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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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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서부의 키리크-오바 II 유적은 우랄 강변과 가깝고 탁사이-1 유적, 필리포프카 유적과 인접한 곳이다. 모두 우랄 남부에 위치한 유적이다. 키리크-오바 II유적에서 26기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같은 유적 내에서도 무덤 구조가 다르게 만들어진 점은 매우 흥미롭다.

 

15호쿠르간(직경 40m, 높이 1.1m)에서는 매장 주체부를 점토벽(너비 4~5m,높이 0.5m)이 둘러싸고 있다. 점토벽 상단의 북편과 동북편에는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 뼈가 대량 발견되었다. 육각형으로 둘러싸진 점토벽 안에는 연도(무덤의 복도시설)가 있는 목조 구조물이 발견되었는데, 땅을 파지 않은 지상식으로 목조구조물 아래에도 점토로 바닥을 만들었다. 나무로 된 무덤방으로 위쪽에 폭이 10~25cm인 목재가 열을 지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연도의 입구에는 말의 시신이 4구 이상 있었고, 식물로 만든 깔개가 부식된 상태로 발견되어 있다.

 

그림 1. 키리크-오바 II유적의 15호

 

16호 쿠르간에서는 무덤구덩이를 판 것으로 기다린 복도형 입구가 있고 비슷한 구조가 12호 분에서도 발견되었다. 18호 쿠르간은 무덤구덩이를 파고 연도를 설치한 것으로 주인공 외에도 시신 여러 구가 더 발견되었다. 1호묘 주인공(그림 2-2) 피장자 주변에는 접시, 각배, 토르크형 목걸이, 솥 등이 발견되어서 다른 피장자와는 사회적 지위가 달랐을 것이다. 3호묘와 4호묘에는 구덩이를 따로 파고 말 1필과 피장자를 묻었는데, 주인공과 함께 철검을 부장했다.

 

그림 2. 키리크-오바 II유적의 18호와 출토유물, 1-18호 평면도, 2-1호묘의 피장자, 3~10: 1호묘 출토유물

 

그림 3. 키리크-오바 II유적의 18호의 3호묘(상단)와 4호묘(하단), 상단의 3,4, 45-철제품이고, 그 외는 청동제, 하단의 2~4: 철제품, 5: 토제, 그 외는 청동제

 

그림 4. 키리크-오바 II유적의 쿠르간 배치도

 

키리크- 오바 II유적은 일렬로 무덤이 나란히 서 있어서 규칙성이 있어 보이지만 각 쿠르간 마다 무덤의 구조가 다르다. 이웃한 필리포프카 유적에서도 이와 같은 특징이 있었다. 특히 필리포프카 유적의 1호와 13호에서도 매장주체부를 점토벽으로 둘러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었으며 목조구조물이 남아 있었다. 이 유적에서는 매장주체부를 위한 구덩이를 파기는 했으나 깊지 않으며 연도가 있었다. 1호에서는 점토벽으로 둘러싼 중심 매장부와 달리 쿠르간의 동쪽에 깊게 판 수혈에 여성 무덤이 따로 숨겨진 채 남아 있어서 약간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중심매장부를 만드는 방법은 같다.

 

2020.11.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필리포프카 유적] - 남부 우랄 스키타이의 무덤 속...

 

남부 우랄 스키타이의 무덤 속...

남부 우랄의 필리포프카 유적에는 25기의 무덤이 약간은 동에서 서로 무질서하게 배치되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V’자형이지만, 이를 벗어난 무덤도 여러 기 존재하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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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필리포프카 유적의 7호와 8호에서는 점토벽을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고 무덤구덩이의 형태도 달라서 같은 유적에 구조가 다른 쿠르간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20.11.1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필리포프카 유적] - 우랄 남부 스키타이 전통의 그리핀

 

우랄 남부 스키타이 전통의 그리핀

우랄 남부의 필리포프카 유적에는 1호에서 고대 이란의 페르시아 유물인 금제 항아리와 은제 각배 등이 출토되기는 했으나, 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 지역의 유물이었다. 입이 과도하게 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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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크-오바 II유적과 필리포프카 유적의 특징으로 볼 때, 볼가~우랄 강 유역에 있던 스키타이 문화권의 지역문화인 사우로마트-사르마트 문화의 특징일 수 있다. 

