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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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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세기 볼쇼야 블리지니차 유적은 1864년에 자벨린 등이 발굴하기 시작해서 19세기에 이미 여러번 발굴되어서 무덤의 구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하나의 봉분 아래에서 최소 4개의 독립적인 매장이 발견되었고 그 중에 3개는 여성, 1개는 남성무덤이다. 이 중에서 3개의 무덤은 거의 도굴되지 않은 채 발견되었다.

 

유적이 위치한 곳 자체가 기원전 5~4세기부터 케르치 해협에 자리잡았던 보스포러스 왕국에 속한 지역이고, 누가 주체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이 지역에서는 그리스 문화의 색채가 많이 남아 있다.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도 마찬가지이다. 스키타이 문화가 존재했던 가장 마지막 시간에 만들어진 유적 중에 한 곳이다.

 

이 유적은 엘리시우스Eleusinian 밀교와 관련된 Demeter 여사자의 무덤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로 누가 무덤에 매장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덤속에 남겨진 유물로 스키타이 문화의 여성들 모습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이점이 필요하다.

 

제 1매장지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은 머리에 쓰던 모자이다. 칼라프라고 불리는 것으로 끝이 뾰족한 머리장식이 아니라 나팔상으로 벌어지는 모자(그림 1)인데, 황금장식으로 마무리되었고, 그 내부에는 유기질(천 혹은 가죽)으로 된 모자가 있었다. 황금장식으로 붙인 프리즈는 그리스인이 아닌 스키타이인의 복장을 한 여성이 그리핀과 싸우는 모습이 표현(그림 2)되어 있다.

 

그림 1.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 제1매장의 칼라프

그림 2. 볼쇼야 블르지니차 유적, 제1매장의 관자놀이 장식, 칼라프와 세트.

 

칼라쉬니크(2014)는 헤로도투스가 기록에 남긴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에 등장하는 아리마스피가 이 모자속의 싸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찌되었던 이 모자를 쓴 주인공은 관자놀이장식도 착용했는데, 그리스 여성이 나오는 것이었다. 원판형의 관자놀이 장식에 나오는 여성은 칼라프를 착용하고 있으며, 동물을 타고 있다. 반은 말, 꼬리는 돌고래이다. 이 여성이 목 없는 남성의 몸통을 들고 있는데, 아킬레우스라고 여겨지고, 그를 안고 있는 여성은 어머니인 테디스이다.

 

그림 3.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 제1매장의 관자놀이 장식

 

이 두 유물은 모두 에르메타주 박물관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방에 전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맨눈으로 보는 것 보다 더 자세한 책이 이미 출판되었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Калашник Ю.П. 2014 : Греческое золото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Памятники античного ювелирного искусства из Северного Причерноморья.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4. 280 с(칼라쉬니크 2014,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그리스 황금 유물: 흑해 북안에서 출토된 고대 유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7. 13. 09:22 사르마트 문화

 

돈 강 유역에 위치한 다차 유적은 매우 화려한 사르마트 문화의 유물이 출토되어서 주목받았다. 화려한 유물은 주로 마구와 말을 장식하던 도구와 피장자의 검과 팔찌였다.

말을 치장하는 도구는 재갈멈치나 덮개 외에도 둥근 원판형으로 팔레라(Phalera) 라고 불리는 유물이 있다.

 

사실 팔레라는 스키타이 문화의 가장 늦은 기원전 4세기 유적에서도 나오는데, 사르마트 문화와는 그 모습이 다르다. 스키타이 문화에서는 금속제로 만들어졌고 그 안에는 인물들이 표현되었다. 하지만 사르마트 문화의 팔레라는 황금과 돌로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다차 유적의 팔레라는 여러 유색 돌을 감입해서 만들었다. 팔레라는 크기와 모양에 따라서 여러 점이 부장되었는데 그 중에는 쌍으로 발견된 것이 있다. 중앙에는 마노가 박혀 있고 그 가장자리는 황금이 둘러싸고 있으며 그 상단을 여러 유색보석으로 감입한 것이다.

마노를 둘러싼 부분에는 사자 3마리가 앉아 있는 모습이다. 사자 3마리의 사이에는 4개의 붉은색 타원형 석류석에는 여성을 새겨 넣었다.

