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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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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초기철기시대는 울란곰 문화라고 하는데 인접한 알타이 파지리크 문화와 공통점이 많다. 넓은 의미에서 스키타이 문화권에 속하는 각 지역문화이다.

파지리크 유적 보다는 추야강 계곡의 울란드리크 유적, 유스티드(XII, I) 유적, 졸린 유적 등과 더 비슷한데, 나무무덤방, 석관묘 등이 한 무덤에서 발견되는 점이 그러하다. 하지만 알타이 쪽의 무덤은 대부분 1명씩 피장되고, 각 무덤이 일렬로 배치된다. 하지만 몽골 울란곰 유적에서는 무덤방에 최대 9인이 들어가고, 무덤의 배치도 분산되어서 차이가 있다.

 

앞서 살펴본 울란곰 유적의 23호에서는 7인이 피장되어 있었는데 청동거울이 3점 발견되었다. III호 여성과 VI호, VII호 남녀 커플이 가지고 있었다. III호 여성은 화살통 옆에 청동거울이 발견되었고, VI호 남성은 오른손 끝에서 청동거울이 발견되었다. VII호 여성은 두개골 아래에서 청동거울과 나무잔이 함께 발견되었다.

 

그림 1. 울란곰 유적 23호 부장품. 1-목제 쟁반, 2-9: 삼익형(날개가 세 개 달린)청동화살촉, 10-청동송곳, 12-청동장식판, 13, 14, 18-청동거울, 15-17: 청동 단추, 19~21: 구멍이 있는 골제 장식판, 22-철제 투부, 23-철제 칼, 24, 25-철제 검, 26-32: 토제 항아리

 

남성이 가지고 있었던 청동거울은 다른 2점에 비해서 크고, 고리가 달린 것이다(그림 1-18). 이 무덤에 묻힌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항아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머리맡에 놓여진 것이었다. 그 중에서 1점은 기하학적인 문양이 잔뜩 새겨진 것이다(그림 1-28). 정확하게 누구의 것인지는 표시되지 않았다. 비슷한 표식이 시문된 토기가 다른 무덤에서도 발견된다. 하지만 토기의 형태는 다르다.

 

이 유적에서 단검은 대부분 청동제 이지만 철제로 제작된 것은 23호와 33호에서 발견되었다. 보존상태가 매우 불량하다.

 

몽골의 고분에서는 토기가 매우 드물게 발견되는데, 이 유적은 그들 보다는 토기 출토양이 많은 편이다. 대부분의 피장자는 자기의 항아리가 있었고 머리맡에 놓은 채 매장되었다.

 

알타이의 울란드리크 유적, 유스티드 유적과 마찬가지로 청동거울은 대부분 무문양이지만 간혹 거울의 뒷면에 동물문양이 음각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아르잔-2호, 파지리크 유적의 거울에서 볼 수 있듯이 거울의 뒷면에 꼭지가 붙은 형식은 이 유적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청동거울의 특징으로 만 보면 울란드리크 유적, 유스티드 유적은 어느 정도 유사한 점이 있다.

 

그림 2. 아르잔-2호의 5호묘 청동거울(김재윤 2021)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크 쿠르간)

Кубарев В.Д. 1992 : Курганы Сайлюгема. Новосибирск: 1992. 224 с.(쿠바레프, 1992, 사일류겜 고분)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추구노프, 파르친게르, 나게르 2017, 투바의 아르잔-2, 스키타이 차르 무덤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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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곰 유적에서는 스키타이시대의 무덤이 수십기 발견되었다. 나무로 무덤과 돌로 만든 무덤이 있다. 인접한 알타이 추야강 계곡의 울란드리크 유적, 유스티드 유적에서는 대부분 단인장 혹은 다인장이라고 해도 2인정도였지만, 몽골 무덤에서는 최대 9명이 한 무덤에 들어간 것이 발견되었다. 출토유물은 울란드리크 유적, 유스티드 유적과는 비슷하지만 차이점도 분명해 보인다.

 

울란곰 유적에서 나오는 유물가운데 청동거울은 보는 면이 아닌 뒷면에 음각으로 그림 그려진 것이 발견되었다. 이는 유스티드 유적에서 나오는 유물과 유사한 방법으로 그려진 것이다(그림 1-오른쪽)

 

 

그림 1. 울란드리크 유적(왼쪽)과 유스티드 유적의 청동거울(오른쪽), 어제 포스팅에서 보여 드렸던 그림설명은 잘못된 것이다. 알타이 문명전(국립중앙박물관 1995)를 참고로 한 것인데, 그 도록은 캡션이 잘못 된 것이 많다. 그래서 어제 필자가 그림 설명에 물음표를 달아 놓은 것이다.

