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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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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TV는 점점 커지고 벽에 딱 붙일 수 있게 개발되고 있다. 그냥 TV라기 보다는 벽을 장식한다는 느낌도 든다. 인간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는 주변의 환경도 깨끗하고 아름답기를 바란 것은 매우 오래전부터 였던 것 같다. 2500년 전에도 확인된다.

 

우리는 앞에서 파지릭 5호분에 한 통나무관 속에 남녀가 함께 묻혔고, 미라 처리되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런데 이 무덤에서는 남녀 주인공의 모습이 표현된 캐노피가 확인되었다. 펠트로 제작되었다. 크기는 4.5×6.5m이다. 파지릭 유적의 5호분은 이 무덤만으로 단독으로 특별전을 열 정도로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데, 마차와 함께 이 벽걸이 덕분이다.

 

그림 1. 2010년 에르미타주 박물관 특별전 사진. 벽걸이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펠트제품.

 

그런데 캐노피는 무덤방의 바깥에 마차 위에서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무덤방이 2개인데, 외부의 무덤방 크기가 3.4×6.42m, 내부는 2.3×5.2m였다. 이 캐노피는 무덤방 크기보다 좀 더 크다. 아마도 살아생전에 자신의 집에 걸어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랴즈노프는 실제로 무덤방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았다(그림 2).

 

그림 2. 그랴즈노프(1958)가 복원한 파지릭 5호분의 무덤방 내부, 그런데 이 복원도에서 가장 높은 곳에 붙어 있는 백조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벽걸이에는 말을 탄 남성과 의자에 앉은 여성이 한 쌍으로 두 단으로 나누어져서 반복해서 표현되었다(그림 1, 3).

 

 

 

그림 3.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벽걸이 (1958)

 

 

 

말탄 남성과 여성은 머리가 불규칙적으로 크게 표현되었다. 남성의 코가 크며, 검은 곱슬머리이다. 여성의 얼굴은 상당히 다르다. 어떻게 보면 여성스럽지 않지만, 코에 수염을 표현하지 않고, 머리를 민 것으로 보아서 여성이다. 복장도 그렇다. 남성과 여성이 다르게 표현된 점은 또 다른 곳은 귀이다. 남자의 머리 아래에 귀가 가려져 있고, 여자는 귀의 바퀴가 반대로 표현되었는데, 루덴코는 우연히 아니라고 생각한다(그림4). 앞에서 설명드린 파지릭 5호분에서 남성과 여성의 두개골 측량치가 다르다는 점을 알려드렸다.

 

그림 4.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벽걸이의 상세(그림1,3의 상세).

 

말탄 남성의 복장은 알타이 스키타이문화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망토와 좁은 바지, 꽉 맞는 목이 높은 칼러 자켓이다. 그러나 말은 알타이에서 볼 수 있는 말의 꼬리 장식, 안장, 굴레장식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성의 왼쪽 다리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대표적인 무기류 가운데 하나인 고리투스를 착용하고 있다. 고리투스는 활과 화살을 함께 넣는 통을 일컫는다.

여성은 발목까지 오는 긴 일종의 원피스를 입고 머리는 삭발한 채로 머리장식을 착용한 상태이다. 이 여성이 앉아 있는 의자의 다리는 무덤에서 확인되는 목제 상의 다리와 같은 모습이다(그림 4). 흥미로운 점은 여성의 오른손과 왼손은 모습이 다른데, 한 손은 꽃 다발을 쥐고 있고, 다른 손은 입을 가리기 직전 혹은 가리는 모습을 표현했다(그림4).

 

그림 1과 그림 3에서 가장 오른쪽의 모퉁이 하단은 그림이 다르다는 점도 눈에 들어오시는지?

 

위의 주제는 불사조인 피닉스(그림 5의 왼쪽)이고, 아래 주제(그림 5의 오른쪽)는 남성이 사슴뿔이 달린 머리장식을 달고, 사슴 옷을 입은 모습이다. 스핑크스라고 괴물이라는 주장(루덴코 1953)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남성은 사슴흉내를 낸 옷을 입은 것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머리장식은 파지릭 유적 2호분에서 확인된 모자 장식에서 확인가능하다.

