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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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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15. 09:25 스키타이 동물장식

 

시베리아 기원전 7~5세기에 발견되는 동물문양은 독수리, 호랑이, 말을 변형시킨 것이 주로 발견된다. 독수리를 기본으로 해서 호랑이의 여러 신체 부위를 결합한 것, 호랑이에 독수리 날개를 단 것 혹은 뿔을 붙인 것이다. 말은 머리가 특히 심하게 변형되었는데, 독수리의 얼굴에 사슴뿔을 단 것이다. 늑대 변형도 발견되는데, 주둥이가 길어지게 표현되었다.

 

그런데 변형된 늑대 머리를 단 동물 가운데 가장 필자의 눈을 끄는 문양은 파지리크 유적 2호분 남성의 다리문신이다. 이제까지 필자가 이를 빼먹고 있었는데, 그의 우측 무릎 아래에는 물고기, 산양, 심한동물변형 문신이 남아 있다.

동물변형 문신은 머리는 늑대의 주둥이를 길게 표현했고, 몸통을 길게 늘이고 있고, 머리에는 새머리가 달린 뿔이 달려 있고, 꼬리와 발톱은 호랑이와 같다(그림 2). 머리표현은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고삐 이음새에서 발견된 늑대장식과 비슷한 방법이다. 같은 문양이 남성의 좌측 가슴에서도 발견되었다(그림 3). 

이 동물변형은 이제까지 본 조합 중에서 가장 다양한 동물의 조합을 이루고 있어서 이름 짓기도 힘들다.

 

그런데 왜 이 동물은 몸을 길게 늘이고 있으며, 휘어지게 그렸을까(그림 2)?

필자는 원형맹수장식에 주목한다. 원형맹수장식은 몸통을 길게 늘여서 엉덩이와 머리를 붙여서 고리모양으로 만든 것이다(그림 4). 이 문양은 시베리아에 철기시대에는 기원전 9세기(아르잔-1)에 처음 발견되었고, 기원전 7세기(아르잔-2)까지 사용되다가 기원전 5세기 유적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변형된 맹수장식이라는 점에서 원형맹수장식을 대신하기 위해서 몸을 길게 늘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2호분 남성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2호 남성 우측 무릎 아래 문신

 

그림 3. 파지리크 유적 2호 남성 좌측 가슴문신

 

 

그림 4. 원형맹수장식을 주조하기 위해서 만든 밀랍모형

 

필자가 앞서서 아크 알라하-3유적의 여성미라 문신에서 긴 꼬리와 발톱이 있는 문양을 호랑이(그림 5-12)로 보았으나, 그 동물의 뿔 끝에는 새머리가 남아 있어서 정확하지는 않았다. 현재 상황에서는 파지리크 2호 남성 우측 무릎 아래의 심한동물변형(그림 2, 그림3) 문신과 더 유사하다.

 

그림 5. 파지리크 문화에서 발견된 미라의 문신

 

 

또 물고기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본 모습을 그린 것인데, 대부분의 동물문양은 측면이 그려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물고기 문양은 파지리크 유적 보다 이른 아르잔-2호 및 같은 시대의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 물론 용도는 다르다.

(산양이 열을 짓고 있는 모습은 같은 유적 5호 남성에게도 같은 위치에 남아 있었다.)

 

위에서 말한 '심한동물변형'은 아직 뭐라고 하기에는 힘들지만  생각해 볼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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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0. 10.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시베리아의 파지리크 문화(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알타이 지역문화)는 해발 1500m이상의 알타이에 있는 무덤에서 나온 문화로서 여러 변형된 동물장식이 많이 나온다. 그 중에서 미라의 몸에 새겨진 동물장식은 매우 특징적이다. 사슴몸통(다리포함)+새부리+변형사슴뿔+새 머리+말 꼬리가 변형된 것으로 사슴형 그리핀이라고 하자. 파지리크 2호의 남녀, 아크알라하-3 유적의 여성,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남성에게 남아 있다. 파지리크 2호 남성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매우 많다.

