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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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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의 추야강 지류인 유스티드 강과 바르부르가지 강 유역의 스키타이 무덤에는 나무로 만든 말, 사슴, 산양몸통에 사슴 장식이 많이 확인되는데, 대부분 머리맡에서 출토되어 모자장식이라고 생각한다. 바르부르가지 강과 가까운 말라투 유적에는 머리맡에서 금판으로 된 동물문양 장식이 여러 점 확인되는 무덤이 있다. 이 유적 자체에는 동물문양장식이 거의 없어졌다고 이미 이야기 했다. 그 중에서 18호는 약간 예외?적인 상황이다.

 

18호에는 뿔에 마디가 있는 산염소(그림 2-4)와 산양(그림 2-6,7)이 표현된 금판 장식이 있다. 그림 2-4를 산염소 뿔로 추정하는 근거는 투엑타 1호분에서 목제로 산 염소 뿔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 외는 특정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 유적을 발굴한 쿠바레프는 목제로 된 사슴장식(그림 2-22,23)을 발견했다. 역시 모자가 있었을 법한 위치에서 확인되었다(그림 1-22,23). 그림으로만 보기에는 잘 모르겠다.

 

이 무덤에는 남(투부와 화살을 가진 자)녀가 함께 매장된 무덤이다. 남성부근에서 출토된 동물장식은 2점(그림 1-8,10, 그림 2-8,10)이고, 그 외는 여성 머리위와 왼쪽 무릎 아래에서도 한점 출토되었다. 여성 주변에서 확인되는 것은 사슴, 산양, 산염소이고, 남성주변에서는 약간 다른 종류의 동물인 듯 하다. 정확하게 잘 모르겠다.

 

그림 1. 말라투 IV유적의 18호 평면도 1,2-토기, 3-11: 금박을 눌러서 표현한 동물문양장식, 12, 13-모형 칼, 14-칼, 15, 16-모형 투부, 17-단추, 18, 19-청동거울, 20,21-칼, 22, 23-사슴장식조각, 24-멧돼지 송곳니 모형, 25-원판형 펜던트, 26-화살, 27-링모양 귀걸이, 28-목제 쟁반, 29,30-돌베개, 31-검은색 물감의 범위(1,2-토기, 3~11-금박, 12, 16-19, 27-청동, 13, 15-청동과 목제 , 14,22~25, 28-목제, 20, 21-철제)

 

 

그림2. 말라투 IV유적의 18호 유물, 번호는 그림1을 참고

 

말라투 IV유적에서 18호는 거의 유일하게 동물장식이 그나마 출토되는 유적이다. 이곳에서도 18호 외에도 몇몇 무덤에서 모자에 부착했던 금판 장식이 확인되지만 매우 소략하다.

 

역시 쿠바레프도 동물문양장식과 무덤의 구조물을 보고 18호 무덤은 이 유적에서 가장 빨리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18호와 함께 만들어진 무덤은 3호, 9호, 19호, 25호이다. 기원전 4세기 정도에 만들어진 무덤으로 생각했다. 특히 25호 무덤에는 골제 화살촉(그림 4-11~14)이 출토된다. 화살촉 머리가 삼각형이고, 단면은 정삼각형이고, 화살대를 끼우는 구멍이 있다. 이 유물은 아크 알라하-1 유적(기원전 5세기)에서 출토된 유물과 거의 비슷하다. 이 보다 더 늦은 형식의 화살촉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자루대가 없는 화살촉의 경우, 단면이 마름모형이다. 그런데 쿠바레프는 이 유적의 25호 무덤은 아크 알라하-1 유적 보다도 늦은 기원전 4세기라고 생각했다. 화살촉은 거의 비슷해서 말라투 IV유적 내에서 빠른 것은 맞지만 무덤방을 결구하는 방법도 다르고, 말도 부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림 3. 말라투 IV유적의 25호 무덤 평면도, 1-토기, 2-모형 검, 3-검 집, 4,5-칼, 6,7-원판형 펜던트, 8-모형 투바 9-청동거울, 10-멧돼지 송곳니 모양, 11-14: 화살촉, 15-청동 못, 16-금박편, 17-돌 베개, 18-검은색 물감의 범위 (1-토제, 29-청동, 3,6,7, 10-목제, 4,5,15-철제, 8-청동과 목제, 11-14: 뼈)

 

그림 4. 말라투 IV유적의 25호 유물

 