아무튼 이 주제는 스키타이문화에서 동물에 대한 인간의 관념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러시아학자들의 주장대로 피닉스의 발 아래에 표현된 꽃이 페르시아지역에서 유래된 문양이라고 해도 컨텐츠만 들어온 것일 가능성이 크다. 루덴코도 이 캐노피의 해석은 알타이적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적인 요소와 내면적인 요소가 잔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림 5.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벽걸이의 오른쪽 하단 부위의 피닉스?(왼쪽)와 반인반수(오른쪽)

 

 

참고문헌

Грязнов М.П. Древнее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Л.: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1958. 96 с.(그랴즈노프 1958, 알타이의 고대 예술)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https://rg.ru/2010/12/09/ermitaj-altay.html 

 

В Эрмитаже открылась экспозиция "Древняя Сибирь. Пятый Пазырыкский курган"

Дни Эрмитажа начались в Северной столице. Одно из главных событий в череде мероприятий - открытие в музее новой постоянной экспозиции археологических памятников "Древняя Сибирь. Пятый Пазырыкский курган". Она рассказывает об истории и культуре племен скиф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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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그림 1.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전시중인 파지릭 5호분의 마차 (2010년 신문)

 

그림 2.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전시중인 파지릭 5호분의 마차2(2010년 신문)

 

그림 3. 2500년 전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마차(아즈벨레프 2019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해발 1500m 파지릭 5호에서 무덤구조를 보았다. 저의 포스팅을 계속 보신분은 아시겠지만, 그리고 필자가 이미 여러번 이야기 했지만 이 무덤에는 마차가 출토된다. 마차를 통으로 넣기는 했는데, 완벽한 모습으로 넣은 것이 아니라 분해해서 넣었다. 무덤에서 무덤방과 남쪽 벽 사이에서 마차의 난간이 확인되는데, 이는 처음부터 분해된채 들어갔을 가능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당연히 무덤속에 분해한채 들어갔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기 때문에 이야기 드린다. 마차가 통으로 들어간 무덤이 나오는 지역은 시베리아 보다 서쪽에 위치한 곳이고, 청동기시대 유적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자료를 공개하도록 하겠다.

 

2500년 전 파지릭 5호에서 출토된 사륜마차 혹은 전차는 관심의 대상이다. 나무줄기에서 잘라낸 원시적인 고체바퀴가 아니라, 바퀴는 회전축과 다용도 바퀴살(34점), 바퀴둘레가 있는 마차이다. 바퀴의 둘레는 한판이 아니라 여러 개를 이어붙였다(그림 4-1).

자작나무로 제작되었는데, 바퀴가 달린 두 개의 차축으로 구성되었다. 여섯 개의 수평판자, 몸체, 캐노피, 멍에와 고삐를 달리 위한 고리로 연결되었다.

 

마차의 하부구조는 직경이 1.5m인 바퀴 4개가 고정축에 장착되었으며, 6개의 스프링으로 서로 연결되었고, 고정축의 끝에는 일종의 차축이 별도로 제작되어 부착되었고, 앞 바퀴와 뒷바퀴 사이에는 막대기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그림1, 3). 차축은 원통형모양이다.

마차의 하부 구조위에는 두 개의 공간으로 구분되는데, 앞에는 운전자를 위한 좌석이 얇은 나무판자로 제작되었고, 등받이 부분에는 두 개의 프레임으로 조각된 플랫폼이 배치되었다. 등받이 부분의 플랫폼은 현대의 난간 모양인데, 마차 운전석 뒷면 사방에 둘러져 있다(그림1, 3). 운전석 뒷부분 난간 뒤에는 높은 기둥을 올리고 마차의 뚜껑을 덮는 구조로 구성되었다. 뚜껑은 얇은 판자를 묶어서 덮었으며, 운전사 뒷자석과 가까운 낮은 곳에도 유연하게 묶은 나무막대기를 묶어서 돌렸다. 마차의 부속품들은 아주 단단하게 묶은 것은 아니지만,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마차는 앞에 포크처럼 달린 길이 3.2m의 두 개의 막대기로 말 두 마리가 끌 수 있다. 두 개의 막대기는 길이 1.6m의 막대기로 고정되어 있다(그림 2의 오른쪽).

 

 

그림4. 1952년 파지릭 5호분의 복원하는 모습 바퀴(1)와 마차의 상부지지프레임(2) (국, 니콜라예프, 2012)

 

 

마차 바퀴는 분해된 채 발견되었다(그림 4-1). 마차가 분해된 채 무덤속에 넣어진 것은 무덤에서 확인되는 배치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완벽하게 조립할 수 있었는데 말이나 황소가 산길을 따라서 끌었을 것이다. 마차는 부피가 컸기 때문에 산이라도 길이 있는 비교적 편평한 곳에서 운전이 가능했을 것이다. 마차의 전체 길이는 3.05m, 바퀴는 1.95m, 높이는 2.65m이다(그랴즈노프 1955).

