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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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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스키타이 남성 석인상은 헬멧을 쓴 남성 무사가 무기를 풀 착장한 채로 확인되기도 했다. 청동투구(헬멧)은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되면서 기원전 7세기에 사용되었던 방어용구이다.

 

청동헬멧을 쓴 남성 무사는 어떤 말을 타고 다녔을까?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켈레르메스 유적 1호에서는 모두 24마리의 말이 남서쪽벽에 나란히 매장되었다(그림 5). 서쪽벽에 말 12마리가 누워 있었는데, 그 중 10마리는 마구를 착장하지 않았다. 두 마리에는 은제 마구장식(말의 볼 가리개)(그림 1) 이 착장되었다. 남쪽벽의 말(13~18번)은 6마리는 황금 굴레장식, 나머지 6마리는 뼈로 만들어진 굴레장식(그림 2)을 착장했다.

 

 

 

 

그림 1.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베셀로프스키 발굴), (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베셀로프스키 발굴), 동물이 새겨진 굴레장식, 뼈(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그림 3.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베셀로프스키 발굴), 황금 (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필자편집)

 

그중에서 말의 얼굴장식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것은 남쪽벽의 13번 말이다(그림 3)

이마부터 콧 등까지 가리는 앞 장식판(그림 3-1)과 재갈멈치 위에 달린 볼 가리개(그림 3-2, 3)와 굴레를 감싼 장식판으로 구성된 것이다. 볼가리개는 양 면(그림 3-2,3)의 문양이 차이가 있다. 기본적으로 나선문양을 배치했다는 점은 같으나, 왼쪽 뺨 가리개(그림 3-2)는 다섯 개의 동심원문양 안에 나선문양을 배치한 것이고, 오른족 뺨 가리개(그림 3-3)은 두 개의 동심원문양을 기본 프레임으로 한 것이다. 굴레를 감싼 다른 장식판에도 모두 나선문양이 그려져 있다.

 

 

 

 

 

그림 4.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베셀로프스키 발굴)의 복원도(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그림 5.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베셀로프스키 발굴)의 평면도(Галанина Л.К. 2006 인용)

 

 

 

 

고분에서 남과 서쪽으로 나누어서 말을 매장한 것은 왕실의 환경이 혼합민족을 구성을 암시하며 스키타이 인 뿐만 아니라 인접한 지역의 사람을 의미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말의 장식이 은, 뼈, 금으로 차등을 둔 것에 대해서 사회적 위계를 반영한다고도 한다(갈라리나 2006).

 

갈라리나의 생각이 딱히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말의 장식을 만든 소재가 다른 것은 용도에 따라서 달랐을 가능성도 한 가지 덧 붙이고자 한다.  청동 헬멧을 쓴 무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거다.  의전용이라면 황금장식판을 단 말을 탔을 것이고, 전쟁에 나갈 참이었다면 뼈로 만든 굴레장식이 달린 말을 탔을 것이다.  동물장식은 일종의 부적(amulet)과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3번 말의 굴레장식은 이 유적에서 출토된 우라르트-스키타이 양식의 유물과는 관련이 없는 지역의 특징적인 유물이다. 나선문양은 동물문양과 함께 흑해 스키타이에서 유행하던 유물이기 때문이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는 금으로 장식된 검과 투부, 은제 거울 때문에 그것에 관심을 빼앗기기도 하지만 좀 더 들여다 보면 기원전 7세기 흑해 스키타이 문화의 모든 것을 반영한다.

 

 

 

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К. 2006 : Скифские древности Северного Кавказа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06. 80 с. (Коллекции Эрмитажа)(갈라니나, 2006, 에르미타주 소장, 카프카스 북쪽의 켈레르메스 고분. 스키타이 문화유물)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는 흑해 및 인접한 카프카스 산맥 북쪽, 돈강 및 볼가강, 알타이, 시베리아의 미누신스크, 천산산맥(카자흐스탄)인접지역이 포함된다(그림 1).

