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2500 년전 시베리아의 얼리 어답터인 기마전사(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는 새머리 고깔모자를 쓰고 있었다. 고깔모자는 스키타이 사람들의 표식물과도 같다고 했다. 헤로도투스도 스키타이 사람들을 묘사할 때 머리에 쓴 모자를 이야기 했고, 페르시아의 궁전인 아파다나에서도 스키타이 인들은 전부 고깔모자를 씌웠다.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에서 출토된 새머리 고깔모자는 일상생활용인지는 약간 의심스럽지만, 다른 건 다 포기해도 그것만은 포기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무엇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말타고 달리는 사람 머리에 쓰는 것 치곤 너무 뭔가가 많기 때문이다.

영화에 보면 꼭 뭔가 하나씩 감춰뒀다가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 숙연해지곤 하는데, 그런거 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무덤속에 유물들은 사자의 의지보다는 무덤을 만든 사람의 생각이 더 많이 반영되는 공간이니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 미라의 목에는 여느 스키타이 전사들처럼 목걸이가 있다. 나무로 된 목걸이 인데, 뒤에서 걸 수 있는 장치가 있으며, 앞에는 호랑이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는 형태이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에서 비슷한 스타일의 목걸이가 출토된 바 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은 나무에 청동을 연결시켜서 앞 부분에 호랑이 두 마리가 산양 머리를 물고 있는 조각이 달린 것이다.

 

 

그림 1.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전사의 목걸이

 

그림 2.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전사의 목걸이 앞 장식

 

파지릭 문화(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알타이에 위치한 지역문화)의 여러 유적을 발굴한 쿠바레프는 파지릭 사람들의 무덤에는 여성, 남성, 어린아이 모두 목걸이가 출토되는데 일상생활용이라기 보다는 덤부장품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았다(쿠바레프 1991).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유물도 부장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몰로딘 외 2000 )

 

파지릭 문화 보다는 이르고, 알타이 보다 좀 더 동쪽에 위치한 아르잔-2 유적의 무덤방 5호분 남성은 목이 부러질 것 같은 무거운 목걸이(1kg이 넘는)를 착용했다는 사실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설마 그걸 맨날 착용하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목걸이에 계속 착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고 했는데, 무덤매납용으로 제작되었다기 보다는 축제와 같은 의식용이었다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전사와 같이 목걸이의 앞부분에 장식된 호랑이 두 마리는 귀와 코 끝이 동심원문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와 같은 표현방법은 파지릭 유적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말의 굴레장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2020/05/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1호분] - 2500년 전 시베리아 무덤의 주인공에 대한 단상

 

2500년 전 시베리아 무덤의 주인공에 대한 단상

시베리아 알타이의 2500년 전 무덤이 여러 곳에 남아 있는데, 1929년에 발굴된 파지릭 유적의 1호 무덤 주인공은 발굴 이전에 이미 도굴로 인해서 주인공에 대한 정보는 없다. 도굴은 교묘하게 이��

eastsearoad.tistory.com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전사는 이미 알려드린 바와 같이 꼬리달린 모피코트를 입고 있었다.

2020/01/2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시베리아 얼음무덤에서 나온 꼬리달린 모피코트

 

시베리아 얼음무덤에서 나온 꼬리달린 모피코트

지금까지 계속 이야기 해 온 우리의 주인공 여성은 아직 설명드리지는 않았지만 긴 상의에 긴 치마를 입었다. 상의는 흰색이고, 하의는 붉은색 계통인데, 삼단으로 짠 펠트제품이다. 그런데 여��

eastsearoad.tistory.com

 