 

참고문헌

Пшеничнюк А.Х. 2012 : Филипповка: Некрополь кочевой знати IV века до н.э. на Южном Урале. Уфа: ИИЯЛ УНЦ РАН. 2012. 280 с. (Документы и материалы по истории башкирского народа.)(피세니축 2012, 남부 우랄지역의 기원전 4세기 유목민의 네크로폴리스, 필리포프카 유적)

Гуцалов С.Ю. Погребальные сооружения могильника Кырык–оба II в Западном Казахстане // Российская археология. – Москва: Наука, 2010. – № 2. – С.51–66(굴차로프, 2010, 카자흐스탄 서부의 키리크-오바 II유적 무덤구조)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 탁사이-1 유적의 여성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는 무덤의 구조이다.

 

탁사이-1 유적에는 무덤이 6개 존재하는데 가장 크고 많은 유물이 출토된 6호분은 낮은 곳에 위치한다. 사실 1~5호분과 다른 계곡에 위치해서, 같은 구성원이 아닐 수 있지만, 발굴자들은 같은 유적으로 묶어서 6호분이라고 명명했다(그림 1).

 

탁사이-1 유적의 다른 유적은 6호가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여성의 무덤인 6호는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이다.?!

 

무덤의 중앙구덩이에서도 동쪽벽에 치우쳐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무덤구덩이의 중앙은 비워둔채였다. 그리고 무덤구덩이를 둘러싸고 있는 부분도 열을 아주 많이 받았고 청동이 녹은 흔적이 둘러쌓고 있었다. 일부분만 그런 현상이 발견되었다면 우연?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무덤구덩이를 둘러쌓고 있다는 점에서 우연일 수 없고, 의례행위의 과정중에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덤을 3겹이나 둘러쌓고 있는 붉은색과 황색의 퇴적물도 내용물은 달랐겠지만 그런 행위 중에 한 부분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었을 것이다.

 

그림1. 탁사이-1 유적의 무덤 배치도

 

 

그림 2. 탁사이-1 유적의 6호 평면도

 

탁사이-1 유적의 6호분 여성과 유사한 유물을 많이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 인접한 필리포프카 유적(지도에서 확인가능함)에는 무덤구조는 전혀 다르다. 무덤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3곳이나 있으며 지하통로를 통해서 지하로 들어가도록 된 구조이다. 무덤의 입구는 봉분 위가 아닌 측면이다. 대개 이런 무덤 구조는 한 번 무덤을 만들면 후대에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흑해 지역에서 많이 관찰된다.

알타이 지역에서는 무덤구덩이를 파고 봉분을 만든 후에 따로 입구를 설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도(무덤의 복도)가 있는 무덤구조는 나중에 다시 열 것을 염두해 두었을 가능성이 있거나 혹은 그 전통을 이어받아서 만든 무덤구조일 가능성이 크다.

 

https://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탁사이-1 유적과 거리상으로는 필리포프카 유적보다 멀지만 같은 국경 내에 있는 이식 유적은 무덤구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여러 방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으로 나무 구조물 안에서 십대 남성(황금인간)이 발견되었다. 여러 방이 있었다는 점에서 탁사이-1 유적 6호와는 다르다.

