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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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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 북쪽에 스키타이 세계에서 켈레르메스 유적과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이 만들어지는 시기인 기원전 7세기 경 남쪽에는 우라루투라는 강력한 국가가 있었다. 앗시리아와 대적할 정도로 강력했고, 그들의 역사는 앗시리아의 쐐기문자로 남아 있다. 우라루투에서도 쐐기문자를 사용했고, 앗시리아와 거의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라루투의 기원전 8세기 경 수도인 투쉬파는 현재 터키의 반 호수 부근 반 절벽위에 세워졌다. 그 부근에서 무헤르의 문(問)이라고 알려진 인공동굴에서 우라루투의 신 이름과 그들에게 받쳤던 동물의 양과 수가 적힌 것이 발견되었다. 가장 먼저 적힌 칼디 신, 테이시바 신, 시비니 신이 가장 중요한 인물?로 알려졌다. 그들은 우라루투의 물질문화 속에서 종종 발견되는데, 사실 이 부분에 의심이 (필자가) 많다. 명확하지 않다.

 

그런데 의인화 된 신의 모습 외에도 신을 상징하는 물건들이 발견되는데, 생명의 나무, 뱀, 그리핀, 날개 달린 접시 등이다. 어제 설명한 바와 같이 날개 달린 접시는 태양의 신 시비니를 상징한다. 우라루투의 상징화 된 신은 앗시리아의 상징화 된 도안 및 묘사방법이 유사하다. 그래서 우라루투와 앗시리아의 신앙은 매우 유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중에서 투쉬파 유적에서 발견된 인장에는 생명의 나무가 여기저기서 표현된다. 나무를 숭배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는데, 물이 담긴 주전자도 함께 표현된다. 사루두리 II세의 헬멧(그림 1)에도 생명의 나무를 두고 날개 달린 신이 숭배하는 장면(그림 2)이 그려져 있다.

 

그림 1. 테이시바이니 유적 출토 사르두리 II세의 헬멧

 

그림 2. 그림 1의 상세

 

그림 3. 토파크 칼레 유적 출토, 골제판의 새김. 생명의 나무

 

그림 4. 테이시바이니 유적 출토, 실린더 모양의 인장에 표현된 뱀

 

 

많은 인장에는 별, 달과 같은 자연물과 함께 생명의 나무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생명의 나무는 벽화에 자주 등장한다.

 

생명의 나무 외에도 그리핀과 날개 달린 신의 이미지가 유물 속에 많이 표현되어 있다. 우라루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신의 의인화 과정과 생물의 결합하는 과정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동물형태의 신들이 점차 의인화 되는 모습으로 변형되는데, 그 중간과정에 있는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필자가 반인반수(그림 5, 6)라고 부르는 형태이다.

 

그림 5. 토파크-칼레 유적 출토, 우라루투 날개 달린 신,  골제품, 아나톨리 박물관

 

그림 6. 토파크 칼레 유적 출토, 우라루투 날개 달린 신, 왕좌를 장식, 에르메타주 박물관

 

참고문헌

 

Пиотровский Б.Б. Ванское царство (Урарту), Издательство Восточной литературы, Москва, 1959 (피오트로프스키 1959, 우라르트 반 왕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코카서스 남쪽의 우라루투는 기원전 844년부터 시루두리 1세때부터 현재 터키에 있는 반 호수 부근을 수도로 삼았다. 투쉬파라고 부른다. 아르기쉬티 I세때부터 반 호수 절벽 위에 요새를 파기 시작하면서 앗시리아를 막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투쉬파는 시비니 신의 숭배지로 알려진 곳이다. 시비니 신은 태양의 신으로 그의 심볼은 날개 달린 둥근 접시로 종종 나타나지만, 사실 접시가 의미하는 바는 태양이다. 태양의 일식때 태양은 검은 점으로 보이고 주변으로 흩어지는 빛만 환하게 보이는 현상을 사물화 한 것이다. ‘winged sun’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윙드 선을 심볼로 하는 신앙은 메소포타미아, 고대 이집트, 히타이트 지역 등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런데 우라루투에서는 이 ‘날개 달린 접시’가 단독으로 나타나지 않고 여러 다른 형상들과 함께 나타난다. 카미르 블루르 언덕의 예레부니 성곽에서 출토된 허리띠 장식에는 시비니 신으로 추정되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났고(그림1). 같은 유적에서 나온 석제 함에는 날개달린 접시 아래에 생명의 나무가 함께 표현되었다.

