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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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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문화'에 해당되는 글 67

  1. 2020.01.18 스키타이문화 얼음공주- 미라 1
  2. 2020.01.10 2500년 전, 시베리아 여성 샤먼의 죽음과 얼음

 

 

필자가 스키타이 얼음공주라 불리는 2500년 전 스티타이 문화에서도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문화라 불리는 문화에서 확인된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 유적의 1호분 여성 미라를 소개하기 위해서 이제 까지 무덤의 구조, 말, 관안에서 확인된 부장품, 관 밖이고, 무덤방안에서 확인된 여러 재질로 제작된 그릇들을 설명드렸다.

 

그렇다면 무덤의 주인공인 얼음공주라고 불리는 미라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가 아니겠는가?

 

우리의 주인공은 무덤구덩이 속의 가장 바닥에 누워있다. 무덤방이라고 하는 목곽안에 통나무로 만든 관 안에…그런데 여러분 머리속에는 그 무덤방이 어떤 느낌이셨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참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게 그들의 철학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주인공의 관은 무덤구덩이의 중앙에 없었다. 무덤방의 중앙은 거의 비어 있었고, 무덤의 관은 무덤의 우측에 무덤방 동쪽에 치우쳐서 놓여 있었다.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면 무덤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관과 곽을 만드는 작업은 엄청난 작업이다. 요즘도 건물을 지으면 지하를 파는 토목작업이 가장 힘든 작업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무덤 속의 빈 공간을 처음부터 계획해서 남겨두었다…무덤 속의 다른 유물로 가득 차 있지 않은 것 만큼 의미심장하다.스키타이문화의 무덤에는 대부분 빈공간이 있다..

 

어쨌든 사람들은 유물이 꽉 차거나, 화려하거나, 혹은 특이한 것에 혹한다.

얼음공주라는 별칭이 붙은 여성미라도 특별한 존재이다. 필자는 미라의 의미를 앞에서 계속 설명한 시베리아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순동시대까지 설명한 인간형상물과 같은 의미 일 꺼라고 생각한다. 순동기시대 까지 뿔로 제작되던 인간형상물을 스키타이문화에서는 사자를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죽음의 의미는 가볍지 않은 듯 하다. 그 의미는 우리 내 역사의 DNA에 남아 있다. 반드시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통나무 관의 뚜껑이 열리고 얼음이 녹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미라의 머리였다. 

얼음공주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제작되었다. 가장 상태가 좋지 않은 부분은 머리, 가슴과 복부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그림 4). 가장 복잡하고 처리하기 힘든 부분은 머리이다. 얼굴 피부는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오른쪽 턱 아래에만 남아 있다. 머리 뒤에는 4~5CM가량의 구멍이 있는데(그림 3), 구멍은 울퉁불퉁하게 남아 있는데, 뇌수를 빼내기 위한 구멍이다. 고병리학자가 두개골의 안쪽을 검사한 결과 뇌수를 빼기 위해서 금속제 도구를 써서 긁어낸 흔적이 없었다. 칼 대신에 숟가락과 같은 도구를 써서 꺼냈을 것이다.

 

그림 1. 통나무 관 안의 얼음공주, 얼굴의 피부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 노보시베리스크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연구소 필자촬영 2009

 

그림 3.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의 여성 미라 두개골의 뒷모습

 

그림 4.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 미라, 머리 뿐만 아니라 복부와 가슴도 상태가 좋지 않다.

제가 이 무덤을 소개 할 때 나무로 뒤덮혀 있다고 했는데, 나무방, 나무관, 말장식도 나무로 제작해서 금박을 뒤집어 씌운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라의 속을 채운 것도 식물섬유질, 일종의 구근류 등을 채워 넣었다. 구강, 코와 귀로 이어지는 비강과 이강에는 흙에 자잘한 모래와 식물섬유질, 잡초 등을 섞은 것으로 채워넣었다. 목 부분의 기관과 구강내의 부드로운 조직들은 목을 수평으로 절개해서 완전히 제거되었다. 그 자른 부분에 충전물을 채워 넣었다(그림 5).

 

고병리학자들은 두개골과 경골일부는 척추에서 완전히 분리되어서 따로 방부처리되었고, 매장전까지 따로 분리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 제시되었다.

 

그림 5.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두개골, 얼굴피부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머리속에는 풀 등 다른 식물성 유기물질로 가득채워져 있다.

 

그래도 이 공주의 얼굴은 발견되었을 때 이미 거의 녹아내렸다. 미라처리기술에도 불구하고, 매장까지 오랜기간 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 앞에서 필자가 찍은 아크 알라하 3유적 1호분과 관련된 사진은 모두 2009년에 촬영되었다. 정정한다.

 

 

참고문헌

https://scfh.ru/papers/put-k-nebesnym-pastbishcham/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안토노바 1986, К исследованию места сосудов в картине мира древних земледельцев. – Вост. Туркестан и Ср.Азия в системе культур древнего и средневекового Востока. М.,1986, с.35-65(안토노바 1986, 고대 농경인 세계에서 토기의 위상에 대한 연구// 고대와 중세시대 문화시스템에서의 동투르키스탄과 중앙아시아)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그림1.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 무덤에서 미라를 들어올리는 장면.