 

그래서 유라시아 초원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지역에서는 알타이와 비교적 인접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무덤을 제외하고는 무덤의 특징들이 일률적이지 않다. 다만 봉분을 높이 쌓는다는 공통점은 있다. 알타이와 흑해처럼 어떤 정형성, 규칙성들이 많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제까지 필자가 소개한 베렐 유적, 실릭티 유적, 이식 유적, 탁사이-1 유적, 타스몰라 유적은 카자흐스탄 국경안에 무덤이지만 각각 다르며, 전체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볼 때 중부지역에 위치한다. [여기서 베렐 유적은 알타이 산의 자락에 위치해서, 알타이 파지리크 문화와 유사하다.]

 

따라서 탁사이-1 유적의 여성은 자신이 살아생전 지녔던 물건 뿐만 아니라 자신이 묻힌 무덤도 아마도 재지적이거나 혹은 어떤 특정 계급의 무덤일 수도 있다. 카자흐스탄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여사제(샤먼)의 신분이었을 수 있다. 특히 무덤 안에 불을 많이 썼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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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투바 공화국에서는 사글리 바쥐 II 유적의 8호 유적에서는 울란곰 유적을 소개하면서 보여드렸던 인간형상물(여성)(그림 1)이 발견되었다. 북쪽벽(39)(그림 2)에서 나왔는데, 어떤 인골의 유물이라고 볼 수 없는 위치이다. 이 유물은 동검의 손잡이 끝장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염소머리와 말 몸통의 외곽선에 붙은 어떻게 보면 작은 공간에 빽빽하게 문양을 채운 유물이 발견된다. 그라치는 카자흐스탄의 타스몰라 유적에서 나온 유물 가운데 비슷한 유물을 ‘수수께끼 같은 동물장식’으로 명명했다. 스키타이 문화권 내에서 투바 지역의 특색이 남아 있는 유물이자, 카자흐스탄과의 관련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1. 사글리 바쥐 II유적 8호의 여성형상(12)

 

2021.05.27 - [스키타이 동물장식] - 수수께끼 같은 동물문양장식

 

수수께끼 같은 동물문양장식

스키타이 문화에서 잘 알려진 동물투쟁문은 두 마리 동물이 서로를 공격하거나 맹수가 약한 동물을 공격하는 장면이다. 대부분 두 마리이지만 여러 마리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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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무덤도 앞에서 보여드린 무덤과 같이 나무로 된 무덤방에 사람들이 한 방향을 보고 누워서 매장된 무덤이다. 7인이 매장되었는데, 아이는 3명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라치의 저서에는 IV호 인골의 성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불분명하지만, 성인은 모두 남성이다.

 

 

그림 2. 사글리 바쥐 II유적 8호 무덤바닥

 

그림 3. 사글리 바쥐 II유적 8호의 무덤 가장 위 평면도(위)와 단면도

 

8호와 9호에는 골제로 된 말 장식이 나왔지만 1호에는 실제 말이 무덤 구덩이에서 출토되었다. 1호에는 2명의 성인남성과 1명의 아이가 함께 매장되었다. 이중에서 II호 인골은 자연적으로 미라화된 것으로 보인다. 무덤의 북쪽에 말 2마리가 매장되었다. 이 무덤은 여러 모로 특이한데, 사글리 바쥐 II유적에서 무덤방을 통나무가 아닌 나무판으로 만든 무덤이며, 말이 매장된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림 4. 사글리 바쥐 II유적 1호 무덤바닥

 

그림 5. 사글리 바쥐 II유적 1호 무덤덮개

 

그림 6. 사글리 바쥐 II유적 1호의 가장 윗면과 무덤구덩이 단면(아래)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을 발견하셨는지 모르겠다.

 

이 유적에서는 이상한 점이 발견되는데, 오늘 보여드린 8호, 1호 뿐만 아니라 13호, 9호에서도 확인된다.

 

바로 단면도 인데, 네모꼴(방형)이 아니다. 네모꼴은 위에서 아래로 정확하게 수직으로 팠을 때 남겨지는 것인데, 이 유적은 입구가 넓거나 바닥이 넓어서 단면에서 확인된 벽선이 수직이 아니다.

