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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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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알타이 산의 2500년 전 파지릭 유적의 무덤에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도굴당했지만 상당히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1940년대 후반에 발굴된 이 유적의 무덤은 1990년대 발굴된 아크 알라하 3유적 및 아크 알라하 1유적과 비교하면서 더 많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유적도 알타이 산에 위치하는데, 파지릭 유적보다 남쪽에 위치한다. 유적의 위치는 이미 공개한 바 있다. 

 

그  중에 하나가 그리핀이 달려 있는 목걸이다(그림1,2). 

 

파지릭 유적 2호에서는 그리핀 6마리가 달려 있는 목제 목걸이가 출토되었다. 아시다시피 무덤은 이미 도굴당한 상태여서 관 밖에서 출토되었다. 남성의 시신일부와 가까운 곳에서 출토되었으나, 비슷한 유물이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가 착용한 채 확인되어서, 이 유물은 여성의 목걸이다.

 

물론 파지릭 문화에서는 남자도 목걸이를 착용한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전사가 착용한 했는데, 오늘 소개하는 유물처럼 그리핀이 목의 앞을 다 둘러싸도록 장식된 것이 아니라 앞쪽에 두 마리가 배치된 유물이다.

 

그리핀은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유물처럼 소재가 그리핀 6마리를 착장한다는 점, 목의 앞부분을 다 감싸도록 제작되었다는 점은 같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핀의 모양이 다르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그리핀은 몸통은 평면으로 제작되었고, 목만 들고 있도록 디자인 되었다. 그리핀은 맹수(호랑이 혹은 표범)의 몸통에 날개를 달고 있으며, 그리핀의 머리에는 뿔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파지릭 유적의 2호분 출토 그리핀은 뿔이 2개 달려 있으며, 얼굴은 호랑이, 표범이라기 보다는 루덴코는 사자와 더 가깝다고 판단했다.

동물문양 한 개씩이 모두 개개로 분리되지만 목걸이에 착장하면 그리핀의 전면이 볼 수 있다. 아크 알라하 3유적 출토품은 목걸이를 착장할 때 전면에서 보면 목 위의 얼굴이 보이도록 디지인 된 것이다.

 

파지릭 유적에는 아크 알라하 3유적(얼음공주 무덤)과 아크 알라하 1유적(전사무덤)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사자머리의 그리핀이 확인된다. 이미 소개한 파지릭 5호의 말 앞가슴 띠에도 사자형 그리핀이 새겨져 있다.  페르시아에서 확인되는 그리핀 종류일 가능성이 많다고 루덴코, 폴로스막 등이 이미 이야기 했다. 사자는 알타이에는 살지 않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필자도 생각한다. 그리핀에도 알타이 계통과 페르시야 계통이 구분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핀의 기원은 스키타이문화의 기원과도 그 맥락이 닿아 있다. 초창기 스키타이문화 연구자들은 헤로도투스가 설명한 흑해 북안의 유적들이 원류라고 생각했으나, 시베리아에서는 스키타이문화 보다 이전에 이미 동물문양장식이 있었고, 그리핀도 출토되고 있어서 생각의 축이 바뀌었다.

 

 

그럼 이 유물은 어떻게 착용했을까?

 

이 유물은 목걸이의 고리를 뒤쪽에 고정할 수 있는 구리판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전사 목걸이와 동일한 구조이다.

 

 

이 그리핀 역시 목제를 금박으로 싼 것인데, 발견당시에 금박조각만 붙어 있고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1940년대 발굴당시에는 금박으로 싼 동물문양장식은 금덩어리로 만들어진 것을 흉내내었다고 생각했다...

 

 

그림 1. 파지릭 2호분 출토 목제 목걸이, 동물문양장식의 길이 16.5, 너비 12.5cm,  뒤쪽에 끼우는 구리의 길이 17.7, 5.2cm

 

 

그림 2. 그림 1과 같은 유물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의 파지릭 계곡의 무덤에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묻혔다. 남성과 여성 모두 미라 처리되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발굴당시에 루덴코가 본 것은 이미 산산히 조각난 미라였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남성 미라는 공기 중에 노출되자 말자 빠르게 부패가 일어났기 때문에 문신이 새겨진 피부만 남겨두기로 하고 미라를 복원하지 못했다.

여성은 머리, 몸통, 다리와 종아리, 손 정도만이 잘려서 확인되었다. 여성과 남성미라 모두 관 밖에서 확인되었다(그림1). 여성 미라의 머리는 앞서 사진을 공개한 바 있는데,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란다.

