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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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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의 해발 2000m 유스티드 계곡에는 이 강의 본류인 추야 강 입구에서 사슴돌과 케렉수르가 복합된 제사유적이 발견되었다. 그 중에서 서 있는 사슴돌 주변을 둘러싼 고리 모양의 돌 무더기를 발굴했다. 이 유구는 케렉수르와 같이 둥글게 돌을 두른 적석시설과는 그 모양에 차이가 있지만 제사시설인 것이 알게 되었다. 특히 서 있는 사슴돌 옆에 누운 사슴돌에는 맹수 혹은 그리핀 4점이 그려져 있었다.

 

유스티드 계곡에는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알타이의 지역문화인 파지릭 문화의 유적이 존재하는데 그곳에서 발견된 그리핀은 맹수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유스티드 XII유적이다.

 

그림 1. 유스티드 계곡의 고분 유적, 기원전 5세기 파지릭 유적 뿐만 아니라, 흉노시기 및 초기투르크 시대까지 유적은 계속 사용되었다. 1-유스티드 XIII, 2-유스티드 XII, 3-유스티드 III, 4-유스티드 I, 5-졸린 I, 6-졸린 II, 7-유스티드 XXII

 

 

유스티드 계곡에서 발굴된 유적 가운데 맹수자세를 취한 그리핀이 출토된 유스티드 XII을 살펴보자. 이 유적에서는 모두 28기(2~29호)의 무덤이 발굴되었고, 그 중에 28호와 29호를 제외한 26기는 모두 기원전 5세기부터 시작되는 파지릭문화의 유적이다.

 

 

그림 2. 유스티드 XII유적의 무덤, 검은점-발굴된 무덤, 동그라미-발굴되지 않은 무덤, 점선동그라미-돌을 돌린 유구(원형고리유구), 발굴하지 않은 무덤은 1호뿐이다. 1호 앞에 지나가는 선은 타샨타 마을로 가는 시골길이라고 적혀있음. 열을 벗어난 무덤 28호와 29호만 다른 시기의 무덤이다. 28,29호 알타이 초기투르크문화.

 

 

(필자가 공유지도로 들어가서 보시면 희미하게 봉분이 보인다. 일주일 이상 계속 위성사진으로 쳐다보고 있지만 누렇게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구글위성사진은 날씨에 따라서 잘 보일때도 있는데, 아직은 유스티드 계곡은 잘 관찰되지 않는다. 여러분도 한번씩 살펴보면 재밌을 듯. 연해주의 발해성도 날씨 좋은 날은 아주 뚜렷하게 보일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비슷해 보이지만 각 무덤마다 약간씩 특징이 다르다. 무덤시설, 사람 수, 부장유물들이 차이가 있다. 소개할 무덤은 생각나게 하는 유적이 있는데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분 남성전사이다. 또한 투바의 아르잔 2호도 떠올리게 한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91 : Курганы Юстыда. Новосибирск: 1991. 194 с(쿠바레프 1991, 유스티드 쿠르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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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의 그리핀은 맹수와 맹금의 조합으로 제작된다. 알타이에서는 주로 독수리머리와 호랑이 몸이 합체된다. 2500년 전 남성전사의 무덤인 아크 알라하-1유적과 여성샤먼의 무덤(일명 얼음공주)인 아크 알라하-3유적에서 말의 굴레장식의 용도로 만들어졌다. 나무로 제작되고, 금박으로 싸서 말을 장식했다. 이보다 이른 2600년 전 바샤다르 유적과 투엑타 유적에서는 호랑이머리와 독수리머리가 합체된 그리핀이 굴레장식으로 사용되었다. 호랑이 머리 아래에 양쪽으로 독수리 머리를 붙인 것이다. 독수리 머리를 구름처럼 간략하게 표현해서 추상화 시킨 유물도 두 유적에서는 많이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투엑타 유적과 바샤다르 유적에서는 맹수의 머리와 초본류가 합성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있었다.