 

 

 

그림1. 스키타이 문화권(에르미타주 2001 필자편집)

 

흑해와 인접한 카프카스 산맥 북쪽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무덤 중에 하나가 켈레르메스 유적이다(그림 1의 녹색 네모).

 

각 지역마다 고분은 차이가 있지만 무기, 마구, 동물문양장식이라는 공통성이 같은 생업경제를 바탕으로 거대한 문화권을 이루었다. 특히 동물문양장식은 이 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동물문양장식은 다소 추상적일 수 있다. 그러나 소개하지 않았지만 페르시아 직조물들(카펫과 의복)이 알타이의 여러 유적(파지릭, 아크 알라하-3 유적) 뿐만 아니라 아르잔-1호에서 출토되어서 직접적인 어떤 교류가 있었는 것을 증명한다. 이 문화권의 동쪽끝에는 춘추전국시대였고, 서쪽끝에는 아시리아와 페르시아제국이 있었다.

 

스키타이문화의 서쪽끝인 흑해 유적에도 인접한 지역과 교류가 활발한 흔적이 남아 있다. 고분에서 출토되는 앗시리아 및 그리스의 유물들이다. 현재 전해지는 유물들은 모두 황금유물만 남아 있는데, 다른 유물은 보고가 잘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황금 잔은 앗시리아 스타일이고 은제 거울은 그리스 스타일이다. 이 외에도 여성의 머리를 장식하는 일종의 머리띠(그림 2)과 그리핀이 달린 머리띠(그림 3)도 그리스 장인이 만들었을 것으로 본다. 특히 그림 3은 스키타이 무덤(켈레르메스 고분)에서 출토되었으나, 스키타이적 요소 혹은 그 영향도 보이지 않는다. 흑해 북안에서 출토되는 유물 가운데 스키타이 귀족이 주문 제작한 그리스 스타일의 유물은 스키타이 적인 요소 혹은 기법이 더해졌지만(예를 들면 솔로하 출토 황금 빗, 켈레르메스 출토 은제 거울) 이 유물은 전쟁으로 뺏아온 획득물일 가능성이 있다(갈리아나 1997, 알렉세예프 2012)

 

솔로하 출토 황금빗-->아래포스팅 참고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 동쪽/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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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 출토, 그리스+스키타이 스타일, 1903년 슐츠 발굴품

 

 

 

 

그림 3. 켈레르메스 유적 3호분 출토, 그리스 유물, 1904년 슐츠 발굴품

 

앗시리아의 유물은 황금잔과 의자의 장식(그림 4)과 화살통 혹은 활의 장식(그림 5) 등이 있다. 동물장식을 사용한다느 점은 같지만 동물을 표현법은 완전히 다르다(그림 4). 눈, 코, 입주변 등이 그렇다. 산양(그림 5)은 앗시리아에서 사용하지 않는 문양으로 스키타이 왕 혹은 귀족을 위해서 만들어진 기념품이다(갈리아나 1997, 알렉세예프 2012).

 

 

 

그림 4.켈레르메스 유적 3호분 출토, 의자의 장식, 앗시리아 유물, 1904년 슐츠발굴품

 

 

 

 

그림 . 켈레르메스 유적 3호분 출토, 활의 장식, 앗시리아 유물, 1904년 슐츠발굴품

 

 

 

그럼 도대체 흑해의 스키타이 사람들의 유물은 무엇일까?

 

마구와 무기류 및 의례품 등이 보고되어 있다.

쿠반형 헬멧(그림 6, 7)은 너무나 유명한 흑해 스키타이 사람들의 유물이다. 이 유물은 몽골, 중국 요서지역까지 넓은 분포를 보인다(알렉세예프 2019)

 

 

 

그림 6. 켈레르메스 유적 2호분, 베셀로프스키 발굴

 

 

 

 

그림 7. 켈레르메스 유적 3호분의 15무덤, 1993년 발굴

 

뼈를 깎아서 만든 굴레장식(그림 8, 그림 9)도 알려졌다. 특히 몸을 말고 있는 맹수 표현은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수집품, 아르잔-1호 유물에서 볼 수 있는 요소로 학계의 주목을 많이 받았다. 굴레장식에 표현된 동물문양은 알타이와는 차이가 있다. 매부리형?코에서 입으로 이어지는 표현과 입 아래 턱수염 표현 등은 스키타이 문화의 서쪽 지역 특징이다.

