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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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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포스팅에서는 얼음공주라 불리는 미라의 내부를 채운 물질을 소개했다. 식물성도 있었지만 동물성인 말총과 양털도 있었다. 그 중에서 양털은 이들 일상생활에 가장 많이 이용된 물질일 것이다. 양털로 제작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대로다. 포스팅의 제목처럼 말안장 덮개와 말의 일부 장식품 뿐만 아니라 무덤 가장 바닥에 깔린 것도 양털로 만든 것이다. 이 양털로 만들어진 물질을 ‘펠트’라고 한다. 펠트는 씨실과 날실을 짜서 직조하는 즉 니팅하는 방법이 아닌 양털을 압축(그림 1)해서 만든 것이다. 양털을 실로 만들어서 직조하면 양탄자인데, 이와는 다르게 고온에서 압축해서 만든 것이다. 현대의 펠트는 검색가능하다.(일정한 연령 이상으로는 예전에 교실의 벽 게시판을 장식하는 곳에 녹색의 천을 가까이서 눈여겨 보신 분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걸 부직포라고 불렀다. 물론 그건 인공적인 물질이지만, 이 펠트의 조직도 부직포와 비슷하다. 요즘 학교에서 그런걸 쓰는지는 모르겠다)

 

 

그림 1.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에서 출토된 말 안장덮개의 장식, 펠트의 조직, 같은 유적은 아니지만 펠트의 이해를 위해서 소개한다. 

 

현재 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펠트제 유물은 투바의 아르잔 고분 6호 통나무 안에서 출토되었다. 이 무덤은 1980년대에는 기원전 7세기로 보았으나(그랴즈노프 1980), 최근 나이테보정측정연대에 의하면 기원전 9세기까지 올린다(알렉세이예프 외 2005). 그런데 이 유물은 너무나 이미 완벽한 형태이기 때문에 이미 이 전부터 있었을 가능성 즉 청동기시대에 이미 원초적인 펠트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펠트는 매우 오랫동안 유목민족의 옷 소재로 활용되었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등장한다. 그가 흉노의 옷에 대해서 기록한 내용이 있다. ‘선우부터 모든 사람들은 가축의 우유를 마시며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펠트로 만든 외투를 걸친다’. 아시다시피 흉노는 기원전 3세기부터 역사에 등장하는 민족이다.

 

그럼 이 무덤 속에서 펠트로 만든 것은 무엇이 있을까?

 

말 안장 덮개와 장식, 얼음공주의 상의, 타이즈, 청동거울을 보관한 주머니, 무덤방과 관의 바닥깔개, 무덤방의 벽 장식 등이 양의 털을 압축해서 가공한 펠트로 제작되었다.

그런데 펠트 소재로 만들어진 물건들은 단독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납작한 펠트 위에 펠트 아플리케를 바늘로 땀을 떠서 덧붙여서 만든 것이 많다. 펠트 아플리케가 문양장식이 된다.

 

얼음공주가 잠들어 있던 알타이 산맥의 아크 알라하 3유적에서는 안장을 덮은 깔개가 3점 확인되었다. 시간이 지나서 탈색이 많이 되었거나 거의 색이 없어지기도 했다. 아마 처음 제작되었을 때는 붉은색, 검은색, 황색, 녹색 혹은 청색으로 원색대비를 사용해서 매우 강렬했을 것이다.

 

2번째 말의 안장 덮개(그림 2, 3)는 4마리의 상상의 동물이 아플리케 장식으로 덧붙여져 있다. 상상의 동물은 필자의 모친이 기르는 강아지(그림 3)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날개 달린 사자를 형상화 한 그리핀이라고 학자들은 평가한다. (그런데 사자인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할 듯 하다. 사자가 알타이 고원에서 살수 있었을까? 어디서 본 것일까? 아니면 수입품일까? 등등..). 이 그리핀은 뿔, 귀, 꼬리가 있다. 몸통은 밝은 녹색이며, 날개, 꼬리와 얼굴은 노란색이다. 각 그리핀의 가장자리 윤곽은 얇은 노끈으로 감아치기 해서 마감했다.

