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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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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8~7세기 흑해 스키타이 문화가 번성했을 때 인접한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유물이 있다. 그리스, 우라르트, 앗시리아에서 제작된 유물은 스키타이 인이 주문해서 제작했던 것이다. 각 지역의 특색과 스키타이 문양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가장 손상없이 남아 있는 유물은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은제거울이다. Cybele 여신이 양손에 맹수를 잡고 있는 문양이 그려진 것이다. 아르타모프(1966)는 이 유물이 그리스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알렉세예프(2012)의 견해는 다르다. 소아시아(아나톨리 지역)의 Cybele는 여러 면에서 스키타이 여신 (Аргимпасa, Argimpasa)(헤로도투스의 역사에 나옴)와 닮았다. 동물과 인간세계의 다산의 신이다. 거울이 그리스 보다는 고대 이란지역 혹은 근동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Cybele 여신 숭배는 원래 아나톨리 지역의 여신숭배사상이고, 기원전 6세기경에 이 지역에 설치된 그리스 식민지에서 그리스로 수입되었다(켈레르메스 고분은 기원전 7세기 이상)]

 

 

필자도 알렉세예프의 의견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거울의 문양 가운데 반인반수는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검에 그려진 하이브리드 동물과 반인반수의 청동상에서 볼 수 있듯이 몸통은 맹수의 몸에 날개가 달려있고 얼굴은 사람인 표상은 우라르트의 유물이기 때문이다.

 

2020/08/0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멜구노프 유적과 유물] - 기원전 8~7세기 흑해의 스키타이 의례용 검

 

기원전 8~7세기 흑해의 스키타이 의례용 검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전 7세기 멜구노프 유적에서는 스키타이 전통적인 기술로 제작된 동물양식 뿐만 아니라 인접지역과의 관련성을 보여 주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황금 머리띠는 우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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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레르메스 유적에는 키벨레(Cybele) 혹은 아르김파사가 그려진 유물이 한 점 더 전해진다. 파손이 심해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각배(리톤, rhyton, 동물의 뿔 모양으로 만들어진 술잔)이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은제 각배(갈라니나 2006)

 

 

그림 2. 그림 1과 동일 유물의 실측도(위)와 그림1의 반대면(아래)

 

 

거울과 리톤에 그려진 여성은 유사한 점이 많다. 날개 표현의 유사성, 입고 있는 옷의 스타일(튜닉)이다. 다른 점은 두 여성의 자세인데, 거울에는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이고, 각배에는 무릎을 구부리는 장면이다. 물론 양 손에 쥐고 있는 동물도 차이가 있다. 거울은 맹수, 각배에는 그리핀의 앞다리를 쥐고 있다. 거울에서 볼 수 없는 새(그림 3)도 있는데, 왜가리이다.

 

 

 

그림 3.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각배의 부분, 그림 2의 윗부분

 

 

그림 4.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은제 거울부분

 

각배에서 확인되는 문양의 유사성(여러 동물문양과 여성)으로 볼 때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은제거울과 각배는 스키타이 인이 주문해서 외부세계에서 제작된 경위는 같다.

은제거울은 거울의 외형에 장식판을 붙인 것이다(앞에서 설명한 포스팅이 있음). 막시모바(1956)는 외형은 스키타이에서 제작했고, 장식판만 그리스에서 제작된 것으로 생각했다. 각배도 마찬가지로 스키타이 문화의 세계관을 담고 있지만 만들어진 곳은 외부이다.

 

외부세계의 제작자는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서 스키타이 인의 세계관과 연결되어 소비자의 취향에 맞추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외부세계가 그리스 이오니아 지역이라는 설(막시모바 1956, 아르타모프 1966)과 아나톨리 혹은 고대 이란(키셀 2003, 알렉세예프 2012)일 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점차 소리가 커져간다.

 

그리고  러시아 학자들이 공통적인 의견은 거울과 각배에 그려진 여성은 스키타이의 세계와 관련된 스키타이의 여신이라는 점이다. 제작자가 누구이든간에. 제작자의 주문 혹은 취향에 맞출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라니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М.И. Максимова 1956; Ритон из Келермеса//Советская археология. XXV. М.: 1956(막시모바 1956, 켈레르메스에서 출토된 각배)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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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의 스키타이 문화 유적에서 공격용무기인 전투용 도끼, 단검(아키나케스) 등은 기원전 8~7세기부터 있었고, 켈레르메스 유적, 멜구노프 유적에서 직접 볼 수 있다.  청동 화살(그림 1)도 공격용무기이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출토, 청동화살촉(갈리아나 2006)

 

스키타이 문화의 화살은 매우 유명해서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 궁전에도 여러 번 나온다. 특히 독특하게 생긴 화살통은 ‘고리트’라고 불린다. 활과 화살을 함께 넣도록 고안되었기 때문에 그냥 둥근 화살통이 아니다. 이 지역의 유적에서 고리트의 부속품은 많이 출토된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사슴과 표범이 투출된 황금장식판, 고대 이란 지역에서 제작되었던 화살통장식이 있다.

