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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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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진이 좀 그렇습니다....그래도 양해바랍니다..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 유적 2호분에는 여성과 남성이 함께 묻힌 무덤이다. 안타깝게도 도굴로 인해서 유물의 위치와 시신의 위치는 정확하지 않지만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지난번에 살펴본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일명 ‘얼음공주’는 미라였다. 파지릭 유적은 얼음공주보다도 무덤의 크기나 부장품으로 보아서 상위계급에 속한다고 학자들은 평가한다. 얼음공주는 전직 샤먼이었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남성은 55~60세 가량이고, 여성은 40대 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앞에서 필자가 공개한 유물의 위치를 자세히 살펴보면 여성과 남성의 신체가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매장할 당시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니고 도굴꾼의 소행으로 생각된다.

 

그림 1.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남성미라 출토위치

 

남성의 목걸이는 자세하게 남아 있지 않지만 이 여성의 목걸이는 잘 남아 있고, 필자가 공개한 바 있다. 남성도 목걸이를 했을 가능성이 큰데,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두 남성이 모두 목걸이를 착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무덤의 여성과 남성은 모두 목이 잘려진채 확인되었다. 특히 여성미라는 훼손이 심한데, 팔찌 등을 가져가기 위해서 오른손 뿐만 아니라 무릎관절 아래가 다 잘려진채 확인되었다. 덕분에 무덤에 관이 하나인데 어떻게 시신을 안치했는지 대한 궁금증은 영원한 미스테리이다.

 

관 통째로 도굴꾼이 가져 간 것이 아니냐고? 그럴 수 없는 것이 무덤관이 놓일 장소가 없다. 파지릭 유적 뿐만 아니라 아크 알라하 1유적의 예로 보아서 무덤방에 관이 2개인 경우 관은 나란히 놓인다.

 

그런데 왜 도대체 시신을 심하게 훼손했을까?

 

루덴코는 여성이나 남성의 미라에서 먼가를 얻기 위한 행위로 생각한다. 그 예로 든 것이 파지릭 5호분의 남성미라인데, 이 남성미라의 손이 오른손이 아래로 왼손은 위로 가게 해서 ‘×’모양으로 교차하고, 생식기 위에 피부를 뚫고 실로 고정시킨 것에 착안했다. 만약에 이 무덤의 미라가 같은 자세로 처리되었다면, 그리고 도굴꾼이 탐을 낸 것이 목걸이나, 팔찌 였다면?(이 유적에서 확인된 혹은 미처 못 가져나간 여성용 목걸이는 목제였다)

 

파지릭 2호분의 남성은 전투용도끼에 세 번 맞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눈썹에는 칼자국이 있고, 오른쪽 관자놀이에도 미세하게 찢겨져 있었다. 머리의 두피는 벗겨진 상태이다. 나머지 모발은 미라 처리시 뇌 제거를 위해서 구멍을 뚫기 전에 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두개골에는 뼈가 제거된 흔적이 1곳 이상에 남아 있다. 고대에는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뼈를 제거하기도 했겠지만 파지릭 2호분의 남성 두개골은 뇌조직을 제거하고 뇌를 토양, 소나무껍질 및 낙엽송 등으로 채워서 미라로 처리하는 과정에 의한 것이다. 우코크 고원의 얼음공주 미라도 그 내부가 전부 흙과 나무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두개골에 천공한 위치는 다르다.

 

그림 2.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미라 두부(루덴코 1953)(위-남성, 아래 여성)

 

그림 3.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남성미라 두부, 그림 2의 상단과 같은 미라.

 

 

2호분의 남성미라의 두부는 소련과학아카데미 군의학 치과부서에서 이바첸코(G. M. Ivashchenko)가 분석했다. X선 촬영결과 오른쪽 턱 아래의 첫 번째 어금니가 망가졌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 치아에는 낭포가 생겨서 여포성낭종을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 첫 번째 어금니의 압력 때문에 남자는 평생동안 치아가 아팠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남성은 몽골로이드로 전체 얼굴높이는 146mm이다.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필자는 요즘은 향수를 쓰지 않지만, 한때 향수를 상당히 좋아했던 적이 있다. 요즘은 향수가 없어도 허전하다는 생각이 안 든다. 식탁 위에 디퓨저가 있는데, 유칼리투스 향이 약간씩 난다. 가끔 상상해본다. 집에서 나무 향이 나면 얼마나 좋을까?

자작나무로 된 무덤방도 아늑했을 것 같다.

