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에서는 같은 무덤 구덩이에 무덤방과 말을 부장하는 전통이 있다. 2600년 전 부터 시작된 문화가 사라지는 현상은 울란드리크 강의 계곡 유적에서 확인된다. (스키타이 문화의 시작은 아르잔-1호 부터이지만, 무덤구덩이에 말과 무덤방을 만들어 부장되는 현상은 알타이의 파지릭 문화에서 시작된다.)

 

울란드리크 I유적에서도 말이 있는 무덤과 말이 없는 무덤이 구분되지만, 울란드리크 II(2,4,7,8호)유적, 울란드리크 IV유적(1호), 울란드리크 V유적(2호), 타샨타 I유적(2호), 타샨타 III유적(7호)에서도 말이 없는 무덤이 있다.

 

그림 1. 울란드리크 II유적의 유적평면도, 2,4,7,8호의 무덤에는 말이 없다.

 

 

그림 2. 울란드리크 II유적의 8호

 

그림 3. 타샨타 I유적과 II 유적의 평면도

 

 

그림 3. 타샨타 I유적의 2호

 

울란드리크 II유적의 8호와 타샨타 I유적 2호는 통나무관에 묻은 어린아이 무덤이다. 유스티드XII유적에서도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어린아이 무덤에는 상대적으로 말이 부장되는 경우가 적었다.

 

울란디르크 강 유역의 유적 가운데 가장 늦인 시기은 유적은 기원전 2세기의 무덤이라고 했다. 그런데 말 없는 무덤이 모두 기원전 2세기의 유적은 아니다. 이 시기의 무덤에도 말이 있는 무덤이 있다. 예를 들면 울란디르크 I유적의 가장 마지막에 있던 13~15호 무덤이다.

말 없는 현상은 기원전 3세기부터 시작된다. 울란디르크 I유적의 3호, 울란디르크 II유적의 8호, 울란디르크 IV유적의 1호는 기원전 3세기 가량의 유적이지만 말은 부장되지 않았다.

 

2600~2500년 전 대형 무덤에서 미라와 함께 수 마리의 말을 부장하던 관습이 2400년 전이 되면서 한 무덤에 들어가는 말의 수가 줄고, 말이 들어간 무덤이 늘어간다. 말의 두수 뿐만 아니라 무덤방에도 변화가 있다. 울란디르크 뿐만 아니라 유스티드 계곡의 무덤방 바닥에는 유물이 놓인 공간에 나무를 1~2개 정도 빼고 만들었다.

 한켠에 나무바닥이 빠진 무덤방, 최대 2~3마리의 말,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유물의 부장은 2500년 전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얼리어덥터 전사 유적에서부터 확인되는 현상이다.  미라만 빼면 유스티드 계곡의 유적이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무덤과 매우 유사하다. 울란디르크 유적은 무덤방 결구하는 방법이 약간 다른 무덤의 비율이 많아졌다.

 그런데 이걸 칼자르듯이 딱 구분하기도 애매하다. 아마도 그런 유적은 따로 있을 듯 하다.

그러고 보면 미라현상은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까지였던 것 같다. 물론 현재의 자료로 판단한 것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유스티드 계곡의 유적은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 유스티드 XII유적의 21호에서는 출토된 여성의 이마를 장식하던 모자장식으로 두 동물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중앙에 돌출된 동물문양이 장식된 것은 유스티드 XII유적(21호, 8호, 19호)에서만 출토된다.

2020/10/0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유스티드 XII 고분] - 알타이 스키타이의 성인여성?무덤

 

알타이 스키타이의 성인여성?무덤

알타이의 유스티드 XII 유적에서 26기의 무덤 가운데 아이의 무덤이 10기이다. 어른과 함께 매장된 경우(4호, 8호)를 제외한 것이다. 그 중에서 아이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21호를 소개하고자 한다. 2

eastsearoad.tistory.com

 

유스티드 XII유적을 제외하고 10기의 무덤이 발견되고 대부분이 발굴된 유스티드 I유적에서는 이와 같은 유물은 없다. 이 유적 전체에서 목제 모자장식은 3호의 아이 머리 위에서만 출토되었다(그림 4). 2호에서는 가죽으로 된 모자장식이 출토되었다(그림 3-17). 그 외는 3호 여성(그림 3)과 6호 남성무덤의 2인(그림 8), 10호 남성 2인의 머리 상단에서 금박장식(그림 11)이 출토되었다는 표식만 있다.