 

 

그림 1. 다차 유적에서 출토된 팔레라, 직경 13.5cm, 마노의 직경 8cm

 

그림2. 그림 1과 동일 유물

 

그림 3. 그림 1의 세부

 

그림 4. 팔레라의 사용 예(클레인 2016)

 

팔레라 라고 불리는 유물은 흑해 주변에서 스키타이 문화의 가장 늦은 시기에 등장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재질에 국한되지 않는다면 스키타이 문화권에서 이미 기원전 5세기경 유적에서 사용되기 시작한다.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에는 굴레에 나무로 된 여러 장식들을 달았다. 사람얼굴, 동물장식, 원판형 장식 등이 있었다.

 

 

그림 5. 알타이 파지리크 유적 5호분의 마구세트

 

다차 유적은 1세기로 알타이의 유적과 비교하면 500년 이상 후의 유물이기 때문에 재질과 만드는 방법과 형태 등은 변화가 심하다. 하지만 말에게 화려한 장신구를 달아서 치장시키는 그 행위는 오랫동안 남아 있다. 어쩌면 전통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참고문헌

Клейн Л.С. Первый век.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ских курганов, СПб.: Евразия, 2016. (클레인, 2016, 1세기, 사르마트 문화 쿠르간의 보물)

Беспалый 1992 — Беспалый Е.И. Курган I в. н.э. у г. Азова // СА. 1992. №1. С. 103-172.(베스팔르이 1985, 일천년기 아조프해의 쿠르간)

Сокровища сарматов.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 Азовский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и палеонтологический музей-заповедник. // СПб; Азов: Изд-во Азовского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ого и палеонтологического музея-заповедника. 2008(사르마트 인들의 富, 2008)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7. 9. 09:22 사르마트 문화

 

유라시아 초원지역 가운데 돈강 유역부터 서쪽은 기원전 4세기 이후에는 사르마트 문화가 스키타이 문화를 뒤이었다. 역사에는 스키타이 사람들을 몰아내고 사르마트 문화가 점령한 것 처럼 표현했지만, 고고학적으로는 연결되는 특징들이 많다.

흑해지역의 스키타이 문화가 기원전 7세기경부터 생기니 기원전 4세기 정도 되면 300년 동안 문화의 특징들이 그대로 있었을 리가 없다. 조금씩 변화되기도 하고, 유목민의 특징적인 문화 대신에 주변의 여건들이 바뀌면서 초원 지역의 문화들도 바뀌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스키타이 사람들을 몰아냈다는 표현은 좀 맘에 들지 않는다. 어찌 되었던 스키타이 문화를 이어 받은 것은 사르마트 문화이고 이들 역시 동물문양장식을 사용했다. 물론 도상학적인 변화는 있다. 예를 들면 사실적이면서 부분적으로 강조된 스키타이 동물문양장식 대신에 사르마트 문화에서는 알 수 없는 동물들이 많아진다.(괴기스럽게 변했다.) 몸통이 길어진 말은 용처럼 보이기도 한다.

 

학자들은 스키타이 유물과 사르마트 유물을 구분할 때 가장 큰 변화 중에 하나가 상감기법을 꼽는다. 특히 금으로 제작된 유물에는 유색의 돌을 잘라서 감입하는데 이러한 유물들을 모두 기원전 4세기 이후, 사르마트 문화의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유물이 사르마트 문화의 늦은 시기인 기원후 1세기 유적인 호흘라치 유적에서 발견된 관(crown)이다.

사르마트 문화의 이른시기에는 터키석 등 푸른색 계열의 돌을 많이 썼지만 후기로 갈수록 홍옥수를 특히 많이 사용했다.

 

아조프해와 연접한 다차 유적은 기원후 1세기 유적으로 이곳에서는 아주 화려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유물 중에 한 점은 검인데, 손잡이와 검집은 황금과 유색돌로 치장되어 있고 검날은 철제이다. 전체 길이는 40cm가량이고 검날 부분만 25cm가량의 단검이다.

 

그림 1. 사르마트 문화의 다차 유적, 기원후 1세기

 

이 검을 보면 생각나는 유물이 있다. 나만 특별하게 그런 것은 아니고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이들을 떠올린다. 아프카니스탄 틸랴테페 유적에서 발견된 북방초원의 흔적이 남아 있는 철제 단검으로 역시 화려하게 치장되었다. 검집의 형식이나, 검의 모습등이 상당히 비슷하다. 사르마트 문화의 호흘라치 황금관, 다차 유적의 철제 단검은 틸랴 테페 유적과 관련성이 큰 것으로 연구되었다.

