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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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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북안 스키타이 사람들에게 탄생설화가 있다.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스키타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그리스인 들이 하는 이야기가 헤로도투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스키타이 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최근에 세워진 국가는 자신들의 국가로 사람이 살지 않던 황야인 자신들의 땅에 최초로 태어난 자는 타르기타오스 였고, 부모는 제우스와 보르스테네스강의 딸이었다고 믿었다. 보르스테네스 강은 현재의 드네프르 강이다.

 

그리스인들은 헤라클레스가 드네프르 강 연안 삼림지대인 히레아에 살던 상반신은 사람이고 하반신은 뱀인 여자와 동거해서 낳은 셋째 아들(Schythes)이 스키타이의 원조라고 생각했다.

 

헤로도투스는 그리스의 올림푸스 신들과 스키타이 신들을 많이 비교했다. 이러한 견해를 그리스 신과 스키타이 신의 이름이 일치하지 않아서 이러한 비교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제벨레프 1927). 아르타모프(1961)는 스키타이 신들과 그리스 신들이 일치하지 않는 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흑해 북안의 여러 유적의 유물에 표현된 여러 여성에 대해서는 그리스 신화를 통해서 해석하고자 했다.

 

흑해북안에서 확인되는 여성상은 여러 유물이 있지만 그 중에서 기원전 4세기 침발카 유적에서 출토된 마면장식에는 환상의 동물과 여신이 표현되어 있다. 얇고 주름이 많이 진 옷을 입고 있는데 그리스 복장이다. 이 여성의 옷 주름 끝에는 하이브리드 동물이 표현되었다. 몸통은 뱀이고 머리는 뿔이 달렸는데, 사자머리 그리핀으로 여성이 두 손으로 잡고 있다. 다리에도 독수리머리 뱀몸통 그리핀이 표현되어 있고, 그 아래에는 꽃 혹은 초본류가 표현되었고 가장 끝에도 뱀이 머리를 서로 말고 있다. 이 여성의 머리 모자에서도 초본류를 상징하는 나선형 표현이 있다.

 

 

그림 1. 침발카 유적 출토, 마면장식, 청동에 금을 덧 씌움, 1868년 자벨린 발굴, 여신이 그려진 판: 41.4×12.6cm, 양 옆의 물고기판: 17.8~18.2cm, 재갈멈치 4.8~4.9cm

 

 

 

어찌되엇던 이 유물은 나무로 만든 말 얼굴가리개에 덧씌운 금판으로 스키타이 인들이 주문해서 그리스에서 제작된 유물이다. 전통적이 그리스 표현방법이다(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는 인접했던 나라의 유물이 많이 출토된다. 앞의 포스팅에서 확인할 수 있음).

그리스 신화가 그려진 마면 장식은 물고기 모양으로 된 볼 가리개(그림 1의 좌우) 및 일종의 재갈멈치(그림 1의 원판형)과 세트이다.

 

그림 2. 그림 1의 유물을 실제로 착장했을 때의 예.

 

 

이 여성은 전체적인 구도와 그리핀과 함께 표현된 모습은 소아시아의 Cybele라고 한다(아르타모프 1961) 또는 이 여성이 입고 있는 복장과 구조는 주로 그리스에서 헤카테 여신표현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한다(아르타모프 1966). 혹은 메두사(알레세예프 2012)라고 한다.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 인들이 유라시아의 동쪽 끝 어디에선가 그들의 먼 고향에서 중앙아시아 종족인 마사게트 인에 의해 쫓겨 흑해북안으로 이동해왔다는 견해를 지지했다.

러시아학계에서는 흑해북쪽의 살던 스키타이 인들은 이미 완성된 문화형태로 흑해북안으로 이동해 왔다는 의견과  볼가강(가까운 지역) 유역의 문화가 흑해로 이동했고 이 문화와 함께 재지의 청동기시대문화를 바탕으로 성립되었다는 두 가지 의견이 있다.

