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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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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30. 13:16 스키타이 동물장식

 

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동물의 몸통을 채우는 문양요소로 소용돌이 혹은 나선문양 등 ‘동그라미’를 기본으로 하는 문양이 있다는 점을 앞서 설명했다. 동물의 종에 관련이 없으며 기원전 7세기부터 발견된다. 연대에 따라서 소재의 차이는 있다.

기원전 7세기에는 알타이 보다 약간 북쪽에 위치한 투바의 아르잔-2호에서 금속제 장식에서 확인된다.

 

그림 1. 아르잔-2호의 주인공 5호묘 여성의 목걸이

 

그런데 흑해 지역 가운데의 북쪽해안가(현재의 우크라이나 국경)로 흘러가는 드네프라강 유역과 우측 해안가로 흘러가는 쿠반 강 유역(현재 러시아 국경)에서도 ‘둥근’문양의 요소가 동물문양에서 감지된다. 물론 시베리아의 소용돌이 문양과는 다르지만 ‘S’자형 혹은‘C’자형에 가까운 사슴의 뿔장식이다. 예를 들면 쿠반강 유역에 위치한 기원전 7세기 유적인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에서 출토된 사슴(그림 4)과 켈레르메스 유적의 화살통 장식에 표현된 사슴이다.

반면에 드네프르 강 유역의 기원전 7세기 블라드미르스코이 예카노프 유적(그림 2), 다리예프카 유적에서 나온 사슴뿔은 매우 조잡하다(그림 3).

 

 

그림 2. 블라디미르스코이 예카노프 유적(일린스카야 1975)

 

그림 3. 다리예프카 유적

 

코스트롬스카야 유적 사슴장식-->

2020/08/09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코스트롬스카야 유적] - 기원전 8~7세기 흑해 스키타이의 무기

 

기원전 8~7세기 흑해 스키타이의 무기

흑해의 스키타이 문화 유적에서 공격용무기인 전투용 도끼, 단검(아키나케스) 등은 기원전 8~7세기부터 있었고, 켈레르메스 유적, 멜구노프 유적에서 직접 볼 수 있다.  청동 화살(그림 1)도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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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코스트롬스카야 유적의 사슴장식

 

두 지역의 사슴은 스타일로 보아서는 거의 비슷하지만 그 결과물은 매우 다르다. 물론 모든 드네프르강 유역의 유물이 쿠반 강 유역보다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며, 사슴에 국한해서 볼 때 그렇다.

흑해 지역의 사슴에 표현된 ‘둥근’문양요소로 볼 수 있는 사슴동물장식에 국한 한다면, 이 지역에서는 ‘둥근’문양요소는 쿠반강 유역에서 좀 더 잘 유행했을 것이다. 좀 더 다양한 증거를 보강한다면 흑해지역은 쿠반강 유역이 드네프르 강보다는  동물장식을 더 잘 이용했을 것이고 문화의 중심지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두 지역에서는 각각의 개별적인 문화 중심지가 있었고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단계 혹은 시기가 있었고 그 과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슴문양이 ‘보편적’유행에 적당한 이유는 스키타이 문화 이전부터 사용되었을 것이 때문이다.

 

참고문헌

 

Ильинская В.А. 1975 : Раннескифские курганы бассейна р. Тясмин (VII-VI вв. до н.э.). Киев: «Наукова думка». 1975(일린스카야 1975 기원전 7~6세기 탸스민 강 유역의 초기 스키타이 쿠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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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 29. 13:18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4세기 흑해의 쿠반 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사자머리 그리핀은 기원전 7세기의 켈레르메스 유물과 비교했을 때 원칙적으로 연관되는 부분도 있고 변형되는 것도 있다.

 

그림 1의 예를 둘어 보면 입을 벌리고 있고, 귀가 붙은 점은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은제 거울이나 청동 간두령에 붙은 그리핀과 유사하다. 그러나 입이 더 벌어지고 재갈멈치로 용도가 변경되면서 앞발과 함께 몸통이 붙은 것이다.