 

우리는 현재 시베리아의 파지릭 유적에서 2호분을 살펴보는 중이다. 도굴 때문에 손상이 많이 되었지만 그래도 쏠쏠하게 재밌는 유물들이 있다. 그리고 피곤하기도 하다. 너무 많기 때문이다. 빈 공간안에 다 채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흥미를 끄는 유물이 많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도 금으로 된 유물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나무, 펠트, 가죽 등으로 제작된 유물이 많다. 무덤구덩이를 팔 때부터 쓰던 나무망치, 나무쐐기 등이 들어 있는데, 과히 나무로 칠갑을 두른 듯 하다.

 

잠시 파지릭 유적의 2호분과 재밌는 인연이 있는 유물을 소개하고자 한다.

에르미타주에 소장된 표트르 1세가 수집한 콜렉션의 유물이다. 버클장식으로 길이 15.2cm, 너비 12.1cm,무게는 459.3g정도이다.

큰 나무 아래에 세 사람이 있는데, 여성은 앉아 있고, 남성 한 명은 그녀의 무릎 위에 누워 있다. 그녀의 무릎을 만지고 있다. 누워 있는 남성의 다리 쪽에는 한 남성은 앉아 있는데 말 두 마리의 고삐를 꽉 쥐고 있다. 말은 재갈과 굴레장식이 착장되었으며 안장까지 착용한 상태이다. 말과는 반대쪽으로 말과 마주보는 방향으로 얼굴이 매우 둥글고 독특한 머리장식을 한 여성이 앉아 있다. 누워 있는 남성은 그녀의 무릎을 만지고 있다.

 

 

 

 

그림 1. 에르미타주 소장 버클 장식, 표트르 시베리아 콜렉션

 

그림 2. 그림 1의 상세

 

 

이 버클 장식을 보면서 이미 필자가 공개한 바 있는 2호분의 유물 가운데서 생각나는 유물은 없나요?

 

....

 

말 굴레 장식?

아직 2호분의 것은 공개하지 않았다.

 

여성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그녀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이다.

 

그림 3은 파지릭 유적 2호에서 출토된 것인데, 출토된 위치는 그림 4에서 확인가능하다.

 

그림 3. 파지릭 유적 2호 출토, 머리장식. 높이 40, 직경 17.8cm(참고문헌인 영국박물관에서 나온 책에 이 유물이 파지릭 5호분의 것이라고 잘못 표기되어 있었다. 이 유물은 2호분의 것이다. )

 

그림 4. 파지릭 유적 2호분, 머리장식의 출토위치

 

 

 

파지릭 2호분의 머리장식은 나무, 가죽, 머리카락, 펠트, 실크를 조합한 것이다.

이 독특한 머리 장식은 머리에 닿는 부분인 기초 부분은 나무로 나들어졌다. 전체적으로 원통형이지만 귀의 위쪽에는 직사각형의 홈을 파고 다시 나무를 덧대어서 둥글게 만들어 진 것이다. 현재는 오른쪽만 남아 있다. 이 나무원통의 덮개는 가죽으로 덮여 있다. 뒷쪽에는 1.5~2cm가량의 원형 구멍이 2개 있고, 구멍이 4개 더 있다. 그 중 두 개는 원통형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나무로 된 아래의 받침대로부터 관통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구조이다. 이 구멍은 실크로 덮여 있었다. 뒤쪽 중앙의 구멍에는 하늘로 솟아 오르도록 설계된 땋은 머리카락이 붙어 있다. 이 꼬리모양의 머리장식은 가운데는 사람의 머리카락이고 말의 총으로 쌓아서 힘을 받도록 만들어졌다. 말의 모는 머리카락 전부를 감찬 것은 아니고 아랫단 부분만 쌓다. 꼬리 모양 머리카락 장식은 나무머리모자의 구멍 아래서 관통시켜서 펠트로 감싼 것이다. 이 머리카락은 길이가 총 38cm가량이다.

 

그림 1의 시베리아 콜렉션 유물과 비교했을 때 아주 비슷한 유물이어서 추정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아시다시피 2호에서 이 유물은 위치가 제자리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여성의 것인지 남성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벨트 장식에서 볼 때 여성의 머리장식이다. 그리고 이것을 쓴 여성은 삭발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추정할 수 있는 부분은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콜렉션 유물이 알타이 지역에서 갔을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

 

앞서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얼음공주도 아주 높은 머리가발 장식을 썼는데, 그녀도 삭발을 하고 그 가발 장식을 썼다.

