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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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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보여 드린 무덤방이 머릿속에 떠오르시나요?

무덤방이 있던 무덤구덩이 가장 왼쪽에는 무덤방 안이 아니라 바깥에 이상한 뼈 들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나요?

 

 

앞에서 여성샤먼의 무덤방 천장 위에서 카라-코바 문화의 무덤 위에 말이 세 마리 확인되었는데, 이는 이 무덤을 위한 것이었다. 천장 위의 카라-코바 문화의 무덤을 제거한 도면을 공개했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주인공 무덤에는 말이 6마리 들어가 있다고 했는데, 무덤방 천장의 북쪽 가장모서리에 첫 번째 말이 확인되었다. 한번 찾아보시기 바란다.

 

2020/01/11 - [시베리아의 선사시대/철기시대: 2500년 전 샤먼] - 2500년 전, 시베리아 여성샤먼 무덤 속

2500년 전, 시베리아 여성샤먼 무덤 속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의 얼음이 녹자 드러난 무덤의 구조를 살펴보기로 하자. 여성샤먼에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덤을 발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구조를 알아야 한다. 아크-알라하 3 유적은 3m(지표에..

eastsearoad.tistory.com

 

아래의 사진이 공개되어 있어서 살펴보시면 카라-코바 무덤과 첫 번째 말이 드러난 상황을 잘 보실 수 있다.

 

 

그림 1. 아카-알라하 3유적 1호분의 호석(좌)과 무덤 복원도(우)

 

 

 

그림 2. 아크-알라하 3 유적의 1호분 무덤 천장(좌)에서 카라코바 문화의 무덤과 첫 번째 말 뼈를 찾을 수 있다. 우측의 말 3마리는 카라 코바 무덤을 만든 사람들이 사자를 위해서 묻은 말이다. 그래서 이 무덤에서 가장 먼저 팠을 때 말 3마리가 먼저 나왔는데, 가지런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는 여성 미라의 말이 아니라, 여성 미라의 무덤 천장 위에 있던 카라 코바 문화의 무덤과 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머지 말 5마리는 나무로 만든 무덤방과 무덩구덩이의 북쪽 공간에 5마리가 들어 있었다. 이 공간은 깊이 2.82m, 폭은 0.65m사이의 공간이다.

 

그림 3. 아크 알라하 3유적의 무덤 구덩이

 

 

 

그림 4. 무덤 구덩이 속 5마리의 말, 가장 좌측의 번호가 설명드린 말의 번호이다. 

 

가장 첫 번째 말은 나무로 만든 재갈멈치와 멈치 끼우개 1점만 발견 되었다.(첫번째 말과 관련된 유물의 사진 혹은 그림은 없었다.

 

 

 

두 번째 말과 세 번째 말은 말 구덩이 동편에서 오른쪽으로 누워 있는 채 발견되었는데, 머리가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다리는 교차해서 굽혀져 있었고, 두개골의 정부에 도끼로 맞아서 생긴 구멍이 남아 있다. 말을 장식한 마구 굴레 일괄이 출토되었다.

두 번째 말을 장식한 재갈멈치의 끝은 그리핀 장식으로 되어 있었다. 두 번째 말에는 안장이 있는데, 붉은색 펠트로 만든 것인데, 그 위에는 날개달린 사자 즉 그리핀 형상의 아플리케가 붙어 있었다. 이 그리핀은 날개, 뿔, 귀 등이 있고, 꼬리 끝에는 숱이 장식되어 있었다. 두번째 말에는 그리핀조각이 모두 13개 확인되었다.

 

그림5. 두 번째 말의 두개골, 말머리에 도끼로 맞은 자국이 있다.

 

 

 

그림 6. 두 번째 말의 굴레 장식과 재갈
그림 7. 두 번째 말의 재갈과 굴레장식, 마구에 대해서는 다시 설명해 드리겠다.

