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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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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는 외부의 영향이 꽤 있었던 것으로 소개해 드렸다. 주로 고대 이란 및 우라르트, 그리스와 관련된 유물이었다.

기원전 8~7세기의 유적은 켈레르메스 유적과 멜구노프 유적이 잘 알려져 있다. 최근의 발굴된 이 시기의 유적도 있으나 잘 알려진 유적은 18~19세기에 이미 발굴되었다. 당시에 큰 무덤을 중심으로 발굴을 했고 그 유적에서 나온 유물들은 상당히 부장양도 많고 관심을 끌 수 있었다. 특히 18~19세기 발굴에서 학문적으로 발굴을 했다고 해도 지금과 같이 정확한 무덤의 구조나 모든 유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특히 세간의 관심된 황금 유물 중심으로 연구된 내용이 많고, 그 유물은 인접한 국가에서 제작되어 복잡한 당시 정세를 보여 줄 수 있다.

흑해 북안의 스키타이 문화 유적들도 작은 규모의 무덤도 있지만 대형 무덤은 ‘차르’무덤으로 구분되고 거의 19세기에 이루어졌다고 무방하다(알렉세예프 2012).

 

그런데 스키타이 문화권은 유라시아 초원에서 공통성이 나타나는 요소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은 것이고 이를 뒷받침 하는 것은 공통적인 생업경제라고 했다.

 

스키타이 삼요소라고 불리는 무기, 마구, 동물문양장식이 그 공통성이다. 하지만 켈레르메스 고분에서 출토된 은제 거울이나 전투용 도끼, 검 등은 시베리아에서 볼 수 없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매우 다른 것이었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도 자신의 문화적 특징을 보여주는 유물은 이미 소개되었다. 사슴과 표범으로 장식된 화살통 황금장식판, 사슴 방패장식판, 표범 장식판 등이다.

 

또 하나의 유물이 있는데, 청동 거울이다.

청동거울은 중앙에 꼭지가 붙었고, 가장자리에 테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꼭지에는 몸을 말고 있는 맹수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그림1. 켈레르메스 청동거울, 직경 15.2cm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은 시베리아의 아르잔-1호(기원전 9세기)에서 출토된 바 있다. 아르잔-1호의 유물은 말의 앞 가슴을 장식했던 것이다. 용도는 다르지만 몸을 말고 있는 맹수문양의 전통이 이곳에서도 확인된다.

 

켈레르메스 유적과 같은 시기의 시베리아 유적인 아르잔-2호에서는 주인공 무덤방 5호에서 청동거울이 출토되었다. 거울은 중앙에 꼭지가 있고, 가장자리에 테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아르잔-2호(아래 포스팅)의 꼭지는 문양이 없어서 두 유적의 유물은 차이는 있다.

 

포스팅

2020/06/0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2700년 전 시베리아의 철기시대 청동거울

 

2700년 전 시베리아의 철기시대 청동거울

유라시아를 풍미했던 스키타이 문화는 시베리아에서는 철기시대에 해당된다. 아르잔-2호에서도 철제품이 풍부하게 출토되지만 여전히 청동으로 만들어지는 유물이 있다. 앞서 아르잔-2호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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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청동거울의 중앙에 꼭지를 붙이고, 테두리를 만든 청동 거울의 스타일은 동일한 것이다. 켈레르메스 유적의 청동거울에 있는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은 시베리아에서 유래된 것이다.

반대로 시베리아 아르잔-1호에서는 고대 이란 지역의 직조물이 발견되었다. 아르잔-2호에서도 고대 이란의 직조물이 출토되었다. 뿐만 아니라 목걸이에 새겨진 낙타 등 흥미로운 점이 많다.

 

시베리아와 흑해에서 확인되는 유적에 남아 있는 유물은 기원전 8~7세기 스키타이 문화권 혹은 스키타이 세계를 연결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켈레르메스 유적의 청동거울의 스타일과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참고문헌

 

아르타모노프 1966,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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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를 풍미했던 스키타이 문화는 시베리아에서는 철기시대에 해당된다. 아르잔-2호에서도 철제품이 풍부하게 출토되지만 여전히 청동으로 만들어지는 유물이 있다.

앞서 아르잔-2호의 무덤방 5호에서도 무덤구덩이와 무덤방사이에 청동으로 된 솥 2점이 발견되었다.