그림2. 두 번째 말의 안장 덮개, 펠트로 제작

 

그림 3. 두번째 말의 안장 덮개를 장식한 아플리케, 가장자리를 실로 감치기 해서 마감했다. 펠트의 세부조직도 볼 수 있다.

 

3번째 말의 안장 덮개는 전혀 다르다(그림 4). 펠트 바닥의 모양도 남은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불분명하지만, 말의 복부로 늘어뜨려지는 부분이 양쪽으로 4개씩 세모꼴이다. 세모꼴의 가장자리도 작은 세모꼴 모양으로 잘려 있다. 여기에는 그리핀 2마리가 아플리케 장식으로 표현되었다. 몸통, 뿔, 갈기는 붉은색이고, 얼굴은 흰색, 귀와 꼬리털은 황색이다. 날개는 붉은색과 황색을 번갈아 넣었다. 얼굴의 눈, 코, 턱을 붉은색 털로 구분했다. 엉덩이에는 ‘()’사이에 원문양(그림 5)이 있는데, 비슷한 표현방법이 파지릭 유적에서도 확인되었다.

 

그림 4. 세 번째 말 안장덮개
그림 5. 세 번째 말 안장 덮개의 그리핀 아플리케, 엉덩이의 괄호모양 안에 점이 파지릭고분에서 나온 펠트제 유물과 유사하다.

 

한 점은 몇 번째 말의 안장 덮개인지는 문헌에 기록되지 않았고, 상태가 좋지 않아서 간단한 그림만 남아 있다. 다른 유물과는 달리 사슴머리에 화려한 뿔이 달려있고, 날개가 있는 아플리케가 장식되어 있다(그림 6)

그림 6. 아크 알라하 3유적 1호분의 말 안장 덮개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 안장덮개는 덮개에 장식을 붙이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아크-알라하 5유적, 아크-알라하 1유적 등에서는 안장덮개에 장식을 붙여서 말 위에서 훨씬 치렁치렁한 느낌을 주도록 장식했다(그림 7).

 

그림 7. 파지릭 유적의 1호분 출토 말 안장덮개(국립중앙박물관 1991)

 

 

 

참고문헌

국립중앙박물관 1991, 스키타이황금

그랴즈노프 1980 Грязнов М.П. 1980 Аржан.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ранне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Л.: 1980. 64 с.(그랴즈노프 1980, 아르잔 유적-초기 스티카이문화의 차르 무덤)

알렉세이예프 외 2005, Алексеев А.Ю. 2005, Евразия в скифскую эпоху: радиоуглеродная и археологическая хронология. СПб: 2005. 290 с.(알렉세이예프 외 2005(12명 편저), 유라시아의 스티카이 문화연대: 측정연대와 고고학적 편년)

폴로시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2001,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 그 중에서도 우코크 고원 중에 아크-알라하 3유적이라는 곳에 뭍힌 미라는 머리, 목, 손 등을 복원에 힘썼던 것으로 평가된다. 모든 미라가 똑같이 복원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스키타이 문화의 이야기가 최초로 적힌 역사서인 헤로도투스의 『역사』에는 미라 처리 방법 중에 몸 속에서 내장을 다 꺼내고, 그 안에 생강, 향료, 아니스 씨를 넣고 다른 부족으로 장례를 치르러 가는 모습을 그린 바 있다.

 

카메네츠키라는 러시아학자는 헤로도투스의 텍스트를 현대어로 다시 번역해서 어떤 종류의 식물이 들어가 있는지를 알아냈다. 사초(Cyperus longus L), 향초ㅡ 셀러리의 씨앗(Apin graveolens), 아니스(Pimpinella anisum L)등이다. 그러나 이런 식물은 헤로도투스가 본 지역을 헤깔리게 한다. 카메네츠키(1995)는 잉런 식물은 소아시아, 이란, 쿠르디스탄 까지 가서 전쟁을 불사해야 얻을 수 있는 약초로 설명했다.

