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2500년 전 유라시아 전 지역을 휩쓸고 다녔던 스키타이문화의 남성전사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는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묻혔는데, ‘얼음공주’라고 별명이 붙은 여성과 동시대의 인물이었고, 3km 떨어진 곳에 붙였다.

학자들은 이곳의 이름을 아크 알라하 1유적이라고 주소를 붙였고, 유적에서 1호분에는 어제 이야기 한 15세 가량의 유로포이드 소년과 함께 45~50세의 유로포이드 남성으로 밝혀졌다. DNA분석법으로 두 명다 남성으로 밝혀졌는데, 둘이 아버지와 아들일 가능성이 있으나 여기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고 한다(피리펜코, 트라페조프, 폴로시막 2015). 어쨌든 남성과 여성이 함께 묻혔다고 처음에는 알았으나, DNA분석법이 도입되면서 전혀 다른 양상이 밝혀졌다.

 

소년의 무덤과 크기가 약간 크지만, 중년 남성의 무덤 부장품도 용도가 같은 유물도 있지만 생김새는 다르고, 소년의 무덤에는 있는 유물이 중년남성에게는 없는 유물도 있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통나무관, 왼쪽 소년, 오른쪽 중년남성의 관

 

그는 몸을 편채 오른쪽으로 누워있었고, 두향은 동북쪽이고 손은 팔꿈치 쪽으로 굽혀 있었다. 머리아래에는 바닥이 편평한 목침(48×23×8.5cm)이 있었는데, 소년의 것보다 크다. 목침 근처에는 새머리 고깔모자가 확인되었다. 고깔모자의 가장 정수리 부분을 장식하던 새머리 장식과 분리된 채였다.말과 사슴에는 금박을 입혔을 것이다.

 

그림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남성전사의 새머리 고깔모자

 

이 남성도 목에는 목걸이를 착용했는데, 목제로 제작되었고 금박을 입힌 것이었다. 표범 두 마리가 마주보고 사슴머리를 같이 물고 있으며 그 아래에도 사슴머리가 표현된 것이었다(그림 3). 목제 귀걸이도 확인되었다. 두개골에는 검은색의 직모 머리카락이 남아 있었다. 목 근처에는 양모로 만든 끈이 여러 갈래로 만들어진 매듭이 확인되었다. 끝에는 둥근 술이 달려 있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중년 남성의 목제 목걸이의 앞 장식

 

허리춤에는 목제로 제작하고 금박을 입힌 허리띠의 부속품과 허리끈이 확인되었다. 모두 6점인데, 4점은 2점씩 짝을 이루어 양쪽으로 대칭되게 제작되었고 가장 끝에 두 점은 각각 모양이 다르다. 가장 중심의 동물모양장식은 표범이 조각되어 있는데 2점(그림 4-3,4)이다. 동물모양장식 허리끈 부속품 옆에는 허리띠 장식은 부채꼴모양이 새겨져 있다. 가장자리에 네모꼴 프레임을 새기고, 그 안에 3열로 부채꼴이 새겨졌는데, 열과 열의 부채꼴 방향은 다르다(그림 4-2,5). 가장 하단의 중앙에는 긴네모꼴로 구멍이 뚫려져 있다. 이 허리띠 장식도 2점이다. 가장 끝에 허리띠 장식은 크기가 가장 작다. 허리에 착용했을 때 오른쪽에 오는 부분은 부채꼴 모양이 3열로 새겨져 있는데(그림 4-1), 가장자리의 네모꼴 프레임과 구멍이 없다. 허리에 착용했을 때 왼쪽의 네모꼴은 무문양으로, 하단의 중앙에 네모꼴 구멍이 있다(그림 4-6).

허리부근에서 불로 만든 빗이 확인되었고, 오른쪽 무릎 아래에는 날이 위로 향하게 한 투부가 확인되었다(그림1).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중년 남성전사의 허리띠 부속품, 상단은 중년남성의 것, 하단은 소년의 것이다.

 

오른쪽 대퇴골 근처에는 상태가 않 좋은 목제 칼집과 그 안에 철제 단검이 들어있었다. 왼쪽 대퇴골 근처에는 이미 형체가 없어진 활집에 붙어 있던 목제가 붙어 있던 것이 발견되었다. 일렬로 구멍은 남아 있었지만, 소년의 화살통처럼 동물문양장식은 없었다. 활대가 붙은 화살 5점과 조합식 활의 목제부분도 남아 있다.