 

아르잔-2호의 주인공이 묻힌 무덤방 5호에서는 바닥에 유난히 푸른빛을 띠는 2개의 원형 유물이 눈에 띈다.

 

2020/05/1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2호] - 그 언젠가...스키타이 문화의 '미라'가 영화가 된다면...

 

그 언젠가...스키타이 문화의 '미라'가 영화가 된다면...

최근 넷플릭스로 영화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말하지 않아도 코로나 때문에 더 유행이 된 것이다. 원래도 유행하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필자한테 보라고 넷플릭스가 권하는 영화 중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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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남녀의 머리 위에서 놓여 있었다. 남성과 여성은 좌측을 향해서 누운 상태로 거울은 그 방향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거울은 펠트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거나 혹은 펠트 주머니 위에 놓였을 던 것으로 보인다.

 

남성의 거울(그림 1-2)(직경 7.7cm)은 거울 가장자리에 테두리(높이 0.9, 두께 0.15cm)가 달려 있고 뒷면 중앙에 3개의 홈이 있는 꼭지(그림 2-1 참고)가 달려 있다. 꼭지에는 가죽끈이 달려 있는데, 일종의 클립(고리)가 달려 있다. 금으로 만든 것과 금과은을 합금물질로 만든 것이다. 2개가 세트가 되어서 교차해서 장식되었다.

 

고리장식(그림 1-5)은 납작한 금박을 구부려서 만들었는데, 중앙에 길게 갈비뼈가 있다. 너비 0.7~0.9, 길이는 0.9cm정도 된다. 금과 은 합금물질도 같은 크기이다. 원추모양의 금장식품(그림 1-1,3)도 거울의 부속품(높이 0.5cm, 상단직경 0.6, 하단직경 1.2cm)이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거울과 그 부속품, 꼭지가 달린 부분은 거울의 뒷면이다. 거울의 앞면은 장식이 없다. 4,5는 거울과 관련없다.

 

 

 

 

그림 2.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거울(그림1과 동일유물), 뒷면에 달린 꼭지의 모습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여성의 거울(그림 3-1)은 남성의 거울보다 크고(직경 11.2cm), 뒷면의 가장자리에 테두리가 없다. 여성 거울의 뒷면에는 역시 중앙에 꼭지가 달려 있는데, 4개의 홈이 있는 모습이다. 꼭지에는 역시 길이 9cm 가죽끈이 꿰어졌다. 가죽끈에는 금으로 된 클립이 18개 끼워진 상태이다. 클립은 주물 틀에서 제작된 것으로 3개가 한쌍이다. 3개가 한쌍이 되어서 6그룹이 끼워졌는데, 같은 간격이다. 거울 근처에서는 금으로 제작된 원뿔모양(그림 3-2) 부속품이 있는데, 남성의 것과는 달리 문양이 없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여성의 거울과 부속품. 꼭지가 달린 부분은 거울의 뒷면이다. 2가 거울 근처에서 출토된 것이고, 3~7은 거울과 관련없다.

 

 

 

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여성의 거울(그림 3과 동일유물)과 부속품, 뒷면에 달린 꼭지에 가죽끈이 달린 모양이 잘 이해된다. 

 

 

우리가 이제까지 살펴본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 얼음공주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 3유적과 파지릭 유적 2호분의 거울을 보았다. 두 거울의 모습은 각각 다른데, 얼음공주의 거울은 손잡이가 달린 나무판에 청동과 주석 합금으로 된 납작한 판을 경면으로 붙인 형태였다. 파지릭 2호분의 거울은 은으로 된 둥근 거울 끝에 자루가 달려서 뼈로 된 손잡이(?)에 끼워서 사용한 형태였다. 이 무덤에서 출토된 거울과는 사뭇다르다.

 

하지만 필자가 거울의 뒷면에 사슴이 돌아가면서 장식된 거울을 소개한 바 있다. 표현된 사슴의 등에 혹이 있어서 매우 이른 양식의 거울이라고 했다.

 

2020/05/0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있는 거울 속의 사슴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있는 거울 속의 사슴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무덤에서는 인간과 함께 말이 매장되었다. 재밌는 점은 인간과 관련된 유물보다는 말과 관련된 유물이 더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물론 파지릭 1호분은 주인공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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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이 표현된 거울은 중앙에 꼭지가 떨어진 상태였지만 꼭지가 있었고, 가장자리에 테두리도 있다. 사슴그림을 제외하고는 아르잔-2호 남성 거울과 스타일이 거의 비슷하다.