 

이 지역 전설은 서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구분이 되는지는 잘모르겠다. 어쩌면 헤로도투스가 꾸며낸 말일 수도 있다.. 스키타이인들에게 회자되던 내용이던 그리스사람들에게 회자되던 내용이던, 그리스 신과 스키타이인과 관련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헤로도투스가 태어나기 이전에도 스키타이 문화는 존재했고 유물에는 사람들이 표현되었다. 어제 보여드렸던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의 투부도 마찬가지이다. 

 

 

 

참고문헌

С.А. Жебелев. Геродот и скифские божества. Известия Таврического общества истории, археологии и этнографии, т. I (58), 1927, стр. 89-90.(제벨레프 1927, 헤로도투스와 스키타이의 신들)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Артамонов М.И. 1961 : Антропоморфные божества в религии скифов. // АСГЭ. [Вып.] 2. Л.: 1961. С. 57-87.(아르타모프 1961, 스키타이 의례 속의 의인화된 신)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에서 무기의 종류는 활과 화살(화살통 포함), 투부(전투용 도끼), 검이 세트이다. 실제로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2호에서 그대로 출토되었다.

 

어제 소개해 드린 흑해 스키타이 스키타이 무덤 중에 가장 빠른 무덤 중에 하나인 켈레르메스 무덤에서는 무기종류 가운데서 청동헬멧(투구), 화살통 만 소개해 드렸는데, 스키타이 문화의 기본적인 무기인 투부(그림 1)와 검(그림 5)도 출토된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출토, 1903년 슐츠 발굴품, 투부

 

 

흑해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자신들의 유물 뿐만 아니라 인접한 국가였던 그리스와 앗시리아에서 제작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들 유물도 단순하지 않다. 스키타이 인들이 주문해서 그리스에서 제작한 것, 앗시리아에서 제작해서 스키타이에 선물 들어온 유물, 그리스 유물, 앗시리아 유물 등 다양하다.

 

투부와 검은 스키타이와 고대 이란의 특징이 함께 나타난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투부는 철제도끼에 금판을 입힌 것이다. 도끼의 형태는 한쪽에는 날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동물문양을 장식한 것이다.

도끼 날 반대쪽 등에는 다리를 접고 목을 뒤로 돌린 염소, 그 아래에는 뒷다리로 서 있는 염소(그림 2-1)와 그 옆면에는 도끼를 든 사람(그림 3-1)이 있다. 도끼머리 중간에는 다리를 접어 넣은 염소와 사슴이 표현되었다. 두 동물은 머리방향이 다르다(그림 3-2). 도끼자루 끝에는 도끼 등과 같이 두 마리의 염소(그림 2-2)가 있다.

 

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출토 , 1: 도끼의 날 반대면, 2: 도끼자루끝

 

그림 3.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출토, 1: 그림 3-2의 옆면, 2: 도끼 신부 중앙

 

도끼 자루에는 각 면에 28마리의 동물이 표현되었다(그림 4). 직각으로 다리를 굽혀서 앞으로 팬 맹수, 접어 넣은 사슴, 염소와 황소, 멧돼지, 하이브리드 동물등이 배치되었다. 동물의 종류와 동물자세는 스키타이 문화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림 4.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출토, 도끼 자루의 동물

 

그러나 어제 보여드린 포스팅에서 보신 화살통장식, 표범장식등 스키타이 문화의 표현법과 그림 2~4의 동물은 그 표현법이 다르다. 동물의 표면을 섬세한 문양으로 채운 점(별 문양 포함), 대퇴부 안쪽에 홈, 다리를 대퇴부와 견갑부를 분리해서 표현한 점, 견갑부를 이중으로 선을 처리 한 점이다. 이는 스키타이 동물문양장식의 표현법과 다르다.

고대 이란 삭크이즈 유적의 유물에서 볼 수 있는 기법이다(아르타모프 1961).

