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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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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25. 13:10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6~5세기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동물문양에는 나선문과 이와는 약간 다른 소용돌이 문양이 채워져 있다. 바샤다르 유적의 통나무관에 새겨진 동물문양 뿐만 아니라 파지리크 유적의 아플리케 장식, 말의 굴레 장식 등 다양하다. 전자는 평면적이고 후자는 입체적이다.

 

같은 문양이 동물의 종의 구분 없이 반복되는 현상은 만든이가 의도적으로 계획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주로 동물의 몸통 세부표현 혹은 표면을 채우는데 사용되었다. 문양은 네가티브한 방법으로 표현된 것이다. 스키타이 시기의 파지리크 문화 동물문양은 문양의 형태도 중요하지만 동물의 몸통을 그 문양으로 채우려고 했다는 점이다. 스키타이 이전의 동물문양은 청동기시대 암각화 그림에서 발견된 것은 그렇지 않은 것이 많다. 사슴돌의 사슴도 변형되었지만 몸통 자체를 음각으로 처리했다.

 

그림 1. 알타이의 유적에서 발견된 동물문양

 

그림 2. 바댜사르 유적의 통나무관

 

그림 3. 파지리크 유적 4호 굴레장식

 

그림 4. 파지리크 유적 2호 안장덮개

 

루덴코는 파지리크 유적에서 출토된 동물문양은 사슴, 맹수 및 환상의 동물의 몸체에 소용돌이 문양이 표현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또는 엉덩이 부위에는 ‘(●)’이 반복된다는 사실도 지적했다(루덴코 1960). 일정한 규칙이 확인된 것이고 이를 동물문양‘스타일’이라고 했다.

 

페레보드치코바는 루덴코(1960)의 의견에 동의하고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일종의 기호체계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흑해의 켈레르메스 투부의 동물문양도 문양의 종류는 다르지만 동물의 종과 관련없이 비슷한 문양이 반복되는데, 이 점도 같은 현상으로 보았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필자는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두 동물이 등장하더라도 포식자가 먹이감을 공격하는 장면과 두 동물이 대립하는 장면은 기원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래의 두 가지 관점은 루덴코와 페레보드치코바의 생각을 여러 유물에 대입해서 내린 결과이다.

파지리크 유적의 안정덮개 장식 가운데 그리핀으로 변형된 독수리가 굽동물을 공격하는 장면은 장면은 외부에서 들어왔을 수 있다. 그러나 동물을 채우고 있는 문양은 알타이에서 파지리크 유적 보다 오래된 바샤다르 유적에서 발견되었고, 이 보다 더 오래된 아르잔-2 유적에서도 유행했던 문양이다. 문양은 채용했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기호체계는 알타이 전통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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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전통문양(혹은 기호)를 채우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소재가 좋다. 가죽, 펠트, 나무일경우에는 평면이나 입체적이거나 모두 표현될 수 있지만 금속제품은 사용하기 힘들다. 단 기원전 6세기~5세기 이후에 그렇다. 바샤다르 유적 이전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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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 24. 13:39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 경에 고대 이란의 아케메니드 왕조의 페르세폴리스가 축조되는 사건은 아이러니하지만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문양이 널리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페르세폴리스를 자국의 장인 뿐만 아니라 인접한 국가의 장인을 모두 모아서 만든 결과였다. 그리고 알타이에도 서아시아 지역의 동물문양들이 발견되었다.

루덴코는 파지리크 유적의 동물문양장식 가운데 일부 등에서 그러한 흔적을 발견했다. 하지만 루덴코는 알타이의 문양이 앗시리아 보다 이전 문양(루덴코 1961)이라고 했지만 이는 페레보드치코바의 의견과는 약간 다르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아케메니드 왕조때 와서 미누신스크 분지, 알타이, 중앙아시아에서 이 왕조에서 사용된 동물문양이 퍼졌다고 보았다.

그녀는 이때 동물투쟁문양 가운데 원근법도 페르시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았으나, 필자는 다른 생각이다.