2021.05.29 - [시베리아 투바와 몽골의 유적/투바의 유적] - 시베리아 기원전 5세기 무덤

 

시베리아 기원전 5세기 무덤

아르잔-2 유적이 위치한 투바에는 사글리-바쥐, 헴칙-봄 유적을 비롯해서 많은 유적이 발굴되었다. 무덤 수가 1개인 곳부터 20개 이상인 곳 까지 너무 많아서 피곤할 정도이다. 어제 보여드린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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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부장된 1호는 사람과 말이 같은 레벨에 부장되지 않았고 말을 더 높은 단계에서 뭍은 것이다(그림 6)(말이 함께 부장된 파지리크 유적과 아크 알라하-3, 베르흐 칼쥔 II유적 등 알타이의 유적에는 말과 인간은 같은 레벨로 부장되었다).

8호도 무덤구덩이 입구 보다 바닥이 더 넓게 축조된 것이다(그림 3). 8호와 같은 무덤 구덩이 모습은 이 유적의 9호에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기술력이 약했거나, 준비된 통나무가 생각보다 더 커서 우연히 바닥을 좀 더 팠거나) 알타이 추야강 계곡의 여러 유적, 파지리크 유적 등에서는 보이지 않는 현상이다. 투바 지역 무덤 특징 중에 하나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Грач А.Д. Древние кочевники в центре Азии 1980(그라치 1980, 중앙아시아의 고대 유목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미누신스크 분지의 지역에서는 타가르 문화가 기원전 7세기부터 번성했다. 가장 잘 알려진 유적으로 살브이크 쿠르간은 1955년, 1956년 발굴되었는데 이 무덤을 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이라고 부른다. 1955년과 1956년은 내부 조사작업이었고 1954년에 이미 외부의 덮힌 흙을 덜어내고 호석(울타리)를 찾아서 정리했다(그림3).

 

높이 18m의 대형 쿠르간 안에는 무덤구덩이 안에 목조구조물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앞에서 설명한 이 무덤의 구조에 대해서 좀 고치고 부연설명을 해야겠다. 너무 단편적으로 여기저기에 있던 자료여서 정확하지 못했다는 점을 밝혀둔다.

 

 마르살돌로프의 저서에서 무덤구조가 가장 명확하게 나타났다.

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은 동쪽에 입구처럼 보이지만 사실 무덤의 입구는 서쪽에 지하로 나 만들어져 있었다. 봉분의 가장자리에는 호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무구조물이 설치된 무덤방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미로와 같이 연결된 길인데, 통나무로 연결해서 만들었다.

 

 

 

 

그림 1.  마르살돌로프(2010)가 보완한 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의 구조, 1-돌, 2-나무, 3-자작나무껍질(발굴야장과 설명으로 복원함),4-그루터기, 5-화덕자리 흔적, 6-납작한 판돌, 생토층을 20cm로 덮음, 7-지하도로에 남겨진 사람들, 8-석판에 그려진 암각화,9-숫돌, 10-나무망치

 

그렇기 때문에 지난번에 그림 2의 평면도(6)에서 입구를 동쪽이라고 했는데 서쪽이다.

 

그림 2. 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의 외형(1,2) 내부 평면도(6)와 단면도(3,4,5, 7). 3,4,5는 남북방향의 단면도, 7은 동서방향의 단면도, 평면도(6)에서 왼쪽이 서쪽입구이다.

 

이 유적은 이미 18세기때 도굴당했다. 봉분의 서쪽에 도굴을 위한 입구(직경 19m, 깊이 5m)인 구덩이가 있었다. 이 유적을 처음 발굴한 키셀레프와 연구자들은 이곳을 먼저 조사했는데, 매우 큰 청동솥과 소형의 청동칼만 발견되었다. 그곳에서도 스키타이 피장자 중에 한 명이 발견되었는데 주인공의 하인?정도로 생각된다. 벨트에 청동칼과 원추형 장식판이 달려 있었다.

