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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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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알타이 산 중에서도 해발 높이 1500m가량의 파지릭 고원에는 2500년 전 스키타이 시대에 살던 사람이 묻힌 무덤이 있다. 유라시아를 횡단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을 공통적으로 묶는 일종의 상징 같은 것이 있는데 무기, 마구, 동물문양장식이다. 스키타이 3요소라고 한다. 그런데 동물문양장식은 깍두기 같다. 단독으로도 확인되기도 하지만 주로 무기나 마구에 장식물로 달리기도 하고, 옷, 안장덮개, 방울, 거울, 목걸이 등 다양한 곳에 표현된다. 스키타이 문화권은 흑해북안, 쿠반 지역(코카스서 산맥, 지금의 그루지아), 카자흐스탄, 알타이, 미누신스크 분지 등에서 나타난다. 이 지역을 아울러서 스키타이문화권이라고 한다.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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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포스팅에서 스키타이 문화권의 표를 소개한 바 있다.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불리는 부분은 포스팅에 표시해 두었고, 아래표는 혹시나 제공해 드린다..

 

 

지도. 스키타이 문화권의 분포범위, 위 포스팅의 표와 비교해 보시면 재미있으실 것이다. 필자는 표를 지도로 인식한다.

 

물론 모든 지역의 문화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그들 문화에서 공통적인 요소가 있어서 문화권이라고 한 것이다. 비슷한 요소가 나타나는 이유는 서로 ‘contact’ 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SNS가 없으니 비대면 접촉이 아닌 대면 접촉이었다. 혹은 실제로 만난적은 없지만 전해 들은 사람들이 또 비슷한 유물을 생산하기도 했을 것이다. 생각보다 인간의 활동영역은 매우 넓었다.(우리는 남북이 끊겨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섬으로 여기면서 생각이 닫히는 경우가 많다.)

 

파지릭 고원의 파지릭 유적에는 5호 무덤에서는 4바퀴 마차가 함께 부장되었다. 아마도? 유라시아를 돌아다녔겠지? 알타이 산에서 어떻게?

알타이 산맥은 높지만 바위산 마다 교통로가 있다. 그 곳에서 암각화가 많이 발견된다.

 

 

아뭏튼 파지릭 5호분에는 마차가 매장되었으니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그림 1. 파지릭 5호분의 평면도

 

무덤의 상부 직경이 42m, 높이가 3.75m가량 된다. 5호에는 무덤의 상부를 덮은 돌에서 연접한 남쪽에 둥근 원형으로 돌이 둘러있는 것이 확인된다.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돌 무지의 직경은 3.5m~5.7m이고 간격이다. 이러한 현상은 투엑타 유적에서 확인된다.

 

무덤방의 크기는 8.25×6.65m이고, 무덤바닥은 땅의 표면 기준으로 4m가량이다(그림1).

 

그림 2.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양탄자의 아플리케 장식.

 

 

 

 

참고문헌

 

Золотые олени Евразии.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в Гос. Эрмитаже, СПб, 18 октября 2001 года — 20 января 2002 года. СПб: «Славия». 2001. 248 с. (에르미타주 국가박물관 특별전 도록, 유라시아의 황금 사슴, 2001)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지난 3주 정도는 시베리아의 스키타이 문화권에서도 알타이에 위치한 파지릭문화의 파지릭 유적에서 남녀 미라가 들어간 무덤을 살펴보았다.

 

이제 까지 파지릭문화에 해당하는 무덤은 여성무덤(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남성무덤(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아이무덤(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 남녀무덤(파지릭 유적의 2호분)을 살펴보았다. 나름 자세히 생생히 알려드릴려고 노력했는데, 부족한 점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위의 무덤에는 모두 말이 부장되어 있었다.

그럼 말 만 타고 다녔을 까? 마차도 타고 다녔다. 파지릭 유적의 5호에는 마차가 들어가 있다. 이 유적의 파지릭 2호분은 대체로 2500년 전 아크 알라하 3유적과 비슷한 시점에 공존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유물들이 출토되고, 미라의 몸에 문신이 같은 사람이 그린 것이라면 생각해 볼 수 있다.

 

파지릭 5호분은 파지릭 유적의 1호분 보다 48년 정도 늦은 뒤에 축조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나무 나이테를 비교해서 얻은 상대적인 수치이다. 이 유적이 발굴될 당시 1947~1948년에는 탄소연대측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방법은 1960년대 이후에 개발되었다. 파지릭 1호분은 파지릭 2호분과 같은 시기의 무덤으로 생각한다.

