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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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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에 해당되는 글 301

  1. 2020.05.28 시베리아의 청동 호랑이...2700년 전 무덤 속...1
  2. 2020.05.27 2700년 전 유목민의 냄비
  3. 2020.05.26 1m가 안되는 돌널무덤?
  4. 2020.05.25 시베리아 알타이의 낙타?2
  5. 2020.05.24 2700여 년 전 시베리아의 나무 무덤방 안으로...

유라시아 초원을 풍미했던 스키타이 문화의 동쪽 끝에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서쪽 끝에는 지금의 이란에서 앗시리아와 아케메네스 왕조가 있었다.

아득한 이야기 같은데, 필자가 이를 보여주는 표를 제공한 바 있다.

이 표의 가장 자리 오른쪽 끝과 왼쪽 끝은 중국과 이란지역이 있다.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도 하는 이 넓은 유라시아 초원을 공통으로 묶은 것은 앞서 몇 번 이야기해서 이제 식상 하시겠지만, 동물문양장식이다.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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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문양장식 중 가장 이른 유물은 몸을 말고 있는 원형의 맹수였고, 청동으로 제작된 말의 가슴을 장식하던 유물이었고 아르잔-1호에서 출토되었다.(아래포스팅에서 확인)

 

 

2020/05/0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르잔 유적 1호분] - 몸을 말고 있는 시베리아의 호랑이

 

몸을 말고 있는 시베리아의 호랑이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발굴된 무덤은 대부분 인간과 말이 함께 매장되었고 이를 일컬어 파지릭문화라고 한다. 파지릭문화는 스키타이문화의 지역적 명칭인데, 엄밀하게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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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잔-2호에서는 주인공의 무덤방인 5호에서 황금장식판이 주인공 남성 모피옷 위에 달려 있다는 점을 알았다. 여성의 복장에서도 같은 문양이 확인된다.

 

그럼 아르잔-2호에서는 호랑이 혹은 고양이과 맹수장식은 주인공 만의 것일까?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아르잔-2호의 20번 무덤방은 돌널무덤이다. 돌로 관을 만든 무덤으로 2인이 매장되었는데, 그 곳에서는 청동으로 제작된 호랑이가 표현된 유물이 출토되었다.

 

청동클립(그림 1)은 양 측면에 각각 모두 19개(청동클립의 끝부분 제외)인데, 가죽벨트를 감싸서 벨트를 장식했던 것이다. 가죽벨트는 남성이 직접착용한 것은 아니라 고리트(gorit)(화살통, 스키타이문화의 독특한 화살통을 부르는 지칭, 번역되지 않음. 영어로도 고리트라고 함)의 부속품이다. (아래 포스팅에는 고리트를 복원한 것을 참고할 수 있다. )

 

2020/02/2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기원전 5세기의 시베리아 군인

 

기원전 5세기의 시베리아 군인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스키타이문화의 유적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살펴보았다. 두 명의 남성무덤으로 전사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앞서서 살펴보았던 아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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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된 위치가 남성의 허리위에서 출토된 것이 아니라 남성의 우측에 활과 함께 가지런히 놓여서 확인되었다. 청동 클립 개개(길이 3cm, 너비 1cm, 두께 0.15cm)는 모두 동일한 모양이어서 같은 거푸집에서 주물로 제작되었다. 클립의 내부 크기로 보아서 고리트의 벨트 너비는 2.6cm, 두께는 0.6cm가량이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20호의 청동클립, 고리트(화살통)의 부속품

 

 

청동 클립에는 두 마리의 맹수가 같은 방향으로 발끝으로 선 자세로 표현되었다. 맹수의 발에는 끈 모양도 표현되었다. 그런데 맹수라고 하지만, 맹수의 표현이 다소 어색하다.둥근 눈, 앞 발과 뒷 발의 근육표현, 처진 꼬리 는 아르잔-2호 무덤방 5호의 황금 호랑이 장식과 비슷하지만, 입모양과 발의 발톱등은 선명하지 않다.