 

2020/07/2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투엑타 유적] - 시베리아 알타이 무덤에서 출토된 나무 그리핀

 

시베리아 알타이 무덤에서 출토된 나무 그리핀

시베리아 알타이의 2600년 전 투엑타 유적에서는 독수리머리 그리핀이 어떻게 조합되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있었다. 그런데 부족한 점은 독수리머리 그리핀과 독수리를 구분할 수 있는데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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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지역의 동쪽 끝인 동 사얀 지역인 투바에서는 2700년 전 아르잔-2호에서 청동으로 만들어진 그리핀이 있다. 퇴장지 1호에서는 청동 재갈멈치의 양쪽 끝에 호랑이가 묘사되었고, 굴레장식으로 새 머리가 출토된다. 세트로 착용되었다. 3호에서도 새의 머리가 묘사된 청동 재갈멈치가 나온다.

상상의 동물을 한 몸으로 만드는 과정이 갑자기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고 한 마리의 말에 두 동물을 배치해서 두 동물의 이점?을 모두 가지려는 일종의 믿음 같은 것이 생겼을 수 있다.

이 시점에는 아직 그리핀이 한 몸으로 합성되지는 않았지만 한 마리의 말에 두 동물을 배치해서 그 효과를 누렸을 수 있다.

 

흑해에서는 그리핀은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나온 은제 거울에 묘사되었다. 이 물에는 합성된 인간과 동물이 여럿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 반인반수의 합성동물 아래에 독수리 부리+맹수의 몸+날개가 합성된 그리핀이 있다. 날개달린 맹수 가운데 호랑이와 사자가 아닌 곰?에 날개달린 합성동물도 있다.

흑해의 독수리 머리 그리핀은 켈레르메스 유적과 프레페야하 유적에서 출토된 장식판도 비슷한 형상이다. 흑해의 그리핀은 그리스와 페르시아에서 나오는 그리핀은 독수리와 사자의 결합으로 기원전 6세기 말에서 기원전 5세기가 되어야 나타난다고 한다(시쿠르코 1982). 그런데 그리스 기원설에 대한 논점이 다시 제기되었는데(스키타이 문화의 초반인 18세기, 19세기에 유행하던 설), 스코로이(1996)가 주장했다. 앉은 자세, 짧은 부리는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의 유물에서 볼 수 있고, 들어올린 날개 표현은 그리스와 근동을 통해서 스키타이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리핀 그리스 기원설에 불을 다시 짚힌 것이다.

 

그러나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는 기원전 5세기부터 시작되는데, 스크로이가 주장한 프레피야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그림 1)은 기원전 7세기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시쿠르코가 주장한 바가 바로 이 부분이었다. 들어올린 날개표현은 시베리아에서 이미 기원전 7세기 이전에 날개를 편 유물이 있기 때문에 만약에 흑해에서 자체적으로 발전된 것이 아니라면 그리스가 아닌 시베리아에서 이곳으로 전해졌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의 문화권 안에서 유행하는 것이 더 쉽다.

 

그림 1. 프레피야하 유적에서 출토된 장식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하나 덧 붙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의 관계로 인해서 이런 주장이 쉽게 제기되었다고 생각한다. 스크로이는 우크라이나 사람이고, 페르프레하도 역시 현재는 우크라이나 국경내의 유적이다. 관계가 좋지 않은 러시아(시베리아) 보다는 그리스와의 관련설을 제기하는 것이 훨씬 자신의 입지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흑해 유적의 연구자료들을 보면 우크라이나가 독립되고 난 후와 그 전의 연구경향에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유물이 미국에서 전시되면서 그리스 발생론을 그대로 소개하는 경우가 생겼다(Scythian gold 1999).

 

 

 

참고문헌

А.И. Шкурко, 1982, Фантастические существа в искусстве лесостепной Скифии.//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на юге Восточной Европы. Ч. 2. / Тр.ГИМ. Вып. 54. М.: 1982.(스쿠르코 1982, 초원 스키타이의 예술에서 상상의 주제(동물)에 대해서)

Скорый С.А. Вооружение скифского типа в Средней Европе (к вопросу о связях Скифии и населения Средней Европы): Дисс. … канд. ист. наук // НА ИА НАНУ. — Ф. 12/611.(스크로이 유럽중부지역에서 스키타이 유형의 무기에 대해서...박사학위논문 요약본)

Ellen Reeder, 1999, Scythian Gold, Harry N. Abr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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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신화 속의 인물인 타르기타우스 혹은 아폴론(그림1)이 타고 있던 그리핀은 흑해에서는 어디서 찾아 볼 수 있을까?