 

사슴형 그리핀은 함께 부장된 말을 사슴처럼 보이게도 꾸민 것(사슴뿔이 달린 말의 얼굴마스크 등)은 사슴에 대한 대단한 숭배? 혹은 집착? 하여간 무엇인가가 있었다고 보이는데, 알 수는 없다. 

 기원전 5세기 유적에서  발견되었지만 기원전 6세기 투엑타 유적에서도 말을 다른 동물처럼 보이도록 하는 장치가 발견되었다. 말에게 달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들어진 산염소 뿔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림 1. 기원전 6세기 투엑타 유적의 1호 목제 산염소 뿔

 

뿐만 아니라 투엑타 유적 2호분에는 통나무관 에 붙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슴 장식이 발견된다(그림 2). 가죽을 잘라서 만들 것(가죽 아플리케 장식)이다. 사슴 몸통의 내부가 나선으로 채워졌다. 이 사슴은 다리를 펴고 있고 있어서 큰 변형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슴뿔이 몸통을 따라 뒤로 가지런하게 정리된 모습은 원래의 사슴뿔이 나뭇가지처럼 사방으로 뻗어지는 모습과는 다르다. 뿐만 아니라 투엑타 유적의 말 굴레장식으로 사용된 목제 조각에서도 변형된 사슴 모습이 보인다. 사슴 머리에 나뭇잎을 장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그림 3)이다.

 

그림 2. 기원전 6세기 투엑타 유적 2호의 통나무 관 장식

 

 

그림 3. 기원전 6세기 투엑타 유적의 굴레장식

 

그럼 더 이른 시기의 유적은 없을까?

기원전 7세기 아르잔-2호에서도 발견된다. 아르잔-2호의 5호묘 남녀 주인공의 모자장식에 이용되었다. 다리를 펴고 머리를 들고 있는 사슴 모습이다. 두 남녀의 목걸이에도 동물장식이 있지만 사슴장식은 모자 장식에서만 이용되었다. 모자 장식으로 이용된 사슴도 뿔이 뒤로 가지런하게 정리된 모습이다. 특히 아르잔-2호 주인공 남성 모자장식에는 등에 V자로 된 혹이 있는데, 이 유적의 바닥에서 발견된 돌에 그려진 암각화에도 같은 문양이 그려져 있다. 주인공 남성의 모자장식으로 이용될 만큼 사슴에 대한 그 어떤 생각은 혹은 상징은 대단했을 것이다.

 

 

그림 4. 기원전 7세기 아르잔-2호 5호묘 남성 모자장식

 

그림 5. 기원전 7세기 아르잔-2호 5호묘 여성 모자장식

 

그림 6. 기원전 7세기 아르잔-2호 돌판 위의 암각화

 

같은 사슴장식은 기원전 9세기 아르잔-1호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유적은 대단히 큰 나무로 된 무덤 유적이지만 출토된 유물은 많지 않아서 아쉽다. 그런데 유적의 바닥에서 나온 사슴돌에는 다리를 곧 세우고 등에 혹이 있는 사슴문양(그림 6)이 새겨져 있다.

 

그림 7. 기원전 9세기 아르잔-1호 사슴돌

 

아르잔-1호와 아르잔-2호가 무덤구조 및 유물 등이 많이 달라서 다른 전통기반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슴장식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슴돌에서부터 내려오는 곧 추선 사슴장식은 기원전 6세기(혹은 5세기) 까지 이어지고 그리고 그 변형문양이 시작된 것도 기원전 6세기, 극대화된 시점은 기원전 5세기 해발 1500m이상의 유적에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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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0. 7.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 위에 있는 기원전 5세기 무덤에서는 미라가 나오고, 그들의 몸에는 동물문양 문신이 새겨져 있다. 주로 변형된 동물인데, 굽동물의 몸통에 독수리 부리가 부착되고 사슴 뿔처럼 보이지만 말 갈퀴처럼 보이기도 하며, 끝에는 새 머리가 달려 있다. 꼬리는 말처럼 길게 처리되어 있다. 이 동물을 사슴형 그리핀으로 부르고자 한다.