고고학자들은 늘 차이점과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를 해석하려는 노력은 결국 2~3 개로 귀결된다. 시간, 지역차이다. 시베리아 초기 철기시대 문화인 스키타이 문화에는 하나 더 해서 늘 ‘급’의 문제와도 결부시킨다. 앞에서 살펴본 미라 출토되는 유적과는 너무나 다른 무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이나믹 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Шульга П.И. Пазырыкская культура (курганы Чуи и Урсула), Барнаул: Изд-во Алтайского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 2007. — 282 с.(쿠바레프, 술가, 2007 파지릭문화 유적(추야와 우르술라강의 고분)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 추야강의 지류인 바르부르가지 강 유역의 스키타이 무덤인 바르부르가지 I유적에서는 서른 기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근현대에 들어선 수로 덕분에 무덤은 2그룹으로 나누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처음 축조 될 때부터 2열로 축조되었다. 그 중앙을 후대에 공교롭게도 수로가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서른기의 무덤가운데 고대 투르크시대의 것은 19,20호이다.

 

그림 1. 바르부르가지 I유적 평면도

 

보통 한 계곡에 1열로 무덤이 들어서지만, 이 계곡에는 특이하게 2열로 무덤이 형성되었고 이 무덤을 발굴한 쿠바레프는 하나의 유적으로 보았다. 16호와 17호 사이에 스키타이 시대의 무덤이 더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1호에서 18호까지를 첫 번째 열, 21호부터 30호까지를 두 번째 열이라고 하자. 첫 번째 열에서 말이 없는 무덤은 13기나 된다. 두 번째 열에서는 24호를 제외하고 말 없는 무덤은 3기이다. 24호는 무덤처럼 보이는 덮는 돌만 발견되었고 아래에는 무덤시설이 없었다.

 

무덤호수

무덤시설

말 매장

첫 번째열

1

통나무관

0

 

2

나무무덤방

1

 

3

나무무덤방

2

 

4

석관묘

0

 

5

나무무덤방

0

 

6

나무무덤방

0

 

7

나무무덤방

2

 

8

나무무덤방

0

 

9

석관묘

0

 

10

나무무덤방

1

 

11

나무무덤방

0

 

12

석관묘

0

 

13

나무무덤방

1

 

14

나무무덤방

0

 

15

나무무덤방

1

 

16

석관묘

0

 

17

석관묘

0

 

18

석관묘

0

 

19

투르크

 

 

20

투르크

 

두번째열

21

석관묘

0

 

22

나무무덤방

2

 

23

석관묘

2

 

24

없음

 

 

25

석관묘

1

 

26

나무무덤방

2

 

27

나무무덤방

0

 

28

나무무덤방

0

 

29

나무무덤방

2

 

30

나무무덤방

1

 

 

첫 번째 열에서는 석관묘가 6기, 나무 무덤방이 11기 발견되었는데, 석관묘에는 모두 말이 없었다. 나무로 된 무덤에도 말 없는 비중은 거의 50% 가까이 된다. 그러나 두 번째 열에서는 말 없는 석관묘는 21호 뿐이다. 25호 무덤에서 미라가 발견되었고, 다른 무덤 보다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는데도 전통적으로 미라의 무덤방 재료로 만들어진 나무가 아닌 돌이다. 인접한 유적도 발견되었는데, 이 유적에서만 특히 돌로 만든 석관묘를 많이 사용했다.

 

이 계곡의 첫 번째 열에 묻힌 가족집단은 말을 매장하지 않은 혹은 말을 매장할 수 없는 조건의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두 번째 열이라고 불리는 21~30호 무덤이 먼저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스키타이 문화의 석관묘(돌널무덤)은 이미 아르잔-2호에서부터 확인된 무덤 시설이고, 그 이후에도 많지는 않지만 확인된다. 유스티드 XII유적 및 울란드리크 I유적 5호 에서도 석관묘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기원전 4세기 가량으로 보았다.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5호 미라가 발견된 석관묘에는 바닥에 나무판 4개를 깔았는데 목곽묘(나무무덤방)의 바닥시설이다. 어쩌면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열에서 25호 석관묘는 유스티드 XII유적, 울란드리크 I유적의 석관묘 보다도 더 오래되었을 수 있다. 목곽묘(나무무덤방)의 전통이 남아 있는 혹은 채용한 혹은 스타일 등등 용어는 붙이기 나름이다.

미라가 발견되고, 다른 유적에 비해서 유물이 많이 출토되는 점(바르부르가지 I유적 25호)을 보아서 석관묘가 목곽묘(나무무덤방)보다 ‘못한’ 무덤 시설로 볼 수 없다. 오히려 돌로 만든 무덤은 스키타이 이전 청동기시대 전통에 더 까깝다.