 

그림 2. 아크-알라하 3유적의 여성 샤먼 관 속 얼음

 

그림 3. 아크-알라하 3유적의 무덤방 속에서 들어난 목제 쟁반과 그 위의 동물뼈(고기덩어리)였음.

그림 4. 아크-알라하 3유적의 관에서 미라를 꺼낸 직후

 

*위의 사진은 우코크 고원의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주인공이 다시 땅위로 올라오는 장면부터 거꾸로 편집해 보았다. 그녀는 무덤속에 들어갈때 이와는 반대로 매장되었을 것이다.  사진은 참고문헌에서 발췌된 것이다. 

 

스키타이문화의 미라를 설명하기 시작하면서 얼음공주라고 처음에는 제목을 붙이고, 어제는 여성 샤먼이라고 했다. 사실 얼음공주라는 별명은 무덤 속에서 얼음이 꽉 차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베리아 알타이라고 하면 ‘춥다’라는 이미지와 신비로움, 대중성 때문에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붙였다. 그러나 정작 발굴한 사람들은 가장 최상위 계급은 아니며, 여러 정황으로 보아서 그녀는 살아서 샤먼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보다 더 화려한 부장품이 들어간 무덤이 많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들은 얼마나 잘 살았는지, 아니면 보이는 거와는 달리 일반인들은 못살았는지 모르지만, 화려하게 치장된 말 6필을 무덤 속에 그녀와 함께 묻었다. 필자는 이 부분을 설명할 때 학생들에게 벤츠 최상급 기종 6대를 무덤에 밀어넣은 거랑 같은 거라고 설명한다. 애들도 꺄르르 웃는다.

어느 문화에서나 장례식은 살아있는 자들의 잔치다. 보이기 위한. 레닌을 미라로 만든 이유도 스탈린의 권력기반이 약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 레닌 무덤을 만들고 보관하던 기술은 이 미라의 복원과 보관을 위해서 활용되었다. 또 김일성도...

 

스키타이 문화는 놀랍게도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누구일까? 어느 책일까?

 

그리스 역사가인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남아 있다. 이 책은 기원전 450년에 쓴 책인데, 이 책의 4장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이 스키타이 원정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그 때 스키타이 민족에 대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스키타이 민족의 강역, 주변민족, 기원과 생활풍습, 전쟁풍슴, 종교 등에 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논란이 있는 부분은 여러 곳이 있겠지만, 특히 헤로도투스가 본 스키타이 인이 어느 지역 사람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헤로도투스가 본 스키타이문화는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문화라는 주장과 시베리아 알타이의 스키타이 사람을 본 적이 있다고 주장하는 설이 있다. 스키타이 문화라고 일컬어지는 문화는 흑해북안부터 시베리아, 동쪽의 끝은 중국 오르도스 지역까지 그 분포범위가 광대하다. 헤로도투스가 시베리아까지 와서 스키타이족을 보았다는 설은 헤로도투스가 설명한 내용이 실제로 그대로 발굴된 예가 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설명드리기로 하고 여성 샤먼을 주변으로 해서 차차 설명하도록 하겠다.

 

 

 

헤로도토스는 스키타이 인들이 왕의 장례 치르는 모습을 다음과 설명했다.

‘왕이 죽으면 그 곳 땅에 큰 사각형 구덩이를 판다. 구덩이가 완성되면 전신에 발삼처리를 하고 마차에 시신을 싣는다. 그 전에 시신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전부 꺼낸 다음 그 안에 생강, 향료, 파슬리씨, 아니스를 넣고 다시 봉합한다. 그런 후에 시신을 마차에 실고 다른 부족에게 간다’

 

헤로도투스도 언급했듯이, 그리고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도 죽은 후 곧바로 매장하지 않았다. 최소 3개월이 지나서 매장되었다는 분석에서 보듯이 그들의 장례 치르는 기간은 매우 길다.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같이 매장된 말이 먹은 건초가 6월 중순 쯤이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꽃가루분석결과도 이 시기로 판명되었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땅에 묻히자 말자 냉동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무덤은 관과 곽(관을 넣은 무덤방을 곽이라고 한다)이 얼음으로 꽉 차있었기 때문에 후대에 도굴이 불가능했다.(알타이 산맥의 여러 유적 고분은 쉽게 도굴당했다. 아이러니하게 무덤을 상징하는 봉분이 그대로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알타이라고 해도 무덤 내부가 완전히 냉동되어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는 깊이 3m의 토광을 파자마자 지하수가 차올랐고 그대로 냉동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는 더운 여름이라도 3m정도를 파면 그곳은 얼음 덩어리처럼 단단하게 얼었다. 미라가 남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특수한 처리 때문 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얼음 때문에, 영구동토대였기 때문이다. 우코크 지역에 살던 2500년 전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알았을 것이고, 이를 이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일정한 계급이상의 사람이 죽으면 미라 처리를 하고 땅이 바로 얼 수 있는 기간 까지 기다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죽은 지 3~6개월이 지나서 주로 봄과 가을에 매장했다(폴로스막 2001).

 

 

참고문헌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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