무덤내부에는 인골 외에는 유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중앙 매장주체부에는 7개의 인골이 발견되었는데, 70세 1인과 35~40세 가량의 6인이었다. 세 명의 인골이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는데, 게라시모프는 2인이 형제자매라고 추정했다. 이 무덤은 부족장 혹은 부족 연합 수장의 가족 무덤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봉분 안에는 메인 매장지를 제외하고 2개의 매장지가 남쪽 지하실 입구에서 발견되었는데 남성이 발견되었다. 하인 혹은 무덤을 지키는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무덤의 호석(울타리) 아래에 북동부와 남서부모서리 아래에서는 4명의 사람인골이 발견되었다. 남서쪽에는 성인, 북동부에는 어린아이였다. 이들은 아마도 무덤을 건조하면서 생긴 피해자 혹은 봉양자?희생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1955년과 1956년에 발굴된 살브이크 쿠르간은 확인된 유물은 거의 없지만 무덤을 건조하는데 사용된 기술을 알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받는다. 비슷한 무덤 구조가 나중에 발굴된 카자스흐탄 동부의 세미레치예 유적에서 확인된 바 있다.  

 사실 무덤의 호석 아래에 사람을 묻는 행위는 투바 아르잔-2호에서도 22호묘와 24호묘에서 확인되었다... 

 

 

그림 3.  1954년 봉분 열기 전에 사전작업

 

 

참고문헌

Е.Г. Дэвлет 2019, саяно-алтайская экспедиция(Большой салбыкский курган)// Институт археологии РАН: 100 лет истории. — М.:РАН, 2019(데블레트, 2019, 샨-알타이 탐험대(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 100주년 기념논문집)

Марсадолов Л. С. Большой Салбыкский курган в Хакасии. Абакан, 2010.(마르사돌로프 2010, 하카시아의 볼쇼이 살브익 쿠르간)

Киселёв С. В. Исследование Большого Салбыкского кургана в 1954 и 1955 гг. // «Тезисы докладов на сессии Отд. Исторических наук и Пленуме ИИМК, посвященных итогам археологиче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 1955 г.». M.-Л., 1956.(키셀레프 1956, 1954년과 1955년 볼쇼이 살브이크 쿠르간 연구)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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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여 년 전 시베리아의 투바공화국에는 왕들의 무덤계곡이라고 불리는 아르잔 유적이 있다.그 중에서 아르잔 1호 무덤은 스키타이 문화가 흑해북안에서 기원했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뒤집어 놓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몇 번 설명 드렸지만 동물문양장식 가운데서 몸을 말고 있는 호랑이(혹은 표범)장식이다. 이 유물은 상트페테르부르그에 있는 에르미타주에 소장된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의 동물장식과 비교되면서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이 시베리아도 해당될 수 있다는 근거가 되었다. 아래의 포스팅을 보시면 알 수 있다.

 

2020/05/0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1호분] - 몸을 말고 있는 시베리아의 호랑이

 

몸을 말고 있는 시베리아의 호랑이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발굴된 무덤은 대부분 인간과 말이 함께 매장되었고 이를 일컬어 파지릭문화라고 한다. 파지릭문화는 스키타이문화의 지역적 명칭인데, 엄밀하게 학문적으로 이야기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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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1호분] - 시베리아 3000년 전 무덤 속의 말 무덤과 호랑이 장식

 

시베리아 3000년 전 무덤 속의 말 무덤과 호랑이 장식

시베리아의 투바에는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가장 오래된 무덤이 있는데 대략 2800~2900년 전 쯤인데, 필자는 말하기 좋게 3000년 전이라고 할 것이다. (러시아는 연방국가이고, 소수민족들이 중심이 되는 공화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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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잔 1호에서 출토된 유물은 무덤방 2번에서 출토되었고, 이곳에는 말 30마리가 각종 마구 및 말 장식과 함께 출토되었다.

