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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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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하는 것은 구글맵으로 성곽 유적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주로 연해주 지역의 성곽을 많이 아니깐(번역한 적도 있음) 살펴본다. 그런 재미를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럴 시간이 없다. 왜 그런지는 나도 알 수 없다.

 

 

그림 1. 구글 위성으로 찾은 루보틴 성곽, 그림 2와 비교해 보시기를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사실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은 대부분 좋은 유물(보기 좋거나 학술적 가치가 큰)이 나오는 것은 무덤이기 때문에 성곽은 잘 살펴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카멘스코예 성곽 유적이 계기가 되어서 이 자료 저 자료를 찾아 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성곽 유적이 많다. 특히 루보틴 성곽은 성벽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좀 흥미로울 수 있다.

 

그림 2. 루보틴 성곽의 평면도, 숫자는 발굴된 범위이다.

 

기원전 7세기 후반의 유적으로 도네츠 강의 북부에 위치하는데, 우디강과 루보틴 강의 합류 지점에 위치한다. 1961~1964년까지 발굴되었는데,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가장 중요한 곳은 발굴범위 3으로 적힌 곳이다. 왜냐하면 성벽조사이기 때문이다. 성곽 유적은 오랫동안 사용되어서 축조된 연대를 특정하기 힘들다. 제일 윗 층에 남은 것은 그 유적의 가장 마지막 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축연대(처음 축조된 연대)를 알기 위해서는 성벽 절개면 조사를 해야 한다.

루보틴 유적에서는 성벽 절개조사를 했고 그 결과 성벽의 구조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성벽의 외곽으로는 환호가 돌아가고 그 안에도 벽(그림 3-2)을 세웠고, 환호 안쪽으로는 훨씬 단단한 성벽을 세웠다. 성벽은 두 개의 통나무 벽을 세우고 그 사이 공간은 흙, 모래, 점토 등으로 채워서 만들어진 것이다(그림 3-3). 목제 성벽의 높이는 2.7m이상, 너비는 1.8m이고, 환호바닥에서부터 수직으로 했을 때 성벽의 높이는 10m정도로 추정된다.

 

발굴범위 5는 서문이 있던 곳인데, 이를 복원하면 그림 3-4이다. 이 유적에는 남쪽에도 문이 있다. 성 안에는 직선적인 구획 계획은 확인되지 않지만, 서쪽 입구에서 동쪽으로 난 길 주변에는 건물지가 없었다. 이 도로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연결된 도로와 교차된다.

 

그림 3. 루보틴 성곽의 환호의 바닥 평면도 (1)와 성벽의 단면도(2), 성벽의 위에서 본 모습(3),  문 복원도(4)

 

성벽이 남겨진 성곽은 루보틴 유적만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Шрамко Б.А., Люботинское городище. Сборник научных трудов, Харьков: Регион-Информ, 1998. - 184 с (시람코, 1998, 류보틴 성곽)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돈 강 유역의 스키타이 성곽이라고 알려진 하지만 남겨진 건축물은 그리스식 건물지 밖에 없는 엘리자베토프스코예 성곽은 어떻게 스키타이 유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장 윗층에 남은 그리스 건축물은 기원전 3세기 1/4분기에 해당되며, 그 곳에는 그리스식 토기(그림 1)들이 발견된다. 그리스식 집과 토기는 이 성곽에서 가장 마지막 시기에 발견되는 것이지만, 어찌되었던 스키타이 인의 입장에서는 불리하다.

 

그림 1. 엘리자베토프스코예 성곽의 기원전 3세기 그리스 토기

 

스키타이 문화에서 연대측정의 근거가 되는 것 중에 하나는 화살촉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화살의 중요성은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았던 것 같다. 페르시아의 페르세폴리스에도 스키타이 사람들은 고리트를 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헤로도투스가 남긴 스키타이 신화에서 타르기타우스(그림 7) 라고 하는 사람이 스키타이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인물인데, 늘 고리투스를 착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엘리자베토프스코예 성곽에 살았던 스키타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무기를 남겨놓았다. 화살촉과 아키나크라고 불리는 단검 및 청동창이다. 단검과 청동창은 사실 스키타이 연대를 세밀하게 알지 못한다. 기원전 7~4세기까지 거의 비슷한 모습이다. 기원전 4세기 이후가 되면 단검은 길어지며, 손잡이 끝장식은 동물의 뿔을 형상화 한 형태(그림 2-5~7)가 아니라 T혹은 역 V자(그림 2-37, 51~54,) 로 바뀌게 된다.