 

그림 1. 사자가 굽동물을 공격하는 장면, 각배의 장식판(오른쪽)과 용(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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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투쟁문양은 페르시아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이 맹수가 포식자를 공격하는 장면과 맹수와 포식자가 서로를 물어뜯는 장면으로 구분된다. 페르시아에서 발견된 맹수공격장면은 두 동물이 사실적인 표현으로 변형되지 않았다.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의 유물과 파지리크에서 발견된 맹수공격장면의 맹수는 변형된 것이다. 동물문양은 사실적인 것에 원칙을 두고 그 뒤에 변형이 일어나는 것임으로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것이 더 늦다. 반면에 두 동물이 물어 뜯는 장면은 사실적인 것이 알타이에서 발견되어서 이곳에서 시작되었을 수 있다.

 

그림 2. 파지리크 2호 출토 안장덮개 장식 중

 

페르세폴리스가 축조되던 시점인 기원전 5세기는 가장 높은 곳인 알타이 지역에서 스키타이문화가 나타난다. 기후변화를 다룬 논문(B. van Geel 외 2004)에서 가장 습윤한 시점을 2500B.P.(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기원전 5세기)라고 했는데, 이때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3 유적 등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 습윤도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유럽도 매우 습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이 시작된 시점은 기원전 1천년기 초(기원전 10세기 가량)부터 습한 기운이 형성되었는데, 탄소연대 측정의 결과 태양활동이 감소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유럽의 기후변화는 습지 퇴적물에도 기록되었는데, 볼가 북부 지역에는 매우 급하게 홍수가 일어났고 동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졌다((B. van Geel 외 2004).

 

루덴코(1961)과 페레보드치코바(1994)의견은 둘 다 맞을 수 있는데, 시베리아에서 서아시아의 문화가 나타나게 된 원인이 달랐을 수 있다.

 

 

참고문헌

 

B. van Geel, N.A. Bokovenkob, N.D. Burova, K.V. Chugunov, V.A. Dergachev, V.G. Dirksen, M. Kulkova, A. Nagler, H. Parzinger, J. van der Plicht, S.S. Vasiliev, G.I. Zaitseva, 2004, The sun, climate change and the expansion of the Scythian culture after 850 BC, Impact of the Environment on Human Migration in Eurasia, 151-158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중반의 알타이와 서아시아의 문화비교)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 23. 13:12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의 흑해 지역의 동물장식 가운데 다리를 뻗고 있는 동물상이나 몸을 늘린 사자가 장식된 재갈멈치 등은 알타이에서 매우 유행했던 것으로 알타이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알타이에서도 그리스와 서아시아 지역의 영향을 받았다는 의견이 있다. 알타이는 아니지만 이미 아르잔-1호에서도 서아시아의 카펫이나 의복이 발견된 적이 있기 때문에 억지 주장은 아니다.

기원전 5세기 알타이에서 그리스와 서아시아의 영향을 연구한 사람은 Azarpay(1959)이다. 그가 근거로 삼은 유물은 동물투쟁문양과 머리만 따로 만들어진 동물상이다.

하지만 머리만 따로 만들어진 것은 이미 스키타이 동물양식의 이른시기에 등장했고 동물양식의 원칙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 페레보드치코바는 반박했다(1994).

  또 이미 포스팅한 바와 같이 동물투쟁문양은 두 종류가 있다. 서아시아지역에서와 같이 맹수만 굽동물을 공격하는 장면이 있고(그림 1), 두 동물이 서로를 물어 뜯는 장면 2개가 존재한다. 둘은 서로 다른 기원일 가능성이 있다.

 

 

 

그림 1. 맹수가 굽동물을 공격하는 장면, a-페르세폴리스, b-켈레르메스 유적, c-쿨 오바, d-표트르 1세, d-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 e-세미브라트노예 유적, f-파지리크 유적 2호 출토품

 

아자피(1959)는 피지리크 유물에서 그리스 유물의 속성을 분리했는데, 벼슬이 있는 독수리 머리 그리핀이 대상이다. 그는 그리스의 영향이 페르시아를 통해서 알타이까지 전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다리야 퇴장유적에서 발견된 얼굴표현물이 근거이다. 하지만 루덴코(1953)는 이 독수리 머리 그리핀을 앗시리아의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정작 앗시리아 그리핀에는 이빨처럼 생긴 벼슬이 없다.