 

그림 1. 흑해의 드네프르 지역, 스로노프스카야 블리즈니차 유적 출토품, 앞서 소개한 바 있음 유물의 뒷면(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인용)

 

그가 타고 있는 그리핀은 사자머리 그리핀이다. 이 유물은 기원전 4세기 유물이니, 그리핀의 최초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그리핀은 여러 동물의 합성한 일종의 상상 속의 동물이다. 맹수와 조류의 합성인데, 이 조합은 시베리아 뿐만 아니라 흑해 그리핀을 만드는 공식?에도 적용되는 듯 하다.

흑해에서 두 유물이 조합된 경우는 기원전 7세기의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은제거울에서 이미 본적이 있다. 아르김파사가 묘사된 거울의 왼쪽 2칸 옆에 반인반수 아래에 그리핀이 표현되었다(아래 포스팅 참고).

 

2020/04/2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유적과 유물] -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과 그리스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과 그리스

이제까지 2500년 전 알타이 위주로 스키타이 문화를 살펴보았다. 좀 더 자세하게는 파지릭 문화라고 일컫는다. 아시다시피 스키타이 문화라고 불리는 문화는 흑해 북안부터 시베리아 까지 매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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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켈레르메스 유적의 그리핀은 이미 조합된 상태이다. 그리고 스키타이 스타일이 아닌 우라르트(고대 아나톨리 지역의 국가) 혹은 그리스 스타일로 보기도 한다. 반인반수는 페르시아보다 우라르트에서 먼저 발생한 것이다(피오트로프스키이 1962).

켈레르메스 유적의 굴레장식 가운데 몸을 말고 있는 맹수가 표현된 뼈로 된 유물(아래 포스팅 참고)이 있다. 몸을 말고 있는 맹수표현과 새의 부리가 함께 조합된 청동판이 올리비아(그림 2)에서 출토된다. 올리비아의 공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스 식민도시라고 알려졌는데 이곳 공방에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완전히 스키타이 스타일의 유물이다.

몸을 말고 있는 맹수와 큰 눈이 달린 새 부리의 조합이다.

 

올리비아 도시는 기원전 5세기경에 만들어졌다는 설과 기원전 6세기 부터라는 주장도 있다. 이 공방에서 그리스 제작자들은 스키타이 귀족의 주문에 따라서 금속유물을 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20/08/0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유적과 유물] - 기원전 7세기 흑해 스키타이 사람의 무기와 마구장식

 

기원전 7세기 흑해 스키타이 사람의 무기와 마구장식

스키타이 문화는 흑해 및 인접한 카프카스 산맥 북쪽, 돈강 및 볼가강, 알타이, 시베리아의 미누신스크, 천산산맥(카자흐스탄)인접지역이 포함된다(그림 1). 그림1. 스키타이 문화권(에르미타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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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올리비아에서 발견된 두 유물은 이미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한 유물로 결합된 것은 아니지만 청동으로 만들어진 간두식에는 새가 표현되었고, 몸을 말고 있는 맹수 굴레장식도 각각 확인된다. 같은 시기의 울스키 아울에서 출토된 청동 간두령에 표현된 과장된 새의 표현은 올리비아 장식판과 같다(아래포스팅 참고).

 

2020/07/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시베리아황금유물컬렉션] - 흑해 부근에서 발견된 스키타이 문화의 청동방울

 

흑해 부근에서 발견된 스키타이 문화의 청동방울

시베리아 알타이의 2600년 전 무덤인 투엑타 유적의 1호에서는 코젤(산염소)의 뿔을 나무로 만든 것이 출토되었다. 말의 얼굴에 씌웠던 말의 가면 중 뿔에 해당하는 유물이었다. 쌍으로 확인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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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올리비아 이전에 이미 두 유물은 각각의 모습으로 확인되어 스키타이 그리핀은 올리비아 출토품 보다 더 올래된 그리핀이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림 2. 올리비아 출토품, 파르마코프스키 1910년 발굴, 11.2×10cm, 청동(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인용)

 

 

참고문헌

 

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 : Scythian Art. The Legacy of the Scythian World: mid-7th to 3rd century B.C. Leningrad: Aurora Art Publishers. 1986. 184 p.