 

자루에 새겨진 동물은 종에 따라서 자세, 코와 주둥이, 귀 표현, 몸통표현도 차이가 있다. 이 점은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문양 표현체계와 같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

켈레르메스 고분에서 출토된 기원전 7세기의 철검(그림 5)은 금판으로 장식된 것이다. 철검은 검집에 들어간 채 확인되었고, 금판에는 하이브리드 동물, 물고기, 사슴 등이 새겨진 것이다. 특히 검집의 귀에는 스키타이 사슴문양(그림 6)이 가장 크게 표현되어 있다. 사슴문양 옆의 검집이 시작하는 부위에는 날 개달린 두 사람 표현이 의식을 치르는 장면이 상단과 하단에 나누어서 표현되었다(그림 7-1). 검집 끝에는 사자(그림 7-2)가 표현되었다.

 

 

그림 5.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출토, 1903년 슐츠 발굴품, 철검과 검집손잡이 14.2cm, 날 길이 46.7cm

 

그림 6.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출토, 그림 7의 세부, 검집귀 장식: 사슴

 

 

그림 7.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출토, 그림 7의 세부, 1-검집 시작과 2-끝

 

검집 중앙에 하이브리드 동물문양은 양머리+맹수(그림 8-1), 독수리머리+맹수(그림 8-2), 사자머리+맹수(그림 9)가 반복해서 검집에 표현되었다.

 

그림 8.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출토, 그림 7의 세부, 검집, 하이브리드 동물

 

그림 9.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출토, 그림 7의 세부, 검집, 하이브리드 동물

 

검집에 표현된 동물문양은 사슴문양(그림 6)을 제외하고는 고대 이란과 관련이 있다. 사자는 카프카스 산맥을 넘어선 남쪽지역 즉 이란에서 많이 사용하던 문양이다. 하이브리드 동물문양도 몸통안에 파상문을 채우고, 대퇴부와 견갑골의 표현 등은 스키타이 적인 요소는 아니다. 특히 물고기를 견갑골에 달아서 표현한 점도 그렇다.

 

검집시작 부위에 표현된 날개달린 사람은 머리띠를 두르고 있는데, 스키타이 사람들의 머리스타일과 다르다.

 

이 유물은 스키타이 인들의 요구에 의해서, 근동에서 제작된 유물이다(체르넨코 1980, 갈리아나 1997, 알렉세예프 2012).

 

오늘은 그림보는 것 말고는 별로 흥미로운 점이 없을 수도 있다. 흑해 스키타이 문화에는 인접한 문화의 영향을 받은 요소가 많다는 사실을 이미 말씀드렸기 때문이다. 이 유물로 알 수 있는 점은 스키타이 인들은 고대 이란에도 주문제작했 다는 점이다. 은제거울을 그리스 장인이 제작했듯이.

 

그러나 별꺼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유물을 자세하게 들여다 보지 않는다면 절대 알 수 없는 내용이다.

쉽게 동물문양장식이어서 스키타이의 것이라고 하면 다들 우습게 생각할 것이다. 

 

 

 

참고문헌

Черненко Е.В. 1980 : Древнейшие скифские парадные мечи (Мельгунов и Келермес). // Скифия и Кавказ. Киев: 1980. С. 7-30.(체르넨코 1980, 멜구노프와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고대 스키타이 의례용 검)

Галанина Л.К. 1997 :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Царские» погребения раннескифской эпохи. М.: 1997. 316 с., табл.(갈리아나 1997, 초기 스키타이 시대의 차르 무덤, 켈레르메스 고분)

페레보드치코바 199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알렉세예프 2012,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Артамонов М.И. 1961 : Антропоморфные божества в религии скифов. // АСГЭ. [Вып.] 2. Л.: 1961. С. 57-87.(아르타모프 1961, 스키타이 의례 속의 의인화 된 신(神))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는 흑해 및 인접한 카프카스 산맥 북쪽, 돈강 및 볼가강, 알타이, 시베리아의 미누신스크, 천산산맥(카자흐스탄)인접지역이 포함된다(그림 1).

 

 

 

그림1. 스키타이 문화권(에르미타주 2001 필자편집)

 

흑해와 인접한 카프카스 산맥 북쪽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무덤 중에 하나가 켈레르메스 유적이다(그림 1의 녹색 네모).