 

필자가 어제 포스팅에서 말과 사람이 매장된 곳을 잘 못 소개한 곳이 있는데, 26a와 26b이다. 사람이 묻힌 곳은 정확하게 9번, 13번, 31번이다. 모두 나무방 안에 통나무관이 확인된다.

 

 

 

그림 1. 아르잔 1호의 무덤 속

 

9번 방(8×3.5m)은 중심 무덤방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데, 13번(7.5×5.5), 31번(?)에 비해서 월등하게 작은 공간이어서 말이 함께 매장될 수 없었을 것이다. 혹은 13번과 31번 방에 묻힌 사람들과 비교해서 계급 등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유적에서 유일하게 사람만 들어간 곳이기도 하다. 13번과 31번 방에는 통나무 관 2개씩 들어가 있어 2인의 합장묘이다. 중심 무덤방 10인을 포함해서 총 15인이 아르잔-1호에는 들어가 있었다.

 

말이 매장된 곳은 중심매장부를 제외하고 15개의 방이다(13번, 31번 포함). 말만 매장된 곳은 13개의 방이다. 그리고 나머지 방(53개)은 빈방이다.

 

무덤의 평면구조를 살펴보면 동쪽방향의 무덤방과 북과 남쪽의 무덤방 형태가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동쪽으로는 2~7번 무덤방은 네모꼴(비교적 가까운)이고, 북쪽(8~10번, 29~37번)과 남쪽 방향(13~21번)은 중심 무덤방과 가까운 쪽은 사다리꼴이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네모꼴 무덤방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남쪽의 무덤방은 명확하지 않다.

 

중심 무덤방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가는 무덤은 북쪽에서 가장 잘 알 수 있다. 8번과 9번 방은 사다리꼴 모양이지만 이 무덤을 최종적으로 원형으로 만들기 위해서 중심부 방에서 모서리에 위치한 10번 방을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10번 덕분에 36, 37번이 만들어졌고, 51~53번 방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51 번 방 옆 공간은 왜 나무가 없을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8번, 9번, 29~34번 섹션과 동시에 만들어서 빈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계산착오와 나무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양 쪽 공간을 동시에 만들었고, 이미 거의 축조된 상태에서 서로 아귀는 맞지 않고, 다시 허물수도 없고, 나무는 이미 수천개를 써서 부족했다면 그냥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전체 무덤방을 계속 관찰하다보면 짜투리 공간에 나무를 덧대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또 흥미로운 공간은 31번 방과 34번 방 사이에 위치한 33번과 49번 방이다. 31번방의 서쪽 벽이 29번 방에서 계속 뻗어진 대로 나무를 연결했다면 이 방도 사다리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29번의 방의 서쪽벽에서 뻗은 나무와 다른 방향으로 틀면서 31번 방은 네모꼴이 되었고, 48번 방의 방향도 정해졌다. 34번 방은 사다리꼴로 유지되고, 50번과 50a번 방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31번방과 34번 방 사이 공간에 49번방을 넣어서 49a번방이 만들어졌다. 이 방은 48번과 50번 방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33번의 북벽은 49번방의 남벽이 되는 역할이 된다.

 

큰 원형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서 길다란 막대기로 엄청나게 계산을 했을 꺼라고 생각이 되지만, 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아무것도 없는 방이 53개나 된다는 점이다.

 

 만든이는 어떤 심정이었으며, 묻힌이는 어떤 사람일까? 

답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마 많은 분들은 이런 무덤구조에 대한 글은 재미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화를 속속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그랴즈노프가 쓴 글은 참고로 했으나,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서 필자가 관찰한 부분을 덧 붙인 것이다. 사실 이 모든 포스팅이 그렇지만, 무덤의 구조는 더 그렇다.

 

참고문헌

그랴즈노프 1980, М.П. Грязнов,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그랴즈노프 1980, 초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 아르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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