꼬리달리 모피코트 아래에는 남성용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말이 스타킹이지, 실은 스타킹과 부츠의 경계가 모호한 것이다. 그래서, 어느 곳에는 부츠라고 적혀있고, 어느 곳에는 스타킹이라고 적혀 있다. ‘스타킹형 부츠’가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이 스타킹형 부츠 또한 모자, 목걸이와 함께 남녀모두가 가지고 있던 물건이다. 펠트로 만든 스타킹아래에 부츠가 일체로 붙어 있는 것이다. 여성용은 허벅지 부근에 아플리케 장식이 붙어 있고, 남성용은 그런 장식은 없다.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은 대신 발 부분에 양가죽(그림 3-3)을 덧댄 것이다. 스타킹형 부츠가 발견된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는 전체 길이(발끝에서 허벅지끝까지)가 남아 있는 길이가 62cm(남성)(그림 5), 82cm(여성)(그림 6),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는 89cm(여성),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남성)(그림 3)에서는 99cm이다.

 

 

그림 3.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 스타킹

 

그런데 남성의 스타킹에 발 부분이 가죽으로 다시 만들어서 입힌 것은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이 유일하다. 같은 유적의 1호분 남성 스타킹은 발바닥 부분만 붉은 펠트로 덧댄 것이다.

 

 

 

그림 4.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1호분 남성 스타킹

 

 

그림 5.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남성 스타킹

 

그림 6. 파지릭 유적 2호분의 여성 스타킹

 

 

2020/01/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시베리아 얼음공주 치마 아래의 타이즈

 

시베리아 얼음공주 치마 아래의 타이즈

알타이 산맥 스키타이문화의 한 일종인 파지릭문화에 해당하는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는 실크제 상의와 양모로 직조한 천을 이용해서 만든 치마를 착용했다. 그림 1. 아크-알라하 3

eastsearoad.tistory.com

 

 

 

참고문헌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쿠바레프 1991, 유스티드 고분)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폴로스막, 바르코바 2005, 알타이 파지릭 사람들의 의복과 직조물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의 우코크 전사는 2500년 전 어느 날 미라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얼음공주 미라(아크 알라하-3)와 매우 가까운 곳에 묻혔고, 다행히 완벽하게 미라의 모습이 남아 있었으나, 세간의 관심은 덜 했다. ‘얼음왕자’이런 별명도 없고, 그는 얼음공주에 비해서 주목을 받지 못한 것 같다.

 

유적은 1994년에 발견되었고 1995년에 발굴되었다. 1995년 얼음공주가 부산에 왔을 때 그는 이제 막 사람들이 무덤 속에서 끄집어 내었다.

 

 

앞에서 소개한 파지릭 유적과 아크 알라하 1, 3 유적과 마찬가지로 말은 무덤방 북쪽에 매장되었다. 무덤방의 크기는 그림 1에서 목제의 돌출부를 제외하고는 실제 무덤방은 164×113m가량이다. 나무는 통나무를 반으로 나누어서 사용한 것이다. 바닥의 나무는 4개만 깔렸고, 목기와 토기 등의 그릇이 놓은 부분에는 나무가 깔려 있지 않았다. 나무방의 벽은 통나무를 2층으로 올린 것이다.

 

나무방 덮개를 열자 나타난 것은 남성 미라가 무릎을 굽힌 채로 잠들어 있었다. 미라로 제작된 아크 알라하 3유적, 파지릭 유적 2호분, 파지릭 5호분과는 달리 통나무관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자세는 이제 까지 설명된 무덤에서 줄 곧 확인되는 자세이다. 쭉 뻗고 하늘을 쳐다보는 (앙신직지) 시신처리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림 1. 시베리아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의 남성미라 무덤,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

 

무덤방의 유물은 여느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처럼 많지 않았다. 더욱이 부장된 말의 수와 출토된 유물도 적은 편이어서 전체 적으로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의 수는 많지 않았다.

 

 

 

 

그림 2. 시베리아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의 남성미라 무덤,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에서 출토된 유물

 

그림 2에서 이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의 종류를 알 수 있다. 목제 쟁반 위의 양뼈(엉덩이뼈), 그 옆의 칼, 그곳에서 떨어진 곳에서 출토된 토기 1점, 목기 1점 등 실제로 사용했던 유물이다.