그림 1. 사초(러시아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분소 식물연구소에 소장된 현대초본류의 표본)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 미라의 내부는 무엇으로 치워졌을까?

자잘한 양털, 말총, 잡초, 사초, 이삭, 뿌리 등 식물섬유로 채워졌다. 말총은 절단면을 꿰맬때도 사용했다. 러시아 알타이 파지릭유적의 미라, 중국 신강성의 수바쉬 유적의 미라에도 말총이 사용되었다.

미라의 내부에 식물성 섬유를 채워 넣는 것은 비단 알타이에서만이 아니다. 파지릭 유적의 2호분 여성미라 뱃속에도 큼직하게 자른 싹들과 뿌리로 채워졌다.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 베레쉬 유적의 다인묘에서도 가슴부위와 배주변을 잡초를 채워넣는다. 시베리아는 아니지만 페루의 미라에서도 구멍뚫린 두개골 안에는 잡초와 재를 채워넣었다.

 

가슴부위에는 아주 검은색으로 탄화된 물질들이 채워져있었다고 한다. 말총, 식물잔편, 모래 등이 섞였다. 대부분 탄화되었는데, 탄화되지 않은 물질을 현미경으로 일일이 골라서 가수분해 한 결과 내장의 일부로 분석되었다. 시베리아의 알타이 산맥 파지릭문화에서는 내장을 충전물과 한덩어리로 섞어서 다시 미라로 돌려보내주었다. 이는 이집트와 티벳에서처럼 내장을 따로 보관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알타이 산맥의 미라가 잘 보존된 이유는 얼음도 한몫을 했지만, 방부제 역할을 한 물질이 있다. 바로 수은이다. 미라의 피부 표면에서 검출되었다. 무덤이 물에 잠기면서 수은이 흡착되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미라의 가발, 모자, 다른 곳에서는 수은이 검출되지 않고, 피부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에, 수은화합물을 사용했다. 이집트의 미라에서는 수은이 검출되지 않았다.

우코크 고원에서 멀지 않은 악타쉬 지역에 주사(朱砂)광산이 있다. 주사의 주 성분이 수은이다. 아크-알라하 3유적을 포함한 파지릭문화의 사람들은 주사를 광물제 염료로 써서 목제와 가죽제 물건을 채색해는데 썼다. 금광에서 금을 캐고 금박장식을 만들기 위해서 수은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미라의 몸에 섞지 않도록 하는 것을 발삼(balsam)처리라고 한다. 발삼은 여러 향료가 들어간 일종의 고형에 가까운 기름이다. 좀 더 쉽게 이해하면, 연고가 일종의 발삼이다. 미라에게 발삼처리를 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조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데올로기적인 측면도 있다. 러시아 학자들은 파지릭문화의 사람들은 육체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어야만 사후의 삶이 이어진다는 의식이 그들에게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화에서 신을 조각내야만 그가 부활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인간과 신은 동격이니, 미라로 만들어야 부활을 위한 담보가 된다. 고대 이란인들에게도 육체를 부활하려는 희망이 있었다는 여러 문화의 예를 보고, 파지릭문화의 사람들에게도 그런 의식이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참고문헌

카메네츠키이 1995, Каменецкий И.С. О бальзамировании умерших царей у скифов//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альманах(Армавирского краеведческого музея). Армавир; Краснодар; М.: (카메네츠키이, 1995,스키타이 죽은 왕의 발삼처리에 대해서.//역사고고의 연대기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500년 전,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도 알타이 산맥에 위치한 파지릭 문화에 해당하는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 유적의 1호분에서는 무덤 속에 여성미라가 확인되었다. 얼음공주라는 별칭도 있고, 샤먼 계급이라는 의견도 있다. 미라는 여성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소개해 드릴 유적의 무덤에는 남성미라가 더 많은 것도 같다.

한국에도 조선시대 무덤에서 미라처럼 남아 있는 유적이 확인되어 언론에 나오기도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미라는 아니다. 조선시대는 이집트, 시베리아 처럼 미라 처리를 따로 하지 않고, 무덤 밖에 회를 두껍게 발라서 썩지 못해서 생긴현상이다.