 

2022.01.08 - [이름없는 왕의 무덤:틸랴-테페유적] - 아프카니스탄 이름 없는 왕의 검과 칼

 

아프카니스탄 이름 없는 왕의 검과 칼

아프카니스탄에 남아 있는 틸랴-테페 유적은 북방 유목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북방유목문화는 기원전 5세기경의 스키타이 문화와 기원전 3세기 이후의 사르마트 문화가 모두 남아 있다. 특히

eastsearoad.tistory.com

 

 

 

참고문헌

 

Беспалый 1992 — Беспалый Е.И. Курган I в. н.э. у г. Азова // СА. 1992. №1. С. 103-172.(베스팔르이 1985, 일천년기 아조프해의 쿠르간)

И.П. Засецкая, Р.С. Минасян. Золотые ножны кинжала из кургана Дачи — уникальное произведение древнего ювелирного искусства// СПб; Азов: Изд-во Азовского историко-археологического и палеонтологического музея-заповедника. 2008. (자세츠카야, 미냐샨, 2008, 다차 쿠르간의 황금단검)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 동남부의 알마티 시와 가까운 곳에는 ‘이식’이라고 불리는 거대 봉분이 있는 무덤 150기가 있는 유적이 있다. 이곳에는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후 17세기 까지 거의 천년 동안 무덤으로 사용된 유적이다. 그 중에서 세간에 가장 잘 알려진 무덤은 15세 가량의 소년이 화려한 복장을 입은채 묻힌 무덤이다. 물론 이 무덤도 도굴된 채 발견되어서 정확한 무덤의 구조는 알 수 없다. 인접한 베스샤타르 유적을 참고로 할 때 지상위에 무덤을 축조하고 그 위를 돌로 덮었던 구조였다는 점만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소년은 황금장식을 화려하게 치장한 붉은 색 옷을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황금인간’이라고 불린다. 특히 소년은 높이 60~65cm 가량의 고깔모자(직경 22cm)를 썼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깔모자에는 각종 동물장식 및 자연(산)을 형상화 해 붙였던 황금장식으로 인해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림 1. 이식 출토, 두개골과 고깔모자의 황금장식 출토장면

 

그림 2. 그림 1의 복원도

 

간접적으로 스키타이 사람들이 고깔모자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기록과 페르시아의 궁전(그림 3-2)에 남아 있다. 헤로도투스가 쓴 역사에서 다른 민족과 구분하는 스키타이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로 고깔모자를 언급한 바 있다.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궁전에도 스키타이 사람들을 표현할 때 귀를 덮는 고깔모자가 표현되었다.

 

그림 3. 흑해 쿨-오바 유적의 황금 항아리 속 남성, 2: 아케메네스 궁전벽, 스키타이 사람들

 

 

유물 속에서는 흑해 지역의 기원전 4세기 쿨-오바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항아리 속(그림 3-1)에 여러 남성들은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까운 알타이에서는 실물자료가 발견되었다. 파지리크 유적 및 가장 높은 곳의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남성전사, 아크 알라하-1 유적의 1호 남성 전사 들도 고깔모자를 착용했다. 뿐만 아니라 추야강 계곡의 남성전사들 무덤에서도 두개골 상단에 모자에 달았던 장식이 발견되어서 대부분 고깔모자를 썼다고 볼 수 있다.

 

 

 

그림 4. 아크 알라하-1 유적 1호분

 

 

그림 5.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고깔모자

 

그런데 고깔모자도 종류가 있다. 알타이에서 발견되는 고깔모자(그림 4, 5)는 동물장식으로 모자를 꾸몄다. 모자의 끝에 새머리 조각을 붙여서 장식하는 것인데, 모자의 안쪽으로 끼우게 되어 있고, 고깔모자의 하단에도 산양이나 염소상을 붙여서 장식하는 스타일이다.

흑해지역과 인접한 지역(그림 3)에서 발견되는 고깔모자는 장식 없이 귀를 덮는 스타일이다. 대략적인 구분인데 세밀한 것은 차차 설명하도록 하자.

 

이식 유적의 고깔모자는 화려한 장식을 달았다는 점에서 알타이의 모자와 같은 아이디로 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깔모자의 가장 끝에 산양장식(높이 1.2cm, 너비 1.2cm)이 달려 있어서 모자의 끝을 동물장식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같다. 또한 유적을 발굴한 아키세프는 이식 유적의 고깔모자도 펠트, 가죽, 자작나무 등으로 제작되어서 스키타이 문화가 끝난 뒤에도 아시아 여러 민족이 계속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알타이와는 다른 재질?로 제작되었고, 모자에 부착되는 동물장식의 종류와 위치, 재질의 차이가 있고, 모자의 높이도 다르다.