 

그런데 이 남성은 관이 없었지만 미라로 제작되었고, 문신이 있었으며, 모피코트를 입고, 고깔모자를 쓰고, 펠트로 된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특히 남성이 쓰고 있는 고깔모자는 먼저 발굴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전사 무덤에서 발견된 동물문양장식이 어떤 용도로 씌인 것인지 알게 했다. 이 유적이 발굴되기 전에는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 발견된 남성전사 머리 위의 동물문양장식이 용도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말의 수는 적지만 출토된 마구는 아크 알라하 3유적과 비교되었다.

 

그림 3. 시베리아 알타이의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분(1: 얼음속의 미라; 2: 미라를 발굴하는 장면)

 

참고문헌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베르흐 칼쥔(Верх Кальджин, Verkh Kal'dzhin) II 유적은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해발 2500m)에 위치한다. 앞서 설명했던 얼음공주 무덤인 아크-알라하 3유적에서 서쪽으로 4km 떨어진 곳(지도2)에 위치한다. 이 유적은 현재까지 발굴된 남성 미라 가운데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파지릭 유적에서 출토된 남성미라(2호분,5호분)는 해발 1500m인 파지릭 계곡에서 확인된 것이다.

 

지도 1. 스키타이 문화 중 파지릭문화의 유적

 

 

지도 2. 우코크 고원의 베르흐 칼쥔 II유적(푸른색)과 아크 알라하 3유적(오렌지색), 지도 1의 확대, 지도1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확인가능하다.

 

https://www.google.com/maps/d/drive?state=%7B%22ids%22%3A%5B%22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22%5D%2C%22action%22%3A%22open%22%2C%22userId%22%3A%22104839998633637810520%22%7D&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유적은 칼진(Кальджин, Kal'dzhin)강의 상류에 위치한다. 유적의 이름은 칼쥔 강의 베르흐(Верх: 상류)를 그대로 명명한 것이다. 러시아 지명은 이런 경우가 많은데, 이를 번역하는 경우도 있지만, 고유명사로 그대로 부르는 것이 나중에 혼돈이 적을 것이다. 일본에서 나온 책들은 이를 일일이 번역했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면 그 유적이 어떤 유적인지 알 수 없다.

 

베르흐-칼쥔 II유적에는 4개의 고분이 일렬로 설치되었는데, 3개를 발굴했다. 그 중 남성미라가 확인된 곳은 3호분이다. 1호분에서 11m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그림 1. 베르흐 칼쥔 II 유적의 무덤, 까맣게 칠한 것이 발굴된 무덤이다. 위의 화살표 옆에는 칼쥔 강 입구까지 50m. 가장 오른쪽 화살표C는 북쪽을 의미.

 

 

무덤은 앞에서 본 아크 알라하 3유적, 파지릭 유적의 1,2,5호분과 마찬가지로 지표상에서는 큰 돌을 쌓은 것이 확인되었다(그림 2). 돌을 들어내자 무덤 가장자리를 둘러싼 호석(6~7.6m)(그림 3)이 확인되었다.

 

그림 2. 베르흐 칼쥔 II 유적의 3호분, 표토를 벋겨내자 드러난 돌. 화산암이다.

 

 

 

그림 3.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적석을 들어내고 남은 호석

 

그런데 이 무덤의 단면도(그림 4)를 보면 앞서 본 아크 아라하 3유적과는 다르다는 점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나무 무덤방이 설치되는 가장 아래의 무덤구덩이를 한 번에 파지 않고 단을 만들어서 팠다는 점이다. 표토의 생토를 기준으로 50cm정도 들어가저 첫 번째 단인 확인되었다.

 

그림 4.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단면도

 

2020/01/1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2500년 전, 시베리아 여성샤먼 무덤 속

 

 

2500년 전, 시베리아 여성샤먼 무덤 속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의 얼음이 녹자 드러난 무덤의 구조를 살펴보기로 하자. 여성샤먼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덤을 발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구조를 알아야 한다. 아크-알라하 3

eastsearoad.tistory.com

 

 

무덤구덩이(2.6×2.2m)의 깊이는 2m이고, 구덩이 안에 나무방을 설치하고 시신을 안치했다. 위에서부터 121cm정도 들어가자 무덤방의 덮개가 확인되었다(그림 5).