 

그리고 상상해 본다. 혹시 머리를 매일 감을 수 없어서, 삭발을 했나? 그래도 머리스타일은 중요하니 머리장식을 썼나? 아니면 이런 높은 머리장식을 쓰기 위해서 삭발을 했나?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 파지릭계곡에는 2500년 전 무덤이 수십기 존재한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고분 5개는 1920년대 그랴즈노프와 1940년대 후반에 루덴코가 발굴했다. 무덤의 구조와 유물은 세계학계에 잘 알려져 있다.

이 무덤은 시베리아의 초기 철기시대로 기원전 9~8세기부터 시작되어 유라시아 전역에 퍼져 있던 스키타이 문화권의 한 일종이다. 알타이 지역에 위치한 문화를 파지릭문화라고 하는데, 이 문화의 명칭은 이 유적에서 유래된 것이다.

 

파지릭유적의 유물은 우리나라에도 한 번 온 적이 있다. 지난번에 소개해 드린 얼음공주와 그 유물은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1995년에 서울과 부산에 다녀갔다. 파지릭 유적의 유물은 1991년 10월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스키타이 황금’이라는 이름으로 특별전을 한 적이 있다.

아마 어린 학생들은 잘 모르겠지만, 특별전은 예전 총독부 건물을 개조해서 사용했던 지금은 없어진 옛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 고르바초프가 한국에 다녀간 해에 파지릭유물특별전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파지릭 유적에서는 우코크 고원과 마찬가지로 무덤을 만들 때 말도 함께 매장한다. 파지릭 유적의 대형고분인 1~5호에서는 말이 함께 매장되었다.

러시아학자들은 얼음공주가 있었던 아크 알라하 유적이 있던 우코크 고원의 발굴 이전부터 말의 영양상태와 꽃가루 및 나무절단시기 등으로 무덤의 매장 시기를 추측했다.

 

파지릭유적에서 시도되었다.

파지릭 유적의 말은 털이 아주 고운 상태로 유지되어 묻혔는데, 겨울에는 볼 수 없는 상태이다. 즉 무덤은 겨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말의 영양상태와 관련해서 5호분에서 재밌는 현상이 확인되었다. 9마리 말이 매장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화려한 굴레장식 한 말이 다른 말 보다 영양상태가 매우 좋았다. 그런 말의 상태는 겨울동안에도 잘 먹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3호분에서는 무덤방을 덮은 자작나무 껍질 사이에서 꽃(Scabiosa achroleuca L.)이 확인되었다. 이 식물은 여름 상반기 즉 6월말 또는 7월 초에 피는 것으로 그 때 무덤에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꽃 뿐만 아니라 이끼(Hylocomium)종류도 확인되었는데, 봄-여름동안에 자라는 것이다.

 

말 뿐만 아니라 나무도 무덤만드는 시기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부분적으로 절단된 자작나무와 무덤방을 덮은 자작나무 껍질(그림1)은 여름이 끝나고 가을에 껍질이 넓어지는데, 가을에는 껍질이 거의 벗겨지지 않는다. 즉 자작나무 껍질을 벗겨내는 기간은 봄과 여름이다.

 

파지릭 2호분에서는 어린 말이 매장되었는데, 송곳니로 살펴본 나이가 3살 반이라고 하며, 가을에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즉 무덤은 늦봄 혹은 여름초입부터 초가을에 만들어졌다. 재밌은 현상은 알타이에서 발굴할 수 있는 기간과 일치한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2호분은 말의 매장하는 위치가 앞에서 살펴본 유적들과는 달리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무덤방 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다.

그러나 말의 매장 위치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이 부분은 좀 더 다른 유적과의 비교관찰이 필요하다.

 

그림1.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무덤 단면도(왼쪽은 발굴당시, 오른쪽은 복원)

 

그림 2. 파지릭 유적의 1~4호분에 매장된 말의 방향(하단 왼쪽에 2호분의 것이다.)

