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2020/08/25'에 해당되는 글 1

  1. 2020.08.25 황금항아리 속의 스키타이 남성

 

 

흑해의 여러 유적의 유물에는 여성이 표현된다. 신화 속의 인물로 생각되며 아르김파사, 키벨레 등으로 해석된다.

남성도 있는데, 여성보다 좀 더 다양하게 표현된다. 흑해의 여신이 표현된 은제 거울이 나온 ‘차르’급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남성이 표현된 유물은 없다.(이 말은 오해하시면 안된다. 기원전 7세기에 남성이 표현된 유물은 있다)

 

소형 유물에 남성이 표현되는 것은 주로 기원전 5세기 이후이다. 흑해의 케르치 지역에 있는 쿨 오바 유적에서는 황금으로 된 항아리에 남성 7인이 세 장면을 구성하는 것이다. 다리를 만지는 장면(그림 1-1), 치아를 뽑는? 장면(그림 3), 활에 시위를 거는 장면(그림 1-2), 서로 도와 끈을 매는 장면(그림 2)이다.

 

 

그림 1. 흑해의 쿨-오바 출토, 1830년 발굴, 높이 13cm(Алексеев А.Ю. 2012 )

 

그림 2. 그림 1의 왼쪽 남성 옆(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그림 3. 그림 1-1의 반대편(Алексеев А.Ю. 2012 )

 

그림 4. 그림 1의 바닥(Алексеев А.Ю. 2012 )

 

헤어스타일, 복장, 스키타이 무기 등으로 스키타이 남성으로 여겨진다. 많은 연구자들은 이 유물을 보고 헤로도투스가 남긴 스키타이 신화 속의 인물을 떠 올린다. 하지만 스키타이 인의 일상생활을 나타낸다는 의견도 있다.

 

이 유물이 출토된 쿨 오바 유적은 1830년 9월 19일에 군인들이 돌을 채석하다가 발견했다. 앞서 언급했는데, 1875년에 루첸코가 발굴하기 전에, 1830년 당시 주지사였던 스템코프스키의 허가를 받아 프랑스에서 이주한 Paul Du Brux가 책임자로 발굴한 것이 최초이다.

그런데 발굴은 서둘러 진행되었으며, 기록이 거의 남겨져 있지 않고 무덤의 구조와 유물 목록 등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짧은 복도와 지붕이 계단식으로 된 돌로 된 무덤방이었으며, 그 안에는 채색된 나무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돌로 된 무덤방을 흙으로 덮어서 마무리 한 것이다. 나무관 안의 사자는 거대한 금색 목걸이와 팔찌를 착용했고, 무기세트를 옆에 놓아둔 채였다. 나무 관 옆에 나무거치대가 있었고 그 위에 여성인골이 확인되었다. 황금 항아리는 그녀의 발 옆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 무덤은 발굴하는 과정에서도 도둑을 맞았다.

황금 항아리는 주조로 만들고, 항아리 안쪽은 두드려서 마무리한 것이다. 바닥(그림 4)에는 그리스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항아리 제작 시에 적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 새겨 넣은 것이다.

 

쿨-오바 유적은 흑해에서도 가장 늦은 시기인 기원전 4세기 후반의 무덤으로 그리스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특히 그리스 토기인 ‘암포라’가 출토된다. 하지만 이 황금 항아리에 표현된 남성은 스키타이인으로 스키타이 인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기원전 4세기대의 유적에는 그리스 유물이 많이 출토되어서 쉽게 그리스에서 제작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유물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쿨-오바에서 나온 장식판에 새겨진 여신은 분명히 그리스식 복장을 하고 있으나 양 손을 펴고, 날 개를 표현하는 점은 기원전 7세기에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확인되는 여신과 같은 구도를 하고 있다. 혹시 이 황금장식판도 스키타이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황금항아리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흑해지역의 유적은 1859년에 러시아 제국고고학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이 위원회 중심으로 흑해의 쿠르간을 본격적으로 발굴했다. 이곳의 유물도 처음에는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유물과 함께 쿤스트카메라에 보관되었다가, 나중에 함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보관되었다.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은 1715년~1718년 시베리아주의 수도인 토볼스크 주지사였던 가가린이 농민으로부터 수집해서 보낸 것이다. 표트르 1세에게 처음에는 10점을 보냈으나, 나중에는 200여 점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유물은 표트르 1세와 예카테리나 1세가 죽은 후 러시아의 첫 번째 공립박물관인 쿤스트카메라(현재도 있음. 에르미타주박물관에서 가까움, 네바 강 건너)에 기증되어 전시되었다.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