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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23
보이는 유물로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조각을 맞추고 있습니다.유라시아선사고고학전공.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역사학박사.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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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 6. 09:22 책소개

 

다시 돌아가서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의 동물장식처럼 인간형상물은 이 문화의 상징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서 보셨듯이 인간형상물의 전통은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의 이전부터 지속되어 왔고 철기시대에 극대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동부지역 여신상인 미라는 부활을 기원하면서 제작되었다. 반면에 서부지역의 여신상은 기원전 7세기는 조상숭배의 개념에서 기원전 5세기 이후는 실용적인 벽사의 개념으로 바뀌는 차이점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러한 관념들이 갑자기 생겨났을까?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 이전에도 시베리아에서는 무덤 속에 뼈로 제작된 인간형상물을 무덤속에서 지속적으로  부장해 와서 매우 정신적인 영역의 유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고, 부활의 의미가 미라 이전부터 있었을 수 있다.

반면에 흑해지역에서는 특정기간에 제작되며 주거지와 무덤에서 모두 발견된다. 조상숭배의 개념에서 부적이나 벽사의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인간형상물은 일상생활용품과 달리 그 변화는 천편일률적이 아닐 수도 있다. 후기구석기시대부터 무덤 혹은 주거지에 부장되는 그 행위가 지속적으로 보존된다는 것으로 보아서 동물문양 처럼, 유라시아 초원 선사문화의 상징물로써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유라시아 초원 선사시대 인간형상물의 동서비교

 

*위의 글은 11월 5일에 개최된 제 45회 한국고고학대회의 필자 발표문을 발췌한 것입니다.

한국고고학회 (kras.or.kr)

 

참고문헌

김재윤, 2021, 유라시아 초원 선사시대 인간형상물, 45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 발표문

김재윤 2021,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교과서 밖의 역사, 진인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1. 5. 09:22 책소개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 이전에도 인간형상물은 발견된다.

 

시베리아의 청동기시대인 오쿠네보문화에서도 인간형상물이 무덤 속에서 발견된다. 청동기시대 쿠르간이라고 불리는 방형 혹은 원형의 호석 안에 석관묘가 여러기 들어가는 무덤이다. 여성과 남성이 구분되어 발견된다. 골제로 제작되었다.

 

그림 1. 오쿠네보 문화의 인간형상물

 

순동시대의 글라스코보 문화에서도 역시 인간형상물이 발견되는데, 토광묘 속에서 맘모스 상아로 제작된 인간형상물이 토광묘 속에서 발견되었다.

 

그림 2. 글라스코보 문화의 인간형상물

 

신석기시대에는 키토이 문화와 세로보 문화에서 각각 발견된다. 토광묘 속에 맘모스 상아로 만든 유물이 발견된다. 인간형상물과 동물이 합체된 모습으로 무덤 속에 부장되었다.

 

그림 3. 세로보 문화의 인간형상물

 

인간형상물은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제작되었다. 말타와 부레티 유적에서 발견되는데, 맘모스 상아로 제작되었으며 남성과 여성이 구분되었다. 말타 유적은 집자리 15동이 발굴되었는데 대부분의 집에서 발견된다. 그 중에서 원형 주거지의 화덕자리에는 인골과 함께 인간형상물이 발견되어서 집 속의 무덤으로 여겨지며 이곳에서 인간형상물이 발견된다.

 

그림 4. 후기 구석기시대 인간형상물

 

반면에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권의 서부지역에서는 그 이전에 순동시대인 쿠쿠테니 트리폴리예 문화에서 발견된다. 대표적으로 사바티니프카 II유적과 베르나세프카 유적이 있다. 사바티니프카 II유적에서는 주거지 가장 안쪽의 제단 위에서 32점의 토제로 된 여성상이 발견되었다. 또한 베르나세프카 유적에서도 7개의 주거지가 발굴되었고 그 중에 한 곳에서만 소의 두개골과 여성상이 발견되었다. 생활의례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비트바틴트시유적은 앞의 유적보다는 늦은 연대로 9~10세의 소녀의 무덤이다. 이곳에서 3점의 여성상이 발견되었다.

이 문화에서는 전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인간형상물의 변화가 보이는데, 전기의 앉아 있는 모습으로 둔부가 강조된 형태에서 서 있는 모습으로 변화된다. 하반신의 여성성이나 이해할 수 없는 얼굴표현은 공통적이다.