그런데 페르세폴리스에서 그려진 것과 가장 유사한 유물이 흑해에서 멀리 떨어진 기원전 8세기 아르잔-2호에서는 실제로 확인되어서, 아르잔-2호의 존재감은 더 높아졌다.

 

2020/06/0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화려한 무기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화의 화려한 무기

스키타이 활은 고리트(그림 11)라고 불리는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적인 유물이다. 이에 대해서 스키타이문화를 기록한 헤로도투스도 언급한 바도 있고, 페르시아의 아파다나 궁전벽(그림 12)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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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용으로는 청동 투구(헬멧) 및 방패, 갑옷(청동 및 철제)도 출토된다. 청동투구는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이 ‘쿠반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켈레르메스 유적과 비슷한 시기의 코스트롬스카야(Костромская, )유적에서는 방패장식이 출토되었다. 사슴문양이다(그림 2, 3).

 

 

 

그림 2. 코스트롬스카야 출토, 금, 너비 31.7cm, 높이 19cm

 

그림 3. 그림1의 뒷면

 

부조로 양각된 사슴문양 방패장식은 불룩하게 만든 면과 면을 이어서 장식한 것으로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가장 대표적 유물로 일컬어진다. 앞에서 설명드린 독수리장식(멜구노프)은 앞면을 음각해서 나타낸 것이다. 이 유물은 금판의 뒷면을 눌러서(음각해서) 앞면을 불룩솟게 하는 방법으로 표현하는 부조방법이다.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은 켈레르메스 유적을 발굴했던 베셀로프스키가 19세기말(1897년)에 발굴했다. 켈레르메스 유적, 울스키 아울 유적은 이 유적과 무덤구조가 비슷하다.

 

무덤의 구덩이를 계단처럼 파고 구덩이 이에 텐트 모양의 목제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를 흙으로 덮은 구조이다. 목제구조물 안에는 엄청나게 많이 희생된 말과 순장(殉葬)(주인공을 위해서 산채로 묻음)된 사람도 있었다.

 

무덤구덩이의 계단벽층계에는 13명의 인골이 있었는데, 모두 순장된 사람들이다(그림 4). 구덩이 위로는 나무기둥을 방형으로 박고 그 위에 일종의 마루를 설치해서 기단처럼 세워서 부장품을 올려놓았다(그림 5). 부장품을 부장한 공간 위에 원추형으로 집의 지붕을 올리고 가장자리로 말 22마리(마구착장)를 부장했다. 원추형 나무지붕을 점토로 덮어서 봉분으로 만들었다(높이 2m). 베셀로프스키 설명에는 없었으나 계단형 무덤방을 만들고 흙으로 덮은 후 나무기둥을 박고 부장품을 넣는 공간을 만들고 다시 흙으로 덮고 그 위에 원추형으로 집의 지붕을 올리고 말 22마리를 부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 4. 코스트롬스카야 무덤의 구조

 

 

 

그림 5. 코스트롬스카야 무덤의 단면도, 제물을 받친 기단과 그 위에 말을 부장한 공간을 한꺼번에 그린 것이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그림 3의 사슴문양방패장식, 철제 창 4점, 고리트 2통과 화살, 철제 와 청동제 비늘갑옷(찰갑), 마구, 숫돌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비늘갑옷은 작은 철판 혹은 청동판을 겹치게 이어붙여서 만든 것이다. 각 금속판에는 이어붙이기 위한 가죽구멍이 남겨져 있다.

 

 

그림 6.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 철제 비늘갑옷(갈리아나 2006), 철판 수백개가 이어져서 갑옷(상반신)이 된다.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에서도 철제갑옷이 알려졌지만 도면은 19세기 보고서에 남겨진 것으로만 알려졌다(체르넨코 1968).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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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리아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Черненко Е.В. 1968 : Скифский доспех. Киев: «Наукова думка». 1968. 190 с(체르넨코 1968, 스키타이의 갑옷)

아르타모노프 1966,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전 7세기 멜구노프 유적에서는 스키타이 전통적인 기술로 제작된 동물양식 뿐만 아니라 인접지역과의 관련성을 보여 주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황금 머리띠는 우라르트국가에서 제작되어 스키타이 지역에서 새로 고쳐진 것이었다.