 

시베리아에는 청동기시대부터 무덤 시설로 사용된 것은 돌로 만든 돌널무덤이다. 청동기시대로 거슬러가서 스키타이 문화와 가장 가까운 문화인 카라숙문화, 안드로노보 문화, 오쿠네보 문화, 아파나시에보 문화(역순)에서는 모두 돌널무덤이다. 무덤을 둘러싼 호석(무덤울타리)이 모두 발견된다. 사실 청동기시대 이전 신석기시대에도 간략하지만 돌을 무덤 시설로 사용했다. 말을 통째로 매장하지 않았다.

청동기시대 카라숙 문화 이후에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지로 알려진 아르잔-1호에서 통나무 6000개를 사용해서 나무로 만든 무덤 이후부터 나무가 무덤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돌이 무덤의 시설로 이용되지만 나무도 함께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에서 고대로부터 자연교통로가 된 추야 강에는 북쪽으로 유스티드 강, 남쪽방향으로는 울란드리크 강이 흐른다. 울란드리크 강 유역에는 8개의 스키타이 문화 유적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무덤이 있는 곳은 울란드리크 I 유적이다.

울란드리크 I유적에는 통나무관을 무덤방으로 쓴 무덤이 있다. 다른 무덤은 대부분 나무를 결구해서 만든 무덤방이다.

 

 

 

 

 

그림 1. 울란드리크 I유적의 4호분과 출토유물

 

 

 

 

그림 2. 울란드리크 I유적의 6호분

 

 

그림 3. 울란디르크 I유적의 6호분 출토유물

 

 

 현재 자료로 통나무관이 확인된 가장 오래된 유적은 2700년 전 아르잔-2호로 3~9달 된 유아무덤으로 이용된 바 있다. 그 이후 2600년 전 바샤다르 유적에서는 성인 무덤에서도 통나무관이 사용된다. 통나무관이 확인된 무덤에서는 시신은 모두 미라 처리되었다. 바샤다르 유적의 2호, 파지릭 2호, 파지릭 5호, 아크 알라하 3유적으로 2600~2500년 전의 유적이다. 이 보다 늦은 시기의 유적인 2400년 전 울란드리크 I유적의 4호와 6호, 유스티드 XII유적 6호에서는 통나무관에서는 성인이 아닌 어린아이가 묻혔다.

아직 확인된 바 없지만 파지릭문화(알타이 스키타이 문화)의 전성기라고 하는 2600~2500년전에도 통나무관이 어린아이의 매장시설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

 

 러시아학계에서는 위에서 말한 통나무관을 쓴 무덤은 당시에 최상급 계급의 사람이 묻힌 것으로 여긴다. 통나무로 만든 무덤방+통나무관 1기+남녀가 합장한 무덤이 상위계급의 규율 같은 것이었을 수 있다. 물론 무덤방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깊은 구덩이와 두텁게 덮은 돌은 부수적으로 따라 올 수 밖에 없는 무덤 인테리어였을 것이다.

 

 그런데 돌연변이 같은 존재가 아크 알라하 3유적(일명 얼음공주의 무덤)과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얼리어답터 전사)이다. 둘다 미라로 처리되었지만, 다른 미라 발견 무덤과는 달리 혼자 묻혔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은 크지 않은 무덤에 통나무가 이용된 장법이었고,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분 남성은 나무로 된 무덤방에 묻혔다. 사실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지만 2500년전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 무덤방은 2400년 전 만들어지기 시작한 울란드리크 강 유역, 유스티드 강 유역의 무덤과 비슷하다. 그의 무덤방 스타일이 후대에 이어진 것이다.

어린아이 무덤시설로 통나무관을 사용한 예가 2600~2500년 전에 확인된 바 없지만 그 전통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2400년 전 울란드리크 강과 유스티드 강 유역에도 다시 나타났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쩌면 2600~2500년 전 파지릭 문화의 전성기때 성인남녀 무덤에 통나무관이 들어간 것이 스키타이문화의 전통에서 잠시 동안 나타난 무덤장제였을 수도 있다.

 

 시베리아 남부의 투르크 인들은 아이를 나무 구멍 속에 매장했고, 나나이족도 비슷한 풍습이 있다(르보바, 옥탸브르스카야 외 1988, 스몰랴크 1976). 어린아이를 나무 혹은 그루터기에 묻는 것은 자연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낸다는 생각을 내포하고 있다(골로브뇨바 1995).