 

그런데 마차의 바퀴 끝에 끼운 원통형 모양의 축은 길이가 대략 35~40cm인데, 마차가 확인된 5호 무덤 외에도 1~3호분에서도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실제 마차는 5호에서만 확인되었다.

 

2500년 전 마차도 대단해 보이지만,  시베리아에서 마차의 존재는 이보다 더 오래된 청동기시대 안드로노보 문화 바위그림에서 확인되고, 카라숙문화에서는 마차의 부속품 등이 출토된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루덴코 1953, 스키타이 시대 알타이 산의 주민문화)

 Грязнов М.П. 1955,  Колесница ранних кочевников Алтая // СГЭ. 1955. Т. VII. С. 30-32.(그랴즈노프 1955, 알타이의 초기 유목민의 마차)

Гук Д.Ю., Николаев Н.Н. 2012, Повозка из Пятого Пазырыкского кургана. // Культуры степной Евразии и их взаимодействие с древними цивилизациями. Книга 2. CПб: ИИМК РАН, «Периферия». 2012. С. 454-457(국, 니콜라예프, 2012, 파지릭 유적 5호분의 마차)

Азбелев П.П. 2019, Пазырыкские лебеди.// Актуальные вопросы истории кыргызского народа: прошлое, настоящее и будущее. Сб. статей в честь 70-летия кыргызского историка и востоковеда Мокеева А.М. Бишкек: 2019. С. 279-286. (아즈벨레프 2019, 파지릭의 백조)

https://rg.ru/2010/12/09/ermitaj-altay.html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9세기부터 시작된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서 시베리아 남부의 알타이 산을 중심으로 기원전 5세기 가량에 확인되는 문화는 ‘파지릭’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파지릭 유적을 기념하는 성격이 강하다. 1920년대부터 발굴되었으며, 1947~1948년에 대부분의 대형고분이 발굴되었다. 파지릭 5호분은 계곡의 입구에 위치하며 대형고분이다. 남녀 미라 2구와 마차, 말 등이 확인되어서 특별한 무덤으로 생각된다.

 말은 9마리 부장되었고 그 가운데 굴레장식이 있는 말은 모두 4마리이다. 아직 말과 관련된 유물을 소개하지 않았지만 굴레장식 중에는 다른 유적에서 보이지 않는 유물이 있다. 아시다시피 말은 재갈을 채워야 부릴 수 있는데, 입에 물리고 고삐를 연결하기 위해서 재갈멈치가 필요하다(링크된 첫번째 포스팅 참고). 사실 재갈멈치와 굴레는 화려한 장식이 필요 없지만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재갈멈치와 굴레는 장식이 없는 유물이 거의 없을 정도다. 앞에서 살펴본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얼음공주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 3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에서도 그리핀이 주요한 굴레장식의 컨텐츠였다.

 

그런데 파지릭 유적은 위의 유적과는 달리 대형고분이 대부분 도굴된 채 발굴되었기 때문에 굴레장식이 온전하게 남아 있지 않다. 앞에서 살펴본 2호분도 그러했다. 파지릭 5호분에는 재갈멈치와 굴레를 연결하는 부위는 대부분 Y자형으로 조각되어 있다. 우코크 고원에서는 대부분 선을 조각하는 정도 였다. 그러나 파지릭 유적의 5호분에서는 늑대가 조각된 ‘Y’형 고리(그림 1-5)가 확인된다.

 

그림 1. 파지릭 유적 5호분의 굴레장식. 이 그림을 이해하시려면 이미 포스팅(아래참고1) 된 아크 아랄하 3유적의 말 굴레장식을 보시면 됩니다.호랑이(표범)과 늑대의 구분은 주둥이가 긴 것을 늑대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림 1-5의 늑대는 귀에 뿔이 달려 있어서 흥미롭다. 동물문양장식에서 동물의 눈과 귀 표현은 규칙성이 있는데, 이 유물은 늑대의 귀가 아니다.

 

다시 스키타이 문화권으로 돌아가자. 앞에서 필자가 스키타이문화권으로 볼 수 있는 지역의 표를 제공해 드린바 있다. 아주 광대한 지역에 넓게 퍼져 있었다(아래 포스팅-그리스장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화권으로 볼 수 있는 이유는 무기, 마구, 동물문양장식이 공통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스키타이 3요소라고 한다.