 

 

세 번째 말은 철제 재갈이 채워져 있고, 나무로 만들어진 치레걸이와 말 머리 장식이 확인되었다. S자형 대형재갈멈치는 그 끝은 팔메트 장식으로 마무리되었다. 팔메트 장식은 소용돌이 문양 두 개를 이어 붙인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시면 두 번째 말의 굴레장식도 그리핀 모양을 하고 있으나 전체적인 모양은 소용돌이 모양을 하고 있다.)

말 안장도 확인되었는데, 세 번째 말에도 안장은 화려한 덮개로 덮혀 있었다. 그리핀 아플리케가 부착되었다. 안장에 붙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2 개의 땋음 장식도 확인되었다. 땋음 장식에도 3개의 목제 그리핀이 부착되었다(안장을 덮는 펠트와 땋음 장식 등은 다시 설명드리겠다).

세번째 말에는 그리핀이 말 굴레에는 장식되지 않았고, 땋음 장식에만 3개 있었다.

 

그림8. 세 번 째말의 마구장식
그림 9. 세 번째 말의 장식 복원, 우측은 안장을 장식한 묶음

 

 

네 번째 말은 굴레의 장식과 재갈멈치, 멈치 끼우개와 징식을 포함해서 완벽하게 부장되었다. 휘어진 재갈멈치에 표현된 그리핀이 조각되었다. 머리 위의 갈기, 날카로운 귀, 뻗은 갈기, 부리 끝, 세로로 눈금이 새겨진 목 등이 특징이다.

네 번째 말은 그리핀 3개가 모두 확인되었다.

 

 

그림 10. 네 번째 말의 재갈괴 굴레 장식

 

 

다섯 번째 말은 깊이 1.97m에 벽과 아주 밀착되었다. 전체 재갈 부속과 장식들이 잘 보존되었다.

다섯 번째 말의 장식은 아주 잘 보존되어 있었다. S자형 재갈멈치는 한쪽은 그리핀, 다른 쪽은 팔메트 장식이 새겨졌다. 팔메트 장식은 치레걸이에도 있다. 재갈멈치 끼우개 장식에는 영양의 머리 장식이 새겨졌다. 말의 이마 장식 대신에 정교한 그리핀 장식이 놓여졌다. 이 유물은 에르미타주의 표트르 대제 컬력센의 유물중에 있다. 또 다른 그리핀 장식은 머리 부분과 몸체를 따로 만들어 조합했는데, 사슴의 뿔 같은 것이 새의 머리에 달렸다. 말굴레 장식의 일부로 같이 부착되었다.

그리핀은 모두 3개 확인되었다.

 

 

그림 10. 다섯번째 말을 장식 한 재갈과 굴레 장식

 

그림 11. 다섯 번 째 말을 장식한 재갈과 굴레 장식

 

 

 

6섯번 째 말은 가장 밑 바닥에서 출토되었다.

여섯번째 말에는 S자형으로 약간 굽고 그 끝을 그린 그리핀 머리로 장식한 재갈멈치가 출토되었다. 다른 파지릭문화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리핀 모양이다. 귀가 없고 갈기는 물결치듯 표현되었다. 부리와 상투머리가 크게 하나로 묘사되었다. 이마 장식은 둥글고 한쪽으로 뾰족하게 튀어 나왔다. 파지릭 1호 고분 출토장식과 유사한 팔메트 모양의 치레걸이도 출토되었다.

여섯번째 말에는 그리핀은 2점 확인되었다. 재갈멈치에 양쪽으로 달린 것을 다르게 계산하면 4점이다.

 

 

 

그림 12. 여섯 번째 말을 장식한 재갈과 굴레장식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알타이 산맥의 여성미라의 부장품을 어제 소개 했다.