 

  울란드릭크 I유적에서는 물싸리 줄기가 많이 확인되었다. 이 줄기를 분석한 결과 봄에 유적이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풀은 봄이 되면 노란색 꽃을 피우는데, 파지릭 유적에는 한 다발을 넣었던 것으로 분석되었다. 앞에서 늦봄에서 여름에 만들어진 무덤은 아크 알라하-3유적, 파지릭 유적 2호분, 파지릭 유적 5호분 등이 있었다. 주로 말의 위에서 나온 풀의 상태 등을 보고 유적이 만들어진 시점을 파악했는데, 물싸리도 그 근거가 된 것이다.

투르크 전통에는 ‘절벽에 노란 꽃이 피었을 때, 가을과 겨울에 죽은 사람을 매장한다’고 한다(비추린 1950).

아크 알라하 3유적을 발굴한 폴로시막도 물싸리 꽃을 신화-의식 세계에서 부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 파지릭 문화의 대부분 무덤에서 발견되는 금박으로 만들어진 꽃과 비슷한 장식품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

 

2600~2500년 전 성인 무덤속에 온통 재생을 의미하는 꽃과 이 꽃을 닮은 금박장식을 넣어두었다면, 어린아이의 무덤시설인 통나무관에 성인남녀를 묻음으로써  같은효과를 기대했을 수도 있다.

 

*앞에서 울란디르크 강과 울란디르크 무덤이라고 했는데, 필자가 거꾸로 읽음. ‘울란드리크(Уландрык, Ulandryk)’입니다.

*앞에서 BBC에서 만든 아크 알라하 3유적의 다큐멘터리를 공유했다. 그 곳에서 가장 처음에 노란색 꽃이 나오는데, 물싸리 꽃이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

Бичурин Н.Я. (Иакинф) Собрание сведений о народах, обитавших в Средней Азии в древние времена. М.-Л.: Наука, 1950. Ч. 1. 381 c.(비추린 1950, 고대 중아시아 주민에 대한 정보)

Львова Э.Л., Октябрьская И.В., Сагалаев А.М. и др. Традиционное мировоззрение тюрков Южной Сибири. Пространство и время. Вещный мир. Новосибирск: Наука, 1988. 224 с.(르보바, 옥탸브르스카야, 사가라예프 외 1988, 시베리아 남부 투르크 인의 전통적인 세계관)

Смоляк А.В. Представления нанайцев о мире // Природа и человек в религиозных представлениях народов Сибири и Севера. Л.: Наука, 1976. С. 129-161.(스몰랴크 1976, 나나이족의 세계관)

Головнёв А.В. Говорящие культуры. Традиции самодийцев и угров. Екатеринбург: Изд-во УрОРАН, 1995б. 600 с.(골로브뇨바, 사모예드 족과 우그리아족의 문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의 2600년 전 투엑타 유적에서는 여러 모양의 그리핀 장식이 출토된다. 알타이 지역에서 많이 출토되는 독수리머리 그리핀은 다른 모양으로도 변형되는데 갈기가 없고 뿔과 귀만 달린 독수리 그리핀이고 목이 길게 표현되어서 ‘S’자형에 가깝다.

 

S자형 그리핀은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에서 많이 볼 수 있다(바르코바 1987).(이 유물은 독수리 머리에 맹수의 귀만 붙인 것으로 뿔이 없는 점은 차이가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시베리아에서 출토된 것이 현재 상트페테르부르그에 있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보관중이다.

2020/02/1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 시베리아 황금유물 컬렉션의 사연

 

러시아 에르미타주박물관 시베리아 황금유물 컬렉션의 사연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네모꼴 나무방패를 살펴보다가 우리는 ‘솔로하’라고 하는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빗에도 비슷한 유물이 새겨졌다는 사실을 알았��

eastsearoad.tistory.com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뿔 없는 독수리머리 그리핀이 함께 표현되는 주제는 두 동물이 싸우는 장면이다. 동물투쟁문(그림 1)이라고 부른다.

 

그림 1. 에르미타주 소장, 동물투쟁문 중 일부(아르타모프 1973, 필자편집), 에르미타주 소장

 

동물투쟁문은 파지릭 유적에서 주로 펠트 혹은 가죽 아플리케 장식으로 표현(그림 2)되었고, 카탄타 유적에서는 나무판에 조각된 것이 확인되었다(그림 3) 표트르 1세가 수집한 유물은 주로 금속이다. 재료의 차이에서 오는 표현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두 동물이 싸우는 장면은 매우 유사하다. 특히 나무판에 새겨진 카탄타 출토의 동물문양장식(그림 3)은 전체평면형태도 에르미타주에 소장된 유물과 같다.