 

그림 2. 유럽 스키타이 문화의 무기변화, 상단: 기원전 4~2세기, 하단: 기원전 7~4세기, 1~15: 검, 16: 투부(전투용도끼), 17~21: 청동창, 22: 찰갑(미늘 갑옷), 23-26: 갈고리

 

그림 3. 엘리자베토프스코예 성곽의 청동검

 

그림 4. 엘리자베토프스코예 성곽의 청동창

 

엘리자베토프스코예 성곽에서 출토된 청동검(그림 3)에도 뿔 모양처럼 생긴 손잡이 끝장식이 달려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유적의 청동창(그림 4)의 모습도 기원전 7~4세기 유물과 유사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화살촉이다. 화살촉을 연대판단의 근거로 삼는 것은 유럽 스키타이 문화나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는 시대별로 변화에 비교적 민감하게 변화되고, 지역성(지역)도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림 5. 엘리자베토프스코예 성곽의 청동화살촉

 

그림 6. 유럽 스키타이 문화의 화살촉 변화, 2,4-볼가~돈강 유역, 3,5-우랄 남부

 

화살촉은 신부(몸통)의 단면과 자루를 끼우는 부분, 평면형태 등이 중요하다. 유물에 따라서 다른 부수적인 부분들도 판단의 기준이 된다. 대체로 유럽스키타이 유물들도 세 가지 기준으로 구분했다.

기원전 7세기 유물은 (단면)양쪽으로 날이 있는 형태(양익형, 兩翼)이고, 기원전 6세기 이후가 되면 삼익형이 된다. 혹은 간혹 그냥 삼각형도 있는데, 외면에 홈이 없는 경우라서 그렇다. 삼익형의 단면은 기원전 4세기 이후가 되면 대부분 삼각형으로 변화되고, 자루 끼우는 부분도 몸통 안쪽으로 들어가게 된다.

기원전 7세기와 기원전 6세기는 신부(화살촉의 몸통)형태도 변화가 된다. 기원전 7세기 유물은 평면형태가 마름모에 가깝고 앞 부분만 날이 있는 형태이지만, 기원전 6세기 이후 삼각형에 가까우며 신부 전체가 날이 선 형태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자루를 끼우는 부분이 따로 만들어지지 않고 안쪽으로 들어가는 형태들이 발견된다. 돈강 유역과 우랄 남부지역의 화살촉은 이 점은 비슷하지만 화살의 동체부에 홈의 깊이 정도가 다르다.

기원전 5~4세기 유물은 단면과 자루끼우는 부분은 직전 시대와 유사하지만 화살촉의 앞 부분이 길어진다. 뿐만 아니라 화살촉 신부의 날이 좀 더 커지는 경향도 있다. 돈강 유역과 우랄 남부지역은 약간 다른 경향이 있는데, 우랄 남부지역(그림 6-)5에 단면이 양익형인 것이 생긴다. 하지만 기원전 7세기와는 달리 자루끼우는 부분이 신부 안쪽으로 들어간 것이다.

기원전 4세기 이후는 훈-사르마트 문화 시기에 해당하는데 화살촉의 앞 부분이 더 길어지고 자루끼우는 부분이 바깥으로 나와 있지 않고 안쪽으로 들어간다.

 

엘리자베틴스코예 성곽에서 출토된 화살촉(그림 5)은 기원전 6세기 유물 혹은 기원전 5세기 유물과 유사하다. 그리스인이 집을 짓은 것은 기원전 3세기 1/4분기라고 하니, 이전에 이미 스키타이 인들이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자료를 찾다가 스키타이 성곽이 생각보다 많이 발견되며, 훨씬 오래된 유적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림 7. 차스티예 고분에서 발견된 은제 항아리 속의 타르기타우스

 

참고문헌

 

Марченко К. К., Житников В. Г., Копылов В. П. Елизаветовское городище на Дону. М., 2000(마르첸코, 지트니코프, 코피로프, 2000, 돈 강 유역의 엘리자베트토프스코예 성곽)

Степи европей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Археология СССР / Археология с древнейших времён до средневековья 1989. 464 с(러시아과학아카데미 1989, 소비에트 연방 유럽 내의 스키타이-사르마트 시기, 소비에트 고고학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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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 서부에 위치한 스키타이 시대의 유적에서는 쌍봉낙타 장식이 발견된다. 볼가~우랄 강 유역의 지역문화를 사우로마트-사르마트 문화라고 한다. 필리포프카 유적(그림 4)이 잘 알려진 곳인데, 베소바 유적에서도 출토되었다.