 

뿐만 아니라 지팡이 끝에 끼워서 사용했던 간두령(그림 10)은 완전한 스키타이 서부 스타일이다. 귀가 강조된 독수리 머리 그리핀이 붙어 있다.

 

 

 

 

그림 8. 켈레르메스 유적 1호분(왼쪽)과 2호분(오른쪽) 출토, 굴레장식, 베셀로프스키 발굴

 

 

 

그림 9. 켈레르메스 유적 2호분 출토 굴레장식, 베셀로프스키 발굴

 

 

 

 

그림 10. 켈레르메스 유적, 슐츠 발굴품

 

이 포스팅에는 황금 유물은 그리스와 앗시라아 유물만 소개되었으나 이미 포스팅한 바 있는 화살통 장식(그림 11), 표범 장식(그림 12) 등 스키타이 유물 가운데도 황금 유물은 있다. 그러나 켈레르메스 유적 출토로 보고된 유물 가운데서 특히 슐츠는 도굴꾼인가 싶을 정도로 눈에 띄는 유물만 보고했다. 사실 얼마나 정직하게 보고 했을지도 의문스럽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쿠반스타일의 헬멧은 멀리 멀리 전해져서 몽골(갈리아나 1985, 알렉세예프 2019)과 중국 하가점상층문화(강인욱2006) 에서도 출토된다.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11. 켈레르메스 4호분 출토, 스키타이 화살통 장식, 1904년 슐츠발굴

 

 

 

그림 12. 켈레르메스 1호분 출토, 표범방식, 1903년 슐츠발굴

 

 

 

참고문헌

Галанина Л. К., 1985. Шлемы кубанского типа (вопросы хронологии и происхождения) // Культурное наследие Востока. Л. : Наука. С. 169–183.(갈리아나 1985, 쿠반 스타일 헬멧의 편년과 기원)

강인욱, 2006, 中國 北方地帶와 夏家店上層文化의 청동투구에 대하여-기원전 11~8세기 중국 북방 초원지역의 지역간 상호교류에 대한 접근-, 선사와 고대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Алексеев А.Ю. Шлем «кубанского» типа из Келермесского могильника (раскопки 1993 г.)//НИЖНЕВОЛЖСКИЙ 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ВЕСТНИК 2019. Т. 18. № 2(알렉세예프 2019, 켈레르메스 무덤(1993년 발굴)에서 출토된 쿠반 스타일 헬멧

Галанина Л.К. 1997 :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Царские» погребения раннескифской эпохи. М.: 1997. 316 с., табл.(갈리아나 1997, 초기 스키타이 시대의 차르 무덤, 켈레르메스 고분)

Золотые олени Евразии. Каталог выставки в Гос. Эрмитаже, СПб, 18 октября 2001 года — 20 января 2002 года. СПб: «Славия». 2001. 248 с. (에르미타주 국가박물관 특별전 도록, 유라시아의 황금 사슴, 2001)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흑해 인근의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 위치한 스키타이 무덤 가운데 가장 이른 것 중에 하나는 켈레르메스 고분이다. 기원전 7세기 정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1903년과 1904년에 독일인 슐츠와 러시아 고고학자인 베셀로프스키가 발굴한 무덤에서 황금유물이 유명하다.

 

이미 소개해 드린 은제거울, 표범방패장식, 화살통 장식 등이 있다.

