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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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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아르잔-2호의 5호 무덤방에서 출토된 남성인골 동물문양장식

 

오늘은 날씨도 좋은데 화려한 유물을 보여 드리면서 시작하려 한다.

우리는 지금 3000여 년 전부터 2500년 전 사이의 시베리아 무덤을 살펴보고 있다. 미라가 남아 있는 아크 알라하 3유적도 보았고, 도둑맞은 파지릭 유적도 실컷 보았다.

무덤에는 인간과 말이 함께 매장되었고, 나무로 된 무덤방 속에 통나무관, 그 위를 흙으로 덮고 마지막에 다시 돌로 덮은 무덤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시베리아에서도 우육고원에 위치한 아르잔유적은 위에서 살펴본 스키타이 문화 가운데 파지릭 문화의 유적과는 사뭇다르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이미 아신다.

특히 아르잔-1호는 무덤구덩이를 파지 않고 지상위로 축조하고, 그 주변을 호석으로 벽을 쌓고 그 높이 만큼 혹은 약간 더 높이 돌로 쌓아 덮은 무덤이다. 아르잔-1호에서는 무덤을 덮은 돌의 단면도가 남아 있지 않아서 아쉽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 남녀의 무덤방에는 다리뼈 4개만 남겨진 상태여서 주인공에 대한 정보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세간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황금 유물은 말의 꼬리를 감싼 테이프 모양의 리본, 귀걸이 등 몇 점 남아 있지 않았다.

 

아르잔-2호는 아르잔-1호보다 200~300년 가량 늦은 기원전 7세기 가량의 유적으로 무덤구덩이를 팠다. 그리고 아르잔-1호에서 통나무 6000개를 사용한 무덤구조는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나무로 된 무덤방은 주인공의 무덤에서만 확인되었다.

 

아르잔-2호에서는 사슴, 맹수, 멧돼지, 새 등 엄청나게 많은 동물문양장식이 남아 있다.아르잔-1호에서는 말의 무덤인 2호 무덤방에서 확인되었으나, 아르잔-2호에서는 주인공의 무덤인 5호에 있다.

 

5호에도 역시 남녀가 매장되었는데, 남성이 왼쪽, 여성이 오른쪽에 묻혔다. 미라로 처리된 것은 아니지만, 남성과 여성의 인골은 비교적 잘 보존상태였다. 둘 다 머리는 경추 끝에서 떨어진 채 이다. 남성과 여성의 어깨에는 수많은 동물문양 펜던트가 달려있다(그림 1).

 

모두 호랑이 장식이다. 남성의 예를 들어보면 호랑이 장식은 왼쪽에 달린 것은 길이가 2cm, 너비, 1.2cm, 두께는 0.4cm, 무게는 2.87-3.94g이다. 오른쪽에 달린 것은  길이 2cm, 너비 1.1cm, 두께 0.4cm, 무게 2.67~4.16g이다. 이 펜던트는 호랑이가 왼쪽(그림2)과 오른쪽(그림 3) 서로 다른 방향으로 부착되었는데, 각각 1121점, 1512점이 붙었다. 오른쪽의 유물이 무게와 개수가 더 크고 많다.

 

그림 1을 보시면 척추와 장식물 사이에 희미한 물질이 있는데, 동물의 모피이다.

 

이 유물은 모피로 된 망토위에 달린 장식물이다.

 

 

 

 

그림 2. 아르잔-2호에서 출토된 남성의 동물문양장식(모피망토의 왼쪽)

 

 

 

그림 3. 아르잔-2호에서 출토된 남성의 동물문양장식(모피망토의 오른쪽)

 

고양이과의 맹수라고 보고되었으나, 필자는 둥근 귀로 보아서 호랑이라고 하고 싶다. 손톱보다 약간 큰 호랑이는 다리와 팔의 근육이 뚜렷하고 발톱까지 표현되었으며, 입을 벌리고 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스키타이 동물문양장식을 연구한 많은 학자들은 동물문양장식 중에서 근육이 매우 뚜렷한 것은 스키타이 문화의 또 다른 핫스팟인 흑해북안의 특징으로 단정했다.

