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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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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7. 23. 10:10 카테고리 없음

 

국회도서관에서 서평을 작성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작성한 것이다.

책의 제목은 파뭍힌 여성이다.

 

 

 

프랑스 선사학자인 마릴렌 파투-마티스가 쓴 책이 국내에 번역되었다. 고고학자료를 통해서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의 불편한 시각을 비판한 책이다. 선사자료 뿐만 아니라 프랑스 혁명, 그 이후까지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고, 20세기 이후 여성이 투표권과 노동권을 획득하게 되는 긴 여정을 다루고 있다.

 

필자가 서평 말미에 밝혔지만 이 선사학자의 시각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동의하지않는 부분도 있다. 남성과 여성의 개념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부분이다. 필자(김재윤)는 남성과 여성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고 확신한다.

 

프랑스에서 여권 신장운동이 강하게 일어났던 이유는 아마도 프랑스 혁명으로 자유를 찾은 사람들은 남성들이었기 때문이다. 잘 아시다시피 서구권에서 여성이 투표권과 노동권을 찾은 것은 20세기 들어와서 이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서구권에서 여성들의 투쟁이 먼저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부분까지 필자가 서평에서 밝힐 수 없었기에 블로그를 통해서 입장을 정리한다.

 

아래는 서평의 내용이다.

 

마릴렌 파투-마티스는 구석기시대부터 현대까지 고고학 자료에서 때로는 역사적 사실에서 ‘여성의 존재’를 찾아서 남성 중심의 사회적 선입관을 반박했다. 그녀는 선사학 전공자로서 네안데르탈인 연구자로서 선사시대 물질 자료 뿐만 아니라 고대 및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와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더 기울어진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통찰했다. 서구권에서 여성이 투표권과 노동권을 획득하게 되는 20세기 이후까지 긴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녀는 ‘선사학’의 태동이 서구에서 여성의 투쟁이 시작된 시점과 거의 비슷하다는데 주목했다. 선사학이 활발하게 연구된 것은 20세기 들어와서 이지만 그 뿌리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있다.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인간사회 최초의 ‘가정’은 가족이 아닌 ‘모계’사회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본문 뒤 에필로그의 마무리에서 ‘이제 가부장제도는 다른 체재로 대체되어야 한다. 이제 남녀가 그것을 만들일 만 남아 있다’는 소견으로 자신의 생각이 선사학의 태동을 이끌어 낸 선학들과 맞닿아 있음을 밝혔다.

 

3장과 4장에서는 선사시대 고고학 자료를 사회적 맥락에서 읽어내고 있다. 1974년 아프리카 올드완 계곡에서 발굴된 ‘루시’라고 잘 알려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아파렌시스)‘의 인류화석은 ’인류의 할머니‘, ’아프리카의 이브’ 라는 별명이 있었다. 2000년대 선사학에 도입된 DNA분석법으로 생긴 ‘미토콘드리아 이브’도 결국은 파기되었다. 아프리카의 이브와 같은 맥락으로 남성 중심적 사고관에 젖어 있는 연구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는 선사시대 여성의 자리를 바로 찾기 위해서는 실제 존재한 것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상상 혹은 가설이 아닌 실제 유물, 사람 뼈, 혹은 후기구석기시대 예술가 들이 남겨놓은 여성의 이미지를 근거로 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후기구석기시대 동굴에 그려진 채색 벽화 혹은 새긴 암각화, 여성형상물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여성형상물은 구석기시대 동굴벽화 보다 더 이른 시점에 발생한 3만 5천년 전의 후기 구석기시대 예술품은 19세기 말 발견되는 그 순간부터 ‘부도덕한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여져서 남성중심적이고 서구중심적인 시각으로 연구되었다. 20세기 초 로셀에서 발견된 ‘뿔을 든 비너스’로 불린 유물은 19세기 내내 유럽의 주요국가에서 논쟁이 되었던 특히 흑인여성이 ‘열등한 종족’이라는 당시 믿음의 기준이 되어 버렸고,. 이는 인종 서열화를 파생시킨 트리거가 되었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현재도 활동 중인 저명한 선사학자 앙리 델포르트도 구석기시대 예술가가 ‘남성’이었다는 고정된 시각아래에서 구석기시대 작품속 여성을 ‘어머니 혹은 쾌락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여성형상물들은 영국에서 시베리아까지 주로 후기구석기시대 유적에서부터 확인되고 있다. 대체로 벗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여성성이 매우 강조되었다. 바위그림과 동굴그림에는 여성의 음부가 강조되거나 혹은 여성의 성기만이 표현된 것도 상당수 존재한다. 그러나 벗은 몸이 아닌 옷을 입은 유물도 있고, 특정 신체부위를 훼손시킨 행위 등도 확인되어 모든 여성형상물이 같은 맥락에서 제작된 것은 아니다. 남성형상물은 여성보다 뒤 늦은 시점인 1만 5천년 전에 남성 성기가 강조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저자는 구석기시대 예술가들이 그들의 작품이 19세기 말~20세기 초에 발견될 때와는 달리 성(性)을 금기시 하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고자 했고,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려 했다고 생각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저자는 파묻힌 여성들부터, 르네상스 화가들의 미술에 주제가 된 여성들, 프랑스 혁명기의 여성들까지 서구권에서 20세기 여성들이 억압되어 온 역사를 끝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체도를 꿈꾸고 있었다.

