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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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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 중 흑해주변에서 확인되는 사슴돌은 시베리아의 사슴돌과 모양이 가깝고 동물표현이 있어서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북카프카스, 크림, 흑해북안 등 초원스텝지역의 서쪽에서 확인되며, 시베리아 사슴돌과 기본특성이 유사해서 비교된다.

 

 

그림 1. 주보프스키 사슴돌(츨레노바 1984)

 

그림 1은 앞에서 소개한 코발레프(2000)의 그림과 비교해 볼 때 상하가 바뀌었다. 둥근 원안의 동물이 좀 더 잘 보인다. 사슴돌이 누워진 채로 발견되었기에 상하의 구분이 모호하다. 다른 사슴돌과 비교해 볼 때 무기가 바로 그려진 것이 주보프스키 사슴돌의 상하 기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입석의 특징을 볼 때 땅에 세운다는 점에서 땅 위로 보이지 않는 반대면에 동물문양을 새기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주보프스키 사슴돌은 양쪽을 다 사용해서 시의 적절하게 사용했을 수도 있다.

 

흑해부근의 사슴돌은 허리띠에 무기(전투용 도끼, 검과 칼, 고리트)를 달고 있고 가장 상단에 귀걸이 모양의 둥근 고리가 있는 것은 스키타이 시기의 시베리아 사슴돌과 유사하다. 그러나 동물문양은 차이가 크다.

 

2020/06/1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시베리아의 사슴돌

 

시베리아의 사슴돌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해발 1500m 우육고원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거대한 무덤들이 존재한다. 이들 중에 처음 발굴된 아르잔-1호를 보고한 그랴즈노프는 이 우육고원에 위치한 분지를 ‘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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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프카스(카프카스 산맥의 북쪽: 흑해인근)에서 확인된 이미 소개한 바 있는 주보프스키 후토르 사슴돌은 동물이 동그라미 속에 들어가 있다. 동쪽(시베리아)의 사슴돌에는 찾아 볼 수 없다. 동물을 표현하는 스타일도 다른데, 모든 동물은 다리가 두 개만 표현되어서 철저하게 측면이 그려진다. 다리는 아래로 쳐져 있고 머리도 아래로 내린 것이다. 다리는 구부리지 않고 세운 것이다.

 

주보프스키 사슴돌에 그려진 동그라미 속의 맹수는 머리를 뒤쪽으로 돌리고 있고, 다리를 세웠다. 북카프카스 지역의 사슴돌은 시베리아와 유사성은 있지만 이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여겨진다. 스키타이 문화가 시작되기 이전에도 돌에 그림을 그리는 전통의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주보프스키 사슴돌은 이 지역 스키타이 문화에서 가장 이른 기원전 7세기대의 기념비로 볼 수 있다.(츨레노바 1984).

 

주보프스키 사슴돌과 비슷한 연대의 아르잔-2 유적에서도 사슴돌이 출토된 바 있다. 주보프스키 사슴돌의 동물문양은 이곳에서 나온 사슴돌이나 몽골의 사슴돌과는 동물의 자세 및 종류 등 차이가 있다.

 

양 지역의 사슴돌의 동물표현이 다른 것은 각 지역에서 다른 전통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시베리아에서는 돌판에 동물문양을 그리는 것은 청동기시대인 오쿠네보 문화에서 무덤의 석판이나 입석이 그려지는 것이 확인된다.

흑해부근에서는 인접한 아나톨리 지역에 있던 프리기아(우라르트와 동시기에 인접한 국가)에서 동물형상물이 확인되며, 비슷한 형상이 확인된다(츨레노바 1984).

 

돌판에 그리는 동물문양 외의 스키타이의 동물문양은 각 지역의 청동기시대 청동유물에서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시베리아에는 청동기시대 카라숙문화, 북카프카스지역에서는 마이코프 문화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동물문양을 연구한 페레보드치코바는 넓은 지역에서 서로의 동물문양을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기호역할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기호를 인용’했다는 것이다.

 

스키타이 동부와 서부의 사슴돌이 동물문양은 서로 다르지만 표현된 무기의 종류와 스타일은 같다. 스키타이 서부의 사슴돌 가운데 동물문양이 없는 무기만 표현된 사슴돌(아래 포스팅)은 역시 스키타이 동부에서도 확인된다.

