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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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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알타이 고분 중 가장 최상급이라고 여겨지는 파지릭고분을 발굴한 루덴코는 남성이나 여성의 상의가 거의 일치한다고 했다. 여밈없는 셔츠 스타일이다.

 

아크 알라하-3유적의 1호분 고분에 묻힌 여성이 입은 셔츠는 매우 길어서 무릎까지 내려온다. 등쪽 길이는 113cm, 앞쪽은 110cm, 넓이는 80cm이다. 소매는 어깨끝을 기준으로 60cm가량으로 손을 덮을 정도로 내려온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셔츠는 앞과 뒷부분은 각 각 다른 천으로 기운 것이다. 목과 어깨, 소매끝, 셔츠의 중앙은 붉은색 양모로 꼬은 끈을 달았다(그림1).

 

그림1.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얼음공주의 상의, 필자촬영

 

상의를 만든 천은 넓이가 130cm이상이다. 이 제품은 실크제품이다. 그런데 현재 알려진 고대 중국의 실크는 너비가 48~50cm정도이다. 이 너비는 실크를 짜는 직조기의 구조 때문이라고 한다(루보-레스니첸코프 1994). 이 보다 넓은 실크는 당대가 되어서라고 한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것을 일본 나라문화재연구소와 스위스의 Abegg-Stiftung에서 독자적으로 분석한 결과 중국산 실크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실크는 1㎠를 기준으로 그 치밀도가 80(날실)×33.5(씨실)의 조직으로 짜여졌다. 실크섬유조직의 단면을 현미경으로 분석한 결과 양잠용인 아닌 야생누에에서 뽑아낸 것이다. 누에고치에서 뽑은 것이 아니라 나방고치에서 뽑은 것이다. 당연히 중국 실크는 양잠용에서 뽑아낸 것임으로 중국산이 아니다.

 

이 비중국적 실크는 동투르케스탄(현재의 중국 신강성)혹은 인도 동북부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동투르케스탄에서는 기원전 2~1세기가 되어서야 나옴으로, 이 유적의 연대가 기원전 4세기 혹은 기원전 5세기 임으로 맞지 않다. 그래서 인도의 야생실크를 뽑는 기술(Dhamija 1995)에 주목을 했다. 현재까지도 아쌈과 인도의 동쪽 일대에서는 야생실크를 만드는데 누에고치가 아니라 식물의 잎을 파먹는 벌레로부터 뽑아낸다(드자야크리쉬난 1987).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는 하의는 양모로 직조한 천 3단을 이어붙였다. 전체평면형태는 사다리꼴 모양이다. 길이는 144cm, 위쪽의 넓이는 90cm, 하단의 넓이는 112.5cm이다. 상단과 하단은 붉은색, 중단은 흰색이었으나 현재는 황색으로 퇴색되었다. 가장 상단의 너비는 52cm, 중앙부의 너비는 51cm, 하부의 너비는 39cm이다. 옆부분의 솔기는 한쪽이고 한쪽으로 겹치게 해서 입었다(그림 2). 

*양모를 고온에서 압축해서 만든 펠트가 아닌 직조로 한 것이다. 앞의 포스팅에서 양모로 하의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펠트가 아닌 직조한 천이다. 양털을 실로 만들고 날실과 씨실을 교차해서 만드는 직조한 양모천이 얼음공주의 치마소재가 되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이와 유사한 치마는 2번 더 발견되었는데, 알타이 산맥에서와 중국 신강성에서이다. 알타이 산맥에서는 파지릭 유적의 2호분 여성미라가 붉은색 천과 녹색의 양모펠트를 번 갈라 꿰매어 붙인 것이다. 중국신강성 유적은 수바쉬 유적 6B고분에서도 출토되었는데, 거의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와 거의 복제한 듯 이 똑같은 치마를 입었다고 한다. 중국 수바쉬 유적의 6B고분출토품도 탄소연대측정한 결과 기원전 4세기대로 측정되었다(Mair 1995)

 

그림 2.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치마

 

 

참고문헌

루보-레스니첸코프 1994, Лубо-Лесниченко Е.И. Китай на шёлковом пути. М.: Восточная литература, 1994. 332 с.(루보-레스니첸코프, 1994 중국 실크의 길)

Джаякришнан Ш. Ткачество // Индия. М.: Прогресс, 1987. С. 67-73.(드자야크르쉬난 1987, 직물//인도)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Dhamija J. The woven silk of India. Marg Publications, 1995. 156 p.

