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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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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3. 2.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 알타이에서는 사용된 동물문양장식은 다양하다. 몸을 말고 있던 호랑이의 자세 변화는 기원전 7세기 시베리아 부터 확인되지만 다른 동물의 요소가 합성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호랑이의 변화는 아니지만 합성동물이라는 점에서 독수리 머리에 호랑이 귀가 달리기 시작한 것은 이 시점 이다.

 

호랑이의 적극적인? 합성은 기원전 6세기부터 발견된다. 독수리 부리와 날개를 단 호랑이가 대표적이다. 변형되지 않은 호랑이, 사슴뿔 달린 호랑이 같은 유적에서 발견된다.

그림 1. 바샤다르 유적의 그리핀

 

 

하지만 기원전 5세기가 되면 변형동물은 더 적극적으로 된다. 특히 독수리 부리와 날개를 단 호랑이에게 화려한 사슴 뿔을 달게 만들었고, 그 끝에는 새 머리가 달려 있다. 또 몸통은 호랑이가 아닌 말이다. 파지리크 유적이나 아크 알라하 3유적,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문신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림 2. 문신 속의 그리핀

 

그림 3. 파지리크 유적의 말 가면

 

그림 4. 파지리크 유적의 말 복원도

 

그림 5. 아크 알라하 3유적의 그리핀

 

파지리크 유적에서는 말에게 씌운 말 가면이 발견되는데 사슴뿔이다. 아마도 말에게 사슴뿔을 씌워서  살아 있는 그리핀(그림 3, 4)처럼 보이도록 꾸몄을 것이다. 스키타이 세계에서 맹금, 맹수, 굽동물을 모두 합성시킨 예는 알타이 뿐이다. 

 

 

바샤다르 유적에서 발견된 그리핀(독수리머리+호랑이머리)의 머리(그림 5)만 이용한 굴레장식은  아크 알라하 3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사용되었다. 파지리크 유적의 마구 장식에도 일부 이용된 것은 있지만 그림 1의 머리를 가장 많이 이용한 것은 아크 알라하 3유적이다.

문신을 한 미라가 남아 있는 유적 중에서 파지리크 유적에서는 그리핀(독수리부리+호랑이머러) 보다는 산양, 사슴 등의 마구 장식을 많이 이용했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0. 13. 09:13 스키타이 동물장식

 

파지리크 유적 2호와 5호에는 말을 사슴처럼 보이도록 하는 꾸미개인 말 머리 장식이 발견된다. 유물마다 차이가 있지만 말의 머리에 씌워서 사슴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다.

같은 유적의 2호 남녀의 미라에게도 말형 그리핀 문신이 새겨져 있다. 머리까지 독수리 머리를 달아서 변형이 극대화 되도록 했다. 이들 말형 그리핀에게는 모두 사슴뿔이 장식되어 있고 그 끝에는 새머리를 달았다. 실제의 사슴뿔은 나뭇가지처럼 뻗은 모양이지만, 시베리아 청동기시대부터 사슴돌에 새겨진 사슴은 뿔이 2개의 가지를 뻗은 모습이다. 말형 그리핀도 기본적으로 2개의 뿔이다.

파지리크 유적 2호의 요란한 남성모자장식도 사슴뿔을 베이스로 한 모양이다.

 

파지리크 유적 5호의 벽에 걸어둔 캐노피 장식에는 인간이 사슴처럼 보이도록 둔갑한 문양도 발견된다.

투엑타 유적에서는 심지어 호랑이가 사슴뿔을 달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표트르 1세의 황금유물 컬렉션에서 동물투쟁문의 동물은 대부분 사슴과 관련이 없지만 문신속의 말형 그리핀과 같이 머리에 뿔을 달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동물 말, 호랑이의 머리 상단 심지어 사람의 머리에도 사슴뿔이 장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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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에 대한 숭배이다.