 

남성은 펠트제 붉은색 바지와 펠트로 만든 신발도 신고 있었다.

 

소년의 관에서는 자안패, 거울, 목제칼 등이 발견되었으나 이는 중년 남성의 무덤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소년의 관에서는 고깔모자는 발견되지 않고 목침 위에 말모양장식등이 확인되었는데, 모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안패, 거울, 목제칼과 함께 충분히 여성임을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발굴당시(1990년)과 보고서가 출간된 해(1994년)에는 인골분석에 DNA분석은 그 때까지 고고학에 도입되기 전이기 때문에 단순히 뼈를 보고 여성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학자들은 보고 당시에는 바지를 입은 소녀전사정도로 생각했다.

 

둘 다 남성인 것이 밝혀졌 진 덕에 소년의 목침 위에 있던 산양모양 조각도 용도가 분명해 졌다. 모자장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5.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의 모자장식 부속품, 산양장식. 뿔이 빠진 흔적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던 유물은 투부라고 불리는 전투용 도끼, 활과 화살통, 목제 목걸이와 귀걸이, 허리띠 버클과 고깔모자 등이다. 하지만 용도는 같지만 전부 모양이 달랐다. 하나만 빼고,. 그것은 매듭이다. 매듭은 두 관에서 출토된 유물이 거의 같은 모습이라고 설명되었다.

 

 

둘은 어떤 연유로 같은 무덤에 묻히게 되었을까? 아버지와 아들이 아니라면.,,

 

참고문헌

피리펜코, 트라페조프, 폴로시막 2015, Пилипенко А.С., Трапезов Р.О., Полосьмак Н.В. Палеогенетическое исследование носителей пазырыкской культуры из могильника Ак-Алаха-1 (Горный Алтай) // Археология, этнография и антропология Евразии, издательство Изд-во Ин-та археологии и этнографии (Новосибирск), 2015, том 43, № 4, с. 144 — 150(피리펜코, 트라페조프, 폴로시막 2015,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확인된 파지릭문화인의 고인류학적 분석)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는 기원전 9세기 시베리아, 기원전 8세기에 흑해북쪽에서 이른 시기의 유적이 발견된다. 스키타이 문화의 개괄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세히 설명해 드릴 예정이다. 

우리가 현재 살피고 있는 스키타이문화의 남성전사는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하고 있는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발견되었다. 앞서 설명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와 같은 시대의 인물로 평가된다. 얼음공주는 기원전 4세기 혹은 기원전 4세기중반 정도에 죽었다.

 

우리는 어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관이 2개라는 사실을 알았다.

통나무관에는 누가 있었을까?

남성전사라고 했으니, 한 명은 남성전사일 테고, 그럼 다른 한 명은....?

사실 발굴할 당시에는 16세의 여성으로 판명되었다가, DNA분석에 따라서, 남성으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약간 논란은 있지만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일 가능성이 큰데, 좀 더 결과가 필요하다(필리펜코 외 2015). 이것이 이 무덤에서 뒤늦게 밝혀진 진실이다. 

 

그래서 최초로 발굴할 때는 여성이라고 생각했던 통나무관은 1호, 남성이라고 생각했던 통나무관은 2호라고 명명되었다(그림1).

오늘은 곡절 끝에 남성으로 알게 된 15~16세 유로포이드 소년의 통나무관을 들여다 보기로 하자(그림 1-1).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왼쪽은 남성소년, 오른쪽은 남성중년, 왼쪽 관의 주인공이 남성이라는 사실은 2015년에야 알려졌다. 1990년 발굴하고 뼈를 토대로 한 인류학적 분석에서는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DNA분석으로 15세 가량의 소년임이 2015년에 밝혀지게 되었다. 

 

소년의 통나무관은 아버지의 통나무관보다 약간 작다는 것은 어제 설명했고, 이 통나무관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 소년은 하늘을 바라보고 눕지 않고, 오른쪽 어깨를 바닥으로 해서 옆으로 살짝 누웠다. 머리아래에는 35×19.5×7cm의 목침이 놓여 있었다. 목침에는 새머리모양의 목제장식이 남아 있었는데, 펠트제 모자를 썼던 것으로 추정된다. 펠트는 이미 없었다. 옆의 통나무관에 있던 남성과 비슷한 스타일의 모자를 썼을 것이다. 세 갈래로 땋아 묶은 머리단이 남아 있다. 귀걸이는 목제 위에 금박을 입혔는데, 한 개만 확인되었다(그림 2-2, 3). 목걸이도 목제인데, 두 마리 늑대가 꼬리를 내리고 마주보는 장식이 압으로 붙인 것이다. 목 뒤쪽으로는 청동으로 연결해서 만든 제품이다(그림 2-1.