 

파지릭 유적이 위치한 곳은 해발 1500m정도 된다. 이는 앞의 포스팅에서 필자가 구글지형도에 표시해 놓았다. 유적에서 마차가 확인됨으로 마차가 올라갈 수 있는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마차가 갈 수도 없는데, 그곳에 묻었다고 추론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실제로 파지릭유적은 계곡의 낮은 곳과도 가깝고 강 주변의 자작나무로 무덤을 만들었다. 

 

앞에서 러시아 학자들이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는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보다 낮은 계급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원인 중에 하나가 무덤의 크기가 작고, 부장품에 차이, 환경의 차이가 있다고 했다. 특히 파지릭 유적에서 확인되는 마차의 존재는 더 그러한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다. 러시아 학자들은 상대적으로 덜 높은 생활 환경이 좋은 파지릭계곡이 우코크 고원보다 더 상위 계급을 위한 사람들을 위한 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석달 전만해도 긴가민가 하면서 러시아학자들의 생각을 전했다.

하지만 러시아 학자들이 놓친 생각은 우코크 고원의 위치이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은 파지릭 계곡 보다 1000m높은 곳에 위치한다.

발굴당시에 완벽하게 남은 미라를 옮기기 위해서 모스크바에서 헬기를 띄었다. 우코크 고원은 고원에 올라가면 매우 아늑한 장소이지만, 잘 갈 수 없다. 그곳에 가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지난번에 링크한 폴로스막의 인터뷰에도 나온다.

러시아 군용 트럭(가즈-66, 시베리아 벌목공 들이 타고 찍은 군용 트럭의 사진이 간혹 보이는데, 그 차가 군용트럭이다)과 헬기만이 갈 수 있다. 그 군용트럭은 필자도 타 보았는데,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 트럭의 장점은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한시간 정도 타고 나면 사람들은 거의 실신할 정도가 된다. 그 트럭에 미라를 옮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미라는 산산조각이 날 것이기 때문에. 아마 발굴할 때 연구자와 물건들은 군용트럭으로 이동했지만, 몇몇 우두머리와 미라는 헬기로 날랐다는 기사를 읽었다.

 

즉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마차가 없는 것은 그녀가 묻힌 곳이 마차가 갈 수 없는 곳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면 안된다. 그 여성미라가 지위가 낮아서가 아니라 마차가 갈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에 묻었다는 가능성도 열어 두어야 한다.

 

어쨋거나 파지릭 5호분에는 말 9필과 마차가 확인된다.

그럼 시베리아에서 마차는 스키타이문화부터 있었을까?

 

아니니깐 저렇게 물어보겠죠?

이 동네 마차는 마차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지 않지만 마차의 부속품과 마차를 그린 암각화가 청동기시대부터 확인된다. 안드로노보문화와 카라숙문화에서 확인되는데, 차차 소개하도록 하겠다.

어쨋거나 흥미진진하지 않으신지? 무덤 속의 마차라...

 

 

그림 1. 2500년 전 파지릭 유적 5호에서 출토된 마차복원품

 

 

그림 2. 파지릭 유적의 무덤 배치도, 가장 남쪽에서 큰 점이 5호분의 위치이다. 

 

참고문헌

루덴코 1960,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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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의 알타이 남부 파지릭계곡에는 2500년 전 공동묘지가 있다. 그곳의 이름은 파지릭 유적인데, 2호분에는 남성과 여성 미라가 확인되었다.

 

이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를 이루는 한 장소로서, 알타이에 위치한 유적은 파지릭문화라는 지역명칭이 있다. 파지릭문화에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를 소개한 바 있다. 시신을 미라 처리했다는 점에서 두 유적은 늘 비교된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은 살아생전에 샤먼이었을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한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은 스키타이 문화의 왕족이었다고 들 한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흔히들 거울은 샤먼의 물건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쩌면 그 당시에는 샤먼과 왕족의 구분이 애매했 던 사회였는지도 모른다. 거울이 일상생활용품은 아니기에 위세품, prestige 라는 말로 설명이 되는지도 모르겠지만....

 

암튼 파지릭 유적 2호분에는 거울이 2점 출토된다. 청동제 거울(그림1)과 은제 거울(그림2,3)이다.