 

각 지역마다 고분은 차이가 있지만 무기, 마구, 동물문양장식이라는 공통성이 같은 생업경제를 바탕으로 거대한 문화권을 이루었다. 특히 동물문양장식은 이 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동물문양장식은 다소 추상적일 수 있다. 그러나 소개하지 않았지만 페르시아 직조물들(카펫과 의복)이 알타이의 여러 유적(파지릭, 아크 알라하-3 유적) 뿐만 아니라 아르잔-1호에서 출토되어서 직접적인 어떤 교류가 있었는 것을 증명한다. 이 문화권의 동쪽끝에는 춘추전국시대였고, 서쪽끝에는 아시리아와 페르시아제국이 있었다.

 

스키타이문화의 서쪽끝인 흑해 유적에도 인접한 지역과 교류가 활발한 흔적이 남아 있다. 고분에서 출토되는 앗시리아 및 그리스의 유물들이다. 현재 전해지는 유물들은 모두 황금유물만 남아 있는데, 다른 유물은 보고가 잘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황금 잔은 앗시리아 스타일이고 은제 거울은 그리스 스타일이다. 이 외에도 여성의 머리를 장식하는 일종의 머리띠(그림 2)과 그리핀이 달린 머리띠(그림 3)도 그리스 장인이 만들었을 것으로 본다. 특히 그림 3은 스키타이 무덤(켈레르메스 고분)에서 출토되었으나, 스키타이적 요소 혹은 그 영향도 보이지 않는다. 흑해 북안에서 출토되는 유물 가운데 스키타이 귀족이 주문 제작한 그리스 스타일의 유물은 스키타이 적인 요소 혹은 기법이 더해졌지만(예를 들면 솔로하 출토 황금 빗, 켈레르메스 출토 은제 거울) 이 유물은 전쟁으로 뺏아온 획득물일 가능성이 있다(갈리아나 1997, 알렉세예프 2012)

 

솔로하 출토 황금빗-->아래포스팅 참고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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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출토, 그리스+스키타이 스타일, 1903년 슐츠 발굴품

 

 

 

 

그림 3. 켈레르메스 유적 3호분 출토, 그리스 유물, 1904년 슐츠 발굴품

 

앗시리아의 유물은 황금잔과 의자의 장식(그림 4)과 화살통 혹은 활의 장식(그림 5) 등이 있다. 동물장식을 사용한다느 점은 같지만 동물을 표현법은 완전히 다르다(그림 4). 눈, 코, 입주변 등이 그렇다. 산양(그림 5)은 앗시리아에서 사용하지 않는 문양으로 스키타이 왕 혹은 귀족을 위해서 만들어진 기념품이다(갈리아나 1997, 알렉세예프 2012).

 

 

 

그림 4.켈레르메스 유적 3호분 출토, 의자의 장식, 앗시리아 유물, 1904년 슐츠발굴품

 

 

 

 

그림 . 켈레르메스 유적 3호분 출토, 활의 장식, 앗시리아 유물, 1904년 슐츠발굴품

 

 

 

그럼 도대체 흑해의 스키타이 사람들의 유물은 무엇일까?

 

마구와 무기류 및 의례품 등이 보고되어 있다.

쿠반형 헬멧(그림 6, 7)은 너무나 유명한 흑해 스키타이 사람들의 유물이다. 이 유물은 몽골, 중국 요서지역까지 넓은 분포를 보인다(알렉세예프 2019)

 

 

 

그림 6. 켈레르메스 유적 2호분, 베셀로프스키 발굴

 

 

 

 

그림 7. 켈레르메스 유적 3호분의 15무덤, 1993년 발굴

 

뼈를 깎아서 만든 굴레장식(그림 8, 그림 9)도 알려졌다. 특히 몸을 말고 있는 맹수 표현은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아르잔-1호 유물에서 볼 수 있는 요소로 학계의 주목을 많이 받았다. 굴레장식에 표현된 동물문양은 알타이와는 차이가 있다. 매부리형?코에서 입으로 이어지는 표현과 입 아래 턱수염 표현 등은 스키타이 문화의 서쪽 지역 특징이다.