 

그림 2.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 남성 소년의 목걸이(목제+청동)와 귀걸이(목제+금박)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 1호분, 남성 소년의 귀걸이

 

가슴부분에는 꼬은 끈을 5개를 4개의 갈래로 묶어서 만든 유물이 나왔는데, 거의 똑같은 것이 아버지의 무덤에도 출토되었다(그림 4). 대퇴골 근처에는 34점의 자안패(그림 5)와 2점의 목제 둥근단추와 네모꼴단추가 확인되었다. 네모꼴 단추 가운데 구멍이 있는 것은 허리띠의 부속품이다(그림 6).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의 매듭

 

그림 5.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자안패

 

그림 6.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의 단추

 

오른쪽 발 근처에는 철제 투부(전투용 도끼)가 확인되었는데, 손잡이는 목제이다(그림 7). 허리춤 근처에는 청동거울이 발견되었는데, 가죽으로 된 쌈지에 담겨 있었다(그림 8). 오른쪽 엉덩이족에는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목제 칼집에 넣은 철제 단검과 가죽끈이 발견되었다. 왼쪽 엉덩이에는 화살통에 붙어 있던 화살집 장식통이 목제로 제작된 채 놓여 있었다. 멧돼지와 표범이 싸우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그림 9). 그 근처에는 7개의 화살촉과 화살대도 확인되었다.

소년은 붉은 색으로 만든 바지를 입고 있었고, 엉덩이뼈와 다리뼈 부근에서 흔적만 남아 있었다. 신발에는 펠트로 만든 부츠를 신고 있던 흔적만 남아 있지 상태는 좋지 않았다.

또 무덤에는 파지릭문화에서 매우 드문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목제 칼이다. 길이 20cm가량으로 한쪽은 둥글게 처리되었고 다른 한쪽은 매우 정확하게 잘라졌다. 안쪽으로는 길이 19.5cm의 홈이 길이방향으로 파져 있었다. 목제칼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고, 손잡이는 남아 있지 않은 모습이다.

쿠바레프는 울란디르크 유적의 출토품에서 작은 크기의 칼이 5점 확인된 것을 예로 들면서 이 유물이 크기가 작은 것에 주목했다. 칼은 규칙적은 크기로 대부분 길이가 22.5cm가량인데, 유물은 20cm가 채 안되는데 이미테이션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무덤 부장을 위해서 모방품으로 제작된 유물일 가능성을 제기했다(쿠바레프 1987).

그렇다면 이 소년의 관에는 실제 무기(화살과 화살통)와 부장용 무기(목제 칼)가 함께 묻힌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림7.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철제 투부

 

그림 8.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거울과 가죽주머니, 사진의 중앙에 에 작은 거울과 옆에 놓인 주머니가 이 유적의 출토품이다.

 

그림9.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화살통집 장식.

 

그림 10.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소년관에서 출토된 목제 칼

 

소년의 관은 가장 나중에 수습되었는데, 소년의 관을 모두 정리하고 통나무관과 무덤방을 모두 들어내자 무덤의 바닥을 정리 할 때 썼던 도구로 보이는 두터운 막대기가 놓여 있었다. 무덤팔 때 땅을 다지던 도구였다.

다시 말하면 무덤에서 가장 먼저 들어간 유물은 무덤을 썻던 도구이다. 무덤을 만들던 도구가 무덤안에서 그대로 나오는 것은 파지릭 유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닥을 다진 도구는 어디에도 그림과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았는데, 매우 궁금해지는 건 왜일까?

소년의 화살통과 화살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참고문헌

피리펜코, 트라페조프, 폴로시막 2015, Пилипенко А.С., Трапезов Р.О., Полосьмак Н.В. Палеогенетическое исследование носителей пазырыкской культуры из могильника Ак-Алаха-1 (Горный Алтай) // Археология, этнография и антропология Евразии, издательство Изд-во Ин-та археологии и этнографии (Новосибирск), 2015, том 43, № 4, с. 144 — 150(피리펜코, 트라페조프, 폴로시막 2015,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확인된 파지릭문화인의 고인류학적 분석)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쿠바레프 1987,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라디르카 유적)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어제부터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남성무덤을 살펴보고 있다. 두 유적의 거리는 3km 가량이다.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서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얼음공주 무덤이 있었다. 베르텍 마을과 12km 떨어진 곳으로 좀 더 가깝다.