 

 

 

그림 2. 시베리아 알타이 파지릭 유적과 카탄타 유적(k)에서 출토된 동물투쟁문양 주제, 에르미타주 소장

 

그림 3. 시베리아 알타이의 카탄타 유적에서 출토된 목제 장식판(그림2-k 유물과 동일)

 

동물투쟁문양은 기원전 5세기에 등장한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그래서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의 황금 투쟁문양도 기원전 5세기 혹은 그 보다 약간 늦은 기간의 유적에서 출토되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의 동물투쟁문은 알타이의 문양에 독수리(그림 1-1,2) 혹은 독수리머리 그리핀(그림 1-3~6)이 머리쪽에 위치하고 그 아래에 두 마리가 싸우는(정확하게는 포식자가 물어 뜯는) 장면이다. 알타이의 파지릭과 카탄타 유적(그림 2)에는 주로 2마리만 배치되었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73 : Сокровища саков. М.: 1973. 280 с.(아르타모프 1973, 사카족의 보물)

Баркова Л.Л. 1987 : Образ орлиноголового грифона в искусстве древнего Алтая (по материалам Больших Алтайских курганов). // АСГЭ. [Вып.] 28. Л.: 1987. С. 5-29. (바르코바, 1987, 알타이 고대 예술에서 독수리형 그리핀의 모양에 대해서: 알타이의 대형 무덤출토품을 중심으로)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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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의 2600년 전 무덤인 투엑타 유적의 1호에서는 코젤(산염소)의 뿔을 나무로 만든 것이 출토되었다. 말의 얼굴에 씌웠던 말의 가면 중 뿔에 해당하는 유물이었다. 쌍으로 확인된 것은 모두 3쌍이었으나 부속품 등이 더 많이 출토되어서 더 많은 말 가면이 있었을 것이다.

 

코젤은 사슴과 달리 뿔을 뒤로 휘어지게 표현한다. 사슴의 뿔은 가지처럼 표현하거나 종종 뿔이 없는 사슴도 발견되기도 한다. 코젤이 표현된 유물은 알타이 뿐만 아니라 넓은 스키타이 문화권 중에서 흑해부근에서도 발견된다.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 위치한 쿠반 지역은 흑해를 서쪽으로 한 곳이다(그림 1). 쿠반 강은 흑해로 흘러간다. 쿠반 강에서 19세기 말에 발굴된 대형 고분 가운데서 코젤을 표현한 유물이 스키타이 무덤에서 출토된다.

 

 

그림 1. 흑해 부근의 스키타이 유적(Ullyap: 울스키 아울)

 

 

청동판에 코젤은 매우 사실적이지만 나머지 동물은 입과 눈모양만으로 캐리커쳐 한 것처럼 특징만 부각시켜서 독수리로 표현했다. 전체적으로 새의 부리와 눈이 강조되었고, 큰 눈위에 독수리 부리와 눈만 표현된 것이 3개 있고 부리에도 같은 표현이 있다(그림 2).

이 유물은 지팡이나 막대 끝을 장식하는 것인데, 방울이 2점 붙어 있다. 그래서 일종의 간두령(竿頭鈴: 지팡이 끝에 붙인 방울)이라고 한다. 소리나는 방울을 단 지팡이를 사용할 때는 구지 설명하지  않아도 제사지낼 때이다.

 

그림 2. 울스키 아울 유적 2호분 출토, 높이 26cm, 너비 18.9cm, 1908년 조사

 

이 유물이 출토된 울스키 아울(Ульский аул, Ulsky aul)유적의 1호분은 그 모습의 스케치가 남아 있다(그림 3). 높이가 6미터에 달하는 봉분이 있고 지하에 나무로 된 무덤방을 만든 무덤이다. 코스트롬스카야 유적(그림 4-a)과 같이 무덤방의 천장 위에서 유물이 발견되었다(도굴아님). 이 곳의 고분에도 말이 특히 많이 매장되었는데, 무덤방 둘레에서 확인되었다. 이 보다 빨리 발굴된 무덤(1898년 조사)에서는 말이 400마리 매장되었다고 하는데 도굴이 심해서 전모는 잘 남아 있지 않다.

 

그림 3. 울스키 아울 유적 1호분의 스케치

 

 

위의 그림만으로는 무덤구조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아주 간략하게 그려진 것이다(비교적 최근자료에는 이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가 있는데 여력이 된다면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흑해부근에서 발굴된 스키타이 무덤은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무덤구조가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문양장식은 이를 뛰어넘어서 확인된다. 알타이의 유물에서도 드러났듯이 사실적이면서도 과장된 표현법이 이 곳에서도 사용되는 것이다.

 

그림 4. 흑해 북안의 무덤: a-코스트롬스카야 유적(위는 평면도, 아래는 단면도에 가까움, b-엘리자베틴스카야 유적(무덤 평면도)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리아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스키타이 문화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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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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