이미 포스팅 한 바 있는 사슴이 그려진 거울은 출토지가 명확치 않아서 사슴그림으로 기원전 8~7세기라고 추정했다.

이 거울의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증거가 아르잔-2호에서 출토된 거울(그림 1,2)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거울을 만드는 방법이 유사해서 동시대에 만들던 방법으로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잔-2호 거울에는 사슴이 없는데 그거 다른거 아니냐고 ?

거울에는 없지만, 아르잔-2호에는 등에 혹이 있는 사슴이 있다.

 

한가지 더, 철기시대라고 청동이 없어지는게 아니고, 철기시대라고 뼈와 목제품이 사용되지 않는게 아니라 뼈, 목제품도 사용된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무덤에서는 인간과 함께 말이 매장되었다. 재밌는 점은 인간과 관련된 유물보다는 말과 관련된 유물이 더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물론 파지릭 1호분은 주인공이 이미 도굴로 없어져 버려서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동시대의 알타이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일명 ‘얼음공주’라고 불린 여성도 마찬가지이다. 유물은 대부분 그녀가 입고 있거나 착장하고 있는 머리장식이었다. 필자가 이야기 하는 것은 필요도 없는 유물을 무덤 안에 꽉 채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파지릭 2호분에서도 주인공 관련 유물은 의복과 토기, 목기이다. 반면에 말은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사실 말을 부릴 때 필요한 것은 재갈과 고삐이다. 그 외는 전부 장식적인 요소인데, 말은 대부분 치장되었다.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 중에 일종인 파지릭 문화에서는 주인공 관련 유물 가운데는 거울도 있다. 얼음공주의 거울은 손잡이가 달린 목제로 만든 거울에 경면은 청동으로 만들어 붙인 것이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서 출토된 것은 은제로 만든 거울을 뿔로 만든 받침대에 삽입해서 만들었다. 둘다 거울을 담는 주머니가 있었는데, 얼음공주 거울은 펠트로 만든 주머니 였고, 파지릭 2호분의 은제 거울은 표범가죽으로 만든 것이었다.

(두 개의 포스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크 알라하 3 유적 얼음공주의 거울

2020/01/3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시베리아 알타이 얼음공주의 거울과 목걸이

 

시베리아 알타이 얼음공주의 거울과 목걸이

2500년 전,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서도 아크 알라하 3유적 중에서 1호분에 묻힌 여성은 25~30세 혹은 조금 더 정확하게 28세에 생을 마감했다. 이제 까지 시베리아 알타이의 ‘얼음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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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릭 2호분 은제 거울

2020/03/3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2호분] - 2500년 전 알타이 산 파지릭 유적의 2호 무덤을 마감하면서...

 

2500년 전 알타이 산 파지릭 유적의 2호 무덤을 마감하면서...

시베리아의 알타이 남부 파지릭계곡에는 2500년 전 공동묘지가 있다. 그곳의 이름은 파지릭 유적인데, 2호분에는 남성과 여성 미라가 확인되었다. 이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를 이루는 한 장소로서, 알타이에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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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 가운데서 흑해와 가까운 쿠반 강(카프카스 산맥 북쪽, 강은 흑해로 흘러감) 유역에서 출토되는 거울은 청동으로 제작되었는데 손잡이에 동물문양장식이 부착되었다(그림 1). 예전에 이야기 한 바 있는 그리스-이오니아 양식의 유물로, 스키타이 인들이 그리스 공방에 주문해서 제작했었을 것으로 본다. 손잡이의 세로 방향 으로 깊게 파인 모습이나, 손잡이가 달린 거울은 그리스 거울과 유사하다고 한다.

 

그림 1. 에르미타주 소장, 쿠반 지역에서 출토된 스키타이 문화의 거울, 기원전 6세기로 추정,손잡이 포함 길이 35.5, 너비 18cm

 

손잡이가 달린 거울은 시베리아에서도 출토되지만, 막대기 모양의 손잡이 대신 해서 바로 동물문양장식이 부착된다. 청동으로 제작되었고, 맹수 두 마리가 서로 머리를 감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그림 2-아래). 유물은 사글리-바치 II유적 출토품이다. 이 유적은 시베리아의 투바에 위치한다. 투바는 이미 공개한 바 있는 아르잔 유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유적은 기원전 5~4세기 가량으로 파지릭 유적 보다 늦다고 평가받는다.