 

파지리크 유적 5호 여성 목걸이(그림 2)에는 그리핀 장식이 달려 있는데, 사자 머리라고 생각되어서 페르시아 계통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른데, 눈이 강하게 표현되어서 그렇지 뿔을 달고 있는 호랑이일 가능성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동물의 발톱은 알타이 맹수들에게서 늘 발견된다. 이미 투엑타 유적에서도 뿔 달린 호랑이가 출토되고(그림 1), 호랑이형 그리핀도 있었다. 어짜피 100% 같은 유물은 존재하지 않으니 좀 더 가까운 유물과 관련성을 살피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이 여성과 같은 형식의 목걸이를 착용한 아크 알라하-3유적의 여성도 맹수형 그리핀(그림 3)을 착용했다. 알타이에서 유행 혹은 사용된 동물장식일 것이다.

(그렇다고 알타이 스키타이문화에서 페르시아 혹은 이란계통의 문양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림1. 기원전 6세기 알타이 투엑타 유적의 사슴뿔 달린 호랑이, 가죽

 

그림2. 기원전 5세기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5호 여성목걸이

 

그림 3. 기원전 5세기 아크 알라하-3 유적 여성 목걸이 장식

 

 

스키타이 문화에서 문양으로 사용된 굽동물의 대부분은 가축화 되었으나 사슴은 유일하게 현재에도 야생이다. 사슴 중에서 아주 추운곳인 툰드라에 사는 순록(소목 사슴과)은 기원후 15세기 이후에 유목되었는데, 이들을 기르는 민족은 축치, 코략, 추반치, 에벤키 라고 불리는 사람이고, 순록유목으로 먹고 산다. 19세기에 러시아인이 이곳을 차지하기 전까지 대부분 순록을 길러서 생업을 유지했다(김재윤 2010).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0. 12. 09:12 스키타이 동물장식

시베리아 미라의 문신에 남아 있는 ‘새 머리+사슴 뿔처럼 처리된 말 갈귀+사슴몸통+말 꼬리’로 조합된 동물을 사슴형 그리핀(그림 1-5,6)이라고 지칭했다. 이들은 파지리크 유적 5호분을 제외하고는 해발 1500m이상의 미라에서 모두 발견된다. 또 파지리크 유적에서는 말에게 사슴뿔이 달린 가면을 씌워서 그리핀처럼 보이도록 처리했다고 적은 바 있다.

 

사실 ‘사슴형 그리핀’은 몸통의 주인공이 부정확해서 약간 불분명했으나, 사슴문양이 청동기시대부터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이를 집중한 것이다.

 

그런데 의문점이 남아 있었다. 같은 유적에서 나온 가면을 쓴 말은 그럼 사슴형 그리핀이라고 할 것인가? 사실 그는 말이고, 사슴처럼 보이도록 꾸민 것이다. 같은 개념 속에서 만들어졌다면 문신도 말의 몸통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그리핀은 하늘을 나는 맹금류와 육상 동물을 결합시켰다는 점에서 날개표현이 중요하다. 이 개념이 그대로 이용된 유물은 파지리크 유적 보다 이른 기원전 6세기 투엑타 유적(그림 1-1)이다. 투엑타 유적에서는 얼굴이 호랑이 얼굴을 그대로 간직한 그리핀(그림 1-1)과 얼굴도 독수리 등 맹금 얼굴로 바뀐 그리핀(그림 1-2)도 있다.

 

그림 1. 투엑타 유적과 파지리크 유적의 그리핀

 

그런데 말을 변형 시킨 그리핀은 날개가 달리지  않았는데, 이는 이동성이 강한 말이 새와 같다고 생각했기일 수 있다. 더욱이 문신(그림 2-4)과 함께 유적에서는 말을 꾸민 동물이 나오기에 말을 그리핀화 시켰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

 