 

사실 그렇게 말로 설명해서는 어떻게 부장했는지 잘 감이 안온다. 유물 사진이야 필자가 소개해서 대충 느낌은 아시겠지만, 그래도 머릿속에 그 모습이 그려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무덤 속에서 인골이 그대로 확인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토양의 특징 때문인데, 최근에 조선시대 무덤에서 종종 미라가 발견되기도 한다. 조선시대 무덤에 석회가루를 썼서 그렇다. 그렇지 않고는 거의 드물다.

그런데 필자가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때, 경산 임당에 삼국시대 무덤 발굴을 실습차 갔던 적이 있다. 그 유적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잘 알려져 있다. 그곳에서도 필자는 청석암반층에 무덤을 쓴 구역에서 발굴할 기회가 생겼다. 인골이 있었는데,, 무섭다기 보다는 너무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우리는 무덤 부장품의 위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DNA로 아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필자가 이야기 한 유물이 정확하게 어느 위치에서 확인되었는지가 여러분은 궁금하실 것이다.

관속의 모습을 실측한 그림1은 다음과 같다.

이들 위치에서 유물이 확인되었고, 의복과 관련된 내용은 곧 소개해 드리겠다.

 

그림 1.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관 속

 

1. 머리 끝 장식, 2. 가발에 붙은 새장식, 3. 머리 장식, 4. 씨앗이 담긴 석제 그릇, 5. 목제 사슴장식, 6. 목제 머리장식(사슴장식 옆으로 머리를 가로지르게 장식했는데, 2점이다). 7. 금제 귀걸이, 8. 목제 경식 일부, 9. 목제 경식의 일부 장식인 표범장식, 10. 실크제 블라우스(여밈없는), 11. 끈, 12. 치마, 13. 구슬, 14. 펠트제 주머니에 담긴 거울, 15. 말총으로 만든 화장솔, 16. 펠트제 스타킹과 장화.

 

위의 목관은 어디에 놓여 있었습니까? 그 공간은 뭐라고 합니까?

무덤방.. 목곽이라고도 한다.

 

아래의 그림은 무덤구덩이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고 그린 실측도이다. 

무덤방안에 가장 오른쪽에는 관이 있고, 왼쪽에는 유물 몇 점과 빈 공간이다. 

 

 

 

그림 2. 아크-알라하 3 유적의 1호 무덤방. 

 

러시아 연구자들은 이 빈 공간을 일종의 생활구역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을 동일하게 본 것이다. 필자도 동의한다.

 

 

이 공간에서 확인된 유물은 목제 쟁반과 그릇, 뿔로 만든 잔, 토기 2점 등이 거의 전부이다. 목제 쟁반 위에는 동물뼈가 출토되었는데, 고기덩어리를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제 그릇 안에는 긴 막대기가 들어 있었는데, 유제품 제작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뿔잔은 손잡이는 야크, 몸통은 산양으로 만든 것이다.

여러분은 이미 본적이 있다. 그렇다. 유투브 영상에서 얼음이 녹고 가장 먼저 수습된 것이 이 유물들이었다.

 

 

참고문헌

https://scfh.ru/papers/put-k-nebesnym-pastbishcham/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는 무덤방 안과 관속에서 유물이 확인되었다.

관의 뚜껑을 열자 얼음속에서 가장 머저 드러난 것은 머리부분이다(그림1). 이 여성은 오른쪽으로 누웠으며, 무릎은 살짝 굽히고, 손가락은 팔꿈치 쪽으로 굽혀서 배쪽으로 손을 모은 채 누워있었다(그림 2,3).

 

그림1. 관의 뚜껑을 열고 내부를 정리하는 장면

 

그림 2. 관 속

 

그림 3. 주인공의 손 모습과 전체 모습, 목걸이

 

통나무관의 바닥과 시신의 바닥에는 펠트제 깔개가 깔려 있었다. 펠트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한다. 주인공은 가발을 쓰고 있었는데, 상반부와 통나무관의 상부 1/3지점에서 발견되었다. 주인공이 입고 있는 실크로 만든 여밈없는 긴 블라우스와 긴 치마(붉은 치마)를 입고 있었고, 타이즈도 신고 있었다. 펠트, 옷과 타이즈 등은 따로 설명한다.