 

2020/02/2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 2500년 전,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인의 활, 화살통

 

2500년 전,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인의 활, 화살통

러시아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우코크 고원에 위치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남성전사 무덤에서는 뼈로 제작된 화살촉이 출토되었다. 두 명이 묻혔는데, 화살통과 활까지 부장했던 것으로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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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2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켈레르메스] -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과 그리스

 

스키타이 문화의 기원과 그리스

이제까지 2500년 전 알타이 위주로 스키타이 문화를 살펴보았다. 좀 더 자세하게는 파지릭 문화라고 일컫는다. 아시다시피 스키타이 문화라고 불리는 문화는 흑해 북안부터 시베리아 까지 매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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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소개해 드리지 않은 유물 가운데는 황금으로 된 그릇이 있다. 두 개는 세트인데, 하나는 동물문양이 장식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꽃 잎과 마름모문양이 반복되어 표현되었다. 동물문양은 그릇의 바깥이 음각한 것이고, 기하학적 문양은 그릇의 바깥을 양적으로 표현했다.

 

가장 상단에는 타조, 2번째 열에는 사슴바닥에는 꽃 문양이 장식되어 있고 이를 중심으로 코젤(산염소), 카프카스 염소(Caucasian tur), 사슴이 교차해서 배열되어 있다. 사슴 등에 올라탄 사자(그림 3-2)와 코젤을 쫏고 있는 늑대(그림 3-1)도 2번째 열에 배열되어 있다. 3번 째 열에는 사슴, 코젤(산염소), 염소가 앉아 있고 바닥에는 꽃 문양이 새겨진 것이다(그림 4).

 

그림 1. 흑해지역, 코카서스 산맥 북쪽으로 쿠반 지역, 켈레르메스 1호분, 슐츠 발굴품

 

그림 2. 흑해지역, 코카서스 산맥 북쪽으로 쿠반 지역, 켈레르메스 1호분, 그림1의 세부

 

 

그림 3. 흑해지역, 코카서스 산맥 북쪽으로 쿠반 지역, 켈레르메스 1호분, 그림1의 세부

 

그림 4. 그림1의 평면도(루덴코 1960)

 

 

켈레르메스 유적이 흑해 부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무덤인 것을 생각하면 이 그릇에 나타난 사슴그림은 흑해북쪽에서 가장 빠른 사슴문양이다.

 

그런데 이 그릇에 나타난 사자, 타조는 스키타이 지역에는 없던 문양으로 앗시리아와 관련있다. 앗시리아 문화에서는 타조문양이 매우 유행했다고 한다. 사자도 코카서스 산맥 북쪽에서는 나타나지 않던 문양으로 코카서스 산맥 이남에서 올라온 문양이다. 사자가 이 지역에 등장한 것은 초기철기시대 스키타이 문화보다 이전인 청동기시대 마이코프 문화에서 확인된 바 있다. 코카서스 남부지역과 교류가 처음은 아니었다.

 

어찌되었던 주제 뿐만 아니라 동물을 나타나는 방법 중에 갈비뼈를 드러내는 방법은 흑해 북쪽 및 시베리아의 스키타이 문양과는 관련이 없는 앗시리아 양식이다. 이는 앞서 소개한 사슴과 표범으로 장식된 화살통장식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시베리아 알타이에서 확인되는 사슴의 표현방법이 몸통과 뿔에서 차이가 있다.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흑해에서 원래 살던 킴메르 인들은 스키타이 사람들 때문에 인접한 소아시아로 도망갔다. 킴메르 인들을 추적해서 코카서스 산맥 남쪽까지 내려오게 되는데, 앗시리아 연대기는 이 시점을 기원전 670년 부터라고 기록했다.

고대 오리엔트 기록에는 기마병단을 보유한 스키타이 유목민족 때문에 거의 100년 동안 고생하고 공포정치로 치를 떠는 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점도 석연치 않은 것이 스키타이 인과 앗시리아는 기원전 680년에 결혼동맹을 맺고 있었고 스키타이 사람들은 앗시리아를 도와서 앗시리아의 수도를 공격하는 메디아인을 섬멸했다. 기원전 623-622년.