Mair V.H. Mummies of the Tarim Basin // Archaeology. 1995. March/April. P. 28.35.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지금까지 계속 이야기 해 온 우리의 주인공 여성은 아직 설명드리지는 않았지만 긴 상의에 긴 치마를 입었다. 상의는 흰색이고, 하의는 붉은색 계통인데, 삼단으로 짠 펠트제품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시베리아 하면 상징적으로 떠오르는 뭔가가 있지 않으신가?

추위,,모피코트...러시아인들이 쓰고 다니는 높은 모피로 된 모자 등이다.

필자는 어렸을 때 은하철도999라는 만화를 매우 좋아했다. 어린 학생들은 많이 모르실텐데, 두 주인공이 여러 별을 기차로 타고 다니는 만화이다. 지금 기억에 그건 일요일 아침인가에 했는데, 난 그걸 보기 위해서 모든 걸었다..그걸 하는 시간을 비우기 위해서, 엄마아빠 잔심부름은 빨리 다 하고,, 밥도 일찍 다 먹고,,‘신성한’ 마음으로 기다렸다..은하철도 999. 거기 나오는 주인공은 2명인데, 메텔이라고 불리는 여성과 한 명 남자의 이름은 기억안난다. 메텔은 키가 크고 금발인 여성이었는데, 검은색이고 높은 모자와 모피코트를 입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은 모티브가 된 것이 러시아여성이었다고 한다.

 

러시아 하면 모피코트다. 17세기에 표트르 1세가 시베리아를 삼킨 이유도 사실 모피 때문이다. 그때 유럽은 소빙기로 혹독한 추위 때문에 꽁꽁 얼어붙었고, 욕심 많고 많이 돌아다녀서 아는 것 많은 표트르 1세는 시베리아 무주공산에 깃발꽂고 동물잡아 모피로 유럽에 팔아서 돈도 벌고, 고분도 들쭉날쭉 파서 표트르 대제 콜렉션을 만들었다. 그 유물은 지금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있다. 유럽여행을 가시면 꼭 한번 가보시기 바란다. 모스크바는 안가시더라도, 상트 페테르부르그는 꼭 한번 머무르고 도시를 느끼시기 바란다..훔쳐오고 싶은 도시이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은 모피코트를 입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알타이 산맥의 다른 무덤에서는 코트 입은 사람들이 발견된다.

초창기에 파지릭문화를 연구할 때는 모피코트도 계급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러나 베르흐-칼쥔 2 유적을 발굴하고 나서 많은 점이 의문투성이로 바뀌었다. 이 무덤은 일반무사의 것인데, 매우 재밌게 생긴 모피코트가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1호분(그림2)과 3호분(그림1), 2 무덤에서 발굴되었는데, 스탈일이 다르다. 요즘 개념으로 하면 털이 안으로 들어간 ‘무스탕’(3호분)(그림1)과 털이 밖으로 나온(1호분)(그림1) 그냥 우리가 아는 모피코트이다. 요즘은 리버시블이 유행하던데, 그렇게 입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림1. 베르흐-칼쥔 2유적의 3호분 남성무사의 모피코트

 

베르흐-칼쥔 2유적의 3호분은 어제 설명 드린 문신이 새겨진 무사가 주인공인 무덤이다. 그의 모피코트는 털이 안으로 들어간 바깥은 맨들맨들한 무스탕이다. 그런데 이 코트의 가장 하단에는 ‘꼬리’처럼 달린 장식이 붙어 있다. 이 코트는 두 장을 붙인 것인데, 안은 양털을 쓰고 그 위에 담비가죽을 붙인 것이다. 목과 양쪽 어깨, 소매 단, 여밈 부분은 검은색 나귀가죽을 따로 써서 붙였다. 그리고 아플리케 장식으로 덧붙였는데, 붉게 물들인 말총과 청색의 가죽조각을 이어붙여서 만든 술을 2열로 달았다. 이 모피코트의 꼬리부분은 너비 49, 길이 57cm이다.