그런데 베르흐 칼쥔 II유적 전사의 문신은 머리가 없는 굽동물(그림 1-5)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입과 뿔에 달린 새 머리가 남아 있어서 원래 머리 없이 그려진 것이 아니다. 원래 머리 없이 그려졌다고 보여지는(그림 1-2, 4, 7, 10, 11) 동물 중에서 실제로 그림 1-2,4, 10, 11은 머리가 없는데, 처음 의도인지, 아니면 지워진 것인지 애매하다.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사슴형 그리핀의 범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1-7은 머리 부분이 이상하게 그려진 것이고, 그림 1-8의 동물은 뿔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슴형 그리핀과 자세 등이 유사하다. 이들은 사슴형 그리핀이다.

 

그림 1. 파지리크 문화의 문신

 

아크 알라하 3유적과 파지리크 2호의 남성 미라에는 사슴형그리핀 외에도 호랑이 변형이 있다. 전자(그림 1-12)는 발과 꼬리 표현이 굽동물이 아닌 호랑이 변형(그림 1-13)에서 관찰할 수 있다.

 

파지리크 유적 2호와 5호, 1호에는 말에게 씌운 가면이 발견된다. 말에게 없는 뿔을 달아서 사슴처럼 보이도록 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말의 안장에도 동물장식이 달려있어서 말은 온통 동물장식으로 덮여 있게 된다. 말의 꼬리도 땋거나 금판으로 감아 처리해서 문신속의 사슴형 그리핀과 마찬가지로 처리했다.

이들은 말을 살아 있는 사슴형 그리핀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 것처럼 보인다.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5호분 말 가면

 

그림 3. 파지리크 유적 말 꼬리

 

뿐만 아니라 파지리크 유적 2호분의 남성 모자 장식은 높은 장식을 만들어 붙인 것인데, 사슴의 뿔을 변형시킨 것이다. 파지리크 5호분 캐노피에 있는 반인반수의 괴물도 얼굴만 사람이고 사슴(그림 4-4)을 변형 시킨 것이다.

 

그림 4. 파지리크 유적 5호분 캐노피

 

그래서 필자는 알타이 미라 문신의 사슴형 변형동물 혹은 사슴형 그리핀은 알타이 고유의 동물장식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이유 중에 하나가 사슴변형의 시작은 이미 청동기시대부터 있어왔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사슴에 대한 숭배?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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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현재까지 알타이의 큰 고분에서 발굴된 기원전 5세기 유적에서 미라가 남아 있는 곳은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일명 얼음공주), 파지릭 2호분의 남녀, 파지릭 5호분의 남녀,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남성 이다. 현재 소개하고 있는 바샤다르 유적 2호분에서도 남녀의 미라가 있었을 것이지만 여성은 훼손이 심해서 그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고, 남성은 통째로 없어졌다.

 

그 중에서 문신이 남아 있는 미라는 얼음공주, 파지릭 2호분의 60세 남성,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기마전사였다. 즉 미라로 발견되었지만 파지릭 2호분의 여성과 같은 유적 5호분의 남녀에게서는 발굴당시에는 전혀 문신이 발견되지 않았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의 문신도 발굴당시에는 아주 밝은색 피부색 위에서 선명하게 들어났지만 공기중에 드러나면서 피부색이 검게 변하면서 문신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특별한 보존처리를 통해서만 드러났다(코젤초프, 로마코프 2000).