2020/08/0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멜구노프 유적과 유물] - 기원전 8~7세기 흑해 크림반도의 정세

 

기원전 8~7세기 흑해 크림반도의 정세

기원전 8~7세기 흑해의 스키타이 문화 유적에는 많은 인접한 지역과의 밀접한 영향이었다는 사실을 유물로 알 수 있었다. 켈레르메스 유적의 은제거울(스키타이 주문, 그리스 제작, 스키타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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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구노프 유적에서는 철검(그림 1)도 알려졌는데, 켈레르메스와 거의 비슷한 외형이다(아래 포스팅 참고). 처음에는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 궁전에 그려진 유물(그림 4)과 거의 비슷해서 아케메니드 왕조(기원전 559-330)에서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 1. 멜구노프 유적의 철검, 60cm

 

그림 2. 멜구노프 유적의 철검, 그림 1의 상세

 

그림 3. 멜구노프 유적의 철검, 그림 1의 상세

 

그림 4. 페르세폴리스의 아파다나 궁전 북면에 그려진 스키타이 인. 세 사람은 각각 단검, 팔찌, 도끼를 들고 있다. 팔찌 든 사람은 고리트(스키타이 화살통)을 차고 있다.

 

그런데 켈레르메스 유적과 멜구노프 유적을 연구하면서 다른 유물들의 연대가 칼의 연대가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멜구노프에서 나온 황금 머리띠와 같은 것이다. 스키타이에서 새로 고쳐지긴 했지만 우라르트(기원전880-640)의 유물이라면, 아케메니드 왕조 보다 최소한 100년 이상 올라가는 것이다.

따라서 켈레르메스 유적과 멜구노프 유적의 철검(아키나케스)은 아케메니드 왕조 보다는 더 오래된 시점의 어느 왕조와 관련이 있다. 후보지는 고대 이란 혹은 이란과 흑해 사이에 있는 아나톨리 지역(현재의 아르메니아)(그림 6)이다.

 

그런데 철제검이 출토된 켈레르메스 유적의 전투용 투부에 새겨진 동물문양을 표현하는 방법은 고대 이란인 앗시리아에서 제작되었다고 이미 설명드린 바 있다.

 

2020/08/0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유적과 유물] - 기원전 7세기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도끼와 검

 

기원전 7세기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도끼와 검

스키타이 문화에서 무기의 종류는 활과 화살(화살통 포함), 투부(전투용 도끼), 검이 세트이다. 실제로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아르잔-2호에서 그대로 출토되었다. 어제 소개해 드린 흑해 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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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용투부와 함께 철제검도 ‘고대 근동’이라고 설명드렸는데, 조금 더 자료를 찾아보니 철제검은 전투용투부와 구분된다. 켈레르메스 뿐만 아니라 멜구노프 유적의 철제 검은 우라르트-스키타이 양식(체르넨코 1980, 키셀 2003, 알렉세예프 2012)으로 보는 것이 여러 학자들이 지지하는 의견이다. 역시 스키타이 인들이 우라르트에 주문해서 제작한 것이다.

 

철제검에서 사슴문양장식(그림 2-1)과 맹금류의 표현은 스키타이 문양이고, 나머지는 우라르트 문양(그림 2-2, 그림 3)이다. 하이브리드 동물문양(그림 4)도 우라르트에서 확인되는 맹수몸통+날개+인간얼굴이 조합된 유물(그림 5)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림 5. 에르미타주 소장, 우라르트의 반인반수, 청동(위키페디아에서 인용)

 

그런데 켈레르메스 유적의 도끼와 검을 비교하면 동물문양의 표현방법에 차이가 있어 뭔가 불편하고 상쾌하지 못했는데, 제작지가 다른 것이었다 점이 명확해졌다.

켈레르메스 고분의 도끼는 앗시리아(혹은 스키타이-오리엔트 양식), 검은 우라르트-스키타이 양식이다. 멜구노프의 검도 역시 우라르트-스키타이 양식이다.

 

 

그림 6. 스키타이 문화의 서부지역과 인접한 국가

 

 

우라르트라는 고대 국가의 존재는 철검 때문에 알게 되었다. 아나톨리 지역에서 앗시리아보다 강성했다고 하는데.....

기원전 8~7세기의 흑해 유적에서 출토되는 여러 유물에서 보이는 국제관계는 복잡하다. 그리고 이 후로도 늘 그랬던 것 같다. 현재까지도.