 

 

주인공의 대퇴부 부근에는 펠트로 만든 주머니 속에서 청동거울이 있었다. 나무틀 안에 보는 경면이 청동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나무 손잡이의 끝에는 구멍이 남아 있었다. 손잡이 부근에는 다양한 색깔의 구슬이 남아 있었는데, 그 중에는 사람의 어금니도 있었다.

 

그림 4. 청동거울, 구슬과 화장품 출토장면
그림 5. 청동거울의 뒷면

 

목에는 목걸이(그림 3)가 있었는데, 표범장식(그림 6)이 붙어 있었다. 이 장식은 표범의 머리부분이 살짝 도드라지게 표현되었는데, 나무판으로 제작한 후, 금박으로 장식되었다. 금박은 얼음이 녹으면서 찢겨 나가서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림6. 목걸이의 가장 중앙장식
그림 7. 아크-알라하 3유적 1호분 여성 주인공의 목걸이, 필자촬영

이 여성의 머리에는 높이 61cm의 말총가발이 있었고, 가발은 고깔모자(그림 9)가 씌어져 있었다. 모자에는 15개의 금박을 입힌 목제 장식(그림 10)이 붙어 있었다. 가발에는 금박을 입힌 배지처럼 앉아서 상체를 돌린 모습의 사슴모양 목제 장식을 붙였다. 머리의 정수리에는 머리를 모아서 꼬아 올려, 붉은 주머니로 쌓고 그 끝에는 사슴모양 장식이 붙어 있었다(그림 11). 나무로 다리를 굽힌 동물모양(그림 11의 가장 왼쪽)을 원형장식위에 올린 것이다. 금박되었다. 귀걸이도 착용했는데, 둥근 고리모양이다. 그 부근에 석제 그릇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탄화된 고수의 씨앗(그림 8)이 있었다.

 

 

 

 

그림 8. 석제 그릇
그림 9. 꼬깔모자
그림 10. 꼬깔모자 장식, 목제, 새

그림 11. 가발을 여성 복원도, 가장 왼쪽이 정수리를 장식한 사슴장식이다. 다리를 굽히고 있다. 오른쪽은 미라의 머리를 근접해서 찍었는데, 미라제작은 따로 설명할 예정이다.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 중 아크 알라하 3유적이라고 하는 유적의 1호분의 주인공인 이 여성은 일반인들에게는 얼음공주라고 알려졌고, 좀 더 자세하게는 샤먼의 지위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성샤먼인지, 가장 최상급의 신분이었는지는 논란이 있다. 이는 부장품 때문이다. 현재 가장 최상급 무덤은 알타이 산맥에서는 또 다른 유적인 파지릭 고분이 최상급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왜냐하면 그 무덤의 크기 뿐만 아니라 부장품의 양과 질이 좋았기 때문이다. 파지릭 무덤에서는 마차가 통째로 확인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계속 이야기 하도록 하고, 오늘은 이번달의 주인공인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미라의 부장품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림은 7번을 빼고 아래 책을 참고했다.

 

참고문헌

https://scfh.ru/papers/put-k-nebesnym-pastbishcham/

https://scfh.ru/papers/dvadtsat-let-spustya/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문화는 유라시아 전역에 넓게 퍼져 있다. 그 가운데서도 알타이 산맥의 고분문화를 파지릭문화라고 한다. 아크-알라하 3유적도 파지릭문화의 한 유적이다. 이 파지릭문화에서 목곽과 목관을 만든 것은 모두 낙엽송이다. 수레, 집도 낙엽송을 하용했다. 큰 나무는 통나무관을 만드는데 썼다.

 

아크-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 쓰인 목곽에는 집의 일부를 그대로 사용한 흔적이 남아있다.