이 연구가 주로 1980년대와 90년대 이루어졌고, 알려진 알타이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나무로 제작되어서 나무와 금을 비교하지는 않았다. 제작방법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 이후에 발굴된 아르잔-2호의 무덤에서 나오는 유물을 보면 시베리아에도 동물의 근육표현이 매우 뚜렷함을 알 수 있다.

 

흑해북안의 황금 유물은 훨씬 크다. 그 쪽에서 가장 이르다고 알려진 코스트롬스카야 유적(기원전 7세기)의 황금 사슴은 화살통에 부착되었던 장식판이다. 길이가 31.7cm, 너비는 19cm, 무게는 634그램 정도 된다. 이 유물은 동물의 근육이 면과 각으로 매우 뚜렷하게 표현되었다.

 

 

 

그림 4. 코스트롬스카야 유적 출토, 황금 사슴판

 

고고학은 새로운 정보가 생기면, 그간의 생각이 바뀌게 된다. 아르잔-2호는 수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예전에 한 것이 다 틀린 것이 아니고 수정하게 된다.

 

 

참고문헌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페레보드치코바 199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아르타모노프 1966,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3000 여 년 전에 시베리아 투바에는 직경 120m의 무덤이 축조되었다. 그 안에는 6000여개의 통나무를 사용해서 중심 무덤방이 있고 이를 기준으로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방을 70여개 만든 구조이다. 무덤의 가장자리는 판석으로 쌓아 올렸고, 무덤방을 돌로 덮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유적의 이름은 아르잔이라고 불리고, 해발 1050m의 우육고원에 위치한다. 1970년대 발굴되었고, 1980년에 이에 대한 아주 간략한 단행본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이 유적의 학술적 가치에 비해서 매우 빈약한 단행본이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몸을 말고 있는 원형의 맹수(호랑이 혹은 표험)장식물은 스키타이 동물문양 중에서 가장 이른 유물로,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을 시베리아로 생각을 바꾸게 한 기념비적인 유적인데 말이다.

 

이 유적을 발굴한 30 여년이 지나서 2000~2004년에 아르잔-2호가 발굴되었다. 아르잔-2호는 아르잔-1호에 비해서 작은 크기(직경 80m)지만,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었다. 남쪽의 호석 일부가 없어진 것 빼고는 무덤방의 주인공에 대한 정보 및 거의 모든 무덤이 파손되지 않았다.

 

어제 필자가 사진을 보여드리면서, 무덤의 상부가 앞에서 본 알타이의 다른 유적 무덤 상부에 비해서 울퉁불퉁한데 그 이유(그림 1, 2)는 오늘 알 수 있다.

 

원형의 무덤은 대체로 케잌 자르듯이 무덤을 동서(그림 1의 FS라인), 남북방향(그림 1의 KB라인)으로 가로지르는 단면을 잘라서 확인한다. 그리고 주변을 두른 호석 14곳을 잘러서 호석을 쌓은 방법도 확인했다(그림 1). 

 

 

그림1. 아르잔-2호의 무덤 내부, KB라인과 FS라인이 무덤을 발굴할 때 가장 먼저 확인했던 단면도이다. 그 외에 케익 자르듯이 표시된 선(C,D,E,G,H,I,J,L,M,N,P,R,T,U)이 호석의 단면을 확인한 선이다. 

 

그림2. 아르잔-2호의 무덤 내부, 그림1과 동일. 오렌지 색이 스키타이 무덤이고, 녹색은 그 뒤에 추가되었던 무덤이다.무덤번호는 인간이 묻힌 무덤과 말이 묻힌 무덤 구분없이 일련번호이다. 오렌지 색으로 표시된 것이 주인공인 무덤 5호와 함께 만들어진 것이다. 녹색으로 표시된 것은 뒤에 생긴 무덤이다. 

 

 

 

예상하셨듯이, 무덤은 여러 개가 지하로 무덤구덩이를 파서 만든 것이다.