그냥 단순히 다르다고 하기에는 너무 유사한 점이 많다.

 

그림 2. 스키타이 문화의 서부(북카프카스: 1)와 동부(알타이 및 투바 출토: 2~6)의 사슴돌(츨레노바 1964)

 

2020/08/1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무기] -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오벨리스크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오벨리스크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검은 실제 유물로도 확인되지만, 돌에도 새겨져 있다. 사슴돌이라고 불리는 입석(立石: 돌 기둥)에 그려져 있다. 쿠반 지역(코카스서 산맥 북쪽)의 주보프스키 후토르(Зу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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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Членова Н.Л. 1984 : Оленные камни как исторический источник (на примере оленных камней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Новосибирск: 1984. 100 с.(츨레노바 1984: 북카프카스 지역에서 사료로서의 사슴돌)

페레보드치코바 1994, Е.В. Переводчикова 1994, Язык звериных образов. Очерки искусства евразийских степей скифской эпохи(페레보드치코바 1994, 언어로서의 동물문양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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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가운데서 가장 늦은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에서는 막대기 끝 장식으로 청동으로 만들어진 아르김파사가 출토되었다. 이 유물은 발굴품은 아니고 유적에서 우연히 무덤의 봉분이 무너져서 노출된 것이다. 이곳에서 함께 출토된 유물 가운데 은과 금으로 만들어진 여신이 있다.

 

기본판은 철로 만들어지고, 금판(얼굴이 있는 면)(그림 1-1)과 은판(뒷면)(그림 1-2)을 덮어서 만든 것이다. 이 여신은 날개가 있고 양손에 동물을 쥐고 있는 모습이다. 가슴에는 동심원문양, 하단에는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양 날개와 이마, 손에 쥐고 있는 동물, 다리와 다리 아래의 알 수 없는 장치에는 구멍을 뚫고 은못으로 금판을 붙인 흔적이 남아 있다. 뒷면에도 남아 있다(그림 1-2). 잘 만들었다고 할 수 없는 유물이다.

 

 비슷한 유물이 한 점(그림 1-3,4) 더 출토되었는데, 거의 같은 모습이고 같은 방법으로 제작되었지만 여성의 표현으로 보아서, 쌍(pair)은 아니다. 날개의 표현이 다르고, 여성의 하반부 옷자락 표현, 못의 위치에도 차이가 있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쌍으로 만들었지만, 현재 유물의 상태가 별로인게 아니다. 처음부터 그림 1의 여성과 비슷하게 만들었으나 더 잘 못 만들어졌다.

 

 

그림1.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출토, 1851년 발견품, 철제(기본판)+은판+금판, 1: 10×12cm, 3: 11.6×12.8cm

 

 

헤로도투스(I권 105)에 따르면 스키타이 인들은 근동에서 숭배하던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숭배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스키타이 인들은 시리아의 도시 아스칼론에 있는 아프로디테 우리니아 신전을 훔쳤고, 여신은 ‘여성질병’으로 그들을 처벌했다고 한다.

IV권(67)에서 이 여신을 숭배하는 스키타이 사제는 내시로 이른바 에나레이라고 하는 설명이 있다.

 

2020/08/16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여신] - 흑해의 여신과 헤로도투스의 메세지

 

흑해의 여신과 헤로도투스의 메세지

스키타이 신화는 헤로도투스의 역사 IV권, 59에서 전해진다. ‘헤스티아는 모든 신들보다 높고, 그 다음은 제우스와 땅, 그 다음은 아폴로,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헤라클레스, 아레스이다. 이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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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아르타모노프는 날개 달리고 양 손에 동물을 쥔 여성을 헤로도투스가 기록한 스키타이 신 중 타비티, 아피, 아르김파사 중에 한 명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신앙은 그리스 신화 뿐 만 아니라 중동에서 믿는 아타르가티스(그리스명: 데르케토, 반은 여자, 반은 물고기로 시리아의 아스칼론 신전에 새겨져 있다.), 키벨레(땅, 물, 동물의 여신)와 같다. 그래서 스키타이 여성 형상물을 신화속의 인물과 비교해서 찾는 것은 신뢰할 수 없다(알렉세예프 2012).