 

그림 1. 카미르 블루르(예레부니 성곽) 출토, 허리띠 장식, 아르메니아 역사박물관 소장

 

그림 2. 카미르 블루르(예레부니 성곽) 출토, 석제 함의 바닥 장식

 

그림 3. 카미르 블루르(예레부니 성곽) 출토, 은제 원판장식, 아르메니아 역사박물관 소장

 

또 다른 시비니 신은 영국박물관에 소장된 방패에 남아 있는 이미지(그림 4)에도 있다. 이곳에서는 소를 타고 활을 쏘고 있으며, 방패의 모습이 흡사 날개처럼 표현했다. 방패는 터키의 안자프 우라루트 성곽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 4. 시비니 신, 영국박물관 소장 우라루투 안자프 성곽(터키)에서 발견된 방패

 

날개 달린 접시의 이미지는 히타이트와 가까운데, 사용처는 앗시리아에서 발견되는 것과 유사하다. 앗시리아의 왕인 아슈르나시팔 2세와 함께 윙드 선(winged sun)이 발견된 예도 있고, 다리우스 1세와도 함께 표현된 바 있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소장된 청동으로 된 날개 달린 반인반수상은 토파크-칼레 라고 하는 또 다른 우라루투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그림 5. 토프크-칼레 출토, 청동,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참고문헌

 

Пиотровский Б.Б. Ванское царство (Урарту), Издательство Восточной литературы, Москва, 1959 (피오트로프스키 1959, 우라르트 반 왕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코카서스 남쪽의 기원전 9세기부터 등장하는 우라루투에서 남긴 많은 유물은 앗시리아의 것과 구분이 안되는 것이 많은 점이 문제이다. 도굴로 자행된 유물이 그냥 사고 팔고 한 상태였고, 후대의 학자들도 이를 정리하지 못한 것 같다. 그 나마 테이시바이니 성곽이나 예레부니 성곽은 유적이 잘 남아 있기 때문에 현재 그루지아의 상징과 같은 곳이 되었다.

 

터키 국경에 있는 반 절벽의 세워진 성곽은 수도 투쉬파가 있던 곳으로 알려졌고, 이곳에는 ‘므헤르의 문’이라고 하는 곳이 발견되었다. 이곳에는 신의 이름과 의식을 치를 때 제물로 받친 동물의 종류와 양이 적혀 있어서 이를 토대로 우라루투의 신(神)에 대한 연구가 약간 진행되었다. 필자가 이 부분을 추적하는 이유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코카서스 북쪽에서 나오는 우라루트 유물들 때문이다. 대부분 의례용품이고 문양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우라루투의 3신은 칼디 신, 테이시바 신, 시비니 신이다. 칼디 신의 역할은 불분명하고, 테이시바 신은 전쟁의 신이자 폭풍의 신이라고 알려졌다. 시비니 신은 태양의 신이다.

 

칼디 신은 사자 위에 선 모습으로 인간 형태로 묘사되어 있는데, 앞서 예레부니 성곽의 칼디 신의 사원에서 벽에 남아 있는채 발견되었다. 칼디의 상징이 날개 달린 태양 원반이었을 가능성이 있고, 다시 이는 시비니 신으로 의인화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칼디 신의 아내는 아루바니이고, 테이시바이니 유적에서 청동상으로 의인화되어서 출토된 바 있다(그림 1).

 

그림 1. 테이시바이니 유적 출토 칼디 신의 아내, 아루바니

 

전쟁의 신 테이시바는 카미르-블루르 언덕의 테이시바이니 성곽을 발굴하는 동안 긴 옷을 입고 수염이 없는 모습의 남성 청동상이 발견되었다. 머리에 특징적인 뿔 장식이 있고, 양 손에 투부(전투용 도끼)와 곤봉을 가지고 있는데, 테이시바 신으로 간주된다. 그의 아내는 ‘후바’라고 불리는데, 손을 공중에 든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아이, 왼쪽에는 나무가 있는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림 2. 테이시바이니 유적 출토 테이시바 신, 청동 남성

 

태양신 시비니는 날개 달린 둥근 접시를 상징한다. 우라루투의 물개 혹은 새 문양, 동물 머리에서 종종 날개 달린 접시 모양이 발견되는데, 시비니를 상징했을 수 있다. 그리고 시비니의 아내는 청동솥에 자주 표현되는 날개 달린 여성이 아내인 투시푸에아 Tushpuea일 수 있다.

 

지난번에 시비니 신으로 소개한 청동솥에 붙은 날개 달린 인물은 여성이며, 그의 아내인 투시푸에아이다. 잘못 소개했는데, 정정한다.