 

 

알타이의 스키타이 문화의 청동거울은 손잡이만 아래에 달리고 문양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뒷면에 그림이 있거나 손잡이에 장식이 달린 경우가 있다. 그림 1의 예가 그런 유물이다. 왼쪽의 청동거울은 울란드리크 III유적의 1호 무덤에서 나온 것이다.

 

2020.10.1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울란드리크 강의 유적] - 알타이의 고대 도로와 유적

 

알타이의 고대 도로와 유적

 알타이에서 유스티드 계곡에 위치한 유적은 유스티드 강과 인접한 산이 만든 곳에 위치한다. 이 강은 추야강의 지류이다. 추야강은 알타이를 북서와 동남쪽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강으로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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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울란드리크 III유적의 1호분 출토유물

 

무덤배치도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는데, 투부 옆의 목제 장식아래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포스팅 참고). 쿠바레프는 이 유물에 달린 동물을 멧돼지라고 했다(쿠바레프 1987). 필자도 선명한 사진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나쳤다. 그런데 그림 1을 보면 멧돼지라고 할 수 없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멧돼지 문양은 울란드리크 유적보다 앞선 아르잔-2호나 바샤다르 유적에서 확인된 바 있다. 입주둥이가 길고 귀의 끝이 뾰족하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실제 멧돼지는 청동거울의 동물처럼 꼬리가 짧지 않다.

 

울란드리크 III유적의 1호분 청동거울은 오히려 곰에 가깝다. 필리포프카 유적과 솔로하 유적 등지에서 발견되는 곰의 형상(그림 3, 그림 4)과 유사하다. 실제 곰보다 훨씬 동체부를 얇게 만들어진 이유는 청동거울의 손잡이로써 역할을 하기 위해서 이기 때문이다.

 

그림 3 필리포프카 유적 1호무덤의 동쪽 무덤 2호 출토 목제 그릇 장식, 기원전 4세기?

 

그림 4. 솔로하유적의 곰 모양의 손잡이와 금판, 기원전 5세기

 

이 유적에서는 청동단검에 그리핀(그림 6)이 장식된 것도 발견되었는데, 알타이의 유적에서 몇 점출토되지 않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무덤에서는 모자장식의 일부로 생각되는 목판(그림 2-14) 유물도 출토되었다. 비슷한 예가 울란드리크 XII유적에도 있는데, 쿠바레프는 남성의 모자장식으로 생각했다. 파지리크 유적의 2호분에서도 모자장식(그림 5-1)으로 나무판이 발견된 바 있는데, 유스티드 III유적 1호분(그림 2-14)유물도 같은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보았다.

 

그림 5. 파지리크 유적의 남성 모자장식

 

 

그림 6. 울란드리크 III유적 1호분의 청동검

 

울란드리크 III유적 1호분은 다른 무덤에 비해서 동물이 장식된 무기류가 많이 출토되었다...

추야강과 울란곰은 교통로로 연결된 유적이기 때문에 비교검토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크 쿠르간)

Яблонский Л.Т. Новые необыкновенные находки из кургана 1 могильника Филипповка-1//Археология, этнография и антропология Евразии Том 43 № 2 2015(야블론스키 2015, 필리포프카-1 유적의 1호 무덤에서 찾은 특별한 새로운 유물)

The Golden Deer of Eurasia. Scythian and Sarmatian Treasures from the Russian Steppes, Exhibition catalogue, New York, 2000.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국립중앙박물관 1995, 알타이 문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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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청동기시대 혹은 초기철기시대에 해당되는 스키타이 시대의 암각화 주인공은 대부분 동물이다. 굽달린 동물종류가 가장 많은데 산염소, 산양, 다양한 사슴, 말, 낙타 뿐만 아니라 물고기, 뱀, 하이브리드 동물 등 실제 존재했거나 혹은 상상한 동물을 그렸다. 차간 사알라와 바가 오구이 유적, 출루우트 유적 외의 알타이 암각화에는 다양한 하이브리드 동물 그림들이 있다.

 

청동거울은 청동기시대에 발견되지 않고 초기 철기시대인 스키타이 시대 무덤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이미 소개해드린 유스티드, 울란디르크 유적 등에서 출토되었다. 대부분 문양이 없는 것이 많지만 간혹 거울면이 아닌 뒷면에 음각으로 동물그림이 그려진 경우가 있다(그림 1).

 

그림 1. 유스티드유적? (왼쪽), 울란드리크 유적(오른쪽), 이 사진은 1995년 국립중앙박물관과 부산박물관에서 아크 알라하-3 유적의 얼음공주와함께 전시된 유물이다. 울란곰 유적의 53호 청동거울도 오른쪽과 같은 방법으로 말이 그려져 있었을 것으로 참고하시면 된다. 