 

뿐만 아니라 지팡이 끝에 끼워서 사용했던 간두령(그림 10)은 완전한 스키타이 서부 스타일이다. 귀가 강조된 독수리 머리 그리핀이 붙어 있다.

 

 

 

 

그림 8.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왼쪽)과 2호분(오른쪽) 출토, 굴레장식, 베셀로프스키 발굴

 

 

 

그림 9. 켈레르메스 유적 2호분 출토 굴레장식, 베셀로프스키 발굴

 

 

 

 

그림 10. 켈레르메스 유적, 슐츠 발굴품

 

이 포스팅에는 황금 유물은 그리스와 앗시라아 유물만 소개되었으나 이미 포스팅한 바 있는 화살통 장식(그림 11), 표범 장식(그림 12) 등 스키타이 유물 가운데도 황금 유물은 있다. 그러나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로 보고된 유물 가운데서 특히 슐츠는 도굴꾼인가 싶을 정도로 눈에 띄는 유물만 보고했다. 사실 얼마나 정직하게 보고 했을지도 의문스럽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쿠반스타일의 헬멧은 멀리 멀리 전해져서 몽골(갈리아나 1985, 알렉세예프 2019)과 중국 하가점상층문화(강인욱2006) 에서도 출토된다.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11. 켈레르메스 4호분 출토, 스키타이 화살통 장식, 1904년 슐츠발굴

 

 

 

그림 12. 켈레르메스 1호분 출토, 표범방식, 1903년 슐츠발굴

 

 

 

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 К., 1985. Шлемы кубанского типа (вопросы хронологии и происхождения) // Культурное наследие Востока. Л. : Наука. С. 169–183.(갈리아나 1985, 쿠반 스타일 헬멧의 편년과 기원)

강인욱, 2006, 中國 北方地帶와 夏家店上層文化의 청동투구에 대하여-기원전 11~8세기 중국 북방 초원지역의 지역간 상호교류에 대한 접근-, 선사와 고대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Алексеев А.Ю. Шлем «кубанского» типа из Келермесского могильника (раскопки 1993 г.)//НИЖНЕВОЛЖСКИЙ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ВЕСТНИК 2019. Т. 18. № 2(알렉세예프 2019, 켈레르메스 무덤(1993년 발굴)에서 출토된 쿠반 스타일 헬멧

Галанина Л.К. 1997 :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Царские» погребения раннескифской эпохи. М.: 1997. 316 с., табл.(갈리아나 1997, 초기 스키타이 시대의 차르 무덤, 켈레르메스 고분)

Золотые олени Евразии.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в Гос. Эрмитаже, СПб, 18 октября 2001 года — 20 января 2002 года. СПб: «Славия». 2001. 248 с. (에르미타주 국가박물관 특별전 도록, 유라시아의 황금 사슴, 2001)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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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인근의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 위치한 스키타이 무덤 가운데 가장 이른 것 중에 하나는 켈레르메스 고분이다. 기원전 7세기 정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1903년과 1904년에 독일인 슐츠와 러시아 고고학자인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무덤에서 황금유물이 유명하다.

 

이미 소개해 드린 은제거울, 표범방패장식, 화살통 장식 등이 있다.

 

2020/02/2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 2500년 전,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인의 활, 화살통

 

2500년 전,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인의 활, 화살통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전사 무덤에서는 뼈로 제작된 화살촉이 출토되었다. 두 명이 묻혔는데, 화살통과 활까지 부장했던 것으로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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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과 그리스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과 그리스

이제까지 2500년 전 알타이 위주로 스키타이 문화를 살펴보았다. 좀 더 자세하게는 파지릭 문화라고 일컫는다. 아시다시피 스키타이 문화라고 불리는 문화는 흑해 북안부터 시베리아 까지 매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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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소개해 드리지 않은 유물 가운데는 황금으로 된 그릇이 있다. 두 개는 세트인데, 하나는 동물문양이 장식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꽃 잎과 마름모문양이 반복되어 표현되었다. 동물문양은 그릇의 바깥이 음각한 것이고, 기하학적 문양은 그릇의 바깥을 양적으로 표현했다.