 

2020/01/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2500년 전, 여성 샤먼의 무덤 속 말 6마리과 장식

 

2500년 전, 여성 샤먼의 무덤 속 말 6마리과 장식

어제 보여 드린 무덤방이 머릿속에 떠오르시나요? 무덤방이 있던 무덤구덩이 가장 왼쪽에는 무덤방 안이 아니라 바깥에 이상한 뼈 들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나요? 앞에서 여성샤먼의 무덤방 천장 위에서 카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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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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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문화권에 대한 포스팅

 

그런데 동물문양장식은 단독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무기와 마구의 어느 부위에 동물문양장식이 부착된다. 의복류에 부착되는 종류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럼 어떤 동물이 대상이 되었을까?

크게 우제류 라고 불리는 굽이 붙은 동물, 맹수류, 맹금류로 구분된다. 굽동물은 사슴, 말, 산양, 염소가 자주 확인되고, 야크와 낙타도 드물지만 있다. 맹수류는 표범 혹은 호랑이, 늑대가 있다. 곰도 있다고 하는데 아직 필자는 보지 못했다. 맹금류는 독수리이다. 또 한 동물이 있는데, 깍두기 같은 멧돼지이다. 잡식성이기 때문이다. 맹수류와 굽동물을 조합하고 독수리 날개를 붙이면 그리핀이 된다. 멧돼지는 그리핀의 소재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 한 마리가 전신, 반신, 두상으로 표현되지만 두 마리가 한 번에 표현되기도 한다. 크게 두 스타일로 구분되는데, 두 마리가 물고 뜯고 싸우는 주제와 한 마리가 다른 한 마리를 물고 있는 것이다. 전자를 두 동물이 투쟁하는 장면이라고 하는데, 서로 물고 있는 경우도 있고, 한 마리가 공격하는 장면만 있는 것도 있다. 전자는 주로 평면적으로 표현되고, 후자는 주로 입체적으로 표현된다. 왜냐하면 두 동물이 싸우는 장면은 금속으로 제작되고 벨트의 장식이 된다. 후자는 사람이나 말의 모자장식으로 입체적으로 표현된다.

두 동물이 투쟁하는 장면은 평면형태는 두 가지 형식으로 구분되는데, 직사각형 모양(그림 2-1)이거나 한쪽은 직사각형이고 다른 쪽은 원형(그림 2-3~8)에 가깝게 표현된다.

스키타이문화의 동물문양장식은 아주 자유분방하고 만드는 사람에 따라서 완전히 새로워 보이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규칙이 있다. 필자는 그런 규칙성은 대상 동물의 선정, 용도에 따른 표현방법, 용도에 따른 평면형태 등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 2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 중에 하나가 그림 2-7,8이다.

 

그림 3. 에르미타주 소장,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콜렉션. 길이 12.3cm, 너비 151.2g. 그림 2-8과 같은 유물.

 

그림 3에서 보시다시피 이 유물은 대칭으로 구성된 또 다른 장식판과 쌍(그림 2-7)을 이룬다. 뒷면에는 4개의 고리가 땜질로 부착되어 있었다. 동물의 몸체에 있는 삼각형과 원형에는 색깔이 있는 보석류를 끼워넣었다. 이 유물은 벨트 장식으로 보기도 하고, 마구장식, 칼집장식, 옷의 장식 등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두 동물은 자세가 S로 하반신이 뒤틀리게 표현되었다. 말을 공격하는 동물은 사자몸통 및 얼굴+날개+영양의 뿔이 조합되었다.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그리핀 가운데 호랑이나 표범이 아닌 사자얼굴이 있는데 이는 페르시아의 영향으로 생각한다. 원래 서양미술에서 알려진 그리핀은 페르시아 혹은 그리스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졌으나, 기원전 4세기 후반에야 만들어졌고, 이미 시베리아 알타이에서는 그리핀은 기원전 7세기부터 확인된다. 물론 이 그리핀은 호랑이 혹은 표범과 굽동물이 결합된 것이다. 그렇지만 알타이에서도 사자의 모습을 한 그리핀이 확인되는데, 재지의 컨텐츠가 아닌 수입된 것이다. 매우 먼? 거리와 서로 통했다고 볼 수 있다. 스키타이 문화가 존재했던 시기의 페르시아에는 아케메네스 왕조가 있었다는 사실은 위의 링크된 포스팅의 표에서 확인된다.