 

스키타이 인들은 앗시리아 인을 도와서 메디아를 함께 막아 주었건만 정작 속 뜻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앗시리아 입장에서 쓴 기록이 좋게 남아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흑해북쪽의 유적에서는 스키타이 사람의 무덤에서 인접한 지역의 유물이 많이 출토된다. 그리스, 앗시리아 물건, 기원전 5세기 이후가 되면 앗시리아의 물건은 페르시아의 물건으로 바뀐다. 켈레르메스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잔은 앗시리아와 그리스에서는 손잡이가 없는 잔을 ‘phiales’라고 부른다. 피알레스는 왕권을 상징하는 그릇이다. 실용기와는 거리가 멀다.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Галанина Л.К. 1997 : Келермесские курганы. «Царские» погребения раннескифской эпохи. М.: 1997. 316 с.(갈리아나 1997, 초기 스키타이 시대의 차르 무덤, 켈레르메스 고분)

Алексеев А.Ю. 2012 : Золото скифских царей в собрании Эрмитажа. СПб: Изд-во Гос. Эрмитажа. 2012. 272 с. (알렉세예프 2012,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 스키타이 차르의 황금유물 콜렉션)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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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활은 고리트(그림 11)라고 불리는 스키타이 문화의 특징적인 유물이다. 이에 대해서 스키타이문화를 기록한 헤로도투스도 언급한 바도 있고, 페르시아의 아파다나 궁전벽(그림 12)에도 새겨졌다. 뿐만 아니라 이미 소개한 바 있는 표트르 1세의 시베리아 콜렉션의 유물 중에서도 말을 타면서 활을 쏘고 있는 남성전사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다.

 

아르잔-2호 무덤방 5호에서는 고리트가 실제로 출토되어서 스키타이 활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림 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고리트, 화살이 가득 담긴 모습

 

 

 

 

그림 2. 아르잔-2호 출토 무덤방 5호 출토, 고리트, 화살을 제거한 후 드러난 모습,

 

남성의 좌측 어깨 부위에서 출토되었으나 원래는 무덤방의 북동쪽벽에 매달려 있었고 나중에떨어졌다고 볼 수도 있는데, 활이 고리트에서 빠진 채로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고리트(그림 3-4)는 나무와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가죽은 이미 썩어서 없어진 상태이다. 나무는 금박 혹은 금판(크기누락, 필자가 금판으로 부르는 이유는 아주 소형의 유물에 덮힌 금박보다는 두꺼울 것이기 때문이다)으로 덮였다(그림 3-1), 금으로 고리트의 바닥(그림 3-2)도 만들어졌다, 길이 50cm 나무뼈대에 새겨진 비늘 모양이 금판 위에 그대로 찍혔다. 나무 뼈대가 누르면서 금판의 비늘도 만들고, 고리트도 단단하게 했을 것이다. 나무 뼈대의 반대면은 매끄러운데, 고리트에 연결했던 장식판이 눌러진 흔적이 남아 있다. 나무판에는 24개의 구멍이 있어서 나무핀으로 금판과 연결된 흔적이 남아 있다. 금판은 고리트의 앞면에만 장식되었고, 금판의 한쪽 끝은 직각이 되게 하단부가 만들어지고, 따로 제작된 금판(그림 3-3)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고리트에는 앞서 남성과 여성의 윗옷에 달린 적이 있는 황금 멧돼지 장식판(두 종류 크기)(그림 12)이 세 곳(그림 4-26,27,28)에 312점이 나눠서 부착되었다.

 

 

 

그림 3.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고리트

 

 

 

 

그림4.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유물평면도, 우측은 남성, 좌측은 여성이다.

 

고리트 위쪽에서는 활이 확인되었다(그림 5).

 

 

 

그림 5.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활의 모습

 

활(그림 5, 그림 6-7)은 나무를 세로로 네 조각으로 잘라서 만들어서 단면이 각(그림 5)이 졌다. 그 위를 자작나무 껍질을 비스듬하게 감아서 만들어졌다. 활의 윗부분에는 붉은색 염료가 칠해진 금박(그림 7-1~4)이 장식된 것이 있다. 활은 가장 긴 것은 24cm가량이고, 막대는 20개 정도 확인되었다.

 

 

 

그림 6.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활

 

 

 

그림 7.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활(7)과 부속품, 1~4: 활대에 붙은 금박, 5,6:용도미상, 5는 40개, 6은 3개출토되었음, 그림 5에서 가장 우측에서 나란히 놓인 채로 확인되었다.