 

가장 상단에는 타조, 2번째 열에는 사슴바닥에는 꽃 문양이 장식되어 있고 이를 중심으로 코젤(산염소), 카프카스 염소(Caucasian tur), 사슴이 교차해서 배열되어 있다. 사슴 등에 올라탄 사자(그림 3-2)와 코젤을 쫏고 있는 늑대(그림 3-1)도 2번째 열에 배열되어 있다. 3번 째 열에는 사슴, 코젤(산염소), 염소가 앉아 있고 바닥에는 꽃 문양이 새겨진 것이다(그림 4).

 

그림 1. 흑해지역, 코카서스 산맥 북쪽으로 쿠반 지역, 켈레르메스 1호분, 슐츠 발굴품

 

그림 2. 흑해지역, 코카서스 산맥 북쪽으로 쿠반 지역, 켈레르메스 1호분, 그림1의 세부

 

 

그림 3. 흑해지역, 코카서스 산맥 북쪽으로 쿠반 지역, 켈레르메스 1호분, 그림1의 세부

 

그림 4. 그림1의 평면도(루덴코 1960)

 

 

켈레르메스 유적이 흑해 부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무덤인 것을 생각하면 이 그릇에 나타난 사슴그림은 흑해북쪽에서 가장 빠른 사슴문양이다.

 

그런데 이 그릇에 나타난 사자, 타조는 스키타이 지역에는 없던 문양으로 앗시리아와 관련있다. 앗시리아 문화에서는 타조문양이 매우 유행했다고 한다. 사자도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서는 나타나지 않던 문양으로 코카서스 산맥 이남에서 올라온 문양이다. 사자가 이 지역에 등장한 것은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보다 이전인 청동기시대 마이코프 문화에서 확인된 바 있다. 코카서스 남부지역과 교류가 처음은 아니었다.

 

어찌되었던 주제 뿐만 아니라 동물을 나타나는 방법 중에 갈비뼈를 드러내는 방법은 흑해 북쪽 및 시베리아의 스키타이 문양과는 관련이 없는 앗시리아 양식이다. 이는 앞서 소개한 사슴과 표범으로 장식된 화살통장식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사슴의 표현방법이 몸통과 뿔에서 차이가 있다.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흑해에서 원래 살던 킴메르 인들은 스키타이 사람들 때문에 인접한 소아시아로 도망갔다. 킴메르 인들을 추적해서 코카서스 산맥 남쪽까지 내려오게 되는데, 앗시리아 연대기는 이 시점을 기원전 670년 부터라고 기록했다.

고대 오리엔트 기록에는 기마병단을 보유한 스키타이 유목민족 때문에 거의 100년 동안 고생하고 공포정치로 치를 떠는 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점도 석연치 않은 것이 스키타이 인과 앗시리아는 기원전 680년에 결혼동맹을 맺고 있었고 스키타이 사람들은 앗시리아를 도와서 앗시리아의 수도를 공격하는 메디아인을 섬멸했다. 기원전 623-622년.

 