 

2021/01/06 - [스키타이 동물장식] - 독수리머리 그리핀

 

독수리머리 그리핀

독수리머리 그리핀 독수리머리 그리핀은 귀, 목, 부리로 구분해서 살펴 볼 수 있다. 귀는 조류의 특징이 아니지만 독수리머리 그리핀이라고 불리는 유물에는 하늘로 솟은 귀가 있으며, 긴 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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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투즐라 네크로폴리스(쿠반 강 유역) 출토

 

이들 유물은 아케메니드 유형의 사자머리 그리핀으로 여겨진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그림 1과 비교한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유적의 유물로 인해서 그리스 문화로부터 동물문양이 스키타이 문화에 생기게 되었다는 의견이 있지만, 그리스의 유물이 더 늦다기 때문에 이는 모순이라고 이미 포스팅했다. 이 유적의 거울은 알렉세예프(2012)도 카프카스 남쪽의 아나톨리 지역에 있었던 우라르트에서 제작했을 가능성도 지적한 바 있다. 만약 기원전 4세기 쿠반강 유역의 유물이 아케메니드 왕조의 유물을 변형한 것이라면 문화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기원전 7세기의 유물도 아나톨리 및 서아시아지역에 있던 한 국가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더 커진 것이다. )

 

기원전 5세기 이후 쿠반강 유역의 동물문양장식은 매우 도식화, 추상화 혹은 스타일화 되었다(좋은 말로 그렇고 솔직히 어떤 동물인지 구분이 안가도록 뭉그러뜨리게 만들었다. 더 이상 동물문양에 의미를 두지 않는 느낌이기도 하다). 눈이 매우 크고 둥글어 머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입 모양이 벌어져서 눈과 맞닿아 있다. 도식화된 동물장식은 간두령(그림 2)장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림 2. 체르토믈리크 유적 출토 간두령장식

 

그림 1의 유물은 이란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잘 알려졌고, 페레보드치코바는 이란의 유물표현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시기의 쿠반 강 유역(흑해의 동북해안가?)의 유물은 흑해 북안의 유물과는 구분된다.

 

참고문헌

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 : Scythian Art. The Legacy of the Scythian World: mid-7th to 3rd century B.C. Leningrad: Aurora Art Publishers. 1986. 184 p.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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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 28. 13:38 스키타이 동물장식

 

엘리자베틴스키(Елизаветовские курганы, Elizabeth mounds) 유적은 기원전 5세기 흑해지역의 대표적인 유적 중에 한 곳으로 쿠반 강 중류역에 위치한다. 쿠반 강은 흑해로 흘러가는 유적이다. 쿠반 강 하류의 세미브라트노예 유적과는 다른 동물문양장식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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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와 그 인접한 지역은 여러 국가가 마주보고 있는 지역인데, 한때 같은 국가였지만 현재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함께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러시아는 코카서스 산맥과 산맥을 따라 흐르는 쿠반 강도 점하고 있다. 코카서스 남쪽도 해안가를 따라서 러시아 국경이 일부 있는데, 동계 올림픽이 열린 소치 부근까지가 딱 러시아 땅이다. 아조프 해에서 흑해까지 우측 해안가를 러시아가 점하고 있는 것이다. 스키타이 고분이 집중 분포하는 드네프르강 유역은 우크라이나 영역이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세미브라트노예 유적에서 발견된 동물문양장식은 스키타이 동물문양 뿐만 아니라 그리스장인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문양도 많이 발견되었다. 물론 엘리자베틴스키 유적에서도 그리스 전통의 토기 등이 발견되지만, 세미브라트노예와는 전혀 다른 동물장식이 발견되었다. 이 유적도 역시 20세기 초반(1912~1917년) 벨로프스키가 발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덤의 구조는 드레프르 강 하류의 무덤과는 다르다고 알려졌다. 무덤 지하에 집과 같은 구조(예를 들면 톨스타야 마길라, 체르토믈리크 유적)가 없으며 넓은 구덩이 형태라고 알려졌다. 무덤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무덤의 도면은 전해지지 않는다. 흑해지역의 유적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인 기원전 4세기로 알려져 있다.