청동제 거울은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도 출토되었는데, 손잡이 달린 목제 틀에 네모난 청동판을 한쪽에 끼워넣은 것이다. 파지릭 2호분 청동제 거울은 원형의 청동제 거울에 한쪽에 손잡이를 붙인 것이다. 거울의 단면은 한쪽은 편평하고 한쪽은 볼록하다. 손잡이는 긴 가죽으로 싼 것이다(그림1-4). 청동거울은 표범모피로 된 주머니와 함께 확인되었다(그림1-5).

 

그림 1. 파지릭 2호분 출토 청동제 거울과 표범모피로 된 주머니

 

 

그림 2. 파지릭 2호분출토 은제 거울

 

 

그림 3. 파지릭 2호분 출토 은제 거울 , X선 촬영

 

은제 거울은 가죽주머니 안에서 화장품과 함께 확인되었기 때문에 여성용이다. 원형(직경 15cm)의 거울 아래에 사다리꼴 모양의 자루(길이 11.5cm)가 아래에 붙어 있다. 거울의 한면은 완전히 매끄럽고 반대쪽은 문양이 있다. 중앙에는 원뿔모양의 원형 꼭지가 있고 그 주변을 원형 테두리가 둘러 싸져 있다(그림 2,3). 그 테두리 주변에는 12개의 동심원 문양이 있고, 그 간격에는 수직 및 대각선으로 음각되어 있다(그림 2). 은제 거울 끝에는 이등변 삼각형 모양으로 자루가 붙어 있고, 이 자루는 뿔로 된 손잡이에 삽입되어 제작된 것이 X선 촬영 결과 알 수 있었다(그림 3). 손잡이의 단면은 팔각형이다.

은제 거울이 여성용이었기 때문에 청동제 거울은 남성의 것이라고 루덴코는 설명했다.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출토된 목제+청동 거울은 나무틀의 뒷면에 사슴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담는 주머니는 펠트로 된 것이었다. 파지릭 2호분의 출토품은 청동제 거울은 손잡이 까지 청동으로 제작되었고, 표범모피로 된 가죽주머니 안에서 보관되었다. 은제 거울 역시 남아 있지는 않지만 표범모피주머니에 보관되었다고 한다. (거울도 동물과 관련을 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경우의 수가 너무 적지만.)

 

필자가 하나씩 설명할수록 놀라운 점은 문화의 성격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방향성은 공통적이지만, 거기에 표현된 것은 각기 개성이 있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전제조건은 같은 시기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유물이 출토된 시간성에 차이가 있다면 동시대의 것이 아니라면 다를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논할 근거가 없다. 그러나 동시대이고, 가까운 장소에서 같은 문화에서 다양한 유물이 확인되는 점은 매우 다양하고 개성이 강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큰 테두리의 질서는 유지되지만 그 안에서의 개성은 존중되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알타이 산에는 파지릭 계곡에 2500년 전 공동묘지가 언젠가 발견되었고, 연구자가 학술적 목적으로 발굴을 시작한 것은 1920년대로, 그랴즈노프가 발굴했고, 1947년에 루덴코가 본격적으로 발굴했다.

소개한 파지릭 2호분은 도굴당했으나, 문신이 남아 있는 남성미라와 여성미라의 존재는 알타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유적에서 대형고분에 속하는 무덤은 1~5호분으로 이 발굴로 인해서, 스키타이 문화(권)중에서 알타이 지역에 있는 문화를 파지릭문화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알타이에는 아직 소개하지 않은 비슷한 시기의 무덤이 많지만, 앞서 살펴본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과 비교를 많이 한다. 이 무덤에서는 얼음공주라고 불리는 직업은 샤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미라가 온전한 채 확인되었다.

파지릭 유적의 무덤은 도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유적의 비교대상이 될 만큼 풍부한 유물을 간직했다.

 