그래서 앞서 말한 사슴형 그리핀은 ‘말을 기본으로 한 말형 그리핀’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말의 몸통에 머리를 교체하고 사슴뿔을 달았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기원전 5세기 파지리크 유적의 미라(5호 남성)에게서 보이는 호랑이도 어깨에 날개가 약간 남아 있는데, 기원전 6세기 투엑타 유적에서 나온 호랑이 그리핀이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3 유적,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미라에게서 발견되는 말형 그리핀의 요소도 이미 투엑타 유적에서 발견되었다(그림 2). 그렇다고 사슴의 의미가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그림 2. 파지리크 유적의 말형 그리핀의 각 요소

그림 3. 투엑타 유적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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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0. 10. 09:22 스키타이 동물장식

 

시베리아의 파지리크 문화(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알타이 지역문화)는 해발 1500m이상의 알타이에 있는 무덤에서 나온 문화로서 여러 변형된 동물장식이 많이 나온다. 그 중에서 미라의 몸에 새겨진 동물장식은 매우 특징적이다. 사슴몸통(다리포함)+새부리+변형사슴뿔+새 머리+말 꼬리가 변형된 것으로 사슴형 그리핀이라고 하자. 파지리크 2호의 남녀, 아크알라하-3 유적의 여성,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남성에게 남아 있다. 파지리크 2호 남성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매우 많다.

 

사슴형 그리핀은 함께 부장된 말을 사슴처럼 보이게도 꾸민 것(사슴뿔이 달린 말의 얼굴마스크 등)은 사슴에 대한 대단한 숭배? 혹은 집착? 하여간 무엇인가가 있었다고 보이는데, 알 수는 없다. 

 기원전 5세기 유적에서  발견되었지만 기원전 6세기 투엑타 유적에서도 말을 다른 동물처럼 보이도록 하는 장치가 발견되었다. 말에게 달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들어진 산염소 뿔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림 1. 기원전 6세기 투엑타 유적의 1호 목제 산염소 뿔

 

뿐만 아니라 투엑타 유적 2호분에는 통나무관 에 붙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슴 장식이 발견된다(그림 2). 가죽을 잘라서 만들 것(가죽 아플리케 장식)이다. 사슴 몸통의 내부가 나선으로 채워졌다. 이 사슴은 다리를 펴고 있고 있어서 큰 변형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슴뿔이 몸통을 따라 뒤로 가지런하게 정리된 모습은 원래의 사슴뿔이 나뭇가지처럼 사방으로 뻗어지는 모습과는 다르다. 뿐만 아니라 투엑타 유적의 말 굴레장식으로 사용된 목제 조각에서도 변형된 사슴 모습이 보인다. 사슴 머리에 나뭇잎을 장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그림 3)이다.

 

그림 2. 기원전 6세기 투엑타 유적 2호의 통나무 관 장식

 

 

그림 3. 기원전 6세기 투엑타 유적의 굴레장식

 

그럼 더 이른 시기의 유적은 없을까?

기원전 7세기 아르잔-2호에서도 발견된다. 아르잔-2호의 5호묘 남녀 주인공의 모자장식에 이용되었다. 다리를 펴고 머리를 들고 있는 사슴 모습이다. 두 남녀의 목걸이에도 동물장식이 있지만 사슴장식은 모자 장식에서만 이용되었다. 모자 장식으로 이용된 사슴도 뿔이 뒤로 가지런하게 정리된 모습이다. 특히 아르잔-2호 주인공 남성 모자장식에는 등에 V자로 된 혹이 있는데, 이 유적의 바닥에서 발견된 돌에 그려진 암각화에도 같은 문양이 그려져 있다. 주인공 남성의 모자장식으로 이용될 만큼 사슴에 대한 그 어떤 생각은 혹은 상징은 대단했을 것이다.

 

 

그림 4. 기원전 7세기 아르잔-2호 5호묘 남성 모자장식

 

그림 5. 기원전 7세기 아르잔-2호 5호묘 여성 모자장식

 

그림 6. 기원전 7세기 아르잔-2호 돌판 위의 암각화

 

같은 사슴장식은 기원전 9세기 아르잔-1호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유적은 대단히 큰 나무로 된 무덤 유적이지만 출토된 유물은 많지 않아서 아쉽다. 그런데 유적의 바닥에서 나온 사슴돌에는 다리를 곧 세우고 등에 혹이 있는 사슴문양(그림 6)이 새겨져 있다.