 

참고문헌

https://ru.wikipedia.org/wiki/%D0%A3%D1%80%D0%B0%D1%80%D1%82%D1%8B

Пиотровский Б. Б., Ванское царство (Урарту) / Отв. ред. И. А. Орбели. — Москва: Издательство Восточной литературы, 1959. — 286 с(피오트로프스키 1959, 우라르트의 차르)

Черненко Е. В. Древнейшие скифские парадные мечи (Мельгунов и Келермес) // Скифия и Кавказ. К., 1980.(체르넨코 1980, 고대 스키타이의 의례용 검(멜구노프와 켈레르메스)

Кисель В.А. 2003 : Шедевры ювелиров Древнего Востока из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CПб: 2003. 192 с.(키셀 2003,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고대 아시아의 걸작품)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Золотые олени Евразии.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в Гос. Эрмитаже, СПб, 18 октября 2001 года — 20 января 2002 года. СПб: «Славия». 2001. 248 с. (에르미타주 국가박물관 특별전 도록, 유라시아의 황금 사슴, 2001)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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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8~7세기 흑해의 스키타이 문화 유적에는 많은 인접한 지역과의 밀접한 영향이었다는 사실을 유물로 알 수 있었다.

켈레르메스 유적의 은제거울(스키타이 주문, 그리스 제작, 스키타이-그레코 양식), 전투용도끼(스키타이 주문, 앗시리아 제작, 스키타이-오리엔트양식), 화살통의 고리장식(오리엔트 양식)이 대표적이다.

 

같은 시기의 멜구노프 유적에서 출토된 금제 머리띠는 우라르트 혹은 시리아와 관련성을 보여준다. 금제 머리띠(그림 1)은 세 줄의 황금 체인과 꽃 장식으로 치장된 것이다. 이 유물은 우라르트 혹은 시리아에서 기원한 유물로 스키타이 사람들이 응용해서 다시 재수정한 것으로 우라르트-스키타이 스타일이다.

꽃 장식(그림 2)의 가장자리에 둥근 금구슬을 붙이는 기법은 누금기법이라고 하는데, 스키타이 문화에서 볼 수 있다. 그리스와 오리엔트 양식에도 있지만 아주 작고 세밀하고 같은 크기로 붙이는 것은 스키타이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다. 이런 부분이 스키타이 에서 수정된 것으로 본다.

 

우라르트는 현재의 아르메니아 지역에 있던 고대 국가인로, 기원전 8~6세기에 서아시아에서 가장 맹주였다(위키백과 참고).

 

 

그림 1. 멜구노프 유적 출토, 1763년 멜구노프 발굴, 길이 63.8cm, 금, 옥수석(chalcedony)

우라르트-스키타이 양식

 

그림 2. 멜구노프 유적 출토, 1763년 멜구노프 발굴 그림1의 세부

 

그림 3. 멜구노프 유적 출토, 스키타이 동물양식, 금, 6×4.7cm

 

멜구노프 유적에서 스키타이 동물문양장식으로 상징적인 유물은 독수리를 표현한 허리띠장식이다(그림 3).

날개를 펴고 머리를 옆으로 돌린 독수리로 허리띠 장식인데, 16개의 장식판과 함께 출토되었다. 뒷면에는 가죽띠에 걸기위한 고리가 있다.

금판에 음각으로 독수리의 세부를 표현했는데, 결과론적으로는 양적인 표현물, 혹은 독립적인 표현물이 된 것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서부지역에서 나타나는 특징인데, 가장 최초의 예 중에 하나로 꼽힌다(아르타모프 1966, 페레보드치코바 1994).

 

멜구노프(Мельгунов, Melgunov) 유적은 키로보그라드(Кировоград, Kirovograd)에서 북쪽으로 30km 곳에 위치한다. 드네프르 강의 우안에 있는 유적인데, 청동기시대 및 초기 철기시대인 스키타이 문화의 무덤이 확인되었다. 멜구노프(А. П. Мельгунов A.P. Melgunov)가 1763년에 발굴했고, 그 뒤에도 야스테레보프V.N.Yastrebov, В. Н. Ястребов와 볼키N.M.Bokiy, Н. М. Бокий(1990년)가 발굴조사했다.

 

봉분의 높이는 10.7cm정도로 알려져 있다. 야스트레보프는 마운드 동쪽의 지하묘지 2개와 서쪽 도랑을 발견했다. 볼키는 스키타이 문화의멜구노프 유적이 청동기시대 봉분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았다(야스트레보프가 봉분을 잘못 조사했다고 지적했음). 봉분은 무덤의 호석으로 둘러싸져 있었고, 인간과 동물의 뼈, 청동기시대 토기 및 암포라(양손잡이 그리스 토기)를 보고했고, 쿤스트카메라(러시아 최초의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그 소재, 현재도 있음)에 옮겨졌다.