특히 앞서 살펴본 남성의 모자? 혹은 코로나(크라운)이라고 할 만큼 화려한 그리핀 조각이 붙어 있는 장식을 보았다. 목이 길고 갈귀가 있는 그리핀이 사슴머리를 물고 있는 형상이다. 아크 알라하 3유적과 가까운 곳에서 확인된 아크 알라하 1유적은 남성전사가 확인된 유적이다. 파지릭 2호분의 남성의 모자와는 달리 고깔모자의 끝에 새머리가 달린 비교적 단순한 모자를 착용했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의 여성미라 모자 2점 모두 요란한 모자이다. 한 점은 나무로 된 모자의 정수리 끝에 머리카락을 땋아서 붙은 형태이고, 다른 한 점은 가죽과 모피로 얼굴 앞면을 제외하고 ‘커튼’처름 만든 것인데, 정수리에 새 장식이 부착되었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는 새가 장식된 모자는 아니지만, 아주 높은 가발을 착용했고, 새를 장식했다. 폴로스막은 이를 유라시아 스텝의 유목민이 숭배하는 세계수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세계수(世界樹)는 유라시아 스텝 유목민을 포함하는 고대민족의 사상을 표현 것인데, 하늘, 사람이 사는 땅, 지하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세계관을 세계수라는 개념으로 부른다. 이는 나무가 위치한 곳이 땅밑에서 자라서 땅위에서 나무기둥이 자라며, 하늘에서 잎을 뻗기 때문이다. 세계수라는 명칭은 고대 유목민들이 그들이 살았던 세계의 모습이 나무로 추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파지릭 유적 2호분은 파지릭문화에서 가장 상위 계급이라고 러시아 학자들은 이야기 한다.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붙은 아크 알라하 3유적 보다도 더 높다고 한다. 가장 큰 근거가 모자 혹은 코로나 라고 부를 수 있는 장식도 그 중에 하나이다. 물론 파지릭 유적 2호분이 무덤의 크기도 크고, 없는 유물도 많이 출토되기 때문이다. 도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뿐만 아니라 파지릭 유적의 다른 무덤에서도 많은 유물이 출토되는데, 아크 알라하 3유적 및 아크 알라하 1유적 보다는 상대적으로 많다.

알타이에서 한 계곡에 묻힌 일련의 무덤은 한 가족 혹은 친족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파지릭 2호분 뿐만 아니라 다른 무덤(1, 3, 4, 5호분)의 부장양상도 파지릭 계곡의 무덤이 우코크 고원 보다는 높은 계급일 것이라는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의 높은 머리장식은 이러한 생각을 멈추게 한다. 무덤의 크기가 작은 것은 혼자서 묻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앞에서 찾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얼음공주는 왼쪽 가슴조차도 미라처리를 위해서 그 안에 풀과 흙을 채워넣었다. 미라처리를 그렇게 공들여서 했는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녀의 권력 혹은 그녀의 그 무엇인가를 이어받아야 할 상황이 아니었을까?

 

학자들이 파지릭 유적의 2호분과 아크 알라하 3유적을 많이 연결 혹은 비교하는 이유는 파지릭 2분 남성미라 몸에 새겨진 동물모양의 문신과 얼음공주 몸의 문신은 같은 사람이 새겼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파지릭 2호분 여성미라의 몸에는 문신이 없었다.

문신은 일종의 그림이기 때문에 그림과 글자는 몸속의 DNA처럼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새길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문헌

페레보드치코바 199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 // М.: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94. 206 с. (По следам древних цивилизаций). ISBN 5-02-017744-Х (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 유라시아 스텝의스키타이 시대 예술에 대한 개론).

 

*개론 혹은 초보적 연구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필자는 이 책의 내용을 다음과 같은 상황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큰 상위에 첩 첩으로 반찬을 깔아 놓고, 아무것도 차린 것 없습니다’라고 하는 상황...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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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알타이 산에 위치한 2500년 전 파지릭 유적에는 그리핀이 무덤에서 확인된다.

그리핀은 상상의 동물이니 그 동물뼈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물건 여기저기에서 확인 가능하다.

 

필자가 처음 시작한 게임은 테트릭스(학생들은 모를 수도 있다.)인데, 지금도 비슷한 종류의 매우 단순한 게임 몇 가지 빼고는 요즘 학생들이 하는 컴퓨터 게임은 전혀 모른다. 그런데 우연히 그리핀이 컴퓨터 게임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았다.생각해 보면 요즘도 하드웨어의 발달로 그를 뒷받침 하는 소프트웨어 및 컨텐츠가 더욱더 중요해지는데, 그리핀도 그런 그 옛날의 컨테츠였던 같기도 하다. 온 세상 천지에 비슷비슷한 동물이고, 심심한데, 몇 개 동물을 합성시켜서 이야기도 만들고 했을 것 같다. 컨텐츠는 늘 사실에 기반하지만 재창조된다.

 

오늘은 그리핀(그림 1,2-3,3)이 새겨진 물건인데, 그림 1과 2-3는 가죽제 용기다. 앞서 한번 소개한 바 있는 연기흡입을 위한 동복(청동솥)과 텐트 세트와 함께 확인된 유물이다.

