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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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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4. 13:06 스키타이 동물장식

 

그리핀의 한 요소(속성)이 되는 동물 중에 하나는 새(혹은 맹금)이다. 시베리아의 아르잔-1호에서 범 장식은 발견되었으나 새는 없었다. 이 보다 늦은 기원전 7세기 중반 아르잔-2호에서는 재갈멈치의 가장자리에 새의 머리는 출토되었기는 하지만 매우 작게 표현된 것이었다. 그리핀은 시각적으로 강하게 어필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재갈멈치(그림 1)에 그려진 새는 그런점에서 약간 부족하다.

 

그림 1, 아르잔-2호 출토 재갈멈치

 

반면에 날개를 핀 독수리는 흑해의 멜구노프 유적(기원전 7세기)에서 먼저 확인된다. 이 유적은 동유럽에서 가장 먼저 조사된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으로 날개를 편 독수리가 17마리나 출토되었다. 독수리는 벨트 장식으로 생각된다.

 

그림 2. 멜구노프 유적의 독수리(투키나 2006, 재편집)

 

흑해에서 맹금 장식은 간두령과 간두식으로도 활용된다. 켈레르메스 유적(기원전 7세기)에는 방울 머리 위에 장식되었다. 이 보다 늦은 울스키 아울 유적(기원전 6~5세기)(포스팅)에서는 새의 부리가 극대화 되어 표현되었다. 새의 부리를 편평하게 측면으로 표현하고, 왼쪽에 소형화 된 4마리 맹금류 측면이 연속되어 표현된 것이다. 이 유물은 방울이 달려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하단에 끼울 수 있는 슴베가 만들어져서 어딘가에 꽂아서 사용한 유물은 맞다.

 

-->켈레르메스 간두령(안에 들어가야 있음)

2020/12/2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나무 위의 스키타이 신(神) 파파이(Papai)

 

나무 위의 스키타이 신(神) 파파이(Papai)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흑해 지역에서 발견되는 유물 가운데는 지팡이 끝에 꽂는 방울이 있다. 간두령이라고 하는데, 기원전 7세기부터 발견된다. 기원전 7세기 유물은 방울 끝에 새 혹은 동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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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스키 아울

2020/07/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흑해 부근에서 발견된 스키타이 문화의 청동방울

 

흑해 부근에서 발견된 스키타이 문화의 청동방울

시베리아 알타이의 2600년 전 무덤인 투엑타 유적의 1호에서는 코젤(산염소)의 뿔을 나무로 만든 것이 출토되었다. 말의 얼굴에 씌웠던 말의 가면 중 뿔에 해당하는 유물이었다. 쌍으로 확인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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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구노프 새 장식은 머리는 측면, 몸통은 정면을 향하고 있다. 간두식에 표현된 유물도 새 머리의 측면이다. 하단에 자루가 착장되었다면 전체적인 구도는 멜구노프와 통하는 면이 있다. 흑해지역에서 새 장식은 날개를 펴고 머리를 돌리고 있는 새 장식과 새의 머리만 표현된 간두령 장식이 먼저 등장하며, 기원전 5세기 가량이 되면 점차 새의 표현은 자연스럽지 않고 부리만 강조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멜구노프의 새처럼 머리와 동체부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표현은 켈레르메스 유적의 거울 속에 여신도 마찬가지이다. 그녀의 머리는 측면을 향하고 있고, 신체는 전면을 향하고 있다. 이 점이 특이한 이유 중에 하나는 이 여신과 상대편에 있는 남성신의 경우는 머리와 몸통 모두 측면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켈레르메스 거울 속의 남성신과 여성신-->

2020/12/3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유적과 유물] - 스키타이 남성신(神)

 

스키타이 남성신(神)

흑해지역 스키타이 문화 가운데 스키타이 남성이 유물속에 등장하는 일은 많지 않다. 기원전 5세기 이후에는 그래도 등장하지만 그 이전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는 찾아 보기가 쉽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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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구노프와 켈레르메스 유적 모두 기원전 7세기이기 때문에 머리와 신체의 방향을 따로 표현하는 방법을 어디에 먼저 적용했는지는 모르겠다.