 

그림 5. 쿠쿠테니 트리폴리예 문화의 사바티니프카 II 유적의 주거지와 복원도

 

 

그림 6. 사바티니프카 II유적의 인간형상물

 

그림 7. 비트바틴트시 유적의 여성형상물

 

쿠쿠테니 트리폴리예 문화 이전에는 후기구석기시대 그라베트 문화에서 인간형상물이 발견된다. 여러 유적이 있지만 코스텐키 1유적이 가장 대표적인데 주거지 1기에서 43점의 여성형상물이 출토되었다. 모두 여성상이며 맘모스 상아 혹은 이회암으로 제작된다. 눈코입의 표현이 없고 가슴과 엉덩이를 매우 강조한 형태이고, 일부러 신체의 부분을 훼손하는 행위도 있다.

 

그림 8. 후기구석기시대 그라베트 문화의 인간형상물

 

그래서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시베리아와 흑해지역은 인간형상물을 부장행위는 발견되지만, 부장양상은 다르다. 시베리아에서는 무덤속에서 부장되며 뼈라는 한정적 소재로 여성과 남성 형상물이 발견되지만, 흑해지역에서는 뼈와 돌로 제작되며 특정 집자리에 집중되고, 여성형상물만 제작된다.

 

* 이 내용은 11월 5일 45회 한국고고학대회 발표문을 발췌한 것입니다.

www.kras.or.kr

 

참고문헌

 

김재윤, 2021, 「유라시아 초원 선사시대 인간형상물」, 『제 45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 발표문』

김재윤 2021, 유라시아 초원 스키타이 문화의 미라와 여신상: 교과서 밖의 역사, 진인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2021. 11. 3. 09:22 환동해문화권의 암각화

 

반구대 암각화에서 배 그림은 고래와 함께 그려진다. 그럼 배 그림은 고래와 같은 연대 일 수 있다. 그러나 그도 간단한 것이 아닌 것이 고래는 58마리나 등장하며, 다양한 종류의 고래가 그려졌다. 그 중에서 고래가 머리를 하늘로 향하고 있는 장면 및 고래가 수평으로 놓인 장면 에 나오는 고래는 종류가 다르다. 그래서 반드시 고래도 같은 시기에 그려졌다고 볼 수 없다. 앞의 것은 북방긴수염고래로 페그티멜 암각화에 등장하는데 기원전 10세기경에 그려진 것이다(김재윤 2017b). 그 외 배와 함께 그려진 고래는 귀신고래, 범 고래(그림 2)등인데 북방긴수염고래(그림 1-A)와는 다른 종류이고 그려진 방향도 달라서 그려진 시점도 따로 생각 해 볼 수 있다(김재윤 2021).

 

그림 1. 반구대 암각화의 북방긴수염고래

 

 

 

그림 2.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와 배

 

 

실제로 우리나라의 8000년 전 비봉리 유적에서는 배(그림 3)가 발견되었고, 동삼동 유적에도 배를 모방한 토기(그림 4)가 확인되어서, 신석기시대에 배는 존재했다. 그렇다면 반구대 암각화의 배도 신석기시대의 그림일 수 있다.

 

그림 3. 창녕 비봉리 유적

 

그림 4. 동삼동 유적에서 발견된 모형 배

 

 

다시 돌아가서 사카치 알리안의 호랑이와 사슴, 페그티멜 암각화의 사슴과 고래는 반구대에서 확인되는 같은 방법으로 그려진 문양이다. 여기에 환동해문화권의 배 그림도 그들이 이동한 바닷길을 말해주는 것 같다(김재윤 2021).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암각화가 발견된 것 만이 아니라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신석기문화가 남부지역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김재윤 2017a).

 

 

 

참고문헌

 

김재윤 2017a, 『접경의 아이덴테티: 동해와 신석기문화』, 서경출판사

김재윤, 2017b, 「반구대암각화의 비교고찰-부산경남의 선사시대 지역성」, 『인문사회과학연구』 제18권 제4호

김재윤, 2021, 「반구대암각화와 환동해문화권 북부지역의 배 문양 암각화 비교검토」, 『인문사회과학연구』,제 22권 제 2호

posted by 김재윤23
2021. 10. 29. 09:22 고깔모자와 코트

 

 

해발 2000m의 쿠투르군타스 유적 남성은 이중으로된 나무방 속에 통나무관에 안치되었다. 통나무관이 매장되는 경우는 파지리크 문화에서 드물어서, 계급이 높은 신분에서 확인된다고 보았다. 통나무관이 발견되는 경우는 바샤다르 유적이 처음으로 기원전 6세기 경부터 알타이의 파지리크 문화에서 주로 발견된다. 도굴 때문에 유물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쿠투르군타스 유적의 남성도 해발 2500m위에 있는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분 남성과 비슷한 사회적 역량이지 싶다. 이 유적에서도 모피조각이 발견되어서 남성은 모피로된 코트를 입었을 수 있다. 그나마 잘 남아 있는 남성의 모피코트는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1호와 3호 남성이다. 각각 다른 스타일의 모피코트이다. 특히 베르흐 칼쥔 II유적 3호 남성은 꼬리 달린 모피코트를 입고 있었다(그림 2).