 

2020/03/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러시아 시베리아의 스키타이문화권에서도 알타이 지역에 위치한 파지릭문화의 한 유적인 아크 알라하 1유적 2호분은 8세 소년의 무덤이다. 고깔모자, 토기, 금제 귀걸이, 청동 목걸이, 투부(전투용도끼), 모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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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복에는 돌이 담겨 있었고 태다 남은 대마씨가 담긴 채 확인되었고, 이 유물에는 대마씨가 담긴 채 확인되었다. 가죽주머니라기 보다는 가죽제용기라고 루덴코는 표현했다. 둥근 앞판과 뒷판 및 길다란 옆판을 말총으로 꿰매어서, 납작하지 않고, 일정한 두께가 있기 때문이다. 가죽입구는 동체에 비해서 좁으며, 조일 수 있는 끈이 달려서 둥글게 말려 있다.

 

가죽용기의 앞 면에는 모양이 다른 새 두 마리가 아플리케 장식을 붙인 것이다. 위에서 공격하는 새는 머리부터 목까지 갈기가 있어서 그리핀으로 생각되고, 아래에 공격당하고 있는 새는 그리핀 보다 갈기가 없으며 목이 길어서 그리핀과는 차이가 있다. 그리핀은 두 날개를 펴고 있고, 아래의 새는 날개를 접고 있다.

 

그림 1. 파지릭 2호분 출토 대마씨가 담긴 가죽제용기, 전체 길이 16.5cm, 너비 14cm

 

그림 2. 1,3번그림1과 같은 유물

 

 

그리핀이 다른 종류의 새와 함께 표현된 유물이 있다. 이 유물은 나무와 가죽으로 된 것인데, 목제의 그리핀 입속에서 사슴머리가 물려 있고, 가죽으로 된 사슴의 뿔 끝에 목이 긴 수탉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리핀은 정수리에 갈기가 붙어 있고, 귀도 표현되었으며, 턱 아래에는 날개가 붙어 있는데 가죽이다.

그리핀 입속의 사슴뿔은 두 줄이 붙어서 가장 꼭대기에는 합쳐지는 모습으로 가죽으로 표현되었다. 사슴뿔은 가지의 끝에 수탉머리가 표현된 것인데, 양쪽에 각각 7개씩의 가지가 있고 가장 끝에는 두 줄이 합쳐져서 2개의 수탉머리로 마감된다. 수탉머리는 올라갈수록 작아진다. 가장 하단의 수탉은 두 마리가 하늘을 쳐다보고 그 이후에 머리의 방향이 바뀌었다.

 

이 유물은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파지릭 5호분에서 말의 머리장식으로 사슴뿔이 높이 표현된 유물과 비교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유적에서 남성미라의 머리모자에 사슴머리를 물고 있는 그리핀이 표현었는데, 그 유물과도 관련성을 염두해 둘 수 있다. 그림 1~3은 한국에도 온 적이 있다.

 

그림 3. 파지릭 유적 2호분 출토, 길이 23cm, 너비 16.5cm

 

2020/03/2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파지릭 유적] -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그리핀 달린 남성의 코로나

 

 

한편, 가죽용기와 관련있는 유물로 파지릭 2호분에서는 무덤방의 가장 바닥에서는 연기흡입할 때 사용했던 청동용기가 2개 확인된다. 한 점은 청동으로 된 둥근 솥(위의 포스팅)과 사각형의 용기( 그림 5)가 출토되었다.

동체부가 동근 청동솥은 무덤방에서도 관에서 떨어진 곳(그림 4-6)으로 무덤방의 중앙에서 약간 비껴난 곳에서 출토되었고, 동체부가 사각형인 청동솥은 무덤방에서 관에서도 다리 밑의 좁은 공간(그림 4-3)에서 있었다. 각각 긴 막대 및 가죽조각이 확인되어서, 텐트를 설치한 후 그 안에서 청동용기를 두고 연기를 피웠음을 알 수 있다.

 

그림 4. 파지릭 유적 2호분 무덤방의 바닥

 

 

그림 5. 파지릭 2호분에서 출토된 사각형 청동용기, 다리 4개 및 손잡이가 달려 있다. 높이: 8cm, 길이: 11.6, 너비: 12.3cm, 손잡이 길이: 8,3cm

 

그런데 용기의 크기가 너무 작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국립중앙박물관 1991, 스키타이 황금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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