 

말이 7마리 매장되었는데, 3마리 씩 2열로 배치되고 나머지 한 마리는 방향을 달리해서 배치되었다. 그림과 같은 방향으로 일정하게 매장되었는데, 화살표의 끝방향이 말의 두향이다. 6마리는 동쪽을 향하고 있고 나머지 한 마리는 남쪽방향이다. 그러나 말이 놓인 상태가 아주 일정하게 규칙적이지는 않다. 당시에 무덤구덩이에 죽인 말을 넣는 방법은 밧줄로 매어서 하강시켰을 터인데,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말은 이마를 타격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posted by 김재윤23

 

 

우리는 현재 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에 위치한 파지릭 계곡의 2500년 전 무덤을 들여다 보고 있다. 계곡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이다. 필자가 어제 공개한 유물은 2017년에 영국박물관에서 있었던 특별전에 소개된 파지릭 2호분의 유물이었고, 예전 루덴코가 펴낸 책에는 거기 없는 유물도 더 있다. 물론 꼼꼼히 보시는 분이라면 눈치 채셨겠지만...최근에 있었던 스키타이 문화 특별전 가운데서 가장 많은 유물이 공개되었다고 한다.

 

흑백사진이지만 이미 세상에 알려진 유물은 좀 더 많고, 어제 유물에 대한 설명도 점차 덧붙여 가도록 하겠다.

 

파지릭 2호분은 평면형태가 약간 이상하다. 정확하게 동쪽 단벽의 무덤방 길이가 짧아져서 북쪽의 긴벽을 약간 들여서 축조했다. 이 무덤방의 바닥에도 펠트 및 카페트 가 깔려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펠트는 무덤바닥 뿐만 아니라 벽에도 걸려있었는데, 북벽을 제외한 나머지 벽에도 달려 있었다.

기억하시겠지만, 아크 알라하-3 유적의 얼음공주 무덤에서도 벽에 펠트(펠트는 양모를 고열에서 응모해서 만든 천이다. 일종의 양모로 만든 부직포이다. 양모로 짠 천과는 다르다)를 걸어 두었다. 그리고 알타이의 원주민들도 집에서 벽에도 펠트를 걸어둔다는 이야기를 앞에서 한 적이 있다.

 

벽에 걸어둔 펠트는 나무못으로 고정되었다. 길이는 8~15cm로 못대가리의 윗 부분이 볼록튀어나온 것과 거의 편평하지만 턱이 있어서 예리하게 칼로 잘라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벽에 달았던 펠트장식은 청동 못으로도 고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못은 납작한 못대가리아래에 막대기 모양으로 한쪽 끝이 뾰족하다. 길이는 9.5~11.6cm가량이다.

 

그림 1. 파지릭 2호분, 나무못

 

그림 2. 파지릭 2호분, 청동못

 

벽에는 꽃과 연봉오리 모양의 문양의 아플리케 장식을 덧붙여서 만든 펠트제 장식이 확인되었다. 러시아 학계에서는 연꽃 모티브는 페르시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림 3. 파지릭 2호분의 벽걸이 장식. 펠트제. 길이 47cm, 너비 14cm

 

그림 4. 그림 3을 좀 더 가까이 찍은 사진

 

펠트제 벽걸이 장식 외에도 날실과 씨실을 교차시켜서 잔 양모천으로 된 유적의 2호분에서는 양모로 짠 천으로 깔개가 확인되었다. 양모의 단위는 너비 42cm가 되도록 짠 것이다. 센티미터 당 30실의 비율로 짰다. 무덤방의 가장 바닥에는 펠트를 깔고 그 위를 이 카펫으로 덮었으며 시신도 덮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파지릭 유적의 3호분에서도 비슷한 유물이 확인되었고, 바샤다르 2 유적에서도 출토된 바있다.

 

그림 5. 파지릭 2호분, 높이 120cm, 너비 228cm

 

우코크 고원의 얼음공주 무덤인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는 그냥 검은색 펠트를 걸어두었다고 했는데, 파지릭 유적에서는 벽의 가장 상단에는 이런 장식까지 덧붙였다. 화려한 무덤이다....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의 파지릭 계곡에 위치한 2500년 전 무덤에서는 나무로 된 무덤방 안에서 통나무관 1개가 확인되었다. 통나무관은 나무를 파서 만들었는데, 뚜껑까지 잘 제작된 것이었다. 무덤방은 나무방이다. 대부분 낙엽수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무덤방(그림 3)의 모양이 약간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사각형이 정확하게 아니다.

북쪽벽이 미세하게 조정되었다. 6cm정도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모서리에는 위에서부터 4번째와 5섯번째의 나무에 납작한 나무패드(그림1)를 덧대어서 무덤방의 벽을 고정(그림 2)한 것이 확인되었다. 나무패드는 못대가리가 없는 나무와 구리못으로 고정되었다.

 

그림 1.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서 무덤방의 북쪽벽을 고정했던 나무패드

 

그림 2. 파지릭 2호분의 북과 동벽의 모서리에 나무패드(그림1)을 덧댄 모습.