아르잔-1호와는 너무 다르다. 그리고 이제까지 본 파지릭 고원과 우코크 고원의 무덤과도 너무 다르다.

 

무덤 위(봉분)에 생긴 함몰은 지하에 생긴 빈공간 때문에 생긴다. 그 빈공간은 아주 큰 무덤구덩이다 그래서 무덤위에 생긴 함몰은 여러 곳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진상 외관이 울룩불룩했다. 크게 3곳이었는데,  어제 포스팅한 유적의 지형도를 참고하시면 된다.

 

 

그런데, 어떤 곳이 주인공의 무덤방일까?? 

아르잔-1호는 가장 중앙에 있었는데??

5호이다.

 

 

왜?? 

5호가 무덤의 중심에 있지도 않고, 특별히 커 보이지도 않는데 왜 무덤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할까?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기도 하지만, 무덤방 때문이기도 하다.

이 유적에서는 나무로 된 무덤방은 5호(그림 3)에서만 확인된다. 11호에도 나무로 된 통나무가 사용되었으나 관이고, 아주 작은 무덤으로 무덤방은 돌로 만들어졌다. 5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무덤방은 돌로 만들어졌다.

 

5호의 무덤방은 아주 견고하게 만들어진 2중 나무 무덤방으로 만들어졌다. 비록 통나무관은 없었지만.

 

그림 3. 아르잔-2호의 주인공 무덤방 5번.

 

참고문헌

 

추구노프 2011, Чугунов, К. В. “Аржан-2: реконструкция этапов функционирования погребально-поминального комплекса и некоторые вопросы его хронологии.” Российский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ежегодник . СПб: Издательство СПб ГУ, 2011, С. 262-335

(추구노프 2011, 아르잔-2호: 무덤의례복합 유구의 복원과 연대에 대한 몇 가지 질문)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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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투바에는 3000여 년 전의 대형무덤이 남아 있었다. 직경이 120m에 이르는 대형무덤은 위에 쌓인 돌을 드러내자 그 내부에는 통나무 6000개 이상을 사용해서 70여개의 나무 무덤방을 지상위로 쌓아서 만든 구조였다. 무덤방 주변은 납작한 판석을 쌓아 올렸고, 그 높이 만큼 판석으로 덮어서 만든 무덤이었다.

 

이 유적의 이름은 ‘아르잔’으로 2000년에 2호를 발굴했다.

외관은 직경 80m가량으로 가장 높은 곳은 2m정도이다. 지표면에서 높은 곳은 2m이지만, 전체적으로 봉분이 편평하게 남아 있지 않았다(그림 2).

앞에서 살펴본 알타이의 얼음공주 무덤이나, 파지릭 유적에서는 봉분(무덤이 지표로 드러난 쌓인 흙 혹은 돌)의 함몰이 대체로 중앙이나 치우치더라도 한 곳으로 땅꺼짐 현상이 있는 것과는 다르다. 왜 일까? (생각해보시기 바람)

 

 

그림 1. 아르잔-2호의  옆에서 본 모습

 

그림 2. 아르잔-2호의 상부

 

그림 3. 아르잔-2호의 지형도. 봉분에서 가장 높은 곳이 2m이다. 찾아보시기 바람.

 

아르잔-2호의 주변에는 이 유구를 둘러싸고 많은 ‘점’이 확인되었다(발굴하기 전에는 볼록 솟은 원형의 점 같이 보였을 것이다). 남동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무덤을 애워싼 형태인데, 그 부분은 후대에 파손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점은 북쪽을 기준으로 2km 반경 안에서 확인되었다.

 

이 ‘점’을 조사해서, 돌을 고리모양으로 돌린 유구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미 기억에서 희미하시겠지만, 아르잔-1호에서도 이런 부분이 있었다.

특히 서쪽에 큰 것을 조사해서, ‘점’과 같은 곳이 파고 돌을 돌린 시설물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큰 유구(4,10~13) 주변에 다시 작은 고리형 돌 유구가 있었다는 점을 알았다. 무덤 주변의 모든 ‘점’을 다 발굴한 것은 아니고 그림 5에서 네모로 표시된 곳만 발굴했다.