스키타이 인들은 앗시리아 인을 도와서 메디아를 함께 막아 주었건만 정작 속 뜻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앗시리아 입장에서 쓴 기록이 좋게 남아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흑해북쪽의 유적에서는 스키타이 사람의 무덤에서 인접한 지역의 유물이 많이 출토된다. 그리스, 앗시리아 물건, 기원전 5세기 이후가 되면 앗시리아의 물건은 페르시아의 물건으로 바뀐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잔은 앗시리아와 그리스에서는 손잡이가 없는 잔을 ‘phiales’라고 부른다. 피알레스는 왕권을 상징하는 그릇이다. 실용기와는 거리가 멀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Галанина Л.К. 1997 :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Царские» погребения раннескифской эпохи. М.: 1997. 316 с.(갈리아나 1997, 초기 스키타이 시대의 차르 무덤, 켈레르메스 고분)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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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학계에서 처음 이해하던 스키타이인은 흑해 북쪽에 거주하던 초기철기시대 사람들이다. 현재는 서쪽으로는 다뉴브 강을 경계로 동쪽으로는 시베리아까지 스텝지대의 광대한 초원지대에 거주하면서 공통된 경제적, 문화적 생활을 영유하던 여러 문화의 복합체로 스키타이 세계 혹은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도 한다. 가장 쉽게 이해하면 넓은 지역의 각 문화가 공통된 경제활동을 하는 연합국가?정도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스키타이 문화’에 대한 이해를 흑해 북안으로 부터 이해한 것은 이 지역을 가장 먼저 발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알타이를 발굴한 것은 20세기 초반 혁명 이후에 활발했고, 흑해북안은 아직 로마노프 왕조일 때부터 발굴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발굴한 무덤은 현재는 우크라이나에 속하는 엘리자베트그라드에서 1763년에 시작되었다. 이 유적의 유물은 표트르 1세가 건립한 페테르부르그에 있는 쿤스트카메라 박물관(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아직 궁전이었음)에 보관되었다. 그때 쿤스트카메라 박물관에는 표트르 1세가 시베리아에서 수집한 금제유물이 보관되어 있었다.

 

흑해북안의 유적은 쿨오바를 1830년에 발굴하고, 1859년에 러시아의 제국고고학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재 황금유물로 잘 알려진 흑해북안의 유적들은 19세기 중후반에 발굴되었다. 특히 이 지역의 고분은 봉분이 매우 높아서 쉽게 일반인들에게 노출되었고, 도굴도 극심했다.

 

흑해북안의 유적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유적으로 알려진 것은 1903년과 1904년에 발굴된 켈레르메스(Келермес, Kelermes) 고분이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여러 연구자들이 발굴해서 1903년 부터D.G. Shultz(23,24,29호) 및 러시아고고학자 베셀로프스키(18호, 24호,31호)가 발굴했고, 1980년대에도 갈리아나와 알렉세예프가 발굴조사했다. 1980년대 조사에서는 고분을 33개 발견하고 그 중 21개를 발굴했다. 1980년대 조사하면서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하면서 만들어진 고분번호를 새로 바꾸었다. 그래서 그림 1에서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무덤은 18, 24, 31호이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의 스키타이 고분, 20세기 초반의 발굴과 1980년대 발굴이 구분되어 있지만, 1980년대에도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31호를 계속조사했다.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고분자료는 그림 2만 남아 있고, 유물만 남겨진 상태이다.(갈리아나 2006), 유적의 평면도는 1980년대 조사하면서 작성된 것이다. 

 

 

 

 

그림 2.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당시의 무덤 1호, 현재는 그림 1의 24번이다. 검은색 점은 무덤방이 설치된 기둥구멍이고, 점선은 매장주체부의 위치이다.

 

유적은 낮은 산등성이를 따라서 2km로 계속 이어졌다. 스키타이문화의 무덤 뿐만 아니라 이 보다 이른 청동기시대 문화인 마이코프 문화, 얌문화의 무덤도 확인되었다. 유적에서 북쪽에 위치한 6개의 스키타이 무덤은 유적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기원전 8~7세기부터 기원전 6세기까지 만들어진 것이다. 이 고분의 높이는 4~7m였다.

 

유적은 이미 파괴가 극심해서 1980년대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조사하면서도 유적의 범위와 고분의 대략적인 형태만 알아 냈을 뿐이지 무덤의 구조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알지 못한다. 무덤의 구조를 알 수 있는 것은 베셀로프스키가 남긴 그림2의 도면뿐이다.

 

평면형태는 정사각형으로 무덤의 크기는 40㎡로 알려졌다. 말이 최대 24마리까지 묻혔고, 무덤방은 나무로 만들어졌다. 말은 화려하게 금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리아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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