3호에서는 목제사슴장식과 청동으로 된 그리핀(그림 4-4, 5,6)이 있다. 금박을 씌운 것이다. 그 중 1점은 청동거울의 표면을 장식했던 것이지만 거울과는 떨어져서 출토되었다(그림 2).

 

 

그림 1. 유스티드 I유적, 1호분의 평면도와 출토유물, a-돌, b-토기편, 1-문양이 남아 있는 목제편, 2-골제 덮개편

 

 

그림 2. 유스티드 I유적의 2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a-검은색 물감의 범위, b-금박편, c- 돌

1,2-토기편, 3-복합궁, 4-활의 끝편, 5-산양화된 사슴, 환상의 동물, 6,7-목걸이, 8-검집, 9-알 수 없는 유물, 목제품, 10,11-거울, 12-골제 귀걸이 편, 13-멧돼지 송곳니 이미테이션, 14, 펜던트, 15-자작나무껍질, 16-나무 막대기, 17-모자장식의 상단부, 1,2-토제품, 3-9,13,16-목제품, 10-12: 청동, 14-뼈, 15-자작나무껍질, 17-뼈

 

 

그림 3. 2. 유스티드 I유적의 2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그림 2의 번호와 일치, 유스티드 I유적에서도 유스트디 XII유적에 없던 유물이 출토되기도 하는데, 말려 있는 자작나무 껍질과 막대기이다(그림 3-15, 16).

 

 

그림 4. 유스티드 I유적의 3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a-돌, b-금박편, 1,2-토기, 3-목제 사슴의 상부편, 4~6-그리핀이 표현된 납작한 판, 7-거울편, 8-모형화 된 검, 9-검집, 10-거울, 11-검을 달기 위한 가죽끈 조각, 12-단추, 13- 칼, 1,2: 토제, 3,9,12-목제, 4~6: 청동과 금박, 7,8,10-청동, 11-가죽, 13-철제품

그림 5. 유스티드 I유적의 3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그림 3과 번호 일치

 

그림 5. 유스티드 I유적의 3호분 출토유물, 그림 4와 번호 일치

 

 

그림 6. 유스티드 유스티드 I유적의 4호분 평면도와 단면도, a-돌, b-무덤구덩이를 파고 다시 덮은 흙, c-무덤구덩이를 채운 흙, d-무덤구덩의 범위와 내부의 무덤방 위치, e-생토(인간이 손대지 않은 층)

 

그림7. 유스티드 I유적의 4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a-검은색 물감의 범위, b-금박편, 1,2-토기, 3-청동거울, 4-청동제버클장식, 5-목걸이(管모양)의 연결장치, 청동편, 6-철제 검의 부분, 7-골제 칼, 8-철제 검

 

그림 8. 유스티드 I유적의 6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a-돌, b-금박편, c-숯 조각, 1-토기, 2-칼, 3, 9,10-검, 4,8-거울, 5~7:전투용 도끼, 11, 12-돌 베개, 1-토기, 2-철제품, 3~10: 청동제품

 

그림 9. 유스티드 I유적의 6호분 출토유물, 그림 7과 번호 일치

 

그림 10. 유스티드 I유적의 7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a-돌, b-숯, 1-목제 쟁반, 2-토제 항아리, 3-목제 칼(철제품의 이미테이션), 4,5-구슬, 6-청동단추, 7-펜던트

 

그림 11. 유스티드 I유적의 10호분 평면도와 출토유물, 1-재갈, 2-버클장식, 3,4-원판형 장식, 5-전투용 도끼와 자루, 6-원판형 장식, 7-검, 8-칼, 9,10-칼, 11,12-항아리, 13-금박, 14-검은색 물감의 범위, 철제품(1,9), 뿔제품(2~4), 청동+목제(5), 목제(6), 청동(7,10), 토제품(11,12)

 

그림 12. 유스티드 I유적의 10호분의 출토유물, 그림 10과 번호 일치

 

유스티드 I유적과 유스티드 XII유적을 비교해보면 동물문양장식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특히 유스티드 XII유적에서는 모자에 달던 동물문양장식으로 산양화된 사슴, 말, 사슴장식등이 남녀의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그러나 이 유적에서 모자에 달던 목제 동물문양장식은 3호의 아이에게서만 출토되었다. 뿐만 아니라 활이 존재한 무덤도 2호 뿐이다.  무엇보다 이 유적에는 말이 있는 무덤은 10호 뿐이다. 대부분 말 없이 매장한 유적이다.

