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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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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문화에서 발견되는 공격용 무기는 화살, 검, 전투용 도끼가 있다. 실제 유적에서 유물도 출토되지만, 사슴돌에는 허리띠에 이 유물이 새겨져 있다.

사슴돌이라고 하지만, 일종의 돌기둥으로 입석(立石 세워진 돌)인데, 유라시아 초원의 청동기시대부터 확인된다. 특히 시베리아의 청동기시대에는 사슴이 많이 그려져서 사슴돌로 부른다. 사슴 뿐만 아니라 허리띠에 달린 무기, 장신구 등도 그려진다.

 

스키타이 문화의 서쪽지역에서는 주로 무기가 그려진 사슴돌이 확인된다. 무기만 그려져 있지만 전체적인 모양은 시베리아 혹은 몽골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다.

 

주보프스키 후토르 유적 뿐만 아니라 우스티-라빈스키(Усть- Лабинский, Ust' Labinskiy), 키즈부룬(Кызбурун, Kyzburun) 등에서도 발견되었다. 모두 카프카스 산맥 북쪽이다(주보프스키 후토르는 정확한 지점은 찾지 못했는데, 켈레르메스 유적 부근이라고 알려졌다)

 

www.google.com/maps/d/edit?mid=1dttrgVvoA6XC9xHPaMjvGlmKOfYBEVLl&usp=sharing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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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티 라빈스키 유적의 돌기둥(1.75m)도 무덤 입구에 새워졌는데, 바로 아래에서 철제와 골제 화살촉, 석탄조각과 구리판 등이 발견되었다.

우스티 라빈스키, 키즈부른 유적의 돌기둥은 전체적인 형태가 같다. 키즈부른 유적의 돌기둥은 한쪽은 부러졌지만 상단부는 비스듬하고 그 아래에 침선으로 털을 만든 후 그 아래에 둥근 고리표현, 체인, 허리띠가 시문되었다. 허리띠에는 검과 고리트가 ×모양으로 그려져 있고, 투부가 걸려 있다. 키즈부른 돌기둥에는 긴 검 옆에 단검이 한점 더 있고, 허리띠의 매듭도 표현되었다.

 

그림 1.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사슴돌(코발레프 2000), 1-주보프스키 유적, 2-우스티 라빈스키, 3-키즈부른 유적의 돌 기둥, 각각의 번호에서 같은 유물을 여러 번 그린 것은 연구자마다 무기의 모양을 약간 씩 다르게 인식해서이다.

 

흑해 북쪽에서 출토되는 전투용 도끼는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는데 청동제이다.

 

그림 2.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이른 시기 전투용 도끼(코발레프 2000)1-주보프스키 유적의 사슴돌, 2-우치쿨란(Учкулан, Uchkulan), 3,4-피춘드스키(Пицундский, Pitsundskiy) 10-베르흐네 코반스키(Верхнекобанский, Verkhnekobanskiy) 무덤

 

사슴돌에 그려진 검은 날이 직인이며, 손잡이 끝이 반원모양이다. 실제 유적에서는 철검(그림 3-9~12)과 청동검(그림 3-13~17)이 나온다.

 

그림 3.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이른 시기 검(9~12:철, 13~17: 청동) 9-수보토프스키(Субботовский, Subbotovskiy 마을유적, 10-수보로보(Суворово, Suvorovo 유적, 11-무게르간스키(Мугерганский, Mugerganskiy 12-모그-카 파르스(мог-ка Фарс, mog-ka Fars, 13~15: 알타이 출토, 16-세미파라틴스키(Семипаратинский, Semipalatinski) 17-안드례프스코예 오제로(Андреевское озеро, Andreevskoe lake 유적(코발레프 2000인용)

 

앞서 보여드린 켈레르메스 유적과 멜구노프 유적의 철검은 금으로 제작된 검집으로 인해서 실제 칼은 주목받지 못했으나, 실제로 사용된 유물은 아주 심플하다. 손잡이 꼭지는 반원모양이고 검의 손잡이(병부)에는 침선이 새겨진 유물이 있으며, 날은 직선이다.

 

 

사슴돌에 그려진 전투용 도끼는 앞의 날이 부채꼴 모양이지만, 날이 뾰족하고 반대면은 날이 서지 않은 형태의 투부(그림 4)도 존재한다. 물론 기원전 7~5세기 유물이다.

 

그림 4. 기원전 7~5세기 흑해 스키타이 문화에서 출토된 전투용 도끼(알렉세예프 2003 인용)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장식판을 단 전투용 도끼와 황금집에 들어간 철검은 의례용이다. 의례용 검과 도끼는 우라르트-스키타이 양식으로 스키타이 인의 주문에 의해서 외부에서 제작된 것이다. 반면에 실제로 사용된 스키타이 무사들의 공격용 무기도 검과 도끼가 있었고, 외부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라 지역 내에서 제작된 것이다.

