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타이 바르부르가지 I유적에서는 스키타이 시대 무덤 28기가 확인된다. 한 계곡에 함께 매장되었으니 한 친족 집단이겠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룹이 있다. 쿠바레프는 남북방향으로 서 있는 무덤 가운데 중앙에 남성의 무덤이 위치하고 앞과 뒤쪽에 여성 무덤이 들어선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2호와 3호는 남성무덤, 그 앞 1호는 아이, 그 뒤는 4호와 5호는 여성무덤인데, 한 그룹으로 보았다. 6~8호도 7호의 남녀의 합장 무덤 앞 뒤로 아이와 여성무덤이 배치된 경우이다. 9~14호도 하나의 그룹이다. 11호와 13호 남성을 중심으로 아이와 여성이 앞 뒤로 배치되어 있다. 이렇게 남성을 중심으로 앞 뒤에 아이와 여성이 배치되는 구조는 바르부르가지 유적에서 3그룹이 있다. 쿠바레프의 자세하지 않은 설명이다.
17~25호를 한 그룹으로 묶었다. 17호와 18호는 열이 다르지만 출토된 유물이 21~25호 무덤과 비슷해서 묶은 것이다. 특히 17호와 18호에서 출토되는 동물문양은 목제로 제작된 것으로 ‘알타이 동물문양장식’(그림 2-3,6)이라고 명명했다. 19호와 20호는 투르크 시대 무덤이고, 24호는 아래에 아무런 무덤이 없는 덮힌 돌만 발견되었다. 16호는 무덤이 매우 소략해서 17호와 같은 석관묘이지만 같은 그룹으로 묶지 않았다.
|
|
무덤호수 |
성별 |
그룹 |
무덤시설 |
말 매장 |
첫 번째열 |
|
1 |
아이 |
1그룹 |
통나무관 |
0 |
|
5세기 |
2 |
남 |
나무무덤방 |
1 |
|
|
|
3 |
남 |
나무무덤방 |
2 |
|
|
|
4 |
여 |
석관묘 |
0 |
|
|
|
5 |
여 |
나무무덤방 |
0 |
|
|
|
6 |
아이(남형 |
2그룹 |
나무무덤방 |
0 |
|
|
7 |
남녀 |
나무무덤방 |
2 |
|
|
|
8 |
여성(서향) |
나무무덤방 |
0 |
|
|
|
9 |
여성 |
3그룹 |
석관묘 |
0 |
|
|
10 |
여성 |
나무무덤방 |
1 |
|
|
|
11 |
남성 |
나무무덤방 |
0 |
|
|
|
12 |
아이 |
석관묘 |
0 |
|
|
5세기 |
13 |
남성 |
나무무덤방 |
1 |
|
|
4~3세기 |
14 |
아이 |
나무무덤방 |
0 |
|
|
|
15 |
남성여성남성 |
|
나무무덤방 |
1 |
|
|
16 |
여성 |
|
석관묘 |
0 |
|
4~3세기 |
17 |
여성 |
4그룹 |
석관묘 |
0 |
|
4~3세기 |
18 |
남성 |
석관묘 |
0 |
|
|
|
19 |
|
투르크 |
|
|
|
|
20 |
|
투르크 |
|
|
두번째열 |
4~3세기 |
21 |
남성 |
석관묘 |
0 |
|
|
|
22 |
남성 |
나무무덤방 |
2 |
|
|
4~3세기 |
23 |
남성 |
석관묘 |
2 |
|
|
|
24 |
|
무덤없음 |
|
|
|
4~3세기 |
25 |
남성 |
석관묘 |
1 |
|
|
5세기 |
26 |
남성 |
5그룹 |
나무무덤방 |
2 |
|
|
27 |
여성 |
나무무덤방 |
0 |
|
|
|
28 |
여성 |
나무무덤방 |
0 |
|
|
|
29 |
여성 |
나무무덤방 |
2 |
|
|
|
30 |
남성 |
나무무덤방 |
1 |
표.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무덤(김재윤 작성)
그림 1.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16호(상)와 17호(하)
그림 2.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17호 유물
마지막 그룹은 26~30호인데 나무무덤방에서 매장된 그룹이다. 앞뒤로 남성이 배치되고 중앙에 여성이 배치되었다.
앞서 살펴본 울란디르크 계곡의 유적과 유스티드 계곡, 파지릭 계곡의 유적과 비교해 볼 때 가장 빨리 만들어진 무덤은 2,13,26호로 기원전 5세기의 무덤이다. 14호, 17, 18, 21, 23, 25호 무덤은 기원전 4~3세기에 만들어진 무덤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속해 있는 무덤의 그룹은 만들어진 순서가 정해질 것이다.
2호,13호, 26호가 속한 1그룹(표 참고)과 5그룹, 3그룹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3그룹 무덤 가운데 14호 무덤은 기원전 4~3세기 가량임으로 1그룹과 3그룹 보다는 늦게 만들어졌을 수 있다.
1그룹, 5그룹-> 3그룹-> 4그룹의 순서로 무덤이 들어섰다. 바르부르가지 I유적의 28기 무덤은 가장 앞 열과 뒷 열의 무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중앙을 채워가는 방법이다. 물론 쿠바레프는 이 점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룹화 된 무덤과 연대를 바탕으로 필자가 복원한 것이다. 2그룹과 15호, 16호는 유물을 비교하면 좀 더 정확하게 유적에 들어선 무덤 순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한 그룹은 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와는 어떻게 다른 지는 모르겠지만 그 그룹이 모여서 할 수 있는 행위는 같이 밥 먹기, 같이 이동하기 등등이 해당될 것이다.
이 유적에서는 탄소연대측정은 딱 1기에서 확인되었는데, 4호 무덤이다. 보정연대로 기원전 490년에 해당된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답답하실 것이다. 왜 좀 더 세밀한 분석을 못하는지에 대해서..이 유적을 발견한 것은 1968년이고 유적 전체를 발굴완료한 것은 1978년이다. 바르부르가지I유적이 보고된 책이 나온 해는 1992년이다. 1991년은 소비에트 연방이 망한(페레스트로이카) 해이다. 이 유적의 탄소연대측정이 단 한건만 이루어진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당시에는 모든 게 뒤바뀌면서 배급이 끊어지고 먹을 것이 없었다고 한다. 모든 것이 국가의 지원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그 지원이 끊긴 상황에도 그래도 책을 낸 쿠바레프 박사와 이를 지원한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에 응원을 보내야 한다..늘 느끼는 거지만 국가의 재력은 학문의 수준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 > 바르부르가지 강의 유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타이 어느 스키타이 가족의 남녀 (4) | 2020.10.30 |
---|---|
알타이 부활하지 못하는 스키타이 아이 (6) | 2020.10.29 |
알타이의 동물문양장식이 사라진 스키타이 무덤 (0) | 2020.10.27 |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의 말 없는 석관묘 (0) | 2020.10.26 |
알타이의 스키타이 미라 유물 (4) | 2020.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