 

참고문헌

루덴코 1962,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포그레보바 1948, Н.Н. Погребова 1948, Грифон в искусстве Северного Причерноморья в эпоху архаики. // КСИИМК. Вып. XXII. 1948. С. 62-65.(고대 흑해북안의 그리핀연구)

시쿠르코 1982, А.И. Шкурко, 1982, Фантастические существа в искусстве лесостепной Скифии.//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на юге Восточной Европы. Ч. 2. / Тр.ГИМ. Вып. 54. М.: 1982.(초원 스키타이의 예술에서 상상의 주제(동물)에 대해서)

페레보드치코바 199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 // М.: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94. 206 с. (По следам древних цивилизаций). (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 유라시아 스텝의스키타이 시대 예술에 대한 개론).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에서는 무덤속에 사람 뿐만 아니라 말도 함께 매장했다. 이런 무덤이 확인되는 곳은 해발 1500m의 파지릭 계곡, 2500m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다. 전자에는 파지릭 유적, 후자에는 이미 설명드린 바 있는 아크 알라하 3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이 있다. 아크 알라하 1유적의 2호분은 남자아이의 무덤인데도 말이 부장되었다. 유목을 기본으로 하는 생업환경에서 동물은 그들의 재산이자, 문화 전반에 동물에 대한 표식이 남아 있다.

 

파지릭 5호분의 무덤구덩이 북쪽에는 말은 9마리 매장되었다. 9마리 가운데서 1마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재갈을 비롯한 굴레, 안장, 머리장식을 착장했다. 말은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가장 아래에서 확인된 IX번 말이 머리장식까지 있어서 화려하게 치장되었다. 무덤안에 4륜 마차가 함께 매장되었고 이를 끌던 말이라고 생각하면, IX번 말은 가장 선두였을 가능성이 크다.

 

무덤구덩이는 기본적으로 무덤방을 설치한 후 남는 공간을 이용해서 매우 좁다. 말 9마리와 마차를 부장하기 위해서 층층이 쌓아서 넣었다. 무덤방의 바깥에 무덤위의 돌을 지지하기 위해서 수직으로 세운 세 개의 기둥이 기준이 된다. 무덤구덩이의 북쪽에서 동쪽 절반은 세 마리 말이 머리 방향이 동과 서로 교차되게 해서 묻혔다. 가장 아래의 말은 IX번 말로 머리방향이 서쪽을 향하고 배는 바닥에 깔고 있고, 그 위에는 머리를 동쪽으로 하고 등을 아래말쪽으로 향하도록 했다. 다시 그 위의 말은 머리가 서쪽으로 향하고 등을 아래로 향하도록 배치되었다. 기둥 뒤에는 동쪽을 향하고 있는 IV번 말만 넣었다. 기둥을 넘어선 서쪽에는 말 3마리가 쌓였는데, 가장 아래의 VIII번 말은 배를 바닥에 깔고 서쪽으로 향하고 있으며, 그 위의 말은 등을 바닥쪽으로 향하고, 머리는 동향이다. 말 위에는 마차가 분해한 채로 부장했고, 그 남은 공간인 가장 서쪽에 말 2마리가 서로 머리를 다른 방향으로 해서 부장되었다. 위에 있는 말은 말 머리가 무덤구덩이의 입구로 향하고 등이 하늘로 보도록 하는 자세이다.

 

말은 매장할 때 관의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매장된다(그림 1, 그림2). 관의 방향이 동서방향이면, 말도 동서방향이다. 파지릭 유적에서 통나무관은 모두 동서방향이고, 사람의 두향은 동향이다. 5호를 제외하고는 말의 머리장식이 있는 다른 무덤의 말은 모두 동향을 향하고 있다. 1~3호분에서는 말 머리 장식이 2개체분 출토되었고, 4호와 5호는 하나씩만 출토되었다. 그러나 5호는 앞에서 설명했듯이 말 머리 장식이 있는 IX번 말의 두향은 서향이다.

 

파지릭 유적에서는 말과 인간의 두향에서 규칙성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루덴코의 설명은 관이 동서방향인데, 말이 남북방향으로 매장되지 않는 것이다(그림 1, 2).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말의 두향이 모두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은 루덴코가 상트페테르부르그 출신이고 유럽인이어서, 동양인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과학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필자는 자는 방향을 바꾸거나 스트레스가 심한 날은 꿈을 심하게 꾼다. 모든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만 특히 자는 방향을 바꾸면 더 심해진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필자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그 옛날에도 있었을 테고, 두향에 대한 관념도 정해져 있었을 텐데....이런 부분은 알 수 없다.