 

청동클립의 끝장식(길이 4.5cm, 너비 3cm, 두께 0.15cm) 은 두 개가 다르다. 그림 왼쪽의 청동 클립 끝장식에는 호랑이 두 마리 아래에 고양이과 육식동물을 부조(relief)방법으로 튀어나오도록 표현했고, 오른쪽 끝에는 새의 머리모양으로 투각방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솔직히 호랑이 두 마리 아래에 있는 양 쪽의 동물은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유물은 다른 모양의 호랑이과 맹수장식과 새 머리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건 실측도이고 실제로 보면 새 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호랑이과의 맹수장식이라면, 몸을 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호랑이장식이 주인공만의 것도 아니고, 황금으로만으로 표현되지 않았다. 아직 이제까지의 정보만으로  청동클립을 끼운 벨트가 어떻게 착장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의 알타이 투바 공화국 해발 1500m 우육고원에는 3000~2700여 년 전의 무덤이 남아 있다. 아르잔 마을에 위치해서 아르잔 유적이라고 부른다.

아르잔-1호와 달리 아르잔-2호는 무덤 구덩이를 지하로 판 무덤이 많다. 아르잔-2호 가운데서 주인공 무덤에는 남녀가 함께 묻혔고, 이중으로 된 나무 무덤방 속에 매장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인공과 같은 시대의 무덤방은 26개로 둥글게 돌아가는 무덤벽과 같은 역할을 하는 호석이 무덤방을 호위하고 있다.

 

그 중에서 5호 무덤의 주인공은 무덤의 시설과 부장된 유물로 보아서 VIP였다.

그런데 아직까지 소개하지 못한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이 이 무덤방에서 출토되었다.

 

무덤구덩이와 무덤방 사이에 청동으로 된 솥(동복)(그림 2-95,96; 3,4)이 출토되었다. 뿐만 아니라 바깥의 2차무덤방과 안의 1차 무덤방 사이에서는 나무로 된 접시(그림 2-97, 그림 5)가 출토되었다

 

 

그림 1.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의 무덤구덩이와 무덤방 벽 사이, 그림 2의 95,96이 청동솥이 출토된 곳이다.

 

 

그림 2. 아르잔-1호 출토 무덤방 5호 내부

 

청동솥은 손잡이가 부착되었고, 밑에 받침이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생김새는 다르다. 그림 3의 유물(입구지름: 20~22.7cm, 높이 29.7 cm, 바닥지름: 13.2cm)은 손잡이가 직사각형이고, 솥의 상단에 매듭이 있는 꼬인형태의 끈 모양이 달려 있다. 그림 4(입구지름: 32.8~31.5cm, 높이 45.6cm, 바닥지름: 13.4cm)의 유물은 손잡이가 8자를 옆으로 뉘운 모양이고, 입구와 가까운 부분에 3개의 돌대가 달려 있다. 동체부에 손잡이가 2개 더 달려 있다.

왜 그럴까?

 

그림 3. 아르잔-2호 출토 청동솥, 그림 2-95 위치

 

 

그림 4. 아르잔-2호 출토 청동솥, 그림 2-96 위치

 

그림 4의 유물을 보면 입구부위에 불룩 튀어 나온 3개의 줄이 돌아가는데, 손잡이 아래 부분을 보면 솥을 거푸집에 넣고 제작한 흔적이 남아 있다. 3개의 줄 아래에도 매끄럽지 않은 부분(녹색 화살)이 길게 튀어나와 있다. 이 부분은 이 선을 경계로 위와 아래가 따로 제작되어서 붙인 흔적이다. 땜질한 흔적이다. 이 솥에는 이외에도 수리한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청동솥은 스키타이 문화 만큼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던 유물이다. 알타이의 2500년 전 무덤에서는 출토되지 않았지만, 가장 넓게 유행하던 유물 중 한 가지이다. 중국동북지역 즉 만주라고 불리는 지역과 황하상류에서도 많이 출토된다.

 

이 유물은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다. 수리한 흔적이 남아 있는 점도 유물을 부장용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용 임을 알 수 있다.

 

 

 

그림 5. 아르잔 –2호 무덤방 5호 출토 나무 접시, 그림 2-97 위치

 

나무로 된 그릇은 1차와 2차 무덤방 사이에서 출토된다. 높이가 6cm, 직경은 40~43.4cm이다. 나무그릇은 한쪽이 완전치 못한데, 사용하던 그릇을 넣었다. 접시의 상면에는 사용한 흔적이 많이 남았는데, 날카로운 칼로 찌른 흔적이다.

 

그런데 앞에서 본 아크 알라하-3유적이나 파지릭 2호분, 파지릭 5호분과는 사뭇 다르다.