 

Тункина И. В. Сокровища Литого кургана и академик Г. Ф. Миллер // Вестник древней истории. 2006. № 3.(투키나 2006, 리토이(멜구노프) 쿠르간의 보물과 대학자 밀러)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0. 12. 14. 12:56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는 동물장식이 달린 팔찌 외에도 반지도 여러 점 출토된다. 단순한 링모양이 아니라 반지의 윗 부분(실드)에 타원형 장식이 달려 있다. 타원형판은 음각으로 표현된 것과 양각으로 표현된 것이 있다. 대부분 음각표현에는 동물과 인간이 새겨져 있고, 양각표현에는 기하학적 문양이다. 타원형 원판은 일종의 ‘도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믿어졌다. 타원형 원판의 크기가 대부분 1.6~1.7cm로 매우 작은데 세밀하게 조각되었다.

 

타원형 원판(직경 2.4cm)에 십자형으로 배열된 4개의 정사각형은 ‘십자가’형태이다. 시베리아 청동기시대 안드로노보 문화 연구가인 쿠즈미나(1977)는 이 모티브가 현재 아파카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까지 퍼져 있던 안드로노보 문화의 문양에서 온 것으로 생각했다. 이 지역의 안드로노문화의 토기문양과 반지의 문양이 유사했기 때문이다(그림1).

 

그림 1.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안드로노보 문양의 십자가 반지, 금제품

 

 

반지의 실드가 음각으로 처리되며 동물장식이 표현된 유물은 그리핀, 황소, 사슴 등이 있고 아케메니드 왕조의 문양으로 생각된다(그림 2). 특히 관을 쓰고 수염을 기른 사람의 얼굴이 달린 그리핀에는 문자가 새겨져 있다(그림 3의 왼쪽). 반지의 고리 부분이 매끈하지 않고 체인형인 유물도 (그림 2의 오른쪽) 있다.

 

그림 2.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반지 가운데 아케메니드 왕조의 문양반지.

 

그런데 동물이 표현된 반지 가운데 실드부분(직경 3.6cm)은 대부분 음각으로 표현되지만 양각으로 표현된 유물이 1점 있는데 앞에서 설명한 반지에 비해서 매우 크다.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으로 날개가 달려 있다. 스키타이 황금 유물을 제작한 방법으로 제작되었다고 앞서 포스팅했다. 이 유물 역시 일종의 도장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그림 3).

2020/12/10 - [아무다리야 퇴장유적] - 스키타이 핸드메이드 제작기술: 두드리고, 깍고, 잘라내기

 

그림 3.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반지 가운데 스키타이 양식의 문양이 있는 반지

 

위에서 소개한 유물들은 그림 1의 안드로노보 문양 십자가 반지는 기원전 5세기, 다른 유물들은 기원전 4~3세기 유물로 생각된다(제이말 1979)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유적에서는 기원전 5세기 경에 도장이 달린 반지모양의 고리들이 발견된다. 뿐만 아니라 원통형의 대롱모양의 돌에 인간과 동물을 음각한 유물이 있다. 이 유물은 점토판에 굴리면 음각된 표현이 점토판에는 양각으로 나타나서 도장의 역할을 한다.

 

시베리아의 청동기시대에 가장 많이 확인되는 유물이 링 모양의 귀걸이, 반지, 목걸이다. 그러나 알타이의 스키타이 무덤에서는 반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대신에 흑해지역에서는 도장역할을 하는 반지가 있는데, 양 지역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도장은 결국 어떤것의 상징이다. 이런 도장이 있다면 상징은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시베리아에서 상징물은 결국 동물문양장식이니 그 제작방법이나 담긴 생각등이 다를 수 있다.

양 지역의 차이점은 인접한 지역과 관련성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흑해지역에서는 그리스, 페르시아 문화를 많이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Кузьмина E.E. Семантика изображения на серебряном диске и некоторые вопросы интерпретации Амударьинского клада. — В кн.: Искусство Востока и античности. М., 1977, с. 16-25(쿠즈미나, 1977, 아무다리아 퇴장지에서 출토된 은제 원판모양에 새겨진 상징에 대한 해석)

Е.В. Зеймаль 1979, Амударьинский клад: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제이말 1979, 아무다르리아 퇴장지: 전시도록, 에르미타주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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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우랄 남부의 기원전 4세기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가장 크고 많은 유물이 출토되는 무덤은 1호이다. 이곳은 1989년에 발굴되었으나 무덤의 가장 동쪽은 미처발굴하지 못했다. 러시아에서는 대체로 무덤 1기를 여러해 동안 구역을 나누어서 발굴한다. 1호는 프세니축이 미처 발굴하지 못한 동쪽 구역을 야블론스키가 2013년에 발굴을 했다.