 

민족지학적으로 꼬리달린 외투는 북아시아 뿐만 아니라 알래스카의 에스키모들도 입는다. 꼬리달린 외투는 놀랍게도 스키타이 문화의 것으로 생각되는 암각화에도 남아 있다. 그 분포범위는 시베리아의 큰 강 계곡마다 분포하고, 중국 북방에서 프리바이칼의 앙가라 주변지역까지 넓게 퍼져있다(오클라드니코프 1966). 즉 현재 민족지학적으로 남아 있는 꼬리달린 외투의 기원은 2500년 전 베르흐 칼쥔 2 유적의 3호분 남성이라고 할 수 있다. 남자 사냥꾼의 복식이라고 이해된다.

 

베르흐 칼쥔-2유적 1호분(그림 2)에서 출토된 모피코트는 꼬리가 없다. 밖으로 양털이 나오고, 안쪽으로는 흰색 모르모트 가죽을 덧입힌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3호분도 마찬가지이지만, 현대의 카라 라고 하는 부분이 없다. 외투의 오른쪽 하반부의 허리부근에 붉은색으로 염색된 말갈기(그림 2의 b)를 모아서 만든 숱을 부착했다.

소매가 매우 길어서 손가락을 덮을 정도이다. 모피의 착용방법도 유적마다 다르다. 베르흐 칼쥔 2유적에서는 소매를 끼운채 확인되었다.

그림 2. 베르흐 칼쥔 2유적의 1호분 모피코트 

 

우리는 여기서 하나를 추측할 수 있는데, 이번 달의 주인공이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는 처음부터 모피코트를 입힐 계획이 없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장례식은 태어나면서 계획 되었다..고분의 말이 6월쯤 죽었으니 모피코트가 필요 없기도 했겠지만,, 필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왜?

 

그녀는 손을 오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후강직이 일어나기 전에 시신의 자세는 빠른 시간안에 결정났을 것이다. 모피코트를 입힐 계획이었다면 손 모양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참고문헌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오클라드니코프 1966, Окладников А.П. 1966 : Петроглифы Ангары. М.-Л.: 1966. 322 с.(앙가라강의 암각화)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산맥 중에서도 우코크라고 불리는 고원에서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는 30세가 안되는 여성 미라가 확인되었다. 별명은 얼음공주이다.

앞에서 얼음공주의 머리 정수리 장식 중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도 사슴머리가 새겨진 나무판을 넣었는데, 이데올로기적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 의미가 또 있는 것이 문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문신

 

이 여성의 왼쪽 어깨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5섯 마리의 동물이다. 가장 첫 번째 왼쪽 어깨와 가까운 부위에는 영양과 사슴의 뿔을 도식화 한 것이고 다리엔 굽이 달려 있고 날개가 달려 있어 그리핀으로 보인다(그림4).. 그 아래에 몸통을 비틀고 있는 얼굴모습이 다른 그리핀이 그려져 있다. 하완골의 시작부위에는 뒤를 바라보는 양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 양의 다리쪽에는 기다란 꼬리를 늘어 뜨린 점박이 표범이 표현되었다. 그 밑으로는 머리가 없는 육식동물의 몸통이 남아 있다(그림1,그림3)발톱을 드러낸 발과 얼룩무늬 호랑이 꼬리, 사슴몸통으로 이루어졌고, 등허리에는 도식화된 그리핀의 머리가 달려 있다. 사슴의 끝머리에는 그리핀의 머리로 장식이 되었다. 여성미라의 왼쪽 손목에는 뿔이 늘어진 사슴머리가 보인다(그림 1).

오른손 하완골에는 비틀어진 몸통이 그려졌는데(그림 1의 오른팔 참고), 양처럼 보이지만 정확하게 무슨 동물인지 알기 어렵다. 오른손 엄지손가락(그림5 )에도 문신이 그려졌다.

 

이 여성의 문신은 바늘을 찌르는 방법으로 문신을 새겼다. 바늘을 찔러서 피부 깊숙이 색소 성분을 침투시켰는데, 그 성분은 루덴코에 따르면 그을음으로 추정된다. 문신을 넣기 전에 밑그림을 그렸는지, 아니면 스탬프 같은 것으로 밑그림을 찍어 놓고 문신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문신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 러시아과학아카데미의 무기화학연구소와 촉매화학연구소의 도움으로 엑스레이기법과 미세현미경을 이용해서 살갗을 스캐닝했다. 20마이크론 정도의 범위에서 칼륨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점들이 드러났다. 칼륨함유가 많은 것은 문신에 쓴 색소가 식물계통으로 식물을 오래 태워서 얻은 재나 숯에서 얻어낸 경우로 분석되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이 보다 이전에 발굴된 파지릭 유적의 2호분에서 확인된 남성미라(그림 6)의 몸에 새겨진 문신, 베르흐-칼쥔 2유적의 3호분 남성미라에서 확인된 문신이 거의 동일하다는 점이다. 새기는 방법과 스타일, 모티브가 완벽하게 일치한다.