 

파지릭 유적에서 큰 고분은 모두 도굴구덩이가 있다. 루덴코는 처음에 도굴이 크게 영향을 못미쳤다고 했지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나마 유물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 2호분인데, 얼음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도굴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얼음을 걷어내고 나서 무덤방에서 많은 유물이 확인되었고, 이를 수습한 후 그 아래의 무덤바닥에서도 유물의 위치가 그대로인 것이 나타났다. 무덤방바닥의 유물이 제자리라는 사실은 후대에 발굴에서도 비슷한 위치에서 비슷한 유물이 확인됨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림 3.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서 무덤방바닥에서 확인된 유물, 1. 통나무관, 2-석제 그릇(조명과 관련됨), 3-연기흡입용 텐트부속품, 4-두번째 연기 흡입용 텐트부속품, 5-다리가 달린 된 향로, 6-받침이 달린 청동향로, 7-가죽, 8-남성용 의복일부, 9-호랑이 다리가 달린 목제 상, 10-다른 모양의 목제 상에 달렸던 다리, 11,12- 목제 상 다리, 13-목기, 14-토제 항아리 모양의 액체용기, 15-토제 액체용기(14번과 모양이 다름), 16-용기 받침대.

 

그러나 필자가 먼저 공개한 얼음을 걷어낸 후의 무덤방의 유물은 제자리가 아닌 유물이 많은 것을 루덴코도 시인했고, 무덤방 바닥의 유물만 제자리였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통나무관에는

 

그래도 이렇게 남겨진 유물 덕분에 파지릭문화의 장례식에 어떤 물건이 사용되었는지, 혹은 살아았을 때 사용했는지를 알 수 있다.

무덤방 바닥에서는 다리가 4개 달린 목제 상이 발견되었다. 통나무관의 동쪽에 놓여 있었는데, 양고기와 말고기를 놓았을 것이다. 북쪽벽에 가까운 테이블 근처에는 액체를 담는 토기(가 확인되었다. 목제 상과 토기사이에는 목제 그릇이 나무방바닥에 서 있었다. 토기와 목제그릇은 유목민들이 마시는 우유와 우유를 발효한 음식을 담았을 것이다. 매장당시에 일종의 치즈를 공양했던 것이 5호분에서 확인되었는데, 2호분에서는 무덤방안은 아니지만 치즈가 확인되었다. 2호분에서는 연기 흡입용 청동솥과 이를 넣는 텐트가 확인되었다. 텐트는 6개의 막대기로 만들어진 골격이다. 두 세트가 확인되었다(한 세트는 이미 공개한 바 있다). 그 주변에서 가죽주머니안에 대마씨가 가득 든 채로 확인되었다. 2호분에서만 출토된 석제 그릇도 통나무관의 남쪽에서 확인되었다. 하프와 같은 현악기가 담긴 가죽주머니가 팽계진 채 확인되었다.

 

그림 4. 파지릭 2호분 남성미라의 머리

 

그림 5. 파지릭 2호분 남성미라의 일부

 

그림 6. 파지릭 2호분 남성미라의 일부 2

 

그림 7. 파지릭 2호분 출토 목제 목걸이

 

그림 8. 파지릭 2호분 출토, 머리카락

 

그림9. 파지릭 2호분 출토 모자장식

 

그림 10. 파지릭 2호분 출토 남성용부츠 일부

 

그림 11. 파지릭 2호분 출토 여성용 타이즈  일부

 

그림12. 파지릭 2호분 출토 머리장식

 

그림 13. 파지릭 2호분 출토 여성용 머리장식

 

그림 14. 파지릭 2호분 출토, 머리꼭대기 장식

 

그림 15. 파지릭 2호분 출토 모피가죽(위), 가죽지갑(하)

 

그림 16. 파지릭 2호분 출토 귀걸이

 

그림 17. 파지릭 2호분 출토 은제 거울

 

그림 18. 파지릭 2호분 출토 대마씨(위)와 대마씨가 담긴 가죽주머니(아래) 

 

그림 19. 파지릭 2호분, 연기흡입용 텐트의 골대와 청동용기

 

그림 20. 파지릭 2호분, 목침

 

그림 21. 파지릭 2호분, 목제 상(위), 상다리 일부(하)

 

그림 22. 파지릭 2호분, 용기받침

 

그림 23. 파지릭 2호분, 용기받침과 목제그릇

 

그림 24. 파지릭 2호분, 항아리모양의 액체용기, 토제

 

 

참고문헌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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