 

 

 

참고문헌

 

Савинов Д.Г. 1977 : О культурной принадлежности северокавказских камней-обелисков. // Проблемы археологии Евразии и Северной Америки. М.: 1977.(사비노프 1977, 북 카파카스 지역 돌 기둥에 새겨진 문화적 특징

Ковалёв А.А. 2000 : О происхождении оленных камней западного региона. // Археология, палеоэкология и палеодемография Евразии. М.: «ГЕОС». 2000. С. 138-180. (코발레프 2000, 유라시아 서부지역 사슴돌의 기원)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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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유적 중에 가장 이른 시기의 켈레르메스 유적(기원전 8~7세기)에서는 청동거울이 출토되었다. 청동거울에는 꼭지에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이 부착되었다. 몸을 말고 있는 맹수장식은 이 유적의 굴레장식으로도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보다 더 이른 스키티이 유적인 시베리아의 아르잔-1 유적(기원전 9세기)에서 출토된 바 있다.

 

켈레르메스 유적은 1903년부터 슐츠가 발굴했는데, 그 중 2호분(슐츠의 번호)에서는 청동솥이 발견되었다. 청동솥은 다리가 나팔상으로 붙어 있고, 손잡이에 산양 두 마리가 달려 있는 것이다. 솥의 입구 가까이에는 삼각형 문양이 표현되었다(그림 1). 주물로 만든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림 1. 켈레르메스 고분 출토, 슐츠발굴품

 

 

 

그림 2. 켈레르메스 고분 출토, 슐츠발굴품

 

 

청동솥은 1점 더 있는데, 동체부에 산양장식과 기하학적 문양이 붙어 있고 손잡이에도 산양장식이 달려 있는 것이다. 청동솥 바닥에는 아래에 다리가 붙었던 흔적만 남아 있다. 전체모양은 그림 1과 비슷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출토당시에 이미 부서진 채 확인되었다.

 

슐츠는 무덤구조를 이해하지 못했고, 현대에 발굴된 바에 따라서 살펴보면 슐츠는 무덤의 크기를 매우 과장되게 설명했다(갈라니나 2006).

 

한편 시베리아의 아르잔-2호는 켈레르메스 유적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유적이다. 기억하시겠지만, 아르잔-2호의 주인공 무덤방 5호에는 2중으로 나무방이 만들어졌는데, 그 사이에 청동솥 2점이 확인되었다. 청동솥은 나팔상의 다리가 달린 점은 비슷하지만 손잡이의 형태는 차이가 있다. 주물로 만든 흔적이 남아 있는 점 등은 유사하다.

 

2020/05/27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2700년 전 유목민의 냄비

 

2700년 전 유목민의 냄비

시베리아의 알타이 투바 공화국 해발 1500m 우육고원에는 3000~2700여 년 전의 무덤이 남아 있다. 아르잔 마을에 위치해서 아르잔 유적이라고 부른다. 아르잔-1호와 달리 아르잔-2호는 무덤 구덩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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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문화에서 기원전 8~7세기 청동솥은 동물문양장식이 주요하게 부착되었으나, 기원전 5세기 이후가 되면 장식적인 요소가 더 많아진다. 문양의 요소에도 그리스적인 요소가 더 가미된다.

 

그림 3. 라스코파나 모길라 출토, 기원전 4세기

 

기원전 8~7세기의 스키타이 문화에서 시베리아와 흑해에서 모두 청동솥이 확인되지만 아르잔-2 유적 보다 켈레르메스 유적의 청동솥은 동물문양이 부착되면서 장식적인 요소가 더 많아지는 차이점이 있다.

 

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라니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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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서는 스키타이 신화 속의 인물이 등장한다.

 

스키타이 여신인 아르김파사 혹은 소아시아(현재의 아나톨리지역)에서 유행한 키벨레(Cybele)가 자주 등장한다. 켈레르메스 유적의 은제 거울, 침발카 유적의 마면장식, 쿨-오바 유적의 황금장식판 등이 있다. 켈레르메스 유적은 기원전 7세기이고 나머지 유적은 기원전 4세기이다.

 

켈레르메스 유적의 은제 거울은 그리스에서 제작되어서 주인공 여성이 키벨레라고도 하지만, 원래 키벨레 숭배사상은 아나톨리 지역에서 먼저 생겨서 그리스가 수입해 간 것이다. 또 쿨-오바 유적의 여성이 한 손에는 단검, 한 손에는 헤라클레스의 머리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키벨레 보다는 스키타이 신화의 아르김파사를 상징할 가능성이 많다.