아크 알라하 3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은 스키타이문화중에서도 알타이 산맥에서 위치한 문화를 파지릭문화라 하는데, 그 문화 중에서도 우코크 구원에 위치하는 유적이다.

 

https://www.google.co.kr/maps/place/Ploskogor'ye+Ukok/@50.3307878,87.9890127,6.35z/data=!4m13!1m7!3m6!1s0x42b7eb0e314da4fd:0xaf8aeded3a068607!2sAkalakha!3b1!8m2!3d49.6937885!4d87.4078366!3m4!1s0x42b70a2829374ba7:0x6d63a380c8591ae1!8m2!3d49.3077771!4d87.5947237!5m1!1e4?hl=ko

 

Google 지도

Google 지도에서 지역정보를 검색하고 지도를 살펴보거나 운전경로 정보를 검색합니다.

www.google.co.kr

 

아크 알라하 1유적은 발굴전에는 자갈과 점판암들로 쌓였다. 무덤의 크기는 남북방향은 17.5m, 동서방향은 8m가량이다.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을 기준으로는 49cm이다. 무덤의 중앙은 0cm로, 고도와 같았다. 무덤이 중간에 함몰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표토(지표면을 덮은 흙)를 제거하자 무덤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큰 돌로 호석(가장자리를 두른 돌)을 돌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림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표토만 제거, 남쪽에는 고리모양의 원형 돌무지가 하나 더 있는데, 무덤은 아니다.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1호와 관련된 제사 유구로 생각된다. 무덤 중앙을 가로지는 선은 발굴할 때 사용했던 기준점이다. 그 옆의 숫자는 돌의 위치이다. 가장 중간이 ocm이다. 숫자의 간격은 1m이다. 

 

호석 안쪽으로 자갈과 점판암들로 쌓여 있었고, 일일이 손으로 제거했다. 이를 제거하자 2차 호석이 드러났다(그림2). 1호분의 주인공이 있는 무덤구덩이는 깊이 2.9m가량에서 확인되었다. 동서남북방향과 일치하며 크기는 4.8×4.75m이다.

그림2.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적석제거 후 드러난 호석과 무덤구덩이, 가운데 네모꼴이 원래 무덤주인공의 무덤구덩이이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표시가 엉뚱한 사람의 무덤 위치이다.

 

 

그런데 그 전에 적석을 제거하는 가운데 무덤 중앙을 기준으로 깊이 24cm에서 1호분과는 전혀 관련없는 14세기의 것으로 생각되는 엉뚱한 사람?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이 얄팍한 사람들은 아크 알라하 1호분의 무덤에 사용된 돌을 치워서 구덩이를 만들고 그 위에 시신을 안치했다. 사지를 쭉 핀 신전장으로, 두향은 서쪽으로, 손을 가지런하게 모은 자세로 놓았다. 두개골은 흙의 압력으로 눌러서 부서졌다(그림3). 허리춤의 오른쪽에는 철제 원형 재갈(말의 고삐를 채우는 장치) 2점(그림4)과 화살촉이 확인되었다. 이 유물로 보아서 14세기의 사람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이 사람의 성별에 대해서는 보고서에 없었는데, 유물로 보아서 남성일 가능성이 크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4세기 무덤

 

그림 4.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4세기 무덤 출토품

 

 

그런데 의문스럽지 않으십니까?

과연 14세기 사람들은 아래에 있는 무덤을 도굴하지 않았을까?

힌트는 앞에서 이야기 한 무덤의 깊이에 있다. 파지릭문화의 사람은 바닥까지 3m까지 파야 그 사람 무덤에 다달수 있었으나, 14세기에 장례식을 치르던 사람들은 24cm정도만 파서 사자를 묻었다. 그 밑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혹은 알았지만 손대지 않고 자신이 알던 사람만 그곳에 묻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이곳에 묻힌 사람들은 죽어서 만났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1994,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금을 지키는 그리핀, 아크 알라하 무덤)

구글지도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