 

파지릭 유적은 1948년에 미라가 발굴되었는데, 60세의 몽골로이드 남성이었다. 그의 양쪽 팔, 등허리의 상부, 정강이(그림 6) 등에 환상적이며 사실적인 동물을 그려넣었다(루덴코 1949). 파지릭 유적의 미라 설명은 다시 할 예정이다.

베르흐 칼쥔-2 유적 3호분에서는 젊은 남성의 왼쪽어깨에만 굽이 달린 환상의 동물 그리핀이 그려져 있었다. 베르흐 칼쥔 2 유적에서 확인된 남성의 어깨에는 파지릭 유적 2호분의 남성,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의 여성과는 다른 스타일의 그리핀이 있다. 최소 4마리가 혼합된 문양이다. 몸통은 사슴인데, 머리가 있어야 할 부분에 또 다른 표현으로 굽달린 다리가 표현되어 있고, 날개도 표현되었다. 사슴의 배쪽에는 그리핀의 머리가 그려졌다(그림 2).

 

 

 

 

그림 2. 베르흐 칼쥔 -2유적의 3호분 남성미라

 

3구의 미라에 새겨진 문신이 모두 한 사람의 기술자가 새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분석된 나이테연대측정법의 결과 이 세 유적을 매장한 시기는 매우 가깝다. 특히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과 베르흐 칼쥔 2 유적의 3호분은 거의 동시기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세 사람은 어떤 관계였는지, 심히 궁금하지만, 그런 연구는 없었다. 아니면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재밌는 스토리라인이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왼쪽 팔 문신(국립중앙박물관 1995)

 

 

 

그림 4.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왼쪽 어깨 사슴문양문신(https://scfh.ru/news/dvadtsat-pyat-vekov-nazad-konoplyu-kurili-ne-tolko-na-pamire-no-i-v-gornom-altae/

 

 

 

그림5.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문신이 새겨져 있다. 미라의 상태가 매우 좋아서 얼음이 녹아서 그녀에게 접근가능했을때 미라의 팔뚝은 탄력이 남아 있어서 누르면 부드러운 느낌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림 6.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 유적의 2호분 남성미라.

 

 

 

참고문헌

 

https://scfh.ru/news/dvadtsat-pyat-vekov-nazad-konoplyu-kurili-ne-tolko-na-pamire-no-i-v-gornom-altae/

 

국립중앙박물관 1995, 알타이문명전

루덴코 1949, Руденко С.И. 1949 : Древнейшая «скифская» татуировка. // СЭ. 1949. №3. С. 133-143.(루덴코 1949, 고대 스키타이인의 문신에 대해서)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삭발이 크게 회자 되기도 했는데, 머리카락의 의미는 어떤 결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결기가 아니라도 머리카락에 대한 인간의 욕망 혹은 자신의 결심을 보여준다. 이미지가 중요한 사람들도 머리모양에 목숨을 건다..오래 전부터..

 

우리가 가장 쉽게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게 머리모양이지 않을까?

반면에 가장 바꾸기 어려운 것도 머리모양이다. 왜냐하면 바꿔서 망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우리 주인공인 알타이 산맥의 아크 알라하-3유적 얼음공주도 삭발했다. 그리고 가발도 썼다. 파지락 2호분의 여성미라도 전체 삭발했고, 5호분에서 출토된 미라도 머리 정수리만 남겨 둔 채 삭발했다. 파지릭 5호분의 양탄자에 묘사된 앉아있는 여성도 삭발했으며, 표트르 대제 시베리아 컬렉션의 금제장식판에는 나무 아래에 앉아서 쉬는 기마인도 삭발했다.