 

울란곰 유적에서도 2명의 남성 무덤속에서 남성 1명이 말 그림이 그려진 청동거울(그림 2-8)을 지닌 채 매장되었다(II호 남성). 53호 무덤은 돌널무덤(깊이 1m, 90×1.5m)이다. 1명은 유로포이드 다른 1명은 몽골로이드라고 알려졌다. I호 인골은 성인과 2호 인골은 청소년이라고 알려졌고 둘 다 머리에 구멍이 났다. 그림과 같이 시베리아 장법(?)으로 무릎을 굽힌채 측면으로 누워서 있고, 머리 아래에는 돌베개가 놓여 있다. I호 인골의 골반부근에서는 허리띠의 부속품으로 보이는 청동클립과 물고기뼈, 청동칼(그림 2-1)가 발견되었다. II호 인골은 늑골 밑에 조개와 구슬, 갈고리 모양(그림 2-6), 등 부근에는 청동장식(그림 2-7), 팔 부위에는 투부(그림 2-5)와 손 아래에는 검집에 든 청동검(그림 2-9)이 발견되었다. 두 사람 사이의 골반뼈 부근에서 가죽주머니 속에서 청동거울(그림 2-8)이 발견되었다. 두 사람 머리위에서는 토제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알타이 추야강 계곡의 무덤에서는 검과 칼, 투부는 주로 허리부근에서 출토되었는데, 53호 인골 II호는 손 아래와 팔 부근에서 검과 투부가 나온 점이 다르다. 몽골로이드와 유로포이드가 한 무덤에 들어가는 경우는 파지리크 유적 등에서 이미 발견된 바 있어서 크게 새로운 점은 아니지만  흥미롭기는 하다. 

 

 

 

그림 2. 울란곰 유적의 53호 돌널 무덤과 출토품. 1. 청동칼, 5. 투부(전투용도끼), 6, 청동고리(11번이 아닌 6번), 7. 청동패식, 8. 청동거울. 9 청동단검, 10,11토제항아리

 

 

유스티드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거울은 다시 한번 소개해 드리겠다.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국립중앙박물관 1995, 알타이 문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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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울란곰 유적에서는 나무로 만든 나무방 무덤 뿐만 아니라 돌판을 이용한 돌널무덤도 발견된다. 유적이 위치한 찬드만 산 혹은 울라안 산에서 채취한 분홍빛의 화강암 판석으로 만든 것이다.

 

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돌널무덤은 대부분 단인장이지만 인골이 2구가 확인되는 경우도 있다. 25호(1.15×1m)인데(그림 1-B) 남성은 왼쪽으로 굴신(다리를 굽힘)하고 있는 1구와 다리뼈만 남아 있는 인골이 1구 더 있다. 머리 위에서는 납작하게 눌러진 토기, 청동화살촉이 발견되었다(그림 1-B의 우측), 날이 세 개 달린 것이다.

 

그림 1. 울람곰 유적의 무덤, 24호(A), 25호(B), 26호(C), 28호(D)

 

24호(1,05×0.6m)에는 남성의 뼈가 무질서 하게 발견되었고, 바닥에는 가죽을 깔았다. 그 외의 출토유물은 없다. 26호에서도 1구가 발견되었는데, 인골이 무질서하게 흩뜨러졌고, 두개골은 찌그러졌다. 하지만 인골은 오른쪽 측면으로 무릎을 굽힌 채 피장되었고, 머리맡에서 토기(그림 1-C-2)가 발견되었다. 그 외 출토유물은 25호와 같은 청동화살촉, 청동단검(그림 1-C-1), 토기가 발견되었다. 청동단검의 끝에는 새 머리 모양의 그리핀이 마주보고 있는 장식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은 몽골 북쪽에 위치한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스키타이 문화의 미누신스크 지역문화)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이다. 또 인접한 추야강의 울란드리크 유적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그림 2)

 

그림 2. 울란드리크 유적 출토

 