아래는 여성미라의 시신이 확인된 무덤 속의 위치이다.

 

그림 1. 파지릭 2호분 유적의 유물 출토 위치. 회색네모: 여성 미라,  붉은색 네모: 목침과 베개 주머니, 혹은 베개를 덮은 가죽주머니.

 

그럼 관 속에는 무엇이 남아 있느냐?

 

관 속에 남아 있는 유물을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여성의 옷을 제외하고는 두향을 알 수 있게 하는 유물이 있는데, 꽃모양의 가죽장식이 붙은 목침(그림2)과 베개 역할을 했던 가죽주머니이다(그림 3). 두 유물 모두 꽃 잎 8개와 중앙에 자방을 표시한 원형까지 9개의 가죽 조각으로 꽃 모양을 붙였다. 그런데 한 점은 나무로 제작된 목침이고, 다른 한 점은 베개와 관련된 가죽주머니이다(그림 3). 베개의 측면 오른쪽에 꽃 잎 장식이 붙어 있고, 베개를 완전히 감싸기 위해서 가죽을 이어 붙였는데, 끈의 소재는 말총이다(그림2).

러시아학자들이 헤깔 려 하는 것이 베개를 넣은 가죽주머니 인지(그림3), 베개 위를 덮은 가죽인지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베개 바로 옆에서 출토되었고, 같은 문양이 새겨져서 베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리고 목침을 부장용으로 특별히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파지릭 유적에서는 대형고분에 속하는 1~5호에서 모두 목침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무덤의 두향은 동쪽이다.

 

그림 2. 파지릭 유적의 2호분 출토 목침, 그림 1의 27번 위치.길이 39.5cm, 너비 19.5cm, 높이 11.5cm. 에르미타주소장

 

 

그림 3. 파지릭 유적 2호분 출토 목침을 넣은 주머니 혹은 위에 놓은 베개의 일부. 가죽. 그림 1의 28번 위치.

 

 

러시아에서는 필자가 유학당시에 썼던 베개는 거위 인지 백조인지 새의 깃털이 들어간 베개이다. 유학 간 2005년 당시에 한국에서는 잘 없던 베개였는데, 난 그 베개가 너무 좋아서 유학마치고 들고 들어왔다. 러시아 인의 문화에서 나무로 된 베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베개이다.

 

어린 학생들은 그걸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필자도 목침에 누웠던 기억이 있다. 시골에 계시던 할아버지 베개였는데....어려서 그런지 그걸 베고 낮잠을 곤히 주무시는 할아버지가 이해가 잘 안되었다. 밤에는 썻는지 모르겠다.아마 지금은 목침을 만들려고 해도 나무가 귀해서 많이 비쌀 것이다. 있다면.

 

다시 무덤방을 살펴보면, 분명 관속에는 여성용 옷(41)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가장 바닥에 놓여 있다. 그리고 남성의 옷도 관 속(40)에서 확인되었다. 도굴꾼이 관 밖에 있던 유물을 일부러 안에 넣었을 리는 만무하다. 빨리 꺼내 가야는데, 안에서 밖으로 던져버렸을 가능성은 있어도, 밖의 것을 안으로 넣었을 리가 없다. 무덤방에는 공간이 많다. 그렇다면 관 속에는 남성과 여성을 함께 넣었을 것이다.

 

추정 가능한 것은 여성미라를 바닥에 깔고, 남성미라를 그 위에 얹은 것이다. 만약에 어딘가에서 물건을 급하게 꺼낸다면, 가장 위에 있는 물건을 꺼내서 바로 옆에 두고, 그 다음에 뭔가를 찾았을 것이다. 남성미라는 관의 다리쪽에서 대부분 확인되었고, 여성미라는 비교적 여기저기 흩어진 채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남부, 알타이 산에서는 스키타이 문화의 일종인 파지릭 문화의 무덤이 확인된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는 그리핀이 여기저기 많이 남아 있다. 그리핀은 여러 동물이 합체된 상상의 동물이다. 주체가 어떤 동물이냐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결국 그리핀은 날개가 생명이다. 날개 달린 상상의 동물이다.

 

파지릭 유적에는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유적(얼음공주의 무덤)과 아크 알라하 1유적(전사의 무덤)에도 없었던, 구리 조각에 찍힌 그리핀이 남아 있다.