 

헤로두투스도 아프로디테 우라니아 신앙이 I권에서는 시리아의 도시에서 숭배되는 것으로 했다가 나중에 IV권에서는 그리스 신화와 비교했다.

 

신화 속의 인물을 찾는 것은 분명히 흥미로운 작업이기는 하다. 그러나 신화가 어떤 특정 민족의 것이나 나라의 것이 아닐 수 있다. 누가 누구의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인간 보편의 생각과 두려움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원전 4세기의 스키타이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신앙 혹은 신화, 역사는 깡그리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대충만들고, 수입해서 쓰고.....

상투적이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이런 말이 생각난다.

 

참고문헌

 

Полин С.В., Алексеев А.Ю. 2018 : Скифский царский Александропольский курган IV в. до н.э. в Нижнем Поднепровье. Киев, Берлин: «Видавець Олег Філюк». 2018. 930 с. («Курганы Украины». Т. 6)(폴린, 알렉세예프 2018, 드레프르강 하류의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차르 무덤-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

Артамонов М.И. 1961 : Антропоморфные божества в религии скифов. // АСГЭ. [Вып.] 2. Л.: 1961. С. 57-87.(아르타모프 1961, 스키타이 의례 속의 의인화된 신)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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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문화에는 스키타이의 여신인 아르김파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표현된 유물들이 있다.

특히 기원전 5세기 후반기에는 여신의 모습이 각 유적 마다 차이가 있다. 침발카 유적에서는 양손에 그리핀 머리를 쥔 여성, 쿨 오바 유적에서는 어깨에 그리핀이 달리고, 한 손에는 단검, 다른 손에는 헤라클레스의 머리를 들고 있는 여성이 확인되었다. 볼쇼야 블리지니차 유적에서는 그리핀과 손의 표현은 없고 대신 날개달린 여성이 장식판에 표현되었다.

이들 유적은 대부분 기원전 450~400년(기원전 5세기 후반)에 해당된다(알렉세예프 2003).

 

*앞의 포스팅에서 유적의 연대를 기원전 4세기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책마다 약간씩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렉세예프가 정리한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연대는 유적에서 채취한 탄소연대와 유적의 유물을 직접 비교한 그간의 업적을 총정리 한 것이다.  비교적 유적의 연대를 세분화 하고 있어서 그가 정리한 연대를 참고로 하고자 한다.

 

스키타이 여신 아르김파사에게 날개가 생기고, 양 손이 모두 표현된 유물이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에서 출토된다. 이 유적은 흑해 스키타이 대형고분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에 해당되는 기원전 300년 경(기원전 4세기)에 해당된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www.google.com

 

이 유물은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 있다고 했으나(아르타모프 1966), 두 손에 옷자락 끝을 쥐고 있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막대기 끝을 장식하는 일종의 간두식(竿頭飾: 막대기 머리 장식)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의례용품이다. 

 

 

그림 1.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 출토, 청동, 높이 15.7cm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은 흑해에서 가장 큰 무덤 중에 하나인데 높이가 21m 이상인, 둘레길이는 320m인 것으로 알려졌다(그림 3).  봉분 주변으로는 흙으로 된 벽이 둘려져 있고, 해자도 설치되었다(그림 4-4). 1851년에 봉분의 남쪽에서 철판이 확인되고, 그 때 청동으로 만든 여신(그림1)의 여신과 청동 삼지창(그림 2)이 함께 노출되었다. 발굴은 1853년, 1855-1856년에 했다.

 

그림 2.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 출토, 청동, 높이 28.9cm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의 매장주체부는 가장 중앙에 만들어져 있다. 중앙 무덤의 통로에는 인간 두개골이 확인되었고, 복도의 앞부분에는 말 뼈가 확인되었는데 14마리 이상이었다. 이곳에서도 말과 관련된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봉분의 북동쪽에는 두 번째 무덤이 있는데, 봉분이 만들어진 이후에 생긴 추가장이다. 입구와 무덤방으로 연결되는 복도로 구성된 것이다. 두 무덤방 모두 도굴당한 흔적이 생생하다.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은 도굴이 매우 극심했지만 남아 있는 유물로도 매우 중요한 무덤임을 알 수 있다. 비슷한 시기의 체르도믹 유적, 솔로하 유적과도 다른 무덤 구조이다. 두 유적의 무덤은 외형은 스키타이 문화의 것이지만, 내부는 그리스식이다. 그러나 알렉산드로프키폴 유적은 스키타이문화의 무덤 양식 그대로이지만 당대에서 가장 크게 만들어진 무덤이다.