 

그림 4. 아르잔-2호를 에워싼 돌 유구, 짙은 표시는 발굴한 곳이다. 

 

 

그림 5. 아르잔-2호의 서쪽 돌 유구, 숫자는 고리형 돌 유구의 번호, 그 안의 점선은 점토를 바른 흔적이다.

 

 

 

유구 주변으로 돌린 돌 유구를 구덩이(야마)를 팠다고 표현했으나, 돌을 수직으로 세우고 점토를 발랐다는 것을 단면(그림 6)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4호의 높이는 5cm가량이고, 크기는 7.5m가량이다. 유물도 출토되었다. 고리형 유구에서 모두 유물이 출토된 것은 아니다.

 

 

그림 6. 아르잔-2호를 둘러싼 돌 유구 가운데 4호.

 

유적의 남동쪽(그림 4)부분도 조사했다. 길 건너편이 있는 부분이다

이쪽은 양상이 약간 다른데, 지표면을 벗겨내자 처음에 나타난 것은 돌이 그냥 덮힌 것이다.

보통 이럴 때는 어느 한 부분을 잘라서 단면을 조사해 본다.

덥힌 돌 아래로 뭔가 유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그림 8-2)

 

그림 7. 아르잔-2호의 남동쪽 돌 유구, 그림 4에 표시되어 있음.

 

그림 8. 아르잔-2호의 남동쪽 돌 유구, 그림 7을 위에서 보고 그린 그림. A-A’가 자른 면(2)

 

그림 9. 유적의 남동쪽 의례공간, 그림 8의 돌을 드러내고 나타남.

 

덮힌 돌을 드러내자, 역시 돌 유구가 있었는데, 무덤의 북쪽, 동쪽, 서쪽과는 달리 돌을 쌓은 형태(그림 9)이다.

 

무덤을 둘러싼 이 곳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유적을 발굴한 추구노프는 아르잔-2호를 단순히 ‘무덤’이라고 하지 않고, 무덤복합체라고 했다. 주변을 둘러싼 이 돌 고리와 돌 무더기는 장례 당시에 의례를 치뤘던 공간으로 해석했다. 돌 고리는 대략 130여개 남아 있었다(그림 4). 돌 고리에서는 토기, 동물뼈, 청동 등 유물이 출토되었지만, 유물이 많지는 않다.

 

참고문헌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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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투바 공화국의 우육고원에는 3000여 년 전의 무덤이 남아 있었다. 아르잔-1호에서 대략 9km 떨어진 곳에는 2호라고 불리는 무덤이 남아 있다.

 

아르잔-2호는 비교적 최근에 발굴된 대형무덤이고, 알타이의 유적들에서 확인되는 유물이 황금이 제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문데, 황금유물이 많이 출토되어서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앞에서 본 우코크 고원과 파지릭 계곡의 유적은 나무를 금박으로 싼 유물이어서, 대부분 출토될 때 이미 금박이 벗겨진 상태여서 잘 남아 있지 않다.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서 파지릭문화 유물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르잔-2호에는 금판을 이용하거나 금을 아플리케처럼 잘라내서 철제에 덧 입힌 유물이 많이 출토된다. 앞에서 설명드렸던 아플리케 장식은 주로 가죽이나 펠트를 일정한 동물모양으로 오려내서 덧붙여서 만들었다. 예를 들면 얼음공주 무덤 속에 있던 일종의 펠트로 만든 레깅스의 허벅지 끝에 붙은 장식이라던지, 통나무관에 붙어 있던 화려한 뿔이 있는 사슴장식은 가죽을 잘라내서 붙인 것으로 가죽 아플리케 장식이다.

 

그런데 아르잔-2호에는 금박을 싼 형태가 아닌 얇은 금박을 잘라내서 철제유물에 덧 붙인 금 아플리케 유물이 출토된다. 특히 철검과 철촉 등 무기에 많이 장식되었다.