끝으로 서평자는 동아프리카의 호텐족 사라 바트만의 비극적인 이야기에서 여성, 남성을 떠나서 한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모독감을 느꼈다. 가슴과 둔부가 지나치게 강조된 로셀의 여성형상물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성기를 비롯한 신체 구석구석은 ‘탐구’라는 명분으로 19세기 제국주의 국가의 저속한 지식 욕구를 채웠다. 위의 서평에 나오는 엥겔스의 저서는 서평독자를 위해서 사족을 덧붙였다는 점도 밝혀둔다. 그리고 저자가 구석기시대 예술가를 바라보는 입장이나, 인류사회의 보편적 가치인 경전, 성스러운 문서, 지식인들의 글들이 남성중심적 사고관에 입각해서 쓴 글이라는 점도 동의한다. 그러나 서평자는 여성과 남성의 개념자체를 ‘자연스럽지’ 않다는 결론에는 동의할 수 없음을 밝혀둔다.

 

 

 

김재윤

posted by 김재윤23

 

스키타이 문화권 가운데 흑해지역에서 나타나는 남성형상물은 기원전 7세기 벨스크 성곽에서 출토되는 토제품을 시작으로 해서 기원전 5~기원전 4세기까지, 이 문화의 마지막 까지 발견되었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유물에서 발견된다지 않는다. 그리고 유물마다 나타나는 형식에도 차이가 있어서 특정 인물로 간주하기에는 힘들었다(김재윤 2023a).

 

그런데 여성형상물은 다르다. 기원전 7세기경에 나타나는 여성형상물 A는 날개를 달고 있고, 맹수를 손에 쥐고 있다. 이 모습은 거울과 각배 속에 표현되어 있는데, 기원전 4세기까지 나타난다. 물론 여성형상물의 세세한 표현과 이 여성형상이 새겨진 유물에는 차이가 있다.

 

이를 분류해 보았는데, 기원전 7세기 전통이 남아 있는 맹수를 쥐고 있는 여성형상 A-1과 맹수가 아닌 사물을 들고 있는 여성형상 A-2으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맹수를 쥐고 있는 여성형상물 가운데는 머리에 관을 쓰고 있는 것이 알렉산드로폴 유적에서 나왔다. 이 여성형상물은 간두장식으로 사용된 것이다.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에서 나온 여성형상물은 관을 장식하던 관자놀이의 끝장식(그림 1-3)에 표현된 것이다. 이 무덤의 여성 주인공은 스키타이 원통형관(그림 2-11)을 착용한 채 매장되었다.

 

그림 1. 스키타이 여성형상물의 분류

 

스키타이 여성들의 무덤 속에서 간혹 발견되는 스키타이 원통형 관은 유기질제 모자에 납작한 금속판을 쌓아서 올려 붙인 것이다.

 

그림 2. 스키타이 여성의 관

 

맹수가 아닌 다른 사물은 식물, 뱀, 사람머리, 단검 등을 양 손에 쥐고 있는 여성형상물(그림 1-9,10)이다. 날개를 달고 있는 모습 등은 기원전 7세기부터 이어져 온 유물과 유사하다. 그러나 맹수가 아닌 여성형상물 A-2는 그리스 칼라프(그림 2-14)를 착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유물이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 쿨-오바 유적에서 나온 것이다.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에서는 실제로 그리스 칼라프도 나왔다. 이런 여성형상물은 장식판, 마면장식, 골제 빗 등 다양한 유물에서 발견된다.