 

그런데 루덴코(1961)는 그 후에 자신의 생각을 바꾼다. 알타이에서 발견된 동물양식이 아케메니드의 영향이 아니라 더 고대 서아시아(기원전 8세기경의 현재 아제르바이잔 지역에 있었던 국가 및 기원전 9~8세기경 메디아)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알타이에서 발견된 아플리케 장식에서 앗시리아 보다 더 오래된 문양의 특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림 2. 알타이에서 발견된 박트리안 사슴 (Бухарский олень,Bactrian deer)장식, 은제품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중반의 알타이와 서아시아의 문화비교)

Azarpay G. Some Classical and Near Eastern motivs in the Art of Pazyryk. — Artibus Asie. 1959, vol. 22, №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 18. 12:48 스키타이 동물장식

페레보드치코바는 기원전 5세기에 페르세폴리스 축조를 기점으로 스키타이 동물장식이 각 지역으로 널리 퍼진 것으로 보았다. 이 건물을 축조할 당시에 자국의 장인들 뿐만 아니라 인접한 지역의 장인까지 모아서 건조했을 것이고, 그곳에 나타난 스키타이 문양들도 이런과정에서 그곳에 나타났다. 예를 들면 페르세폴리스의 검집 장식으로 나타난 삼각형의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은 원래 스키타이 문양 가운데 하나였던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의 변형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추론은 스키타이 문화의 서부지역의 관점에 초점이 들어간 것이다.

 

기원전 5세기 흑해지역의 유적에서는 그간 그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과 다른 동물장식이 발견된다. 이미지는 사자이지만, 그 이미지가 만들고 있는 형상은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발견된 유물이다.

기원전 5세기의 재갈멈치는 ∫자형(그림 1-1)이 발견되었다. 학자들은 이를 사자몸이 ‘탈구’된 것처럼 표현되었다고 한다. 정확하게 사자 몸이 표현된 것은 아니고 몸을 쭉 늘린듯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케르치 해협에서 발견된 것이 있는데, 그곳에는 그리스 장인이 작업하던 공방이 있었던 곳이다(이 유물의 그림은 좋은 그림을 구하면 올려놓겠다. 일린스카야는 그리스 공방에서 몸을 늘린 사자모양 재갈멈치를 제작한 것으로 생각했다). 세미 브라트노예 유적(그림 1-1)에서도 발견되었다.

뿐만 아니라 맹수 장식 가운데 다리를 뻗고 머리를 들고 있는 동물형상과 다리를 구부리고 있지만 머리를 들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흑해지역 가운데서도 케르치 해협과 가까운 심페로폴 지역의 졸로토이 쿠르간에서 출토된 것이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그림 1. 흑해지역에서 발견된 기원전 5세기 재갈멈치, 사자, 1

 

그림 2. 졸로토이 쿠르간 출토 사자

 

그림 3. 투줄린스키 네크로폴출토품

 

 

일린스카야는 기원전 5세기에 흑해지역에서 나타나는 사자머리는 그 시절 그리스의 영향이 아니라, 기원전 7세기 유물 가운데 이오니아 양식이나 우라르트 양식을 재해석 하는 과정에서 다시 등장했으며, 이란 지역과는 관계 없다고 보았다(일린스카야 1971).

 그래서 사자머리를 달고 있는 동물 가운데 몸통이 있는 재갈멈치와 다리를 뻗은 모습은 오히려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그림 4, 5)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페레보드치코바는 이 시점의 몸을 쭉 늘린듯한 ∫자형 재갈멈치(그림 3)는 사자머리 외에도 그리핀의 머리가 달린 유물이 있는데 그리스의 영향으로 보았다. 

 

일린스카야와는 다른 견해이다. 그런데 이 유물도 역시 기원전 7세기에 이미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나온 은제 거울 속의 그리핀과 유사한 것이다. 구지 그리스의 영향이 아닌  기원전 7세기에 이미 있었던 문양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재갈멈치만 두고 보면 두 의견 모두 경청할 필요가 있지만, 페레보드치코바의 의견대로라면 졸로토이 쿠르간에서 출토된 다리를 뻗고 있는 사자문양이나 스키타이 문화 동부지역의 문화이동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진다.

 

그림 4. 파지리크 유적의 재갈멈치

 

그림 5. 파지리크 유적의 동물장

 

 

 

맹수장식 등을 살펴보면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동과 서의 유물이 함께 뒤섞이는 현상들이 발견되고 있다. 서쪽에서는 페르세폴리스의 건조가 큰 계기가 되었다면 동쪽에서는 스키타이 문화가 서쪽으로 퍼져가는 현상을 일으키게 한 동기가 된 어떤 것이 무엇이 있을까?