 

무덤봉분의 동쪽 끝에서 깊이 2m에 달하는 5단의 계단이 확인되었고, 이 곳은 지하로 들어가는 25m가 넘는 입구였다(그림1). 이 지하 입구는 1989년에 발굴한 무덤방으로 연결되었다. 그래서 이 무덤의 입구는 3곳이다. 이곳에는 지하통로에서 지름 102cm, 0.5톤 가량의 거대한 청동솥이 발견되었다. 청동솥은 시베리아-스키타이 동물문양장식으로 그리핀 2마리가 부착된 것이었다(그림 2).

 

그림 1. 필리포프카 유적 1호무덤의 동쪽 무덤, 2013년 발굴

 

그림 2. 필리포프카 유적 1호무덤의 동쪽 무덤, 2013년 발굴에 발견된 지하 입구의 청동솥

 

그런데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 아래에는 지하 구덩이 시설이 따로 있었고 그 끝에 무덤방이 1기 더 발굴되었다(그림 1). 사실 원래 중앙에 위치한 무덤방 안에는 인골이 확인되지 않아서 정확하게 누구의 무덤인지가 불분명했다. 어제 설명한 대로 이곳에는 여성이 매장되었다. 화려한 금장식을 옷에 달고 있었다. 이 여성은 미라처리되지는 않았지만 문신과 관련된 바늘(그림 3) 및 화장품이 들어간 작은 유리병(그림 4)도 소유했었다. 곰모양 손잡이가 달린 목제그릇장식(그림 5, 그림 6)은 여성의 좌측에서 출토되었는데, 그 아래에 은제 거울이 놓여 있었다. 목제그릇장식은 두 판으로 손잡이 반대쪽에도 장식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여성의 우측에는 청동솥이 발견되었는데(그림 7) 다리가 3개, 방향이 다른 손잡이 4개가 붙은 형태이다.

그 외에도 여성의 옷에는 화려한 금장식이 붙어 있었고 목걸이, 귀걸이로 치장했다.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 1호무덤의 동쪽 무덤 2호 출토 문신바늘

그림 4. 필리포프카 유적 1호무덤의 동쪽 무덤 2호 출토 작은 유리병

 

그림 5. 필리포프카 유적 1호무덤의 동쪽 무덤 2호 출토 목제그릇의 곰 손잡이

 

그림 6. 필리포프카 유적 1호무덤의 동쪽 무덤 2호 출토 목제 그릇 장식, 그림 5와 동일

 

 

그림 7. 필리포프카 유적 1호무덤의 동쪽 무덤 2호 출토 청동솥

 

1호 무덤에서는 메인 무덤방에는 인골 3구가 확인되기는 했으나, 스키타이 문화 혹은 사브로마트 문화와 같이 무덤의 주인공이 가지고 있었을 법한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 황금사슴이나 이란제 각배 등 눈길을 끄는 유물은 감실과 남쪽으로 난 무덤방 입구에서 확인되었다. 그러나 아마도 1호 무덤의 주인공은 메인무덤방이 아닌 동쪽 끝에 매장된 여성으로 생각된다. 화려한 의상이나 장신구도 중요하지만 청동솥, 목제 그릇, 거울 등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유물이 이를 대변해 준다.

 

참고문헌

 

Яблонский Л.Т. Новые необыкновенные находки из кургана 1 могильника Филипповка-1//Археология, этнография и антропология Евразии Том 43 № 2 2015(야블론스키 2015, 필리포프카-1 유적의 1호 무덤에서 찾은 특별한 새로운 유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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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랄 남부의 기원전 4세기 필리포프카 유적은 사브로마트-사르마트 문화를 대표하는 곳이다. 스키타이 문화권에서도 우랄 남부의 지역성격이 강한 문화를 사브로마트-사르마트 문화라고 한다. 지역성격이 강한 점도 있지만 그러나 시베리아와 흑해지역과 공통적인 유물들도 있다. 스키타이 3요소라고 불리는 동물문양장식, 마구, 무기를 제외하고도 확인되는 유물은 청동솥(銅鍑)이 있다.