현대의 알타이 주민의 집인 아일라처럼 생긴 다각형 집의 일부를 나무방인 목관으로 쓴 것이다.

(그런데, 아크-알라하 유적 뒤에 갑자기 왜 번호가 달라질까? 러시아 유적명칭은 앞은 행정구역 혹은 가장 가까운 마을이름 이고, 뒤의 번호는 유적을 찾은 순으로 학자들이 우리로 치면 문화재청과 같은 곳에 등록을 한다. oo1, oo2, 003......등 그래서 아크-알라하 1유적과 아크-알라하 3유적은 그 성격이 다르다. 앞으로 계속 설명해드리겠지만, 파지릭문화의 사람들은 한 계곡에 한 가족의 무덤을 썼다. 열을 지어서...)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은 낙엽송을 ‘밝은 나무’라고 생각한다. 니브히 족은 자신들이 낙엽송에서 기원했다고 생각하고, 셀쿠프 족은 인생의 나무로 간주했다. 만시의 신화에는 신성한 대홍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파지릭유적의 4호분과 5호분에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홈을 판 낙엽송 통나무 토막이 발견된 바 있다. 길이가 3.17m인 통나무에는 9개, 4.13m의 나무에는 8개의 홈이 파여져 있었다. 일정한 사다리였던 것으로 본다(루덴코 1953).

쿠로키친은 의례에 사용된 사다리는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상징한다고 보았다(1994). 셀쿠프족은 하늘의 신께 가는 사다리라고 부르거나 나무에 올라가기 위한 것으로 부른다. 그리고 샤먼이 이것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다(프로코피예바 1977).

 

 

그림 1. 파지릭 유적에서 출토된 사다리 중의 일부 (루덴코 1953)

 

 

 

파지릭문화에서 통나무관을 쓰는 것은 파지릭유적의 왕족급 고분 및 쿠투르군타스 1유적 1호분의 전사무덤,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의 샤먼 무덤, 아이무덤에도 사용되었다. 통나무관은 모든 무덤에서 사용되었던 것은 아니고 일부 무덤에서만 사용되었다.

러시아학자들은 통나무관을 쓴 주인공은 일정한 계급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로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통나무관을 쓰고, 귀때기가 남아 있다고 한다.

시베리아의 투르크어족 설화에는 나무는 아이들을 낳으며, 인생을 상징하고 가족 개개인의 행복을 담보한다. 나무 그루터기나 몸통 안에 죽은 사람을 매장하거나, 통나무 안에 매장하는 것은 죽은 사람을 생명의 원천으로 다시돌려보낸다. 셀쿠프 인에게는 통나무를 타고 강을 따라 죽은 자들이 살고 있는 도시로 간다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시베리아 원주민들에게는 연기를 들어마시는 훈증법을 악령으로부터 보호하고 주변을 정화시키는 의식으로 생각한다. 헤로도투스도 스키타인이 대해서 남긴 기록에 정화의식에서 대마를 사용한 기록이 나온다. 파지릭 유적에서는 이 의식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 동복, 6개의 나무막대로 이루어진 뼈대, 천막을 친 가죽덮개, 동복속의 돌, 대마씻앗이 그대로 담겨서 출토된 바 있다.

 

파지릭유적 설명할 때 사진을 공개하겠다.

파지릭문화의 사람들, 아크-알라하 3유적에서 발견된 여성을 포함한 사람들의 무덤은 사실 전부 나무와 풀로 덮혀 있다. 나무방과 목관, 미라 속을 채운 식물, 가발, 장신구등도 전부 나무로 제작되었다. 알타이 고원에서 확인되는 황금장식은 목제에 금박을 입히는 경우가 많다. 아크알라하 3유적의 여성무덤에서는 얼음이 녹으면서 금박이 찢겨나가서 금박은 거의 없었다.