28호는 다소 불쌍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유물도 없고 완전히 무릎을 굽힌 웅크린 자세이다. 두향은 북서방향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돌널무덤이 발견되는 것은 이미 추야 강 계곡의 여러 유적들에서도 본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아르잔-2호(2700년 전)에서도 주인공의 무덤인 5호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돌널무덤이었다. 스키타이 문화의 돌널무덤 문화는 아르잔-2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좀 더 시야를 넓혀보면 시베리아의 청동기시대 묘제는 주로 돌을 이용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스키타이 문화에서 돌을 이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오히려 나무를 많이 이용하기 시작한 아르잔-1호 이후로 나무를 무덤 시설구조물의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청동기시대에 나무를 무덤에 이용한 경우는 없을까? 물론 구조는 차이가 있지만...소재를 나무로 쓴적은?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국립중앙박물관 1995, 알타이 문명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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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암각화 속의 전차는 대부분 청동기시대 카라숙문화(기원전 14~10세기)의 시기 것으로 스키타이 시대보다 이른 시기이다. 그런데 스키타이 문화에서 전차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인접한 파지리크 유적의 5호분에서는 통째로 들어간 적이 있긴 하지만 드문경우이다. 울란곰 유적의 북쪽에 위치한 투바의 아르잔-2호에서는 전차그림이 있는 돌이 유적 내에서 발견되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아르잔-1호에서 출토된 몸을 말고 있는 맹수(아래포스팅참고)는 전차를 몰던 말의 장식이라는 의견도 있다.

 

2020.06.1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시베리아 2700년 전 무덤 속에서 발견된 마차

 

시베리아 2700년 전 무덤 속에서 발견된 마차

시베리아 투바에는 2700년 전 무덤(혹은 의례복합체)인 아르잔-2호가 발굴되었다. 이 유적은 스키타이 문화 가운데서 초기 스키타이문화로 생각된다. 아르잔-1호는 기원전 9세기 정도의 유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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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1호분] - 시베리아 스키타이 원형 맹수장식의 뒷면

 

시베리아 스키타이 원형 맹수장식의 뒷면

원형맹수장식의 또 다른 사용처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에서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은 기원전 6세기에 나타난다.아시다시피 원형의 맹수장식은 투바의 아르잔-1호 출토품이 최초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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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키타이 시대에는 전차를 제작할 때 필수적으로 필요했던 청동과 철기로 매우 많은 장신구와 의례구, 무기를 만들었고 무덤 곳곳에서 발견된다. 무기는 공격할 수 있는 검과 칼, 투부 등 찌르는 도구와 화살촉과 같이 멀리서 관통하는 종류가 있다. 스키타이 활이야 매우 유명하지만, '단검'은 청동제가 많이 발견되어서 공격성이 의심되지만, 33호에서는 철제검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전차보다 앞서서 만들어졌던 수레는 바퀴가 살 없이 나무원판으로 된 것이다. 바퀴를 세심하게 다듬고, 수레의 여러 부속을 만들기 위해서는 석기로는 불가능했고 금속기가 매우 필수적이다. 그래서 순동시대 가장 마지막 시기에 동유럽과 우랄 지역에서는 실물수레가 무덤속에서 발견된다. 전차가 등장하게 된 것은 시베리아 청동기문화인 안드로노보문화이다.)

 

울란곰 유적의 33호에는 9인이 매장되었는데, 성인 8인과 아이 2명(I호, VII호)이다. 성인 중에 XI호만 여성이다. 사지뼈가 있는 경우는 모두 오른쪽을 향해서 무릎을 굽힌 채로 누워 있다. 두개골만 들어가 있는 사람은 VI호와 IX호 여성이다. 특히 VI호에는 두개골에 인위적으로 뚫은 구멍이 선맹하다. 정수리와 관자놀이 뼈에 난 것으로 투부(전투용 도끼)에 의한 것이다. 여성 두개골에 난 흔적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V호 남성도 두개골에 인위적으로 뚫린 구멍이 남아 있었다.

 

그림 1. 울란곰 33호 무덤의 무덤방 덮개와 내부

 

2~3달 된 I호 유아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물건을 가지고 있었으나 종류와 양은 차이가 있다. 그 중에서 철제 단검을 지니고 있던 사람은 III호와 IV호 남성(그림 2-11)이다. III호 남성은 매우 많은 부장품을 가지고 있었지만, IV호는 철제단검, 화살촉, 채색된 용도미상의 물건, 청동단추와 철제버클 정도이다. 바로 인접한 V호 남성은 철제단검은 없었고 청동칼만 무릎 아래의 정강이(그림 2-10)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2. 울란곰 33호 무덤 출토품 1. 청동솥, 2~6. 토제 항아리, 7. 목제 잔, 8. 골제판 9. 목제 염소상, 10, 11-칼과 검의 출토부위

 

무덤 내에서 다른 인골과는 다른 배치인 것이 IX호 여성과 IV호 남성이다. 스키타이 무덤에서는 가지런하게 매장되는 것이 특징인데,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이 무덤에서는 무덤의 남동쪽 모서리에서 양뼈가 발견되어서 무덤내에서 제사를 지냈을 수 있다. III호 남성의 발 아래에서는 청동솥(그림 2-1)이 발견되었고 그 내부에는 양뼈가 들어 있었다(그림 1-14).