 

시베리아에서 가장 이른 청동거울로 생각되는 유물은 손잡이가 없고, 거울에 꼭지가 붙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알타이의 서쪽에서 채집된 유물로 알려졌는데, 사슴 6마리가 경면(얼굴보는 면)의 반대쪽에 돌아가면서 표현되었다(그림 2-위). 중앙에 꼭지가 붙어 있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재밌는 점은 이 거울의 사슴표현이다.

 

자세히 보면 사슴의 등에서 목과 가까운 부분에 볼록 솟은 표현이 있다. 발은 쭉 뻗어서 발로 선 자세로 표현되었다. 눈은 매우 지나치게 과장해서 둥글게 그렸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사슴의 등은 대게 편평하게 표현된다. 그리고 주로 사슴은 다리를 배 쪽으로 넣고 무릎을 꿇은 자세였지만, 이 사슴은 다리를 쭉 펴고 있다. 이 유물은 기원전 8~7세기 가량으로 평가받는다.

 

 

 

그림 2. 시베리아의 스키타이 문화의 거울, 위: 청동제, 알타이 서부지역 수집(부흐타르마 라고 알려짐). 에르미타주 소장, 13.5cm, 아래: 청동제, 사글리-바치II유적 기원전 5~4세기, 발굴품

 

거울은 발굴된 유물이 아니라 채집된 유물인데 어떻게 구체적인 연대가 나왔을까?

 

답은 사슴의 표현에 있다.

 

파지릭 고원에서 동쪽에 위치한 투바지역에서 발굴된 아르잔 1유적에서 확인된 유물 때문이다. 아르잔 1유적에서는 봉분(무덤을 덮은 흙) 위에서 사슴돌이 몇 개 발견되었다(그림 3). 사슴돌은 일종의 비석처럼 생긴 것인데, 주로 사슴이 그려져서 사슴돌이라고 한다.(그러나 사슴만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사슴돌에는 등이 볼록 솟아있고, 발을 곧추세운 사슴이 그려져 있다(그림 3-1). 뿐만 아니라 이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제 사슴표현에도 발을 뻗어서 표현한 유물이 확인되었다. 아르잔 1유적의 연대가 기원전 834년 기원전 9세기에 이 유적이 만들어졌다면, 청동거울에 그려진 사슴문양도 그 때 유행했던 문양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사슴돌은 이 지역 청동기시대인 카라숙문화에서 아주 널리 유행했는데, 등이 솟은 사슴표현은 그 때부터 전해지던 것이다. 즉 사슴표현 중에서 아주 이른 표현방법이다.

 

 

그림 3. 아르잔 1유적의 봉분 위 사슴돌(1~6)

 

이런 이유 때문에 사슴문양 청동제 거울은 대략 기원전 8세기부터 늦게는 기원전 7세기에 만들어진 유물로 본다. 물론 사슴청동제 거울(그림 2-위)이 출토된 유적이 더 빠를 수 있지만, 고고학자들은 좀 더 보수적인 선택을 한다. 확실한 연대가 있는 유적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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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2500년 전 알타이 위주로 스키타이 문화를 살펴보았다. 좀 더 자세하게는 파지릭 문화라고 일컫는다. 아시다시피 스키타이 문화라고 불리는 문화는 흑해 북안부터 시베리아 까지 매우 널리 퍼져 있었다. 기원전 9세기 까지 올라가는 유적이 있는 곳은 시베리아의 투바 이고, 아르잔 1유적에서 확인된다.

(아래 포스팅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권역에 대한 표를 확인할 수 있다).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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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북안에서 시베리아까지 광범위하게 퍼진 시간은 기원전 8~7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로 이 기간과 공간을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한다. 혹은 스키타이 세계, 스키타이 문화공동체라고도 한다. 그냥 쉽게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하자.