 

앞에서 보여드린 포스팅에서 여성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거울 옆에서 구슬과 말총으로 만든 화장솔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 옆에는 금속제 통에서 나온 푸른색 가루가 확인되었다. 푸른색 가루의 정체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촉매연구소에서 분석한 결과 비비아나이트(Vivanite)라고 밝혀졌다. 산악 알타이에 많이 분포하고, 금맥이 발견되기 전에 그 지표역할을 하는 광물이라고 알려졌다. 미라의 화장품이었다. 아크 알라하 3유적 1호분의 미라의 얼굴은 눈 근처에도 반토(alumna)덩어리가 발견되었는데, 매장되기 직전까지 계속 이 물질로 얼굴피부를 매우고, 비비아나이트를 발라서 유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2020/01/14 - [시베리아의 선사시대/철기시대: 2500년 전 샤먼] - 2500년 전, 시베리아샤먼 ? 얼음공주? 부장품의 의미

2500년 전, 시베리아샤먼 ? 얼음공주? 부장품의 의미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서는 무덤방 안과 관속에서 유물이 확인되었다. 관의 뚜껑을 열자 얼음속에서 가장 머저 드러난 것은 머리부분이다(그림1). 이 여성은 오른쪽으로 누웠으며, 무릎은 살짝 굽히고, 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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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미라는 일정한 처리를 한다. 두개골에는 뇌수를 꺼내고 각종 식물들과 흙으로 속을 채웠고, 얼굴피부에도 처리를 했다. 매장할 때까지 가을 혹은 봄이 되도록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미라 처리과정에서 가장 복잡한 부분중에 하나는 관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장을 꺼내는 것이다. 관절이 파손되면, 미라의 형체가 유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병리학자들에 따르면,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 처리에는 옷으로 가려지지 않은 머리, 목, 손과 가슴복원에 집중되어 있다. 이 여성은 왼쪽어깨부터 손까지 흐르는 부분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뿐만 아니라 머리, 가슴 등에는 충전물로 충전되어 있다. 배 부분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또 다른 유적인 베르흐-칼쥔 2 유적에서 확인된 미라에는 내장은 모두 꺼냈지만, 별다른 충전물 없이, 그냥 모피코트만 입은 채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알타이 산맥의 여러 미라들은 자신의 상황에 따라서 죽은 후의 모습도 각각 다르다.

 

 

참고문헌

https://scfh.ru/papers/zhizn-i-smert-altayskoy-printsessy/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필자가 스키타이 얼음공주라 불리는 2500년 전 스티타이 문화에서도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문화라 불리는 문화에서 확인된 우코크 고원의 아크 알라하 3 유적의 1호분 여성 미라를 소개하기 위해서 이제 까지 무덤의 구조, 말, 관안에서 확인된 부장품, 관 밖이고, 무덤방안에서 확인된 여러 재질로 제작된 그릇들을 설명드렸다.

 

그렇다면 무덤의 주인공인 얼음공주라고 불리는 미라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가 아니겠는가?

 

우리의 주인공은 무덤구덩이 속의 가장 바닥에 누워있다. 무덤방이라고 하는 목곽안에 통나무로 만든 관 안에…그런데 여러분 머리속에는 그 무덤방이 어떤 느낌이셨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참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그게 그들의 철학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주인공의 관은 무덤구덩이의 중앙에 없었다. 무덤방의 중앙은 거의 비어 있었고, 무덤의 관은 무덤의 우측에 무덤방 동쪽에 치우쳐서 놓여 있었다.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보면 무덤구덩이를 파고 나무로 관과 곽을 만드는 작업은 엄청난 작업이다. 요즘도 건물을 지으면 지하를 파는 토목작업이 가장 힘든 작업중에 하나라고 하는데… 무덤 속의 빈 공간을 처음부터 계획해서 남겨두었다…무덤 속의 다른 유물로 가득 차 있지 않은 것 만큼 의미심장하다.스키타이문화의 무덤에는 대부분 빈공간이 있다..