 

 

     말 번호->

말 장식

I

II

III

IV

V

VI

VII

VIII

IX

재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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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레

 

 

 

 

 

안장

 

 

 

 

 

머리장식

 

 

 

 

 

 

 

 

표1. 파지릭 5호분의 말 장식(김재윤 편집)

 

위의 표는 루덴코의 서술에 따라서 말과 관련된 마구를 표로 만들었다. 의문점은 말을 부릴 때 가장 핵심인 재갈에 대한 설명이 애매하다. 애매한 부분은 물음표로 표현했다.

 

그림1. 파지릭 5호분의 무덤구덩이 내부

 

 

그림2. 파지릭 5호분의 무덤 구덩이 단면도

 

그런데 우리나라의 고고학 환경에서는 무덤의 두향방향은 거의 연구되지 않는다. 전 시대는 아니고 선사시대가 특히 그렇다. 왜냐하면 토양특성상 인골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몇 몇 특수한 환경을 제외하고는...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그림 1.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안장, 안장덮개와 크루퍼

 

그림 2.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안장머리 부분. 그림1의 상세사진.

 

2500년 전 시베리아 파지릭 유적 5호분에는 말이 9마리 사람 2인과 함께 매장되었다. 2인 중에서 누구의 안장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장과 안장덮개이다(안장은 4개 출토되었다). 가죽으로 제작되었으며 사슴털을 이용해서 꿰매었다. 안장의 앉는 부분에는 중간에 건초를 넣어서 푹신하게 했다. 앞면인 안장머리 부분과 뒷면에 2개의 타원형 지지대(그림2)가 있고, 무릎 혹은 엉덩이쪽으로 패널이 붙어져 있다.

지지대에는 사슴이 몸을 뒤튀는 모습이 새겨져 있고 그 중앙에 패널도 부착되었다. 패널에는 그리핀 혹은 맹수의 머리가 새겨져 있다(그림 3-3~5).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새겨졌는데, 맹수인지, 새의 얼굴에 맹수가 조합된 것인지는 구분이 힘들다. 패널은 4개(그림1) 모두 맹수 혹은 그리핀머리가 새겨져 있고, 엉덩이의 크루퍼와 연결된 패널에도 끝 부분의 장식(그림 3-7)도 같은 장식이다. 안장의 지지대 위에도 호랑이의 머리조각이 각각 5마리씩 안장머리에 10마리(그림 3-6)부착되었다. 안장뒷부분에는 정확하지 않지만 머리조각을 그림 1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림 3. 파지릭 5호분에서 출토된 안장의 부속품

 

스키타이 문화의 안장은 단단한 프레임과 포멜은 없었지만 오늘날 안장의 모든 요소가 이미 다 있다. 땀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는 안장덮개, 고삐끈, 복대, 등자쇠, 가슴밴드, 크루퍼까지 모두 다 있다. 크루퍼는 안장 뒷부분과 말 꼬리를 연결하는 스트랩이다.

크루퍼는 한국어로는 번역이 되지 않는다. 아래의 위키페디아에서 현대 크루퍼를 보시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림 1에서 안장의 뒷 부분에서 패널과 연결된 U자모양의 끈이 크루퍼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Crupper

 

이 안장은 지지대가 낮은 편이다. 그림 1을 자세히 보시면 안장을 덮은 붉은색 가죽이 있다. 가죽에는 아플리케 장식이 붙어 있다. 이 부분은 안장덮개로 땀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사슴가죽이고, 말총을 이용해서 덧 붙인 것이다. 이 안장덮개는 얇은 끈으로 안장과 연결되어 있다.

안장덮개에 덧 붙인 정사각형의 패널은 사슴가죽을 말총으로 이어 붙인 것이다. 땀을 흡수하기 위한 천은 안장의 안쪽에 부착되었다. 그 위에는 파란색털과 광택이 나는 붉은색 삼각형, 긴 네모꼴의 가죽 아플리케를 덧붙인 것이다. 원형의 금빛 나는 못이 아플리케를 고정시키는 역할도 한다. 붉은 정사각형에는 4개의 꽃잎과 1개의 원형 못이 박혀서 꽃모양으로 덮고 있다.

 

이 유적은 기원전 5세기 가량이지만, 스키타이문화에서 말안장은 기원전 7세기 가량부터 확인된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