 

스키타이 동물문양 장식 중에서 낙타가 발견되는 곳은 볼가~우랄 강 남부의 유적이다. 필리포프카 유적에서 출토된 것은 금제의 낙타장식으로 두 마리가 머리를 서로 맞대고 있으며, 앉아 있는 모습이었고 납작한 장식판이다. 반구형 장식 펜던트에도 낙타 1마리가 늑대와 대결하는 구도로 발견되었다.

 

베소바 유적에서는 낙타 2마리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유물과 낙타 1마리가 받침대 위에 서 있는 펜던트 2종류가 발견되었다. 베소바 유적의 장식품은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같은 유적에서는 원형의 맹수장식도 발견되었는데, 눈, 코, 입을 표시하지 않았으나 키리크-오바 II유적의 유물과 같은 늑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1. 베소바 유적 3호 출토 쌍봉낙타

 

그림 2. 베소바 유적 3호 출토 쌍봉낙타

 

그림 3. 베소바 유적 3호 출토 맹수장식

 

 

그림 4. 필리포프카 유적의 낙타장식

 

스키타이 문화권 내에서 쌍봉낙타를 단독 펜던트로 만든 경우는 이 지역이 유일하다. 물론 낙타장식이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2호 주인공 무덤에서 다른 동물문양장식과 함께(목걸이) 표현된 경우는 있고, 알타이의 펠트 조직에서 죽은 낙타털을 양털과 혼용해서 사용한 경우도 발견되었다. 하지만 단독의 펜던트로 존재하는 경우는 이 지역이 유일하다.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만 발견되었을 때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리기에는 애매했다. 그러나 인접한 또 다른 유적에서  이와 같은 상황이 확인되었기에 좀 더 확실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많은 유적에서 비슷한 장식이 발견된다면 뚜렷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원형맹수장식을 모방한 맹수장식(그림 3)과 쌍봉낙타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문양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낙타는 좀 어색한 동물이지만, 낙타는 버릴 것이 없는 동물이라고 한다. 말에 비해서 엄청나게 많은 짐을 옮길 수 있고, 먹이는 것도 수월하며, 고기도 먹을 수 있다.

기원전 4세기 당시에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동물이었을 것이고, 펜던트로 만들어서 자신들을 상징할 만큼의 동물이었을 수 있다. 눈, 코, 입을 표시하지 않을 만큼 맹수장식은 큰 의미가 없는 유물이었을 수 있다.

 

필자는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무덤구조나 시신의 장법 뿐만 아니라 동물장식에서도 이 지역의 패턴이 보여지기 때문에 볼가-우랄 강변의 유적들은 ‘한’ 그룹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Кадырбаев М.К., Курманкулов Ж.К. Захоронения воинов савроматского времени на левобережье р. Илек // Прошлое Казахстана по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м источникам. – Алма–Ата: Наука, 1976. – С. 137–156(카디르바예프, 쿠르마쿠로프, 1976, 일레크 좌안의 사브로마트 시기의 무덤)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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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 탁사이-1 유적의 여성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는 무덤의 구조이다.

 

탁사이-1 유적에는 무덤이 6개 존재하는데 가장 크고 많은 유물이 출토된 6호분은 낮은 곳에 위치한다. 사실 1~5호분과 다른 계곡에 위치해서, 같은 구성원이 아닐 수 있지만, 발굴자들은 같은 유적으로 묶어서 6호분이라고 명명했다(그림 1).

 

탁사이-1 유적의 다른 유적은 6호가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여성의 무덤인 6호는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이다.?!

 

무덤의 중앙구덩이에서도 동쪽벽에 치우쳐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무덤구덩이의 중앙은 비워둔채였다. 그리고 무덤구덩이를 둘러싸고 있는 부분도 열을 아주 많이 받았고 청동이 녹은 흔적이 둘러쌓고 있었다. 일부분만 그런 현상이 발견되었다면 우연?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무덤구덩이를 둘러쌓고 있다는 점에서 우연일 수 없고, 의례행위의 과정중에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덤을 3겹이나 둘러쌓고 있는 붉은색과 황색의 퇴적물도 내용물은 달랐겠지만 그런 행위 중에 한 부분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었을 것이다.

 

그림1. 탁사이-1 유적의 무덤 배치도

 

 

그림 2. 탁사이-1 유적의 6호 평면도

 

탁사이-1 유적의 6호분 여성과 유사한 유물을 많이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 인접한 필리포프카 유적(지도에서 확인가능함)에는 무덤구조는 전혀 다르다. 무덤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3곳이나 있으며 지하통로를 통해서 지하로 들어가도록 된 구조이다. 무덤의 입구는 봉분 위가 아닌 측면이다. 대개 이런 무덤 구조는 한 번 무덤을 만들면 후대에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흑해 지역에서 많이 관찰된다.