루덴코(1952)는 머리를 삭발하는 것은 미라를 만들기 위해서 두개골에 천공하는 풍습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살아생전에도 삭발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얼음공주도 삭발하고 머리에 가발(그림 1)을 씌웠다. 가발은 모자처럼 사자의 머리에 씌울 수 있게 제작된 것인데, 모자의 바닥은 펠트로 제작되었고 그 위에 미세하게 구멍을 뚫고 그 위를 말총으로 층을 깐 다음에 머리카락 장식을 붙여서 제작했다. 머리의 정수리에는 양모제 노끈으로 꼬아서 정수리에 올리고 그 위를 붉은색 양모로 만든 주머니를 얹었다.

그림1. 가발의 틀, 2-머리카락, 3-펠트, 4-양털로 꼬은 끈

 

가발을 쓴 이유도 가발 중앙에 씌운 일종의 관식과 같은 장식을 씌우기 위해서이다. 길이가 68.6cm로 긴 나뭇잎 모양으로 나무로 모양을 만들고 그 위를 검은색 펠트로 씌운 것이다(그림 2.3). 이 펠트모양 가발장식에는 15마리의 나무로 된 새가 부착되었다. 14마리는 날개표현이 없었지만(이전포스팅 참고), 가장 높은 곳의 새에는 날개장식이 남아 있다(그림6). 정수리 장식은 검은색 펠트로 만든 것 1개와 그 앞에 이등변삼각형모양으로 혹은 트리 같은 모양으로 정수리 장식이 1점 더 있다(그림 6). 이 정수리 장식 내부에는 그림3과 그림 4에서 보이는 사슴머리가 새겨진 나무 장식으로 지지하고 있다. 훨처럼 휘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도 신경을 많이 써서, 이데올로기적인 의미가 많은 유물로 생각된다.

 

 

그림 2. 가발 복원도,, 그림 1위에 그림 3을 씌웠다. 러시아학자들은 시베리아 신화에서 등장하는 세계수를 머리에 얹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림 3. 아크 알라하-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가발정수리 장식, 가장 높은 것은 검은색 펠트로 타원형모양으로 만들어 씌우고, 새로 장식했다. 그 앞에는 붉은색 주머니를 트리모양으로 새워서 장식했는데, 그 안에 사슴판이 새겨진 나무판을 넣어서 지지했다. 그 상부에는 사슴이 장식되어 있다. 

 

그림4.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정수리장식에 사용된 사슴머리가 새겨진 나무판. 실제로는 보이지 않고, 붉은색 펠트로 이등변삼각형모양으로 쌓였있었다. 아래 사진 참고.

 

그림 5.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얼음공주의 가발 머리 장식, 복원도, 새는 부착되지 않았음.

 

그림 6.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정수리 장식 중 가장 높은 곳에 부착된 새.

 

 

검은색 펠트제 가발장식과 새장식, 사슴모양의 나무장식을 통틀어서 러시아 학자들은 스키타이 인들이 믿었던 세계수라고 생각한다. 세계수에 대한 부분은 다시 설명한다.

 

앞에서 설명했던 가발은 펠트에 구멍을 내고 말총을 씌우고 다시 머리카락을 입힌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단순하지 않고, 탄화된 검은색의 0.2~2mm가량의 조각이 보이는데, 탄화된 곡물의 쭉정이다. 이 부분을 성분분석, 렌트겐 분석, 열분석을 해본 결과 80%이상 유기물질로 밝혀졌다(그림 7).

 

펠트제 가발의 밑바닥과 그 위는 무엇으로 접착했을까? 이는 탄화된 접착제인데, 곡물열매를 밀폐용기에 넣고 가열해서 만들었고, 여기에 지방을 섞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이 지방은 강한 냄새를 풍기는 물질인 아크롤레인 등으로 이루어졌고, 분석결과 동물성이다. 덕분에 가발은 냄새가 심했다고 한다.

 

그림 7.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가발 세부사진.

 

참고문헌

루덴코 1952, Руденко С.И. 1952 : Горноалтайские находки и скифы. М.-Л.: 1952. 268 с. («Итоги и проблемы современной науки») (루덴코, 11952 알타이 산맥의 스키타이 유물)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어제 포스팅의 누락 참고문헌(시트나코바->시트니코바)

시트니코바 1986, Ситникова Е.Е. О некоторых предметах быта в традиционной обрядности южных алтайцев // Генезис и эволюция этнических культур Сибири. Новосибирск: ИИФФ АН СССР, 1986. С. 84-94.(시트니코바 1986, 알타이 남부인의 전통의례도구에 대해서// 시베리아 민속문화의 계통과 발전(혁명)

 

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시베리아 알타이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주인공의 무덤방의 바닥과 관의 바닥 등에도 양털이 깔려 있다. 양털을 고온에서 압축해서 만든 펠트이다.