 

아직 설명드리지 않았지만, 아르잔-2호의 주인공 남녀는 5호 무덤방에 묻혔는데, 인골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 남성 인골 주변에서는 화살통(고리트)에 활과 시위가 담긴 채로 출토되었다. 파지릭 유적과 아크 알라하 1유적 등에서는 주로 활은 골제로 제작되었지만, 아르잔-2호에서는 철제(그림 3-1~11), 청동제(그림 3-12), 목제(그림 3-14) 등으로 제작되었다.

 

그림 1. 아르잔-2호, 5호 무덤방의 남성, 남성의 어깨 왼쪽 끝에 화살통의 끝이 보인다. 

 

그림 2. 아르잔-2호, 5호 무덤방의 남성 왼쪽 어깨부위에 놓인 고리트(화살통), 활이 가득 담겨 있다.

 

그 중에서 금 아플리케 장식을 화살촉이 주인공 남성의 왼쪽 어깨 부위에서 출토되었다(그림 1, 2). 화살촉에 덧붙인 아플리케 장식은 금(그림 3-1)도 있지만, 금과 은을 같이 붙인 것도 있다(그림 3-2~11)

화살촉의 크기가 길이 4.1cm, 너비 1.3cm 안에 뿔이 달린 영양 혹은 산양이 새와 함께 표현되었다. 새의 신체가 전부 드러난 반면에 뿔이 있는 동물은 머리만 보여서, 새가 산양을 공격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삼면이 같은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화살촉의 단면은 삼각형이고, 자루를 끼울 수 있게 홈이 안으로 들어가 있다.

같은 모양으로 금과 은을 함께 상감한 화살촉은 일종의 새 날개 혹은 소용돌이를 형상화 했다. 기하학적 모양에 가까운데, 같은 무덤방에서 함께 출토된 산양과 새가 표현된 유물과 관련을 시킨다면 새의 날개로 볼 수 있다.

금 장식만 삽입한 화살촉은 소재는 하나이고, 표현된 동물은 2 마리, 금과 은을 사용한 유물은 소재는 2개, 표현물은 1개이다.

 

이 유물은 철제 화살촉 면에 홈을 파고 얇은 금(은과 함께) 줄 혹은 금판을 삽입해서 망치로 두드려서 제작되었다. 이 방법은 아르잔-2호의 다른 무기에서도 관찰된다.

 

그런데 그림 2는 화살통과 활의 자루는 보이지만, 그림 3과 같은 유물은 관찰되지 않는다. 발견당시에 이 유물은 금속산화물 덩어리로 흙과 함께 형태가 없는 덩어리로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보존 처리실에서 처리한 것이다. 흙과 금속산화물을 다 뜯어내자 드러난 홈에 현대의 금과 은(일부)으로 복원한 것이다(그림 3).

 

그림 3. 아르잔-2호의 5호 무덤방 출토, 활(금 상감-1, 금과 은 상감: 2~11)(철제 1-1~11,13, 청동:12, 목제:14)

 

 

참고문헌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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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최근 넷플릭스로 영화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말하지 않아도 코로나 때문에 더 유행이 된 것이다. 원래도 유행하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필자한테 보라고 넷플릭스가 권하는 영화 중에 하나가 조선시대 좀비를 다룬 ‘킹덤’이다. 좀비류의 영화는 너무 억지 같아서 좋아하지 않지만, 조선시대라는 점이 흥미로워서 약간씩 시간날 때 보았다. 얼마 전에는 트위터에 검색어로 좀비가 해시태그에 딸려서 올라왔다.

‘좀비’라는 존재가 있었는지는 누군가 만들어 낸 소재인지 모르겠지만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좀비는 무덤 속의 미라와 인간형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둘 다 억지로 만들어내었다는 점에서...나의 입장에서는 좀비보다는 미라가 더 좋은 영화소재이다. 미라는 실제 존재하니깐.