이 유물은 옷이나 말의 장식 등에 달던 장식으로 생각된다. 납작하고 가벼운 유물이어서 직물에 부착했을 가능성이 많다. 요즘 옷에 다는 스팽글(빤짝거리는 납작한 장식) 정도로 생각하시면 된다. 그림5에는 금박을 씌운 구리판이 달려 있는 직조물을 소개했다. 이곳에는 그리핀은 찍혀져 있지 않다. 그림 1~4이해를 위한 유물이다.

 

그림 1(a)의 구리 조각에 그리핀은 사자와 그리핀의 함성이고, 그림 (b)는 사슴의 앞다리와 뒷다리만 남아 있다. 그림 2의 산양 머리도 구리판에 찍힌 것이다. 보다시피 남아 있는 상태가 좋지 못하다. 산양 머리의 상단에는 날개의 일부처럼 보이는 두꺼운 가죽조각이 남아 있다.

 

그림 1. 파지릭 2호분 출토 구리판

 

 

그림 2. 파지릭 2호분 출토 구리판

또 구리 판 위에 그리핀 모양으로 스탬핑(찍혀)있고, 그 위를 금박으로 장식한 유물도 있다.(그림 3, 그림 4).

 

 

그림 3. 파지릭 2호분 출토 구리판. 날개와 갈기가 있는 염소

 

그림 3은 갈기와 날개가 있는 염소이고, 그림 4는 독수리 머리와 맹수의 몸체를 한 형태로 그리핀 형태이다. 그림 3의 염소는 입을 벌리고 귀가 매우 크고, 귀가 뾰족하며, 뿔이 크다. 다리를 제외하고 몸은 아주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다. 실제 염소는 갈기가 없지만 이 염소에는 갈기와 날개가 매우 크게 표현되었다.

 

그림 4. 파지릭 2호분 출토. 구리판에 찍힌 그리핀.

 

그림 4의 그리핀은 앞발은 새의 발톱이지만 뒷 발은 맹수의 발톱으로 꼬리가 길게 표현된 것이 호랑이 일 가능성이 크다. 그림 4는 부리가 마주보도록 구부러진 것이다. 호랑이의 근육 표현은 특히 엉덩이 부위에 부채꼴 및 쉼표로 표현되어서 근육을 잘 표현한 것이다. 독수리의 몸통에는 갈기와 날개가 표현되어 있다.

호랑이의 엉덩이에 있는 부채꼴 및 쉼표 모양의 근육 표현은 여러 유적에서 확인되는 특징 중에 하나이다. 두 동물은 파지릭 2호분의 남성미라의 몸에 표현된 동물문양이다. 이미 이 유적 이전부터 오랫동안 이 동물 장식들이 사용되고 발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금박을 입힌 동물양장식 구리판은 파지릭 2호분에서만 출토되는 것이 아니라 파지릭 유적의 7호분에서도 실제로 구리판이 달린 채 확인되기도 한다.

 

그리핀이 새겨지지는 않았지만 구리판 위에 금박을 씌운 스팽글을 단 마구장식이 파지릭 유적의 5호분에서 출토되기도 했다(그림 5). 이 유물은 말의 가슴을 장식하던 유물로 보인다. 모직으로 된 직조물 위에 펠트, 모피를 붙이고 그 위를 구리판을 감싼 금박을 달았다. 중앙에는 사자가 장식되어 있다. 이 유물의 사자모양은 페르시아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림 5. 파지릭 유적 5호분에서 출토된 말의 가슴 가리개의 일부분 안장을 고정시키기 위해서 안장 아가리개와 연결된 부분, 길이 80cm, 너비 7cm.

 

위의 동판 위에 찍은 그리핀은 금박으로 감쌌다(그림 1~4). 금박은 쉽게 벗겨져서 현재는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이다. 우코크 고원의 얼음공주 무덤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 그리핀을 남겨 놓은 것이 발견되었다. 머리장식 같은 곳..

통으로 만든 금제품은 있는데, 금을 보호하기 위해서 다른 물질로 감싼 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현재까지 우리가 살펴본 유물 가운데 금박을 감싼 재질은 나무와 구리이다. 밖에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할까? 안에 든 것이 더 중요할까?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파지릭 계곡에는 그 때 사람들이 남겨 놓은 공동묘지가 있다. 우리는 인간이 남겨 놓은 옛날의 장소를 유적이라고 부른다.