 

그림 7. 기원전 9세기 아르잔-1호 사슴돌

 

아르잔-1호와 아르잔-2호가 무덤구조 및 유물 등이 많이 달라서 다른 전통기반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슴장식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슴돌에서부터 내려오는 곧 추선 사슴장식은 기원전 6세기(혹은 5세기) 까지 이어지고 그리고 그 변형문양이 시작된 것도 기원전 6세기, 극대화된 시점은 기원전 5세기 해발 1500m이상의 유적에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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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추야 강변의 스키타이 문화와 관련된 수 많은 유적 가운데 말 7마리가 매장된 유적이 있는데 보르탈 1 유적이다.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3 유적과 같이 많은 수?의 말이 매장되었다. 울란드리크, 유스티드, 바르부르가지 유적 등에서는 1~2마리가 매장되었고, 말이 매장되지 않는 무덤(석관묘)도 많다.

 

보르탈 1 유적에는 백기 이상의 무덤이 확인되었는데, 크기는 다양하고 그중에서 6기가 스키타이 시대 무덤으로 확인되었다. 1974년과 1975년에 발굴했다.

 

그림 1. 보르탈-1 유적의 무덤 배치도

 

백 기 이상의 무덤 가운데 가장 큰 무덤은 7호이며, 직경 32×30m 정도이고 높이는 0.5~1m가량으로 넓고 편평한 보기 드분 형태이다.

 

7호 무덤에는 무덤의 북벽과 서벽에 말이 7마리 무덤구덩이에 매장되었다.

역시 통나무를 이용해서 무덤시설(5,7×4.7m, 깊이 5m)을 만들었고 바닥에도 통나무를 깔았다. 특이한 점은 무덤방의 바닥에서 청동못이 발견되었다. 그 중에서 3점은 못의 두께가 12×12mm로 매우 두껍지만 부러진 채 발견되었다. 그 외에도 8개 이상의 청동못이 발견되었다. 이와 같은 청동못은 바샤다르 유적에서 발견되었는데, 통나무관에 사용된 것이다. 보르탈-1 유적 7호에서 통나무관은 이미 없어졌지만 원래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덤은 남성의 무덤으로 오른쪽으로 눕고 다리를 굽은 채 확인되었다.

 

 

그림 2. 보르탈-1 유적의 7호분

 

그림 3. 보르탈-1 유적의 7호분 출토유물

 

유적을 발굴한 쿠바레프는 이 유적은 발르익-소오크 1 유적보다 약 100년 정도 늦은 바샤다르 유적곽 같은 시기의 유적으로 보았다. 그 이유는 화살촉(그림 2-2) 때문이다. 앞서서 이야기 했지만 쿠바레프는 화살촉의 형태로 유적의 편년했다.

 

보르탈-1 유적은 정확한 지점은 아직 못 찾았는데, 아크시 마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며, 발르익-소오크 1 유적과 바르부르가지 1 유적 중간 지점 쯤에 위치한다. 발르익-소오크 1 유적보다 100년 정도 늦으며, 유적을 만든 고도가 높아지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보르탈-1 유적의 7호분은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3 유적등과 같이 말이 여러 마리 들어가는 점은 같지만 무덤의 북벽에만 말을 매장하는 방법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에 통나무관을 쓰는 드문 무덤이다. 통나무관은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 3유적,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분, 바샤다르, 투엑타 유적 등 미라 처리된 시신에 사용되었는데 성인의 무덤이다. 반면에 유스티드 유적 등에서 몇몇 무덤에서는 미라 처리되지 곳에 통나무관을 쓰는 경우는 어린아이가 매장되었는데, 이 유적에서는 성인 남성의 무덤에 통나무관이 쓰는 경우가 확인된 것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2007 :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2007. 282 с.(쿠바레프, 슐가, 2007, 추야 강과 우르술 강의 파지리크 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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