 

체르토믈리크 무덤구조-->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tistory.com)

 

흑해 스키타이 무덤에서 나온 아킬레스

흑해 북안의 드네프르 강 유역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유적인 체르톰리크 무덤은 매우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중심무덤방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방 옆에 또 다른 방 들이 만들어진 구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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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타야 마길라-->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 기원전 4세기 흑해 스키타이 무덤(feat. 여신의 무덤) (tistory.com)

 

기원전 4세기 흑해 스키타이 무덤(feat. 여신의 무덤)

전설 속의 여신인 듯한 인물과 그리핀이 함께 표현된 금판은 침발카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말의 얼굴 가리개에 부착된 것이다. 스키타이 인들이 주문해서 그리스에서 제작된 유물이다. 출토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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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적에서 잘 알려진 청동유물은 맹수 머리와 목을 늘려서 반복해서 표현하는 것이다(그림 1,2). 이미 몸을 늘린 사자 재갈멈치를 보여 드린 바 있는데(그림 3), 세미브라트노예 유적에서 나온 재갈멈치와 비교해 볼 때(그림 4), 납작하게 표현되었다. 사실 사자라고 했으나, 날개까지 달린 그리핀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그림 2는 단순히 맹수머리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동물의 몸통 상반부를 잘라서 이어 붙인다는 점에서 같다.

 

그림 1. 엘리자베틴스키 유적, 사자머리라고 알려져 있으나 매우 의심스럽다. 함께 출토된 재갈멈치(그림 3) 덕분에 사자로 인식하게 된 듯하다. 

 

그림 2. 엘리자베틴스키 유적 2

 

그림 3. 엘리자베틴스키 유적 3

 

그림 4. 세미브라트노예 유적

 

흑해지역에서는 알타이와는 다르게 전통이 유지되는 현상이 발견된다고 했다. 알타이에서는 동물의 종에 관계없이 채워지는 문양이 계속 유지되고, 흑해에서는 동물의 자세가 지속된다고 했다. 그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몸을 늘린듯한 재갈멈치는 알타이에서 영향을 받은 것(일린스카야 1971)이라는 의견은 동의할 수밖에 없다.

 

몸을 늘린듯한 맹수가 세미브라트노예 유물와 같이 매우 볼륨감 있게 표현되기도 했지만 엘리자베틴스키 유적의 유물과 같이 납작하게 제작되기도 했다. 필자는 엘리자베틴스키 유적의 유물 가운데 청동유물은 스키타이 장인들이 제작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 : Scythian Art. The Legacy of the Scythian World: mid-7th to 3rd century B.C. Leningrad: Aurora Art Publishers. 1986. 184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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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 27. 13:07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 타이 동물장식에서 몸통을 채우는 나선형과 소용돌이 문양은 동물 種에 구분 없이 사용되며, 기원전 7세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해서 기원전 5세기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동물에 구분없이 몸통을 채우는 문양은 일종의 기호로서 작동했을 수 있다고 했다.

기원저너 5세기 시베리아에서 문양의 전통으로 특정 문양이 계속 사용된 것이 확인된다면 비슷한 시점에 흑해에서는 기원전 7세기 문양을 복원한 정황이 있다고 했다(일린스카야 1971).

예를 들면 다리를 뻗은 맹수 장식과 같은 것이다. 기원전 7세기때 유행하던 동물장식이 다시 등장하는 것이다.

 

두 지역에서 기원전 5세기 경에 기원전 7세기 요소가 되풀이 된다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사실 다르다. 알타이에서 나타난 기원전 5세기 나선문양 혹은 소용돌이 문양은 기원전 7세기 아르잔-2호 재갈멈치의 끝에 달린 독수리의 귀 장식 및 주인공 여성의 목걸이 등에서 처음 발견되었고, 바샤다르 유적의 통나무관에 이어서 기원전 5세기 파지리크 유적의 2호, 5호 동물문양 뿐만 아니라 이 보다 늦은 기원전 4~3세기의 3호, 4호 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흑해의 동물장식은 특정 동물의 특정화 된 자세가 되풀이 되는 것이다. 서 있는 맹수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일린스카야는 그리스인이 기원전 7세기 스키타이 문양을 복원했다고 보았다. 그리스인에게 주문제작 한 결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전 7세기 켈레르메스 투부(아래포스팅그림참고)는 고대 이란 지역의 어느 국가에서 제작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들 유물에는 동물표면을 특정한 방법으로 채우고 있는데, 동물의 종에 관계없이 채워지고, 이를 ‘스타일 인용’이라고 표현했다. 이를 페레보드치코바는 스키타이 문양에도 적용한 것이다.