 

필리포프카 유적 1호에서 출토된 유물은 상당히 크다.

 

2020/11/1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필리포프카 유적] - 우릴 남부 필리포프카 유적의 청동제기

 

우릴 남부 필리포프카 유적의 청동제기

우랄 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은 이 지역 스키타이 문화인 사브로마트 문화 혹은 이른 사르마트 문화의 무덤이다. 1호에서는 페르시아 그릇이 출토되어서 세간의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사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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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크기의 청동솥은 파지릭 2호에서 출토된 유물의 예로 보아서 일종의 향로 혹은 제기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높이 55cm가량, 구경 70cm가량의 솥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을까?

 

이를 알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유적이 있다.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 미누신스크 분지에 있는 타가르 문화의 유적이 보야르( 암각화에서 확인된다. 이 유적은 볼샤야 보야르( Большая Боярская) 유적과 말라야 보야르(Малая Боярская )야르 두 곳이 알려져 있다. 예니세이 강의 좌안에 위치하고 보그라드스키 지역의 트로이츠코예 마을에서 6km 가량 떨어진 곳이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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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샤야 보야르 유적은 보야르 능선의 상단 도로에서 약 6km 가량 곳에 이어서 확인된다. 이곳에는 130여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통나무 집이 있는 마을에서 염소, 사슴, 숫양, 소를 유목하는 장면이 확인되었다. 특히 목동의 개와 활을 쏘는 사람 등도 등장한다.

 

여러 지점에서 확인되는 그림에는 집 사이에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대형의 솥이다. 그 가운데 소와 청동솥에 함께 그려져서 청동솥은 유제품을 가공하는 도구로 생각된다(데블렛 ). 흐지이일 하야 유적에서도 막대기를 넣고 청동솥 안에서 젖는 장면이 나와서 유제품 가공과 관련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암각화 유적은 타가르 문화(기원전 7~3세기)부터 타쉬트익 문화(기원전 2~기원전1세기)까지 그려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유적이 타가르 문화부터 그려졌을 것이라고 하는 근거도 청동솥이다. 그림 가운데 손잡이에 꼭지 모양(그림 4, 그림 5)이 달려 있는데 타가르 문화에서 발견되는 청동솥의 모양이다.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의 청동솥은 5리터에서 수백리터까지 다양하게 발견된다. 크기차이 때문에 알타이 파지릭문화의 청동솥과는 용도가 다르다.

 

대형의 청동솥은 암각화에 그려진 유제품 가공 뿐만 아니라 고기국 등의 음식을 하는데 사용했을 것이다.

 

그림1. 볼사야 보야르 유적의 암각화

 

그림 2. 볼사야 보야르 유적의 암각화 2

 

그림 3. 볼사야 보야르 유적의 암각화 3

 

그림 4. 볼사야 보야르 유적의 암각화 4

 

그림 5. 타가르 문화의 그릇, 토기 1~14, 청동솥 15~18

 

그림 6.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 타가르 문화의 청동솥

 

참고문헌

Дэвлет М.А. 1976 : Большая Боярская писаница. М.: 1976. 36 с.(데블렛 1996, 볼샤야 보야르 유적)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 серия ]

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М.: 1992. 494 с.(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92, 소비에트 연방 아시아 지역의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의 초원지역, 소비에트 고고학 시리즈)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에서 기원전 4세기는 시베리아 알타이 뿐만 아니라 흑해 지역에서도 자신의 특징이 흐렷해진다. 우랄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도 이 유적 보다 늦은 사르마트 문화에서 빈번하게 나타난 유물들이 벌써 나타나는 현상이 있었다.