 

어쨌든 사람들은 유물이 꽉 차거나, 화려하거나, 혹은 특이한 것에 혹한다.

얼음공주라는 별칭이 붙은 여성미라도 특별한 존재이다. 필자는 미라의 의미를 앞에서 계속 설명한 시베리아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순동시대까지 설명한 인간형상물과 같은 의미 일 꺼라고 생각한다. 순동기시대 까지 뿔로 제작되던 인간형상물을 스키타이문화에서는 사자를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죽음의 의미는 가볍지 않은 듯 하다. 그 의미는 우리 내 역사의 DNA에 남아 있다. 반드시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통나무 관의 뚜껑이 열리고 얼음이 녹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미라의 머리였다. 

얼음공주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제작되었다. 가장 상태가 좋지 않은 부분은 머리, 가슴과 복부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그림 4). 가장 복잡하고 처리하기 힘든 부분은 머리이다. 얼굴 피부는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오른쪽 턱 아래에만 남아 있다. 머리 뒤에는 4~5CM가량의 구멍이 있는데(그림 3), 구멍은 울퉁불퉁하게 남아 있는데, 뇌수를 빼내기 위한 구멍이다. 고병리학자가 두개골의 안쪽을 검사한 결과 뇌수를 빼기 위해서 금속제 도구를 써서 긁어낸 흔적이 없었다. 칼 대신에 숟가락과 같은 도구를 써서 꺼냈을 것이다.

 

그림 1. 통나무 관 안의 얼음공주, 얼굴의 피부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림 2.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 노보시베리스크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연구소 필자촬영 2009

 

그림 3.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의 여성 미라 두개골의 뒷모습

 

그림 4. 아크 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 미라, 머리 뿐만 아니라 복부와 가슴도 상태가 좋지 않다.

제가 이 무덤을 소개 할 때 나무로 뒤덮혀 있다고 했는데, 나무방, 나무관, 말장식도 나무로 제작해서 금박을 뒤집어 씌운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라의 속을 채운 것도 식물섬유질, 일종의 구근류 등을 채워 넣었다. 구강, 코와 귀로 이어지는 비강과 이강에는 흙에 자잘한 모래와 식물섬유질, 잡초 등을 섞은 것으로 채워넣었다. 목 부분의 기관과 구강내의 부드로운 조직들은 목을 수평으로 절개해서 완전히 제거되었다. 그 자른 부분에 충전물을 채워 넣었다(그림 5).

 

고병리학자들은 두개골과 경골일부는 척추에서 완전히 분리되어서 따로 방부처리되었고, 매장전까지 따로 분리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 제시되었다.

 

그림 5.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 여성미라의 두개골, 얼굴피부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머리속에는 풀 등 다른 식물성 유기물질로 가득채워져 있다.

 

그래도 이 공주의 얼굴은 발견되었을 때 이미 거의 녹아내렸다. 미라처리기술에도 불구하고, 매장까지 오랜기간 걸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 앞에서 필자가 찍은 아크 알라하 3유적 1호분과 관련된 사진은 모두 2009년에 촬영되었다. 정정한다.

 

 

참고문헌

https://scfh.ru/papers/put-k-nebesnym-pastbishcham/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안토노바 1986, К исследованию места сосудов в картине мира древних земледельцев. – Вост. Туркестан и Ср.Азия в системе культур древнего и средневекового Востока. М.,1986, с.35-65(안토노바 1986, 고대 농경인 세계에서 토기의 위상에 대한 연구// 고대와 중세시대 문화시스템에서의 동투르키스탄과 중앙아시아)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투르크-몽골 계통의 민족들에게는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특별한 그릇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적인 그릇에 특별한 음식과 음료를 담았다고 한다. 야쿠트인들은 신에게 거대한 가죽조끼, 목제 잔, 우유를 담은 그릇, 쿠미스와 버터를 받친다고 한다. 알타이의 카미족에게도 특별한 제기는 없다고 한다. 삶은 고기를 평소에 사용하는 목제 장반과 잔으로 국물을 마신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2500년 전 알타이 산의 우코크 고원에서는 특별한 미라와 공간은 있지만, 음식물을 뻑쩍하게 공헌하는 의식은 없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