기원전 5세기에는 그 이전에 나오지 않던 여성과 남성이 함께 나오는 유물(그림 2-14)도 있다. 거울을 들고 있는 여성이 앉아 있고, 각배를 들고 마시고 있는 남성과 마주하는 장면이다. 이 여성도 스키타이 원통형관을 착용하고 있다. 이 여성형상물 B는 다른 유물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방형의 장식판에만 확인된다. 출토위치로 보아서 무덤 주인공 여성의 관에 달렸던 베일 장식으로 추정하고 있다. 스키타이 전통의 여성형상물로 생각된다.

기원전 5세기 이후 여성형상물 A-1은 대형고분 뿐만 아니라 소형무덤에서도 나오고, 아주 조잡하게 만들어지기도 해서 다양하게 소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성형상물 B는 대형고분에서만 발견되고, 특정한 유물에만 적용되고 있다. 이 점은 동시기의 남성형상물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그렇다면 대형고분에서만 나오는 여성형상물 B는 동일한 모습으로만 나오는데 당시에 이 여성에 대한 숭배가 있었을 수 있다. 또 무덤의 주인공은 이를 모시던 사제이거나 했을 수 있다. 러시아의 학자들은 여성형상물 B를 기록(헤로도토스) 속의 타비티(Табити, Tabiti)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 여성형상물 A-2가 나오는 시기(기원전 4세기)의 무덤에는 그리스 유물도 많이 출토되고, 스키타이 사회에 그리스 유물이 많이 수입되던 시기이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스키타이 문화는 사르마트 문화로 대체되는데, 혼란기의 양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김재윤 2023b).

 

*앞의 포스팅에서 타비티를 티파티라고 잘 못 적었다...죄송합니다.

 

 

김재윤의 고고학 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2. 11. 10. 09:15 고깔모자와 코트

 

 

스키타이 사람들의 복장 가운데 실물자료는 동부지역인 대부분 알타이에서 발견되었고, 서부지역에서는 간접적인 자료들(장식판이나 유물에 남아 있는 그림)로 알 수 있다. 남성들이 매우 편해 보이는 바지를 입는 것은 당연하다. 말을 타기 위해서는 튼튼한 바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바지는 유목민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한다.

 

 알타이의 남성들은 긴 바지를 입은 채 매장되었지만, 여성들은 긴 치마를 입고 발견되었다. 그럼 여성들은 말을 타지 않았는가?

하지만 형질 인류학적으로 보았을 때 이른바 '라이더 콤플렉스' 라고 하는 현상이 주로 35세 이상의 남성 골격의 40%, 여성골격의 10%에서 확인된다고 한다. 주로 승마로 인해서 하퇴골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알타이의 스키타이 인골을 대상으로 한 결과다(스테파노바 2015).

  그렇다면 알타이의 여성들도 말을 탔고, 당연히 바지를 입었을 것이다.

 

 또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스키타이 여성들은 활을 쏘고 창을 던지고 직접전투에 참가했다.(Herodotus 4.114)  헤로도투스가 살았던 흑해 주변의 유적에서는 그리스 토기나 황금모자에 스키타이 여성이 종종묘사된다. 그들은 짧은 상의를 입고, 바지를 입고 칼과 활을 들고 싸우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림 1. 볼쇼야 블리즈니차 유적에서 출토된 칼라프(모자)의 세부

 

 

그림 2. 그리스 토기의 스키타이 궁수(여성이라고 함)

 

아크 알라하-3 유적과 같은 치마가 발견된 중국 신강성의 수바쉬-3 유적에서는 모직으로 된 긴 바지를 여성미라들이 입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서 아마도 여성들은 TPO에 맞추어서 옷을 입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파지리크 유적의 2호에서는 매우 화려하게 장식된 여성의 모피코트가 있었다(그림 3). 또 아크 알라하-3유적의 여성도 금박지로 장식된 매우 화려한 코트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여성미라 주변에 떨어져 있는 금박지가 썩어서 없어진 유기질제 코트의 장식품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그림 3. 파지리크 유적 2호 출토, 여성의 모피코트와 고깔모자

 

파지리크 유적의 2호 모피코트는 이란식 칸디스와 비교된다. 어깨가 매우 좁고 좁은 소매인데, 망토처럼 어깨에 걸쳐서 입는 스타일이다. 화려한 모피코트와 긴 치마는 아마도 생전에 의식용(의례, 축제)이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Е.В. Степанова. 2015, Скифские сёдла и последствия верховой езды для лошади и всадника в скифское время//Археологический сборник. 40,(스테파노바, 2015. 스키타이 시대 말과 기수를 위한 안장과 그 결과)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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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5~4세기 고대 흑해연안에 살았던 스키타이 여성들 중에는 유독 화려한 모자를 썼던 경우가 무덤 속에서 종종 발견된다. 스키타이 칼라프라고 불리는 이마를 가리도록 된 모자를 일컫는다.