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유적에서 비슷한 구도의 여성이 계속 출토되는데, 제작지가 다른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습의 형상이 계속 유물에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주문자의 요구가 강력하게 반영된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주문자는 스키타이 인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신화 속 인물을 주문한 물건에 반영했을 가능성이 많다(김재윤).

 

스키타이 여신 아르김파사는 시간이 지나면서 여신의 모습에 변화가 많다.

침발카 유적, 쿨-오바 유적의 여신은 켈레르메스 유적의 여신과 양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달라지고, 날개 표현이 다르다. 옷자락의 끝에 뱀의 몸통을 한 그리핀을 장식한 것은 같다.

 

그런데 기원전 4세기의 유물 중에는 두 손과 동물이 없고 날개만 있는 여신이 출토된다. 볼쇼야 블리즈니차(Большая Близница, Bol'shaya Bliznitsa)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그림 1)이 있고, 유적명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인접한 곳에서 출토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 장식판이다(그림 2).

손은 없고 날개와 하반부의 옷자락 끝이 둥근게 말려 있다. 두 유물 모두 날개 끝과 머리장식, 옷자락(하반식)에 구멍이 있는데, 어딘가에 걸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두 유물은 얼굴의 크기와 몸 통의 전체 비율에 차이, 하반부의 옷 자락에 표현의 차이가 있지만, 다산의 상징인 스키타이 여신 아르김파사를 형상화 한 것이다.

 

 

그림 1. 볼쇼야 블리지니차 유적 출토, 황금장식판, 길이 5.3cm(아르타모프 1961)

 

 

그림 2. 기원전 4세기의 여신상, 황금장식판, 흑해부근 출토.(굴랴예프 2005)

 

기원전 4세기의 유물 가운데 두 손 대신 날개표현 및 옷 자락 끝에 나선모양 장식으로 변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보스포러스 지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

기원전 5세기 이후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유적에서 그리스 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된다고 한다. 스키타이 여신 아르김파사가 동물문양 대신에 옷자락 끝이 나선문양으로 바뀌게 된 것도 사회적인 변화일 가능성이 크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1 : Антропоморфные божества в религии скифов. // АСГЭ. [Вып.] 2. Л.: 1961. С. 57-87.(아르타모프 1961, 스키타이 의례 속의 의인화된 신)

Гуляев В.И. 2005 : Скифы. Расцвет и падение великого царства. М.: «Алетейя». 2005(굴랴예프 2005, 스키타이, 위대한 왕국의 흥망성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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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초원의 철기시대 문화인 스키타이 문화는 시베리아와 흑해부근에서 공통점이 확인된다. 스키타이 3요소라고 불리는 무기, 마구, 동물문양장식은 넓은 지역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은 것이다.

 

무기는 공격용과 방어용이 있다. 스키타이 문화의 공격용무기는 활과 화살, 검과 칼, 도끼가 한 세트이다. 방어용은 방패와 헬멧이 있다.

 

그런데 스키타이 문화의 헬멧은 철동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켈레르메스 고분에서 출토되면서 쿠반스타일 헬멧으로 불린다. 헬멧은 알타이와 중앙아시아, 중국 동북지방에서도 확인된다.

시베리아 기원이 아닌 유물로 흑해에서 만들어져서 스키타이 문화의 다른 지역으로 뻗어나갔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림 1.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청동헬멧

 

헬멧을 쓴 석인상도 흑해에서 발견되었다. 쿠체보초프카 마을에서 출토된 석인상이다. 석인상은 허리에 벨트를 차고 검을 앞으로 표현하고 있다. 좌측에는 고리트를 착장한 것이다.

쿠반스타일의 헬멧은 정수리 부근에 고리가 달린 것인데, 석인상의 머리에도 끝이 뾰족하게 표현되었다. 손은 앞으로 향하고, 아무것도 쥐지 않았다.

 

 

그림 2. 키로보그라드스카야 지구의 쿠체보로프카 마을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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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문화의 유적 - Google 내 지도

원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이라고 불리지만 용어가 어려워서 스키타이 문화권이라고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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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돌은 스키타이 문화권의 동부와 서부 모든 지역에서 확인되지만, 쿠반 스타일의 힐멧을 쓴 석인상은 서부에서만 확인된다. 그리고 기원전 5세기 이후가 되면 석인상은 그 모습이 변화된다.