이 공동묘지는 계곡의 이름을 따서 파지릭 유적이라고 한다. 파지릭 유적의 2호무덤은 55~60세의 남성과 40세 가량의 여성이 미라처리 되어서 매장되었다. 이 때 모든 사람을 미라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라화 된 사람들은 특정 계급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실제로 미라가 들어 있는 무덤에는 규모도 크고, 유물도 많다.

그런데 무덤은 크게 만들어졌을수록 무덤 위에 솟아 오른 봉분이 클수록 그 곳에 먼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굴이 쉬워지는 것이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이 만약 도굴당하지 않았다면 엄청난 정보의 제공처가 되었을 것이다.

 

이 무덤에는 남녀의 모자 혹은 머리장식이 각각 2점씩 확인되었다. 이미 여성의 머리장식으로 나무로 제작된 것은 한 점 공개한 바 있다(그림 3-2). 남성의 모자도 가죽으로 된 것을 공개한 바 있다.

 

2020/01/2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코로나(корона)'의 기원?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코로나(корона)'의 기원?

필자도 중국 상해, 남경 등 학과 답사로 같이 참여하기로 계획되었다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취소되었다. 비자피와 얼마간의 위약금을 물어야 했지만, 그래도 그냥 취소보다 병이 창궐하는 덕분?에 취소..

eastsearoad.tistory.com

 

 

남성의 모자는 이 남성의 계급 때문인지 코로나 라는 별칭이 있다고 했다. 코로나는 왕관이라는 뜻이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유행하는 러시아어 중에 하나이다.

이미 소개한 남성의 모자는 가죽으로 되었있었고, 머리의 정수리에 4점의 가죽 조각으로 사슴 뿔을 상징하는 아플리케 장식이 붙어 있다.

 

머리에 쓰는 모자의 베이스는 비슷하지만 붙어 있는 장식이 매우 화려한 남성의 모자가 있다.  나무, 가죽, 펠트로 제작된 것이다.

펠트는 모자의 베이스에 사용되었고, 나무와 가죽은 붙어 있는 그리핀 장식에 사용되었다.

나무로 제작된 그리핀의 입속에 뿔 달린 사슴머리(그림 1-1, 2-3)를 표현 한 것이다. 남아 있는 이 나무조각의 높이는 34.5cm, 너비가 15cm가량이다. 그리핀의 목에도 작은 그리핀의 머리가 양쪽으로 한 쌍(그림 2-2)붙어 있는데, 큰 그리핀의 몸통에 삽입 가능한 사각형 구멍이 있다. 이 그리핀의 몸은 큰 그리핀의 몸통에 조각되어 있는데, 그 아래에는 거위가 한 마리씩 조각되어 있다(그림 2-4). 그리핀 본체의 눈과 부리 사이에는 부채꼴 모양으로 수염?을 표현하고 있고, 정수리부터 목에는 가죽으로 갈귀를 표현하고 있다(그림 1-1, 그림 2-1).

그래서 이 그리핀은 독수리+굽동물의 갈귀+호랑이의 수염이 합체된 것이다.

 

이 그리핀의 머리 및 목과 함께 출토된 유물은 뿔이 화려한 사슴 장식이다(그림 1-2, 4). 나무와 가죽으로 제작된 것인데, 머리는 나무로 입체적으로 제작되었고, 가죽은 몸통을 표현했는데, 평면으로 표현되었다. 앞 다리와 뒷다리가 구부린 것으로 마치 달리는 모습을 표현한 듯 보인다.  앞서 살펴본 그리핀의 아래에 모자의 베이스에 부착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사슴의 몸통이 평면이어서 어딘가에 부착되었을 것이고, 모자의 베이스에 부착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림1. 파지릭 유적의 2호 출토 남성 머리 장식

 

 

그림2. 파지릭 유적의 2호 출토 남성 머리 장식, 위와 같은 유물

 

특이한 여성의 머리장식도 출토되었다. 앞서서 살펴본 목제의 나무장식과는 달리 주로 가죽으로 제작되었다(그림 3-4). 머리에 텐트를 두른 듯, 쓰면 눈,코,입만 보일 듯하다. 머리 정수리에는 반구형의 모자틀이 있고 그 아래로 가림막을 가린 듯 한 모습이다. 머리의 정수리에는 수탉모양의 가죽 아플리케 장식(그림 3-3)이 세워져서 붙어 있고, 그 아래에 모피조각이 세 점 붙어 있다(그림 3-1). 가림막에도 마름모 모양안에 연꽃 장식이 있는 아플리케가 붙어 있다(그림 3-4).