 

2500년 전, 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산맥에위치한 파지릭문화의 고분 중에 한 곳인 아크-알라하 3유적의 1호분에는 나무방 안에 통나무 관이 안치되었다. 나무방 안에는 통나무 관을 안치하고 빈 공간은 생활공간으로 생각된다. 그 곳에는 고기 덩어리가 놓여 있던 목제 쟁반, 목제 잔, 뿔잔, 토기 3점이 있었다. 말 6섯 마리와 61cm가발을 쓴 시신을 미라로 처리해서 넣은 무덤 치고는 매우 소략하다. 대신해서 토제, 목제, 뿔제 등 여러 소재로 제작되었다. 금속기로 만든 그릇은 없었다. 대신 칼이 있다.

 

아크 알라하 3유적 뿐만 아니라 알타이 산맥의 파지릭 고분에서 발견된 그릇은 대부분 몇 차럐 수선한 흔적이 남아 있다.

목제쟁반(그림 1) 위에는 고기 덩어리가 놓여 있었는데, 얼음이 녹으면서 그 주변에는 유독 갈색으로 변해졌는데, 냄새도 났고, 마치 고기 국물처럼 변했다. 목제 쟁반 아래에 손잡이가 둥근 철제 칼(그림 2)이 놓여 있었다.

 

그림 1. 목제 쟁반(목제 쟁반은 다리가 잘린 채 확인되었고, 다리는 같은 유적의 다른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2. 목제 쟁반 아래서 발견된 칼의 손잡이

나무방 바닥에는 깨진 토기(그림 3,4)가 확인되었는데, 목이 긴 ‘장경호’ 3점이 확인되었다. 2점은 구경(입술부위)에 점토띠가 붙고, 어깨 부위에도 2줄의 점토띠가 붙었다. 다른 1점은 역시 목이 긴 장경호인데, 수탉모양의 아플리케가 붙어 있었다.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토기에 가죽 아플리케(그림 5)를 붙인 것이다.

손잡이가 달린 뿔로 만든 그릇이 확인되었는데, 야크의 뿔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야크 털도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알타이 산맥에서 고분을 만들었던 파지릭 문화의 사람들은 야크라는 동물을 특별한 존재로 여겼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러시아 학자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 대해서 다른 생각인데….야크는 고산에 사는 일종의 소인데, 쉽게 검색가능하다. 에르미타주의 표트르 콜렉션에는 같은 형태의 뿔 잔이 금박이 입혀져서 발견되었다.

그림 3. 토기, 입술부위에 점토띠가 부착되어 있다.
그림 4. 토기, 수탉 모양 아플리케가 부착됨
그림 5. 그림 4에 붙은 가죽 아플리케

목제 잔과 막대기가 세트(그림 6)로 확인되었다. 유제품(쿠미스)을 젓고 마시던 잔으로 추측된다. 목제 잔의 손잡이는 표범 두 마리가 서로 머리를 맛대고 부착되었고, 36cm가량의 막대기 끝에는 ‘U’자형으로 따로 제작되어서 막대기와 축조되어 끼우게 되어 있었다.

유목민들에게 표범은 신, 조상, 저승의 세계를 상징한다고 한다(안토노바 1986)

그림 6. 목제 막대기와 목제 잔, 손잡이가 표범 장식이다.

 

 

 

참고문헌

폴로스막 2001, Полосьмак Н.В. Всадники Укока. —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пресс, 2001. — 336 с.(우코크의 말타는 전사들) 이 책은 2016년에 한국어로 출판되었다. N.V.폴로스막 2016,『알타이 초원의 기마인』

안토노바 1986, К исследованию места сосудов в картине мира древних земледельцев. – Вост. Туркестан и Ср.Азия в системе культур древнего и средневекового Востока. М.,1986, с.35-65(안토노바 1986, 고대 농경인 세계에서 토기의 위상에 대한 연구// 고대와 중세시대 문화시스템에서의 동투르키스탄과 중앙아시아)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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