 

 

참고문헌

 

Алексеев А.Ю. 2003 : Хронография Европейской Скифии VII-IV веков до н.э.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3. 416 с(알렉세예프 2003, 기원전 7-4세기 유럽스키타이문화의 편년)

Алексеев А.Ю. Шлем «кубанского» типа из Келермесского могильника (раскопки 1993 г.)//НИЖНЕВОЛЖСКИЙ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ВЕСТНИК 2019. Т. 18. № 2(알렉세예프 2019, 켈레르메스 무덤(1993년 발굴)에서 출토된 쿠반 스타일 헬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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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검은 실제 유물로도 확인되지만, 돌에도 새겨져 있다.

사슴돌이라고 불리는 입석(立石: 돌 기둥)에 그려져 있다.

쿠반 지역(코카스서 산맥 북쪽)의 주보프스키 후토르(Зубовский хутор, Zubovskiy khutor) 고분의 입구에서 발견되었다. 이 유적은 켈레르메스 유적을 발굴한 베셀로프키가 1889년에 발굴했다.

 

 

무덤의 봉분 깊이 1.4m에 가로로 쓰러진 채 길이 2.3m의 입석물이 발견되었다. 사슴돌이 발견된 바로 아래에서는 무덤방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고분에서는 한 구역안에 세 개의 무덤방이 확인되었다. 그곳에서는 토기, 창과 철 칼이 출토되었고, 스키타이 문화 중에서 매우 이른 시기의 것이다.

주보프스키 후토르 사슴돌은 네 면에 걸쳐서 그림이 남아 있는데, 상단과 하단이 비스듬하게 처리되었다. 가장 상단에는 가로 방향으로 선을 새기고 아래에 그림이 그려졌다. 크게 두 가지 주제가 있는데, 동물문양과 무기이다. 무기가 매달린 허리띠에는 전투용 도끼, 고리트, 검이 그려져 있다. 그 위에는 목걸이 모양의 체인이 길게 내려워져 있고, 그 위의 둥근 고리가 그려져 있다.

반대편 가장자리에는 동그라미 원 안에 동물이 한 마리 그려져 있는데, 동물이 거꾸로 그려있다.

 

 

그림 1.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사슴돌, 주보프스키 후토르 유적, 도끼의 모양(1c,1d,1e)은 연구자 마다 약간씩 이해가 다르다(코발레프 2000).

 

주보프스키 후토르 유적에 그려진 검은 매우 심플하다. 켈레르메스 유적과 멜구노프 유적에서 나온 의례용 검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손잡이 끝이 둥글고, 날은 직인이다. 사슴돌에 그려진 도끼의 날은 약간 직선이 아니라 부채꼴 모양으로 그려진 것이다. 실제로 도끼와 검 모두 이지역에서 실제로 발견된다.

 

 

사슴돌의 존재는 시베리아의 아르잔-1호와 아르잔-2호에서도 무덤의 꼭대기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주제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무기를 매달고 있는 허리띠와 둥근고리는 아르잔-1호 와 아르잔-2호에서 발견된 사슴돌에도 그려져 있다.

2020/06/15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2호] - 시베리아의 사슴돌

 

시베리아의 사슴돌

2700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해발 1500m 우육고원에는 스키타이 문화의 거대한 무덤들이 존재한다. 이들 중에 처음 발굴된 아르잔-1호를 보고한 그랴즈노프는 이 우육고원에 위치한 분지를 ‘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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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8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르잔 유적 1호분] - 3000여 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무덤 위 사슴과 멧돼지

 

3000여 년 전 시베리아 투바의 무덤 위 사슴과 멧돼지

3000여 년 전에 시베리아의 투바의 우육고원에는 직경 120m, 높이 3~4m의 대형 무덤이 만들어졌고, 1971년부터 발굴되어서 아르잔-1호로 명명되었다. 이 무덤을 발굴한 그랴즈노프는 이미 1920년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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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지역 사슴돌 모두 가로 방향의 침선을 그리고 그 아래에 문양을 그리고 있고, 입석의 가장 꼭대기를 깍아지 듯이 뾰족하게 처리한 것이 아니라 둥글게 만든 것이다.

전체적인 모양은 남성성의 상징일 수 있다.

 

스키타이 문화에서 시베리아든지, 흑해 든지 무덤에 돌기둥을 세워 두는 전통이 있다.

 

참고문헌

Савинов Д.Г. 1977 : О культурной принадлежности северокавказских камней-обелисков. // Проблемы археологии Евразии и Северной Америки. М.: 1977.(사비노프 1977, 북 카파카스 지역 돌 기둥에 새겨진 문화적 특징

Ковалёв А.А. 2000 : О происхождении оленных камней западного региона. // Археология, палеоэкология и палеодемография Евразии. М.: «ГЕОС». 2000. С. 138-180. (코발레프 2000, 유라시아 서부지역 사슴돌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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