 

화살은 앞에서 촉은 소개해 드린 바 있다. 활대는 대부분 나무로 제작되었는데, 처음 제작당시의 길이는 60cm이다(단면은 0.6~0.8cm). 횡단면은 타원형이고, 끝은 둥그스럼하고 틈을 파서 제작되었다. 어떤 화살대에는 빨간색 세로 줄무늬가 파란색 바탕에 그려졌거나 혹은 그 반대도 칠해진 것이 있다(

 

 

 

 

그림 8.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화살대 1, 그림 4의 32위치에서 출토, 많이 휘어진 상태인데 화살대이다. 그림 1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활 아님.

 

 

 

그림 9.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화살대 2, 그림 4의 32위치에서 출토

 

 

 

그림 10.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화살대(활 아님) , 그림 4의 32위치에서 출토

 

 

 

 

그림 11.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출토, 고리트(활과 화살통) 복원도, 활은 화살통에 넣어서 사용했다고 알려진다. 

 

 

 

그림 12.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의 아파다나 궁전 북벽, 페르시아인이 스키타이 고리트를 들고 있다. 

 

스키타이 활은 나무판을 덧 붙인 복합궁이라고 불리면서 아주 강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올론-쿠린-고레-10(Олон-Курин-Голе-10)유적에서 출토된 활은 나무판을 여러겹 덧붙여서 제작된 것이다. 보다시피 아르잔-2호와는 차이가 있다. 그림 6과 그림 6-7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Scythians: warriors of ancient Siberia. [British Museum. The BP exhibition. Organized with 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 Russia] Ed. by St John Simpson and Dr Svetlana Pankova. London: Thames & Hudson Ltd. 2017. 368 p.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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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소개한 시베리아의 철기시대문화인 스키타이 문화의  여러 유적 주인공 무덤에서 검이 출토된 적이 있다.

 

아크 알라하-1 유적의 1호분 남성전사 무덤에서는 목제검이 있었다. 아래의 포스팅에는 목제칼이라고 잘못 설명했다. 고고학에서 칼과 검은 엄연하게 다른 유물이다.

부엌에서 쓰는 날이 한쪽으로 만 있는 것은 knife이고, 검은 날이 양쪽으로 있는 Swor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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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스키타이문화의 남성전사의 진실

스키타이 문화는 기원전 9세기 시베리아, 기원전 8세기에 흑해북쪽에서 이른 시기의 유적이 발견된다. 스키타이 문화의 개괄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세히 설명해 드릴 예정이다.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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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 알라하-2 유적의 2호분 소년의 무덤에도 소년의 체격에 맞는 청동검이 출토되었다.

아래포스팅에서 설명하는 ‘청동칼’이 아니라  청동검이다...그때 필자의 눈에 분명히 먼가가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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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알타이 산지의 청동칼

러시아의 시베리아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을 잊어버리신 건 아니지요? 이 무덤에는 무덤방 속에 2개의 관이 있었고 소년과 지금의 기준으로 하면 중년인 남성이 각각 묻혔다. 소년의 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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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공주 무덤인 아크 알라하-3유적에서는 철제 칼이 출토되었다. 통나무관 밖에서 목그릇 옆에서 함께 나왔는데, 분명히 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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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년 전 여성미라 무덤의 뿔, 나무, 흙 그릇

투르크-몽골 계통의 민족들에게는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특별한 그릇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적인 그릇에 특별한 음식과 음료를 담았다고 한다. 야쿠트인들은 신에게 거대한 가죽조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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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지릭 유적의 2호분과 1호분은 주인공 관련한 유물은 거의 도굴당해서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 파지릭 5호분도 앞의 두 무덤 보다는 유물이 많이 남아 있지만 주인공관련한 유물은 많지 않았다. 도굴 때문이다. 아르잔-1호의 피해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스키타이 문화에서 중요한 무기중에 하나임은 틀림없다. 앞서 소개해 드린 흑해 북안의 유적인 솔로하 유적에서 출토된 황금 빗에도 두 남성은 검을 들고 싸우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짧은 단검이었다.