이 유적에는 무덤구덩이 안에 말이 없다. 뿐만 아니라 무덤방은 2개 만들어졌지만, 통나무관 없이 안의 무덤방을 관처럼 사용한 것이다. 통나무관이 있는 유적에서는 무덤방과 통나무 사이의 빈 공간에 그릇을 배치했다. 그러나 아르잔-2호에는 통나무관이 없어지고, 무덤방이 관을 대신하면서, 그릇은 2차 무덤방(내부)의 바깥에 껴묻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700여 년 전의 시베리아 투바의 무덤인 아르잔-2호는 단순히 하나의 무덤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주인공 남녀가 묻힌 곳은 5호 무덤방이지만, ‘호석’이라고 둘러쌓인 일종의 무덤벽 안에는 말무덤을 포함해서 스키타이 시대의 무덤은 26개이다.

 

남녀 주인공의 무덤방 5호를 제외하고 2호, 11호에는 나무시설이 있고, 그 외는 전부 돌을 사용한 무덤이다. ‘무덤방’이라고 5호를 불렀지만, 각각의 무덤이다. 2호와 11호도 각각의 무덤이다.

그런데 각각 부를 때는 상관이 없지만, 아르잔-2호 유적의 무덤 5호라고 틀림없이 사람들은 혼돈된다. 2호안에 왜 또 5호가 들어갔지?.. 그래서 필자는 아르잔-2호의 각 무덤을 무덤방으로 부를 것이다.

 

5호와 같지는 않지만 어찌되었던 나무 시설이 있는 2호와 11호를 제외하고나면 전부 석관묘이다. 석관묘는 교과서에 돌널무덤으로 부른다. 납작한 돌을 사용해서 만든 무덤인데, 사실 돌널무덤도 소재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게 구분가능하지만, 아르잔-2호에서는 소재는 한 가지이다. 무덤의 상부를 덮었던 일종의 석회암 판석을 이용한 것이다.

 

 

그림 4는 지난번에 같은 그림을 제공했는데, 20호와 8호에도 사람이 매장되었는데, 정정하시기 바란다. 오렌지 색깔이 스키타이 시대, 주인공 남녀와 같은 시기에 매장된 사람과 말이다. 한눈에도 크기가 다른 것이 보이는데, 묻힌 사람의 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 2인장이고, 1인장도 있다.

 

혼자서 묻힌 사람은 여성도 있고 남성도 있으며, 단인장(혼자서 묻히는 무덤)이라도 크기가 차이가 있다.

 

그림 1. 아르잔-2호의 8호 무덤방

1-무덤의 상부, 납작한 돌로 덮음, 2: 1의 단면도 A-A'는 1에서 자른라인을 의미한다. 3-덮개를 열고 난 후 무덤의 내부 모습, 번호는 유물출토위치. 

 

8호 무덤방은 길이가 0.9×0.75m이다. 남쪽의 무덤벽은 이미 넘어진 상태(그림 1-2)이다. 납작한 판석을 사방으로 둘러서 마치 ‘상자’모양으로 무덤을 만들었고(그림 1-3), 그 위에 돌을 덮었다(그림 1-1). 인골은 북쪽벽에 붙어서 묻혔고, 40~45세 가량의 남성이었다. 왼쪽 측면으로 뉘운 상태였고 매우 뒤틀린 상태였던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 무덤방은 길이와 너비가 1m가 채 되지 않는다. 어떻게 사람을 이 속에 넣을 수 있을까?

답은 구겨서 넣는 것이다.ㅋㅋㅋ(매우 쉽게 말했지만 자극적인 말이다.)

 

이렇게 작은 무덤에 인골이 들어가는 경우는 보통 ‘2차장’이라고 부르는데, 살은 어딘가에서 썩히고 무덤안에 뼈만 추려서 넣는 것이다. 보고서에는 직접적인 표현으로 2차장이라고 하지 않았으나, 다리뼈가 머리부근에 가 있는 점은 의심스럽다. 그런데 보통 2차장은 뼈만 수습되기 때문에 매우 뼈가 흩어진 경우가 많은데, 이 무덤은 척추를 왼쪽으로 뉘웠다는 점에서 매우 의심스럽다. 완전히 살이 썩지 않은 상태였는지, 살이 남아 있지 않고 뼈만 추려서 넣은 건지...? 

 그런데 청동칼(그림 1-3에서 번호 1번)의 위치를 보면, 완전히 뼈만 남은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보통 스키타이 문화의 칼은 짧아서 허벅지에 붙여서 찬다. 스키타이 전사 복원도를 제공한 적이 있는데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렇다고 어떤 상태로 무덤안에 들어갔는지 단정하기도 힘들다...??