(유적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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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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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구노프 유적은 동유럽에서 시작된 최초의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이다.  최초의 스키타이 동물문양 제작기법으로 만들어진 유물(그림 3)이 출토된 곳이다. 켈레르메스의 금제 머리띠와는 또 다른 스타일인 우라르트-스키타이 양식의 유물(그림 1)도 출토된 바 있다.

켈레르메스 유적과 멜구노프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기원전 8~7세기 복잡한 정치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참고문헌

https://ru.wikipedia.org/wiki/%D0%A3%D1%80%D0%B0%D1%80%D1%82%D1%8B

Пиотровский Б. Б., Ванское царство (Урарту) / Отв. ред. И. А. Орбели. — Москва: Издательство Восточной литературы, 1959. — 286 с(피오트로프스키 1959, 우라르트의 차르)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Кисель В.А. 2003 : Шедевры ювелиров Древнего Востока из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CПб: 2003. 192 с.(키셀 2003,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고대 아시아의 걸작품)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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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속의 여신인 듯한 인물과 그리핀이 함께 표현된 금판은 침발카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말의 얼굴 가리개에 부착된 것이다. 스키타이 인들이 주문해서 그리스에서 제작된 유물이다.

출토된 유적은 흑해의 드네프르강 하류의 좌안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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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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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유적 가운데서도 매우 이른 시기에 발굴된 것으로 19세기말(1867~1868)에 발굴된 것이다. 발굴한 자발렌에 의하면 이미 유적의 북서쪽과 북동쪽에는 도굴구덩이가 직경 2m씩 파여서 무덤방으로 연결된 채 있었다. 그에 의하면 무덤방과 말무덤이 유적에서는 발견되었으며, 높이는 14~15m 정도 된다.

 

자벨린의 보고서는 매우 간략해서 정확하게 어떤 구조인지 알기 힘든데, 무덤방이 3개인 구조 정도로 파악된다. 말 무덤은 장방형으로 각 무덤방에는 세 마리씩 매장되었다. 각 무덤방의 말은 화려하게 치장되었는데 은제 굴레장식을 쓴 말 2마리와 금제 굴레장식과 마면 마스크를 쓴 말이 1마리씩 배치되었다. 무덤방이 아닌 남쪽의 마운드에서는 7번째 말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정황 상 침발카 유적은 인접한 곳에 위치하며 같은 시간대의 톨스타야 마길라와 가장 유사한 구조로 생각된다. 톨스타야 마길라에는 중앙에 큰 방이 있고 작은 방 2개에 부장공간이 있는 구조이다(그림 1, 2).

 

 

그림 1. 톨스타야 마길라 평면도, I-중앙무덤과 2개의 방, II-무덤의 입구, III-측면 무덤방, IV~V: 말무덤, VI~VIII: 토광묘(인간)(모졸레프스키 1979)

 

그림 2. 톨스타야 마길라 단면도, 그림 1에서 중앙의 절개면의 단면도, 위-АБ라인, 아래-BГ라인

 

그림 3. 톨스타야 마길라 평면도, 중앙무덤과 우측에 위치한 부속묘(필자편집)

 

톨스타야 마길라는 앞에서 보여드린 켈레르메스 고분과는 전혀 다른 무덤구조이다.

 

톨스타야 마길라의 무덤구조는 호석을 두르고 무덤방을 중앙에 만들지만, 무덤의 입구는 봉분의 중앙에 두지 않고 가장자리에 위치하면서, 일종의 복도가 만들어진다. 무덤으로 들어가는 복도를 연도라고 한다.

톨스타야 마길라에서는 암포라(양쪽에 손잡이가 있고 바닥이 좁고, 입구가 벌어진 형태의 토기) 토기가 출토되는데, 기원전 340~320년에 해당된다.

 

그래서 기원전 7세기의 켈레르메스 유적과는 침발카 유적,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은 300년 이상 시간차이가 생기면서 무덤구조에 변화가 크다.

켈레르메스 유적의 무덤구조는 이해가 어려운데, 비슷한 시간대의 유적으로 설명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기원전 4세기의 여신이 표현된 마면 가리개는 스키타이 인이 주문했고 그리스에서 제조되어서, 스키타이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1982 : Курган Цимбалка и дата его сооружения. // СГЭ. [Вып.] XLVII. Л.: «Искусство». 1982. С. 33-35.(알렉세예프 1982, 침발카 고분과 연대)

Мозолевській Б.M. Товста Могила. Київ, 1979, с. 40(모졸레프스키 1979, 톨스타야 마길라, 우크라이나어, 도면참고, )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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