 

참고문헌

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 : Scythian Art. The Legacy of the Scythian World: mid-7th to 3rd century B.C. Leningrad: Aurora Art Publishers. 1986. 184 p.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Ильинская В. А. 1971, Образ кошачьего хищника в раннескифском искусстве.—

€А . 1971, No 2. (일린스카야 1971, 초기 스키타이문화의 맹수장식)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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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 16. 13:12 스키타이 동물장식

호랑이를 포함한 맹수모양장식은 몇 가지 자세로 구분되는데 아시다시피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맹수장식이 가장 먼저 확인된다.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유물로 보아서 그렇다.

 

아르잔-1호의 연대는 기원전 9세기 중반이고, 이 유물이 흑해부터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남부의 미누신스크 분지까지 퍼지는 것은 흑해, 중앙아시아에는 기원전 7세기, 미누신스크 분지에는 기원전 6세기에 발견된다. 기원전 7세기에는 원형 맹수장식 뿐만 아니라 몸을 펴고 있는 맹수장식도 여러 지역에서 나온다.

 

흑해 지역의 기원전 7세기 유물은 켈레르메스 유적의 청동거울 끝장식(그림 1-3), 금제 패식의 표범장식의 발끝 장식(그림 1-5), 켈레르메스 유적의 골제 굴레장식(그림 1-4)이다. 테미르 고라 유적의 뼈제품(그림 1-1), 다레프카 유적의 손잡이 끝 장식(그림 1-6)이다. 고대 이란 지역의 지비예 유적에서도 (그림 1-7) 나왔다.

 

그림 1. 흑해와 중앙아시아의 원형맹수장식

 

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서부의 마이에미르 유적(알타이와 가까운 지역)에서는 10개의 금판에 맹수장식이 발견되었다(그림 1-8). 우이가락 유적에서도 청동판에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이 발견되었다(그림 1-12,13). 이 유물은 칠릭타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과 크기는 다르지만 비슷 모습이다(그림 1-9,10). 이들 유물 때문에 표트르 1세의 원형 맹수장식도 카자흐스탄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아르타모노프 19, 루덴코 1962, 일린스카야 1971). 이들 유적은 카자흐스탄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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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이에미르 유적은 알타이와 가까운 지역이기 때문에 반드시 중앙아시아 초원으로 국한할 필요가 없다. 알타이에서 원형의 맹수장식이 기원전 7세기에 존재했다고도 볼 수 있다.

 

 

중앙아시아 유물은 아르잔-1호 유물과 비교해 볼 때 목과 어깨 부위의 견갑부가 돌출되게 표현되었다는 점과 반대면을 강하게 눌러서 앞 면이 좀 더 튀어나오도록 제작되었다는 점이 차이가 있다. 이점은 흑해 지역의 유물과도 구분이 된다.  또 흑해지역의 유물에는 지비예 유물의 특징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유물은 지비예의 제작공인이 스키타이 유물을 차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르잔-1호의 북쪽에 위치한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대표적인 유적: 살브익 고분)에서도 원형 맹수장식이 발견된다. 청동곳의 상단 혹은 청동고리의 상판에 만들어진 것이다. 귀의 모양은 반원형이고 입모양이 길다. 타가르 문화에서는 청동판의 칼집에 새겨진 문양 가운데 다리를 내리고 있는 표범장식이 있는데 원형 장식의 눈, 코, 입과 비슷하다.

 

그림 2. 미누신스크 분지 타가르 문화의 원형 맹수장식

 

알타이에서는 기원전 6세기에 투엑타 유적에서 몸을 비틀고 머리와 꼬리가 붙은 호랑이 장식이 발견되었다. 원형의 맹수장식이 기원전 7세기에 스키타이 문화의 전지역에서 발견되고, 기원전 6세기에는 변형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참고문헌

С.И. Руденко.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САИ. д.3-9. 1962, табл. VI, 1, текст, стр. 31.(루덴코 192,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

Ильинская В. А. 1971, Образ кошачьего хищника в раннескифском искусстве.—

€А . 1971, No 2. (일린스카야 1971, 초기 스키타이문화의 맹수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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