흑해지역에서는 지난 여름에 소개해 드린 쿨-오바 유적에서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흑해와 아조프해를 잇는 지역에 위치한 쿨-오바 유적은 아르타모노프가 스키타이 귀족의 그리스화라고 부를 만큼 그리스 유물이 많이 출토된 곳이다. 스키타이 유목민과 그리스적인 특징의 결합으로 ‘보스포러스 왕국’의 무덤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2020/08/3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보스포러스 왕국의 사슴장식판

흑해의 크림반도 끝은 케르치 해협이라고 불리고 이곳을 케르치 반도라고 한다. 흑해와 아조프해를 연결하는 곳으로 다리처럼 생긴 지형이다. 이곳에는 스키타이 유목민과 그리스의 특징이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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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지역에서 쿨-오바 유적과 같은 시기에 케르치 해협이 아닌 비교적 내륙으로 드네프르 강 유역의 체르톰리크 유적에서도 이색적인? 혹은 자신과 다른 색채의 유물이 왕창 발견되었다. 드네프르 강 하류에 위치한 유적이 위치한 곳은 평지이다. 높이 20m, 직경 350m의 고분이 들어섰다면 거의 산을 하나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국경내에 위치하는데, 니코폴 시의 북쪽에 위치하며 1862~1864년에 걸쳐 발굴되었다. 유적을 발굴한 자벨린은 아래(그림1)와 같은 유적의 평면도(그림 1-2, 그림 2, 그림 3)와 단면도(그림 1-1)을 남겼다. 무덤의 외관은 봉분의 끝이 편평한 점은 이 지역의 기원전 7세기 유적인 켈레르메스 유적과는 비교된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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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체르토믈리크 유적 단면도(위)와 평면도(아래), 평면도는 그림 2와 방향이 다름, 이 그림에서 북쪽은 오른쪽, 자벨린 작성( 알렉세프외 1991)

 

그림 2. 체르토믈리크 유적 평면도, 자벨린 작성( 알렉세프외 1991), 무덤을 둘러싼 호석을 벗기고 난 후 무덤 바닥의 평면도, 무덤의 입구는 ‘P’, 북쪽은 화살표의 끝방향

 

그림 3. 체르토믈리크 유적의 중심무덤방의 평면도, 자벨린 작성( 알렉세프외 1991), 그림2에서 가장 센터에 위치한 무덤방을 자세하게 그린 것이다.

 

유적의 중심부에 위치한 주인공의 무덤방은 깊이 11m 깊이에 위치하고 그림 3에서 알 수 있듯이 중앙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고 4개의 무덤방을 따로 만들어 그곳에 유물을 부장했다. 그래서 도굴은 면할 수 있었다. 날개처럼 달린 무덤방은 일종의 동굴처럼 만든 장소이다(그림 3의 단면도 확인). 특히 북서쪽 방향에 위치한 무덤방은 안쪽으로 계속 연결되어 넓은 공간이 따로 마련되었다. 이곳은 북서쪽에 위치한 무덤의 입구(그림 2-P)와 연결되었다. 말이 매장된 곳은 중심무덤방의 동쪽에 따로 3개의 공간이 마련되었다.

북서쪽 방향에 위치한 무덤방은 주인공이 묻힌 곳인데, 통나무 무덤방 안에 여성이 매장되었다. 북서쪽 무덤방의 양쪽에 위치한 무덤방에는 남성이 매장되었고, 북서쪽 무덤방과 대각선으로 위치한 무덤방에는 동물뼈(개?)와 유물이 부장되었다. 주인공 무덤과 연결된 무덤방(무덤입구와 바로 연결되는 무덤방)에는 남성의 인골이 확인되었다.

 

유적에는 도굴의 흔적이 있었지만 무덤의 최상부를 뚫고 들어오다가 흙이 무너져서 붕괴되어서 중단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복잡한 무덤 구조 덕분에 주인공이 매장된 곳과 이곳과 연결된 무덤방은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그림 4. 체르톰므리크 출토, 고리트(활과화살을 함께 담는 스키타이 특유의  통)를 감싼 장식, 27.3×46.8cm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Мурзин В.Ю., Ролле Р. 1991 : Чертомлык.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курган IV в. до н.э.). Киев: «Наукова думка». 1991. 416 с.(알렉세예프, 무르진, 롤레 1991, 체르토믈리크(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차르의 무덤)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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