 

그림 3. 파지릭 2호 출토 여성의 머리장식

 

 

새머리 모양의 장식이 있는 모자가 출토된 유적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아크 알라하 1 유적(1호분), 베르흐 칼쥔 2 유적(3호분), 올론-쿠린-골 10 유적에서 확인되었다. 독수리 머리에 굽이 있는 동물이 양식화 된 표현이다. 굽이 있는 동물은 주로 말, 사슴, 숫양이 대상이고, 새 머리도 양식화 된 것이다.

 

그리핀 장식은 발견당시 금박으로 입혀져 있었고, 붉은색으로 채색되었었다고 한다. 남성의 높은 그리핀 달린 모자의 베이스는 펠트로 제작되었다. 무덤에서 펠트조각과 함께 발견되었다고 한다.

 

종합하면, 파지릭 2호분의 남녀는 각각 높은 머리장식 1점과 낮은 머리장식 1점을 가지고 있었다. 남성의 머리장식 중 높은 것은 의례용이었겠지만, 여성의 머리장식은 둘 다 평소에 쓰기에는 불편한데, 무엇을 평소에 썼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불편함을 감수한 노력?은 여전한가 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의 2500년 전 무덤 안에는 사람과 함께 말이 매장된다. 한 두 마리가 아니라 현재까지 살펴본 말의 수는 6~10마리까지 매장되었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는 말이 7마리 매장되었는데,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전부 굴레와 안장, 안장덮개로 장식되어 있다.

 

그런데 앞에서부터 유심히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무덤의 말이 매장된 위치는 다른 무덤은 주로 무덤방 옆에서 확인되지만, 이 무덤은 구덩이의 입구와 가까운 곳에서 확인된다. 왜 그런지는 어디에도 설명이 안되어 있는데, 가장 유력한 이유는 도굴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에 미스테리와 같다.

그 덕분에 2호분의 마구와 굴레장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앞에서 알타이에서도 파지릭 계곡 보다 남쪽에 위치한 우코크 고원에서는 없었던 말장식 중에 하나가 말의 얼굴을 가리는 말의 마스크였다. 말이 다른 동물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 외에는 필자가 루덴코(1953)을 삿삿이 분석해서 조각조각 여러 군데 있는 유물을 찾은 결과 아래와 같은 마구와 말의 굴레장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루덴코가 편집한 것을 필자가 재편집했다는 사실을 아셨으면 한다. 눈이 팽팽돌아가는 경험이었다. 좀 있으면 논문도 쓸 수 있을 기세이다..ㅋㅋ

 

사실 파지릭 2호분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만 너무나 안타까운 무덤이기도 하다.

온전하게 남은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고분을 도굴한 사람은 얼마나 잘 먹고 잘 살았을지 궁금하다.

 

그림 1과 그림 2는 각 각 세트로 확인되는 것이다. 그 외에는 마구의 용도에 따라서 구분했다.

 

 

그림 1. 파지릭 유적 2호분 출토 말의 머리 장식(김재윤편집)

 

그림 2. 파지릭 유적 2호분 출토 말의 머리 장식(김재윤 편집)

 

그림3은 파지릭 유적의 5호분에서 나온 말의 굴레장식인데, 참고하시라고 보여드린다. 저런 말의 굴레장식에 각 호수에서 나온 말 마다 다른 장식을 달았던 것이다.

 

그림 3. 파지릭 유적 5호분 말의 굴레장식(김재윤 편집)

 

그림 4. 파지릭 유적 2호분 말의 굴레 장식: 목제 재갈멈치-동물문양장식(김재윤 편집)

 

그림 5. 파지릭 유적 2호분 말의 굴제 장식: 가죽(김재윤 편집)

 

 

 

 

림 6. 파지릭 유저 2호분 말의 재갈: 금속(김재윤 편집)

 

 

그림 7. 파지릭 유적 2호분 말의 안장장식(김재윤 편집)

 

 

그림 8. 파지릭 유적 2호분 말의 안장덮개

 

그림 9. 파지릭 유적 2호분 말의 안장 관련 유물과 채찍의 손잡이(김재윤 편집)

 

 

그들의 상상력과 디자인 능력은 최고이다. 디자인의 발달은 기술의 발달이 따라주지 않으면 될 수 없는 것은 현재의 IT산업도 마찬가지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