Пиотровский Б.Б. 1962 : Искусство Урарту. VIII-VI вв. до н.э. Л.: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1962. 164 с.(피오트로프스키 1962, 기원전 8~6세기 우라르트의 예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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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탄 스키타이 전사를 볼 수 있는 곳은 흑해 뿐 만 아니라 시베리아 유물에도 있다. 시베리아 총독이었던 가가린이 1716년에 표트르 1세를 위해서 수집해서 보냈던 유물 가운데 한 점이다.

 

그림 1.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유물 컬렉션, 금과 청색유리와 산호, 부조와 상감기법, 높이 10.6cm, 너비 20cm(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부조로 만들어진 투각된 장식판인데, 한 쌍의 벨트 장식 중에 한 점이다(그림 1). 뒷면에는 가로로 벨트를 끼울 수 있는 고리 2개와 비스듬하게 세로 방향을 향한 고리 2개가 부착되어 있다. 주조의 흔적이 남아 있다(그림 2-4).

 

그림 2.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유물 컬렉션 가운데 황금 장식판의 뒷 면.  그림1의 뒷면은 4번이다. Руденко С.И. 1962 인용

 

이 장면은 숲에서 멧돼지를 사냥하는 장면이다. 가장 중요한 주제는 기수가 멧돼지를 잡는 장면으로 기수가 활을 당기기 직전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멧돼지는 다른 말의 발을 잡고 이 말을 또 다른 사람이 왼손으로 고삐를 쥐고 오른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고 있다. 장식판의 오른쪽 끝에는 머리를 뒤로 돌린 야생염소가 있다.

 

장식판에 감입된 청색은 주로 유라시아에서 많이 사용하는 터키석이 아니라 청색유리이다. 오른쪽 끝에는 산호가 감입되었다. 기수의 말은 안장 및 마구를 착장한 상태이다. 안장은 말꼬리까지 연결된 뒷걸이로 확실하게 표현되어 있다. 파지릭 유적에서 출토된 말의 안장도 뒷걸이 장식까지 화려하게 치장된 것이었다.

 

이 유물의 연대는 기원전 5~4세기, 혹은 기원전 3세기 까지 내려보기도 한다.

유물의 연대에 이견이 많은 이유는 표트르1세의 수집품 가운데서 좀 다르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유물들은 동물만 등장하거나 사람만 등장하는 유물이 아니라 드물게 함께 묘사되었고, 청색유리와 산호가 감입되었기 때문이다.

기수가 말 위에서 활 시위를 당기는 장면은 이 유물 뿐만 아니라 표트르 1세의 수집품에 있다. 그리고 이 유물들에 대해서는 늦어도 기원전 5세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이견이 없다.(아래 포스팅 참고)

 

2020/03/1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파지릭 유적 2호분] - 에르미타주 소장, 허리띠 버클 장식-나무 아래서 전사와 여신의 휴식

 

에르미타주 소장, 허리띠 버클 장식-나무 아래서 전사와 여신의 휴식

필자는 요즘은 향수를 쓰지 않지만, 한때 향수를 상당히 좋아했던 적이 있다. 요즘은 향수가 없어도 허전하다는 생각이 안 든다. 식탁 위에 디퓨저가 있는데, 유칼리투스 향이 약간씩 난다. 가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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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1유적] - 러시아 알타이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문화의 골제 화살촉

 

러시아 알타이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문화의 골제 화살촉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스키타이 문화의 한 유적인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는 15~16세의 남성과 45~50세 가량의 남성이 뭍힌 통나무관이 출토되었다. 소년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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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제작 기술은 아르잔-2 유적에서 수 많은 목걸이의 구슬이 출토되면서 시베리아 제작기술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새로운 자료가 업데이트 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다.

 

참고문헌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p.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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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세 가지 설이 있다. 흑해 지역에서 확인되는 유물을 근거로 하면 그리스(이오니아) 발생론과 고대 이란 설이고 시베리아의 자료를 근거로 중앙아시아(시베리아 설)이다.