 

나무방은 통나무를 3단으로 올린 것이고, 크기는 2.4×2.5m이다. 나무방의 덮개는 20~35cm통나무로 덮었고 곽의 외측은 돌로 고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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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곰 유적은 여러 모로 인접한 러시아 알타이의 유적과 비슷한 점이 많다. 앞으로 차차 살펴보시면 알겠지만 차이점도 상당한데, 필자의 눈에 띤 것은 청동솥이다.

추야강 유역의 유스티드 XII 유적, 졸린 유적, 울란디르크 유적 등에서는 청동솥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 유적은 기원전 4~3세기이다.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 2호에서는 청동솥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크기가 매우 작은 것으로 10cm 보다 약간 크고, 그 안에 불에 달군 돌과 향료씨앗등이 발견되어서 향로의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본다.

그런데 울란곰 유적에서 발견된 33호의 청동솥(그림 1의 1번)은 2700년 전(기원전 7세기 중반) 아르잔-2호에서 발견된 유물과 닮아 있고 크기도 비슷하다.

단편적인 부분만 보아도 근거리에 위치한 추야 계곡의 무덤과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림 1. 울란곰 유적에서 발굴된 청동솥

 

울란곰 유적의 나무방무덤인 23호는 7인이 매장된 곳이다. 무덤의 크기는 2.4×2.4m, 깊이는 1.1m이다. 통나무가 아닌 나무판자를 남동-북서쪽에서 깔았고, 무덤방의 덮개는 이와 교차되게 덮었다. 무덤 안에는 남성 4인, 여성 1인, 아이 1인이 같은 무덤 안에 있다. 두향은 북서쪽이고, 굴신장을 한 상태이다.ㆍ.

 

그림 2. 울란곰 유적의 23호 나무 무덤방

 

그림 2에서 가장 왼쪽의 I호 인골은 남성(나이모름), II호 25세의 남성, III호 여성, IV호 남성(50~55세), V호(1~2세) 유아, VI호 남성, VII호 여성이다. 인골은 모두 돌 베개를 베고 있었다. VI호와 VII호 남녀는 앞 그룹의 사람들과 약간 떨어져 있다.

이 중에서 IV호 남성이 부장품이 가장 많다. 머리 위에는 항아리, 허리뼈 근처에는 청동송곳과 철제 축, 맹수장식의 청동장식이 발견되었다. 뿐만 아니라 청동화살촉, 철제 전투용도끼, 청동칼과 각 종 화살통 청동 장식이 있었고, 엉덩이뼈와 대퇴골 아래에는 일종의 사슴뼈가 발견되었다.

IV호 남성 외에도 청동화살촉이 있었던 사람은 VI호 남성과 III호 여성이다. VI호 남성은 청동 화살촉 5점, III호 여성은 3점 청동화살촉, 2점 골제 화살통과 함께 부장되었다. 모두 머리쪽을 향했고 화살통채 넣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여성의 왼쪽 어깨에는 용도는 정확하지 않지만 어떤 철제품과 유리구슬도 함께 부장되었다.

III호 여성은 다른 사람들과 보는 방향이 다르며, 화살통을 가지고 있던 여성이다. 직업을 보여 주는 유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사실 여성전사는 이미 아르잔-2호에서 본 적이 있다. 이 유적의 22호묘 여성은 오른쪽 쇄골에 남은 근육의 흔적이 매우 발달한 것으로 보아서 활을 많이 쏘았던 여성으로 전사였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2020.06.2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2700년 전 시베리아 사람들의 삶과 죽음

 

2700년 전 시베리아 사람들의 삶과 죽음

시베리아 투바의 초기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인 아르잔-2호는 무덤방 5호 주인공 남녀의 무덤이자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사람의 장례공간이었을 것이다. 아르잔-2호는 매장주체부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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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7인은 한 무덤 안에 다같이 들어갔을까? 시간차이를 두고? 아니면 동시에? 2인장은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유적에서 가장 많은 사자(死者)가 발견된 곳은 9인이 발견된 곳도 있다. 이런 유적을 요즘 발굴한다면 각종 분석을 해 볼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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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고르도바가 보고한 울란곰 유적은 1989년 러시아에서 출판되었지만, 그 속의 내용을 읽어보면 1980년에 독일에서 출판된 자신의 책에 울람곰 유적의 내용이 이미 다 출판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필자가 이 책을 여기저기 찾다가 러시아의 중고책 서점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여러 판매자가 중고책을 파는 사이트 인데, 내가 찾은 판매자는 아마도 유대인인 듯 한데,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살면서 책을 판매하고 있다. 필자가 이 책을 찾은 이유는 러시아 책의 도면이 너무 간략해서 이다. 어쩌면 노보고르도바는 단행본으로 자신의 도면이 책에 나왔기 때문에 매우 축약된 것만 실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독일어는 모르지만,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을꺼라고 생각한다.