 

 

그림 3.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 발굴 전

 

그림 4. 알렉산드로프스키폴 무덤의 단면도, 단면도에서 점선으로 그려진 것은 도굴의 흔적을 그린 것이다. 1,2-도굴입구, 3-추가장(북동쪽 무덤방)의 무덤방단면도, 4, 봉분과 중심무덤방의 동서단면도, 5-중심 무덤방의 남북단면도, 6,7,8-중심무덤방 복도의 단면도

 

 

알렉산드로프스키폴에서 나온 아르김파사는 동물문양이 없고, 날개와 손이 있는 여신이다....

이 모습이 스키타이 인들이 믿었던 신화속의 인물일까?

곧 없어질 자신들의 세상을 알았을까?

 

 

참고문헌

 

아르타모노프 1966,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Артамонов М.И. 1961 : Антропоморфные божества в религии скифов. // АСГЭ. [Вып.] 2. Л.: 1961. С. 57-87.(아르타모프 1961, 스키타이 의례 속의 의인화된 신)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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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문화에서 여신이 표현된 금속제품은 켈레르메스 유적의 은제거울, 침발카 유적의 마면장식, 쿨 오바 유적과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의 장식판,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의 귀걸이가 있다. 그 중에서 켈레르메스 유적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원전 4세기이다.

 

기원전 4세기의 여신은 소형의 유물이 대부분이지만, 오늘 보여 드리는 유물은 비교적 크고 여신의 모습도 상당히 차이가 있다.

 

청동에 표현된 여신은 고곤 메두사의 얼굴이다. 머리가 크고 눈이 크게 과장되고, 혀를 내밀고 있다. 머리는 곱슬머리이고, 머리에서 대칭형으로 올라가는 뱀이 돋을 새김되어 있고, 그 사이에는 연꽃 문양이 장식되었다.

 

이 유물은 어디의 일부일까?

 

스키타이 문화에서 방호용구로 투구(헬멧), 방패를 소개해 드렸는데, 이 유물은 인체의 상반신을 보호하는 갑옷이다. 메두사의 얼굴이 새겨진 갑옷 조각은 가슴가리개 부분인데, 청동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리스로부터 수입된 유물이다.

 

 

그림 1. 엘리자베틴스키 유적의 5호분, 기원전 5~4세기, 1914년 베셀로프스키 발굴, 너비 41cm, 길이 44cm.

 

메두사의 얼굴이 새겨진 갑옷은 세미브라트노예 유적의 4호(그림 2, 그림 3)에서도 출토되었다. 스키타이 문화의 갑옷은 철판을 잘라서 가죽끈으로 이어 붙인 미늘 갑옷(찰갑)이다. 메두사의 얼굴이 장식된 갑옷보다는 보호의 기능에 충실한 유물이 대부분이다. 기원전 6세기의 코스트롬스카야 유적과 우스티-라빈스키 유적에서 미늘갑옷이 출토된다.

 

그림 2. 세미브라트노예 유적의 4호에서 출토된 갑옷조각, 기원전 4세기

 

그림 3. 그림 2의 복원

 

미늘갑옷을 구성하는 철판의 길이는 2~5cm가량이고, 길이의 1/2 혹은 2/3이상 겹쳐서 가죽으로 이은 것이다(그림 4). 몸통, 어깨, 배꼽아래 부분의 크기가 다르다(그림 4).

 

 

그림 4. 주로프카 유적의 401호 출토품, 보르빈스키 1903년 발굴, 기원전 5세기.

 

그런데 우리는 이미 비슷한 미늘 갑옷을 본 적이 있다.

 

솔로하 유적(기원전 4세기)에서 출토된 황금빗에 표현된 말탄 무사는 이렇게 생긴 갑옷을 입고 머리에는 그리스식 투구를 쓰고 있는 그리스 전사이다(포스팅 참고).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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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면장식이나 갑옷에 표현된 스키타이 여신은 일종의 보호용구에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외의 작은 장식판도 부적의 기능을 했다.