 

무덤 안에서는 유물도 출토되었는데, 청동제(그림 2-1, 7~12)와 주석(그림 1~6)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청동제 칼(그림 2-1)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장신구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림 2.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8호의 출토유물, 1,7~12: 청동제, 2~6: 주석

 

그림 3.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8호의 유물, 그림 2-1,2와 같은 유물

 

 

 

그림 4. 아르잔-2호 무덤방 내부, 8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헤로도투스가 남긴 역사에는 스키타이족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민족은 머리끝이 뾰족한 고깔모자를 쓴다는 특징을 묘사한 적이 있다.

시베리아에 위치한 알타이에서는 고깔모자 쓴 사람들이 발굴되었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얼음공주,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전사,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남성미라 등 그들이 쓴 모자가 밝혀지고 있다. 물론 정수리 끝이 뾰족하지 않은 투구형 모자도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남성이 썼다는 점도 밝혀졌다.

 

일명 얼음공주의 모자는 그녀의 높은 머리장식을 감싸기 위해서 펠트로 제작된 아무런 장식이 없고, 챙이 있는 고깔모자였다. 아크 알라하 3유적은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만들어진 무덤이다.

 

아르잔-2호는 200년 정도 더 오래된 유적인데, 5호 무덤방에는 남녀가 함께 묻혔다. 여성의 두개골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두 개의 황금 막대가 놓여 있었다. 막대의 끝에는 반원형(그림 2-1)의 구슬모양이 붙어 있었고, 다른 한 점에는 화려한 뿔이 달린 사슴(그림 2-2)이 장식된 것이다. 막대는 각각 길이가 다른데, 반구슬모양의 장식이 붙은 것이 좀 더 길다(길이 35.7cm, 두께 0.4cm; 무게 59.29g). 반구슬은 안이 비어 있는 모양이다. 구슬이 붙은 쪽과 다른 끝은 뾰족하다. 반 구슬 옆에는 날개모양장식이 붙어 있다. 

 

그림 1.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여성의 두개골

 

그림 2.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그림 1에서 두개골 위쪽에서 확인된 고깔모자 장식물

 

그 아래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염소, 혹소(zebu), 염소, 멧돼지, 사슴, 염소, 혹소(zebu), 말, 양, 사슴, 육식 동물, 고양이과 맹수(호랑이), 염소, 사슴, 멧돼지, 낙타 및 사슴으로 연결되어서 동물문양장식이 붙어 있다. 그리고 식별할 수 없는 동물도 2마리가 있는데, 그림 3-1에서 검은 점으로 표시해 놓은 부분이다. 동물문양은 28.5cm 안에 표현되었다.

 

그림 3.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출토, 머리장식 1, 그림 2와 같음

 

 

또 다른 한 점은 끝에 뿔이 화려한 사슴이 장식되었다. 길이는 위에서 설명한 유물보다는 좀 작다. (길이 30.2 cm, 두께 : 막대 0.4 cm; 무게 55.52 g)이다. 가장 꼭대기의 사슴은 발끝을 세우고 있는 사슴 조각상이다. 그 아래의 동물문양장식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양, 염소, 말, 염소, 소, 염소, 두 마리의 염소, 사슴, 낙타, 염소, 양, 사슴을 공격하는 고양이과 맹수(호랑이)가 차례로 장식되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새겨진 동물의 발굽이 아래의 동물 머리에 붙어 있다. 동물문양장식이 붙어 있는 길이는 21cm가량이다.

 

 

 

 

그림 4.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출토, 고깔모자 장식, 그림 2와 같음

 

두 유물은 막대에서 돌출된 부분 반구슬 모양, 사슴모양은 따로 주조해서 납땜한 것이다. 막대기에 표현된 동물문양장식은 그림(3-4), 그림(4-4)와 같은 모양의 동물문양이 장식된 띠를 막대기에 붙인 것이다. 동물장식은 밀랍을 녹여서 만든 주물을 이용해서 동물이 튀어나오도록 보이는 부조(relief)기법을 이용해서 표현한 것이다. 동물문양장식을 납땜해서 막대기에 붙여서 제작한 것이다.

 

동물 중에서 이제까지 소개한 동물이 아닌 동물도 확인된다. 혹소와 낙타이다. 아직 소개해 드리진 않았지만 베르크 칼쥔 –2 유적에서는 낙타털이 함유된 펠트제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유적도 아크 알라하 3유적과 거의 동시대의 유적이어서 알타이에서 더 오래전 2700년 전에도 그들이 낙타의 존재를 알았다는 점도 알 수 있다.