 

그 외에 유스티드 I유적에서만 출토된 유물도 있다. 2호에서 출토된 자작나무 껍데기와 막대기, 6호에서 출토된 돌 베개(그림 8-11, 12), 7호의 목제 칼(그림 9-3)과 상감된 구슬(그림 9-4,5)이다.

돌 베개는 평면도의 그림과 쿠바레프의 설명으로 보아서 파지릭 2호분과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목침과 비슷한 형태이다. 목제의 이미테이션인가 싶기도 하다.

2020/03/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2호분] - 2500년 전 알타이 산 파지릭 무덤방 안, 관의 내부사정

 

2500년 전 알타이 산 파지릭 무덤방 안, 관의 내부사정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의 파지릭 계곡의 무덤에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묻혔다. 남성과 여성 모두 미라 처리되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발굴당시에 루덴코가 본 것은 이미 산산히 조각난

eastsearoad.tistory.com

 

 

쿠바레프는 이러한 유적 간의 차이를 시간차이로 보았다. 유스티드 I유적은 유스티드 XII유적 보다 늦은 기원전 3세기로 보았다. (그러나 약간 조정이 필요하다.)

말이 무덤 안에서 사라진 것은 스키타이 문화의 마지막 시기여서 그럴 수도 있고, 어쩌면 사회적인 큰 변화가 있었을 수도 있다.

스키타이 문화 이후에는 다시 무덤 속에서 말이 확인되기 때문에 이 유적만의 특수한 현상일 수도 있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유스티드 계곡의 스키타이 문화사람들이 묻힌 장소인 유스티드 XII 유적에는 인간도 2명 이상 매장되지만 말도 2필 이상 매장되는 경우가 있다. 3호, 10호, 13호, 16호, 23호, 25호이다. 그 중에서 사람은 1인이 부장되었으나 말 2필 이상인 경우는 3호, 10호, 13호, 25호이다. 16호와 23호에는 사람도 1명 이상이다.

 

그렇다면 사람 1명과 말 2마리가 부장된 무덤의 주인공은 유물도 많았을까?

10호와 13호는 인간의 뼈가 흐틀어진 채 발견되어서 후대에 무덤이 열렸을 가능성도 있어서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림 1. 유스티드 XII유적의 3호 무덤, 1-재갈, 2-4: 금박으로 만든 유물, 5-거울, 6-말사슴 송곳니, 7-원판모양의 단추, 8-거울편,9-칼과 검 모형, 10-소형화 된 전투용 도끼, 11-전투용 도끼 연결을 위한 가죽띠, 12-달모양 장식판, 13-화살, 14, 15-칼, 16, 17-쟁반, 18-검은색 물감의 흔적, 19-검게 물들인 가죽 주머니, 20-항아리; 철제(1), 금박(2-4), 청동(5,8,14,15), 뼈와 뿔(6,13), 청동+나무+가죽(9,10,11), 가죽(11), 나무(7,12)

 

그림 2. 유스티드 XII유적의 3호 무덤, 유물의 번호는 그림1과 일치

 

그림 3. 유스티드 XII유적의 10호 무덤, 1,2-재갈, 3-거울과 주머니, 4-말사슴 송곳니, 5-칼 편, 6-직조물 조각, 7,8-항아리 2점, 9-굴레장식, 10-금박장식, 11-낙엽수 껍질, 철제(1,2,5); 청동(3), 뼈(4), 실크(6), 토제(7,8)

 

 

그림 4. 유스티드 XII유적의 10호 무덤, 유물의 번호는 그림3과 일치

13호는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5. 유스티드 XII유적의 25호 무덤, 1,2-재갈+재갈멈치, 3,4-굴레장식, 5,6-사다리꼴 장식판(안장의 부속품), 7-항아리, 8-잔의 손잡이, 9-칼, 10-손잡이가 끼워진 도끼, 11-활, 12-사슴머리장식, 13-말의 장식, 14-새장식, 15-동물장식의 편, 16-황금 장식판, 17,18: 목걸이 끝장식, 19,20: 황금제 목걸이 끝장식, 21-목걸이 장식편, 22-반구형 장식판, 23-이빨모양 장식판, 24-거울, 25-거울주머니 장식아플리케, 26-허리끈 장식, 27-30: 아플리케 장식(옷), 31: 쟁반편. 철제(1,2,9,10), 목제(3,4,8,11-15, 17,18,21,26,27, 31), 뿔(5,6), 토기(7), 황금판(16,19,20,23), 청동+철+황금판(22), 청동(24), 가죽(25,28-30)

 

그림6. 유스티드 XII유적의 25호 무덤, 유물의 번호는 그림5과 일치

 

그림7. 유스티드 XII유적의 25호 무덤, 유물의 번호는 그림6과 일치

 

 

3호(구덩이 크기 225×323cm, 나무방 175×125cm)와 25호(구덩이 크기 240×329cm, 나무방182×105cm)는 모두 인간 1명과 말 2필이 매장된 무덤이다. 3호는 여성, 25호는 남성의 무덤이다.

