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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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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8.01 흑해의 스키타이 문화: 켈레르메스 고분

 

 

러시아 학계에서 처음 이해하던 스키타이인은 흑해 북쪽에 거주하던 초기철기시대 사람들이다. 현재는 서쪽으로는 다뉴브 강을 경계로 동쪽으로는 시베리아까지 스텝지대의 광대한 초원지대에 거주하면서 공통된 경제적, 문화적 생활을 영유하던 여러 문화의 복합체로 스키타이 세계 혹은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도 한다. 가장 쉽게 이해하면 넓은 지역의 각 문화가 공통된 경제활동을 하는 연합국가?정도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스키타이 문화’에 대한 이해를 흑해 북안으로 부터 이해한 것은 이 지역을 가장 먼저 발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알타이를 발굴한 것은 20세기 초반 혁명 이후에 활발했고, 흑해북안은 아직 로마노프 왕조일 때부터 발굴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발굴한 무덤은 현재는 우크라이나에 속하는 엘리자베트그라드에서 1763년에 시작되었다. 이 유적의 유물은 표트르 1세가 건립한 페테르부르그에 있는 쿤스트카메라 박물관(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아직 궁전이었음)에 보관되었다. 그때 쿤스트카메라 박물관에는 표트르 1세가 시베리아에서 수집한 금제유물이 보관되어 있었다.

 

흑해북안의 유적은 쿨오바를 1830년에 발굴하고, 1859년에 러시아의 제국고고학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재 황금유물로 잘 알려진 흑해북안의 유적들은 19세기 중후반에 발굴되었다. 특히 이 지역의 고분은 봉분이 매우 높아서 쉽게 일반인들에게 노출되었고, 도굴도 극심했다.

 

흑해북안의 유적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유적으로 알려진 것은 1903년과 1904년에 발굴된 켈레르메스(Келермес, Kelermes) 고분이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여러 연구자들이 발굴해서 1903년 부터D.G. Shultz(23,24,29호) 및 러시아고고학자 베셀로프스키(18호, 24호,31호)가 발굴했고, 1980년대에도 갈리아나와 알렉세예프가 발굴조사했다. 1980년대 조사에서는 고분을 33개 발견하고 그 중 21개를 발굴했다. 1980년대 조사하면서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하면서 만들어진 고분번호를 새로 바꾸었다. 그래서 그림 1에서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무덤은 18, 24, 31호이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의 스키타이 고분, 20세기 초반의 발굴과 1980년대 발굴이 구분되어 있지만, 1980년대에도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31호를 계속조사했다.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고분자료는 그림 2만 남아 있고, 유물만 남겨진 상태이다.(갈리아나 2006), 유적의 평면도는 1980년대 조사하면서 작성된 것이다. 

 

 

 

 

그림 2.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당시의 무덤 1호, 현재는 그림 1의 24번이다. 검은색 점은 무덤방이 설치된 기둥구멍이고, 점선은 매장주체부의 위치이다.

 

유적은 낮은 산등성이를 따라서 2km로 계속 이어졌다. 스키타이문화의 무덤 뿐만 아니라 이 보다 이른 청동기시대 문화인 마이코프 문화, 얌문화의 무덤도 확인되었다. 유적에서 북쪽에 위치한 6개의 스키타이 무덤은 유적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기원전 8~7세기부터 기원전 6세기까지 만들어진 것이다. 이 고분의 높이는 4~7m였다.

 

유적은 이미 파괴가 극심해서 1980년대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조사하면서도 유적의 범위와 고분의 대략적인 형태만 알아 냈을 뿐이지 무덤의 구조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알지 못한다. 무덤의 구조를 알 수 있는 것은 베셀로프스키가 남긴 그림2의 도면뿐이다.

 

평면형태는 정사각형으로 무덤의 크기는 40㎡로 알려졌다. 말이 최대 24마리까지 묻혔고, 무덤방은 나무로 만들어졌다. 말은 화려하게 금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리아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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