 

그림 3. 시비니 신의 아내 투시푸에아, 앙카라 박물관 소장

 

 

참고문헌

Пиотровский Б.Б. Ванское царство (Урарту), Издательство Восточной литературы, Москва, 1959 (피오트로프스키 1959, 우라르트 반 왕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코카서스 남쪽의 우라르투는 기원전 8세기 중반에 가장 강성했었다고 알려졌다. 현재 터키의 반 호수 부근에 위치한 반 절벽 위에 요새를 지었고, 코카서스 남쪽까지 영역에 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기쉬티 I세, 메뉴아와 그의 아들 사르두리 II세 때가 가장 강성했다(그림 1). 그리고 그때 문화적으로 가장 강성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문제는 여기서 생긴다.

 

 

그림 1. 기원전 8세기 중반 우라루투의 영역

 

많은 유물이 발굴로 인해서가 아니라 무덤에서 약탈해서 재판매 되고 세계의 박물관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출처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리고 이들은 앗시리아의 것과 너무 유사하다. 브리티시 뮤지엄과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각각 일부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다.

 

그림 2. 우라루투 왕좌의 왼쪽 장식, 날개달린청동황소, 에르미타주 박물관, 같은 유물로 왕좌의 오른쪽을 장식한 유물은 브리티시 뮤지엄에 보관되어 있다.

 

전해지는 쐐기문자는 우라루투의 것과 앗시리아 문자가 매우 흡사하고 하다. 테이시바이니 성곽이 있는 카미르 블루르 언덕 위에서 발굴된 유적에서 나온 청동화살통에는 사루두우리 II 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전차를 타고 있는 모습인데, 앗시리아의 궁전벽화에서 보이는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그림 3. 카미르 블루르 유적 출토 청동 화살통

 

 

그림 4. 그림 3의 세부

 

뿐만 아니라 테이시바이니 성곽 유적에서 발견된 벽화는 흔히들 오리엔트의 문양으로 알려진 식물그림(그림 5)이 그려져 있다.

 

그림 5. 테이시바이니 성곽에서 발견된 식물그림

 

 

 

참고문헌

Дьяконов И.М. Урартские письма и документы. — Москва — Ленинград: Издательство АН СССР, 1963.(댜코노프, 1963, 우라루투의 글자와 문서)

Пиотровский Б.Б. Ванское царство (Урарту), Издательство Восточной литературы, Москва, 1959 (피오트로프스키 1959, 우라르트 반 왕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코카서스 남쪽에 스키타이 세계와 교류하던 우라르투는 기원전 764~735년에 현재의 터키 국경에 있는 반 호수에 인접한 절벽 위에 성을 만들었고 그 곳이 당시의 수도로 알려졌다. 투쉬파 라고 하는 곳인데, 여러 국가에서 이 곳을 발굴했지만 가장 운 좋은 것은 1915~1916년의 러시아제국고고학위원회였다. 사르두리 II세의 비문을 발견해서 여기가 그의 도시라는 것을 밝혀 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왕실 포도원이 인접한 곳에 있었다고 한다. 20세기 초까지 이 곳의 주요 산업 중에 하나가 와인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코카서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나온 은제 각배(여성이 새겨져 있는)가 그냥 출토된 것은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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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뿐만 아니라 액체로 된 음료는 어울리는 그릇이 있다. 커피도 잔이 따로 있고, 차도 찻잔이 있고, 맥주도 회사 마다 자신의 로고가 있는 잔이 있다.

 

반 절벽은 높이 80m로 바위가 자연적으로 가파른 상승을 했기 때문에 천혜의 자연 요새이다.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서쪽 끝은 반 호수와 접하고 있다.

 

왕실로 추정되는 공간은 남쪽 절벽에 입구가 있는 곳이다(그림 1).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면(그림 2) 큰 홀이 있고, 옆에는 작은 방 3개가 붙은 구조이다. 절벽을 동굴처럼 파서 공간을 마련했다.

 

그림 1. 남쪽 절벽에 입구가 있는 큰 방과 작은 방의 평면도(가장 위)와 단면도

 

우라루투 석공들이 다양한 목적을 위해서 내부 공간을 인공적으로 조각해서 만든 것이다. 일부는 슐츠가 발견한 공간도 있다. 모든 인공 동굴의 용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왕실의 매장을 위해서 사용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남쪽 경사면의 위쪽에 위치한 방은 천장이 매우 높은 곳인데(그림 1), 궁전의 특징이고, 벽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처음에 중세 아르메니아 역사가 Movses Khorenatsi가 이 건물을 앗시리아 건물로 생각했으나, 러시아 연구자들이 찾아낸 바와 같이 우라루투 왕 사루두이 II세의 비문이 발견되었다.

 

그림 2. 왕의 계단

 

그림 3. 남쪽 절벽 위의 입구, 왕의 방이라고 불리는 곳

 

참고문헌

 

Пиотровский Б.Б. Ванское царство (Урарту), Издательство Восточной литературы, Москва, 1959 (피오트로프스키 1959, 우라르트 반 왕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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