 

그림 1.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1호

 

그림 2. 베르흐 칼쥔 II유적의 3호

 

여성 모피는 통으로 발견된 예가 없지만 아크 알라하 3유적의 여성도 모피코트를 입었을 수 있고(포스팅 참고), 파지리크 유적의 2호분 여성도 모피코트를 입었다.

 

2021.07.23 - [교과서 밖의 역사: 유라시아 스키타이 문화- 우랄 남부/탁사이 1 유적] - 카자흐스탄 탁사이-1 여성의 스타일

 

카자흐스탄 탁사이-1 여성의 스타일

카자흐스탄 서부의 탁사이-1 유적의 여성은 금으로 된 십자형 그리핀이 표현된 장식판과 산양머리 장식판이 고깔모자와 상의에 부착되었다고 추정된다. 발굴당시에 고깔모자와 상의는 남아 있

eastsearoad.tistory.com

 

 

파지리크 유적의 2호 여성은 통나무관에서 꺼내진 상태로, 미라로 처리된 시신은 찢겨진 상태로 발견되어서 몸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그녀의 코트는 발견되었는데, 가죽으로된 아플리케 장식(그림 3,4)과 그 위에는 둥근 금박이 씌워진 화려한 코트이다.

 

그림 3. 파지리크 유적의 2호 여성코트

 

 

그림 4. 그림 3의 디테일

 

아플리케 장식을 덧붙인 것은 쿠트르군타스 유적에서도 발견된 바 있는데, 주머니의 조각으로 보고 되었으나, 코트의 조각 일 수도 있다.

 

어린아이도 모피코트를 입었던 경우가 울란드리크 1유적 2호분에서 발견되었다. 역시 아플리케 장식이 부착된 스타일이고, 여러 번 고쳤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쿠바레프는 그 흔적이 여러 아이들이 돌려 입으면서 생긴 것으로 보았다.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Баркова Л.Л. 2005 : Костюм и текстиль пазырыкцев Алтая (IV-III вв. до н.э.). Новосибирск: «Инфолио». 2005. 232 с.(폴로스막, 바르코바 2005, 알타이 파지릭 사람들의 의복과 직조물

Кубарев В.Д. 1987 : Курганы Уландрыка. Новосибирск: 1987. 304 с(쿠바레프 1987, 울란드리크 쿠르간)

 

 

김재윤의 고고학강좌

 

 

 

 

posted by 김재윤23

 

 

알타이의 해발 2000m가량의 이중목곽묘 안에 통나무관이 있고 무덤을 덮은 돌의 범위가 25m가량인 쿠투르군타스 무덤은 특히 알타이에서 무덤으로 들어가는 복도시설이 있었다. 알타이에서는 처음 발견된 예이다. 말의 굴레장식에 달았던 사람얼굴의 목제품도 몽골로이드의 얼굴이 아니다.

 

쿠투르군타스 무덤에는 예상대로 30~40세 남성이 매장되었다. 도굴꾼은 뚜껑도 열지 않고 부수고 유물들을 꺼내갔다. 남아 있는 유물은 목이 긴 토기(쿱신이라고 불림)(그림 2-10), 뼈로 된 화살촉, 수탉 모양의 가죽 아플리케 장식(그림 2-11), 목제 산양머리 장식(그림 1), 활통에 달았던 일종의 단추(그림 2-14), 그리핀 형태의 가죽 아플리케 장식(그림 2-13), 가죽으로 된 산양뿔 장식(그림 2-12) 등이 조각이 나서 남아 있었다. 남성은 모피코트(그림 2-7)를 입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 1. 쿠투르군타스 유적의 산양머리

 

또한 아크 알라하 1유적의 1호 무덤에서 발견된 적이 있는 매듭끈(그림 2-9)도 발견되었다. 활과화살통에 달았던 것이었는데, 이 유적에서도 같은 용도였을 것이다.

 

가죽아플리케가 붙은 모피조각(그림 2-7)도 발견되었는데, 주머니로 보고되었으나, 비슷한 문양은 알타이에서 발견된 여러 옷 조각에서 볼 수 있었다.

 

마구의 굴레장식은 아크 알라하 3 유적, 아크 알라하 1유적과 기본적으로 비슷하다(그림2-1~6). 그런데 눈에 띄는 유물은 말의 머리를 조각한 것이다(그림 2-3). 금박을 입힌 채 남아 있었는데, 모두 4점이 발견되었다.

 

 

그림 2. 쿠투르군타스 유적의 출토유물

 

참고문헌

 

Полосьмак Н.В. 1994 : «Стерегущие золото грифы» (ак-алахинские курганы). Новосибирск: 1994. 125 с (폴로시막, 1994,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아크 알라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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