 

몽골의 울란곰 유적은 러시아 학자들이 발굴해서 독일과 러시아에서 출판되었다. 시간이 지나서 독일어 책은 러시아국적의 유대인이 이스라엘에서 판매하고 있는데,  40년이 지나서  한국에 있는 내가 산 것이다. 오기만을 기다린다.  내가 유학갈때 책과 여러 물건을 배로 붙인적이 있다. 항공료는 너무 비싸서 그냥 배로 붙였다. 석달이 걸려서 러시아에서 받았는데, 부산서 출발한 그 상자는 일본부터 유럽 각국의 우체국 소인이 찍혀 있었다..사진이 없는게 참 아쉽다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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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란곰 유적은 도굴되지 않은 유적으로 56기의 무덤이 발굴되었는데, 대부분 기원전 5~3세기 로 몽골의 스키타이 시대인 울란곰 문화이다. 56기 가운데 5기는 후대인 흉노시기의 무덤이다. 스키타이 시대의 무덤은 나무방 무덤(그림 2)과 돌널무덤(그림 3)이 있다(그림 1).

 

그림 1. 울란곰 유적의 평면도

 

사실 한 유적에 나무방 무덤과 돌널무덤이 함께 사용된 경우는 울란곰 유적에서만 관찰되는 것은 아니다. 인접한 추야 강계곡의 유스티드 XII유적, 졸린 I유적(8호) , 울란디르크 I(5호) 등에서도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울란곰 유적은 1972년에 알려지고, 그 해부터 3년간에 걸쳐서 발굴되었기 때문에 추야 강 계곡의 유적들이 나중에 발견된 유적이다.

 

2020.10.0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유스티드 XII 고분] -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의 돌널무덤

 

알타이 스키타이 문화의 돌널무덤

알타이의 유스티드 계곡 가운데 유스티드 XII라고 명명된 유적에는 무덤 26기가 일열로 배치되었다. 열을 벗어난 2기는 유스티드 I유적의 예로 보아서 기원전 3~2세기 가량의 흉노시대 혹은 그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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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추야 강 계곡의 유적에서 스키타이 시대 무덤은 일렬로 서 있었고, 후대의 흉노무덤 혹은 투르크 시대 무덤들도 그 열에서 약간 벗어나더라도 해도 크게 분산되지 않았다. 그러나 울란곰 유적은 무덤의 배치에서 크게 차이가 있다.

 

2020.10.01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유스티드 XII 고분] - 알타이 어느 계곡의 스키타이 소녀의 무덤

 

알타이 어느 계곡의 스키타이 소녀의 무덤

알타이의 유스티드 XII유적에서는 2인 이상이 묻힌 무덤이 4,8,11,16,17,20,23호가 있다. 그 가운데서 여성 2인이 묻힌 곳은 4, 8, 11호인데, 4호와 8호는 성인 여성과 아이가 매장된 곳이다. 그런데 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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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울란곰 유적 23호 나무무덤

 

그림 3. 울란곰 유적 12호와 13호 돌널무덤

 

뿐만 아니라 무덤의 소재가 나무와 돌을 사용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추야강 계곡의 유적과는 비슷해 보이고, 이름은 같지만 무덤구조와 장법 등이 차이가 있다.

 

유적의 이름은 우브싸누르 아이막의 행정 중심지인 울란곰 市에서 온 것이다. 유적이 위치한 산은 찬드만-우울 혹은 울라안-우울이라고 부르는데, 유적은 산의 경사면에 위치한다. 울라안-우울은 붉은 산이라는 뜻이다.

대규모 유적으로 무덤을 덮었던 쿠르간의 돌은 화강암재질로 이미 울란곰시의 건축자재로 다 이용되었을 것이고, 1기만이 남아 있어 쿠르간의 재료가 돌이라는 점을 알 수 있게 한다.

 

참고문헌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노보고르도바 1989, 몽골의 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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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시는지 잘 모르겠는데, 필자는 유라시아 초원 문화를 소개하면서 아르잔-2 유적을 작년에 아주 자세하게 글을 올렸다. 지난달에 올린 글들은 알타이의 유명한 암각화 유적을 소개하면서 스르르 청동기시대로 자꾸 올라갔지만, 사실 아직 스키타이 문화의 모든 지역을 다 설명드리지 못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아르잔-2 유적은 세세하게 보고되었고 최근의 자료라서 좀 더 생동감 있었지만 그래도 흑해부터 시베리아까지 혹은 그 보다 더 넘어선 지역까지 퍼져 있던 스키타이 문화의 모든 지역 자료는 한번 씩 다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중에 모자란 부분이 중앙아시아 지역과 몽골이다. 약간 기억을 되돌리면 2700년 전 아르잔-2호의 주인공 무덤인 5호묘 남녀는 형질인류학적으로 보았을 때 미누신스크 분지의 타가르 문화와 몽골 서부의 울란곰 문화와 관련이 깊다는 치키세바의 의견을 소개한 바 있다.