알타이 지역에서는 무덤구덩이를 파고 봉분을 만든 후에 따로 입구를 설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도(무덤의 복도)가 있는 무덤구조는 나중에 다시 열 것을 염두해 두었을 가능성이 있거나 혹은 그 전통을 이어받아서 만든 무덤구조일 가능성이 크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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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사이-1 유적과 거리상으로는 필리포프카 유적보다 멀지만 같은 국경 내에 있는 이식 유적은 무덤구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여러 방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으로 나무 구조물 안에서 십대 남성(황금인간)이 발견되었다. 여러 방이 있었다는 점에서 탁사이-1 유적 6호와는 다르다.

 

그래서 유라시아 초원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지역에서는 알타이와 비교적 인접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무덤을 제외하고는 무덤의 특징들이 일률적이지 않다. 다만 봉분을 높이 쌓는다는 공통점은 있다. 알타이와 흑해처럼 어떤 정형성, 규칙성들이 많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제까지 필자가 소개한 베렐 유적, 실릭티 유적, 이식 유적, 탁사이-1 유적, 타스몰라 유적은 카자흐스탄 국경안에 무덤이지만 각각 다르며, 전체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볼 때 중부지역에 위치한다. [여기서 베렐 유적은 알타이 산의 자락에 위치해서, 알타이 파지리크 문화와 유사하다.]

 

따라서 탁사이-1 유적의 여성은 자신이 살아생전 지녔던 물건 뿐만 아니라 자신이 묻힌 무덤도 아마도 재지적이거나 혹은 어떤 특정 계급의 무덤일 수도 있다. 카자흐스탄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여사제(샤먼)의 신분이었을 수 있다. 특히 무덤 안에 불을 많이 썼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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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서부 지역이자 우랄 산맥 서쪽 볼가강-카마강 유역에는 초기 철기시대 아나닌스카야 문화가 존재했다. 스키타이 문화와 동시대의 문화로 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 여러 물품을 수입해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스키타이 문화의 지도는 우측에서 확인가능합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무기이다.

하지만 어제 살펴본 바와 같이 철제검이나 두 종류 이상의 금속 재료를 써서 만든 검은 수입품인지 애매한 것도 있고, 모방해서 만든 것도 있었다. 손잡이가 단순하고 거푸집에서 손잡이까지 한번에 만든 철제 검은 어디서 제작했는지 분간하기가 어려워서 애매했다. 손잡이가 화려하게 장식된 검은 검의 몸통(신부)는 철제, 손잡이는 동(순동 혹은 청동)으로 만들어졌는데, 자신들의 독자적인 검도 있었고 그 기술로 스키타이 검을 흉낸 것도 아밀호보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모방한 동검은 손잡이가 스키타이 동물장식과 비슷한 것이 발견되었는데, 제작 기술이 달라서 직수입품은 아니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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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닌스카야 문화에서는 검 보다는 화살촉이 많이 발견된다. 청동제품이다.

흑해지역에서 발견되는 화살촉 보다 훨씬 종류가 많다. 화살촉을 분류해서 설명하면 (다들 도망가실테니) 너무 복잡하다. 크게 분류하면 흑해지역에서 보이지 않는 유물과 아주 비슷하게 생긴 유물(그림 1-52,53)이 있다. 그림 1의 유물은 기원전 6세기 유물이라고 한다.

흑해의 우안,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 위치한 켈레르메스 유적(기원전 7세기)에서 출토된 화살촉과 기원전 6세기 아밀호보 유물(그림 1-52,53)은 매우 유사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지역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켈레르메스 화살촉처럼 생긴 유물이 많아진다.

 

그림1. 아나닌스카야 문화의 청동화살촉, 기원전 6세기

 

그림 2. 스키타이 문화의 켈레르메스 유적

 

스키타이 문화의 화살에 대한 이야기는 헤로도투스도 적은 바 있고, 아파다나 궁전에도 페르시아 군인들이 스키타이 활과 고리트를 들고 있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참고문헌

Кузьминых С. В. Металлургия Волго-Камья в раннем железном веке: Медь и бронза. — М.: Наука, 1983. — 257 с.(쿠지미니흐 1983, 볼가-카마 강 유역의 초기철기시대: 순동과 청동 금속제작)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라니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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