1940년대 발굴된 파지릭 유적의 최상위 계급 무덤에서 확인된 이후에 그간 다른 유적에서는 확인되지 않다가 이 유적이 발굴되면서 펠트제 유물이 출토되기 시작했다. 말안장 덮개, 옷, 타이즈, 모자 등을 제외하고는 나무방의 바닥깔개, 통나무관의 바닥깔개, 주인공의 베개와 수건 등이 출토되었다.

 

나무방의 바닥(그림 1,2)에서는 2장의 검은색 펠트가 깔려 있었는데, 실제로 살던 집 벽에 걸었던 일종의 캐노피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2장 중 1장에는 펠트제 고리가 달려 있어서, 실제로 집의 벽에 걸었다고 보인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 무덤의 가장 바닥에서 출토된 펠트제 깔개 2점을 수습하는 장면

 

그림 2.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무덤방 깔개의 수습 장면, 깔개의 크기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적혀있지 않았으나, 사진으로 보아서 무덤방 바닥을 전면에 덮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여성의 머리밑에는 작은 베개(30×36cm)가 놓여 있는데, 짙은 색 펠트로 만들었는데, 큰 바늘로 모직실로 땀을 딴 것이다. 이 베개 안에는 얇고 검은색, 두꺼운 갈색 펠트 2조각과 모피조각, 잡초, 털실 등이 베개 안에 들어 있었다.

 

지금도 알타이 지역에서는 부부의 침대를 가리기 위해서, 가죽으로 만든 커튼을 결혼식때 걸어둔다. 또한 알타이 인에게 침대에 깔린 흰색 펠트제 깔개의 질이 좋을수록 가족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으며, 베개는 가장 귀한 물건을 담아 둔다고 한다(시트나코바 1986).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바닥깔개는 문양 등은 없었고 단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가장 유명한 펠트제 캐노피는 파지릭 5호분(그림 3~5)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크기는 4.5×6.5m에 해당되며, 무덤의 벽에 걸어두었다. 앉아 있는 여신과 말탄 전사가 서로 마주보는 장면을 2단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편집했다. 네모꼴의 펠트에 아플리케 기법으로 덧붙인 것이다.

펠트는 화려하지만 매우 경제적으로 사용했다. 통나무관의 깔개처럼 큰 펠트제품이나 타이즈, 안장깔개, 안장의 치레걸이, 주머니 등은 작은 제품은 짜투리를 모아서 얼기설기 이어 붙인 것이다.

 

 

그림3. 파지릭 5호분의 무덤방 벽 장식. 매우 화려하다.(루덴코 1968)

 

 

그림4. 그림 3을 칼라사진으로 복원, 파지릭 유적의 5호분 출토 벽장식 (루덴코 1968)

 

그림5. 그림 3을 칼라사진으로 복원, 파지릭 유적의 5호분 출토 벽장식(루덴코 1968)

 

파지릭 유적과 표트르 대제의 시베리아 콜렉션을 분석하고 연구한 루덴코(1968)에 의하면 펠트제 아플리케를 이용해서 펠트제를 꾸미는 방법은 귀금속 가공술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현재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전시되어 있는 표트르 대제 콜렉션의 황금유물이나 아무다리야 강의 매납유구에서 출토된 유물, 아프카니스탄의 틸리아-테페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유물들은 모두 스키타이 문화의 유물이거나 혹은 연대가 늦은 것도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황금유물은 모두 상감기법으로 보석을 박아 넣은 것인데, 펠트제 유물에서 펠트 위에 아플리케 장식을 조각을 이어 붙인 것과 같은 느낌이다. 아플리케 장식도 한판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여러 조각을 나누어서 이어 붙여서, 짐승 몸의 근육느낌을 강조해서 더욱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다. 이러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황금 유물에도 상감기법을 이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루덴코 1968, Руденко С.И. 1968 : Древнейшие в мире художественные ковры и ткани из оледенелых курганов Горного Алтая. М.: «Искусство». 1968. 136 с.(루덴코, 1968, 알타이 산맥의 얼음고분에서 출토된 고대 양모제품과 직조물의 세계)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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