 

스키타이 여신 아르김파사는 원래 다산의 여신이었으나, 기원전 4세기 이후가 되면 모습도 각양각색이고, 엄격한 모습(침발카 유적)부터 배 나온 여신(톨스타야 마길라)까지 표현도 자유로워진다. 여신의 역할을 사람들이 거의 기억 못했을 수 있다.  대신 보호구와 장식판으로 사용되는 점을 보아서  단순한 보호(부적)의 의미(기능)가 강해졌을 수 있다. 알 수 없다.

 

상상해 본다. '어디서 들었는데,,이 얼굴이 있으면 안 다친데,,,,그냥 보호만 해준다면 어떤 얼굴이라도 상관없어...라고 하면서' 갑옷을 입는 스키타이 전사를..

 

 

참고문헌

Черненко Е.В. 1968 : Скифский доспех. Киев: «Наукова думка». 1968. 190 с(체르넨코 1968, 스키타이 갑옷)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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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남성 석인상은 헬멧을 쓴 남성 무사가 무기를 풀 착장한 채로 확인되기도 했다. 청동투구(헬멧)은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되면서 기원전 7세기에 사용되었던 방어용구이다.

 

청동헬멧을 쓴 남성 무사는 어떤 말을 타고 다녔을까?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켈레르메스 유적 1호에서는 모두 24마리의 말이 남서쪽벽에 나란히 매장되었다(그림 5). 서쪽벽에 말 12마리가 누워 있었는데, 그 중 10마리는 마구를 착장하지 않았다. 두 마리에는 은제 마구장식(말의 볼 가리개)(그림 1) 이 착장되었다. 남쪽벽의 말(13~18번)은 6마리는 황금 굴레장식, 나머지 6마리는 뼈로 만들어진 굴레장식(그림 2)을 착장했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베셀로프스키 발굴), (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베셀로프스키 발굴), 동물이 새겨진 굴레장식, 뼈(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그림 3.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베셀로프스키 발굴), 황금 (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필자편집)

 

그중에서 말의 얼굴장식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것은 남쪽벽의 13번 말이다(그림 3)

이마부터 콧 등까지 가리는 앞 장식판(그림 3-1)과 재갈멈치 위에 달린 볼 가리개(그림 3-2, 3)와 굴레를 감싼 장식판으로 구성된 것이다. 볼가리개는 양 면(그림 3-2,3)의 문양이 차이가 있다. 기본적으로 나선문양을 배치했다는 점은 같으나, 왼쪽 뺨 가리개(그림 3-2)는 다섯 개의 동심원문양 안에 나선문양을 배치한 것이고, 오른족 뺨 가리개(그림 3-3)은 두 개의 동심원문양을 기본 프레임으로 한 것이다. 굴레를 감싼 다른 장식판에도 모두 나선문양이 그려져 있다.

 

 

 

 

 

그림 4.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베셀로프스키 발굴)의 복원도(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그림 5.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베셀로프스키 발굴)의 평면도(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고분에서 남과 서쪽으로 나누어서 말을 매장한 것은 왕실의 환경이 혼합민족을 구성을 암시하며 스키타이 인 뿐만 아니라 인접한 지역의 사람을 의미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말의 장식이 은, 뼈, 금으로 차등을 둔 것에 대해서 사회적 위계를 반영한다고도 한다(갈라리나 2006).

 

갈라리나의 생각이 딱히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말의 장식을 만든 소재가 다른 것은 용도에 따라서 달랐을 가능성도 한 가지 덧 붙이고자 한다.  청동 헬멧을 쓴 무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거다.  의전용이라면 황금장식판을 단 말을 탔을 것이고, 전쟁에 나갈 참이었다면 뼈로 만든 굴레장식이 달린 말을 탔을 것이다.  동물장식은 일종의 부적(amulet)과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3번 말의 굴레장식은 이 유적에서 출토된 우라르트-스키타이 양식의 유물과는 관련이 없는 지역의 특징적인 유물이다. 나선문양은 동물문양과 함께 흑해 스키타이에서 유행하던 유물이기 때문이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금으로 장식된 검과 투부, 은제 거울 때문에 그것에 관심을 빼앗기기도 하지만 좀 더 들여다 보면 기원전 7세기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모든 것을 반영한다.

 

 

 

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라니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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