그리스 설은 흑해 북안에 올리비아는 그리스 식민도시라고 알려진 도시로 기원전 5세기에 설치되었다. 하지만 흑해 북안에서 동물문양이 발견되는 것은 청동기시대부터 이기 때문에 현재는 현실성이 없다. 그리스설은 제국고고학위원회가 이 지역을 먼저 발굴하고 두서없이 연구하던 때의 이야기이다. 고대 이란설의 근거는 카프카스 산맥 남쪽에 위치한 지비예 유적을 근거로 한 것이다. 발굴당시에는 기원전 10세기로 생각했으나, 지금은 이 유적은 기원전 6세기 이후로 보기 때문에 이 부분도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시베리아 설(중앙아시아 설이라고도 함)의 근거는 투바의 아르잔-1호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몸을 말고 있는 맹수모양의 장식판이다.

 

사실 시베리아에서는 초기철기시대인 스키타이 문화 이전에도 카라숙 문화에서도 동물문양이 그려진 사슴돌이 발견된다. 그러나 카라숙문화 보다 더 오래된 오쿠네보 문화의 무덤에서도 추상적인 동물문양이 확인되기 때문에 동물문양의 시작은 이 문화로 부터로 볼 수 있다. 다만 카라숙 문화의 사슴돌에 그려진 사슴문양은 스키타이 문화에서도 직간접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에 스키타이 문화 동물문양의 직접적인 기원은 카라숙문화일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면 나의 부모님이 나를 낳으셨지만, 거슬러 올라가서 본적 없는 몇 세대 전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진에서 나의 모습을 찾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슴돌은 어디에 분포할 까? 사슴돌은 알타이에서 자바이칼(바이칼의 우측)과 그 남쪽에 위치한 몽골의 고비에도 분포한다. 알타이에서 남쪽으로 카자흐스탄에서도 관찰된다.

 

사슴돌은 기본적으로 돌에 그림을 그린다는 개념에서 암각화와 유사해 보일 수 있으나 다르다. 암각화는 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돌이 있는 깊은 협곡, 높은 산 혹은 산 길 옆에 위치한다. 산 길에 위치한 암각화에는 주로 마차가 그려져 있어서 마차길로도 생각한다.

그러나 사슴돌은 멀리서도 잘 보이는 산의 경사면, 높은 산 위의 분지에 분포한다.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봉분의 꼭대기에 설치했다. 암각화에 비해서 눈에 잘 뛰는 곳에 석상이 서 있다.

 

사슴돌은 2~5m의 석상에 표면에 음각해서 그림을 남긴 것이다.

사실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몸을 말고 있는 맹수 표현은 사슴돌에서 처음 발견된다. 발끝으로 선 자세의 사슴과 함께 그려졌다.

 

아르잔-1호의 사슴돌은 청동기시대 사슴돌을 재이용한 것으로 생각했고, 유럽 스키타이 족이 정말로 시베리아까지 아우르는 문화권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그랴즈노프 1978). 시베리아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전까지 연구자들은 흑해 북쪽에서 발견되는 석상(오벨리스크)은 유럽의 특징으로 생각했으나 이 부분도 흔들리게 된 것이다.

 

그럼 청동기시대 사슴돌은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주로 자바이칼과 몽골의 동부지역에는 판석묘라고 불리는 무덤의 모서리에 세워두었다. 몽골의 서부에서 발견된 사슴돌은 케렉수르라고 하는 제단시설의 일부이다.

 

그림 1. 몽골의 청동기시대 제단, 우시킨-우베르 유적( 볼코프 2002 인용), 앞에서 소개한 무사얼굴이 그려진 사슴돌(14번)이 발견된 유적이다.

 

참고문헌

Волков В.В. 2002 : Оленные камни Монголии. М.: Научный мир. 2002. 248 с.(볼코프 2002, 몽골의 사슴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Грязнов М.П. 1978 : К вопросу о сложении культур скифо-сибирского типа в связи с открытием кургана Аржан. // Ранние кочевники. / КСИА. Вып. 154. М.: 1978. С. 9-18.(그랴즈노프 1978, 아르잔 유적 발굴을 중심으로 한 스키토-시베리아 문화 유형에 대한 복잡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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