1은 대체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 각배를 들고 고리트를 차고 있는 석인은 무덤의 꼭대기에 위치한다.

 

그림 1. 드네프르강 유역의 기원전 5~4세기 스키타이 무덤 복원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쿠르간은 기원전 7세기와 비교해 볼 때 외형은 유지되지만 내부 구조는 차이가 있다. 기원전 7세기에는 봉분 안에 목조구조물을 만들었다. 

또한 같은 문화권에 있는 시베리아의 쿠르간과 비교해 볼 때도 외형은 비슷하다. 봉분과 꼭대기에 석상(사슴돌)을 세웠던 모습은 시베리아 투바, 알타이에서 관찰가능하다.

 

스키타이 전통의 쿠르간(그림 1)은 그리스식 건축양식의 무덤구조와 스키타이 봉분이 결합된 유적(그림 2)과는 대비된다.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세계와 그리스가 서로 상호작용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반대로 그리스 사람들이 시베리아에서부터 당시에 유행하던 스키타이 무덤양식을 차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림 2. 흑해 북안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드네프르 강 유역의 가이모노바 유적에서는 기원전 7세기부터 나온 스키타이 신화 속의 인물인 아르김파사가 골제판에 새겨진 채 출토되었다. 이 유물은 사실 매우 이질적이다. 왜냐하면 아르김파사로 추정되는 인물은 금속제로 만들어지고 실제 사용한 물건(의례용이라고 할 지라도)에 장식되었다. 그러나 이 유적에서 나온 유물은 골제판에 새겨진 것이고 남성형상물과 함께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무덤방 4번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그런데 무덤방 3번에서 출토된 유물로 아주 소형의 금판으로 제작된 인간형상물은 아르김파사와는 다르다. 접은 날개를 달고 한 손에는 지팡이 다른 한 손에는 염소 머리를 들고 있는 여성과 한손에는 칼, 다른 손에는 동물 머리를 쥐고 있으며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있는 여성이 세트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유물은 가이모노바 유적 외에도 거의 같은 크기와 제작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은 제브 쿠르간에서 발견되었다.

가이모노바 유적의 여성형상물은 제브 쿠르간의 연대에 따라서 기원전 350~345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유물이 출토된 무덤방 4번도 그 시절에 축조되었거나 혹은 그 이후에 무덤 속에 들어갔을 수도 있다. 가이모노바 유적 1번 무덤방은 함께 출토된 그리스 토기의 연대에 따라서 기원전 365~350년에 만들어진 것에 비하면 무덤방 4번은 늦게 무덤방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층위에서도 확인가능하다.

 

가이모노바 출토의 여성샤먼은 볼샤야 블리즈니차 유적과 쿨 오바 유적의 유물과도 같은 구성이지만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의 유물은 소형이고 세부적인 표현이 다르며, 후자는 한 유물 안에 그려진 사람들로 쉽게 다른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스소노바는 가이모노바 출토 유물은 매우 스키타이 적인 특징으로 만들어져서 완전히 그리스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의 유물은 매우 그리스적이다(아르타모노프 1966). 함께 출토된 남성도 다른 그리스 남성들처럼 거의 전라에 가깝게 표현되었다.

 

그렇다면 칼 춤을 추고 지팡이를 든 여성들은 누구일까?

 

여러 해석이 있지만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로 해석하는 연구자와 스키타이 의례로 보는 의견이 있다. 

로스토프체프는 완전히 그리스 적인 해석을 해서 디오니소스 숭배의 한 장면으로 보았다. 랴돌바(1979)는 Bacchanalian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친 스키타이 인의 운명에 대한 기사(헤로도투스)와 비교해서 설명했다. 그래서 스키타이-그리스 스타일로 보았다.

 

반면에 베스소노바(1983)는 이 여성샤먼들을 다산숭배와 관련된 사람들이라고 추정했다.

라에프스키(1985)는 헤로도투스의 기록과 실제 고고학 자료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Bacchanalian 의식과 연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오히려 스키타이 의례로 알려진 '황홀 숭배'의 한 장면일 수도 있다고 보았다.  특히 스키타이 유적에서 발견되는 그리스 신화 인물의 이미지가 스키타이인이 그리스 종교를 차용했다는 증거도 아니고 스키타이 종교를 형성했다는 증거도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종교적 압박이 없는 자유로운 환경이었기 때문에 그리스 전설이나 신화 속의 원본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키타이 유적에서 단독으로 발견되는 몇 개의 그리스 유물은 피장자가 그리스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구입한 우연한 물건일 가능성도 염두해 두어야고 했다.

 쿨 오바 유적의 유물은 외국문화 환경의 영향(네모 틀) 속에서 스키타이 인 수 있다고 보았다. 외형을 갖춘 프레임은 외국문화일 수 있지만 거기에 담긴 컨텐츠는 스키타이 의례 중에 한 장면이라는 것이다.

 

그림 1. 쿨 오바 유적의 아이콘

 

참고문헌

Бессонова С. С. Религиозные представления скифов. – К., 1983.(베스소노바 1983, 스키타이의 종교적 믿음)

Раевский Д. С. Модель мира скифской культуры. – М., 2006. (라에프스키 2006 스키타이 문화의 세계, 1985년의 책을 개정한 것임)

Рябова В. А. Женское погребение из кургана Денисова Могила // Памятники древних культур Северного Причерноморья. – К., 1979.(랴도바 1979 데니소바 쿠르간에서 나온 여성 피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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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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