물론 DNA분석법이었더면 더 정확했겠지만, 사실 러시아 알타이의 파지리크 문화과 몽골 서부의 울란곰 문화와 유사하다는 생각은 치키세바의 의견이 처음이 아니었다. 울란곰 유적 발굴 이후 부터 있어왔던 논의에 치키세바는 자신의 의견을 더해서 동의한 것이다.

 

2020.06.2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 무덤의 주인공 남녀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 무덤의 주인공 남녀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공화국의 우육 고원에 위치한 아르잔-2호는 한 무덤의 경계벽 안에 무덤 26기를 비롯해서 장례식에 관련된 여러 유구(퇴장지), 제단, 사슴돌 등이 발견된 곳이다. 의례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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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을 주로 조사하던 볼코프(사슴돌 주로 연구)와 노보고르도바는 1972년에 투바(아르잔-1,2유적이 있는 지역의 행정명)와 가까운 우브사누르 아이막의 행정중심지인 울란곰에서 매우 특이한 유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 유적은 울란곰 도시와 가까운 곳으로 건축작업 중에 발견되었다. 봉분은 1기만 남아 있었고, 다른 무덤들은 봉분이 이미 다 파괴된 상태였는데, 도시화 때문이었다.

www.google.com/maps/d/u/0/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노보고르도바는 1기만 남은 봉분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 무덤에만 고분 위에 커다란 화강암 덩어리들로 둘러쌓인 사각형의 기반위에 축조된 위가 잘린 피라미드 형태의 돌 봉분이 남아 있었다. 다른 무덤에도 봉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뒤에서 보시겠지만, 봉분의 모양은 알타이의 유적과는 다르지만, 무덤 내부는 추야 강변에서 발견된 파지리크 문화(스키타이 문화의 알타이 지역문화)의 유스티드 XII, 유스티드 I, 울란디르크 유적, 바르부르가지 유적 등과 매우 유사하면서 약간 씩 차이가 있다.

 

그림 1. 울란곰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솥

 

참고문헌

В.В. Волков, Э.А. Новгородова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исследования в Монголии.// АО 1972 года. М.: 1973. С. 498-500.(볼코프, 노보고르도바 1973,몽골에서의 고고학조사)

Волков В. В., Новгородова Э. А.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е работы в Монголии.АО 1973 г. М., 1974.(볼코프, 노보고르도바, 1974, 몽골에서의 고고학조사)

Новгородова Э.А. 1989 : Древняя Монголия (Некоторые проблемы хронологии и этнокультурной истории). М.: ГРВЛ. 1989. 384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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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서부에 위치한 해발 1000~1100m에 위치한 초기철기시대 베렐 유적은 카자흐스탄 국경에 속한다. 이미 소개한 바 있는 실릭티 유적은 이 유적보다 남쪽에 위치하며 평지에 위치하는 유적으로 무덤 구조와 출토유물의 차이는 이미 언급했다.

 

베렐 유적은 알타이 산에 위치한 유적들과 더 비슷한데, 무덤의 구조와 유물에서 그렇다. 물론 세세한 차이는 있는데, 알타이의 모든 유적이 ‘컨트롤C+컨트롤V’처럼 나타나는 경우는 없다. 방향성은 같지만, 유적 마다 개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유적마다 다른 점을 하나의 독립적인 문화로 구분하면, 시스템은 없어진다.

 

베렐 유적은 ‘파지리크 문화’(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 알타이의 지역문화)의 경계에 있는 유적이다. 사실 파지리크 유적, 아크 알라하-3, 아크 알라하-1 유적의 굴레장식과 비교해 볼 때 정교하게 만들어진 유물은 없었다. 도굴을 감안하더라도, 남겨진 유물들은 세밀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물론 아르갈리(argali) 굴레장식은 뒤로 말린 뿔이 달린 동물의 머리를 붙여서 만든 것인데, 동물의 종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하게 제작된 유물도 있다. 하지만 파지리크 유적과 아크 알라하-3 유적, 아크 알라하-1 유적의 동물장식은 사실적이지만 추상적인 요소가 들어가지 않은 동물장식은 없었다. 베렐의 아르갈리 굴레장식은 사실적으로만 표현되었다.