2021/01/11 - [스키타이 동물장식] - 스키타이 동물장식의 시작은...

 

스키타이 동물장식의 시작은...

흑해 지역의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나온 은제 거울과 함께 출토된 투부는 스키타이 문화의 요소 보다는 이웃한 서아시아 지역의 영향을 받은 것이아. 아르타모노프(1961)는 투부에 표현된 동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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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흑해 지역에서 스타일 인용은 동물의 몸통을 채우는 문양보다는 자세로 이뤄지는데 이 점이 시베리아와 다르다. 이 지역의 동물의 몸통(그림 1)은 견갑골과 대퇴부를 강조한 표현으로 좀 더 사실적인 방법을 채택하기 때문이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의 표범장식

 

그림 2. 세미브라트노예 유적 출토 철검과 검집

 

그런데 흑해지역에서 일어난 기원전 5세기 복고적인 방법(그림 2)은 세미브라트노예 유적과 같은 유적에서 발견된다. 이 시점에는 엘리자베틴스키 유적에서는 또 다른 스키타이 유물이 발견된다. 납작한 청동판에 동물문양을 음각(그림 3)한 것이다. 세미르라트노예 유물이 그리스 장인이 생산한 스키타이 유물이라면 청동판에 음각한 유물은 스키타이 인이 제작했을 수 있다.

 

그림 3. 엘리자베틴스키 유적 출토 재갈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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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지역의 동물을 표현하는 방법 사실적이면서 근육을 강조한 방법은 사실 시베리아인 아르잔-2호에서도 확인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곳에서는 나선형문양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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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Ильинская В. А. 1971, Образ кошачьего хищника в раннескифском искусстве.—€А . 1971, No 2. (일린스카야 1971, 초기 스키타이문화의 맹수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 26. 13:27 카테고리 없음

 

기원전 5세기 알타이에서 발견된 동물문양장식은 통을 채우는 문양은 동물의 種에 따라서 비슷하지만 동물의 종에 따라서 동물의 ‘자세’는 공통성과 차이가 발견된다.

 

맹수나 굽동물 자세가운데 몸을 뒤틀고 있는 유물이 파지리크 유적 5호분에서 발견되었다(그림 1). 필자는 앞서 이 유물을 머리와 꼬리가 맞대어 있어서 원형의 맹수장식이 변형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몸을 비틀어서 머리와 꼬리를 맞대는 장식이다.

 

그림 1. 파지리크 유적 5호분

 

굽동물에도 몸을 뒤트는 자세(그림 2)는 맹수와 공통적이라고 페레보드치코바는 설명했으나, 그림 3의 굽동물의 예를 볼 때 필자는 약간 생각이 다르다. 중요한지 아닌지는 아직까지는 알 수 없다.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5호분의 안장 앞머리 장식 부분

 

그림 3. 파지리크 유적 3호분

 

 

  몸을 꼬는 자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굽동물과 맹수는 자세가 구분된다. 대부분의 굽 동물은 다리를 배쪽으로 접어 넣은 자세가 대부분이다. 앞다리를 굽히고 뒷다리는 뻗은 자세 ‘하늘을 나는 듯한’(루덴코 1960) 모습도 발견된다. 반면에 맹수는 직각으로 굽혀서 앞으로 다리를 뻗고 있다.

  사실 몸을 뒤트는 자세는 자연스럽지 못하고 변형을 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스러운 자세는 맹수는 다리를 앞으로 뻗고 굽동물은 다리를 안으로 접어 넣은 것이다.

   몸통을 꼬는 자세가 주로 발견되는 것은 맹수와 굽동물이 함께 표현되는 동물문양에서 확인되고, 맹수와 굽동물이 확연하게 다른 자세를 취하는 경우는 대부분 단독으로 표현될 때이다. 

  두 동물이 등장할 때 반드시 공격하는 장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파지리크 유적에서는 하나의 동물 머리가 포식자의 입속에 들어가 있는 구도(그림 4)도 발견된다.