 

처음에 이 문화의 유물을 볼때는 번쩍거리는 것만 눈에 들어왔는데, 지금 다시 보니깐,,,아크-알라하 3유적은 나무로 뒤덮혀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모든 유적이 그런건 아니다. 이 문화는 황금유물로 유명해졌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앞에서 말했듯이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은 주인공의 무덤방 천장 위에 카라-코바 문화의 무덤이 하나 더 얻혀있었다. 이 무덤을 걷어내자, 그 아래에는 통나무 11개로 제작된 나무방(목곽)의 천장(2.3×3.6m)이 드러났다.

 

나무로 만들어진 무덤방은 통나무를 집처럼 설계해서 만들어졌고, 그 안에는 통나무를 파서 만든 나무관이 있었다. 이 무덤방의 천장을 드러내자 그 내부는 얼음으로 꽉 차 있었다고 한다.

 

무덤방과 관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는 유물이 50점 가량 확인되었다. 앞서서 포스팅한 비디오에서 나무로 만든 잔과 뿔로 만들어진 잔 등, 목제 쟁반 등이 드러난 곳도 그곳인데, 이에 대한 부분은 앞으로 설명드리겠다.

 

 

아쉽게도 이 글을 참고하고 있는 책에는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의 무덤방에 대한 기술이 부족했다. 통나무를 반으로 갈라서 안쪽을 편평하게 다듬은 나무를 사용했다. 사진으로 확인가능한 것은 무덤방의 짧은 길이에 4개의 나무판을 사용했고 다 같은 높이 인점을 본다면 대략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그림1).

 

 

얼음이 녹자 통나무관의 뚜껑이 드러났다. 통나무관(그림 245)은 통나무 안을 파서 만든 것이다. 끝에 귀때기가 붙은 것이다(그림 2~54). 이 부분은 못을 밖기 위한 것인데, 이 유적에서는 청동 못 2개가 밖혀 있었다. 다른 유적에는 나무정이 밖히기도 한다. 길이가 2.73m, 내부의 깊이는 0.3m, 밖에서 본 높이는 0.68m이다.

 

 

그림 2~4 아크-알라하 3유적 1호분, 2008년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에서 촬영. 현재는 고르노 알타이시의 박물관에서 볼 수 있음. 

 

얼음이 녹자 관의 뚜껑이 드러났고, 그 뒤에 관을 장식하던 길이가 38cm가량인 가죽으로 만들어진 사슴모양 아플리케가 보였다(그림 5). 아플리케 장식은 조각난 상태였고, 6~7개 개체로 생각된다(그림6 ). 아플리케는 유치원에서 하던 종이를 접어서 가위로 오려 문양을 만드는 것이다. 참고문헌에는 이 사슴모양 아플리케 그림이 없어서, 알타이 고원의 또 다른 무덤 유적인 파지릭무덤의 1,2호분 자료로 보여드린다. 1호는 수탁 모양(그림 7), 2호(그림8)는 사슴모양의 아플리케이다. 이 유적도 앞으로 설명드릴 여정이다.

 

그림 5. 얼음이 녹자 드러난 관의 장식, 가죽, 사슴모양의 아플리케
그림 6, 2008년 필자 촬영,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
그림 7. 파지릭고분1호
그림 8. 파지릭고분 2호

요즘은 샤먼 혹은 무속인들은 어떻게 장례를 치르는지 모르겠다.

필자가 설명하고 있는 2500년 전 시베리아 알타이 해발 2500m의 우코크 고원에서 장례는 엄청나게 오랫동안 계획되었고, 기획되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알타이 고원에 살던 2500년 전 여성의 수명은 29.6세, 남자는 38.5세였다. 그리고 나무 나이테를 분석한 결과 채벌기간은 3.5년에서 8년 사이에 이루어졌고 대부분 39년 이내에 준비되었다. 사람이 죽기 전부터 이미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알탕타이 고원의 스키타이 시기 민족의 문화)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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