 

미라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보관하면서 일 년에 2번씩 사진을 찍고 여러 검사를 했으나 아무것도 별 다른 것이 보이지 않았으나 2004년 10월에 파지릭 2호분(여성)과 파지릭 5호분(남성과 여성)의 미라 3구를 적외선 촬영하던 가운데서 문신이 발견되었다. 이 세 구의 미라는 피부가 매우 검게 변해서 육안으로는 문신이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간 필자가 앞서 문신이 발견된 미라에 대한 정보는 모두 이 논문( 바르코바, 판코바 2005)이 발표되기 이전의 자료였다. 아크 알라하 3유적(폴로스막 2001), 파지릭 2호분의 남성(루덴코 1953),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몰로딘 외 2000)은 오늘 소개하는 자료보다 이전 자료를 보고 소개한 것이다.  결국 이 세 구의 미라 외에도 발굴된 파지릭 유적의 모든 미라에 문신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죄송^^)]

 

적외선 촬영을 통해서 미라의 문신을 발견한 것은 문신에 사용된 염료가 그을음이었기 때문이다. 적외선 촬영에서 그을음을 사용해서 그린 문신은 선명하게 드러나고 피부는 반사되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적외선 촬영도 한계가 있다고 한다. 문신은 팔과 다리에 그려져 있다. 신체의 볼록한 표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그림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연속촬영을 해야만 하는데, 제한이 있다. 삼각대 위에 고정된 카메라는 수직과 수평 이동만 가능한데, 미라를 여러 위치에서 찍으려면 각도가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특히 미라가 나무와 같은 막대기처럼 굳어 있는 상태에서 손과 발 안쪽 표면에 있는 이미지는 비스듬히 찍어야 하지만 카메라로 찍을 수 없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신의 세부모양이나 이미지가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현 시점(2004년)에 복원된 문신의 이미지는 덜 정확할 수도 있다.

 

파지릭 2호분의 남성미라는 이미 문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발견당시에 사자의 몸은 조각난 상태였다는 점을 여러분은 이미 기억하실 것이다. 그는 양 어깨 및 팔, 가슴, 등, 오른쪽 무릎아래에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포스팅참고). 적외선 촬영한 결과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에도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그림 1).

 

2020/03/1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2호분] - 2500년 전 알타이의 남성미라

 

2500년 전 알타이의 남성미라

스키타이 문화에는 사람이 죽으면 미라로 처리하는 장례풍습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필자가 나름 자세하게 공개했지만, 이미 한국에서도 서울과 부산에 다녀간 적인 있는 시베리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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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남성미라 오른손 손가락에 그려진 문신, 수탉

 

 

파지릭 유적 2호분의 여성미라는 함께 매장된 남성과는 달리 문신이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왼쪽 어깨, 오른손 손목, 왼손 손목에 문신이 그려진 상태였다. 특히 왼쪽 어깨(그림 2-1), 오른손 어깨아래(그림 2-2)에 그려진 것은 각각 그리핀과 우제류이다. 그리핀은 얼음공주 어깨에서 발견된 것과 매우 비슷하고, 머리없는 우제류는 같은 무덤의 남성 어깨에 그려진 그림과도 매우 유사하다.

 

 

그림 2. 파지릭 유적 2호분의 여성미라의 문신. 1-왼쪽 어깨문신, 2-오른쪽 어깨 아래(상완), 3- 오른손 손목, 4-적외선촬영

 

파지릭 5호분의 남녀미라는 다행히 훼손당하지 않았으나, 문신을 발견한 것은 2004년이다. 발굴한지 50년이 지나서야 사람들은 이 미라에도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파지릭 5호분에는 마차와 대형 캐노피로 유명한 무덤이었다. 2010년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파지릭 5호분만 특별전을 한 적이 있는데, 미라도 그때 전시되었다.

 

2020/04/0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5호분] -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남성과 여성미라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남성과 여성미라

*사진은 좀 그렇습니다..내용상..... 2500년 전 알타이의 파지릭 유적 5호분에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하나의 통나무관에 매장되었다. 2호분에서도 같은 현상이 확인되었다. 2호분은 40대 가량의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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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파지릭 유적 5호분 남성미라의 왼쪽 어깨문신. 어깨에 걸쳐서 등 뒤에까지 호랑이가 이어져서 그려졌다.

 

 

그림 4. 파지릭 유적 5호분 남성미라의 오른쪽 어깨 아래(상완)문신. 굽이 있는 동물이다.