 

 

그림 5.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무덤방 덮개

 

무덤구덩이에 나무 무덤방을 만들고 무덤 방 바깥에는 말을 부장하는 구조는 앞에서 본 2500년 전 파지릭문화(스키타이 문화권의 지역문화)에서 보았던 것이다.

무덤방은 통나무를 반으로 갈라서 결구한 무덤방인데, 내부에 관을 따로 설치하지 않았다. 무덤방이 관의 역할을 한 것이다. 무덤방 바깥에는 말을 매장했는데, 말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2 마리 이상이지만 정확하게 몇 마리를 매장했는지는 알 수 없다. 잘 남아 있는 목제 굴레장식과 철제 재갈은 한 벌이다.

 

참고문헌

 

Молодин В.И., Полосьмак Н.В., Чикишева Т.А 2000, Феномен алтайских мумий. Новосибирск: 2000. 320 c.(몰로딘, 폴로스막, 치키세바 2000, 알타이 미라 현상, 2000)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에 위치한 아르잔-2호 무덤에서 아주 다양한 동물문양장식이 확인된다. 여러 가지 다양한 동물장식이 확인되는데, 소재 및 용도가 다양하다. 검, 화살촉과 같은 무기에도 확인되고, 돌판에도 그려졌다. 의복으로 볼 수 있는 모자 장식에도 동물문양장식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다양한 동물문양장식이 확인되는 곳은 역시 주인공 무덤방인 5호이다. 여성의 모자 장식은 이미 소개해 드린 바 있다. 그런데 남성의 두개골에서 약간 위쪽에서 동물문양장식이 확인되는데, 남성의 모자장식이다. 앉아 있는 말(그림 1-4)과 서 있는 사슴 장식(그림 1-1)이다.

 

기본적으로 금판에 금사를 납땜해서 붙이고 그 사이를 청회색 아말감으로 채워넣은 것이다.

말은 서로 마주 보는 금장식 각각 2개씩 확인되었다. 말은 다리를 배쪽으로 접어서 앉은 모습이다. 눈, 코, 입, 귀, 턱에 청회색 에나멜을 채웠다. 말의 갈기 끝에 표현된 돌출부위는 아주 소형화된 날개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그림 1-5).

 

그림 1.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주인공 남성의 모자장식(1,5)

 

사슴(사슴 그림 : 길이 6.4 cm, 높이 6.9 cm, 두께 0.06 cm)은 기본적으로 말과 제작방법이 같지만, 뿔과 귀를 따로 만들어서 붙여서 원래 금판에 리벳으로 붙인 것이다. 말 보다 훨씬 큰 느낌이 든다. 사슴문양은 다른 금판에 다시 붙여서 고정되었다. 사슴 아래의 금판(길이 7 cm, 폭 2.5 cm,)은 새를 형상화 한 것이다. 사슴 아래의 금판에는 14개의 고리가 있어서 머리장식(그림 2-1)에 고정시킬 수 있다. 금판 위의 사슴을 고정하기 위해서는 6개의 구멍이 있다. 사슴다리의 끝을 약간 구부리고 그 끝을 금판 위에 고정한 것이다. 사슴의 가슴쪽에는 붉은색 칠이 확인되는데, 산화철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말리의 민족지자료를 참고하면 이 지역의 보석에 색을 입힐 때는 소금과 철 화합물로 된 물질을 발랐다고 한다. 그림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사슴은 말과는 달리 다리를 뻗어 표현되었다.