 

또 티아라 라고 불리는 유물도 발견된다. 몇몇 무덤에서 발견되는데, 스키타이 칼라프 중에 높은 종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좀 다르다. 유기질제로 된 모자 틀에 장식을 붙여서 만들었고, 상단이 편평하다(그림 3).

 

이들은 실제로 유적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여성형상물에서도 확인된다.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에서 발견된 아르김파사는 티아라를 착용하고 있다(그림 1). 또 비슷한 시기에 알타이의 파지리크 유적 5호의 카페트 속 여성도 무엇인가를 쓰고 있는데, 티아라와 비슷하다(그림 2).

 

 

그림 1. 알렉산드로프스키폴 유적, 얼굴 위는 단순한 모자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쓰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림 2. 파지리크 유적 5호의 카페트 부분

 

그림 3. 크라스니이 페레코프 유적 출토

 

스키타이 칼라프 중에서 메토피드라고 불리는 이마장식을 제외하고는 티아라, 고깔모자, 칼라프 모두 머리 위로 높게 하는 것이 스키타이 여성들의 모자 특징이다. 모자는 높을수록 중요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시베리아의 아르잔-2호의 주인공 무덤을 보면 고깔모자의 전통은 여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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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재윤23

 

기원전 4세기 고깔모자를 쓴 여성이 무덤에서 발견되는 유적 중에서 카라고데우야쉬흐가 있다. 이곳 무덤에서 나온 고깔모자는 이미 소개한 바 있다.

 

그림 1. 카라고데우야쉬흐 유적의 여성 관장식

 

흑해지역에서 여성의 관은 대체로 유기질제(가죽 혹은 섬유질)로 된 원통형, 역 사다리형, 고깔형으로 된 모자틀에 장식판을 붙여서 만든다. 원통형과 역사다리형에는 길쭉한 장방형의 장식판을 여러 개 붙이고, 고깔형에는 원형 혹은 방형의 소형 장식판을 붙여서 만든다. 그런데 이 유적에서 나온 모자장식판은 모자의 앞면을 장식판이 다 덮는 형태이다.

 

특히 장식판의 하단에 있는 여성은 상단의 여성과는 다른 문화의 여성인데 아르김파사라는 의견도 있지만 좀 다른 시각도 있다.

2020.12.24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서쪽/흑해의 전사] - 쌍두마차 탄 스키타이 태양신

 

쌍두마차 탄 스키타이 태양신

스키타이 문화에서 확인되는 전차의 모습을 2종류를 보았다. 알타이 파지릭 5호분에서 발견된 4륜의 나무로 된 마차와 아무다리야 퇴장지에서 출토된 2륜의 마차이다. 각각 4륜의 마차(파지릭 5

eastsearoad.tistory.com

 

 

그 이유는 무덤의 구조 때문이다. 분명히 봉분(높이 10m, 지름 64m)을 높게 설치한 구조는 스키타이 무덤을 닮았지만 내부 구조는 많이 다르다. 솔로하 유적, 톨스타야 마길라 유적 등에서는 중심부에 무덤방이 있고 측면에 따로 무덤이 있으며, 무덤방안에 나무로 된 무덤을 둔 구조이다. 하지만 이 유적에서는 무덤의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돌로 된 무덤방 4개가 일렬로 된 구조이다(그림 2). 이와 같은 구조는 스키타이 문화의 영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바흐티나에 따르면 고대 트라키아 문화의 무덤 구조라고 한다. 트라키아는 주로 오늘날 헝가리 일대에서 그 문화의 흔적이 발견된다고 한다.

 

그림 2. 카라고데우야쉬흐 유적의 무덤 구조

 

참고문헌

 

Артамонов М.И. 1966 : Сокровища скифских курганов в собрании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го Эрмитажа. Прага — Л.: Артия, Советский художник. 1966. 120 с (아르타모노프 1966, 에르미타주 소장 스키타이 무덤의 보물)

Marina Yu. Vakhtina, The Female Burial at Karagodeuashkh, Environment and Habitation around the Ancient Black Sea, De Gruyte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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