 

하지만 시베리아 남부 투바의 아르잔 1유적을 발굴(1971~1974년)하기 이전까지는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설은 흑해북안에 출토되는 그리스 스타일의 유물과 관련된 것으로 믿었다.(앞에서 스키타이문화의 기원과 관련된 학설을 설명한 바 있다)

왜냐하면 19세기 말 흑해북안과 가까운 쿠반 강(코카스서 산맥의 북쪽) 유역에서 발굴된 유물에서 동물문양장식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그리스 스타일의 색채를 많이 띄고 있었다. 이름하여 그리스-이오니아 양식이라고 불렸다.

이 지역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그리스 스타일 유물은 스키타이 문화인들이 그리스장인에게 ‘오더 메이드’해서 만든 주문자생산방식으로 제작된 것이다. 당시 그리스는 흑해 북안에도 식민도시를 두었다고 한다(헤로도투스도 그리스 식민도시인 흑해의 올리비아에 살았다.)

 

그럼 어떻게 그리스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

 

그림 1은 켈레르메스(유적의 위치는 아래 포스팅 참고)라고 하는 유적의 4호분에서 출토된 거울이다. 은제 거울인데, 얼굴을 볼 수 있는 면은 은제로 주조된 것이고, 그 반대부분에는 중앙에 고리가 달렸던 흔적이 남아 있다. 8부분으로 섹션을 나누어서 주제가 그려져 있다. 8개의 각 섹션은 금제로 만든 판을 은제 원판에 붙이도록 제작된 것이다. 섹 션 사이의 눈금이 있는 부분은 금테인데 뗌질 되었다. 주조한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거울의 가장자리를 보면 알 수 있다. (필자는 주조방법을 설명할 때 붕어빵 굽는 것을 대입해서 학생들에게 설명한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 4호분 출토, 17.3cm

 

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출토, 그림 1의 세부

 

거울의 가장 상단부에 그려진 여성은 사이벨레(그리스의 아르테미스)로 양손에 표범을 들고 있고, 여신과 대칭되는 곳에는 털로 덮인 괴물들이 사자머리 그리핀과 싸우고 있다. 날개달린 여성, 털달린 괴물, 사자머리 그리핀은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요소이고, 양과 같은 동물은 스키타이 문화의 요소이다. 그리고 중앙에 꼭지가 달려 있는 거울은 시베리아 남부에서 출토되는 유물에서 확인되는 특징이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그리스적이지 않은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문양도 확인된다.

 

금제 유물 장식으로 표범을 형상화 한 것이다. 켈레르메스 유적은 기원전 7세기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아르잔 1유적이 발굴되기 전까지 그림 3과 같은 유물이 가장 이른 동물문양장식으로 여겨졌다.

 

그림 3.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길이: 32.6cm, 높이 16.2cm, 방패장식으로 생각됨. 

 

위의 말은 바꾸어 말하면, 아르잔 1유적이 발굴되고 나서 그 생각은 바뀌었다는 것이다. 즉 더 이상 스키타문화에서 그리스-이오니아 양식으로 동물문양장식이 생겨났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리스 스타일의 유물이 스키타이 문화의 요소에서 확인되는 것은 맞다.

 

현재 이 유물들은 에르미타주에 소장되어 있다.

원래, 이 유물들은 표트르 1세가 모은 시베리아 황금유물 컬렉션과 함께 처음에는 쿤스트카메라에서 보관되었다. 그런데 표트르 1세가 수집한 시베리아 황금 유물과 흑해북안의 유물 중에서 비슷한 공통점이 발견되었고, 헤로투투스가 기록한 대로 이 문화가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헤로도투스는 올리비아에 살았기 때문에 당시 흑해북안에 살던 이민족을 ‘스키타이’라고 불렀고, 이 문화의 이름도 여기서 연유하게 되었다.

 

흑해북안의 유적들은 1859년에 아직 로마노프 왕조가 있을 때 제국고고학위원회에서 시작했다. 켈레르메스 고분은 1904년에 발굴된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발굴되어서 스키타이 문화의 그리스 기원설은 시베리아 유적을 발굴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학계에서 대세를 이루었다. 시베리아의 대표적인 파지릭 유적은 1920년대 1호분 이후에 1947~1948년에 발굴되었고, 아르잔 1유적(스키타이문화의 가장 오래된 유적)은 1971~1974년에 조사되었고 현재는 스키타이문화의 기원 및 중심은 시베리아이다. (아르잔 1 유적에 대한 설명은 앞으로 할 예정입니다)