 

그림 5. 파지릭 유적 5호분 남성미라의 오른쪽 하완에 그려진 문신, 그림4와 이어지는 문양이다. 말과 함께 꼬리가 긴 다른 동물(호랑이 추정)이 그려져 있다.

 

 

파지릭 5호분 남성미라의 뒷면과 엉덩이에도 문신이 그려졌다. 이 부분은 미라에 생긴 주름으로 인해서 사진촬영이 잘 되지 않은 부분이다. 위의 문신은 다리 4개이고 그 아래에는 동물의 다리와 머리가 표현되어 있는데, 그리핀의 머리처럼 보인다.

 

그림 6. 파지릭 유적 5호분 남성미라의 허리아래부터 엉덩이에 그려진 문신

 

 

파지릭 5호분의 남성미라는 왼손과 오른손 엄지손가락(그림 7)에 닭 그림을 그려넣었다. 파지릭 2호분의 남성 오른손 엄지(그림1)에도 수탉이 그려져 있었다. 여성에게서는 없는 그림이다.

이 남성은 왼쪽 허벅지(그림 8)과 오른쪽 발목(그림 9)에도 문신이 그려졌는데, 상반신에 그려진 것과는 다른 문양이다. 굽이 있는 동물이지만 상반신의 동물들은 역동적인 자세였다면 하반신에 그려진 동물은 열을 짓고 서 있는 자세이다.

 

 

림 7. 파지릭 유적 5호분 남성미라의 왼손(1)과 오른손(2)

 

그림 8. 파지릭 유적 5호분 남성미라의 왼쪽 허벅지

 

그림 9. 파지릭 유적 5호분 남성미라의 오른쪽 발목

 

 

파지릭 유적 5호분의 남성과 함께 같은 무덤방, 같은 통나무관에 매장된 여성도 문신(그림 10~13)이 새겨졌다. 양 손목 위(그림 10, 11, 12)과 양 손의 네 번째 손가락(그림 13), 왼쪽 엄지손가락(그림 11, 13-2의 가장 상단)이다. 특히 오른쪽 손목 위에 새겨진 문신은 손목의 전면과 뒷면 전체에 그려졌다. 상단에는 호랑이가 사슴을 물어뜯는 장면, 하단에는 호랑이와 표범이 사슴을 공격하는 투쟁문양이 그려졌다.

두 마리 맹수가 사슴이나 양을 공격하는 장면은 표트르 1세의 황금유물컬렉션 유물에서 잘 알려진 그림이다.

 

그림 10. 파지릭 유적 5호분 여성미라의 손목 위

 

 

그림 11. 파지릭 유적 5호분 여성미라의 왼쪽 손목 위뿐만 아니라 왼쪽 엄지손가락에도 문신이 남아 있다. 새 그림인데, 그림 13의 2에 위에 그려진 새 그림이다.

 

 

 

그림 12. 파지릭 유적 5호분 여성미라의 오른쪽 손목 위

 

 

 

그림 13. 파지릭 유적 5호분 여성미라의 양 손.  1-오른손, 2번의 왼손가락의 네 번째 문신,  새 그림은 엄지손가락에 그려진 것이다.

 

일명 얼음공주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와 파지릭 유적 2호분의 여성미라는 문신의 그림이나 위치가 매우 비슷한 편이다. 그러나 파지릭 유적 5호분의 여성미라에는 앞의 두 여성에게는 없던 동물투쟁문양이 그려져 있다. 특히 호랑이는 파지릭 5호분의 남성(왼쪽어깨)와 파지릭 2호분의 남성 왼쪽 등에 그려졌던 문신이다.