 

그림 2.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주인공 남성의 모자장식 그림 1의 실측도

 

 

발견될 당시에 말보다 사슴은 머리 장식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확인되었다(그림 3). 이는 의미가 있는데, 두 동물문양장식의 뒷판에 붙은 고리의 위치가 차이가 있는 점과 연결된다. 말 장식(그림 2-2)에는 너비 0.2cm 간격으로 16개의 고리가 2줄(그림 2-2)로 붙어 있는데, 단단히 고정시기키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슴장식은 별도의 금판에 고리가 붙어 있었다. 이 부분은 두 동물의 자세가 다른 점과도 관련된다. 

 

 

그림 3.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주인공의 남성의 모자장식 출토장면

 

말 장식판에는 금판에서 잘라낸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러한 점으로 보아서 실제로 사용했다기 보다는 의례용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말과 사슴장식판에서 붉은색으로 칠한 흔적이 그대로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 속에는 사람과 말이 함께 매장되었다(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 식상하시겠지만). 말의 숫자는 무덤의 주인공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제까지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무덤 5기 소개 해 드렸다. 얼음공주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 3유적 1기, 남성전사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아이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은 우코크 고원에 위치했고, 파지릭 유적의 2호분과 5호분에는 모두 남녀가 함께 매장되었으며, 파지릭 계곡에 위치한다.

말은 대부분 재갈과 굴레장식을 착장했다(물론 하지 않은 채 무덤에 들어간 말도 있다.)

 

오늘은 약간 흥미로운 말의 굴레장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파지릭 1호분은 아직 무덤을 소개하지 않았지만, 굴레장식에 동물문양 대신해서 사람얼굴을 5개 조각해서 달아 놓았다. 말의 굴레장식에 매단 동물문양장식은 대부분 이마와 콧잔등에 달리는 장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슷했다. 그런데 1호에서 출토된 말의 얼굴모양굴레 장식은 얼굴모양이 달라서 4명의 얼굴이 확인된다. 콧잔등을 장식 하는 사람(그림 2-4)과 말의 귀 아래를 장식하는 사람(그림 2-1,2)은 서로 다른 얼굴이고 Y자형 장식 위에 붙은 사람(2-3)은 양쪽이 같은 얼굴(그림 1)이다.

 

공통적인 것은 모두 턱수염을 기르고 있다. 이 얼굴모양 마스크를 자세히 보시면 스키타이 문화의 사람들이 대단히 세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모두 눈과 특히 광대뼈 표현이 차이가 크다. 입모양도 4명이 약간씩 다르다. 물론 얼굴의 길이와 너비의 비 차이가 달라서 인종이 다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

 

콧잔등을 장식하는 사람얼굴(그림 2-4)이 특히 다른데(눈, 코, 입, 수염, 얼굴모양), 말의 주인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그림 1. 파지릭 유적 1호분 출토 말의 굴레장식, 말의 굴레 착용은 그림 3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그림 2. 파지릭 유적 1호분 출토 말의 굴레장식 세부(그림1과 동일유물), 목제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남성얼굴의 머리와 턱수염사이의 둥근 원이다. 이미 여러번 보여드린 호랑이나 맹수의 귀와 같은 표현이다. 만약에 이 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는 다면, 단순한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 파지릭 5호에서 확인된 반인반수를 표현했을 가능성도 있다.

 

파지릭 유적에서는 5호분에서 남성의 얼굴이 표현된 벽걸이가 확인되었고, 1호분에서 남성 얼굴이 표현되었고, 그 벽걸이에서 사슴 뿔을 뒤집어 쓰고, 동물문양의 옷을 입은 반인반수의 남성도 확인되었다(앞의 포스팅에서 확인바랍니다.).

 

전해지지 않고, 확인되지는 않지만 2500년 전 그들의 ‘이야기’속 컨텐츠 였을 것이다. 이런 게 신화가 아니었겠는가? 또한 동물에 대한 관념을 표현한다고도 생각한다. 인간과 동물이 같은 동격이라고 생각한 것이지 않을까?

 

 

 

그림 3. 말의 굴레 장식 및, 안장 등 착용 예, 그림 1을 그림 3의 말 얼굴에 대입하면 된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prev 1 ··· 4 5 6 7 8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