 

그림1. 베렐 유적 11호분, 아르갈리 굴레장식

 

그런데 이 유적에는 그리핀이 있을까?

 

 

날개를 펴고 머리를 돌리고 있는 굴레장식이 발견되었다(그림 2). 날개를 편 독수리를 변형시킨 동물장식은 바샤다르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다. 굴레장식은 아니었고 안장에 달던 유물이다(그림 3).

 

그림 2. 베렐 유적 11호분, 그리핀, 굴레장식

 

 

 

그림 3. 바샤다르 유적의 안장장식

 

 

그런데 스키타이 동물장식을 연구한 페레보드치코바는 스키타이 동물장식의 속성(특징)을 추출하면서 ‘눈(eyes)의 표현’에 주목했다(1994). 사실적으로 표현하지만 동물의 각 부위를 과장시키는 추상법을 쓰는데 그 부위 중에 한 곳이 ‘눈(eye)’이다.

 

그점을 회상해보니 그림 1의 굴레장식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동물장식도 있고, 그림 2의 기리핀도 눈이 거의 표현되지 않는다.

이 유적보다 알타이의 높은 곳에 위치한 유적과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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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구장식의 특징(나무+금박), 무덤의 구조(지하구덩이, 나무방, 통나무관)등은 알타이의 이 유적 보다 높은 곳에서 나온 무덤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애썼던 흔적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Sören Stark and Karen S. Rubinson with Zainolla S. Samashev and Jennifer Y. Chi 2012, Nomads and Networks: The Ancient Art and Culture of Kazakhstan, Princeton University Press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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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국경내에 있는 알타이의 서부에서 발견된 베렐 유적(해발 1000~1100m)은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해발 1500m)과 많이 닮아 있다. 카자흐스탄에 있는 스키타이 문화권의 유적들을 사카문화라고 하는데, 이 베렐 유적은 사카문화의 특징과도 다르다.

 

파지리크 유적과 마찬가지로 무덤을 깊게 파고 나무무덤방(세부차이는 있음)과 통나무관을 썼다. 남겨진 유물도 대부분 마구의 굴레장식과 누군가에게는 별로 쓸모없이 보이는 골제와 청동제 화살촉, 투부(전투용도끼) 등이다. 굴레에 달았던 장식은 대부분 나무가 주요소재이고 그 위를 금박종이로 덮은 것이다.

 

베렐 유적의 11호분에는 파지리크 유적에서와 마찬가지로 말과 인간이 둔갑?을 하는 물건들이 발견된다. 인간얼굴에 머리에는 뿔이 있고 몸통은 맹수를 하고 있는 유물이다(그림 1). 유적을 발굴한 사마세프 박사는 그림 1의 유물이 11호분 남성의 모자장식이라고 생각하고, 스핑크스라고 이름 지었다. 사실 파지리크 유적 5호분의 캐노피에 묘사된 동물흉내를 내고 있는 남성(그림 2-4)을 스핑크스라고 했던 루덴코(1953)의 의견을 따른 것이다.  그런데 베렐 유적의 유물은 얼굴만 동물이고, 스핑크스라는 용어가 적절한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림 1. 베렐 유적 11호분의 인간+맹수 장식

 

그림 2. 파지리크 유적의 사슴으로 둔갑한 남성

 

뿐만 아니라 말의 마스크 부속품인 목제 뿔이 발견되었다. 산 염소 뿔을 흉내낸 것인데 파지리크 유적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하다.

 

앞서서 베렐 유적에서 출토된 화살촉을 보여 드린 바 있는데, 같은 카자흐스탄의 유적인 실릭티 유적과도 차이가 있었다. 베렐유적과 실릭티 유적은 무덤(구조), 동물장식(소재와 형태), 무기(형태) 등 차이점이 많다. 베렐 유적은 스키타이 동부 지역(투바와 알타이), 실릭티 유적은 스키타이 서부(흑해지역)과 좀 더 닮아 있다. 그러나 베렐 유적과 실릭티 유적은 모두 화살을 주인공과 함께 부장했다는 공통점은 있다.

무기에 대해서 좀 더 적고 싶으나 카자흐스탄 유적의 정보들은 대부분 황금유물에만 집중되어 보고되어 있다.

 

참고문헌

Sören Stark and Karen S. Rubinson with Zainolla S. Samashev and Jennifer Y. Chi 2012, Nomads and Networks: The Ancient Art and Culture of Kazakhstan, Princeton University Press

루덴코 1953 Руденко С.И. 1953 : Культура населения Горного Алтая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 М.-Л.: 1953. 402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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