 

그림 4. 파지리크 유적 2호분, 남성 모자의 장식

 

동물의 종의 구분없이 몸통을 채우는 문양이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것도 있다. 보존되고 계속된다. 동물의 종 구분에 따라서 자세는 구분되지만, 굽동물과 맹수의 정형화 된 자세와 동물의 구도 등 거의 변동없이 지속된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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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 25. 13:10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6~5세기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동물문양에는 나선문과 이와는 약간 다른 소용돌이 문양이 채워져 있다. 바샤다르 유적의 통나무관에 새겨진 동물문양 뿐만 아니라 파지리크 유적의 아플리케 장식, 말의 굴레 장식 등 다양하다. 전자는 평면적이고 후자는 입체적이다.

 

같은 문양이 동물의 종의 구분 없이 반복되는 현상은 만든이가 의도적으로 계획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주로 동물의 몸통 세부표현 혹은 표면을 채우는데 사용되었다. 문양은 네가티브한 방법으로 표현된 것이다. 스키타이 시기의 파지리크 문화 동물문양은 문양의 형태도 중요하지만 동물의 몸통을 그 문양으로 채우려고 했다는 점이다. 스키타이 이전의 동물문양은 청동기시대 암각화 그림에서 발견된 것은 그렇지 않은 것이 많다. 사슴돌의 사슴도 변형되었지만 몸통 자체를 음각으로 처리했다.

 

그림 1. 알타이의 유적에서 발견된 동물문양

 

그림 2. 바댜사르 유적의 통나무관

 

그림 3. 파지리크 유적 4호 굴레장식

 

그림 4. 파지리크 유적 2호 안장덮개

 

루덴코는 파지리크 유적에서 출토된 동물문양은 사슴, 맹수 및 환상의 동물의 몸체에 소용돌이 문양이 표현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또는 엉덩이 부위에는 ‘(●)’이 반복된다는 사실도 지적했다(루덴코 1960). 일정한 규칙이 확인된 것이고 이를 동물문양‘스타일’이라고 했다.

 

페레보드치코바는 루덴코(1960)의 의견에 동의하고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일종의 기호체계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흑해의 켈레르메스 투부의 동물문양도 문양의 종류는 다르지만 동물의 종과 관련없이 비슷한 문양이 반복되는데, 이 점도 같은 현상으로 보았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필자는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두 동물이 등장하더라도 포식자가 먹이감을 공격하는 장면과 두 동물이 대립하는 장면은 기원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래의 두 가지 관점은 루덴코와 페레보드치코바의 생각을 여러 유물에 대입해서 내린 결과이다.

파지리크 유적의 안정덮개 장식 가운데 그리핀으로 변형된 독수리가 굽동물을 공격하는 장면은 장면은 외부에서 들어왔을 수 있다. 그러나 동물을 채우고 있는 문양은 알타이에서 파지리크 유적 보다 오래된 바샤다르 유적에서 발견되었고, 이 보다 더 오래된 아르잔-2 유적에서도 유행했던 문양이다. 문양은 채용했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기호체계는 알타이 전통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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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전통문양(혹은 기호)를 채우기 위해서는 부드러운 소재가 좋다. 가죽, 펠트, 나무일경우에는 평면이나 입체적이거나 모두 표현될 수 있지만 금속제품은 사용하기 힘들다. 단 기원전 6세기~5세기 이후에 그렇다. 바샤다르 유적 이전에는 상황이 좀 다르다.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0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Централь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60. 360 (루덴코 1960, 스키타이 문화시기의 중부알타이 산맥의 주민문화)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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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2021. 1. 24. 13:39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 경에 고대 이란의 아케메니드 왕조의 페르세폴리스가 축조되는 사건은 아이러니하지만 스키타이 문화의 동물문양이 널리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페르세폴리스를 자국의 장인 뿐만 아니라 인접한 국가의 장인을 모두 모아서 만든 결과였다. 그리고 알타이에도 서아시아 지역의 동물문양들이 발견되었다.

루덴코는 파지리크 유적의 동물문양장식 가운데 일부 등에서 그러한 흔적을 발견했다. 하지만 루덴코는 알타이의 문양이 앗시리아 보다 이전 문양(루덴코 1961)이라고 했지만 이는 페레보드치코바의 의견과는 약간 다르다(페레보드치코바 1994). 아케메니드 왕조때 와서 미누신스크 분지, 알타이, 중앙아시아에서 이 왕조에서 사용된 동물문양이 퍼졌다고 보았다.