 

2020/04/1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기원전 9세기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의 기원에 대한 여러의견

 

기원전 9세기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의 기원에 대한 여러의견

우리는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대형의 벽걸이를 보았다. 그곳에서는 얼굴이 다른 남녀가 표현되어 있었다. 특히 남성은 말을 타고 있었는데, 남성의 복장은 알타이 지역의 2500년 전 문화에서는 볼 수 없는 짧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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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아르타모노프 1966,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페레보드치코바 199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의 알타이 남부 파지릭계곡에는 2500년 전 공동묘지가 있다. 그곳의 이름은 파지릭 유적인데, 2호분에는 남성과 여성 미라가 확인되었다.

 

이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를 이루는 한 장소로서, 알타이에 위치한 유적은 파지릭문화라는 지역명칭이 있다. 파지릭문화에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를 소개한 바 있다. 시신을 미라 처리했다는 점에서 두 유적은 늘 비교된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은 살아생전에 샤먼이었을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한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은 스키타이 문화의 왕족이었다고 들 한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흔히들 거울은 샤먼의 물건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그 당시에는 샤먼과 왕족의 구분이 애매했 던 사회였는지도 모른다. 거울이 일상생활용품은 아니기에 위세품, prestige 라는 말로 설명이 되는지도 모르겠지만....

 

암튼 파지릭 유적 2호분에는 거울이 2점 출토된다. 청동제 거울(그림1)과 은제 거울(그림2,3)이다.

청동제 거울은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도 출토되었는데, 손잡이 달린 목제 틀에 네모난 청동판을 한쪽에 끼워넣은 것이다. 파지릭 2호분 청동제 거울은 원형의 청동제 거울에 한쪽에 손잡이를 붙인 것이다. 거울의 단면은 한쪽은 편평하고 한쪽은 볼록하다. 손잡이는 긴 가죽으로 싼 것이다(그림1-4). 청동거울은 표범모피로 된 주머니와 함께 확인되었다(그림1-5).

 

그림 1. 파지릭 2호분 출토 청동제 거울과 표범모피로 된 주머니

 

 

그림 2. 파지릭 2호분출토 은제 거울

 

 

그림 3. 파지릭 2호분 출토 은제 거울 , X선 촬영

 

은제 거울은 가죽주머니 안에서 화장품과 함께 확인되었기 때문에 여성용이다. 원형(직경 15cm)의 거울 아래에 사다리꼴 모양의 자루(길이 11.5cm)가 아래에 붙어 있다. 거울의 한면은 완전히 매끄럽고 반대쪽은 문양이 있다. 중앙에는 원뿔모양의 원형 꼭지가 있고 그 주변을 원형 테두리가 둘러 싸져 있다(그림 2,3). 그 테두리 주변에는 12개의 동심원 문양이 있고, 그 간격에는 수직 및 대각선으로 음각되어 있다(그림 2). 은제 거울 끝에는 이등변 삼각형 모양으로 자루가 붙어 있고, 이 자루는 뿔로 된 손잡이에 삽입되어 제작된 것이 X선 촬영 결과 알 수 있었다(그림 3). 손잡이의 단면은 팔각형이다.

은제 거울이 여성용이었기 때문에 청동제 거울은 남성의 것이라고 루덴코는 설명했다.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출토된 목제+청동 거울은 나무틀의 뒷면에 사슴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담는 주머니는 펠트로 된 것이었다. 파지릭 2호분의 출토품은 청동제 거울은 손잡이 까지 청동으로 제작되었고, 표범모피로 된 가죽주머니 안에서 보관되었다. 은제 거울 역시 남아 있지는 않지만 표범모피주머니에 보관되었다고 한다. (거울도 동물과 관련을 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경우의 수가 너무 적지만.)

 

필자가 하나씩 설명할수록 놀라운 점은 문화의 성격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방향성은 공통적이지만, 거기에 표현된 것은 각기 개성이 있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전제조건은 같은 시기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유물이 출토된 시간성에 차이가 있다면 동시대의 것이 아니라면 다를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논할 근거가 없다. 그러나 동시대이고, 가까운 장소에서 같은 문화에서 다양한 유물이 확인되는 점은 매우 다양하고 개성이 강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큰 테두리의 질서는 유지되지만 그 안에서의 개성은 존중되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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