 

 

 

 

 

참고문헌

Козельцов В.Л., Ромаков Ю.А. Новый способ сохранения человеческих мумий // Археология, этнография и антропология Евразии. 2000. №4. С. 103-106.(코젤초프, 로마코프 2000, 미라보존의 새로운 방법//유라시아의 고고학 민족학 인류학)

Баркова Л.Л., Панкова С.В. 2005 : Татуировки на мумиях из Больших Пазырыкских курганов (новые материалы). // АЭАЕ. 2005. №2 (22). С. 48-59.(바르코바, 판코바 2005, 파지릭 대형 고분의 미라에 새겨진 문신(최신자료)//유라시아의 고고학 민족학 인류학)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https://rg.ru/2010/12/09/ermitaj-altay.html

파지릭 5호분 특별전 신문기사

 

В Эрмитаже открылась экспозиция "Древняя Сибирь. Пятый Пазырыкский ку

Дни Эрмитажа начались в Северной столице. Одно из главных событий в череде мероприятий - открытие в музее новой постоянной экспозиции архе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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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의 베르흐 칼쥔 II 유적 3호분의 기마전사는 20~25세의 남성으로 추정된다. 미라로 제작되었으며 오른쪽 어깨에 우제류(머리없는)와 그리핀이 함께 표현된 문신(그림 1,2)이 새겨져 있었다.

 

문신은 파지릭 2호분의 남성미라,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에서도 확인되었다. 이 남서의 문신이 가장 간단한 편이다. 러시아학계에서는 이 세 명을 문신한 타투이스트가 같은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이테 연대측정법의 결과 이 세 유적을 매장한 시기는 거의 비슷하다. 특히 파지릭 2호분의 남성미라 오른쪽 어깨(그림 2-1)에 새겨진 문신 가운데 첫 번째 문신인 우제류(머리없는)와 그리핀이 결합된 그림은 동물의 자세와 구도가 거의 비슷하다.

 

 

얼음공주를 분석한 고병리학자들에 따르면 미라로 제작시 방부처리와 복원하는 부분은 주로 보이는 부분에 집중되었다고 한다.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젊은 전사는 배를 가른 부위를 아주 대충 말총꼬리로 마감했다(그림 3). 이 남성은 아주 큰 모피 코트를 입고 있어서 대부분이 가려져서 이기 때문이다. 물론 남성도 미라로 만들어지고 방부처리를 할 당시에 발삼처리를 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 남성 전사를 보면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얼음공주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미라로 만든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림 1. 베르흐 칼쥔 II 유적의 3호분 남성미라

 

그림 2. 베르흐 칼쥔 II 유적의 3호분 남성미라의 문신

 

 

그림 2-1.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남성미라 오른쪽 어깨 문신

 

그림 3. 베르흐 칼쥔 II 유적의 3호분 남성미라의 복부 기운흔적

 

얼음공주는 옷 밖으로 드러난 머리, 목, 손 부위가 집중 방부처리 대상이 되었고, 가슴도 복원되었다. 반면에 가장 신경을 덜 쓴 부위가 배이다. 얼음공주는 복부를 절단하고 내장과 함께 연골 및 갈비뼈를 제거하고, 가슴과 골반에 식물섬유로 채워넣었다(이 부분은 앞선 포스팅 참고). 하지만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은 식물로 미라를 채우지 않았다.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전사는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어린아이와 유사한 유물이 많았다. 청동거울, 주머니, 칼과 투부, 화살, 목걸이, 모자 등이 그러한데, 필자가 찍은 사진도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전사의 것이지만 필자가 헤깔린 것도 있을 정도이다.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어린아이(왼쪽)와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기마전사(오른쪽). 흐릿한 기억을 되살리면 아크 아라하 1유적의 어린아이는 성인의 무기를 어린아이 사이즈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그림 4에서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기마전사는 모피코트를 입은 모습이지만, 벨트는 무문양이었는데, 호랑이 문양 장식이 그려져 있다. 그림5는 모피코트를 벗고 기마 탄 모습이다.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분무 덤에서 하의는 출토되었지만, 모피만 입고 있었고, 그 안에 상의는 실제로 입고 있지 않았다. 남성의 상의가 발견된 경우는 파지릭 2호분인데 이를 참고로 복원한 것이다. 이 남성의 무덤에서 발견된 남성의 타이즈 끝에 가죽으로 덧댄 것을 참고로 해서 셔츠의 어깨도 복원한 것이다.

 

그림 5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기마전사 복원도

 

참고문헌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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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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