알타이 남성전사들의 모자는 펠트로 제작되었고, 동물장식을 나무로 만들어서 단 이유는 펠트가 저절로 서 있지 않기 때문에 고깔모자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이식 유적의 모자는 어떤 물질인지 정확하게 표기되지는 않았지만, 복원대로라면 매우 빳빳한 재질일 수 있다. 모자의 안쪽에 어떤 장치가 발견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펠트는 알타이 무덤에서는 매우 많이 사용되는 직조물인데, 카자흐스탄의 산악지역에서는 발견된 예가 없다.)

그래서 이식 유적의 모자를 만든 재질 자체는 유럽 스키타이 고깔모자와 가까울 수 있어서,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참고문헌

Акишев К.А. 1978 : Курган Иссык. Искусство саков Казахстана. М.: «Искусство». 1978. 132 с.(아세세프, 1978, 이식 쿠르간, 카자흐스탄 사카 사람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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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카자흐스탄의 스키타이 문화인 타스몰라 문화는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존재한 문화이다. 전반기는 기원전 7~6세기, 후반기는 기원전 5~3세기까지 존재했다. 기원전 4세기가 되면 스키타이 문화권은 아시아 지역에서는 흉노문화, 볼가지역 및 흑해지역은 사르마트 문화 혹은 훈족 문화라고 하는 지역으로 변환된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의 중부지역 및 동부지역 특히 평지에는 기원전 3세기까지 타스몰라 문화가 지속된다. 카자흐스탄의 동부 산악(천산산맥) 부근에는 사카 문화가 기원전 7세기부터 존재했지만, 사실 카자흐스탄에서 고고문화의 구분은 선명치 않다.

 

카자흐스탄 타스몰라 문화는 사카 문화에 비해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시베리아 아르잔-2호의 발굴로 다시 소환되었으나, 크게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관심사와 약간은 빗겨나갔기 때문인데, 타스몰라 문화에서는 황금유물이 몇 몇 동물장식 빼고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무덤구조도 ‘수염 달린 쿠르간’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산악지역(카자흐스탄 동부, 파지리크 문화) 및 아르잔-2호와도 전혀 다르다.

 

타스몰라 문화가 기원전 7세기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늦은 기간에는 황금유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오히려 동물장식 가운데 맹수모양의 황금장식(그림 1)은 이른 시간에 몇 점이 발견되고 그 이후에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특히 늦은 시기의 타스몰라 문화 유적에서는 유물 자체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대부분 무기(화살촉, 철칼)과 석제 쟁반, 마연석 등이 발견될 뿐이다.

 

시베리아 중부의 산악지역인 알타이와 천산산맥에서 황금관련 유물이 발견되는 시점이 기원전 6~5세기이지만 카자흐스탄 평지에는 소비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림 1. 타스몰라 문화 전반기(기원전 7~6세기) 동물장식, 황금제품

 

 

그림 2. 타스몰라 문화의 후반기(기원전 5~3세기) 카라무룬 I유적 5그룹

 

 

그림 3. 타스몰라 문화의 카라무룬 I유적 5그룹 중에 1,2-5a, 3,4-5b

 

아르잔-2호의 마구와 허리띠 장식이 타스몰라 문화에서 보이는 것과 유사한 점은 틀리지 않았지만, 아르잔-2호의 황금유물을 기준으로 할 때 두 문화는 전혀 관련성이 없다. 오히려 아르잔-2호의 황금제작 기술이 카자흐스탄 각 지역의 황금제작 기술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의견(Barbara Armbruster 2009)이 더 합리적이다.

 

스키타이 3요소라고 정해진 무기, 마구, 동물장식은 실용적이기도 하지만 하나하나씩 비교해 보면 의례품에 가까운 유물들이 더 많다. 황금유물은 이들 각각의 제품 가운데 의례품에 가까운 유물의 재질이다. 그런데 필자는 스키타이 문화권 혹은 세계를 묶는 유물은 일상용기로도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석제 쟁반은 아르잔-2호와 파지리크 문화의 이미테이션이다.

 

참고문헌

 

Barbara Armbruster 2009 Gold technology of the ancient Scythians –gold from the kurgan Arzhan 2, Tuva, Archeo Sciences, 33, 2009, p. 187-193

Степная полоса азиатской части СССР в скифо-сарматское время. М., 1992 (스키토-사르마트 시기의 소비에트 연방 내의 아시아 초원지대)

А.X. Маргулан, К.А. Акишев, М.К. Кадырбаев, А.М. Оразбаев Древняя культура Центрального Казахстана.// Алма-Aтa: 1966. 436 с.(마르구란 외 1966, 카자흐스탄 중분의 고대 문화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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