3호에는 도끼, 화살, 칼 등 3종 스키타이 무기가 있으나, 도끼와 칼은 소형화된 이미테이션이다. 3호는 인골은 부장된 상태 그대로 였으나, 무기(그림 1-9,10,11,13)와 청동거울(그림 1-8)의 위치가 거울과 무기는 대부분 다리뼈 혹은 골반 주위에서 출토되는데 여느 무덤과는 다르다. 거울은 깨진 채로 출토된 적이 거의 없는 점도 다르다. 게다가 머리 위에서 확인된 금박유물은 모자장식이었는데 그 부분도 의심스럽다. 10호와 13호는 인골의 위치가 비정상적이라는 점에서 언제 인지는 정확치 않지만 도굴되었을 수 있다.

 

 

앞서 살펴본 19호무덤에는 인간1명과 말 1필이 매장된 무덤으로 25호(인간 1명, 말 2마리)와 무덤구조가 거의 유사하다. 무덤 간의 차이는 있지만 부장품의 양이나 질이 확연하게 차이가 있지는 않아 보인다. 19호에 있는 여러 장식(그리핀 포함)은 여성의 의복이나 머리장식과 관련되었을 것이다. 25호에서는 맹수장식은 남성용 목걸이 장식이며 실제 크기의 투부(전투용도끼)와 화살도 남성의 것이다.

그래서 인간 1명에 말 2필이 들어간 무덤과 말 1필 무덤의 부장품의 차이는 여성용과 남성용 정도로 생각된다. 그러나 남성무덤에만 말 2필이 들어간다고 할 수 없는 것은 3호의 여성무덤에도 말 2필이 부장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유스티드 계곡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가운데 유스티드 XII유적에는 26기의 무덤이 남북방향으로 일렬로 줄을 서서 만들어졌다. 이 계곡의 무덤은 남북방향으로 일렬로 무덤을 만드는 특징이 있는데, 그 수는 유적 마다 차이가 있다. 남북방향으로 일렬로 서 있는 무덤은 대부분 강의 흐름과는 직교한다. 유스티드 강은 동서방향으로 흐른다. 그리고 이 유적에서 인간과 말의 두향은 모두 동쪽을 향한다.

 

유스티드 계곡의 19호 무덤은 여성의 무덤이었다.

 

그럼 남성의 무덤은 어떨까? 19호와 가깝고 남성의 무덤이면서 혼자 묻히고, 나무방이 설치된 무덤은 18호 및 13호, 15호이다. 14호와 16호는 부장된 인간의 수가 다르고, 17호는 무덤방의 설치재료가 다르다.

 

18호는 무덤구덩이(260×196cm)아래에 말 1필과 인간이 매장되었다. 무덤방의 크기는 166×94cm(통나무의 가장자리 길이 제외)이다. 그런데 바닥에 깔린 나무판 4개의 길이는 125cm로 인데 이 곳에 사람이 매장되었다(그림 1).

 

그림 1. 유스티드 XII의 18호 무덤, 유물의 번호는 그림 2와 일치 1-항아리(토), 2-재갈(철), 3,4(금박)-산염소 혹은 사슴 모양의 뿔장식, 5-8(금박):각기 다른 모자장식, 9-12(목제+금박)-원뿔모양장식, 13(목제)-목걸이의 끝장식, 14(청동과 펠트)-펠트 주머니속에 든 거울, 15(청동)-귀걸이, 16번 나무껍질, 17-검은색 물감의 범위, 18,19-금박.

 

 

그림 2. 유스티드 XII의 18호 무덤, 유물의 번호는 그림1과 일치

 

 

 

13호는 나무무덤방(120×188cm)이 설치되긴 했으나, 바닥에 나무바닥을 깔지 않았고, 사람의 뼈도 흩틀어진채 확인되었다. 말 2필이 구덩이의 북쪽에 매장되었다. 13호는 출토유물도 원래 위치가 아니어서 도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유적에서는 한 두기의 무덤에 스키타이 무덤 위에 뻐꾸기처럼 후대에 무덤을 설치하는 경우가 있다. 13호에서는 그런 양상은 아니지만, 다른 무덤에서 후대에 무덤이 열린 점을 감안 한다면 13호도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무덤방의 바닥에 나무를 깔지 않는 점은 18호와 다르다.