그녀는 이때 동물투쟁문양 가운데 원근법도 페르시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았으나, 필자는 다른 생각이다.

 

그림 1. 사자가 굽동물을 공격하는 장면, 각배의 장식판(오른쪽)과 용(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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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투쟁문양은 페르시아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이 맹수가 포식자를 공격하는 장면과 맹수와 포식자가 서로를 물어뜯는 장면으로 구분된다. 페르시아에서 발견된 맹수공격장면은 두 동물이 사실적인 표현으로 변형되지 않았다.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의 유물과 파지리크에서 발견된 맹수공격장면의 맹수는 변형된 것이다. 동물문양은 사실적인 것에 원칙을 두고 그 뒤에 변형이 일어나는 것임으로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것이 더 늦다. 반면에 두 동물이 물어 뜯는 장면은 사실적인 것이 알타이에서 발견되어서 이곳에서 시작되었을 수 있다.

 

그림 2. 파지리크 2호 출토 안장덮개 장식 중

 

페르세폴리스가 축조되던 시점인 기원전 5세기는 가장 높은 곳인 알타이 지역에서 스키타이문화가 나타난다. 기후변화를 다룬 논문(B. van Geel 외 2004)에서 가장 습윤한 시점을 2500B.P.(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기원전 5세기)라고 했는데, 이때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3 유적 등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 습윤도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유럽도 매우 습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이 시작된 시점은 기원전 1천년기 초(기원전 10세기 가량)부터 습한 기운이 형성되었는데, 탄소연대 측정의 결과 태양활동이 감소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유럽의 기후변화는 습지 퇴적물에도 기록되었는데, 볼가 북부 지역에는 매우 급하게 홍수가 일어났고 동유럽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졌다((B. van Geel 외 2004).

 

루덴코(1961)과 페레보드치코바(1994)의견은 둘 다 맞을 수 있는데, 시베리아에서 서아시아의 문화가 나타나게 된 원인이 달랐을 수 있다.

 

 

참고문헌

 

B. van Geel, N.A. Bokovenkob, N.D. Burova, K.V. Chugunov, V.A. Dergachev, V.G. Dirksen, M. Kulkova, A. Nagler, H. Parzinger, J. van der Plicht, S.S. Vasiliev, G.I. Zaitseva, 2004, The sun, climate change and the expansion of the Scythian culture after 850 BC, Impact of the Environment on Human Migration in Eurasia, 151-158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중반의 알타이와 서아시아의 문화비교)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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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23. 13:12 스키타이 동물장식

 

기원전 5세기의 흑해 지역의 동물장식 가운데 다리를 뻗고 있는 동물상이나 몸을 늘린 사자가 장식된 재갈멈치 등은 알타이에서 매우 유행했던 것으로 알타이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알타이에서도 그리스와 서아시아 지역의 영향을 받았다는 의견이 있다. 알타이는 아니지만 이미 아르잔-1호에서도 서아시아의 카펫이나 의복이 발견된 적이 있기 때문에 억지 주장은 아니다.

기원전 5세기 알타이에서 그리스와 서아시아의 영향을 연구한 사람은 Azarpay(1959)이다. 그가 근거로 삼은 유물은 동물투쟁문양과 머리만 따로 만들어진 동물상이다.

하지만 머리만 따로 만들어진 것은 이미 스키타이 동물양식의 이른시기에 등장했고 동물양식의 원칙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 페레보드치코바는 반박했다(1994).

  또 이미 포스팅한 바와 같이 동물투쟁문양은 두 종류가 있다. 서아시아지역에서와 같이 맹수만 굽동물을 공격하는 장면이 있고(그림 1), 두 동물이 서로를 물어 뜯는 장면 2개가 존재한다. 둘은 서로 다른 기원일 가능성이 있다.