 

‘미라’ 하면 사람들 머릿속에 떠 오르는 것이 아마 이집트일 것이다. 서양사중심의 역사쓰기와 영화가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집트 외에도 미라가 나타나는 문화중에서 우리와 비교적 가까운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도 있다. 특히 알타이에...스키타이 미라도 언젠가 영화 속에서 만나기를....(스키타이라는 제목의 러시아영화가 2018년에 개봉되었다. 아직 안봐서 내용은 모르겠다. 소비에트 시절의 영화는 은근하게 사회를 풍자해서 매우 재밌다. 하지만 최근의 러시아 영화는 그닥 재미있다고 느낀 적이 없다. 왜냐하면 어설픈 헐리우드 액션이기 때문에...)

 

스키타이 문화의 또 다른 핫스팟인 흑해북안에서 미라가 발견되었다는 자료는 접해보지 못했다.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적힌 내용에 왕을 장례치르는 방법은 실제 알타이 무덤 속에서 발견된 미라처리법과 비슷하다. 러시아학자들이 흑해북안의 자료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자료를 스키타이 문화로 묶은 이유는 아시다시피 무기, 마구, 동물문양장식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사’에 기술된 장례치르는 방법이 더 비슷해 보이는 곳이 알타이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유라시아 전역을 휩쓸었던 스키타이 문화는 대체로 기원전 8~7세기에 전 지역에 나타나지만 이 문화가 나타나게 된 것은 아르잔-1호를 기준으로 기원전 9세기에 나타났다고 한다. 

아르잔은 해발 1050m에 위치한 알타이 우육고원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아르잔 주변에는 무덤이 많았던 것으로 그랴즈노프가 적어놓았는데, 발굴된 것은 2기 뿐이다.

 

아르잔-2호는 그랴즈노프가 발굴한 1호보다 동쪽으로 9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아르잔-1호의 외형이 직경 120m, 높이 3~4m에 비해서 약간 작은편인데 직경 80m,높이 2m가량이다. 우육고원에 위치한 그랴즈노프가 왕들의 무덤 계곡이라고 불렀던 이곳에 대형고분은 대체로 70~100m, 높이 2~4m이다. (아르잔-1호를 가장 먼저 발굴한 이유가 아마 가장 컸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무덤은 2000~2004년간에 걸쳐서 발굴했다.

 

 

그림 1. 아르잔-2호, 위성사진, 유구가 뚜렷하게 보인다.(링크에 공유되어 있음)

 

그림 2. 아르잔-2호, 왼쪽의 점이 아르잔-1호이다.

 

www.google.com/maps/d/drive?state=%7B%22ids%22%3A%5B%22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22%5D%2C%22action%22%3A%22open%22%2C%22userId%22%3A%22104839998633637810520%22%7D&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몇 년에 걸쳐서 왜 이렇게 오래 발굴을 했을까?

러시아에서는 여름에만 발굴을 한다. 극동처럼 상대적으로 따뜻한 곳에서는 6월부터 발굴을 시작하기도 하지만 주로 7,8월에 한다. 9월이 되면 이미 춥다.

게다가 발굴을 직접 손으로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작업은 느리고 더디다. 그래서 러시아 발굴조사는 몇 년동안 한 곳에서 머무를 수 밖에 없다.

 

 

직경 80m(물론 무덤을 둘러싼 호석 너비가 2~2.5m가량이다. 가장 잘 남은 곳을 기준)의 공간에서 주인공 남녀가 묻힌 공간은 4.5×4.5m의 지하 나무방이다.

 

그림 3. 아르잔-2호의 주인공 남녀

 

무덤의 구조가 무척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아르잔-1호와는 어떻게 다를까? 또 앞에서 미라가 나온 아크 알라하 3유적, 파지릭 유적 2호, 파지릭 유적 5호와도 어떻게 다를까? 또 비슷한 건 머가 있을까? 연대는?

유물은 어떤 흥미로운 것이 있을까? 그리핀은 있을까? 어떤 동물문양장식들이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생긴다. 새로운 것을 보면. 

 

참고문헌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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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