 

그림 3. 유스티드 XII의 13호 무덤, 1-철제 재갈, 2,3-골제 버클 장식, 4-청동제 거울, 5-청동제 빗조각

 

15호는 무덤구덩이(223×205cm)에 비해서 무덤방의 크기는 92×66cm 로 매우 작다. 나무 길이는 145cm, 118cm(최대)이지만 무덤방의 양 단에 홈을 내어서 상하를 결구하는 방법 때문에 무덤방은 나무 크기 보다 작다. 무덤구덩이는 돌로 채워졌고, 말은 부장되지 않았다. 말이 부장되지 않고, 구덩이에 돌로 채워진 점은 앞서 설명한 무덤과 차이가 있다. 그런데 구덩이를 채운 돌 사이에서 숯이 발견되었다.

 

 

그림 4. 유스티드 XII의 무덤 15호, A-돌, B-숯, C-금박(무덤구덩이 아래에 러시아알파벳 순서로 적힌것)

1~4: 허리띠 장식(목제), 5-원뿔형 장식(목제), 6-목걸이(목제), 7-말장식(목제), 8-철제 칼, 9-항아리, 10-목제 쟁반, 11-나무 빗

 

15호와 18호는 나무방의 크기가 매우 작다. 18호는 나무방 자체는 크지만 바닥에 나무 깐 범위에 시신이 안치되었는데 길이가 125cm가량이다. 그렇다면 15호와 18호도 남성이자 어린아이일 가능성이 있다. 15호에는 말이 부장되지 않았다.

 

(쿠바레프는 3~12호, 20~22호, 26~27호는 여성과 어린아이라고 했는데, 아마도 어린아이는 여자 어린아이를 의미하는 듯 하다. 좀 더 뜯어보면 알겠지만)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4세기는 스키타이가 멸망하기 직전이지만, 스키타이 왕국은 가장 절정에 달했고 외부세계와 활발하게 통하던 시기이다. 스키타이 여신들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남성 7인이 세 장면을 구성하고 있는 황금항아리도 이 시기의 쿨-오바 유적에서  나온 것이다.

 

쿨-오바 유적은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전 4세기 무덤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보스포러스 왕국의 무덤으로 일컬어진다. 이 왕국은 흑해에서 스키타이 문화권에 속하던 여러 부족 중에서 그리스와 중계무역을 하던 국가 혹은 부족으로 알려졌다.

 

초원 유목민이 흑해로 나가기 위해서는 케레치 반도를 거쳐야 하는데, 그 지역에 살던 부족은 자신의 지리적 이점을 극대로 끌어올렸다. 보스퍼러스 국의 수도는 파니카페움(Panicapaeum)으로 이 곳에는 공방이 있었고, 스키타이 귀족의 유물을 직접 제작했다고 한다. 그리스의 식민도시였던 올리비아는 이미 쇠퇴하고 그 역할을 이 도시가 물려받았다. 올리비아, 파나카페움 등에 있던 공방에서 그리스-스키타이 양식의 유물이 나오게 된 것이다.

 

지도. 쿨-오바 유적의 위치, 올리비아(노란색)

 

지역민과 함께 그리스인도 이 곳에서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를 증명하는 무덤이 쿨-오바 무덤이다. 무덤의 외부형태는 스키타이인의 무덤이지만, 그 내부의 무덤방은 그리스의 건축물인 판테온 스타일이고, 그 중앙에 놓인 관은 스키타이 관인 나무관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그림 2).

 

이 무덤의 벽을 장식하던 프리즈(frieze)로 사용된 장식판에는 말을 탄 남성무사가 표현되어 있다(그림 1). 금판의 반대면을 눌러서 표면을 솟아나게 만든 타출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긴 머리와 턱수염, 콧 수염, 벨트 자켓, 통이 넓은 바지, 부드러운 신발(moccasin)등은 스키타이 무사를 나타낸 것이다. 신발이 가죽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가로방향의 침선으로 표현되었다. 이런 신발은 실제로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이 유물은 가장자리가 고르지 않은데, 원래는 가장자리 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비슷한 장식판에는 바늘구멍이 확인되는데, 무덤 부장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사용하다가 무덤에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림 1. 쿨-오바 유적 출토, 기원전 4세기, 금, 너비 5cm(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그림 2. 쿨-오바 유적의 단면(상)과 무덤 바닥면(하)

 

 

참고문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prev 1 2 3 4 5 6 7 ··· 10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