 

 

 

그림 1. 맹수가 굽동물을 공격하는 장면, a-페르세폴리스, b-켈레르메스 유적, c-쿨 오바, d-표트르 1세, d-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 e-세미브라트노예 유적, f-파지리크 유적 2호 출토품

 

아자피(1959)는 피지리크 유물에서 그리스 유물의 속성을 분리했는데, 벼슬이 있는 독수리 머리 그리핀이 대상이다. 그는 그리스의 영향이 페르시아를 통해서 알타이까지 전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다리야 퇴장유적에서 발견된 얼굴표현물이 근거이다. 하지만 루덴코(1953)는 이 독수리 머리 그리핀을 앗시리아의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정작 앗시리아 그리핀에는 이빨처럼 생긴 벼슬이 없다.

 

그런데 루덴코(1961)는 그 후에 자신의 생각을 바꾼다. 알타이에서 발견된 동물양식이 아케메니드의 영향이 아니라 더 고대 서아시아(기원전 8세기경의 현재 아제르바이잔 지역에 있었던 국가 및 기원전 9~8세기경 메디아)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알타이에서 발견된 아플리케 장식에서 앗시리아 보다 더 오래된 문양의 특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림 2. 알타이에서 발견된 박트리안 사슴 (Бухарский олень,Bactrian deer)장식, 은제품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1 : Искусство Алтая и Передней Азии (середина I тысячелетия до н.э.). М.: 1961. 68 с(루덴코 1961, 기원전 일천년기 중반의 알타이와 서아시아의 문화비교)

Azarpay G. Some Classical and Near Eastern motivs in the Art of Pazyryk. — Artibus Asie. 1959, vol. 22, №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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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지역 가운데 쿠반강 유역의 고분 중에 하나인 세미브라트노예(일곱형제 라는 의미이다) 유적에서는 기원전 7세기의 유물을 복원? 혹은 재현한 표범장식이 발견되었다. 뿐만 아니라 몸을 길게 늘이고 있는 사자장식이 있는 재갈멈치(그림 6)가 확인된 유적이다.

 

 

이 지역은 높은 산(카프카스 산, 해발 3000m)과 강(쿠반) 및 동유럽 대초원이 함께 복합된 곳이어서 정치적 상황도 복잡하다. 쿠반 강 유역의 기원전 5~4세기 유물은 세미브라트노예 출토품과 엘레자베틴스키 유적에서 나온 유물로 구분되어 살펴 볼 필요가 있다(이 부분은 나중에..).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표범 장식이 발견된 유물은 철검을 싸고 있는 겁집 장식이다. 다리를 펴고 있는 표범이 수직으로 장식되었고, 검날멈추개와 마주보는 곳에는 산양 두 마리가 머리와 꼬리를 대고 있는 장면이다. 두 마리 동물이 서로 마주보는 방법은 기원전 7세기에는 눈과 다리가 마주보고 있었으나 이 유물에서는 반대이다.

 

그림 1. 세미브라트노예 유적 출토 철검과 검집

 

이 외에도 반인반수상(그림 2-3,4)과 날개 달린 수탉(그림 2-1,2) 장식도 발견되었다. 그 외에도 황소(그림 3-4), 산양(그림 3-2), 반인반수(그림 3-3)도 발견되었다.

 

그림 2. 세미브라트노예 유적 출토 동물장식

 

그림 3. 세미브라트노예 유적 출토 동물장식(2~4), 1은 슈메이코 유적 출토

 

유적은 쿠반강 하류에 위치한 강안 대지에 위치한다. 라즈노콜 마을 부근이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7개의 무덤이 일렬로 서 있다. 무덤의 높이는 3,2m에서 높은 것은 18m에 달한다. 가장 높은 봉분이 있는 무덤 2호(18m)는 돌로 무덤방을 쌓았고 그 내부에는 13마리의 말이 2열로 배치되었다. 매장주체부는 무덤방의 한쪽 구석?을 차지했다(그림 4). 그는 갑옷을 입 은채 묻혔다. 갑옷의 가슴판에는 목을 돌린 사슴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날개를 편 새장식이 있었다(그림 5).

 

그림 4. 세미브라트노예 2호 무덤의 내부

 

그림 5. 세미브라트노예 2호 주인공의 갑옷 가슴장식

 

뿐만 아니라 이 유적에서는 몸을 늘린 사자 모양의 재갈멈치와 몸을 말고 있는 사자 장식도 발견되었다.