이 유적은 아니지만 우코크 고원에는 낙타가 그려진 암각화도 이미 발견된 바 있다. 그리고 아르잔-2호에서도 황금 막대기 뿐만 아니라 다른 유물에도 낙타 그림이 있다.

 

그리고 두 유물은 아르잔-2호의 주인공 여성이 썼던 고깔모자의 앞에 붙은 장식으로 추정된다. 앞에서 본 얼음 공주의 고깔모자와는 뭔가 다르지 않은가요?

 

2020/01/2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3 유적(여성미라,'얼음공주')] - 시베리아 얼음공주의 머리장식과 고깔모자

 

시베리아 얼음공주의 머리장식과 고깔모자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3유적이라고 불리는 유적에서 1호분에서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붙은 여성미라가 발굴되었다. 그녀는 삭발을 하고 가발을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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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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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에서 대 유행했던 스키타이 문화가 시작된 시점을 알리는 유적으로 시베리아에 위치한 해발 1050m의 우육고원에 위치한 아르잔-1호에서는 통나무 6000여 개 이상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아르잔-1호와 10km가 되지 않는 곳에 위치한 아르잔-2호는 전혀 무덤 구조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연대가 늦어서 무덤구조가 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변화가 매우 크다.

 

특히 무덤방에 나무를 사용하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다. 가장 나무를 많이 사용한 무덤방은 주인공 남녀가 묻힌 5호무덤이다. 우선 무덤 구덩이는 윗부분이 5.40 × 4.40 m이고 밑면이 4.65 x 4.20 m로 바닥이 약간 작다. 깊이 4.35 m이다. 나무는 낙엽송으로 제작되었다. 무덤의 방향은 북서-남동향이다.

 

무덤방의 덮개는 2중으로 가장 위에는 통나무 22개(남서-북동방향)로 덮였고(그림 1-1, 그림 2), 그 아래에는 11개(그림 3-1)의 통나무를 사용해서 무덤 천장으로 만들었다. 무덤방의 천장이 된 11개의 통나무는 가장 위쪽의 나무와 방향이 다르게 교차되는 방향으로 덮였다(그림4).

 

 

남동쪽의 무덤 천장이 내려앉으면서 그 틈을 통해서 내려온 흙은 무덤방의 남동쪽까지 흘러들어왔다(그림 1)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분의 가장 위쪽 덮개(1)와 단면도(2), 무덤천장의 균열된 틈을 통해서 무덤구덩이 상부를 채운 흙이 흘러들어왔다. 무덤구덩이는 흙으로 채웠지만 무덤은 전체적으로 납작한 판석으로 채웠다는 점을 단면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림 2.  아르잔-2호의 최상위 천장, 통나무 22개 이용

 

 

 

그림 3. 아르잔-2호의 2차 무덤방 천장(1)과 단면도(2)

 

그림 4. 아르잔-2호의 무덤방 가장 상부 덮개와 무덤방 천장

 

 

무덤방의 높이는 1.4m가량이고, 2중 무덤방이다. 바깥의 1차무덤방은 크기가 3.68 × 3.41m, 2차 무덤방은 2.58 × 2.42 m이다. 외부에 있는 1차 무덤방은 9개의 통나무를 쌓아서 올렸다(그림 1-2). 1차 무덤방은 바닥을 따로 만들지 않고, 사방으로 무덤방의 벽만 올렸다(그림1-, 2, 그림 3-2).

2차 무덤방의 바닥은 통나무 12개를 이용했는데, 가장자리를 큰 나무를 이용하고, 상대적으로 작은지름의 나무 10개를 이용해서 무덤방의 바닥이 땅에서 약간 뜬 상태로 보인다(그림3-2).

 

그러나 내부 통나무방을 제거한 후에 그 바닥에 점토로 채워진 흔적이 발견되어서 무덤구덩이 바닥과 무덤방 바닥사이를 채웠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토 채움 흔적은 무덤의 북동부, 남동부, 남서부에서도 확인되었다.

 

 

통나무 나무방은 미리 만들어졌고, 무덤안에서 조립해서 다시 만든 것이다. 이는 무덤방을 만든 통나무를 결구하기 위해서 만든 홈과 나무를 다듬은 흔적으로 보아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그림 5,6)

 

그림 5. 아르잔-2호의 무덤방 모서리 결구상태 

 

그림 6. 아르잔-2호의 2차 무덤방(내부)의 통나무 다듬은 흔적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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