 

2020/02/10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문화/아크 알라하 1유적] -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2500년 전, 어느 그리스 장인의 스키타이 전사에 대한 기억

그림 1.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전체 모습은 앞의 포스팅 참고 그림 2. 솔로하 출토 황금빗, 에르미타주 소장, 말탄 스키타이 전사의 모습, 투구는 코린트 식 그림 3. 솔로하 출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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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잔-2유적은 도굴되지 않은 덕분에 검에 대한 정보가 많다. 앞에서 아르잔-2호 무덤방 5호 주인공 남성의 검집에 달렸던 작은 고리모양을 소개한 바 있다.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장면이었다(그림 1-6).

 

이 남성의 검집에는 그 밖에도 여러 장식(그림 1-4,5,7,8)이 달려 있었다.

 

 

그림 1. 아르잔-2유적의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검집 장식

 

 

그림 2. 아르잔-2 유적의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검집 장식( 그림 1-4와 동일)

 

그림 2의 검집장식은 호랑이 두 마리가 양을 공격하는 장면이다. 단검의 검집 하단에 달았던 장식이다. 앞의 호랑이는 거꾸로 표현되었으나, 표현은 일치한다. (길이 1.5 cm, 높이 1.3 cm, 두께 0.5 cm; 무게 30.61 g)

 

그림 1-5(그림 3-5~7과 동일유물)는 단검의 벨트를 장식하는데 사용되었다. 호랑이가 염소를 입에 넣는 장면을 표현했는데, 고리의 앞면에 두 동물의 머리모양만 표현되었다. 뒷면은 문양이 없다. (길이 1.6 cm, 높이 1.2 cm, 너비:1.1cm, 두께 0.4 cm; 무게 11.34 g, 11.44g, 11.82g, 크기는 동일하지만 무게가 각각 차이가 있다. 너무 미미해서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림 3. 아르잔-2유적의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검집 장식 (1~3은 앞에서 이미 소개, 5,6,7은 그림 1-5와 동일, 8은 그림1-7과 동일)

 

 

그림1-7,8(그림 3-8, 그림 4)은 검집의 하단과 검집의 상단에 붙었던 장식판이다. 검집의 상단은 남성의 벨트와 연결하기 위한 중간 끈이 부착되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 S자형 동물문양장식(그림 1-8, 그림 4)이 부착되었다. 그림 1-7(그림 3-8)이 칼집의 하단에 붙였던 것이다.

두 유물은 앞면은 같은 문양이 묘사되었지만 뒷면은 용도에 따라서 다르다. 앞면은 이 유적에서 출토되는 모든 황금장식판과 마찬가지로 별도의 주물틀에서 만들어져서 기본판에 다시 땜질해서 붙인 것이다. 릴리프(relief)기술이다. 사진에는 표시가 나지 않지만 이 유물의가장자리에 붉은색 페인트 자국이있다고 한다.

 

이 S자판 동물문양장식은 동물 8마리가 각기 다른 포즈로 표현되어 있는데, 구분이 되지 않는 유물도 있다.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 뒤로 돌아보고 있는 우제류(사슴류?), 구부리고 있는 멧돼지, 몸을 등쪽으로 말고 있는 호랑이 혹은 사슴(그림 3-9, 그림 4-2) 등이 표현되어 있다. (길이 5.3 cm, 높이 1.5 cm, 두께 0.3 cm, 무게 55.40 g)

 

 

 

그림 4. 아르잔-2 유적의 무덤방 5호 출토, 남성의 검집 장식. 그림 1-8과 동일유물.

 

계속 포스팅을 보시고 있지만 솔직히 주인공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잘 감이 오지 않으신다구요?

 

저도 조심스럽네요..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Чугунов К.В., Парцингер Г., Наглер А. 2017 : Царский курган скифского времени Аржан-2 в Туве. Новосибирск: ИАЭТ СО РАН. 2017. 500 с.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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