 

그림 6. 세미브라트노예 유적의 원판형 동물장식과 재갈멈치

 

기원전 5세기는 흑해 지역에서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혹은 그리스 장인의 공방에서 제작된 유물이 많이 발견된다. 그리스 유물이 대단히 많이 출토되는 님프 유적과 유사한 유물이 많이 발견된다. 러시아 학자들은 이 유적에서 만들어진 유물들이 그리스 장인이 있던 공방에서 제작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알타이의 영향을 받은 재갈멈치(그림 6-2,3)도 그리스 장인이 제작했을 수도 있다. 그럼 그리스 장인들은 스키타이 유물을 재현한 것일까?

 

참고문헌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Piotrovsky B., Galanina L., Grach N. 1986 : Scythian Art. The Legacy of the Scythian World: mid-7th to 3rd century B.C. Leningrad: Aurora Art Publishers. 1986. 184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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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21. 12:41 스키타이 동물장식

원형의 범장식은 기원전 9세기 아르잔-1호에서 탄생했고 기원전 7세기에는 유라시아 초원의 각 지역(중앙아시아, 흑해) 등지에서 발견된다. 물론 각 지역에 따라서 형태 및 제작방법은 차이가 있다. 범 장식이 변형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세기 알타이에서 부터이다. 몸을 S자형으로 변형시키고 날개만 달린 범 장식이 등장한다.

 

그런데 S자형으로 몸을 뒤틀고 있는 동물의 자세는 ‘동물투쟁문’이라고 불리는 문양에서 많이 사용된다. 금으로 제작된 벨트 장식으로 알려진 두 마리 동물의 투쟁문양은 기본적으로 S자형으로 몸을 틀고 있는 2마리 동물을 배치했다. 각각 수직과 수평으로 S를 세운 것이다. 그림 1은 날개와 산양의 뿔을 달고 있는 이미 변형이 심해진 그리핀이 굽동물의 등을 물어 뜯고 있는 장면이다.

 

그림 1.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 중

 

‘동물투쟁문’으로 알려진 또 다른 유물 가운데 두 동물은 서로가 서로를 물어 뜯는 장면이다(그림2). 이때 호랑이는 변형되지 않았고, 먹이가 되는 포식자가 오히려 변형된 뿔을 갈기처럼 달고 있다. 

 동물'투쟁'문양의 시작은 필자는 바샤다르 유적의 통나무관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알타이 카탄타 유적에서 발견된 목판에 새겨진 동물투쟁문양(그림 3)의 예로 보아서 표트르 1세가 모은 동물투쟁문양도 결국 알타이 부근에서 제작되었을 것이다.(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컬렉션은 1703년 시베리아 주지사였던 가가린이모아서 황제에게 보낸 유물로 정확한 출토위치를 모른다.) 그림2의 유물 외에도 대부분의 동물투쟁문은 두 동물이 서로의 목과 다리를 물어 뜯고 있는 장면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림 1의 유물은 '투쟁'에서 벗어난 유물이다. 맹수가 포식자를 공격하는 장면은  기원전 5세기 흑해지역(그림 4)에서 발견된다.  주로 사자가 사슴을 공격하는 장면이다. 그런 점에서 그림 2는 절충?이다.

 

그림 2.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황금 유물 컬렉션 중

 

그림 3. 알타이 카탄타 유적에서 발견된 목판

 

그림 2의 굽달린 동물은 동물의 종이 애매하지만 사실 사슴 혹을 엘크의 변형도 범 장식처럼 심하게 변형되었다. 시베리아에서 동물의 변형시켜서 만들기 시작한 것은 사슴이 더 먼저였다. 사슴돌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사슴류가 어떻게 변화되지도 큰 과제중에 하나이다.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사슴뿔 달린 말 가면도 결국 말을 살아 있는 변형동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만들었을 것이다. 미라의 문신에도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그림 4. 흑해 지역의 각배 장식판에 새겨진 맹수공격문양

 

 

참고문헌

Руденко С.И. 1962 : Сибирская коллекция Петра I. / САИ Д3-9. М.-Л.: 1962.(루덴코 1962, 표트르 1세 시베리아 콜렉션)

Артамонов М.И. 1973 : Сокровища саков. М.: 1973. 280 с.(아르타모노프 1973, 사카족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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